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 -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관점을 배우다
강은주 지음 / 이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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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사 책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미술 사조의 변화에 따른 흐름으로 서술하기도 하고, 사회적 변화를 따르거나 또는 선도하는 예술의 흐름에 주목하기도 하고, 혹은 단순히 시대 순으로 연대기적으로 가기도 하며, 관심 있는 예술가에 따라 서술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미술사를 바라보는 전문가의 관점에 따름이다. 책 '우리의 첫 미술사 수업'은 독특하게도 여성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바라봤다. 이는 개인적으로 처음 접하는 시도인데 책을 읽기 전부터 과연 미술사로 다룰 만큼 여성 예술가가 많았을까라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물론 책은 이런 관념부터 비판한다. 미술 사조를 충분히 잘 따르고 대표할 만한 여성 예술가도 적잖이 있으며 이들은 그간 주류 미술계로부터 실력과는 무관하게 주목받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미국의 미술 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처음으로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존재하지 않는가?" 라는 에세이로 이 문제를 처음 거론했다. 그는 미술사 책들이 계보 서술적 방식을 취하면서 주류 화가만을 설명하고 나머지, 특히 여성 미술가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여성을 미술계에서 지웠다고 지적한다. 여성이 미술사 계보에서 제외된 건 이런 편견 외에도 시대적 한계도 있는데 소위 주류에 들기 위해서는 중요 미술 학교 졸업이나 작품 거래, 미술관 전시 등 과거 남성에게만 주어졌던 권리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성 미술가에게 불리했던 또 하나의 조건은 미술계가 천장화나 조각상 처럼 상당한 육체적 노동과 정신 노동이 동원된 대작에만 주요 위치를 부여하고 장식이나 수공예 등 여성이 강하고 주로 천착했던 분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와 같은 양식은 육체적 힘이 강한 남성이 더 유리하고 애초에 이런 대작의 의뢰는 남성주류 예술가에게만 의뢰되었으며, 이런 작품의 제작을 위해 필요한 기술 역시 남성에게만 전수되었다. 

 책은 이런 구조적 요인 이외에도 각 시대 예술 작품에 반영된 젠더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첫 번째는 누드화다.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빌렌드로프의 비너스를 시초로 본다. 하지만 서양 예술에서 누드는 그리스 로마 시대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여성에 집중한다.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탐닉하고 대상화하고자 하는 시도가 대부분으로 그래서 작품의 누드 여성들은 대부분 전면보다는 등을 보이는 수동적 자세가 많으며, 신체 역시 미적으로 이상화하기 위해 목이나 허리가 과도하기 길어지는 등 왜곡된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 로마시대엔 남성 누드화가 많았는데 이는 당대에 여성보다는 젊고 아름다운 남성의 모습을 성적으로 탐닉하는 것이 대세였고 그 외엔 영웅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런 누드화에 변화를 보인 것은 마네의 올랭피아다. 여기서 여성의 누드는 당당히 전면을 향하고 있고 관객을 응시한다. 마네는 실제 활동하는 매춘부를 그렸는데 그렇기에 이를 바라보는 남성관람객들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마네의 올랭피아는 몸도 실제적이고 피부 역시 핏기가 없고 얼록이 있는등 이상화한 기존 누드와는 매우 차별적이다. 구스타프 쿠르베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의 기원이란 작품에서 여성의 체모가 그대로 드러난 생식기를 그렸다. 그는 하층민의 현실을 그대로 그려내는 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는데 그런 양식이 여기에도 반영되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젠틸레스키란 여성 화가가 등장한다. 그는 자화상을 그렸는데 대부분의 남성은 물론 여성화가들도 자신의 자화상을 매우 전형적으로 미화해 그린 것과는 정반대의 시도를 했다. 당시의 자화상은 남성의 경우 정면의 모습에서 몸을 옆으로 틀어 위풍당당하고 이상적인 모습을 연출했다. 여성의 자화상도 비슷했으며 화가 자신이 높은 지위가 아님에도 마치 귀족여성처럼 그리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젠틸레스키의 자화상은 소매를 걷고 흐트러진 모습으로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다. 

