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치 겐조, 한국사를 유린하다 - 을미사변에 가담한 낭인에서 식민사학의 선봉장으로
하지연 지음 / 서해문집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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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쿠치 겐조'!! 들어본 기억이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는 명성황후를 죽인 범인중에 한인물이며, 이후 왜곡된 근현대의 역사관을 만든 아마추어 식민사학자였다. 한국 고대사가 일제에 의해서 많이 왜곡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의 근대사가 왜곡된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과연! 기쿠치 겐조는 우리 역사를 어떻게 왜곡했을까?

 

1. 명성황후를 모독하다!!

  명성황후(明成皇后)는 그 호칭부터 논란이다!! 그녀를 어떻게 불러야할까? 한때 '민비'라고 불렀다가 친일파로 몰리는 상황이 맹렬했는데, 이제는 교과서에도 '민비'라고 당당히(?) 쓰고 있다. 이 책은 이점부터 지적하고 들어간다. 왕비가 살아있을 때는 '중전' 혹은 '곤전'으로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든다면 정희왕후 윤씨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민비'라는 용어처럼 성씨에 왕비를 뜻하는 '비'자를 붙여부르는 것은 일본식의 표현이다. '매천야록'에 '민왕후, '중전민씨'라는 용어를 사용하듯이, '민비'라는 용어는 자제해야한다. '명성황후'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추증한 것으로 그녀가 왕비로 살아있을 때 사용하는 역사용어로는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래서 '명성왕후'라고 적기도한다. 그러나 이때는 숙종의 어머니이자, 현종의 비인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와 혼란을 일으킬 수 있기에, '명성왕후(明成王后)'라고 한자를 병기하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이책의 내용은 '민비'라는 용어가 과연 적당한지에 대해서 끊임없는 논란이 벌어지는 현실에서 참으로 명쾌한 현답이다.(9P)

  명성황후에 대한 또다른 논란은 '에조 보고서'의 '국부검사'라는 부분을 두고 어떻게 해석하는가이다. 김진명이라는 소설가는 이 부분을 근거로 일제는 명성황후를 '시간' 즉, 시체를 강간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를 두둔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이를 두고 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과연 명성황후는 시간을 당했을까? 이에 반대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당시 5시 30분에서 6시 사이에 시해를 당했기 때문에 동이 트고 있었기에 시간이 매우 촉박했다. 또한 '국불 검사'는 그녀가 너무 젊어 보였기에 과연 명성황후인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 아랫도리를 벗겼다고 설명한다. 아랫도리를 벗기면 그녀가 명성황후인지 알수 있었을까? 출산여부를 확인하려 벗겼다는 것이다. 출산의 흔적을 찾는다면 그녀가 명성황후라 장담할 수있다는 주장이다. 이책의 저자는 여기에 당시 회고록과 증언에 시간을 했다는 주장은 없으며, 이시즈카 에조는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하지 않았고 풍문을 듣고 이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점을 추가했다. 그러면서 '심지어 한국 학자들조차 일본의 차담한 왕후 살해의 본질을 망각하고 그 죽음을 이야깃거리로 희화화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고 안타깝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과연 '시간'은 없었던 일일까? 이시즈카 에조가 을미사변에 참가했다면 오히려 이 '시간'사건을 밝히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숨겼을 것이다. 일본인이 그가 이 사건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그 진실을 보고서에 담을 수 있었던 것은아닐까?

  구시다 신사에는 명문이 적힌 칼이있다. 일순전광자노호(一瞬電光刺老狐) 즉, 일순간에 전광석화처럼 늙은 여우를 찔렀다는 명문이다. 어떤이는 일본 신사에 이칼을 바친 것은, 가쓰아키가 자신의 일을 후회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바쳤다고 주장한다. 이는 털끝만큼도 진실이 아니다. 일본 낭인들은 추호도 반성하지 않았다. 본국에 송환되면서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자신들의 일을 '애국'이라고 강변했다. 더욱이 기쿠치 겐조는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왜곡된 역사서를 써서 이를 유포하지 않았는가?

