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
정애리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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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책과 함께 떠나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챙기지 않는 나만의 친구하나를 챙려들었다. 바로 책이다. 팟캐스트 '빨간약 퍼스트 클래스'의 김경집 교수의 제안데로,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싶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여행과 함께할 수 있는 책을 골랐다. 물론, 여행지가 제주도이니, 제주도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면 더 없이 좋겠지만, 가족과 가벼운 여행이니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보니, 정애리의 '축복'을 꺼내들었다. 여행의 틈틈이 읽는 책의 맛을 한번 보자.

 

1. 여행 첫날, 책장을 넘기며 출발!!

  정애리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주말드라마 '사랑과 진실' 속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그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정애리의 모습이 정지된 동영상처럼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연기자로서, 한아이의 어머니로서, 한남자의 아내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틈틈이 생활속의 여러 장면들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이들 책장을 넘기며 나의 여행의 장면들을 함께 추억의 책속에 기억하자.

  2018년 1월 8일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런, 비가오는 날씨에 항공기 연결관계로 30분정도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단다. 비행기 출발지연은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니 '단비 내리던 날'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단비가 내리자, 정애리 작가는 환호성을 터트린다. 지금 내리는 겨울비도 단비일까? 지금은 단비가 아니겠지만, 이 비가 올해 농사에 쓰일물이 되겠기에, 멀리보면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가 세상의 때를 씼고, 생명의 물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을 기다리던 사이 책장을 살펴봤다. '닭둘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는 전염병을 옮기는 새가되어 우리에게 골치덩이가 되었다. 닭이된 비둘기! 닭처럼 된 비둘기! 별다른 노력 없이 먹이를 얻으려는 비둘기는 피둥피둥 살이 찐다. 서슴없이 더러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애리는 닭둘기 처럼 되지 말자고 되뇌인다. 이 시대에는 많은 달둘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한때, 닭둘기를 많이들 좋아했고, 그들이 세상을 닭둘기의 놀이터를 만드는데 허수아비처럼 방관만 했다. 닭둘기가 싸놓은 똥들을 지금 우리가 치우면서 다시는 닭둘기가 되지도 말고, 닭둘기가 우리에게 굴림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503호는 잘있을까?

  제주공항에 들러, 렌터카를 빌려 숙소로 갔다. 제주도 여행을 유행가 가사처럼 외치고 다녔던 딸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제주의 음식은 정말 일품이었다. 입이 짧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우리 딸들이 밥한그릇을 뚝딱해치웠다.

 

2. 여행 둘째날, 비바람 뒤에 오는 것

  제주도 2일차! 강풍주의보가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올해 최고란다. 제주도를 3다도라 했던가! 돌많고 바람 많고, 여자가 많은 곳! 과연 제주도는 바람이 매섭도록 많은 섬이었다. 아침을 먹고, 책장을 폈다. 가족들에 비해서 나의 식사 속도가 빠르다보니, 아침 식사시간은 나의 독서시간이기도 했다. 

  '비바람 뒤에 오는 것'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고요가 밀려오듯, 바람 잦은 뒤에는 반드시 열매 맺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정애리는 말하고 있다. 그래, 이 바람이 지나가면 평온이 올까? 이번 여행의 안전을 기도하며 제주도 여행의 일정을 시작했다.  

  제주도 여행지를 고를 때,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짜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집안의 권력자께서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곳은 역사유적지를 넣자고 타협했다. 오늘 그래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가게 되었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었던가? 4.3의 비극은 아직도 제주인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화 '지슬'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4.3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4.3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서 사삼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생생하게 4.3을 나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4.3평화기념관을 관람하며, 우리가족에게 4.3을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4.3 평화기념관을 관람을 마치고 아내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오늘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도록한다. 

  다음 코스는 아쿠아 플라리넷이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아쿠아리움을 관람했던 나에게는 별로 새롭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 딸들은 너무도 즐거운 곳이었다. 물개쑈를 보면서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아빠는 어째서 잠을 잘 수 있느냐는 딸들의 핀잔이 들려왔다. '아빠는 재미있는 것 싫어해요?' 라는 막내의 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플라리넷에서 점심을 먹고, 김녕미로공원에 갔다. 미로속을 헤매며 길을 찾았고, 종을 울렸다. 미로공원의 가게에 들렀다. 일년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엽서를 보내겠다고 딸들은 부산을 떨었고, 나는 주인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눴다. 제주도의 바람이 평소에도 이런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올해 최고로 강한 바람이라고 아주머니는 대답해주었다. 충청도 출신이신 아주머니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왔고, 제주도의 생활이 좋다 하신다.

  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해서 또 들른 것이다.

 

3. 여행 3일차, 멈추지 않는 것이 없기를 바라며...

  새벽부터 눈빨이 휘날리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창밖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창밖의 눈빨은 맹렬한 기세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며 땅에 부딪쳤다. 오랜만에 온 제주 여행인데, 맹렬한 눈빨때문에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펼치자 '멈추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비바람이 분다고 하여 지금 내 시간이 힘들다고 하여 움츠러들지는 마세요.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비는 그치고 지금의 고단함이 추억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라는 정애리의 글을 읽으며, 무슨 분노가 그리도 많은지 맹렬히 제주도 곳곳으로 내리치는 눈빨도 멈출까? 라는 생각을 했다.                                               

  3일차는 항몽 유적지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20분이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를 설득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대로 된 발굴 조사도 하지 않고 복원을 해놓는 바람에 많은 사실들을 땅속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간직한 항몽 유적지!! 고려인의 자주성을 간직한 마지막 대몽항전이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권력쟁탈전에서 패배한 자들의 발악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외세에 맞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역사적 사실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 항몽유적지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들의 의도는 우리가 추측할 수밖에 없으나, 그들의 숭고한 행동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만했다.

