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2
이덕일.김병기.박찬규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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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에 대한 책을 몇권읽어보았다. 이덕일의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라는 집어들었을 때, 별로 새로운 내용들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을 살펴보면서, 나의 예상은 산산히 부서졌다. 500여페이지에 달하는 장대한 책의 무게를 이겨내며 한장 넘기면서 고구려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1. 고구려는 고조선을 계승했다.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고구려를 비롯해서 백제, 신라가 고구려를 계승하려는 의도도 없었고, 그러한 나라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과학적인 연구방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덕일은 우리역사를 단절적으로 보지않고 연속적으로 파악한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단편적으로 남아있는 사료들을 모아, 고구려가 고조선을 계승한 국가임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단절적으로 인식하고, 우리 민족이 근대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며, 서양의 민족주의를 무비판적으로 한국사에 대입하려는 학자들에 비해서 이덕일은 우리 역사를 사료에 근거해서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2. 탁월한 고구려에 대한 설명

  이 책에서는 예맥족에 대한설명을 비롯해서 그동안 혼동을 일으켰던 여러 고구려에 대한 설명들을 명확하게 이덕일만의 시선으로 풀이하고 있다. 또한 우리 역사의 시야를 동아시아로 확대하여 북위의 역사속에 살아숨쉬는 고구려인의 모습을 복원해내는데 성공하였다. 어디 이 뿐인가! 만주를 직접답사를 하며 내몽골 지역에 남아있는 고구려의 유적들을 찾아보면서 우리 역사기록에 남아있지 않은 고구려의 역사를 찾아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이 빛을 발해서, 이 책을 더욱 의미있는 책으로 만들고 있다.

 

  한국의 강단사학계의 학자들의 주장들을 살펴보면, 가슴한구석에 답답하다는 생각이든다. 대학에서 만리장성이 지금의 평야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했던, 서** 수는 국정 한국사교과서를 집필하기도했다. 어쩌면 일제 식민사학의 세례를 받은 자들이 지금의 잘못된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일조를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덕일의 표현대로, '구각'에서 벗어나자! 그러면 고구려의 모습이 올바로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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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국민라디오] 이윤호의 고전읽기
http://podbbang.com/ch/7106

동양 사상들을 잔잔한 목소리로 들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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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우리 역사 바로잡기 1
이덕일, 김병기, 신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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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오랜만에 고조선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대학을 다니던 시절에 고조선과 관련된 책들과 논문을 읽었다. 원사료를 접하지 못했던 나는 학자들이 제시하는 사료들과 그들만의 해석방식을 쫓아가기에도 벅찼다. 고조선을 연구하고 싶다던 나의 소망은 너무도 단편적인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논문들 사이에서 길을 잃게 되었다. 결국 그래도 고조선보다는 사료가 많은 백제사를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이덕일의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라는 책은 그때의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해주었다. 윤내현 교수님에게 강의를 들으며, 고조선은 대제국이었다고 생각하다가, 서영수 교수님에게 강의를 들으면, 고조선의 강역을 크게만 포장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주장이며, 큰것만이 무조건 좋다는 잘못된 생각이라는 생각을 하곤했다. 나름 10여년이 지나고 다시 고조선에 관한 역사서를 읽으며, 과연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이를 풀어 헤치는 험난 길을 간다.

 

