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 마음을 지배하는 공간의 비밀
콜린 엘러드 지음, 문희경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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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동안 건축의 목표는 사람에게 미적인 즐거움과 편리함, 안전, 생활에 편리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이 발전하면서 건축과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과 관련한 연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건축도 그에 발맞추어 심리지리학이나 신경건축학 등의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다. 최근 등장한 스마트 기기들은 이런 동향을 더욱 가속화했는데 사람들에게 웨어러블 기기를 착용해 특정 공간과 건물에 들어갔을때의 심리적 효과를 매우 간단히 측정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건축의 특징과 발전 그리고 미래 동향을 매우 잘 보여준다.

 

1. 건축의 시작과 공간에 대한 본능

저자는 건축의 시작은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식한 것 때문이라고 본다. 건축은 이런 인간의 유한성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고 이런 원시 건축물은 죽음에 대한 원초적 투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건축은 죽음을 외면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 된다. 그리고 건축은 흔히 정착 이후 생겨났다고 보지만 종교가 농경 이전인 만큼 건축 역시 정착 이전에 시작되었다.

 농경사회가 시작되면서 초기건축에서 벽의 존재는 매우 중요했다. 현대 건축에서 벽은 어쩔수 없는 차악이거나 가급적 없애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벽은 사람의 이동을 막고 서로의 시야를 가려 사생활과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이향하고 주변의 낯선 사람이 매우 많아졌는데 벽의 존재는 이런 잠재적 위협인 타인을 일일히 감시해야 하는 인지적 부담을 크게 덜어주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주거지로 비슷한 장소를 선호한다. 바로 자신의 생존력을 높여주는 장소가 그곳인데 주로 언덕 꼭대기나 드넓은 바다를 마주보는 절벽의 양 옆이다. 이 장소들은 매우 좋은 조망권을 주는 동시에 자신은 은폐시켜주는 곳으로 조망과 피신의 원리에 매우 부합하는 장소다. 이는 현재에도 마찬가지여서 이런 입지를 가진 부동산은 가치가 높다. 오래된 광장을 관찰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주로 한 가운데자리보다는 가장자리부터 차지하는데 이 역시 조망과 피신의 원리가 발현된 사례라 볼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엠티라도 갈면 항상 방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를 먼저 차지하곤 했다.) 

 

2. 집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은 오랜 진화끝에 특정공간에 대한 선호를 갖게 되었으며 이곳이 자신의 생존력을 높여주기에 편안함을 느낀다. 집은 사람이 항상 머무는 곳이기에 이런 경향성이 가장 잘 나타날 수 밖에 없는데 책에서 밝힌 집에 대한 사람의 심리원리는 다음의 세가지다.

 첫째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요소와 특정형태와 색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생활을 보장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곳을 선호하는 것이며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년기의 경험과 그 경험이 일어난 장소를 더욱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돼 보이는 결과는 집에 대한 한 실험에서 얻어진 것이다. 실험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세 가지의 집을 경험하게 하였다. 하나는 로버트 라이트의 낙수장 같은 자연과 어우러진 집이며 다른 하나는 위의 첫번 째와 두번째 조건을 완벽히 충족시키면서도 미학적, 기능적으로도 매우 탁월하게 지어진 집이며 마지막은 그냥 우리가 쉽게 살고 경험하는 평범한 집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첫번째와 두번째 집에 쏠렸으며 특히, 두번째 집에 대한 선호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그럼에도 위의 세 집중 구매하고 싶은 집이 어느 집이냐는 매우 실질적인 물음에서는 모순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번째의 평범한 집을 골랐던 것이다.

 이는 결국 사람이 진화를 통해 형성된 자신의 생존가능성을 높여주는 공간과 건축에 끌리면서도 결국 추후에 형성된 인생초기의 경험에 의해 선호가 뒤바뀜을 의미한다. 이는 어찌보면 매우 당연한데 진화의 원리상 생존을 위해 초기에 설정된 심리적 선호는 경험에 의해 바뀌는 것이 더욱 생존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젊고 매우 신선한 건축이 좀처럼 발전하지 못하고 상자같은 집들만 양산되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경향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이런 집들이 많아져 상자같은 집에서 인생초기를 경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상자같은 집에 대한 선호도 높아질 것이므로 이는 자기충족적이기 까지 하다. 나오지 못할 쳇바퀴같다고나 할까.

 

3. 테마파크와 쇼핑몰, 카지노

사람은 안정적인 생활을 중시하면서도 일탈을 꿈꾼다. 이는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되는데 주변의 세계에 대한 적당한 호기심은 인간의 생존에 매우 유리한 만큼 이는 매우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테마파크를 찾는다. 권태로운 일상에 충분한 호기심과 자극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마파크라고 해서 항상 자극만 주는 것은 아니다. 테마파크의 중앙에는 보통 메인 스트리트가 있는데 이곳은 과거의 즐겁고 평온한 분위기를 주는 조형물과 거리로 구성된다. (우리나라의 롯데월드나 서울랜드도 그렇다) 이런 자극과 다소 자극에 지친 나에게 평온을 주는 테마파크에서 사람은 자연히 오래 머물며 즐기게 된다.

 카지노의 목적은 사람들이 돈을 잃으면서도 따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며 이를 위해 그들이 도박장안에 충분히 오랜 시간동안 머물도록 하는데 있다. 인간은 직선이나 날카로운 것 보다는 곡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래서 카지노의 공간은 곡선으로 대개 설계된다. 카지노에서 과거 슬롯머신은 도박장내에서도 루저들을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 수익성이 주목받으면서 이젠 메인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슬롯머신의 위치도 매우 중요해졌는데 슬롯머신은 조망과 피신의 원리에 따라 역시 중앙공간보다는 좁은 구역을 빙둘러서 소규모로 군집배치된다.

 카지노는 매우 자극적인 공간이기에 사람이 쉽게 지칠 수 있다. 이에 최근 카지노들은 세계 유명랜드마크를 대규모로 시뮬레이션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장면과 소리를 제시하여 사람들의 기분을 고양하는 건물과 장치를 제공하고 있다. 긍정적인 정서를 불러오는 장소의 제공으로 사람들을 더 오래 머물게 하려는 요량인 것이다.