  다음 코스인 유리의 성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눈빨이 맹렬히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고가 났는지, 정체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재빨리 근처의 '그리스 신화 박물관'으로 경로를 바꾸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 연수도 들으면서 제법 상식을 키웠는데, 신들의 이름은 언제나 했갈렸다. 제법 재미있는 박물과 답사를 마치고 차에 와서 시동을 켜고 가족을 기다렸는데, 앗뿔싸! 사건이 터졌다. 우리 호기심 박사님께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분수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단다. 재빨리 차에 태워, 젖은 바지를 벗도록 했다. 아내의 내복을 입도록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기념품 매점에 가서 웃옷 한벌을 샀다. 어른 옷을 입으니, 원피스를 입은 것 처럼 보였다. '유리의 성' 박물과 앞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식당주인의 배려로 슬리퍼를 빌려 신고, 신발에 휴지를 넣어 물기를 뺐다. 밥은 맛이었지만, 밥맛을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양말을 신기고, 양말안에 휴지를 넣었다. 식당주인에게 비닐봉지 2개를 얻어 비닐봉지를 신고 젖은 털부츠를 신도록 했다. 호기심 박사님은 이제  춥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유리의 성에 가고 싶다고 날리를 부린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서 유리의 성을 향했다. 다들 즐거워했지만, 난 추운 날씨 때문에 관람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4시정도에 관람을 마치고 또한곳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날씨가 심상치 않고, 호기심 박사님의 상태로 봐서 더 이상 무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숙소로 귀환을 결정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눈빨이 맹렬히 차창을 때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린 눈빨이 앞차를 놓아주지 않아, 트럭이 비끄러졌다. 자동차 체인도 하지 않고 거북이 걸음으로 운전을 했는데, 커다란 정체가 연속되었다. 중앙선을 넘어온 사고 차량을 경찰이 조사하는 장면도 보였다. 저녁을 먹으며 오늘 사고없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감사했다.  

  다시 책장을 넘겼다. '빛을 보라고 어둠이 있는 거예요'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빛만 있다면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빛을 잘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한다. 마치 환한 도시에서는 별빛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가로등 조차 없는 시골에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총총히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통 빛은 희망을 상징하고, 어둠은 절망을 상징한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항상 '희망'이라는 북극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길을 헤치고 숙소에 도착한 것도 희망이라는 빛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4. 여행 4일차. 소금으로 살 것을 다짐해요.

  텔레비젼이 날리가 났다. 어제부터 중산간 도로가 통제되었으며, 일부 도로에서는 스노우 체인을 한 트럭만 운행을 허용한단다. 어렵게 제주도에 온가족이 왔는데 이 여행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엉금 엉금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잠수함 체험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찌하나?하는 근심도 마음 한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복잡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욕심 때문에'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비워 두세요. 욕심만 내버려도 당신이 훌씬 아름다워질 거에요.'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욕심을 버리자! 여행이라는 욕심을 비우자. 그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래, 예정된 여행지를 버리고,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허름한 곳이었다. 그러나, 전국대회 대상을 받은 한지 공예작품을 비롯해서,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 박물관장님의 가야금 병창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박물관장님은 영화 '지슬'에서 아버지 역을 맡기도 했단다. 나에게 4.3 평화기념관에 갔다 왔느냐고 묻고, 1층의 도서관도 열어 보여주었다. 내부의 인테리어만 잘하면 꾀 알찬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받은 도서관이었다.

  제주에 와서 반드시 먹어야할 것이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께서 주장하시어, 맛집을 찾아 헤맸다. 회맛이 육지에서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는데, 권력자께서는 맛있다고 연신 찬탄을 한다. 딸들은 맛있다고 몇점 먹더니 이내 먹지 않았고, 나는 굴복음밥을 시켜 딸들에게 나눠주었다. 딸들과 나는 회보다는 굴복음밥이 더 맛있었다. 그러나 우리 권력자님께서는 회가 맛있다며, 회를 다드시고는 매운탕도 먹어야하는데 배불러서 못먹는다고 한탄을 하신다. 책장을 펴들었다. '가짜 말고 진짜'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으로 살기를 다짐해요. 자기를 다 버리고 녹아내려야 맛을 내는 소금처럼 살다 가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그래, 소금처럼, 자신이 바다물속에 녹아들어가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녹아들어가 가족에게 평화를 주어야겠다. 권력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줘야겠다.

  점심을 먹고나니 눈빨이 너무도 맹렬히 대지를 향해 치닫았다. 숙소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했으나, 역사유적지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삼성혈이나 관덕정 정도는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덕정을 검색하니, 바로 코앞이었다. 권력자님의 눈치를 보며, 가자고 했다. 겨우 관덕정에 들러 제주도의 통치가 행해지던 그곳에서 과거의 제주를 만났다. 눈보라가 치는 관덕정과 제주목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너무도 추웠다.

  숙소에 와서 뉴스를 들으니, 비행기가 연착되고, 4천여명의 승객들이 발이 묶였단다. 내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을까?

 

5. 5일차, 여행을 마치며,

  아침부터 뉴스를 살폈다. 최대규모의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며, 온통 제주 공항의 모습으로 뉴스가 도배되었다. 빨리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가서 사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이참에 일주일 더 제주도에 있자며, 권력자님과 딸들은 기뻐하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책을 폈다. '살은 셀프입니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물만 셀프가 아니다. 삶도 셀프이다. 오늘 여행의 이 난관을 헤처나갈 사람도 나다. 셀프다.

 급히 퇴실을 하고, 자동차의 눈을 치웠다. 스노우 체인도 하지 않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더니, 렌터카 직원이 놀란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가 지연되기는 했어도, 오늘 출발한단다. 간신히 이륙해서, 청주공항에 도착하니, 앗뿔싸!! 공항 주차장에 주차시켰던 차가 방전되었다. 보험회사를 불렀으나, 감감무소식!! 옆차는 벌써 보험회사가 왔는데, 싸다고 가입했던 보험사가 서비스도 역시 싼 값을 하나보다. 그래도 옆차의 보험회사 분들이 마음이 좋아서, 나에게 무료로 시동을 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가 보다.