이덕일의 주장은 대부분 윤내현 교수님의 학설을 따르고 있다. 윤내현 교수님은 하버드대학에서 북한의 고고학자료와 고조선 연구 자료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관련 논문을 복사해서 고조선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갑골문의 권위자인 윤내현교수님이 고조선연구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그리고 윤내현 교수님은 북한이 이지린의 학설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이지린은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영향을 받았고.... 윤내현 교수님과 이덕일은 민족주의 역사학자인 신채호, 박은식, 정인보 선생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김준엽 교수가 이덕일을 단재사학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책의 상당수의 내용들은 윤내현 교수님의 강의와 관련 서적을 통해서 이미 익숙히 알던 것들이다. 단지 새로운 점이 있다면, 칼라시진들이 중국에 있는 고조선 관련 유물과 현장사진을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책을 다 읽고 상념에 잡히게된다. 높은 언덕에서 안개에 뒤덮힌 마을을 내려다 보는 느낌이다. 안개사이로 조금 모습을 드러낸 마을의 일부분을 보고서, 마을의 전체를 설명하는 듯한 인상을 많이 받았다. 이는 다른 고조선 관련 논문을 읽어도 마찬가지이다. 문헌사료는 너무도 양이 적고, 고고학자료는 학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도구로 이를 사용하고 있다. 물론, 이덕일과 윤내현 교수님의 주장에 많은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낙랑군과 낙랑국을 구분해야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공감하다. 분명!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이야기 처럼 대무신왕 시기에 이미 망해버린 '낙랑'을 교과서에서는 미천왕때 망했다고 배운다. 삼국사기를 읽을 때, 너무도 의문이 많이 들었다. 낙랑이 어찌해서 두번 망할까?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제거하고 삼국사기를 읽으면 그 의문은 말끔히 해결된다. 삼국사기에는 분명 호동왕자가 멸망시킨 낙랑을 '낙랑국'이라고 하고 있다. 한사군의 일부가 아닌, 당당한 한개의 국가로 적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기를 바란다. 한가람연구소를 중심으로 많은 역사학자들이 관련 연구를 해주길 바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연구를 그들이 대신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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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2-26 2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역사학도이기는 하지만 워낙 고대사에 대해 아는것이 없어 암말도 안하지만 이덕일씨는 학계에서 생각보다 많이 까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양쪽 의견 모두 들어보려는 쪽입니다. 개인적으로 환단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주류쪽 주장에 좀 더 귀기울이기는 하지만 재야쪽 사람들의 의견도 좀 들어볼 필요는 있는것 같습니다. 앞으로 고대사쪽은 둘쪽다 협력하는 쪽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주관심사가 현대사라 주류든 재야든 다 페친받고 의견도 들어보려 하지만 간혹보면 서로가 너무 심하게 싸우는것 같아요. 어느쪽이든 서로 존중했으면 좋겠네요. 무튼 서평 잘읽었습니다.

강나루 2018-02-27 05:32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을 읽고 댓글까지 남겨 주시니 감사해요
주류 비주류 각각 강점과 약점이 있어요 그사이에서 길을 잃지않고 중심을 잡아 가야죠^&^
 

  작년 팟캐스트를 비롯하여 인터넷에 시진핑에 대한 이야기가 봇물을 이루었다. 권력을 얻기 위한 중국 지도부의 처절한 암투! 그리고 그 중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자, 시진핑! 새로운 시대는 미국의 시대에서 중국의 시대로 무게 중심추가 옮겨갈 것이라고 많은 자들이 예견하고 있다.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에 조경란 교수가 중국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많은 사람들이 경청하는 이유도,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13억의 리더를 알아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갈길을 몰라하는 한국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진핑! 그를 알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 책'13억분의 1의 남자'를 빼들엇다. 저자 미네무라 겐지는 탁월한 취재실력을 바탕으로 중국의 권력투쟁의 속살을 들어냈다. 그 속으로 빠져들아가 보자.

 

1. 부유한 일본의 속빈 민낮!

  이 책은 미국의 얼나이촌에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중국은 미국을 가상의 적대국으로 상정하고 군인들을 교육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 미국에 많은 중국인들이 이민을 가고 있고, 그 중에서도 우리말로 '첩'으로 번역될 수 있는 '얼라이'들이 있다. 중국 부자의 약 64%정도가 중국에서 미국으로 가려하고 있다. 그들은 첩을 미국에 보내서 살도록하며 자신의 검은 돈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 혹은, 미국의 '월자촌'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미국시민권을 얻는다. 외국 유학은 물론, 가족을 미국에 보내고,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미국으로 망명하는 '나관'들의 모습은 중국의 민낮이다. 일본을 제치고 중국이  G2로 올라섰다. 시진핑은 오마바와 만나서 '태평양은 미국가 중국이 나눠가질 수 있을 정도로 넓다.'라고 말했다. 중국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중국 안에서 벌어지는 미낮은 너무도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심지어는 시진핑의 외동딸도 미국 하버드대학의 심리학과를 나왔으며,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도 하버드대학의 케네디 스쿨에 다녔다. 아이러니가 아닌가? 가상의 적국에 중국의 지도층들은 자신의 아들을 유학보내고 있으며, 미국으로의 이민을 꿈꾸고 있다. 그것은 최고위층을 두고 권력다툼을 했던, 보시라이와 시진핑도 마찬가지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보시라이의 아들 보과과는 전형적인 권력층 황태자의 모습을 보였다면, 시진핑의 딸 시밍쩌는 자신의 화려함을 숨기고 학업에 매달리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을 뿐이다.

