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버린 천재들 - 역사의 선각자로 부활하다
이덕일 지음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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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의 책들을 20여권을 읽어본 나로서는 이제는 내가 읽었던 시기의 이덕일의 책을 읽지 않기로 결심했다. 과거에 읽었던 책들과 유사한 내용이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책은 책 제목이 나를 휘어 잡았다. '조선이 버린 천재들'이라! 어찌 매력적이지 않는가? 시대를 잘못만나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가야만 했던 자들! 이덕일의 역사서술의 커다란 축은 그러한 자들을 찾아내어 조명하는 것이다. 그점이 이덕일의 매력이다. 그러다면 이 책의 면모를 살펴보자.

 

1. 정사와 야사를 넘나드는 글쓰기

  이덕일은 조선왕조 실록만을 참고하지 않는다. '동각잡기'를 비롯한 많은 야사류의 책들을 참고한다. 그것이 정사의 딱딱함을 야사의 부드러움으로 채우는 이덕일의 비결이다. 햇볕 비치면 정사가 되고, 월광에 바래면 신화가 된다는 말이 있다. 야사류라해서 정확하지 않은 기록은 아니다. 야사류는 오히려 일반 민중들이 평가가 담겨있으며, 일반 민중들이 바라는 인물상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후려 정사 못지 않은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특히 사료가 부족한 홍경래에 관해서 '홍경래 실기', '홍경래전', '신미록' 등의 글들을 풍부하게 인용하여 홍경래를 부활시켰다. 그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이 중에서도 평안도 사람들은 더욱 당세에 쓰이지 못했다. 조선 초에는 고려 유민이라 하여 위험하게 여겨 쓰지 않았고, 나중에는 천하게 여겨 쓰지 않았다. 서울의 하인배나 충청도의 졸개들까지도 서북인을 '사람'이라 부르지 않고, '놈'이라 불렀다. 서북지방의 감사, 수령들이 백성의 재물을 다반사로 토색한 것도 서북민을 내심으로 천시한 까닭이다. -홍경래전-

 

생동감 있는 이러한 글들은 '홍경래'라는 인물을 더욱 생동감 있게 되살려주고 있다.

 

2. 평전으로 꾸며도 좋을 인물들

  이 책에는 각 인물들에 대해서 심도있게 파악하기에는 자료가 너무도 적게 제시되어 있다. 그러하기에 이 책을 입문서로 해서 각인물들에 대한 심도있는 평정이 집필된다면 나름의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정도전과 윤휴은 이미 이덕일이 평전으로 쓴 인물들이기에, 이징옥, 홍경래, 김개남, 강홍립등의 인물은 독자적인 평전을 써도 좋을 것 같다.

  이징옥은 세조의 계유정난에 반발해서 그가 보여 주었던 웅대함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홍경래는 민중의 시각에서 그를 새롭게 부활하고, 대부분 동학농민운동하면 전봉준만을 떠올리는 현실속에서 김개남을 중심으로 동학농민운동을 새롭게 조명하고, 광해군의 중립외교의 첨병이자, 정묘호란이 신속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조력한 강홍립의 삶을 조명하는 것은 크나큰 의미를 갖는다. 이덕일이 개별 인물에 대한 평전을 내 놓기를 기대해본다.

 

  예전에 읽었던 책에, 이덕일 자신이 크게 자동차 사고를 당했어도 멀쩡하게 살수 있었던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패배자들아 자신을 보살펴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회피하려해도 그들을 회피할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이덕일의 숙명과도 같은 역사의 패배자들에 대한 재조명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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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 역사학자 이덕일, 공자와 논어를 논하다!
이덕일 지음, 권태균 사진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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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덕일이 '논어'에 대한 글을 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사 전분야에 손을 데고 이제는 동양고전에 까지 손을 데는 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태묘(太廟)'를 종묘가 아닌 '태조의 능'이라고 해석했다며 이덕일을 싫어하는 학자에게 난타를 당했던 이덕일! 그가 '논어'라는 책을 썼다. 과연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라는 책은 이덕일이 '논어'를 어떻게 소화하고 썼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1. 논어를 통해서 공자의 생애를 살펴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른 철학자들의 '논어'관련 책들과는 달리, 공자의 사상보다는 그의 삶에 촛점을 맞춰 이야기를 구성했다는 점이다. 곳곳에 녹아있는 '논어'의 구절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공자의 입에서 나온 구절이구나! 라는 깨달음을 주었다. 공자의 입체적 삶을 통해서 논어의 명문들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를 보다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김시천의 '논어, 학자들의 수다'라는 책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제자들의 삶을 논어를 통해서 분석해 보았다면, 이 책은 '논어'를 통해서 공자의 삶을 분석했다. 두책을 비교하며 읽어 내려가니, 공자와 그 제자들이 입체적으로 머릿 속에 그려졌다. '내인생의 논어, 그사람 공자'에서 빠진 제자들의 모습을 '논어, 학자들의 수다'에서 보충하며 읽다보면, 역동적이었던 공자학단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졌다. 지금 읽고 있는 '도올 논어' 속에서 자구들을 읽으며,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의 해설을 함께 공부하는 것도 의미가 있었으나, 파편화된 조각들을 배우는 듯한 인상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공자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통해서 '논어'의 구절들을 이해하니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공자의 궤적이 보다 명확해졌다.