 

  여행은 이렇게 마쳤다. 정애리도 이책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전 세계, 수백 명의 내 자식들다 불러 모아 놓고 꿈결 같은 환갑잔치 할 거예요' 라는 말에는 '아름다운 여인, 정애리'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을 실처하면서 열심히 사는 정애리! 그녀는 누구에게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것일까? 사랑을 줄 수있기에 그녀는 축복받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행복한 제주의 여행을 '축복'과 함께한 것도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우리 모두 '축복'을 받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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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13 1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행이 축복으로 시작해서 축복으로 마무리되었군요. 제주도를 무사히 탈출하셔서 다행입니다. ^^

강나루 2018-01-13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주에서 노숙할뻔 했어요^&^
이것도 추억이 되네요^&^
 
교양으로 읽는 뇌과학
이케가야 유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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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아들 부시'가 대통령이 되고 잘한 것이 있다면, 뇌과학에 많은 투자를 했다는 점이다. ADHD알고 있는 부시는 그의 부인과 참모들이 있기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미국의 대통령으로 재임할 수 있었다. 그도 아마 자신에게 어떠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ADHD가 보이는 충동적이고 과잉행동적인 모습이 아마도 뇌 과학을 발전시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그가 갖게 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부시행정부 시기 연구가 시작되어, 그로부터 10년후부터 뇌과학의 성과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육학과 심리학, 그리고 일반 사람들의 대화에서도 뇌과학적 지식은 첨단을 걷는 세련된 지식이 되었다.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서 뇌과학을 접하기도 했지만, 이제 책을 통해서 깊이 있는 뇌과학 지식을 얻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뇌과학자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 내용이라면 나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확신을 갖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1. 유발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의 흔적

  유발하라리는 그의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고귀할 수 있는 '의식'과 '자유의지'에 대해서 부정될 수도 있다는 내용의 서술을 했다. 현대과학의 발전된 최신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물음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선명하게 기억되는 유발 하라리의 '인간의 자유 의지'에 대한 회의적인 글은, 과학의 발전이 때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주었다.

  이 책에도 '호모 데우스'에서 제기했던 질문을 우리에게 다시 던진다. 전기 자극을 통해서 쥐를 무선으로 마음데로 움직인다. 책찍과 당근으로 쥐를 유인한 것이이다. 단지 전기자극으로 쥐를 움직인다면, 쥐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쥐의 자유의지마져도 전기자극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그 결과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는가? 쾌락을 주는 전기자극을 이겨낼 수 있는 인간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우리의 뇌는 자유의지에 따라서 생각하고 몸을 움직일까? 실험결과는 충격적이다. 운동전령이 움직이고 난 이후, 1초후에 '움직이자'라는 의식이 나타난다. 자유의지는 잠재의식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세계에 지배받는다고 말했듯이, 어쩌면 무의식이 '운동전령'을 움직이고, 그에 따라서 의식의 세계의 자아가 스스로의 행동을 주체적이라 하면서 행동하는 것은 아닐까?

  여기에서 한발자국 더 나가보자. 상대방의 의지를 데이터화 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만약 특정 사람이, 인간의 의지를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변할까? 상대방의 기분을 데이타를 통해서 알 수 있다면, 그 시대는 행복한 시기일까? 만약 인공지능이나 사업주가 데이터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눈으로 본다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까? 디스토피아가 될까?

  유발하라리와 이책의 저자, 이케가야 유지가 말하고 있듯이, 인간의 진화는 이제 멈추었다. 그대신 인류는 '환경'을 진화시킨다. 의족에서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발명품들은 환경을 진화시키는 전형적인 예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이, 환경을 진화시킨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은 신이되겠지. 그럼, 극대화된 환경의 진화, 그리고 호모 데우스가 된 인류, 그들에게 행복이 찾아올까? 유발 하라리의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질문이 다시 샘솟는다.  

 

2. 뇌과학에서 만나는 동양고전

  심오한 각각의 학문의 결국은 한곳에서 만난다는 말이있다. 어느 학문이나 심오하게 깊이 사유하고 연구하면 그 진리는 한곳에서 만난다는 이말을 뇌과학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가. 당신은 같은 물에 두번 발을 담글 수 있을까?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Heracleitos, BC 544?--484?) "당신은 같은 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연은 시시각각 생셩 변화한다. 물은 흐르고, 물도 변화하니, 방금 전에 내가 담갔던 물이 바로 그 물일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이말을 뇌과학 책을 읽으면서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무슨 말일까?

  인간의 기억은 완벽해선 안된다. 인간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가 아니라, 완벽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하등동물일 수록 오히려 기억이 완벽한데 반해서 인간은 기억이 완벽해서는 안된다니 무슨 말일까? 인간은 기억이 모호하기 때문에 다양한 기억들 중에서 공통요소를 추출해서 기억한다. 그러하기에 더 많은 사실을 보다 효율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애매한 기억 때문에 글자를 읽고, 어제만난 사람을 오늘 알아 볼 수 있다. 우리가 쓰는 글자도 글자 폰트 및 서체에 따라, 각자의 개성에 따라 수 많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글자를 읽는다. 그것은 우리 기억이 애매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어제 만난 사람은 오늘 머리모양이 변화했고, 옷을 갈아입었고, 어제보다 늙었지만, 우리는 어제 만난 사람을 애매하게 기억하고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의 공통요소를 파악해서 오늘의 그를 어제의 그로 알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만물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만물을 모두 완벽하게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비효율적이다. 인간의 애매한 기억은 이러한 만물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효율성을 주었다. 도덕경 11장에 "

바퀴살이 하나의 바퀴통에 모여 있는데, 그 바퀴통 속의 비어 있음으로 인해 쓸모 있는 것이요, 그릇도 비어있음으로 쓸모가 있는 것이다. 집을 질 때에도 빈 공간이 있어 방안의 쓰임새가 생기는 것이니 쓸모 있음은 비어 있음에서 오는 것이다.(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爲器, 當其無, 有器之用. 鑿戶牖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라했다. 우리의 뇌와 눈은 그 비어있음으로 세상을 보다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 일체 유심조, 만물은 뇌에서 만든 것!