 

2. 치열한 권력투쟁에서 최후의 승리를 하다.

  시진핑의 권력 상대자는 13억 중국인이었다. 그리고 그 13억 중국인은 그의 동반자가 될 수도 있고 그를 배척하는 세력이 될 수도 있었다. 13억 중국인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보시라이와 리커창이다.

  보시라이는 다롄시와 충칭 시 당서기를 역임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있었으며, 리커창은 후진타오의 강력한 지원을 받으며 자신만의 탁월한 두뇌를 바탕으로 시진피을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이들을 제치고 그는 권력 암투에서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리커창과 보시라이는 성공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적을 두었다. 너무도 탁월한 인재들이었고 그 성공을 위해서 보시라이는 쿠데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것이 그들의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중국의 지도자는 탁월한 두뇌와 능력의 소유자보다는 분열될 수 있는 중국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화합의 리더를 원했다.

  시진핑이 중국공산당 중앙총서기가 되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제로 군림하는 장쩌민을 어떻게 제압할 수 있을까? 그리고 상황제가 되고 싶어하는 후진타오는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이책에서는 이 해결책을 시진핑의 입을 통해서 간단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나는 세 단계로 권력을 잡을 거야. 먼저 장쩌민의 힘을 이용해서 후진타오를 '완전 은퇴'로 말아넣어야해. 그리고 그가 휘두르는 복수의 칼날이 장쩌민을 치게 만들어야지 마지막으로 우리 훙얼다이 동지들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거야.(이유극강 차력타인 이정제동)"

 

  소시라이의 이 말은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꺾고, 상대의 힘을 빌려 상대를 치고, 정으로 동을 제압한다라는 태극권의 기본사상과 맥을 같이한다. 일본에서는 시진핑을 능력없는 지도자로 보았었다. 그럴 정도로 시진핑은 발톱을 숨기며 자신을 낮추었고, 결정적인 순간 권력을 차지하고 그 권력의 칼로 상대방을 제압했다. 마치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제 시진핑은 새로운 과제 앞에 놓여있다. 2014년 7월 통계에 의하면 중국 상위 1%의 부유한 가정이 중국의 전 자산 중 3분의 1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하층인 25%는 겨우 1%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다. 이토록 엄청난 빈부격차를 어떻게 해결한 것인가? 모두가 평등한 빈부격차가 없어야하는 중국 공산주의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너무도 불평등하다. 그리고 우리 생활속에서도 중국산 미세먼지로 고통받고 있듯이, 중국에서도 엄청난 환경오염에 봉착하고 있다. 시진핑은 누구도 가망성이 없어 보이는 중국 13억 인구의 최정점에 올라와있다. 우리에게 보여준 기적을 중국이라는 국가 개혁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을까? 나는 깊은 사색에 빠져든다.

 