 

  2. 논어를 통해서 한국사 읽기

  이덕일은 한국사와 관련된 수많은 서적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하기에 한국사 전공자로서의 장점을 놓치지 않고 '논어'의 구절과 관련된 한국사와 관계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이들 인물들은 이덕일이 평소 많이 언급했던 인물들이었다. 나름, 논어를 통해서 한국사,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보통은 유교 망국론에 휩싸여 조선 왕조가 망한 것은 공자의 유교 혹은 성리학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공자를 싫어하고, 공자가 죽어야 조선이 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덕일은 '공자는 실제 모습과는 달리 사대부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시대가 그에게 정치에서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주지 않았으나, 역사는 그의 뜻을 기억한다. 또한, 그의 제자들은 공자가 죽자, 3년 상복을 입었다. 공자를 부모의 예로 대한 것이다. 공자의 제자 자공은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 여막을 짓고 6년 동안 시묘살이를 한다. 그는 참스승이었고, 동아시아의 스승이었다.

 

  3. 공자는 노나라 사람인가? 은나라사람인가? 동이족인가?

  이덕일은 대중강연에서 '공자가 동이족인 것은 알지요? 논어에 그렇게 씌여 있어요'라는 말을 한다. 이 책에서도 '은나라 순임금은 동이족'이다, 공자는 '동이를 뜻하는 구이 땅에 가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라고 하면서, 은나라는 동이족이고, 공자는 은나라 사람임을 강조했기에 공자는 우리 민족이다라는 늬앙스의 말을 하고 있다. 과연 진실을 무엇일까? 우리의 상식에서 벗어난 이덕일의 주장을 어디까지 믿어야할까? 남만, 북적, 서융, 동이는 중국 하나라를 중심으로 주변의 이민족을 오랑캐로 낮추어 부르는 용어이다. 중국이 점점 확장하면서 이전에 오랑캐였던 지역이 중국의 역사속으로 편입되게 된다. 그러하기에 과거 오랑캐라고 불렸던 지역도 중화에 속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 동이라고 불렸기에 우리와 관련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아닌가? 중국의 역사서에 '동이열전'에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중국의 동쪽에 있는 다양한 민족이 적혀있다. 그중에서 '일본'도 있다. 이점을 이덕일은 명심해야할 것이다.

 

  고전을 읽으면서 놀라운 점은 몇천년 전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감탄과 교훈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논어를 원문과 함께 읽어내려가기 시작한 것이 2년여 되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논어 관련 책들도 더불어 읽고 있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는 '논어'의 씨줄과 날줄 처럼 논어를 다양한 각도에서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논어를 통해서 인간 공자를 탐구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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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2 - 효종에서 고종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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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 독살 사건1'을 읽고, 2권을 읽어 내려갔다. 흡입력있는 이덕일의 글은 너무도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물론, 효종과 관련된 내용은, 이덕일이 쓴 '조선 왕을 말하다2'에서 읽었던 내용이고, 현종은 '윤휴와 침묵의 제국'과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경종은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정조는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에서 이미 읽었던 내용들이다. 이미 아는 내용이기에 그냥 술술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1. 독살 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왕들

  2권에서 독살이 확실시 되는 왕은 '고종'이다. 고종은 이태진 교수도 독살되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책에서는 인용되지 않고 있으나, 친일파 윤치호의 읽기에서도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전언을 싣고 있다. 사도세자의 후예들은 독살이라기 보다는 모함에 의해서 죽어간 사도세자의 후손들이다.

  경종은 독살 되었을 것으로 짐작은 되나 단언은 하기 힘들어 보인다. 목호룡의 고변에서 볼 수 있듯이 경종은 그가 살아있을 때부터 신변의 위협을 받아왔다. 그리고 영조는 자신이 경종을 죽이지 않았다고 끊임없이 주장해왔던 것도 경종 독살설을 반증해주는 사실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2. 독살되었다고 단정하기에 애매한 왕들

  이덕일은 효종과 현종, 정조도 독살되었다고 단언을 한다. 물론 효종의 경우, 손을 떠는 신가귀를 시켜 침을 놓게한 점, 현종의 경우 갑작스런 복통을 한점, 정조의 경우 노론이 그를 죽이려 끊임없이 노력한 점 등을 본다면 독살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인 근거가 부족한 상황 속에서 독살되었다고 단언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효종의 경우 단순한 의료 사고로 볼 수도 있으며, 현종의 경우는 그 동안 잠재되었던 지병이 분노로 인해서 죽음으로 그를 몰았을 가능성도 있다. 정조의 경우는, 등에 난 종기가 울화병과 상승작용을 일으켜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가능성도 있다.