 일체유심조라는  ‘만일 사람들이 삼세일체불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이 모두가 마음의 짓는 바에 달려있음을 보라’는 화엄경에서 나온 말이다. 깃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요. 깃발이 바람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다. 나의 마음이 깃발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다. 불교의 이 화두가 뇌과학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우리 인간의 신체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눈은 100만 화소정도로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나 우리는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왜? 그럴 수 있을까? 그것은 뇌에서 100만 화소의 세상을 선명한 세상으로 보정처리했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는 맹점이 있다. 어느 거리가 되면 보지 못하는 지점!! 그런데 우리 눈의 이 결점을 우리의 뇌는 수정보완하여 선명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사실은 우리의 뇌에서 수정보완된 세상이다.

  인간은 빨강과 파랑, 초록밖에 볼 수 없다. 시신경이 이것 밖에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외선을 본다면 세상은 엄청달라져 보일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가 엄청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잠자리가 보는 세상과, 박쥐가 보는 세상은 우리가 보는 세상과 무척 달라져보인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뇌에 의해서 재창조된 세상이다. 빛의 3원색인 빨강 파랑 초록으로 세상의 색을 창조하고, 자외선을 보지 않았기에, 건물뒤의 세상을 보지 않도록 했다. 절대적인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뇌가 창조한 세상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각각의 존재들마다 다를 수 있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그 마음은 뇌에서 만든 것이다.

 

다. 정신과 육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중요할까?

  종교적으로 심취한 친구가 있다. 육체는 존재했다 사라지지만, 영혼은 불멸한다. 유한한 육체보다 영원한 영혼의 안정을 추구해야한다. 라는 주장을 하며, 종교에 심취한 친구다. 그런데, 과연 정신과 육체 중에서 정신(영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육체는 학대해도 되는 것일까? 고대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Juvenal)는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Orandum est ut sit means sana in corpore sano)"라는 말을 했다. 어찌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겠는가? 뇌과학 이야기를 하는데 왜? 갑자기 유베날리스의 말을 할까?

  마음은 뇌가 만든 것이다. 몸이 없으면 뇌도 없다. 즉, 몸과 마음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뇌과학에서 말하고 있다. 건전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 건전한 뇌와 건전한 마음의 조화는 필 수 이다. 정신과 육체, 마음과 뇌의 관계는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뇌 지도'는 뇌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정하는 것이다. 손가락이 4개인 사람에게는 5번째 손가락에 대응하는 장소가 뇌에는 없다 그런데, 붙어버린 4번째 손가락을 4번째 손가락과 5번째 손가락으로 분리하는 수술을 하면, 5번째 손가락에 대응하는 장소가 뇌에서 생성된다. 몸이 변하면 뇌가 변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인간은 너무 과잉되게 진화하였고, 이 과잉 진화된 뇌는 환경이 변화할 때 대응할 수 있는 여유분이기도 하다. 우리의 뇌는 손발이 열개여도 충분히 콘트롤 가능할 정도로 과잉 진화되었다. 수두증에 걸린 사람이 보통사람의 1/10 정도의 뇌로 보통의 일상을 무리없이 살아간예는 우리 뇌가 얼마나 몸이나 환경에 따라 '자기 조직적'인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의 몸이 변화하거나 환경이 변화하면 우리의 몸은 자신의 조직과 능력을 변화하면서 세상에 대응할 것이다. 이것이 정신과 육체, 몸과 뇌의 역동적인 상호의존성을 확인케힌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들고, 건전한 정신에 건전한 육체가 담겨야 한다.

 

라. 불립문자! 인간은 언어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선불교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이 있다. 문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문자가 지니고 있는 형식과 틀에 집착하거나 빠지지 않는다는 표현이다. 선불교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족쇄, 언어의 한계를 일찍이 깨닫고 이를 뛰어 넘는 수행방법을 모색해 온 것이다.

  이책에서도 인간은 언어의 노예라고 말한다. 인간이 연상하는 단어는, 자유롭게 연상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어에 속박되어 있다. 이시대의 지성 촘스키는 "언어를 알면 그 나라나 사회의 구조와 체계를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언어의 노예이며, 이를 벗어나기 힘듬을 언어학자와 뇌과학자가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언어의 노예를 탈피하기 위해서 선불교에서는 '불립문자'를 수행의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다.

 

마.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다.

  서양의 철학은 쪼개고 쪼깨면서 분석한다(환원주의). 그러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에 4원소설 등의 다양한 학설들이 이러한 관점에서 전개되었으며, 근대 서양과학의 발전에 '환원주의'가 일조했음은 널리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복잡계를 예로든다. 인간은 개인일 때와 집단일때 행동이 전혀다르다. 물고기 한마리 한마리를 연구하여 몇백마리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없다. 물고기 무리의 경향성을 파악해야만 그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 전체를 파악하지 않고 쪼개기만하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 뇌과학은 전체를 보라고 말하고 있다.

 

 

  뇌와 컴퓨터의 차이를 아는가? 소프트웨어가 변한다고 하드웨어가 변하지 않는다. 컴퓨터의 하드웨어는 절대 변하지 않는데, 그러나, 우리의 뇌는 외부세계에 열려있다. 몸이나 정보가 달라지면 뇌의 구조와 기능은 달라진다. 외부에 열려있는 것! 그 유연성이 인간뇌의 생명력을 결정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달리말하면, 외부세계에 대한 유연성을 잃게 되면 그 뇌는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제가 공부하며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뇌를 유연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과학지식의 나열만을 하는 수준의 책이아니다. 철학과 과학을 넘나들도록 우리를 안내해주며, 끊임 없이 새로워지라고 책찍질 하고 있다(일일신 우일신 (日日新 又日新) ). 새로워지고 생명력을 잃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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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30 05: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18-01-30 06:00   좋아요 1 | URL
어렵지만 그래도 끌리는 분야가 뇌과학 이에요
감이불취 라는 말이있어요 느끼지만 취하지않는다 책을 읽지만 책의 모든 내용을 머리속에 넣으려 하지 말자구요 저도 읽고나면 많이 잊어버려요^^

2018-01-30 06: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 정의를 위한 처절한 2인의 전쟁 국민 90%가 모르는 이야기
이동형 지음 / 왕의서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이동형!! 팟캐스트 '이이제이', '문희정의 라이벌'에서 막말을 해대며 즐거운 한국사 여행을 안내했던 작가! 그 작가의 책을 만나고 싶었다. 이동형의 대표작이라면 '김대중 VS 김영삼'이 아닐까? '이이제이'를 들을 때마다 광고가 많이 나와서 한번 읽어 보고 싶어하던 책이다. 이동형이 바라본 한국현대사는 한홍구 교수가 바라보는 한국현대사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가? 책속을 들어가보자.

