비만의 종말 - 어느 비만수술 전문의사의 고백
가쓰 데이비스 지음, 김진영 외 옮김 / 사이몬북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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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탄고지, 구석기 식단 등 한번 쯤 들어본 적이 있는 식사 방법들이다. 공통점은 당뇨와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탄수화물을 멀리하고, 고단백, 좋은 지방을 갖춘 식단을 갖추라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채식도 포함이다. 이처럼 언젠가부터 우린 탄수화물을 건강의 적처럼 여기며 멀리하기 시작했다. 그럴만도 하다. 커피와 각종 음료에 들어가는 온갖 시럽과 크림등은 탄수화물에 지방 투성이고, 달디단 도넛과 슈거 등도 모두 탄수화물이다. 이들은 정말 단맛이 강해 중독성이 크고 먹으면 살이 많이찌게되니 건강에 상당한 문제요소로 여겨졌다. 실제 이의 영향을 많이 받아 많은 사람들이 식단에서 고기나 약간의 야채만 먹는 경우가 많고,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건강앱같은 경우 탄수화물, 지방, 심지어 비타민이나 칼슘, 칼륨, 철분등의 섭취량에도 일일 제한량이 있지만 단백질은 제한량이 없다. 무한히 먹어도 괜찮다는 말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나. 

 저탄고지나 구석기 식단은 모두 인류가 농경 이전 탄수화물을 많이 먹지 않고 고단백, 고지방 식사를 즐기면서 건강을 영위해왔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하지만 인간은 먹은 식품의 대부분은 역사상 농경이전에도 탄수화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육식동물이 아니고 잡식이고 사실상 채식에서 육식을 첨가하는 잡식으로 진화했다. 즉, 기본 바탕이 채식이라는 것이다. 또한 육식을 시작하고서도 변변치 않은 육체적 능력과 사냥솜씨로 인해 채식이 열량의 대부분을 채웠을 것이 분명하다. 사냥 기술이 발달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사냥은 성공률이 떨어졌고 변동성이 커 대부분의 열량은 역시 탄수화물 기반의 채식에서 이뤄졌을 것이다. 인류가 사치품은 육류를 마음껏 즐길수 있게 된 것은 기껏해야 최근 50년간 선진사회에서만으로 인간이 과거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해낸 이후이다. 그리고 탄수화물을 멀리하고 단백질을 찬양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시점이며 인간이 비만과 고혈압, 고지혈, 심장병, 뇌졸증,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도 이 시점이다. 

 저자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탄수화물은 우리의 적이 아닌 오랜 에너지원으로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요소이며 단백질과 지방은 그렇지 않다고. 특히 단백질의 문제점에 대해 상당히 많이 지적한다. 보여지는 근육을 중시하는 사회가 되면서 근육의 생성을 위해 단백질의 섭취를 트레이너들을 중심으로 중요히여기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근육은 우리몸에서 충분히 재활용을 통해 재생성되므로 굳이 고기를 먹어가면서까지 보충할 필요가 없으며 단백질 섭취량을 늘려나가면 어느정도까지는 근육 생성량이 늘어나지만 이후에는 오히려 감소한다고 말이다. 거기에 작금의 단백질 중독 현상은 비만과 암, 당뇨병, 고혈압, 심장병등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단백질의 진실로 5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단백질은 체중감량의 열쇠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탄고지나, 구석기 식단이 인기를 끈 이유는 눈에 보이는 체중감량 효과와 근육 증량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일년 이내의 매우 단기적 효과다. 이런 식단을 유지하면 결국 이전 체중 이상으로 증가하는 요요현상이 오고 성인병과 설사, 통풍, 고약한 채취 등으로 고생하게 된다. 고단백 다이어트를 시작하게 되면 몸은 에너지원 탄수화물이 고갈되어 간에 저장한 글리코겐을 분해하여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된다. 글리코겐은 수분과 함께 저장되는데 글리코겐을 사용하며 이 수분이 같이 사용되게 된다. 즉, 고단백 다이어트의 효과는 이 수분의 상실효과에 불과하다. 때문에 고단백 식단은 건강하고 지속적인 다이어트 방법이 되질 못한다. 