  낭인들은 명성황후의 몸만 도륙한 것이 아니다. 그녀가 죽자 그녀의 영혼도 도륙했다. 특히 이책의 주인공인 기쿠치 겐조는 '조선 왕국', '대원군전' 등의 많은 역사책을 써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가 을미사변의 참가자였기에, 아마추어 역사가의 소설은 역사로 쉽게 둔갑했다. 명성황후를 권력욕의 화신으로 묘사하고 미신과 무당의 정치를 한 희대의 악녀로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유산은 지금도 계속 살아있다.

 

2. 흥선 대원군을 범인으로 매도하다.

  명성황후 시해에 대원군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는가를 역사선생님들과 토론했었던 적이 있다. 나보다 경력이 많은 선생님이 강력하게 일본낭인과 대원군이 같이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흥선대원군도 공범이라 주장했다. 나는 그것이 일제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했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대립 속에서 벌어진 일로 일제는 흥선대원군을 도와주었을 뿐이라는 주장은 일본의 만행을 숨겨주는 주장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후 내가 노스차이나 헤롤드지의 내용을 근거로 나의 주장이 옳음을 주장했다. 그 선생님은 결국 나의 주장에 굴복했지만, 그 후에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자신을 식민사학에 젖어있다고 비난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여튼,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이 사이에서 일본이 대원군을 도와주었다는 주장은 이 책에서 기쿠치 겐조가 '대원군전'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내용이었음이 적혀있었다. 나의 주장에 근거가 보강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흥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은 지금의 사극에서도 단골로 사용하는 극적장치다. 일제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일은 너무도 멀다. 픽션 '대원군전'을 사극이라는 픽션이 재생산하고 있는 현실이 슬프기만하다.

  기쿠치 겐조의 '대원군전'은 기초적 사실도 틀리고 역사왜곡의 강도도 심하다. 이 책에 소개되어있는 일부내용을 적어보자.

 

  왕비는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대원군은 일본과의 수교에 격분해 양주에서 덕산으로 갔고, 다시 석파 산장으로 돌아와 번민의 나날을 보냈다. 그는 울분 끝에 폭약이 장치된 선물함을 민승호 집으로 보내 민승호 부자를 살해했다.

 

민승호 일가의 폭사사건은 1874년 11월 28일에 일어났는데, 기쿠치는 이 사건이 강화도 조약(1876년)에 격분해서 대원군이 일으켰다고 서술하고 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엉망이다. 이러한 책이 식민사관을 확대재생산하는 근원이었다.

  대원군은 경복궁으로 끌려가면서 명성황후 시해 계획을 몰랐을까? 그것은 모른다. 그가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일제가 대원군을 그 현장에 끌고 왔으며, 그를 명성황후 시해 주범으로 몰아버리려 계획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것이 진실이다.

 

3. '나무 인형이 된 무능한 고종'을 만들다.

  기쿠치 겐조는 고종을 어려서는 흥선 대원군의 호통소리에 기를 못펴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아내의 등쌀에 기를 펴지 못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임오군란시기 명성황후가 청나라 군대를 요청했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청병요청을 명성황후가 할 수는 없었다. 명성황후 '피란일지'를 보면 그녀는 몸이 아파서 자신의 몸을 돌보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고종이 요청한 것도 아니다. 청의 필요에 의해서 파병된 것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내부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서 왜세를 끌여들였다는 주장은 기쿠치 겐조가 '대원군 전'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식민사학의 뿌리가 이렇게 깊었다.

  무능한 왕궁의 나무인형 '고종'!! 이라는 기쿠치 겐조의 묘사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그려져있다. 기쿠치 겐조의 위력이 오늘날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고종', '명성황후', '흥선 대원군'의 진모습을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태진 교수의 '고종시대의 재평가'를 100% 받아들이는 것이 식민사학을 극복하는 길일까? 대한제국의 멸망에 그들은 일말의 책임이 없었을까? 일제 식민사학을 극복하자는 대원칙에는 동조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수는 없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기쿠치 겐조가 픽션에 넌픽션을 가미해 역사를 서술했기에 픽션과 넌픽션을 구분하기가 힘들다. 그리고 이것은 사극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되었기에 나의 머리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그 진실을 찾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같다.