 

1. 따라잡기 힘든 인터넷 필법

  한홍구 교수의 '유신'이라는 책을 읽다가, '마봉춘'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것이 무슨 뜻인지 인터넷에서 찾았던 기억이 난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MBC를 '마봉춘'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을 한홍구 교수가 '유신'이라는 책에 사용한 것임을 알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이동형은 'ㅎ ㄷ ㄷ', '멍미'라는 표현을 비롯한 인터넷 용어를 무차별하게 사용한다. '멍미'는 '머니?'라는 뜻인 것으로 해석되는데, 'ㅎㄷㄷ'는 무슨 뜻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다. 잦은 괄호의 사용은 읽는 흐름을 끊어버린다. 보통 글쓰기 책에는 괄호나 주는 되도록 줄이도록 당부한다. 그런데 이동형 작가의 책에는 괄호가 난무한다. "(구린 냄새가 나는데?)"라는 표현의 경우, 문장에 녹여서 충분히 쓸 수 있는 글을 굳이 괄호를 써서 표현한 이유를 모르겠다.

  비문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예로 "유신을 만들고"라는 표현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은 "유신헌법을 만들고"라고 적어야한다.

  이동형의 인터넷 필법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책읽기 초반부에는 무척이나 거슬리는 표현들이 많았다. 팟캐스트에서 하던 표현들을 그대로 책으로 옮겨 놓은 듯했고, 이것은 정제된 표현들을 읽어오던 나로서는 무척이나 어색하면서도 불편한 표현들이다.

 

2.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오류들

  이동형 작가의 글에는 심심치 오류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몇가지 예만 들어보자. 첫째, 장덕수는 독립운동가일까? 이동형 작가는 21쪽에서 장덕수를 독립운동가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과연 장덕수가 독립운동가 일까? 그가 여운형을 도와 독립운동을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초반에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변절한 사람을 우리는 독립운동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들을 '변절자'라고 부른다. 보통의 변절자들이 그렇듯이, 장덕수도 30년대 부터 친일을 하기 시작한다.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時局對應全鮮思想報國聯盟)의 간부가 되었으며, 1939년에는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에 가입했다. 1941년에는 일제 침략전쟁의 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과 이사, 1945년에는 국민의용대 조선총사령부 지도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이런 친일행위를 한자를 그의 초반부 삶만 뚝떼어서 독립운동가라는 표현을 써도 될까?

  둘째, 장준하는 2000킬로미터의 길을 혈혈단신 걸어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찾아갔을까? 아니다. 장준하선생의 회고록 '돌배개'를 보면 약50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임시정부를 찾아간다. 그 동지들 중에는 김준엽도 있었다. 장준하 선생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다가 벌어진 표현상의 오류로 보기에는 세밀함이 낮아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한가지더 지적하자, 박정희를 비판할때는 이동형 작가가 현역군인이 아니었기에 벌어진 우수은 표현도 있다. "오버로크도 마르기전'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오버로크가 잉크인가? 오버로크는 이름표를 미싱으로 박을때 쓰는 표현이다. 오버로크를 잉크라고 잘못 알고 "오버로크도 마르기"전이라는 표현을 쓰는 오버는 하지 않기 바란다.

  셋째, 우리나라에 정권교체가 없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땅의 지배세력이 한번도 바뀐적이 없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물론,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문학가들이 상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현실을 강하게 비판할때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지만, 역사가가 혹은 역사책에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이다. 역사는 엄밀성이 뒤따라야한다. 530쪽에서 '단군이 이나라를 건국한 이래 단 한번의 정권교체가 없었던 땅"이라고 적고 있지만, 이기백교수의 한국사신론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제2공화국 시기에 정권이 한번 교체된 것을 떠올린다면, 한번도 정권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표현이 틀린 표현이란 사실은 모두 알 것이다.

  넷째, '6.3사태'라는 표현은 옳은 표현일까?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부른다면 여러분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판단하시겠는가? '5.18 민주화 운동'이라는 표현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시민의 입장에서 정당하게 평가한 용어라면, '광주사태'라는 표현은 전두환 세력을 비롯한 한국의 보수세력들이 민주화운동을 깎아내리기 위한 표현이다. 마찬가지이다.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에 대항한 '6.3 항쟁'을 '6.3사태'라고 표현한다면, 이는 굴욕적인 한일국교정상화를 찬성하는 입장의 사람들의 망언이라고 밖에 달리 생각할 수없다. 공자의 정명사상을 말하지 않더라도, 역사에서 정확한 용어의 사용이 중요함은 어린아이조차 잘 알것이다.

  이러한 오류들은 그가 작가이지 역사가가 아니기에 벌어진 오류들로 보인다. 한홍구의 글쓰기와 이동형의 글쓰기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동형의 글쓰기에 단점만이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3. 역사의 뒷이야기를 알게된 쏠쏠한 재미

   이 책을 읽으며 역사의 뒷이야기를 새롭게 알게 된 재미가 무척 쏠쏠하다. 그 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역사의 파편들을 짜맞추고, 작가의 분석을 더하면서 새로운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김대중이 김영삼 처럼 귀국하지 않고, 해외에 머물렀던 것은 김대중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과거 그러한 비난을 종종들었고, 이에 대해서 일면 수긍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영삼이 당당히 귀국하여 가택연금을 받으면서, 그는 반유신투쟁을 전혀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서 김대중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반유신 투쟁을 전개한다.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된 계기가 바로 이시기 그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벌인 반유신 투쟁 때문이다. 김영삼은 유시민의 표현처럼 협객의 멋있는 모습을 보였으나 실리를 취하지 못했다. 그에 반해서 영리한 김대중은 비겁해보이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해외에서 효과적으로 반유신투쟁을 했다. 박정희에게 김영삼 보다 김대중이 더 미워보였던 이유를 알만하다.