 쇼핑몰의 목적도 카지노, 테마파크와 대동소이하다. 최대한 사람이 오래머물러 그들의 가처분 소득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쇼핑몰은 기본적인 특징이 있는데 양끝에 백화점이나 할인점 같은 주요 세입자가 자리하고 그 사이로는 대규모 소규모 특별매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코트에서는 사람들은 식사를 즐기는데 쇼핑에 시간을 쏟아야 하므로 패스트푸드위주이며 최대한 짧게 머무르도록 구성이 되어 있다.

 

4. 거대한 공간에 대한 경외감

경외감은 인간에게서만 볼수 있는 정서로 그 때문에 이것이 정서에 속하는지 인지에 속하는지 분명히 구분이 안되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대개 정서로 불 수 있으며 경외감은 관대함과 순응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관대함은 물리적 크기든 지식이나 정신적 깊이든 어떤 크기에 대한 집착이며 순응은 경외감이 일으키는 자극에 반응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조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아인슈타인의 지식의 깊이에 경외감을 일으키고 그가 주창한 상대성 원리에 조응해 그동안 갖고 있던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수정하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런 광대한에 대한 순종적인 감각은 사실 동물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보다 작은 개체가 큰 개체에게 싸움을 걸지 않고 순응하는 것이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이란 그 이상의 것이지만.

 광대한 경관은 사람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일으켜 권력관계와 사회질서를 유지시키려는 목적이 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성베드로 성당처럼 권력과 관계 깊은 종교집단이나 정치권력층의 건축물이 유독 큰 이유는 이 때문이다. 하지만 큰 건축물이 인간에게 주는 경외감은 다른 측면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면서 지배권력에 순종하기도 하지만 더 큰 감각을 느끼곤 하는데 이로 인해 시간과 공간이 해체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인간이 죽음을 맞딱뜨리는 방법중 우리가 육체에 갇힌 것보다 더 큰 존재의 일부(가령 우주 같은 것?)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방법과 맞닿아 있다.

 

5. 건축의 미래, 가상공간과 디지털 시티

인간에게 있어 자기 방어와 생존을 위한 기능중 가장 기본적인 것중 하나는 자신과 외부를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 몸의 신경계와 뇌의 작용은 이를 절묘하게 해내지만 뇌의 가소성으로 인해 이런 구분이 항구적이고 고정적인 것은 아니다. 사람은 쉽게 자신의 신체와 비슷해보이거나 연장된 부분을 신체의 일부로 인지하며 사라진 부분도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문제는 가상공간에서의 다양한 경험이 이런 자신과 외부의 구분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의 역할과 정체성 그리고 물리적 공간 모두에 해당된다. 가상세계에 들어가 다른 역할과 정체성을 경험한 사람은 실제로 현실세계에서도 그 영향을 받아서 행동의 변화를 나타내게 되며 이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당연히 있다. 가상세계에서 경험한 비현실적인 물리법칙이나 여러 공간에 대한 경험도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친다. 이 역시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있다.

 현실공간에서도 디지털 시티가 들이 닥친다.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의 결합은 사람들에게 어느 공간에서든 집처럼 편하게 느끼는 공간과 경로를 제공한다. 나의 성향에 맞추어 도시를 거니는 나의 경로는 최적으로 설계 및 제공되며 각 장소에서 겪는 경험도 마찬가지다. 이런 맞춤형 장소 및 공간과 그에 따른 경험은 엄청난 장점과 효율성 및 편의성을 제공하지만 인간의 주체성 상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런 인간의 주체성에는 의도도 포함되지만 우연도 들어간다. 가령 내가 도서관을 방문하는 경우, 디지털 시티의 기계장치와 내몸에 부착된 웨어러블 기기들은 나의 디지털 흔적을 파악해 최적의 경로로 내가 가장 선호할 만한 도서로 향하는 길을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만족도는 분명 높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도서관에 가면서 예가치 못한 책을 간혹 마주하고 예상 못한 높은 만족도와 경험을 누리기도 한다. 디지털 시티가 이런 것도 예측할 수 있을까?

 이처럼 미래 건축은 각종 센서를 부착한 웨어러블 기기와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인간이 공간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반응을 낱낱히 분석하고 그에 따른 맞춤형 편의를 제공해 나갈 것이며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건축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이것이 주는 엄청난 경험과 편의성을 분명 대단할 것이다. 하지만 책은 이로 인한 자의식과 주체성 우연성의 상실도 경고한다. 깊에 생각해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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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미술책 - 곰브리치에서 에코까지 세상을 바꾼 미술 명저 62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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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이진숙의 '시대를 훔친 미술'을 봤다. 시대와 미술이 서로를 다소 앞서거나 따라가며 변하가는 모습을 정말 인상깊게 잘 보여준 책이었다. 그게 현대 미술을 제외한다면 미술의 거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같은 저자의 책에서 생각이 바뀔지는 몰랐다. 어떤 의미에선 이 책이 보다 미술을 잘 종합한 책 같다.

 위대한 미술책에는 저자 이진숙이 미술을 소개하거나 설명하는 명저 62가지를 드러낸다. 이런 소개책은 깊이가 얕을 경우도 있지만 작가의 내공이 워낙 대단한지라 마치 자신이 전반적인 서술을 하고 소개책이 뒷받침하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책은 총 5부로. 다소 특별한 미술가를 다룬 작가이야기, 서양미술사, 한국미술사, 미술이론, 미술시장과 컬랙터로 이루어진다. 각 부마다 인상적인 부분을 추려보았다.

 

1. 작가이야기

 작가이야기에서는 여러 사람을 다루지만 저자가 가장 중시한 사람은 단연 뒤샹이다. 뒤샹은 혁명적인 작업을 했음에도 의외로 이렇다할 작품을 많이 남기지 않았기에 생각보다 중요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저자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피카소보다는 뒤샹이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고 본다. 뒤샹은 작품' 샘' 으로 처음으로 미술사에 오브제라는 개념을 도입했는데 이로 인해 그동안 중시하던 미술가의 손보다는 개념이 중요시 되었다. 뒤샹은 20세기 미술을 망막적이로고 보았는데 기존의 회화를 눈에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망막회화로 보았다.