 

4. 잡상

  503호 국정논단 사건으로 한때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들 회자되었다. 그 진령군을 괴대 확대해서 명성황후를 무당을 믿는 혼군으로 묘사한 것이 기쿠치 겐조였다. 하지만,  '매천야록'에도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이는 기쿠치 겐조의 글과 일면 비슷하다. 그렇다면 기쿠치 겐조는 당시의 풍문에다가 자신의 상상력을 더해서 '진령군과 명성황후' 이야기를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무당을 궁궐에 끌여들이고 무당이 힘을 발휘한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기쿠치 겐조의 주장을 무조건 무시할수도 없다. 저자 하지연은 '진령군과 명성황후'에 대해서도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분명히 밝혀 주었어야했다. 단지 과당되게 서술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면 나와같이 혼란한 사람이 더 늘어날 것이다.

   기쿠치 겐조는 '악정의 책임이 경상도에 있으며, 전라도는 폭도의 고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를 읽으면서 지금의 지역감정의 원형을 보는듯하다. 현대에 독재정권들이 표를 많이 받기 위해서 조장한 지역감정의 뿌리가 일제 식민사학에 있었다는 생각이든다. 일제 강점기 훈도였던자가 정치인이되어 이를 확대 한 측면은 없었을까?

 

  이 책은 논문을 대중서로 풀어 놓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도 잘 읽히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이 때 다산선생의 글쓰기 방법이 생각났다 다양한 예화를 들어 실감나게 서술하는 방법! 그러나 하지연은 이 방법을 유려하게 사용하지 못했다. 딱딱한 글쓰기에 익숙해서 대중적인 글쓰기를 잘해내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을미사변과 왜곡된 근대사를 바로 보려는 사람에게는 좋은 지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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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 지식경영법 - 전방위적 지식인 정약용의 치학治學 전략
정민 지음 / 김영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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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 정약용! 500권의 저술을 남긴 천재라고 많은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중학교 시절, 역사선생님은 그를 '아마데우스'의 모짜르트에 비교하며 자신은 이런 천재에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열정은 있으데 능력이 바춰주지 않는 쌀리에르에게 연민을 느낀다고 했다. 그당시 정약용은 천재적인 능력 덕분에 실학을 집대성할 수 있었다고 알게 되었다. 과연 그럴까? 정약용은 천재이기에 500여권의 저서를 남길 수 있었을까? 그 명쾌한 해답을 들어보자.

 

  1. 그의 공부법에는 어떠한 비결이 있었을까?

  문심혜두! 지혜의 구멍이열리지 않는다면 만권의 책을 독파한다한들 않읽은 것과 같다!라는 다산의 지적은 나의 폐부를 찔렀다. 정독보다는 다독을 추구하는 나였기에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그책을 잡고 언제까지나 고민하지 않았다. 재빨리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며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이해를 제대로 할 때만이 진실로 그 책을 읽는 보람이 있다! 다산의 지적은 나의 독서법을 반성케했다.

  그의 독서법(저술법)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자신이 책을 읽다가 새롭게 깨달은 점을 메모해둔다는 것이다. 이를 한데 모았다가 분류를 지어 책으로 묶어낸다. 메모의 중요성을 일찍이 들었지만, 귀차니즘과 그 실효성에 의문을 품었기에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산의 500여권 저술의 힘이 바로 이 메모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나도 실천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 책부터 메모를 시작했다. 서평을 쓰는 지금 이 메모가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불취하문(不恥下問)이라 했다.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수취로 알지 말라는 공자님의 말씀을 다산이 실천하고 있었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주인 노파에게서 배운 일화는 너무도 감동적이었다. 남존여비 사상에 매몰되어 있는 당시 조선의 선비들에게 노파는 여자를 차별하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리고는 "아버지는 씨앗이고 어머니는 땅인 셈이지요. 씨를 뿌려 땅에 떨어 뜨리는 것은 크게 힘든 일이 아니지만, 땅이 양분을 주어 기르는 일은 그 공이 몹시 큽니다."라며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다. 그러자 다산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우리나라 페미니즘의 선구라고 할만한 노파의말에 다산이 진심으로 감복한 것이다. 남자보다 비천하다는 여성에게 다산이 여성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이렇듯 다산은 어느 누구와도 토론하고 싶어했다. '어린 시절 티격태격하던 것 처럼 싸워보자'라는 다산의 편지글은 지금의 '하브루타' 학습법을 떠올리게 만든다. 토론수업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지금! 유대인 교육의 핵심인 '하브루타'를 다산은 이미 하고 있었다. 그 전통을 우리는 왜? 잃어버렸을까?