 두 번째는 단백질이 당뇨, 고혈압, 심장병, 암과 같은 병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식물성 단백질이 인간에 이로우며 모든 식물에는 인간에게 필요한 충분한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양학계에서는 인간에게 필요한 단백질을 하루 50g정도로 꼽는데 이는 사실 최소 권장량이 아닌 최적의 권장량이다. 즉, 다소 모자라도 괜찮고 넘어서면 과잉이라는 점이다. 이는 생각보다 매우 적은량으로 언급한 것처럼 인체 자체가 상당수의 단백질을 재합성하여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50g의 단백질은 풍성한 채식 위주의 식단만으로도 하루 보충이 충분히 가능하다. 채식으로 3끼니를 모두 떼우고 단 한번만 육식을 하면 단백질은 바로 과잉이 된다. 네 번째는 저단백, 저지방 식단을 살을 빼고 건강을 향상시키며 미래의 질병을 예방한다는 것이며 마지막은 탄수화물은 인간의 건강과 활력의 원천이나 정제 탄수화물만은 건강의 적이라는 점이다. 여기서 정제 탄수화물은 가공에 좋게 정제된 백색 밀가루나 백미, 백색 설탕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물성 단백질을 과다 섭취하게 되면 몸엔 바로 이상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바로 이것들이다. 과체중, 콜레스트롤 과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고혈압, 변비, 설사, 피부의 여드름, 종종 피곤하거나 에너지 부족, 기억력 집중력 등 뇌의 인지기능의 문제, 잦은 통증이다. 육식이 잦은 미국인들은 게실염이라는 병을 앓는데 이는 육류섭취가 과다하고 채식이 부족할때 생기는 병이다. 섬유질이 부족해지면 배설물이 결장에 쌓여있어 대변이 잘 나오지 않게 되는데, 그러면서 배변시 많은 힘을 주게 되고 그 압력으로 대장벽이 망가져 부풀어 오르다 터져버리는 것이 게실염이다. 

 사실 채식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매우 자명하다. 세계적으로 장수하는 국가 사람들은 대개 10%이하의 열량만을 단백질에서 얻는다. 현재의 건강상식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이상적 비율은 5:3:2정도로 잡고 단백질 식단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이를 3:5:2정도로 시행한다. 하지만 이런 식단을 갖는 사람들은 선진국 사람들로 대개 성인병을 앓고 있다. 하지만 건강한 장수국가의 사람들은 채식위주의 식단이고 단연 탄수화물 중심의 식단이다. 아마 8:1:1정도일 것이다. 세계 최장수국인 일본, 거기서도 더 장수하는 오키나와의 원주민의 전통 식단은 쌀과 고구마류인 얌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대부분의 열량을 여기서 얻었고 약간의 생선류를 즐겼을 뿐이다. 

 그리고 선진사회에서도 채식을 즐기는 자들의 건강에 압도적으로 좋다. 비건은 체중이 가장 덜 나가며, 성인병 유발이 적고, 수명도 길다. 많은 사람들이 탄수화물이 당뇨를 유발한다고 하는데 저자는 당뇨를 유발하는 것은 사실 단백질이라고 말한다. 실제 과거 육류가 귀한 시절의 사람들은 지나칠 정도로 곡식을 많이 섭취하여 현대인이 보기에 과다한 탄수화물을 섭취하였지만 당뇨가 거의 없었다. 유럽 10개국 52만명을 12년간 추적한 에픽 실험은 당뇨는 육류와 관련하고 채소 및 과일은 관련이 없음을 결론내렸다. 실제 채식인의 당뇨발병률은 2.9%, 유제품과 달걀까지를 허용하는 페스토는 3.2%, 생선까지 허용하는 채식인은 4.8%, 보통 육류 섭취자는 7.6%로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실제 위 추치는 단백질 섭취가 허용될 수록 당뇨발병률이 증가함을 보여준다. 

 단백질이 당뇨를 유발하는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인간은 채식에서 진화했으므로 오랜 기간 천연당을 활용하게 발달했다. 췌장에서 생산된 인슐린은 포도당을 세포에 배달하는 역할을 하는데 저탄고지 식사를 하게 되면 인슐린의 분비가 최소화된다. 하지만 그러면서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나는데 이는 고기에 포함된 지방 성분 때문이다. 섭취한 지방은 세포로 침투하는데 단백질 섭취 증가로 인해 황이 풍부한 아미노산도 같이 증가한다. 아미노산은 이름처럼 산성으로 인체를 산성하시키고 이로 인해 조직에 염증이 발생하게 된다. 신체는 산도 조절을 위해 근육의 칼슘을 혈류에 내버리게 된고 이로 인해 칼슘 부족으로 골다공증이 생겨난다. 즉, 단백질은 당뇨와 골다공증을 같이 일으키는 셈인 것이다. 

 고기가 비위생적인 것은 이런 현상을 더욱 악화시킨다. 충분히 높은 온도에서 조리한 고기는 세균이 죽어 안전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물의 근육안의 박테리아에 의해 생성되는 내독소는 고열에서도 파괴되지 않는다. 문제는 이 내독소가 염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이 염증으로 근육세포에 지방이 축적하고 언급한 것처럼 지방이 근육세포로 들어가면 새로운 인슐린 수용체를 만들어내는 세포의 능력을 방해한다. 즉, 인슐린 저항성이 생겨나 당뇨가 유발되는 것이다. 

 고기의 높은 철분도 문제다. 철분은 헴철과 비헴철로 구분되는데 육류의 철분은 헴철이다. 이 헴철은 산화의 주범이며 인슐린 저항성은 높여 당뇨를 유발한다. 실제 당뇨 환자들에게서는 많은 혈류 철분량이 관찰되며 이들에게서 다량의 혈액만 뽑아내도 인슐린 저항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고기는 혈압도 상승시킨다. 섬유질은 몸속 찌꺼기를 긁어내어 천연 혈압강하 역할을 한다. 식물성 단백질은 아미노산은 글루탐산을 포함하는데 이것이 체내에서 매우 강력한 항산화 물질은 글루타티온으로 변환되어 혈압을 강하시킨다. 동물성 단백질은 이러한 역할을 못하니 혈압을 상승만 시킬 뿐이다. 또한 고기의 섭취는 아미노산 아르기닌의 분해를 방해하는데 아르기닌은 아산화질소가 되어 혈관을 팽창시킨다. 즉, 아르기닌의 방해는 혈압 강하는 막는 셈이된다. 