 젠틸레스키는 유딧과 하녀에서도 여성의 주도적 모습을 그린다. 기존의 유딧과 하녀는 사람의 목을 베는 장면임에도 매우 수동적이고 부자연스럽게 살해하는 장면이 많았다면 젠틸레스키의 작품은 하녀와의 공조, 그리고 적극성이 눈에 띈다. 그는 유딧과 하녀를 3부작으로 그렸는데 관람객을 의식하지 않고 살해를 위한 협력에만 집중하는 하녀와 유딧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젠틸레스키는 '수잔나와 장로들' 작품에서도 여성의 주도성을 표현한다. 수잔나와 장로들은 고대 로마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수잔나의 모습을 늙은 장로들이 염탐하는 장면이다. 다른 작가들은 수잔나는 염탐당하는 위기의 수잔나를 오히려 관능적으로 그리거나 수동적으로 그린 반면 젠틸레스키는 염탐에 저항하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18세기 들어 여성화가 중에서도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등장한다. 당시는 로코코 시대로 귀족들은 초상화와 실내장식을 위한 정물화를 소비했다. 여기에 부를 쌓은 평민계층도 예술품의 소비자로 등장하여 후원계층이 많아졌고 시장도 커져 여성 예술가의 공간이 넓어졌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풍속화와 정물화는 여성이 강점을 보이는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예술은 아카데미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여성은 사실상 여기에 발을 들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카데미에선 주류 미술은 역사와 신화를 다루는 경우가 많았고 이에 필수적인 인체드로잉을 가르쳤기에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힘든 여성들은 이 분야에서 활약할 수 없었다. 

 18세기엔 행복한 어머니 상이 예술에 자주 등장한다. 이는 계몽주의 사조와 여성의 사회 진출 때문이다. 전통적 귀족은 혈통계승에만 집중하여 자녀를 출생만 하고 자신들은 인생을 즐기며 쾌락에 빠져사는 경우가 많았다. 자녀는 출생과 동시에 유모에 양육하고 학령기가 되면 기숙학교에 진학하고 정략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기에 부모와 자녀간 애정을 없었다. 계몽주의는 이 부분을 비판하고 부모가 직접 자녀는 양육해야함을 강조했기에 행복한 어머니 상에 힘을 실었다. 그리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많아지자 이에 불안함을 느낀 남성들이 여전히 여성들을 가정과 육아에 붙잡기 위해 이에 편승한 것도 이에 한몫했다. 이런 예술적 흐름은 평민을 넘어서 귀족과 왕족의 그림에까지 나타났으며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하는 마리앙트와네트란 그림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19세기엔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욱 활발해지고 활동하는 공간도 넓어진다. 직업군도 다양해져 기존의 유모와 가정교사외에도 카페 여급이나 무희, 발레리나, 술집 종업원 등으로 확장한다. 하지만 한계가 뚜렸하였고 매춘부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여성의 사회진출을 성적 타락과연결시키는 예술적 시도가 많아졌으며 이에 타락한 여성상이 등장한다. 