 그는 산업생산물에 대해서는 나름의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인간은 삶에 대한 에로스적 욕망을 갖고 있는데 이 것이 상품숭배라는 사회적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혁명이후 물건은 사용가치보다는 인간의 권력과 욕망과 보다 관련하게 된다. 그가 만든 오브제는 이런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어서 더욱 파격적인 것이었다.

 

2. 서양미술사

 서양미술사에서 이진숙 역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가장 먼저꼽았다. 작가는 3권의 서양미술사를 갖고 있는데 하나는 러시아어판, 다른 하나는 한국어판, 마지막이 초판 영문판이다. 영문판은 그녀 역시 받은 것이라는데 미술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언젠가 줄것이란다.아마 값어치가 대단할 것이다.

 곰브리치는 미술사를 아는 것과 보는 것의 변증법으로 파악했다. 미술은 처음에는 독자적인 존재가 아닌 집단의 주술이나 종교에 존속했다. 이때는 집단 구성원이 구성하는 이미지가 중요하여 원시미술과 이집트 미술은 아는 것을 표현한다. 반면 그리스는 미술에서 미적인 목적 자체를 중시하는 것으로 바뀌어 자연을 관찰하여 표현하는 미술을 추구한다. 때문에 패러다임은 보는 것으로 바뀐다. 하지만 종교의 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아는 것의 시대가 도래했고, 르네상스가 도입된 후에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보는 것의 시대가 다시 돌아온다. 보는 것을 그린다는 것의 극대화는 인상주의인데 인상주의 화가 세잔은 인상주의 화가의 무질서함을 극복하고 아는 것과 보는 것의 통합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 세잔은 후에 피카소의 입체주의로 발전한다.

 다음 서양미술사는 미와 추의 역사다. 작가는 움베르토 에코. 에코는 특이하게도 미술의 역사가 미의 영역이 추를 끌어오면서 확장된 것으로 파악한다. 동시에 추는 미를 밀어내고 전면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이는 서구세계가 지향해온 보편성과 영원성이라는 개념의 해체과정이며 미적 체계의 붕괴과정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그래서 에코의 미의 역사는 갈수록 초라해지는 반면, 추의 역사는 갈수록 화려해진다.

 서구세계에서 진선미의 공고한 결속은 고대 그리스에서 형성된 것인데 이는 과학의 발전과 그로 인한 세계의 지속적인 확장으로 깨어져나간다. 서구세계는 점점 낯선 것을 잡하게 되었고, 추하게 여기던 그것들을 점차 예술적으로 구제하려는 시도를 한다.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이르러선 선과 악을 넘어선 미가 표현되기 시작하고, 추를 통해 미를 거짓을 통해 진실을, 죽음을 통해 삶을 말하게 되며 이는 선과 미의 공고한 관계에 큰 균열을 낸다. 이제 아름다움은 세계질서법칙이 아닌 수용의 문제가 되었으며 현대 미술의 정독법은 이미 추라고 쓰고 미라고 읽는 것을 권장한다.

 

3. 한국미술사

저자는 자신 역시 서양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 한국미술사를 다루는 것을 무척 책에서 조심한다. 하지만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 없이 현대미술로 이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고 한국미술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저자의 노력덕에 서양미술도 모르지만 한국미술은 더더욱 모르는 상태가 조금은 개선되는 것 같다.

 우선 영기무늬 개념을 창안한 강우방을 다룬다. 강우방은 우리 미술품에서 무늬를 살펴나가면서 고사리 같은 문양을 발견하는데 여기 저기 얽힌 이것을 영기무늬라고 주장하고, 세계의 모든 고대 미술품에 영기무늬가 등장함을 주장한다. 이것은 과거 인류가 영적인 존재였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후대로 갈수록 미술품에서 영기무늬가 사라지는 것은 미술의 발달이지만 영성을 상실해가는 과정으로 볼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은 집합이론을 주장한 김봉렬이다. 그는 한국건축은 곧 집합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한국건축물을 볼때는 건축물의 구조나 형태에서 의미를 찾으면 안된다. 방, 건물, 건물군, 영역군이라는 분석 단위를 설정하고 각 단위간의 조합되는 유기적 관계를 통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집합이론은 또한 한국의 건축이 자연환경에 순응한 것이라는 기존의 소극적 견해를 깨고, 자연을 해석하고 적극적으로 경관을 건축화한 능동적이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진숙은 김봉렬이 말하는 각 요소의 비대칭성, 비정형성, 비표준성, 전체성이 단지 건축물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예술전체를 관통하는 것이라 말한다.

 

4.미술이론

우선 베레나 크리커의 예술가는 무엇이냐를 다룬다. 이 책에서는 예술가의 개념 변화를 설명하는데 과거 예술가는 초기 손으로 노동하는 기술자 취급을 받았다.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에 의해 예술가의 신격화가 이루어졌고, 낭만주의에서는 예술가를 범인이 아닌 천재로 보는 관념이 등장한다. 이시기의 예술가는 계몽주의로 세속화했고, 내면세계로 탐닉하며, 반시민적 태도를 갖고, 부족한 사회적 인정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현대에서는 예술가는 날품팔이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비즈니스맨이 되었다.

 다음은 추상화다. 윤난지는 추상미술은 그 자체의 본성으로서 아름다운 세계인 유토피아의 시각적 표상이라고 말한다.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추상적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한 추상미술의 거두들은 폴란드나 러시아등 주변지역 인물들이었는데 이는 그들의 국가와 사회가 개혁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즉,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를 전제로 하기에 유복한 프랑스사람에게선 나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시기 추상화는 기하학적 형태였는데 이런 기하학적 보편주의와 평등주의는 전체주의로 연결된다.