 저자는 과다해보이는 탄수화물의 섭취가 실은 정제된 것의 과다 섭취만 아니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탄수화물의 섭취가 늘면 우리 몸은 탄수화물 이용률을 크게 증가시킨다. 많이 먹을 수록 많이 사용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다 지방은 바로 저장한다. 탄수화물이 과다하면 역시 지방으로 전환되긴 하지만 이는 화학적 과정상 매우 번거로운 작업으로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여분이 보다 쉬운 글리코겐으로 먼저 저장되며 이것마저 어려우면 지방으로 저장되는 것이다. 반면 과잉 단백질은 지방처럼 즉시 지방으로 저장된다. 

 단백질과 지방의 섭취는 과잉 열량을 불러온다. 단백질, 지방이 사치품인 이유는 이들의 영양소와 열량의 밀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인체는 이를 섭취하여 열량이 충분함에도 포만감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아 필요이상으로 더 섭취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과일아니 채소의 섬유질은 당분결합체 역할을 하여 체내에 당분이 서서히 흡수하게 도우며 상당한 포만감을 일으켜 과잉섭취를 막는다. 

 저자는 채식에 대한 오해도 하나하나 타파한다.

우선 비타만 B12 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엄격한 비건은 비타만 B12가 결핍되는 면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채식의 잘못이 아니다. 비타만 B12의 결핍은 이 성분이 토양세균에 의해 생성된다는 것이고 이것이 채소로 이동하여 인체에 흡수되는 것인데 지금은 지력의 고갈로 비타만 B12가 토양에 매우 부족하다. 하지만 지력이 충분한 유기농 채소의 경우 비타만 B12가 여전히 풍부하다. 

 다음은 뼈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뼈를 칼슘과 동의어로 생각하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실제 뼈는 칼슘이에도 칼륨, 마그네슘, 섬유질, 비타민으로도 강해진다. 이는 채소에 풍부한 성분이다. 반면 언급한 것처럼 과다한 육식은 체내 칼슘을 고갈시켜 오히려 골다공증을 유발한다.

 세 번째는 빈혈이다. 채식을 하면 철분이 다소 낮게 유지도니다. 하지만 이것이 빈혈을 일으키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과다 육식으로 인한 철분 과다는 언급한 당뇨 및 산화문제를 일으키며 노화와 산화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네 번째는 HDL 수치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HDL은 좋은 콜레스트롤로 LDL이 높을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채식인은 이미 LDL자체가 매우 낮기에 굳이 HDL이 많이 필요치 않다.

 마지막은 허약하다는 이미지다. 하지만 이는 가장 형편없는 편견으로 이미 많은 유명한 강인한 운동선수들이 채식을 즐기고 있다. 자연계만 봐도 사자나 호랑이 같은 포식자를 일대일로 압도하는 코끼리나 하마, 코뿔소 등은 강력한 근육을 갖추고 있다. 호랑이나 사자가 이들보다 유리한 것은 근육에서 오는 강인함이 아니라 포악함과 이빨, 발톱때문, 협동사냥능력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기본적으로 동물성 단백질을 많이 섭취하게 끔 설계되지 않았고 육식동물만큼 고기에서 비롯되는 산을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인간의 턱과 침과 장기들은 기본적으로 과일과 채소를 먹게끔 설계되었다고 말한다. 잘익은 과일과 통곡물의 섭취는 공생하는 장속 세균들에게 양질의 섬유질과 과당류를 공급해준다. 하지만 고기는 그렇지 않다. 더구나 최근 우리가 먹는 고기들은 매우 오염된 것들이다. 물고기들은 PCB와 다이옥신, 수은으로 오염되었고, 소는 옥수수와 각종 동물의 부산물을 열처리한 후 각종 첨가물을 들이부은 사료를 먹고 자란다. 그 소가 만든 우유에는 각종 항생제체 남아있고 상업용 우유는 거기에 다시 표백제와 각종 화합물을 첨가한다. 이 동물들이 그 과정에서 받는 고통과 지구 온난화도 문제다. 육식은 이렇게 문제가 많다. 인간 자신의 건강과 지구, 그리고 동물을 위해 채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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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청소년-시민입니다 곰곰문고 13
박지연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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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교를 졸업하여 대학생 혹은 사회인이 되기까지 한국의 학생들은 인고의 시기를 겪어야 한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모든 권한을 박탈당하고 학생다움이란 굴레에 갇혀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모든 행복과 하고 싶은 것은 이것들을 위한 뒷전이 되고 학생들도 그걸 내면화시켜 참고 살아왔다. 왜 지금부터 행복하고 권한을 가진 시민으로 살면 안될까란 생각을 당연히 해본적이 없다. 그저 고교시기가 끝나서 갑자가 모든 권한이 주어진게 좀 우습고 이상했을 뿐이다. 불과 며칠전가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는 고교생이었는데 말이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은 학생시절의 행복과 여러 권한을 박탈하는 반헌법적 문제도 야기하지만 무엇보다도 학생 자신이 올바른 시민으로 자라날 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노예로 평생을 살아온 자가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시민정신을 가진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학생이 이른이 된다고 해서 갑작스레 주체로서의 시민이 되기는 만무하다. 한국의 시민성이 낮은 것은 이런 것도 큰 작용을 할 것이다. 