  둘째, 서석재가 술김에 터트린 노태우 비자금은 진정 실수였을까? 김영삼이 전두환과 노태우의 12.12를 역사의 심판에 맞기자며 처벌하지 않다가, 갑자기 노태우 비자금 문제가 터지자, 역사바로세우기라는 대의 앞에 그들을 감옥에 보냈다. 김영삼은 왜? 돌변했을까? 매끄러운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다. 이동형은 나름의 분석으로 항간에 떠돌았던 이야기를 소개한다. 그것이 김영삼의 일련의 기획이라는 내용이다.(자세한 것은 책을 읽어 보시라- 이동형 작가가 많이 쓰는 괄호를 한번 흉내내봤다.) 노태우 비자금 증거를 국회에서 제시해서 일약 스타가된 박계동이 끝내 한나라당으로 간 것도 이동형의 설명을 듣고보면, 이해가 무척 쉬웠다.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다. 그사람에게 이미 그러한 싹이 자라고 있었다.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했을 뿐이다.

  셋째, 김대중은 정계 은퇴를 하고 왜? 번복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 욕심 때문이라 말한다. 물론 대통령 욕심이 없는 정치인이 있을까? 그것말고 다른 이유는 없을까? 이동형은 한겨레신문 이터뷰를 근거로 제시하며, 김영삼의 박대가 김대중의 복귀를 재촉했다고 주장한다. 대학강연을 하려해도, 그 무엇을 하려해도 방해하고 감시하니, 김대중은 무척이나 분노했고 이것이 그의 복귀를 재촉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변수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아울러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탔을 때, '노벨상의 가치가 떨어졌다.'라는 말을 한 김영삼의 도량과 컴플랙스를 학실히 알게 됐다. 김영삼이 김대중을 품을 줄 알았다면 우리 현대사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넷째, 정인숙의 사채를 영구보존했다.? 사실일까? 청와대에 있는 거물의 아이를 낳았다는 말을 하고 돌아다니다가 변사체로 발견된 정인숙을 아는가? 독제세력의 추악한 사생활을 우리에게 알려준 사건!! 그런데 이책에는 정인숙에 대한 야사가 한가지 더 적혀있다. 정인숙의 사체 일부분이 영구 보존되어 연수과정 교보재로 활용된다는 말이다. 정말 충격적인 설이다. 과연 사실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일제강점기 일본놈들이 '명월'이의 생식기를 영구보존한 것을 혜문스님이 소송을 걸어 화장을 한 사건이 있다. 아마도 '명월'이의 생식기가 정인숙으로 와전되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신체 일부분을 교보재로 사용한 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친다.

 

  책장을 덮고 생각해 보았다. 한국사의 모든 사료가 사라진다면 이책은 어떠한 평가를 받을까? 아마도 대한민국의 '삼국유사'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함께 소중한 역사서로 평가 받는다. 때로는 삼국사기에서 볼 수 없는 신화와 전설, 역사적 사실을 전해준다. 이동형이 쓴 '김대중VS김영삼' 또한 한홍구가 전해주지 못한 역사의 뒷이야기를 우리에게 재미있게 전해주고 있다. 확실히 재미는 있다. 즐겁게 한국 현대사를 산책하고 싶은 독자라만 일독을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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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01 22: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ㄷㄷ‘이 ‘후덜덜‘을 뜻해요. 책에 신조어나 인터넷 은어가 많은 걸로 봐서는 DJ, YS의 관계를 잘 모르는 젊은 독자들을 겨낭한 것 같습니다. 시도는 좋은데 인터넷 용어를 모르는 중년 독자들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어요.

강나루 2018-01-01 23:12   좋아요 1 | URL
그렇구나 감사합니다

2018-01-02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2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8-01-02 19: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2018년 되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8-01-0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영계 교수의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이야기 - 철학자가 쉽게 풀어쓴 교양인을 위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강영계 지음 / 해냄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역사를 공부하면 세상의 진리를 다 알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사를 탐구해도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세상의 진리를 얻기 위해서 철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되었다. 철학은 인간의 이상을 탐구하는 학문이기에 세상의 진리를 알려줄 것 같았다. 그러나 철학은 철학하라 나에게 말하고는 진리를 말해주지 않았다.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해서 먼저 알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철학사에서도 중요시 여긴다는 사실이다. 데카르트의 '이성'중심의 근대의 세계관을 프로이트는 과감하게 전폭시켰다. 즉, 프로이트는 무의식, 은폐된 충동이 정신과정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그의 주장은 인간은 이성적 존재라는 관념에 강력한 한방을 날렸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세상의 진리를 알기 이전에, 인간에 대해서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1. 고전을 읽어야하는 이유.