  다산은 귀양지에서 '과골삼천'의 모습을 보였다. 책을 읽고 저술하느라 복사뼈 살이 세번이나 구멍이 났다. 그정도로 공부에 매진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선 자리를 사랑했다. 일상득취법! 그것은 귀양지 생활을 이겨낸 힘이었다. 나무를 심고 연꽃을 연못에 기르며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다산초당을 만들었다. 얹혀살고 있는 다산은 자신의 집처럼 초당을 꾸미고 주인처럼 살고 있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머무르는 곳마다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이다!라는 임제스님의 말을 그가 실천하고 있었다. 좌절과 실의에 빠지기 보다는 지금의 현실속에서 주인이 되어 당당히 자신의 학문세계를 닦아가는 그의 태도가 그의 진정한 공부법의 비결이었다.

 

2. 다산에게 대한 오해와 편견

  다산은 잘알려져 있지만, 너무 잘알려져 있기에 그에 대해서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 중에는 편견으로 가득한 사실들도 많다. 다산이 '기기도설'을 보고 거중기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잘알려져있다. 일부 사람들은 거중기가 특별할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미 '기기도설'에 나와 있기에 그걸 그대로 재현했을 뿐이라고 다산을 깎아내린다. 그러나 다산은 거중기를 재현한 것이 아니다. '기기도설'의 원리를 이용하여 조선의 현실에 맞게 전혀 다른 거중기를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다산의 위대성이다. 핵심원리를 취득하여 제2의 창조를 하는 모습 그것을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어떤 사람은 정약용이 주자를 비판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그를 성리학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역사를 좀 안다는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할때, 나는 별로 반박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이 오해였다. 주자 절대주의에 빠져있는 교조적 조선사회에서 주자를 비판한다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신의 죽음을 부를 수 있는 현실에서 대놓고 주자를 비판할 수 없다. 그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주자의 학설을 비판했다. '인'에 대한 입장이 주자와 달랐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의 시대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얇은 지식으로 다산을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산에 대한 많은 오해와 편견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다산이 혼자서 500여권의 책을 저술했다는 점과 그에게는 제자가 없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다산에 대해서 너무도 무지한 소치였다. 다산은 그의 저술에 아들들의 힘을 빌리기도 했으며, 직접 외가쪽의 아이들을 모아다가 가르쳤고 그들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자 자신의 저술작업에 참여시켰다.

  이들 제자중에서 황상이라는 제자가 그의 수제자라 할 수 있다. 황상과의 첫만남은 참으로 인상 깊다. 황상이 자신은 둔하고 앞뒤가 막혀있으며 답답한 성격이라고 말하며 문사를 공부하라는 다산의 권유에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산은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다. 네게는 그 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진단다."라는 말로 황상을 감복시켜 학문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황상은 다산이 죽어서도 그를 잊지 않는다.

  그뿐이아니다. 18년 동안 날마다 저술만 하다보니 복사뼈가 세번이나 구멍이 나는 모습을 보여주어 황상을 감복시키기도 했다. '과골삼천'의 모습!! 이를 보고 학문을 게을리할 제자가 있었을까?

  다산의 저작은 다산학단의 집체 활동의 결과물이다. 다산은 저술의 총 기획자였고 제자들은 자료를 모으고 발췌했으며 이를 편집했다. 그러면서 이들 제자들의 학문수준도 높아졌다. 황상을 비롯한 이청, 이강회 등의 제자들이 많은 저작을 남겼다. 이 부분은 앞으로 더 많은 연구와 자료의 발굴이 필요하다. 다산이 다시 등용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그의 제자들의 학문적 업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 부분이 다시 세상에 제대로 알려질 때! 다산의 위대성은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아니라, 누구든지 노력하면 따라갈 수 있는 길임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것이다.