 

3. 독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왕들.

  효명세자는 독살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덕일도 명확한 독살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며, 각혈을 했다는 말은 폐병을 앓고 있었다는 증거이기에 독살로 단정하는 것은 많은 무리가 있다. 지난 겨울에 창덕궁에 답사를 갔다. 그때 효명세자가 살았던 전각을 보았다. 정오였는데도 그늘이 지었고 유난히 추운 장소였다. 이런 장소에서 오랫 동안 살았다는 것은 스스로 병을 키웠다는 증거이다. 습하고 추운곳은 사람이 살곳이 아니다. 폐병을 유발 시키기에 너무도 좋은 장소이다. 효명세자는 정조를 본받기 위해서 정조가 있었던 주합루에 가까운 곳이 집을 짓고 살았으나, 오히려 그의 몸을 상하게 하여 정조 곁에 빨리가는 불운을 얻었다.

 

  조선의 왕들에 대해서 독살설이 높아지는 것은 그들이 더 살았다면 우리 역사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이리라... 특히 정조의 죽음은 우리에게 많은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 그래서 정조가 10년만 더 오래 살았다면 어떠했을까? 정조는 독살된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 아쉬움에 이 책을 다시한번 들추어 본다.

 

ps. 이덕일의 책을 많이 읽다보니, 책의 내용이 너무도 많이 곁친다. 알고 있는 내용을 제목과 약간의 주제만 변경하여 다시읽는 느낌이다. 이제는 이덕일의 책을 고를 때는 내가 읽었던 시대와 겹치지 않도록 책을 선정해야겠다.

  이 책을 읽으며, 세도정치기에도 강직한 신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러한 시대에도 강직한 인물이 있었다는 것이 하나의 위안이 된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후 침묵이 너무 지나쳐 정령 등 사무를 일체 아래 신하에게 일임하시고, 장주(상소)와 품계(아뢰는 것)에 모두 '윤(허락함)'자로 판하하시며, 가부에 대하여 재결하시는 분부가 전혀 없으시니, 이해의 구분과 공사의 구별이 저젉로 권병(권력자)에게 돌아갔습니다. 뇌문(뇌물을 받는 문)이 크게 열려 뇌물이 공공연히 거래되어서 관직 하나, 과거 하나도 족당이 아니고 거실이 아니면 뇌물로 사는 것이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순조실록, 19년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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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 독살사건 1 - 문종에서 소현세자까지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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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에 계신 교수분들이 조선시대를 강의하다가 '어느 작가는 조선시대 대부분의 왕들이 독살된 것 처럼 주장해서, 조선을 독살왕국 처럼 묘사 한다.'라는 말을 하곤한다. 여기서 '어느 작가'는 바로 이덕일을 지칭한다. 인터넷에서는 이덕일을 '독살중독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덕일의 책을 많이 읽어왔지만, 이덕일이 2005년 발간하여 초판 90쇄를 찍었으며, 개정증보판을 여전히 15쇄 이상을 찍어내고 있는 스태디 셀러 '조선 왕 독살사건'을 미처 읽지 못했다. 이덕일의 꼬리표가 되어 따라다니는 조선왕 독살설들을 이제는 밀도 있게 읽어보고 싶었다. 이제 그 1권을 살펴보자.

 

1. 독살 의혹이 제기된 7명의 왕들

   1권에서 다루고 있는 왕은 7명이다. 이중에서 소현세자의 경우는 독살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선조의 경우는 이덕일이 유일하게 독살설을 부정하고 있다. 역사 추리소설을 읽는 듯한 밀도있는 구성과 박진감은 이책의 커다란 매력이다.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가서 3시간 동안 줄을 서는 동안 1권을 읽어내려갔다. 금새 한권을 다 읽었을 정도로 상당히 재미있는 책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제기하고 있는 주장은 타당할까?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소현세자의 경우는 독살 되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에서 이덕일의 주장을 수긍할 수 있다. 단종의 경우도 사육신 사건 처럼 단종 복위운동이 계속 일어나는 상황에서 집권세력들이 단중을 죽였을 가능성에 깊은 공감이 된다. 그러나 문종과 예종, 인종의 경우는 독살의 가능성은 있지만, 독살이라고 단정지어서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독살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독살되었을 개연성만을 가지고 독살설을 주장하는 것은, 도둑을 잡으려다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들이는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이덕일의 주장에 100% 공감하기는 어렵다. 연산군의 경우는 독살되었다고 생각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못난 임금 인조가 광해군을 죽이지 않았듯이, 왕은 왕을 죽이지 않는다. 특히 권력에서 밀려나 실권이 없는 경우는 죽이기는 것 보다는 살려두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특히 연산군의 경우는 못난 왕으로서 반정이 일어났을 때, 어느 누구도 연산군의 편을 들지 않았다. 반란을 일으키기에는 너무도 못난 왕이었기에 궂이 그를 죽일 이유는 없다.