 2차대전 이후 추상화는 비기하학적 형태로 이동한다. 유토피아에 대한 관념변화와 관련하는데 보편주의에서 개인주의, 평등주의에서 자연주의로 이동했으면 이에 가장 걸맞는 국가는 바로 미국이었다. 미국은 이런 추상화를 적극 옹호하고 지원한다.

 추상미술은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데 이는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유토피아적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예술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것은 모든 것을 상품화하는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는 저항적 행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의미를 포함한 추상화가 비싼 상품이 된다는 것은 또하나의 아이러니다.

 다음으로 인상적인 것을 사진이다. 수잔손택은 오늘날에는 모든 것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 존재하게 되어 버렸다고 말하낟. 사진은 풍요롭고 낭비를 일삼으며 만족할줄 모르는 사회의 본질적인 예술이다. 또한 근대 자본주의 사회를 이룬 중간계급에게 가장 적합한 도구이기도 한다. 사진은 초기에 기계장치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라 작가의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이런 보편성은 중간계급의 특징과돠 일치한다. 하지만 오늘날 잘 드러나듯 사진은 회화나 데생처럼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다. 산업화한 사회는 시민들을 이미지에 중독시키고 판단을 마비시킨다. 사람들은 이런 사진이미지를 통해 경험한다는 것의 의미를 자꾸 바라보는 것으로 축소시켜간다. 사진이 갖는 심각한 문제점이다.

 다음은 풍경화다.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풍경화를 비교하는데 서양은 시각적인 전유에 중점을 두는 반면 동양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풍경속에 들어가 즐기는 것이 목표다. 초기부터 풍경화가 적극적으로 등장한 동양에 비해 서양에서는 풍경화가 무려 17세기에나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이는 서구 사회가 산을 인간이 죄를 지어 발생한 홍수로 인해 생겨난 것으로 보는 종교적 관념때문이었다. 산은 부정적인 것이었다.

 풍경화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는데 특히, 외부세계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원한 조망과 더불어 정자나 누각등 은신의 공간이 있는 경우가 더욱 그러하다. 이는 원시 인간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시각행동을 현대인도 여전히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5. 미술관과 컬랙터

현대에 이르러 미술품은 자본을 확대하거나 화폐가치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여겨지며 천문학적인 가치를 갖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최근의 일이고, 100여년전만 해도 미술품은 잘 거래되지 않았고, 가치도 높지 않았다. 때문에 과거 예술가들은 왕이나 유력 집안의 후원아래 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곳이 르네상스 시기의 메디치 가와 교황청이다. 이들은 단지 예술을 사랑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이들은 예술가를 후원함으로써 자신들의 가문에 유리한 이미지를 퍼뜨렸으며 화려하고 장대한 미술품으로 자신들을 미화한다, 즉, 미술품을 자신들을 포장하는데 사용한 셈이다.

 현대에 이르러 다양한 관점으로 미술품을 컬랙트한 사람은 훌륭한 컬랙터로 남지만, 자본을 목표로 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들이고, 후에 가치를 높인 후 되파는 식이 비판받는다. 이들은 가치를 높이기 위해 자신들이 작품을 사들인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일부러 유력 미술관에 기증하거나 전시회를 열기도 하며, 반대로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작가들의 작품은 팔아버린다. 이들의 이런 행위는 하나의 척도가 되버려서 이런 경제적 행위가 미술가들의 가치를 결정하는 행위가 되버린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책은 이처럼 전작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미술을 다룬다. 추천한 62권의 명저중 읽은 것은 고작 5권에 지나지 않았다. 큰 숙제를 얻은 기분이며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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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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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도르노와 벤야민. 정말 여러 책에서 제법 들어본 이름들이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하여 대단하신 분들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대학초년시절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영어를 무식하게도 모더니즘 중심주의라고 생각했었다. 포스트가 기둥이니(보통 축구에서 슛이 골대 때리면 골포스트 맞고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모더니즘을 중심으로 하는 사상이 아닐까라고......알고보니 포스트는 -이후라는 다른 뜻도 있었으니 포스트 모더니즘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모더니즘을 넘어선 그 이후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여튼.

 그래서 무식함을 타개하고자 지식인 마을 시리즈의 힘을 다시 빌렸다. 직장에서 구매해준 지식인 마을 시리즈, 결국 2017년 한해동안 겨우 20%정도 밖에 읽지 못했다. 아쉽다. 지점을 옮겼다고 말하긴 이상한 직장이지만 지점을 옮겼기에 올해부터 일하는 직장엔 이 시리즈가 없다. 아쉽다. 가지고 오고 싶었다.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정반대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단순화하면 아도르노는 대중을 기만하는 부정적, 벤야민은 그런 측면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해방의 긍정을 보았다. 둘의 공통점은 유대인이라는 점이며 유명세에 걸맞지 않게 말년이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68세대의 강한 비판속에 화가나 무리한 산행의 후유증으로 죽었고, 벤야민은 2차대전속에 빠르게 운신하지 못하고 나치점령하의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건너가다 일이틀어지자 짐작이라도 한 듯 미리 준비한 권총으로 자살했다. 이런 비참한 말년을 보낸 이들의 사상이 오래도록 회자되니 인생이란 참 모를 일이다.

 아도르노의 사상의 출발점은 계몽의 변증법에서 시작한다. 당시 파시즘과 이로 인한 대량학살을 목도한 그는 이런 역사적 파국들이 예외적이고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류사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으로 파악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파국성은 인간의 합리성에서 기인하는데 아도르노는 계몽의 출발을 인간의 자기 보존을 위한 합리적 노력에서 찾느다.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자기 보존을 위해 자연 지배를 시도하고, 이 과정에서 자연과 하나였던 인간의 자연성이 점차 사리지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개별적으로 약하기에 집단적 힘과 사회적 관계의 힘에 의존하는 사회적 지배의 단계이 이르게 된다. 이 단계에서는 지배와 피지배를 통한 억압이 실현되며 문명이 상당 수준에 이르러 자연 위에 인간의 이성이 군림하게 된다. 자연은 원시처럼 취급되며 이로 인해 인간은 자신 안에 남겨진 감정이나 본능등의 자연을 거부하게 되는데 이것이 인간의 내적 자연의 지배다.