 

3. 조선 중화법!!

 다산은 중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앞선 것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것을 근본으로 삼는다. 바로 조선 중화법이다. 그렇다고 우리것을 고수하지는 않는다. 변화를 두려워하기 보다는 변화를 추구한다. 이것이 다산의 학문정신이다. 개방적이면 주체성이 없고, 주체적이면 자기것을 고수하여 타국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산은 이 극단을 취하지 않고 뿌리를 조선에 두지만, 외부의 장점을 받아들여 변화를 추구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다산에게서 배워야할 학문하는 모습이다.

  순수와 참여의 논쟁이 있었다. 어찌보면 대가들의 논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현실을 직면할 용기없는 작가들의 변명에 지나지 않는 논쟁이라 생각된다. 현실을 떠난 문학이 문할일 수 있을까? 다산은 당시 조선 사회를 고발하는 다양한 문학 작품을 남겼다. '애절양'을 비롯해서 수많은 시들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조선의 민초들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다. 그 결과 '목민심서', '흠흠심서'와 같은 대작들이 나온 것이다. 잊지 말자! 현실에 뿌리밖지 않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단지 말장난일 뿐이다.

 

4. 잡상

  다산은 글쓰기 방법도 알려준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인물을 드러낼 때는 반드시 예화를 들라고 한다. 이것은 이덕일의 글쓰기와 정확히 맥이 닿아있다. 이덕일의 평전과 타인물의 평전의 가장 큰 차이점은 한인물에 대한 막연한 왜침만을 부르짖는 평전들과 달리, 이덕일은 다양한 예화를 통해서 그 인물을 드러낸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을 다산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지기췌마법' 즉, 기미를 분별하고 미루어 헤아려라라는 다산의 말을 통해서, 그가 혹시 한비자를 읽은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기미를 제대로 헤아리라는 말은 한비자에 있는 내용이다.  무오년(1798) 겨울에 돌림병이 서쪽 길을 따라 퍼졌다. 나이든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그는 황해도 배천의 강서사에 가서 화문석을 사오게 했다. '칙사'가 오는 것도 아닌데 왜? 화문석을 사오게했을까? 얼마후, '황제가 붕어하여 칙사가 왔다.' 그는 서쪽에서 온 돌림병에 노인들이 죽어나가자, 나이가 80이 넘은 황제가 무사할리 없다고 판단하고, 칙사가 올 것을 예상하고 화문석을 가져오라고 했던 것이다. 기미를 살펴 앞으로의 일에 대비한다는 한비자의 당부를 다산은 실천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탁월한 재판관으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가만을 공부했다면 보일 수없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가 다양한 학문을 섭렵하며 그 바탕을 마련했을 것이라 상상해본다.

 

  오래보아야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보아야 제대로 알 수 있다. 다산에 대해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를 평가하는 사람들이 범하는 우를 이 책을 통해서 바로잡게 되었다. 다산은 천재이기 보다는 노력하는 학자였다. 혼자 공부하기 보다는 여러 사람이 팀을 이루어 집단 연구를 통해서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노련한 기획자였다. 그의 모습을 바로 바라보면 우리가 어떠한 교육과 학문연구를 해야하는지 방향이 보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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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다상담 3 - 소비·가면·늙음·꿈·종교와 죽음 편 강신주의 다상담 3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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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의 다상담3'은 1,2권과는 달리 5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이다. 1,2권이 비교적 잘읽히는, 어쩌면 그저그런 주제가 더러 있었다면, 이번 3권은 강신주도 마주하는 것이 버거워보이는 엄청난 내공의 질문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강신주는 자신의 탄탄한 철학적 자신을 바탕으로 강한 사자후를 토해냈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맨얼굴과 직면하라고 다그친다. 내담자는 이러한 강신주의 사자후가 괴로울 수 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사자후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자본주의는 보편적 매춘의 시대이다.