 타락한 여성상의 대표적 시도는 팜므파탈이다. 팜므파탈은 관능성과 이를 바탕으로 남성을 파괴하는 파멸성을 가진다. 팜므파탈의 주요 소재는 이브와 샬로메, 유딧, 데릴라다. 이브는 남성에게서 태어나 인류에 선악과 수치심을 가져온 원죄의 상징이다. 샬로메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관능적인 춤의 대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한 인물이다. 유딧은 원래 유대민족의 영웅이지만 적장의 목을 베는 팜므파탈로 변형된다. 데릴라는 삼손을 유혹해 그를 파멸로 이끄는 인물이다. 이 같은 팜므파탈은 산업혁명으로 여성의 노동력이 필요해지자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하고 피임률이 올라가며 전통적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자 위협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이처럼 미술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에는 시대 흐름에 따라 중시되는 사회적 가치관이 투영된다.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책은 산업혁명 초기까지를 다루며 후속 권을 예고한다. 아마도 현대 예술에서 여성의 약진과 여전한 한계 및 제약에 대해서 다룰 듯 하다. 다음 권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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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렌디드 수업 디자인 - 다양한 수업 경험을 설계하는 디지털 도구 활용과 사례
박영민 외 5명 지음 / 프리렉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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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의 긴 그림자가 마침내 사라져간다. 학교는 작년부터 전면 등교를 시작했고, 올해 초부터는 실내 마스크가 해제 된 데 이어 곧 대중 교통 내에서의 마스크 착용도 해제될 듯 하다. 코로나로 원격 수업을 하면서 그간 교육 현장에선 디지털 도구를 활용한 블렌디드 수업이 한창 진행되었다. 블렌디드 수업은 글자 그대로 가상 공간과 실제 세계에서의 수업을 혼합하는 것이다. 코로나 2년 차인 2021년부터는 학교에서 등교와 원격이 병행되었기에 이런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전면 등교가 시작된 작년부터 학교 현장은 다시 디지털 도구들과 급격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직 학교 교육에 디지털은 어렵고 일선 교사들에게 멀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이 녹록지 않다. 세계는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향하고 있으며 이는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을 한 번 놓친 적이 있다. 2015년 당시도 지금도 교육부 장관인 이주호 장관은 그 당시에 모든 학교 현장에 테블릿 기기를 학생 일인당 한 개 씩 모두 지급하고 디지털 교과서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려고 했었다.(물론 잘 되지 않았을 것 같지만) 거기에 당시 불던 코딩 교육 열풍에 2015 개정 교육 과정에도 이게 반영되었다.(하지만 초등과정 전체에 고작 17시간, 중학교는 34시간 고등학교 68시간에 불과했다.)

 이처럼 당시 시기를 놓치다보니 한국 교육 현장은 디지털 전환에 선도적으로 진입할 시기를 크게 뒤로 미루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혁신 교육에 갖고 있는 일부 불만 중 하나가 바로 이 부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이번 지선에서 보수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된 데는 미래교육을 강조한 점도 작용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때문에 어렵지만 공교육 차원에서 디지털 세계에서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어린 시절부터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해줘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창의적 체험활동이나 곧 2022 개정 교육과정에 도입될 학교자율시간 등을 이용해 학교교육과정 내에 디지털 교육 시간을 배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코딩, 3D프린팅, 메타버스 교육 등에 대한 개념 이해와 활용, 창작 등이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일반 교과교육과정 내에서 이 도구들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MS팀즈나 구글클래스룸 같은 도구들은 학생들의 협업이나 글쓰기, 프로젝트 수업 등에 매우 유용한 도구들이다. 

 그리고 메타버스나 코딩, 3D 프린팅, 인공지능 교육 등도 일반 교과에 얼마든지 활용이 가능하다. 좋은 말과 나쁜 말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서양화나 동양화의 화풍을 구분하는 인공지능, 간단한 스케치를 괜찮은 그림으로 바꿔주는 인공지능은 각 교과의 여러 성취기준에 어울린다. 또한 3D 프린팅은 수학과나 미술과에서 많이 활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디자인으로 작품을 만들고 도형을 이용해 여러 이동이나 조형물을 만들 수 있으며 입체도형 자체의 회전 및 관찰에도 좋다. 메타버스는 학생들의 여러 산출물을 전시하여 공유하거나 혹은 메타버스 자체를 구축하여 여러 성취기준을 달성하는데 유용하다. 