 시민으로 자라나기에 한국 학생들이 처한 상황은 학교 안팎으로 암울하기만 하다. 학교밖에서 우선 한국의 학생들은 사실상 참정권이 박탈되어 있다. 선거권은 2019년에야 간신히 만 18세로 내려왔다. 학생연령으로 치면 고3학생중 생일이 지나간 학생들 일부만 선거권을 갖게되는 수준이다. 어느 정치인이든 학생의 말을 듣지 않게 되는 구조다. 여기에 정당에 가입할수도 없다. 물론 그간의 노력으로 정당가입이 만 16세이상이면 가능하긴 하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부모 같은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가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뜻이 있는 학생이더라도 학업에 방해된다거나 정치적 중립을 과다하게 강조하는 사회적 풍토에서 좀처럼 허락을 얻기가 쉽지 않다. 설사 정당에 가입해서도 마찬가지다. 학생은 오히려 정당인이 되면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에 정식당원으로 참여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당 바깥의 학생은 참여가 가능하다. 거기에 대개의 정당은 학생을 당당한 하나의 일원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우리도 젊은이를 고려한다는 구색맞추기 정도로만 취급하기 일쑤다. 

 학교 내의 조건도 좋지 못하다. 교내 학생자치회는 잘 운영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교사나 다른 학생, 학부모로부터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스펙쌓기용 정도로 인식되거나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제도적으로 학교교육에 참여할 길이 없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학교의 주요 행사나, 교육과정, 가치, 비전 철학을 결정하는데 참여할 권한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학교의 주요 심의기구인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와 학부모, 지역인사로만 구성된다. 물론 학생을 참여시키라는 권고가 있기는 하나 어디까지나 학교재량이므로 이를 실행할 만한 학교의 장은 많지 않다. 실제로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이 사전의견 수렴, 안건제출, 참관등의 방식으로 참여한 경우는 전국 국공립학교의 29.9%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보다 의미있는 직접 회의 참여는 11.8%에 불과하다. 

 청소년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권한도 갖고 있지 못하다. 일반인이 자기 목소리를 낼만한 통로로 헌법소원이 있다. 하지만 청소년은 헌법 소원과 같은 소송을 내개 위해서는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가 필요하다. 민법상 만 19세 미만은 독자적 법률 행위가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정도가 독자적으로 가능하며 청와대 국민청원 정도가 가능하지만 알다시피 위의 수단보다는 강도가 약하다. 

 이런 청소년의 권한 강화와 시민으로 자라날 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책은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우선 선거연령을 낮추는 것이다. 만18세는 부족하며 만16세나 그 이하로 낮추어 적어도 고교생이되면 모든 선거에 참여할 자격을 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각 지역의 교육감, 시의원 및 국회의원, 지자체단치장이 청소년의 눈치를 보게 된다. 현행 만18세는 전체 학생 중 불과 20만 정도의 유권자만 허락한다. 누가 신경을 쓸만한 숫자가 아니다. 다음으로는 청소년이 지지 또는 반대하는 후보나 정당에 대해 자유롭게 말하고 참여할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이 직접 법을 만들거나 바꿀기회를 줌으로써 역량을 발휘하고 키워나갈 찬스를 줄 필요가 있다. 선거, 제도권 정치, 학교, 교육청, 지역사회, 지방정부, 중앙정부 곳곳에 청소년 참여 자리를 확대할 필요도 있으며 마지막으로 피선거권 연령을 낮추어 청소년 정치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현행 법령은 만25세이상에게만 피선거권을 부여한다. 이는 무려 1948년에 정해진 것으로 한창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이를 역시 고교생인 만18세 이상 정도로 하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어린 나이부터 정치에 참여하는 뜻있는 정치인이 나오게 되고 이로 인해 프랑스의 마크롱이나 핀란드 총리처럼 30대 초중반에 중요한 정치인으로 성장할 기회도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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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09 04: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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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바버라 J. 킹 지음, 정아영 옮김 / 서해문집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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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화상 감정은 주변 세계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기 위해 생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긍정적인 감정은 주변 세계가 나의 생존과 적응에 유리한 것이기에 부여되며 부정적인 감정은 그 반대다.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무언가를 상실하거나 잃었을 때 나타난다. 책'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에서 다루는 슬픔은 발로 주변 개체를 상실하였을 때의 슬픔이다. 나와 늘 친하게 지내던 형제나, 자매, 부모, 또는 항상 같이 지내던 친구 같은 개체의 상실에서 나오는 슬픔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슬픔은 인간에겐 매우 당연시 되지만 동물에게선 의문시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동물과 가까운 삶을 산 사람들은 동물이 이런 종류의 슬픔을 마땅히 느낀다고 생각하며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은 경험적, 과학적 증거 모두 없음을 말하며 이에 반대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자는 이런 종류의 슬픔을 많은 수의 동물도 마땅히 느낄수 있음을 주장한다. 다양한 경험적 증거를 대는데 우리가 이런 동물의 슬픔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이유는 동물들이 이런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이 인간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며 인간은 주변에 동물을 가까이 하지 않고 따라서 이런 감정을 잘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동물같은 경우는 사별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며 자의식도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상실에 의한 슬픔을 못느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주변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 개가 죽어서 사라졌는데 다른 개가 그 사라짐을 죽음으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견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데 이는 동물 역시 인간처럼 서로 협력하고 장기간 그 관계를 유지하는 집단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슬픔과 그 애도는 진화상 하나의 적응적 감정이다. 동물이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되는데 같이 지내던 개체가 사라지는 것은 이 집단의 해체를 의미하며 이는 곧 해당 개체의 적응도를 떨어뜨리는 일이되는 만큼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슬픔이라는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적응에 유리한 일이 된다. 부정적 감정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은 개체는 해당 상황을 빠르게 해쳐나가려고 노력할 것인 만큼 이는 진화상 충분히 나타날만한 적응행동이된다. 때문에 집단을 형성하는 동물에게 상실에 따른 슬픔이 나타날수 있다는 논리는 매우 타당하다. 