 즉 계몽의 변증법은 인간의 자기보존-인간의 자연지배-인간에 의한 사회적 지배-인간에 의한 인간의 내적 자연지배 순으로 이루어져나간다. 아도르노에게 계몽적 주체의 자기 유지는 어이없게도 자기 부정, 즉 자신의 내적 욕망과 충동을 부정하고 억압함으는 길로 나아가게 된 것이다.

 이런 아도르노의 생각의 기저엔 동일성 원리란 또 다른 생각이 바탕을 깔고 있다. 동일성의 원리는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의 고유성과 차이를 무시하고 대상을 계산 가능하고 대체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주체의 주관적 형식을 대상에 부과함으로써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의 형식에 따르게끔 강제하는 것을 말한다.

 따지고 보면 계몽의 변증법 과정에도 이 동일성의 원리가 적용된다. 인간은 자연지배 단계에서는 외적 자연의 동일시에서 벗어나 이들을 개념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동일성 원리를 적용했다. 사회적 지배 단계에서는 상품생산 사회의 교환 원리로 그리고 인간 자신의 내적 지배 단계에서는 문화산업으로서의 대중화로 적용된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과거 예술은 시공간의 제약을 크게 받는 유일무이한 것에서 copyright가 난무하는 존재로 언제어디서나 존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예술은 이제 더 이상 예술이 아닌 문화산업으로 탈바꿈한다. 아도르노가 보기에 문화산업은 두 가지 특성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표준화다. 이는 문화산업의 산물들이 사실상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상품과 같다는 것으로 표준적인 도식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됨을 말한다. 표준화를 위해선 플러깅이 필요하며 플러깅은 글자그대로 사람들의 머리에 플러그를 끼우고 반복해서 주입하여 문화적으로 세뇌하는 것이다.

 문화산업의 또 다른 특성은 사이비 개성화다. 표준화와 플러깅이 지나치면 사람들은 금방 질리게 된다. 그래서 문화산업은 대중에게 항상 새로워보이는 것을 제시한다. 하지만 이것을 본질적으로 표준화의 도식을 그대로 따르며 특수하고 개성적인 것으로 가장하는 것에 불과하다. 히트하는 대중가요에 공식이나 상당한 유사성이 있음은 바로 이런 문화산물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산업은 이러한 특징을 갖다보니 동일성의 원리에 의한 내적지배를 공고히하는 역할을 하게된다. 이런 문화산업에 취한 대중은 수용적이고 적극적인 반성적 사유를 상실하며 기존지배체제에 순응하게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는 이런 문화산업의 함정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미메시스를 제시한다. 미메시스는 대상과의 동화를 뜻하는 것으로 계몽적 변증법이 동일성원리에 의해 적용되기 전, 즉 합리적 주체가 발전되기 이전 단계에서 인간이 타자와 관계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대상과 같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동일성의 원리에서 주체가 대상을 강점하는 것과는 다르게 대상에 대한 동경을 갖고 유사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대상에 대한 비교우위를 인정하는 형태이다. 이로 인해 미메시스적 인식이 가능한 문화산업이 아닌 예술은 대상을 참되게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가치 있는 것이 되게 된다.

 이러한 아도르노의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며 현대자본주의 사회에 의해 침식된 대중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때문에 대중문화의 가능성, 그리고 사회에 긍정적인 측면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도르노는 넘어야하는 벽이된다.

 다음은 벤야민이다. 벤야민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에 의한 예술의 시공간을 초월을 중대한 변곡점으로 파악한다. 벤야민은 예술은 본디 유일한 것으로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는데 기술적 복제의 가능함으로 이것을 사라지게 된다. 과거 아우라가 있는 예술은 주체와 대상이 통일되고 교감하는 것이었다. 아도르노는 이런 아우라적 성격을 대중문화산업에 대항하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보았으나 벤야민은 정반대외 의견을 제시한다.

 아우라의 상실이 어떤 경우에는 예술의 정치적 기능전환을 위한 긍정적인 지점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벤야민은 여기서 소외개념을 제시하는데 주체와 대상이 아우라로 인해 자연스럽고 친숙하게 연결되어 있던 관계에서 단절되고 소원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오히려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예술의 정치화로 연결된다. 새로운 기술적 수단을 이용하여 예술이 해방적으로 이용되고, 새로운 기술에 잠재된 혁명적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한예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에 등장한 영화에서 몽타주 기법에서 찾는다. 이 기법을 통해 대중에게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아도르노와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와 자본주의의 실패, 그리고 이로 인한 파과적 사회를 경험하며 예술의 같은 지점에서 놀랍게도 정반대의 양면성을 보았으며 날카로웠기에 이들의 시각은 오늘날에도 힘을 갖고 있다. 여러면에서 많이 배운 책이었으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중에서도 저자의 능력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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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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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쓸신잡2를 보며 왜 김영하와 정재승을 뺐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들을 어느 누가 대체할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접해보는 것도 좋지만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러다 유현준이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의 공간구조를 비교하고 설명하는 부분을 보고서 생각은 곧 바뀌었다. 그리고 구입한 그의 책이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이다. 

 우리는 방이나 집, 그리고 거리나 다양한 건물 같은 많은 공간을 접하고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그 공간에 대한 이렇다할 생각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저 좀 보기 좋으면 이쁘다. 덥다, 춥다. 답답하다. 아름답다 정도의 표현밖에 못하는 소위 공간문맹론자나 마찬가지인데 이 책은 그런 공간들을 읽고 해석하는 눈을 어느정도 갖게 해준다.


1. 유현준이 말하는 공간

 사람은 자연상태에서는 공간을 지각하기 쉽지 않은데, 그저 뻗어가는 하늘이요, 밤이되면 그마저도 암흑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인지하기 어려운 공간에 건축이 등장하여 벽과 기둥을 높고 지붕을 얹으면 공간을 비로소 분명히 인지된다. 