  강신주의 강의를 들을 때, 그는 자본주의를 싫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본주의의 매커니즘 속에서 철학의 상품성을 높인 대표적인 주자가 아닌가? 너무도 아이러니컬한 모습이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그가, 가장 자본주의에 잘 적은한 사람이라니.... 자신의 노동력을 가장 비싼 값에 팔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나, 자신의 몸을 팔려는 매춘부는 비슷한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 강신주! 그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직면하고, 인간의 사랑을 되찾으라고 울부짖는다. 지름신이 강림하는 것은, 자신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존재를 찾이 못했기 때문이다. 강신주는 '사랑'을 강조한다. 다른 대중강연에서도 인간은 사랑을 하기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어쩌면 자본주의의 폭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우리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사랑'일 것이다.

 

2. 가면을 벗고 자신과 직면하라.

  '벌거벗은 신체에 하나의 무위진인이 있어서 항상 그대들의 얼굴에 출입하고 있다. 아직도 이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거듭 살펴보아라.'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무엇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 스님이 그 스님의 멱살을 밪고 말했다. '말해보아라! 말해보아라!' 임제 선사는 그를 밀치며 할했다. '무위진인, 이것이 무슨 마른 똥 막대기냐?' 그러고는 임제 선사는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참다운 사람이 되라고 말하자, 제자는 그 무위진인을 또다른 권위로 삼으려 했고 임제스님은 그것을 깨주려한 것이다. 강신주는 상담을 하면서 자신이 맨얼굴이라고 주장하는 사라들의 그 '맨얼굴'이라는 가면을 벗겨주려 사자후를 토했다. 마치 제자의 멱살을 잡는 임제스님처럼...  과연 우리는 그 가면을 벗을 수 있을까?

 

3. 사랑을 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자의 죽음도 감당해야한다.

  강신주가 조카의 죽음으로 고통받는 어머니와 딸을 상담한 것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그 모녀는 조카만 잃은 것이 아니다. 반려동물도 잃었다. 그리고 강신주는 말한다. '네가 어머니를 사랑한다면, 어머니보다 오래살아서 어머니를 땅에 묻어드리고, 무덤에 꽃을 놓아드려야한다.' 그렇다. 사랑하는 자를 떠나보낸자의 슬픔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그러하기에 사랑하는 자는 자신의 애인보다 먼저죽을 수 없다. 그 고통까지 감당해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이다. 화려한 꽃만 보려하지 말고, 그 꽃이 떨어지는 것도 감내해야 그 꽃을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다. 강신주의 이 사자후는 나의 가슴속 깊이 박혔다.

 

  강신주의 '다상담'을 '벙커1'에서 이미 2년여전에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자난후에 이를 활자로 다시읽으니 새삼 새로운 깨달음이 밀려온다. 이것이 강의와 책읽기의 다른 점인 것 같다. 특히 이번 '강신주의 다상담3'권은 더 많은 울림을 준다. 강신주의 다상담 시리즈 중에서 이번 3권을 백미로 꼽고 싶다. 철학적 감수성으로 우리의 삶을 날카롭게 직면하게 해주는 강신주의 모습을 다시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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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미래 - 총.달러 그 이후... 제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지배하는가?
에이미 추아 지음, 이순희 옮김 / 비아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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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국의 매래' 얼마나 웅장한 제목인가? 에이미 추아는 이민 2세대로 성공한 중국계 미국인이다. 그녀가 미국에게 묻고 있다.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은 지속될 수 있닌가? 그녀는 고대의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에서부터 로마, 당나라와 몽골, 근대 유럽의 여러 강대국을 거쳐서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앙한 제국들이 초강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전략적 관용'이라는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다.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이 국방비와 군사력, 경제력을 중심으로 강대국의 흥망을 설명했다면, 그녀는 '관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강대국의 요건을 살펴보고 있다.