 이처럼 교사의 노력으로 학교 현장에서의 디지털 전환은 충분히 가능하다. 남은 건 생각과 노력 뿐이란 생각이다. 책에는 이런 수업을 위한 다양한 도구들이 나와 있다. 도구는 생각보다 무척 많으며 한국에도 쓸만한 것들이 더러 있다. 이런 것에 모두 통달할 필요는 없다. 한 두 개만 잘 활용해도 성공적으로 디지털 전환한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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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
이호창 지음 / 하움출판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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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교육이 들어서면서 교육현장에서 교육자의 자율성이 높아졌고, 족쇄도 어느 정도 풀리면서 많은 연구결과물들이 책으로 출간됬다. 당연히 많이 팔리진 않겠지만 교사들이 쓴 책도 상당히 많아졌고 읽을만 해졌는데 '교사 수업하며 책을 쓰다'처럼 교사입장에서 글을 쓴다는 책은 더욱 독특했다.

 교사가 책을 쓴다면 당연히 소재는 교육에 관한 것일 것이다. 이론에 충만한 사람은 교육 이론에 대해서 쓰겠지만 이는 아마도 교사보다는 교수쪽이나 전문연구자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님들은 대개 자신이 실천한 수업연구과정 및 결과나 상담관련 쪽으로 책을 많이 쓰게 될 것이며 실제로도 그렇다. 또는 최근엔 교육과정과 관련한 책도 선생님들에 의해 많이 나오고 있다. 이해중심교육과정이나 교수평 일체화 책, 또는 교육과정 문해력에 관한 책들이다. 평가에 관한 책도 조금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 교사의 교직 전문성 중 가장 약한 부분이 평가라고 생각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교육과정과 수업에 상당히 힘을 쓰곤 있지만 그것의 성과나 학생의 성장을 검증하는 평가방법에 대해선 이상스레만치 인색한 편이다. 평가에 관한 책이 많아졌으면 한다.

 이 책은 수업 실천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2학년 담임을 오랜 기간 맡으면서 그 아이들과 함께 실천한 수업과 교육과정에 대해 글을 썼는데 그 과정을 자세히 소개함으로써 교사입장에서 책을 어떻게 쓰는지 알려준다.

 우선 분야를 정해야 한다. 언급한 것처럼 수업연구가 주 소재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매일 실천한 수업의 기록이다. 수업일화를 자세히 기록하고 학생 및 교사가 그 과정에서 남긴 과정물과 결과물을 사진등을 잘 축척해 놓아야 책을 쓰기 수월해진다. 이런것들이 많아지면 설계를 잘 해야한다. 각 책의 장마다 어떤 내용을 체계적으로 수록할 것이가를 일목요연히 잘 정리해야 한다. 

 마지막은 독특했는데 책을 완성하고, 쭉 퇴고한 후, 이를 출판사에 투고하는 것이다. 유명한 사람이라면 출판사에서 의뢰가 들어오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므로 투고가 유일한 방법이다. 저자는 투고를 할 때 자신의 약력을 자세히 소개했고 이 책이 어떤 선생님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를 상세히 알렸다. 출판사는 책을 파는 것이 목적이기에 나의 책이 팔릴만한 이유를 알린 것이다. 교사로서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도 다른 선생님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일이다. 많은 경험과 강한 내공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은 책을 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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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프레지던트 - 국가 기념식과 대통령 행사 이야기
탁현민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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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현민은 문재인 정부 청와대 의전비서관이다. 직함이 말하듯 청와대 대통령이 참가하는 의전을 담당한 사람인데 아마 역대 의전비서관 중 가장 유명할 것이다. 유독 문재인 정권에 보수야당과 보수언론이 약간의 흠으로도 트집을 많이 잡긴 했지만 의전 자체에 대해서도 시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다보니 그 담당자인 비서관도 그 칼끝을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책에서 밝히듯 탁현민 비서관은 의전으로 인해 고발도 여러 번 당했다고 한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의전이 기존 역대정부들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 어느 집단이든 우두머리 급들은 어느 정도 의전이란게 필요하고 사실 굳이 필요가 없을 만한 위치도 이런 걸 대놓고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의전은 모두 꼰대 의전에 불과하다. 의전의 진정한 의미는 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한 국가를 대표하거나 한 지역, 한 기업을 대표한다는 차원에서의 존중이며 또는 그 행사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의전에 참여하는 대통령보다는 대통령이 그 행사에 참여하는 이유와 행사의 본질에 집중했다. 여기엔 역사와 민족을 중시하고, 그것을 위해 희생한 진정한 민중을 기리는 의식이 반영되었고 아마도 이것이 본능적으로 그것들과 대척점에 있는 보수 야당과 언론을 건드리지 않았나 싶다. 