  고전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책이라 한다. 오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 고전의 지혜는 유효하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야기를 읽으면서, 고전이 다시 반복되어 읽히는 이유를 체감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서양지성의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도 그리스 로마신화속의 오이디프스, 엘락트라,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원용해서 우리의 무의식을 설명하고 있다. 서양의 지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화에 대한 이해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적어 놓은 플라톤의 대화편은 서양고전 중의 고전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은 교육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놀라운 것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 프로이드의 자유연상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서양 고대! 지금으로 부터 까마득하게 먼 시기의 산파술이, 근대의 자유연상법과 유사점이 있다는 것은 놀랍기만 하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닐까? 시대가 변하니, 지식도 새로운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어쩌면 고전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가 "소크라테스와의 반나절에 애플의 모든 기술을 걸겠다."라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2. 억압된 욕망은 정신병을 유발한다.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그가 지나치게 성문제에 집착한다고 비판을 하며 그를 떠났다. 그러나 프로이트에 대한 그러한 비판 자체가 인간에게 성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분석을 할때 자신의 내면의 은말한 것을 말하도록 유도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적개감을 갖기도 하는 것과 유사한 원리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성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성은 웃음의 소재로, 소위 마초를 자랑하는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빠질 수 없는 단골 주제로 사용된다. '암호속의 여인들'이라는 영화에서 KGB 요원을 교육하면서 미국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아무도 정답을 알아 맞히지 못했다. 그때, 정답은 '쎅스'였다. 성이 상업화되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는 성 때문에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러한 성을 너무도 억압당하며, 성은 우회를 찾는다. 이책의 늑대소년의 경우, 자위행위를 억압당하면서 사디즘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한다. 성적욕구가 다빈치처럼 잘 승화된다면, 엄청난 업적들을 쏟아 낼 수 있지만, 이것이 잘못된 우회로를 찾는다면, 정신병적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적절한 자위행위는 정신건강상 좋다는 말이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욕구를 억누르게 하지말고, 적절히 이를 해소하도록 해야한다는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해소가 될 수 없고, 해소 되어서는 안되는 욕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책에나오는 어는 장모는 심각한 발작을 보인다. 그녀의 발작원인은 사위를 사랑하는 욕구가 억압되었고, 이것이 발작을 일으킨 것이다. 이때 욕구에 충실해야하는가? 아니면 도덕과 윤리가 허락하지 않기에 억압해야할까? 철학자 강신주라면 어떻게 조언을 할까? 프로이트의 치료법대로 사위를 사랑하는 장모의 욕망을 직면하는 것만으로 발작이 사라질까? 이러한 고민을 나에게 토로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무어라 조언해야할까?

 

3. 종교는 강박노이로제의 환상인가?

  말년의 프로이트는 구강암으로 수차례 수술을 받으면서도 고통을 참고 연구에 매진한다. 그를 잡으러 온 나치요원들도 인간의 얼굴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구겨진 휴지와 같은 모습의 프로이트를 체포하기를 포기한다. 그러고는 "저 노인이 그렇게 도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란 말인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궁형의 치욕을 견뎌내면서 '사기'를 완성한 사마천이 생각날 정도로 프로이트는 영국으로 망명해서 구강암과 싸우며 불굴의 신념으로 연구에 매진한다. 이것이 그로서는 나치에 대항하는 최후의 저항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프로이트의 후기 저작들은 정신분석학을 문화를 읽는 수준으로 발전시킨다. 그는 종교, 철학, 예술을 환상의 산물이라 주장한다. 그가 환상의 산물이라 무시했던 철학!! 그러나 철학사에 프로이트의 이름이 당당히 들어가 있다. 프로이트가가 무시한 철학은 철학사를 저술하면서 그를 소환한 것이다.

  철학과 함께 환상의 산물로 종교를 꼽았다. 프로이트는 종교는강박 노이로제의 환상이라 주장하며, 종교에 대한 해부에 들어간다. 유대인인 프로이트는 종교는 "엄청난 환상의 세계를 대변하는 세계관"이라고 규정한다. 유아기에 과대평가된 아버지상을 되살려 그것을 현재안에서 신성으로 고양시킨다. 신은 아버지이다. 인간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가족의 윤리를 사회의 윤리로 확장시킨 유교의 모습이 어쩌면 인류 공통의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재미있는 것은 청소년들의 경우,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면 종교적 신앙도 상실되고 만다. 유아기에 자신을 돌봐준, 힘이센 아버지를 어른이 되어서도 갈구하고 그러면서 신을 창조한 인간! 그렇다면 신앙심이 높은 가족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높고, 신앙심이 낮은 가정에서는 아버지의 권위가 낮을까?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가 성립할까?

  유대인인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 규정했다. 살불살조라는 임제스님의 말이 생각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서, 그 종교를 극복한 프로이트!! 그러했기에 정신분석학을 정립할 수 있었지 않을까?

 

 

4. 자녀 양육에 참고할 지식들

  자녀를 키우면서,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부모가 자신의 똥을 닦아 주는 것을 허락하고, 자신의 똥 냄새가 좋지 않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든데, 사실은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똥은 아이들이 자신의 신체 일부분이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줄 수 있는 최초의 선물이라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초의 선물을 부모에게 준 셈이다.

  오랫동안 별거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 있다. 남편을 용서하지 않고, 이혼도 아닌, 그렇다고 정상적인 결혼생활도 하지 않고, 호적상의 결혼만을 유지하면서 별거를 하고 있는 가정이다. 그런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사례를 읽으며, 충분히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용서하지 못해서 별거를 하고 있는 가정이 너무도 우려스러워졌다. 다빈치는 사생아다. 어머니에 의해서 길러지다가, 생모를 떠나 아버지와 계모 사이에서 자라게 된다. 이러한 다빈치는 동성애자가 된다. 다빈치는 제자를 뽑을 때, 예술적 재능을 중시하기 보다는 외모를 중시여겼다는 사실은 나에게 쓴 웃음을 짓게했다.프로이트는 남자 노예가 남자아이 교육을 담당할 경우, 동성애로 기울 경향이 증가한다고 한다. 성충동과 성적 자극 및 그것들을 바탕으로 삼은 성적 대상의 선택에 있어서 부모의 상냥함과 권위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춘기의 청소년은 후에 히스테리 노이로제 증세를 보일 확률이 높다고 프로이트는 주장하고 있다. 정상적인 행복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다면 그 가정의 자녀는 정상적으로 행복을 누릴 수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아이가 부모의 성행위를 목격했을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팟캐스트 '불금쑈'에 어느 성 전문가가 출연하여 너무 어릴 경우 부모의 성행위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다.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부모의 성행위를 자녀가 목격하면 그것은 커다란 충격으로 아이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것은 무의식 속에서 자녀를 괴롭히게 된다. '불금쑈'의 성 전문가의 주장과 상반되는 내용이다. 그럼, 아이가 부모의 성행위 장면을 목격한 경우, 해결책은 무엇인가? 이 책에서는 그것을 제시해주지 않고 있다. 성행위를 자녀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결책인 것 같다.

 

5. 악마는 천사의 얼굴로 우리 주변에 있다.