 저자인 유현준은 공간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는데 그것은 공간이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예로 사람마다 같은 공간을 다르게 받아들이는걸 들수 있는데 영어정보가 잘 인지되지 않아 한국인에게는 멋지게만 보이는 라스베가스의 무수한 네온사인들이 정보를 인지할수 있는 현지인들에게는 어지러운 과다 정보로 인해 볼품없어 보이는 공간으로 인지되는게 그 예다. 

 따라서 건축공간은 정보의 해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 인식의 산물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정보들은 3가지다. 첫째는 보이드로 물리적인 양이자 실제적인 공간의 볼륨이다. 둘째는 심벌로 글자그대로 간판이나 조각, 그림 같은 상징정보다. 셋째는 액티버티로 공간에서의 사람들의 활동이다. 

 이런 특징을 갖는 건축공간이 사람과 소통하는 방식 역시 3가지로 제시하는데 첫번째는 실제적 관계로 그 공간을 볼 수 도 있고, 실제로 가볼수도 있는 경우다. 둘째는 시각적 관계로 볼수는 있지만 그곳에 갈수는 없는 경우다. 마지막은 심리적 관계로 볼수도 없고 갈수도 없지만 머릿속으로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관계다. 


2. 걷고 싶은 거리의 특징

성공적인 거리와 걷고 싶은 거리가 항상 일치하는 건 아니다. 유명하고 비싼거리지만 그닥 걷고 싶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강남대로나 광화문 광장이 대표적이다. 이유는 스케일때문인데 걷고 싶은 거리들이 대개 휴먼스케일로 사람이 체험할 만한 아기자기한 많은 것들이 존재하는 반면 큰 스케일의 거리에서는 그런 것이 좀처럼 없다. 

 유럽의 경우 걷고 싶은 거리가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유럽은 미국에 비해 역사가 길어 도시의 거리들이 사람과 마차의 속도에 맞춰 발달해왔다. 때문에 거리마다 결절점이 많고 교차로와 코너가 존재하여 걷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경험과 선택을 제공한다. 반면 미국은 자동차와 함께 거리가 형성되어 블록이 크고 교차로가 적다. 

 우리나라로 대입하면 강북의 거리와 강남의 거리가 그러한데 자연발생적인 강북의 거리가 좁고 구불구불 하며 민간자본으로 개발되어 필지가 작은 편이다. 반면 대규모 기업자본으로 개발되고 자동차 중심의 강남의 거리는 필지가 크며 블록규모가 크다. 때문에 강북의 거리가 휴먼스케일이자 사람중심적인 거리라 할수 있다. 

 정리하면 사람이 걷고 싶은 거리는 다음의 특징이 있다. 우선 이벤트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 이벤트의 밀도가 높다는 것은 거리에 점포의 출입구가 많아 선택의 개수가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높은 이벤트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변화의 체험을 제공하며, 매번 같은 거리를 가도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다음은 속도인데 거리를 지나가는 속도가 너무 빨라도 안되며 너무 느려도 안된다는 것이다. 


3. 공간에 대한 점유, 개방과 폐쇄

펜트하우스는 가장 비싼데 그 이유는 자신은 남을 볼수 있으면서 남은 자신을 볼수 없는 위치에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습게도 비슷한 위치의 옥탑방은 가장 저렴한데 옥탑방은 위에만 있을뿐 사방이 트인 개방적 공간으로 쉽게 관찰되며 보안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비싼 공간은 이렇게 다른 공간과 자신을구분을 짓는데 과거에는 공간에 대한 구분으로 수공간을 썼다. 성당입구에 놓인 성수와 궁궐이나 절에 들어갈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물길과 다리가 그것들이다. 

 펜트하우스는 남들이 볼수 없기에 비싸고, 옥탑방은 볼수 있기에 쌌지만 보이는게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뉴욕 센트럴 파크와 보스턴의 코먼이다. 센트럴 파크는 규모가 상당히 크고 녹지가 많긴 하나 이로 인해 85%의 지대가 사각지대이다. 때문에 낮이 아니면 이용이 불가능한 편이나, 보스턴 코먼은 거의 전역이 주변 건물에서 내려다보여 치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편이다. 보이는게 보안이란 면에서 오히려 좋은 것인 셈이다.

 공간의 개방과 폐쇄와 관련해서는 호텔과 모텔이 있다. 호텔은 거의 완벽한 개방공간으로 대부분 큰 유리창을 써서 밖에서도 안이 잘 보인다. 이는 호텔에 묶는 사람들이 밖을 내려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 자체를 모두 좋아하기 때문으로 즉, 과시를 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반면 모텔은 보여지는 것은 원치않는 공간으로 낮이든 밤이든 항상 밤같은 내부 분위기를 연출하여 창이 거의 없다.

 폐쇄공간에는 클럽이나 도박장, 체육관, 공연장, 교회 ,백화점등이 있는데 클럽이나 도박장은 내부가 보여지기를 원치 않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공간들은 바깥과 안을 차단하여 내부의 사람들이 안의 일에만 집중하기를 원하기에 이런 식의 공간을 갖게 되었다.

 최근에는 도시화로 도시의 공간이 매우 비싸지면서 공간을 시간이나 일별로 대여하기도 하는데 주로 연인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모텔이나 카페가 대표적인 예이다. 좀더 여유가 있다면 상대적으로 집보다 공간을 저렴하게 점유하는 방법으로 자동차가 있다.


4. 동과서의 건축차이

 동양은 상대적이고 관계적인 철학을 발전시켜온 반면 서양은 이데아나 기독교의 신 같은 절대적인 가치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추구하는 과정으로 수학을 강조시켜왔다. 이 같은 차이는 건축에도 영향일 미쳐 동양의 건축이 자연과의 관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서양은 자연과 어울리기 보다는 삼각형, 원, 사각형 등의 기하학적 건축이 발달했다. 