 책에서 저자는 고양이와 개, 말, 닭, 토끼, 돌고래, 염소, 코끼리 등 다양한 동물이 오랫동안 함께한 동료나 가족이 상실되었을 때 보이는 다양한 슬픔을 일화로 제시한다. 물론 이는 과학적으로 잘 설계된 실험은 아니며 저자의 직접 경험이나 들은 일화들에 불과하다. 이것이 이 책의 약점이긴 한데 그렇다고 해서 설득력이 떨어지진 않는다. 이들은 일상에서 우리가 충분히 경험해온 내용이기 때문이다. 

 재밌는 점은 원숭이들이 고도의 협력성에도 불구하고 새끼나 동료의 죽음에 마땅한 슬픔이나 애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미 원숭이들은 새끼가 사망한 경우 상당 기간을 죽은 새끼를 업고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 이동과 행위에 상당한 위험성과 에너지 소모가 생기는 만큼 이는 새끼를 상실한 것에 대한 깊은 슬픔 반응으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어미원숭이들은 사망한 새끼를 앉고 교미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평소 새끼를 안전하게 안는 방법과 죽은 새끼를 들고 다니는 방법이 다른 것으로 보아 죽은 것은 인식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거기에 죽은새끼를 결국 버리는 시점은 수유기의 종료와 일치하지 않았다. 여러모로 예상과는 다른 셈이다. 다만 이들은 겉으로 보이는 무던함과는 다르게 막상 주변 개체가 포식자에 의해 희생되거나 사고로 죽으면 호르몬상 큰 스트레스 수치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막상 표현은 안하더라도 큰 슬픔을 생리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원숭이들이 이렇게 겉으로 슬픔을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들의 높은 사망률과 관련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원숭이 집단은 성체가 되어서도 12%정도의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데 이는 이 집단이 항상 생존의 압박을 느끼며 이것은 슬픔과 애도에 쓸만한 에너지와 시간이 충분치 않음을 의미할수도 있다. 즉, 슬픔을 표현할만한 여유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실제 인간도 전쟁이나 극한 상황에선 슬픔을 좀처럼 표현하지 않는다. 그만한 여유와 시간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슬픔이 삭혀지진 않는다. 이후 돌이켜 생각나며 곱씹게 되고 오히려 충분히 애도하고 슬퍼하지 못한 것에 향후 더큰 부정적 감정을 갖는 경우도 생겨난다. 원숭이 사회는 이런 상황과 비슷하지 모른다.

 책을 진화론적으로 살피긴 했지만 무척 인상적인 애도와 슬픔에 잠긴 동물의 이야기가 책엔 많이 실려있다. 이들이 회복하는데는 공통적으로 자신보다 어리숙하고 약한 새끼와의 만남 혹은 다른 개체와의 만남이 주요 계기가 된다. 어떻게 보면 집단의 회복이 슬픔의 감소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말이 죽어서 묻히자 다른 말들이 이상스럽게도 그 주변이 원형대형으로 자주 모여 있으며 심지어 좋아하는 먹이임에도 헌화한 꽃을 먹지 않은 사연, 함께 지내던 고양이나 토끼가 죽자 무척 슬퍼하는 모습, 심지어 다른 종간에도 상실에 의한 아픔을 느끼는 일화들은 아름답고 가슴을 먹먹히 한다. 여러면에서 의미있는 책이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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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한 동양미술 이야기 1 - 인도, 문명의 나무가 뻗어나가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동양미술 이야기 시리즈 1
강희정 지음 / 사회평론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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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처한 시리즈 서양미술편의 성공에 이어 예상했듯 동양편이 나왔다. 거의 모든 것의 주도권이 200년전 서양으로 넘어가 아직 동양으로의 귀환이 안 된만큼 미술 영역 역시도 그렇다. 우리의 미술시각과 미술지식, 작품에 대해 갖는 심미성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가장 대표하는 예술품의 가격이라는 것은 서양의 것이 동양의 것을 압도한다. 그래서 항상 동양미술에 딱히 아름다움을 크게 느끼지 못하면서도 알고자 하는 욕구와 부채의식이 있다.