 책의 제목은 미스터 프레지던트인데 짙푸른 겉표지와 인주처럼 약간 어두운 붉은색의 속지를 썼다. 책의 겉에도 의전의 느낌을 강조한 셈이다. 프레지던트는 문재인 대통령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탁현민 비서관이 활동을 하며 김형석 작곡가와 만들어낸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 대통령 음악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를 의미하기도 한다. 선진사회의 각 나라의 왕이나 지도자들은 고유의 상징적 음악이 있는데 한국은 그런 것이 없다. 탁현민 비서관은 이를 만들어 냈던 것인데 그 스스로 아쉬움을 표했듯 윤석렬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을 썼다. 

 책은 제법 두껍지만 술술 읽힌다.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많은 의전 행사들과 그것의 의미와 뒷이야기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같가지 노력이 들어가고, 누구를 섭외했으며 어떤 논의를 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는지가 실려있다. 보다보니 무척이나 당연해 보이고 어쩌면 경호만 좀 신경쓰지 않았을까 싶었던 행사들이 상당한 노력과 시행착오로 이뤄졌음을 알 수 있었다.

 탁현민 비서관은 대놓고는 아니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적잖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재임 중 항상 피곤해보였는데 이는 결과는 둘째 치더라도 항상 맡은 바 직무에 많은 힘을 쏟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책에는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화장실 한 번 다녀오지 않은 이야기, 술을 즐김에도 불구하고 항상 군 통수권자로 최상의 판단을 내리기 위해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은 이야기 등이 나온다.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 의전 중 기억에 남는 것은 국군의 날 행사와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새우, bts의 유엔 연설, 홍범도 장군의 귀환이다. 국군의 날 행사는 매우 파격적이었는데 딱딱한 사열이나 퍼레이드 중심에서 젊은 군인들이 현장에서 축제를 즐기고 싸이의 노래에 맞춰 열기를 뿜어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트럼프에게 대접한 독도 새우는 그 자체로 인상적이었으며 책에는 한일관계의 민감성으로 독도 새우를 도화새우라는 이름으로 대접하려다 그대고 갔다고 한다. 항의하는 일본에는 우리가 무엇을 대접할지는 우리가 결정한다라는 말로 일축했다고 한다. bts의 유럽 연설은 그자체로 한국에 영광스러운 일이었지만 유엔 관계자들도 열광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행사에 이렇게 높은 시청률이 나온게 처음이었단다. 그럴만 하다. 홍범도 장군의 귀환도 하나의 명작이었다. 우여곡절끝에 카자흐스탄으로 부터의 송환이 결정되었고, 파묘를 통해 조심스레 묘를 찾아내고 장군이 말년 극장 경비를 맡았던 귀한 서류까지 잘 찾아왔다. 

 홍범도 장군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는 한국전에 사망한 한국군의 유해를 적극적으로 찾아왔는데 북한 장진호 전투에서 사망한 유해들 중 북한에 의해서 미국으로 반환된 것으로 우리가 다시 찾아오는 형식이다. 미국은 한국군이 순식간에 수세에 몰려 급하게 참전하느라 인적구성이 완벽하지 않아 한국인을 차출하여 썼고 이것이 지금 우리가 아는 카투사의 원형이다. 그들이 미군을 따라 북진했다 그 치열했던 겨울 장진호 전투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책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있었던 수 많은 의전 하나하나를 복기하며 재밌게 읽었다. 의외로 많은 의전이 떠올랐는데 그 의미는 내가 그것을 시청했다는 의미이며 국경일마다 채널을 돌리게 만들었던 재미없던 의전이 문재인 정부에서 만큼의 의미있고 재미나고 독특하며 개성있게 연출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소재만큼 독특하고 재미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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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3-02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재미없는 의전들을 의미있고 볼만한 것으로 만들어내는데서 탁현민씨 참 탁월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내내 했어요. 그런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 흥미롭네요

닷슈 2023-03-03 14:09   좋아요 1 | URL
내 재미난 책입니다.탁현민 비서관은 대단한 사람이죠.
 