 기후도 영향을 미쳤는데 동아시아는 몬순기후로 비가 많이 내리며 계절에 따른 기온 변화가 심하며 이로 인해 땅의 변화가 심하다. 때문에 땅이 물러 땅에 기초를 단단히 하는 방식의 건축보다는 땅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로 기둥을 세우는 방식의 건축이 발달했다. 비가 많이 오기에 지붕은 급경사여야 했으며 흙벽이 빗물로 젖어 무너지는걸 방지하기 위해 긴 처마도 필요했다. 벽과 긴처마사이에 툇마루를 놓은 것은 가히 신의 한수라 할만하다. 또한 사각형의 방을 모듈화하여 여러개를 놓는 방식으로 건물의 크기를 키우기 때문에 각 건물은 마당과 쉽게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간의 관계 맺기에 용이한 구조를 갖게 된다. 

반면 서양은 벽 중심의 구조체로 과거 건물들은 창을 가로로 길게 내면 하중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에 세로로 긴창이 많이 발달하였다. 

 이 같은 건축양식의 차이는 대표적 건축물은 절과 교회에서도 나타난다. 서양의 교회는 예배를 통한 집회를 중시하기에 거대한 내부공간이 필요하다. 또한 신의 권위와 현신함을 드러내기 위해 밝은 채광도 중요했는데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테인글라스다. 스테인글라스는 문양으로 알고 있찌만 실은 기술의 부족함이 낳은 것이다. 과거 서양은 투명한 유리를 만들기 위해 불순물을 제거하는 기술이 부족했는데 그러다보니 색을 띤 유리가 많이 만들어졌다. 이를 그대로 그림으로 이용한 것이 스테인 글라스다. 

 반면 동양의 절은 개인별 방문의 형태이므로 거대한 집회공간이 필요치 않다. 거대한 집회가 있는 부처님 오신날이 늦봄으로 기후가 온화해고 햇살도 강하지 않아 경내 마당으로 충분하다. 건물은 큰 것이 필요없어 작은 것이 여러개 있으며 건물 사이사이 공간이 있어 돌아다니면 마치 공원에 간 느낌이 든다. 물론 문화유적으로서의 역사성도 있지만 그래서 사람들이 종교불문하고 절로 관광을 가는 것이다. 거기에 교회는 건물 구성상 매우 권위적인 느낌이 들어 일반사람이 들어가기 힘든 부분이 있으며 절은 그 반대다.


이외에도 책에는 우리가 왜 한강고수부지를 가기 어려워하는지, 냉장고의 발달이 거리의 발달에 미친 영향, 아파트에 대한 이야기등 다양한 건축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은 매우 쉽고 재밌있으며 알차다. 추천사 부분을 통섭을 주창한 최재천씨가 하였는데 초기엔 의아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이해가 간다. 유현준씨 자체가 건축에 매우 통섭적 사고 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건축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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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훔친 미술 - 그림으로 보는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
이진숙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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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과 시대는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반영한다. 때론 시대의 변화를 미술이 추종하기도 하고, 어떨때는 미술이 사람과 시대를 앞서나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살아생전에 그리 성공하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도 이때문이다. 그리고 때론  미술은 시대와 권력의 종 노릇을 하기도 한다. 아무래도 미술을 하는데는 돈이란게 결국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은 그 사회와 당대의 썩어빠진 폐부를 정말 잘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미술과 시대는 그렇게 서로를 그려나간다. 

 이 책 시대를 훔친 미술은 대충 르네상스시기부터 근현대까지 유럽 사회의 시대 변화와 미술의 변화를 정말이지 잘 뒤섞은 책이다. 예술은 나에겐 부채와도 같은 편인데 항상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좀처럼 손이 가질 않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 결코 많진 않지만 여러 권이 그러한 마음의 부채를 메우 듯 책장에 쟁여져 있는데, 연휴로부터 용기를 얻어 열어본 이 책을 열어보았다.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책은 일단  르네상스시기로 향한다.  르네상스 이전 시기 유럽 미술의 주제는 단연 기독교였고, 이는 인간중심의 르네상스시기라고 다르지 않다. 하지만 표현 방법에서 시대의 변화에 따른 큰 차이가 생긴다. 과거 역원근법에서 선원근법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바뀐 것이다. 역원근법은 전지전능한 신이 당연히 여러곳을 볼수 있다는 점에서 신의 관점을 시각화 한 것이었다. 하지만 선원근법은 그림을 한 시점에서 보는 것으로 지금, 현존하는 주체의 존재를 시각화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과 카톨릭으로 묶여 있던 철저히 예속된 공동체 상황에서는 존재할 수 없었던 근대적 개인의 등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시대변화와 맥을 같이 한다.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 상황으로 과거 민족개념이나 국가개념이 매우 미약한 상황에서 교황의 권위가 약해지고 국가가 탄생하는 시기였으며 신교의 등장으로 신앙 역시 다양해지고 있었다. 또한 서적의 보급으로 과거 낭독으로 이루어진 독서가 개인적인 독서인 묵독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개인 탄생을 부채질하는 시대변화가 미술에 반영된 것이다. 

 신교의 등장으로 미술이 바뀌었다면 다음은 구교의 반격이었다. 카톨릭은 신교가 서적의 보급을 통한 언어 위주의 문자포교에 맞서 미술을 사용하였다. 이시기의 미술 유행인 바로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바로크 시대에서 미술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를 주로 사용하였는데, 이는 당시 등장한 연극의 연출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며 강렬한 구성을 통한 종교적 고양을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극적인 효과는 당시 종교전쟁 이후 등장한 절대왕정의 권위를 드높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종교적 열정과 예술의 영향으로 태동한 바로크가 세속화 하기도 한 것이다. 

 이 시기에 유럽의 북부 한 곳에서 독특한 나라가 탄생한다. 바로 네덜란드다. 나라가 독특하기에 그 나라의 미술 역시 독특했다. 다른 유럽 지역들과는 다르게 네덜란드는 시민 공동체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한 나라이기에 그들을 위한 미술작품이 다수 탄생한다. 마치 양반과 왕가에서 벗어나 백성을 위해 탄생한 우리의 민화같은 느낌이다. 당시 네덜란드에서는 이 귀족과 시민공동체를 기리기 위한 그림이 많아 탄생하여 주로 집단 초상화가 많았다. 또한 오랜 전쟁과 대항해시대의 도래로 남자들이 집안을 비우자 여성들이 가정의 가장과 직장인으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자연히 여권의 신장으로 이어져 이 시기 네덜란드의 그림에서는 매우 독립적이고 남성과 대등해 보이는 여성이 드러나는 미술작품도 다수 등장한다.