 책은 동양미술 중 그 시작으로 인도편을 다룬다. 시작부터 예상이 빗나간 셈인데 난처한 서양시리즈처럼 시대순으로 전체를 다룰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것도 서양중심의 시각일런진 모르겠으나 하여튼 책은 1편으로 인도의 고대미술을 선정했다. 그리고 막상 그럴만도 한 것이 인도는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 하나이며 동북아와 동남아, 남부아시아의 문화와 의식,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불교의 발상지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미술은 동양의 미술에 비해 확실히 사상과 과학기술, 그리고 시대를 비추는 세계관이 바뀌며 그 사조를 달리한다. 즉, 역사성과 체계성을 비교적 크게 갖는데 동양의 미술은 어떤 책을 보아도 좀처럼 그런 것이 드물다. 그것은 서양의 미술이 일상에서 벗어나 그려져왔던 것에 비해 동양의 미술은 철저하게 일상에 밀착하여 생활형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도로 다시 돌아가면 인도의 불교가 우리나라에 미친 영향을 생각보다 크다. 한국엔 범종이 많은데 범종의 범은 산스크리트어를 의미하므로 범종은 산스크리트어가 새겨진 종을 말한다. 동양식 종은 밖에 서 타종하여 소리를 내는데 비해 서양의 종은 내부에서 종을 울린다. 한해가 넘어가면 108범 타종을 하는데 이는 인도의 영향이다. 반면 한국은 과거 통행금지 시간에 28회 통금 풀리는 시간에 33번 타종하며 재야의 종도 33번 타종한다. 이는 불교의 새벽예불시간 28회, 저녁 예불시간 33회 타종의 영향을 받느 것이다. 33은 불교의 핵심세계관과 연결되는데 불교의 삼천대천세계와 관련한다.

 인더스강 유역은 알렉산더가 정벌했을 만큼 메소포타미아와 지리적으로 인접한다. 그래서 서양중심이던 과거 역사계에서는 인더스 문명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더스 문명 이전의 선인더스 문명이 발굴되며 상황은 역전된다. 이 문명은 메스포타미아 유적의 시기를 아득히 앞지르기 때문이다. 선인더스 문명은 메르가르가 대표적이다

 선인더스 문명의 메르가르는 보통의 신석기 토기가 추상적 무늬를 그려넣는데 반해 구체적인 동물을 그려넣었고 그릇 벽이 상대적으로 매우 얇다. 이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것으로 당시 문명의 발달정도를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인도는 토기가 동북아시아처럼 도자기의 수준까지는 발달하지 않았는데 이는 도자기 그릇에 밥을 담아먹는 문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도는 과거에는 나뭇잎이나 나무, 최근에는 스탠이나 알루미늄에 카레나 식사를 담아 먹는다. 이는 인도인의 생각때문인데 흙은 물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고, 땅의 흙은 남의 침을 흡수한 것으로 더럽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고대인도에는 토르소라는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조각상이 발견된다. 그리스 로마는 상당이 균형잡히고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하는 조각상이 많은데 인도의 것들은 하나 같이 살집이 푸근하다. 고대인도인은 살집이 있는 몸을 이상적으로 바라보았는데 튀어나온 아랫배를 프라나라고 한다. 고대인도어로 숨, 숨결을 의미하는데 인도요가에서는 호흡을 중시하며 아랫배가 발달해야 온몸의 균형이 잡히고 호흡으로 몸의 기를 원화할게 순환시킬수 있기에 그렇다. 

 선인더스문명 이후 인더스 문명도 기원전 2천년 정도를 전후하여 쇠락한다. 아리아인이 이 지역을 차지하는데 그들이 베다에 남긴 드라비다 인에 대한 기록때문에 역사계는 한때 아리아인의 침공으로 인더스 문명의 주인이 교체된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역사적 기록과 제반 증거들은 침공보다는 기후의 변화로 자연스레 드라비다 족이 남으로 이주하고 건조지역에 익숙한 아리아인이 건조해진 이 지역을 계승한 것으로 보는 추세다. 

 베다는 사실 책이 아니고 구전이었다. 무려 기원전 1500-기원후 400년인 거의 이천년간 구전으로 이어져왔으며 이후에야 기록으로 남겨진다. 베다에서는 아리아인을 고귀하게 여겨 카스트제도의 발판을 마련한다. 카스트는 강고하여 왕족인 크샤트리아마저 브라만의 눈치를 보아야 했는데 이로 인해 부를 축적한 바이샤와 더불어 카스트에 대한 불만이 고조된다. 이시기 때마침 떠돌이 수행자들은 브라만을 경유하지 않더라도 진리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이들 중 하나가 석가모니다. 