 

1.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도덕경에 나와 있는 말이다. 그릇은 비움으로써 그 가치가 있다. 받으려면 먼저 주어라! 어쩌면 너무도 감상적인 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세계사의 다양한 초강대국의 역사를 통해서 '전략적인 관용'을 택했던 나라들은 번영했고, 그 번영을 구가하던 나라들이 관용을 포기할 때, 그 강대국은 삽시간에 사라졌다고 갈파하고 있다. 그러면서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 관용'을 포기하지 않고 이를 지속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만일 미국이 건국 이후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제국을 건설하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다면, 몇 년이 지난 후에도 세계의 (중략)

기회, 역동성, 도덕성을 갖춘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트럼프가 집권한 지금 미국은 과연 과거 미국이 성공에 성공을 거듭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재발견하고 있는가? 트럼프를 당선시키고, 나치깃발을 들고 거리에 나오는 네오나치들을 보면서 미국의 어두운 미래가 깃들지는 않을까? 불안함이 엄습해온다.

 

2. 강한 접착제가 필요하다.

에이미 추아는 관용만으로 초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용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을 아니다. 또한 관용만으로는 제국의 해체를 막을 수 없다. 알렉산드로서의 침공으로 삽시간에 망했던 아케메내스조 페르시아를 예로들면서 제국을 묶을 수 있는 강한 접착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보통, 작은 민족국가는 민족주의가 접착제가 되어주지만, 다양한 민족이 뒤섞여있는 미국은 무엇이 강한 접착제가 되어 줄 수 있을까? 기독교와 앵글로 색슨은 접착제가 될 수 없다. 민주주의 가치가 그것이 되어줄 수 있을까? 이것은 미국이 풀어야할 숙제이다.

  중국은 어떠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문명의 붕괴'에서 중국의 환경파괴를 위협요소로 지적하며, 중국이 과연 계속 발전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에이미 추아는 중국의 한족이라는 개념이 중국 내의 다양한 종족을 통합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는 양날의 칼이다. 동남아시아의 비한족들이 중국인이 된다거나, 백인이 중국인이 되는 것에는 중국인들은 긍정적 대답을 하지 않는다. 중화제국주의를 추구하며 팽창하는 중국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가지지 않았으며, 대외적으로 전략적 관용을 실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것이 중국의 한계이다.

 

  오랜만에 너무도 좋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띄인것 같다. 지금까지 읽었던 거시사의 책들이 디딤돌이 되고,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가 대들보가 되어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거시적 안목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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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사 - 색안경을 벗고 보는 일본, 중국, 타이완, 홍콩 이야기 반전이 있는 역사 시리즈
권재원 지음 / 다른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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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시아에 대한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이책을 서가에서 빼들었다. 청소년용 책들 중에서 상당수는 책의 내용이 너무 쉽거나 오류가 있는 책들이 꾀있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걱정하고 있었던 것들을 확인히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과연 이 책의 제목처럼 이 책에 대한 나의 선입견을 반전시켜 줄 수 있는 책이었을까?

 

1. 작지만 알찬 책!

  이책은 약 200페이지 정도였다. 얇은 책에 많은 거을 담지는 못할 것이다. 이책은 이부분을 잘 활용했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니, 무엇을 담아야하는지 깊게 고민했던 것이다. 일본은 고대사와 중세사를 중심으로 서술했으며, 중국은 청나라 이후의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다루었다. 우리 역사교육의 맹점을 정확히 집은 것이다. 막연히 일본은 우리가 문화를 전파해준 나라 정도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에게 일본의 역사가 꽤 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중국근현대사에 대해서 무지한 우리를 위해서 중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서술했다.

  타이완과 홍통은 가까이 있지만, 교과서에서 거의 다루지 않고 있기에 가깝지만 알고 있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이들과 관련된 역사서적을 얻고 싶지만, 여행서적인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간파하고, 기초내용부터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k1을 보면 상대와 열심히 싸워고도 KO를 시키지 못하는 선수가 있다. 상대방의 약점을 공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싸우는 선수는 상대방의 급소를 한방에 공격해서 KO를 시키다. 이 책은 우리의 약점을 정밀공격했다. 이 점이 이책을 작지만 알찬 책으로 만들었다.