 대항해시대의 도래는 당대 유럽인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기 시작한다. 종교개혁과 지리상의 발견들로 기존의 세계관이 흔들리고 확장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굳건했던 종교적 믿음이 흔들리고, 나홀로 신과 사제로의 의지 없이 새로운 세계 안에서 자기를 끊임없이 확증해야 하는 고독한 개인상이 등장하게 된다. 이는 누구보다 굴곡진 삶을 살았던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시기에 절대왕정의 궁전에서 세속화한 바로코는 급기야 로코코로 변화한다. 바로크가 다소 굵직하고 역동적인 남성적 취향의 예술이었다면 로코코는 섬세하고 변덕스러운 여성의 취향이다. 모든 것을 다 가졌음에도 정략결혼으로 정작 사랑의 자유를 갖지 못한 귀족과 왕족들의 로코코 취향은 목가적 사랑을 그리는 그림의 발전을 낳는다. 치열한 개인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는 시민세계에 비한다면 사뭇 유아적인 느낌마저 갖게하는 형국이다.

 절대왕정의 시기는 프랑스 혁명으로 그 끝을 점차 맞이 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기 예술은 바로크도 로코코도 아닌 신고전주의로 향한다. 신고전주의는 교훈적이고 영웅적인 행위를 묘사하는 역사화, 신화화, 초상화를 주로 많이 남겼다. 혁명기 이후 프랑스에서는 신고전주의가 쇠퇴하고 낭만주의가 시작되었는데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프랑스에 반감이 강했던 독일에서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향으로 독일식 낭만주의가 시작된다. 이 낭만주의는 프랑스의 그것에 비해 시대적 요구에 의하여 민족적 색채가 강했으며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을 자연을 매개로 표현하는 형태가 많아 유독 풍경화가 많았다.

 유럽엔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한다. 산업혁명 시대는 뜻밖에도 산업화한 도시이외에도 미술에 있어 농촌을 재탄생시켰는데 이는 사람들이 산업화한 도시로 몰리면서 늘 있었던 농촌의 아름다움을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엔 도시와 대비되는 농촌 풍경과 그 안의 인물들을 다룬 그림이 사실적인 형태로  그려졌다. 당시 그림엔 유독 농촌에서 일하는 여성이 많았는데 이는 남성을 도시와 문명, 이성으로 보고 여성을 농촌, 자연, 감성으로 여기는 계몽주의의 이분법적 철학
이 그림에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기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역설적이게도 도시의 노동자보다는 농촌이 주로 다루어졌다. 이는 초기 공장에서의 노동이 이렇다할 전문적인 노동의 형태를 띄지 못한 단순 노동이었기 때문이며 당시 공장의 노동형태가 마치 지옥처럼 극도로 열악했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기에 인간은 여러가지를 발명하여 이른바 속도를 낳는다. 사람들은 늘 정적인 풍경만 보고 살았는데 증기기차등의 발명으로 빠르게 이동하여 마치 물결이나 띠처럼 느껴지는 풍경을 보게 된것이다. 이는 미술에 영향을 미쳐 자연의 한 순간이나 힐끗 본듯한 한 때의 인상을 남기는 인상주의가 시작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한때의 인상을 위해 야외에서 즉석으로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당시 교통수단의 발달과 튜브형 물감의 발명은 이를 가능케했다.

 산업혁명기 이런 인상주의의 등장은 르네상스이후 줄곧 계속되어 온 본질을 그리고자 한 열망의 폐기를 의미했다. 이제 더이상 그림은 있는 그대로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인상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늘 명랑했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한 인간의 자신감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열망이 작품에 담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유럽의 풍요는 어디까지나 제국주의를 통한 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수탈로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수탈을 가능케 한 제국주의는 세계대전과 경제공황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곧 인상주의의 끝을 의미하기도 한다.

 20세기 들어 새로운 세기에 대한 새로움과 성공에 대한 예술가들의 갈망이 겹치면서 예술적 아방가르드가 시작된다. 당시 예술은 대중과 호흡하기보다는 새로운 영역과 고지를 선점하려는 예술가들의 실험적 경쟁이 본격화한 시기였다. 그리젤다 폴록은 이시기 예술의 파괴성을 과거 예술인 아버지에 대한 참조와 그것에 대한 경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 지위를 전유하고 강탈하고자 한 문화적 친부살해로 표현했다.

 이 시기에는 야수파와 입체파, 미래주의, 절대주의, 추상미술등 매우 다양한 형태의 미술이 등장한다. 입체파는 시공간에 대한 기본 개념을 뒤흔든 아인슈타인의 등장에 영향을 받았으며 추상미술은 오히려 예술의 주변지였던 유럽 변방국가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예술의 지향점을 눈에 보이는 현존세계가 아닌 내적 필연성의 세계에 두었고 현실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의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모두는 공통적으로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이는 오브제를 제작한 마르셀 뒤샹에 의해 처음으로 극복된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모처럼 국적을 잊고 예술적 공동체 의식과 보편성을 갖고 있었으나 이는 1차대전을 통해 무참히 깨져나간다. 몇몇 예술가들은 전쟁을 통해 전사했고, 살아남은 몇몇은 더이상 낭만적이거나 즐거울수 없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성에 근거한 서구문화 전체를 부정하는 다다로 이어졌다.

 책은 이 시기에서 마무리 된다. 역사와 함께 다룬 미술이라 쉽게 읽히면서 그 미술과 역사가 서로를 그려나간 변화가 인상적이고 아프게 다가오는 책이었다. 역사와 미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말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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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11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상미술의 시대가 열렸을 때 이탈리아와 러시아 미술도 주목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솔리니와 스탈린의 시대가 오는 바람에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었습니다. 시기적으로 타이밍이 좋지 못했습니다.

닷슈 2017-10-11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말입니다. 러시아 쪽은 철저히 이용하기도 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