 석가의 가르침 역시 바로 문자로 기록되지 않았다. 그의 사후 무려 500명의 제자가 서로 의견을 주고 이견없이 정설로 인정되는 것을 정리하였는데 이런 결집이 수백년간 여러차례 이뤄졌다. 그리고 1세기가 되어서야 글로 기록되었으며 석가가 깨우친 이런 진리를 다르마라고 한다. 카스트가 만연한 불교에서 모든 이가 해탈할수 있다는 불교의 가르침은 파격적이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불교는 유연하여 윤회등 인도의 전통사상을 받아들이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불교는 석가모니의 근거지인 인도동북부에서 시작되었고 200년간 인도 전역으로 퍼진다. 그리고 불교가 인도전역으로 퍼지는데는 마우리아 왕조의 인도 통일과 그것을 해낸 아쇼카왕의 역할이 컸다.

 인도의 상징은 4마리 사자상인데 이 조각상을 만든게 아쇼카다. 알렉산더의 침공이후 그들이 철수하자 인더스상 북부 유역엔 힘의 공백이 생겨난다. 여기에 마우리아 왕조가 등장하여 지역의 강자로 부상해 인도를 통일한다. 아쇼카는 잔혹한 왕이었으나 통일 이후 자신의 행위에 회의를 느끼고 무차별 살상을 금지하는 법을 선포하고, 불교는 우선하며, 이를 나라의 통합수단으로 이용한다. 아쇼카는 페르시아의 것을 본따 불교의 가르침을 담은 12미터 높이의 석주를 전국 곳곳에 세운다. 석주에는 법륜이 있는데 법륜은 수레바퀴로 법의 바퀴를 뜻한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의 움직임을 비유한 것으로 명백한 우주의 진리이자 석가모니가 깨달은 진리를 의미한다. 그래서 바퀴를 굴리는 왕인 전륜성왕이 불교에서는 이상적인 군주를 의미하며 아쇼카와 신라 진흥왕은 스스로를 전륜성왕으로 자처했다. 

 인도는 돌이 사암이나 동판암이 많아 매우 무른 편이다. 그래서 조각하기가 매우 수월한데 그래서인지 회화보다 조각이 먼저 발달했다. 하지만 세월에도 약한 편이어서 인도인은 돌의 내구력을 높이기 위해 겉을 마연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인도는 보통의 사람들이 사망하며 화장하여 유골을 강에 뿌리는 관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은 화장하여 그 유골을 스투파라는 곳에 세워 묻었다. 스투파는 이후 투파, 탑파, 솔로파등으로 불리다 한국에서는 탑으로 명명된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자 그 사리를 주변 8개국 왕이 서로 차지하겠다고 다툰다. 결국 나누어 갖는데 이 8장소가 근본 8탑이 된다. 아쇼카가 이후 제곡을 통일하여 이 8개의 유골을 무려 8만 4천개로 나누어 전국에 뿌리는데 그래서 인도 전역에 8만4천개의 스투파가 생겨난다. 스투파 주변엔 자연스레 사원이 생겨 하나의 종교성지가 된다. 인도인들은 스투파 주변을 탑돌이하며 사리에 힘을 빌려 소원을 성취하고자 했는데 탑돌이는 우측으로 돌아야만 하며 그래서 본고장 인도의 스투파 주변에는 탑돌이를 위한 울타리가 있다.  

 향후 인도 각지로 스투파가 퍼지며 크기가 12cm정도로 매우 작아진다. 이런 미니 스투파는 개인 예배를 위한 것으로 왕이나 승려, 일반 신자도 이를 만들어 향후 자기 유골을 여기에 봉안하기도 했다. 이런 작은 스투파로의 변형이 스투파의 1차굴절이다.

 2차굴절은 동남아등지에서 생겨난다. 미얀마로 퍼져나간 스투파는 윗부분의산개와 하르카가 거의 사라지고 복발이 기존 인도이 반구형에서 계란 노른자처럼 하단부로 갈수록 퍼지는 형태로 변형된다. 이것이 유명한 미얀마의 쉐지곤 파고다와 쉐다곤 파고다로 이들은 수천킬로미터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형태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보아 당시 미얀마에 스투파를 만드는 전형이 있었던 것으로 예측된다. 이 미얀마의 것이 동남아의 표준으로 자리잡아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비슷한 형태의 것들이 생겨난다. 