쿼런틴 워프 시리즈 4
그렉 이건 지음, 김상훈 옮김 / 허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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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쿼런틴은 격리란 뜻이다. 같은 제목의 소설도 무척 많고 좀비 영화도 한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을 읽기 전 챗gpt에게 쿼런틴에 대해 물어봤는데 같은 제목의 소설이 많아 정보를 더 달라고 했다. 저자 이름까지 입력하니 간단한 정리를 제공해주었다. 

 양자역학은 현대 과학의 기반이면서도 몹시도 어려운데 그 양자역학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책의 배경은 21세기 후반으로 과학기술이 몹시 발달한 상태다. 책 배경에서 대충 30년도 정도 전에 인류는 밤하늘에서 별을 잃어 버리게 된다. 대충 태양의 80조배 정도 되는 크기의 막이 지구를 중심으로 둘러쌌는데 그 덕에 별들로 부터의 빛이 차단되어 지구에서는 태양계 정도 밖에는 볼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많다. 사실 이는 태양빛을 막은게 아니어서 지구의 생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인간들은 상당한 혼란에 빠진다.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외계 문명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그들이 대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인간이 위해가 된다면 이미 충분히 침공이 가능한데 왜 이런 짓만 하는지, 그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등등이다. 이 사건은 버블이라 불렸고, 많은 인구가 버블열이라는 정신병에 시달렸다. 물론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갖가지 종교 단체와 테러 단체가 생겨났고 이들은 지구 곳곳에서 수 십년째 소동을 일으킨다.

 소설의 장소는 공간적 배경은 호주로 아무래도 작가가 호주출신이라 그런 듯 하다. 미래엔 재밌는 설정이 하나 있는데 중국이 홍콩에 압제를 펼치고 대만마저 침공해 대량의 이주민이 발생하여 이들이 호주 북부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이곳이 뉴홍콩이라 불리는데 소설의 주요 배경이 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보면 무척 개연성 있게 느껴지지만 이 소설이 홍콩이 반환되기도 전인 1992년에 출간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 대단한 혜안이다.

 미래사회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사람의 신경과 뇌를 조절하는게 가능하며 이런 것을 제품으로 팔고 있다. 주인공만 해도 p1-p5에 해당하는 모드를 갖고 있는데 사람은 이것으로 인해 육체적 고통과 감정적 동요를 차단하고 냉정하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주인공은 닉이란 사람으로 전직 경찰인데 아내가 테러로 인해 사망하게 된다. 닉은 이 일로 경찰을 그만두고 탐정 일 같은 것으로 하는데 그가 받은 의뢰는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하고 있는 로라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로라는 뇌손상을 갖고 태어나 3-4살 수준의 지능에 거동이 어렵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로라는 행방불명 이전 병원을 무려 두번이나 탈출한 이력이 있다. 

 닉은 로라가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갔을 리는 없고  누군가가 그녀를 모종의 이유로 납치한 것으로 생각한다. 알고보니 로라를 시신의 형태로 반출해갔고 장소는 뉴홍콩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닉은 인간이 양자중첩상태에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로라가 이를 토대로 스스로를 개량하고 탈출까지 가능했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리고 외계 문명에 의해 버블이 생겨난 것도 인간이 관측을 통해 대상을 수축시켜 우주의 가능성, 즉 양자중첩상태를 없애는 것을 막기 위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책은 외계문명은 단 한차례도 나오지 않고 양자중첩을 노리는 인간들과 그런 상태에 놓은 사람들의 심리묘사가 주를 이룬다. 때문에 책은 읽기 쉬운 편이 아니다. 이런 독특한 심리를 좋아한다면 또 모르겠다. 하여튼 독특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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