 

2. 반전은 있었다.

  이책의 곳곳에 반전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너무도 가깝기에 선입견에 싸여있던 동아시아의 여러나라들의 역사를 하나씩 해부하며 선입견을 벗겨냈다.

  보통 우리의 근대화가 실패한 것을 흥선대원군의 통상수교거부정책을 돌린다. 흥선대원군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근대화에 성공했을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서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일본이 개항하기 이전에 에도 막부 시대의 일본은 청나라에 버금가는 발전을 이루었으며, 에도의 인구는 이미 100만 명을 넘어섰다. 당시 조선의 한양인구는 20만이있다. 이미 섬나라 왜놈이라고 비하하던 일본은 조선을 추월하고 있었다. 너무도 단편적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우리에게 뼈아픈 일침을 가하고 있다.

  중국편에서는 일제를 패망시킨 것은 중국의 노력이 상당했음을 강조하고, 중국의 국가 조직 서열을 설명했다. 이들 설명보다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중국이 세계를 이끄는 선두국가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문명의 붕괴'라는 책에서 재레미 다이아몬드 박사는 중국이 내부적으로 부닥치는 환경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저자는 저임금에 기반한 중국경제의 한계를 지적하고,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문제를 걸림돌로 지적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중국의 민주화 달성여부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곌르 이끌어가는 나라는 경제력과 군사력 뿐만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모범적이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연환경을 중요한 문명의 운명을 가르는 요소로 본 재레드 다이아몬드 박사의 견해와 달리 저자는 '민주화'를 세계를 주도할 국가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다. 어느 것이 중국에게 더 중요한 과제일까?

  타이완은 작지만 큰 섬이라 강조하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그리워하는 타이완인이 있다는 사실은 익히 할고 있다. 우리의 역사에 비추어 타이완을 이해했다가는 낭패라는 말이다. 부르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라는 책에, '대만에서는 말로해도 되는 것이 조선에서는 강압적으로 해야됐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조선인의 일제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에 대비되는 타인완인의 순응적인 모습을 표현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타이완인들이 일제에 저항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강렬하게 저항했던 타이완의 역사를 서술하고, 가장 강압적인 독재가 이뤄졌던 나라중에 하나였던 타이완이 어떻게 아시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가 되었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 과정속에서 '중화민국'인가 '타인완인'인가를 두고 갈등하는 타이완의 현재모습을 설명해주고 있다. 너무나도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있고, 그 속에서 심각하게 굴절된 타이완은 많은 상처를 간직하고 있었다. 상처입은 조개가 그 상처를 치유하려 몸부림 치며 진주를 만들듯이, 타이완의 민주주의는 그 고통의 산물이었다. 과연 타이완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팟캐스트 '그것은 알기 싫다.'를 통해서 홍콩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것을 알고 있다. 라고 자부하고 있었다. 홍콩의 민주주의는 영국이 홍콩을 중국에 반환할 것을 대비해서 이뤄진 조치라고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나에게, 홍콩의 민주주의는 홍콩인들의 끈질긴 투쟁의 결과라 지적하고 있다. 아시아의 진주는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홍콩의 자유가 중국과 영국의 이해관계의 산물이기도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2047년까지 일국양재라는 원칙을 지키기로 약속한 중국! 그 중국이 이를 지킬 것인가?가 우리의 초미의 관심이다. 과연 중국은 그 약속을 지킬 것인가? 불안한 예측이 밀려온다.

 

  이 책은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반전이 있는 동아시아역사를 우리에게 설명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이들나라들을 여행할 때 주의할 점을 짧막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대만은 '깔끔한 중국', '물가가 싼 일본'이라던지, 일본에서 우리말고 욕설하지 말라던지, 중국에서는 골동품을 함부로 구입했다가는 사형에 처해질수 있고, 하얀봉투를 불길하다고 여기다던지, 홍콩에서는 지하철에서 물도 마시면 안된다는 이야기이다. 정말 깨알같이 재미있는 반전들이 책속에 듬뿍 담겨있다. 동아시아에 대해서 알고 싶은 사람과 동아시아에 대해서 잘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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