 3차굴절은 동북아시아의 탑이다. 히말라야를 넘어간 불교 승려들은 현지인들에게 스투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시아는 화장하는 풍습이 없었고, 따라사 시신을 탑에 안치하지도 않았다. 다만 높이 쌓은 건물로 상상하여 만든 스투파가 탑이다. 초기엔 목탑을 지었으며 탑은 홀수로 지었는데 홀수가 기운이 강한 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목탑은 향후 석탑으로 바뀌는데 그 과도기에선 굳이 그럴 건축한적 필요가 없음에도 석탑을 목탑 양식처럼 짓곤 했다. 한국의 미륵사지 석탑이 그렇하다. 이후 석탑 만의 양식이 자리잡으며 목탑과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인도에서는 스투파에 무덤이나 마찬가지인 큰 규모의 복발이 스투파의 대부분을 차지하나 동북아의 탑은 복발은 윗부분에 흔적만 남게되며 탑돌이를 위한 울타리와 다른 기단 부분이 합쳐져서 사실상 그부분이 탑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특히 문이 생겨나는데 이는 인도의 스투파의 큰 차이점이다. 목탑시절에는 인도에선 별 의미가 없는 장식적 역할인 찰주가 목탑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였다. 탑의 층을 세는 방법은 지붕의 갯수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인도에서 스투파에 이어 마침내 불상이 생겨난다. 사실 석가모니는 무려 천번의 전생끝에 열반에 들어간 자로 속세와의 연이 끊어진 자를 형상화하는 것자체가 논리적 모순이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끝에 석가의 모습이 불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불상엔 인도에 있었던 쿠샨제국이 역할을 한다. 쿠샨은 매우 독특한 나라로 본디 중국 신장 위구르 지역의 월지가 흉노에 밀려 인도 북부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웠다. 이 지역엔 원래 알렉산더의 후예들이 만든 그리스 박트리아 제국이 있던 곳으로 쿠샨은 자신들의 중앙아시아 유목문화에 그리스 로마문화, 인도 북부의 문화가 섞여서 생겨난다. 

 그리스 로마는 유명인물이나 신의 모습을 주화로 만드는 문화가 있었는데 쿠샨도 이를 본땄고 카니슈가 왕의 동전을 앞면에 그리고 반대편에 여러 신의 모습을 새겼다. 그리고 이 신중 부처도 등장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부처가 형상화된다. 이후 불상이 제작되는데 불상엔 공통적 특징이 있다. 우선 석가의 높은 지혜로 머리가 아닌 머리뼈가 불툭 튀어나온 유슈니가 있고, 석가를 빛내는 광배가 있다. 또한 통견이라는 승려들의 격식있는 복장이 모든 불상의 공통 특징이다. 

 책은 인도고대 문화로 마무리하는데 보면서 예술책인지 인도 역사책인지 잘 구분이 안될 정도였다. 그만큰 아시아에서 미술은 별도로 분리된 것이라기 보다는 역사 및 생활, 종교, 관습과 함께했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2권인 중국편인듯 하다. 기대되며 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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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25만 부 기념 봄 에디션, 양장)
에릭 와이너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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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인을 보면 그 사람의 실제 철학이나, 가치, 능력은 대개 선택의 뒷전이란 생각이 많이 든다. 사람들은 특정 사건이나 만들어진 이미지, 그리고 보여지는 진정성으로 주로 판단을 한다. 책도 그렇단 생각을 많이 한다.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표지나 제목이 딱딱하고 재미 없어 보인다면 잘 팔리지 않으며 별것이 없더라도 그것을 잘 해낸다면 잘 팔린다. 얼마전에 엔트로피란 책을 봤는데 그 훌륭한 책이 그런 제목과 표지로 과연 얼마나 팔리겠는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라는 제목의 이 책도 그렇다. 안좋게도 후자다. 책을 읽으며 뭔가 나오겠지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별게 나오지 않는 것을 경험하며 완독했다. 500페이지나 되어서 힘들었는데 마지막 200쪽 정도는 사실 기대를 많이 접고 거의 훑는 형태로 보았다.

 책에 기대했던 것은 기차라는 것이 주는 경험과 철학자들에 대한 저자 나름의 일관성 있는 정리였다. 기차를 매우 좋아하는데 실제로 그렇게는 잘 하지 않으면서도 오랫동안 느린 기차를 천천히 타고 바깥에는 비가 내리며 차창에서 홀로 따뜻한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어나가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런 기차와 인문학의 정수 철학이라니 매우 좋아보이는 결합 같았다.

 책은 예상과는 매우 달랐는데 책을 읽기 힘들었던 이유는 철학에 대한 소개도 자신만의 시각을 갖고 체계를 갖고 언급하기 보다는 개인사와 관련하여 언급하는데 그쳤고, 상당수의 내용이 개인사와 관련하여 서술되었기 때문이다. 철학에 대해서 어느정도 알아도 공감이 안가 읽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철학에 대해 개괄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설명없이 진행되는 내용에 힘들었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하여튼 책은 저자가 좋아하는 몇몇 철학자나 인물들과 관련한 지역을 직접 기차를 타고 이동하며 그들의 살아생존 장소나 지역 등을 방문하며 저자가 관련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다. 스크라테스, 루소, 쇼펜하우어, 에피쿠로스, 간디, 공자등이 나오며 벌써 잊었지만 처음 드는 몇몇 이들도 등장한다. 

 책에 대한 비판만으로 서평을 남겨보는 것은 처음인데 그만큼 실망이 컸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책을 재밌게 읽는 분들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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