 

2. 역사 대중화에 새로운 지평을 열다.

  이덕일은 분명, 다양한 문학서적과 추리소설들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그의 책을 읽다보면, 많은 문학적 표현과 극적 구성이 돋보인다. 특히 이 책 '조선왕 독살사건'에서는 그만의 탁월한 역사추리 기법이 돋보였다. 역사를 이렇게 문학작품처럼 서술할 수 있고, 추리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덕일 만의 글재주를 보면 볼 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덕일을 따라 다니는 또하나의 꼴표는 다작이다. 많은 역사 책들을 이렇게 잘 써내려갈 수 있는 비결을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다. '다작'의 비밀 중에 하나는 역사적 사실을 다양한 주제로 중복해서 서술하는 방법이 있다. 이 책에서 서술된 문종 독살 설은 이미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 편에서 접했으며, 예종을 비롯한 연산군은 '조선의 왕을 논하다.'라는 책에서 이미 접해본 내용들이다. 그밖의 왕들도 이덕일의 다양한 책들에서 한번은 다루었던 인물들이다. 그러하기에 이전에 읽었던 적이 있었던 것처럼 흐릿하게 머릿속에서 그 내용이 떠오를 때가 자주 있었다.

 

  역사는 끊임 없이 재해석 될 때, 생명력을 갖는다. 이덕일은 기존의 우리역사를 그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끊임 없이 재해석 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의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앞으로 이덕일이 어떠한 책을 내놓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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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 - 우리 시에 비친 현대 철학의 풍경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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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유독 시를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물론 성우가 낭독해주는 시는 나의 가슴을 울렸던 적이 많았지만, 내가 직접 시를 읽고 이를 풀어내지는 못했다. 난해한 파편 조각을 어디서부터 맞추어야할지 길을 잃어버리기를 수차례.... 철학도 마찬가지이다. 대학에서 철학 개론 수업을 들으며 내가 배운 것은 철학은 어렵다는 사실이다. 마치 수학을 배우며 수학이 어렵고 지겹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처럼... 그런데 이 책은 그 난해한 시를 어려운 철학으로 쉽게 풀어내려 도전하고 있다. 물론 강신주이기에 믿고 책을 꺼내들었다. 무모해보이는 이 도전을 강신주는 어떻게 즐겁게 풀어냈을까?

 

1. 철학하는 시인 시를 읽는 철학자!

  과거! 나는 시인들은 그저 문학서적만을 읽고, 사회과학서적이나 철학서적을 읽지 않는 것으로 오해했다. 추상화를 그리듯이 난해한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들을 이해하려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인들은 온몸으로 사회를 느끼고, 니체를 비롯한 철학서적을 읽으며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스스로 넓히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시들은 서양의 많은 철학자들의 이론을 동원하여 풀이해 볼 때, 보다 그 심도 깊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첫장의 시를 읽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강신주가 설명해주는 철학자의 이론을 음미하고는 다시 첫장으로 돌아가 시를 읽어보았다. 이제서야 시속에 담긴 철학이 이해되었으며, 철학을 통해서 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나의 시에 이렇게 깊은 철학이 숨어있었을 줄이야.....

 

2. 한국 사유의 논리

  강신주의 철학강의를 많이 듣다보면, 강신주는 장자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서양의 철학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단지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장자를 읽었을 뿐인가?라는 생각을 여러번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도 생각난다. 우리의 철학자들이 서양의 철학자의 이론을 소개할 뿐 자신의 철학이 없다는 뉘앙스의 말을 했을 때, 지식수입상 수준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고민을 우리의 담론으로 풀어내는 철학자가 나와주기를 기대했다.

  강신주는 마지막 21번째 시를 김준태의 '길'로 택했다. 마치 우리 한국철학의 길을 찾는 듯이... 이를 풀어내는 철학자는 유일하게 한국의 철학자 '박동환'이다. 동양의 장자도, 서양의 니체도 아닌, 한국의 박동환을 통해서 한국적 사유의 길을 찾으려 시도해본 것이다. 지식의 수입국에서 지식의 창조국으로서의 길을 우리가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강신주는 마지막 21번째 장에서 찾고 있다.

 

  시를 읽는 방법이 어디 철학이라는 길을 통해서만이겠는가?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시를 읽을 수도 있으리라! 이 책은 철학을 통해서 시라는 세계로 침잠해갈 수 있도록 나를 도왔다. 그래서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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