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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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나 - 왕을 만든 사람들 그들을 읽는 열한 가지 코드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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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책을 많이 보아왔다 10여권이 넘는 이덕일의 책들을 읽으면서, 강한 흡입력을 가진 그만의 문체를 배워보고 싶었다. 역사를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덕일의 역사관이 이책에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물론 이책을 읽기 전에 나는 '조선의 왕을 논하다'라는 이덕일의 책을 읽었다. 이덕일의 사각으로 조선의 왕을 논한 점이 무척신선했다. 그와 대비되는 책이 바로 이 책 '왕과 나'였다. 왕을 만든 사람들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신선한 구성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참모의 모습을 관통하는 코드였다. 11개의 코드로 각 참모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젠다, 헌신, 시야, 사상, 시운, 정책, 기상, 악역, 실력, 맹목, 역린' 이들 참모의 모습은 사회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주군을 만인지상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그러나, 족함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라는 격언을 지키지 않고 역린을 건드린 결과 울분속에서 삶을 마치는 비극을 맞기도 했다. 과거의 지금의 시대는 바뀌었다. 조기 대선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금! 과연 '킹'을 만들기 위한 '킹메이커'들은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할까? 이덕일이 제시한 11개의 코드는 지금도 유효한 코드들이지만, 반드시 유효하지는 않다. 만인지상에 자신의 주군을 올려 놓고, 그 다음에 다시 자신이 만인지상에 오를 수 있는 시기가 도래했다. 5년 마다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바뀌는 지금! 참모였던 사람이 푸른 기와집의 주인에 도전하고 있다. 지방의 작은 기와집의 주인 둘이서 그 뒤를 쫓으며 서울의 큰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되려는 자도 있다. 세사람중에 한사람은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선이 끝나고 선거일이 되면, 이들 중에는 대표주자의 참모가 되어 경쟁자를 주군으로 모실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5년 후에 다시 푸른색 기와집의 주인이 되려할 것이다. 그들에게 이 책의 코드를 들려주고 싶다. 새시대의 어젠다를 제시했는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담은 정책을 실력있는 참모들을 모아 실현할 수 있는가? 때로는 이 나라의 개혁을 위해서, 국민을 위해서 맹목적이기까지한 악역을 할 수 있는가?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국민에게 헌신한다면 시운에 따라 푸른색 기와집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높은 기상을 펼치는 그런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 기억하고 잊지 않아야할까? 그것은 앞으로 펼쳐질 높은 파고를 넘기 위한 교훈을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지난 잃어버린 9년을 딛고 새로운 100년을 설계하기 위해서 지금의 주자들은 이 책을 읽어봐야한다.

 

ps. 이 책을 읽으며 대동법 실시가 얼마나 힘들었으며, 백성들이 얼마나 시행을 바랬는지를 알 수 있었다. 관련 사료를 보자.

 

각 고을에서 진상하는 공물이 각 관청의 방납인에게 막혀, 한 물건의 값이 서너 배에서 수십, 수백 배까지 되니 그 폐해가 이미 고질이 되었는데 경기도가 특히 심합니다. 지금 마땅히 따로 하나의 관처을 설치해서 매년 봄가을에 백성들에게서 쌀을 거두되, 농지 1결 당 두번에 8말을 거두어 본청에 보내면 본청에서는 그때의 물가를 보아 가격을 후하게 산정해서 거두어들인 쌀을 방납인에게 주어서 필요한 때에 물건을 사들이게 해서 간사한 꾀로 물가가 오르는 길을 끊으셔야 합니다. -광해군일기, 즉위년, 5월 7일

 

호서에 대동법을 실시하기로 처음 정했다. 우리나라의 공법은 심하게 무너져서 서울의 호활한 무리들이 경주인이라고 칭하면서 여러 도에서 바치는 공물을 못 바치게 막고는 그 값을 본읍에서 배로 징수했다. 그 물품 값이 단지 1필이나 1두에 불과하지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심지어 수십 필, 수십 석까지 이르렀다. 탐관오리들과 연줄을 타서 이익을 꾀하는데, 마치 바닷물을 빨아들이는 큰 구멍 같아서 그 폐단이 점점 불어났다.-효종실록, 2년 8월 24일

 

이러한 대동법은 조선왕조를 보존하는 큰 버팀목이 되었다. 관련 사료를 보면,

 

대소 사민이 서로 "우리가 비록 신해년(현종 12년)의 변을 겪었지만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대동법의 은혜입니다. 대동법 이전에는 농지 1결에 살을 60두씩 바쳐도 부족했지만 대동법 이후에는 1결에 10두씩 만 내어도 남습니다. 만약 대동법을 혁파한다면 백성이 굶주리고 흩어져도 구할 방도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승정원일기, 현정 14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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