  강자에게 아부하며 비굴하게 구는 사람이, 높은 권좌에 올라서는 잔인하게 아랫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았는가? 전형적인 간신의 이런 모습을 우리는 주변에서 너무도 흔하게 본다. 가학적인 사디즘과 피학적인 마조히즘은 동전의 양면이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조화를 유지한다. 그러나 강박 노이로제가 있는 사라은 극단에 치우친다. 지나치게 친절한자는 권력을 잡으면 폭군으로 군림할 수 있다. 지나치게 친절한 자를 조심하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평범한 모습의 선량한 시민이고, 상냥한 아버지였다. 악마는 우리 곁에 천사의 탈을 쓰고 있다.

  프로이트는 대중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대중은 고유한 인격을 상실하고, 사고와 가정도 체면술사의 지시와 방향을 따르는 존재이다.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대중사회의 모습에서 히틀러치하의 유대인들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프로이트는 히틀러 치하의 반유대주 독일의 모습을 보면서, 정신분석학의 방법으로 대중사회를 분석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대중을 정적 대중과 동적대중으로 나눴다. 정적 대중은 개성이 없는 부정적 모습의 대중이며, 동적대중은 주체적이고, 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사고할 줄아는 대중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동적 대중이 될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오직 고독속에서 작업하는 개인만이 위대한 사유작업을 결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고차원적 대중은 개인의 속성을 보유한다고 밝히고 있다.  공자가 “군자는 화합하지만 같아지지 않고, 소인은 같아지지만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말했다. 현명한 대중은 대중속의 일원이 되지만, 대중에 휩쓸려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비주체적인 자가 되지 않는다. 현명한 대중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연대하고 권력에 투쟁한다.

  프로이트는 지도자의 힘을 공동체의 힘으로 대치시키는 것이 참다운 문화의 진보라 지적한다. 어느 절대 권력자를 추종하는 노예로 살기보다는, 촛불혁명에서 우리가 보여준 저력처럼, 우리 모두의 힘으로 지도자의 힘을 대치시키는 것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할 일이다. 그러하기에 독재정권하에서 참다운 문화 발전이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나서야 영화산업이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된 것도,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지도자, 아니 독재자의 입맛에 맞는 영화를 만들다보니, 시민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담아낼 수 없고, 그것이 문화의 침체로 남게된다. 수많은 영화들이 검열당하고 삭제되어었던 암울한 시기를 보내고, 민주화의 열풍이 들어오면서, 자유로운 시민의 상상력이 나래를 펴면서 우리의 문화산업이 '한류'를 일으킬 수 있었다.

 

6. 철학자의 시선으로 프로이트를 바라보다.

  이 책을 쓴 강영계 교수는 철학자이다. 그렇다보니 철학적 관점이 이 책에 많이 투영되어 있다. 심리학을 철학과 과학에 다리를 걸친 학문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철학자 강영계 교수가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관련 책을 쓴다는 것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렇지만, 철학자 강영계 교수의 이 책은 철학적 색체가 확실히 많이 풍긴다. 심리학을 설명하면서 철학적 개념과 비교해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지나쳐서,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다. 에로스를 설명하면서 플라톤의 '향연'을 장황하게 서술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때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비문도 눈에 띈다.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의 기초를 확립하게 정립하는 저술이다.(305쪽)"라는 글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비문이다. 아마도, "정교하게 정립하는 저술이다."의 오타가 아닐까?

 

 이 책 한권으로 프로이트의 생애와 그의 대표적 저작들의 핵심내용을 알 수 있다. 만약 프로이트에 관해서 보다 많은 정보를 얻길 바라는 대중들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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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30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도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17-12-30 12:42   좋아요 2 | URL
감사해요 munsun09 님도 건강하시노 행복한 새해를 맞이하세요

2018-01-30 0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30 0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파니샤드, 귓속말로 전하는 지혜 청소년 철학창고 2
이재숙 풀어씀 / 풀빛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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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라는 나라를 떠올리면 종교의 나라라는 생각이 오버랩된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나무 그늘이나 동굴에서 명상에 잠기며 심오한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는 성자들의 나라! 이러한 이미지와는 달리 불교를 제외하고, 인도 철학에 대해서 무지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불교 이전의 인도인들의 사유 관렴을 알고 싶어 '우파니샤드'라는 책을 빼들었다. 인도철학! 그중에서도 우파니샤드에 대한 나의 지식이 일천하기에 너무 어려운 책을 읽기에는 마음이 무거웠다. 청소년들을 위해서 '우파니샤드'를 풀어써 놓은 이재숙씨의 책을 보면서 도전할 용기가 샘솟았다. 그래, 우파니샤드를 통해서 인도철학의 신비를 탐험해보자.

 

1. 동양의 소피스트철학 우파니샤드

  소피스트들이 철학의 대상을 자연에서 인간에게로 전환시켰듯이, 우파니샤드는 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인간 존재에 관심을 갖는다.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인드라를 비롯한 신들은 철학을 위한 엑스트라일 뿐,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다. 인간 존재를 중심으로, 세상을 탐구하기 위한 질문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우파니샤드는, 동양의 논어, 서양 플란톤의 대화편 처럼 대화로 이뤄져 있다. 세계의 철학사의 흐름과도 우파니샤드는 일치하고 있다.

  문답법을 통해서 상대방을 깨우치는 교수법을 흔히,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고한다. 산파술은 학습자가 이미 지식을 알고 있고, 그 지식이 발현되도록 교수자는 이를 돕는다는 학습원리이다. 고대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러한 교수법을 사용해서 교육이 이뤄졌다. 그리고 그 효과는 학습자에 따라서 달리 효과를 거두기도한다. 우파니샤드에 조물주가, '다'를 말하자, 쁘라쟈빠띠는 '자제하라(암미야뜨)로 알아들었으며, 인간은 "베풀라(닷따)"로 알아들었으며, 아수라는 "동정심을 가져라(다야드왐)로 알아들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해답을 그들 각각은 이미 가지고 있었다. 질문에 해답이 있었다. 답은 자신의 가슴에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2. 해탈하고 싶은가? 나는 원하지 않는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달라이라마를 만났을 때 일화이다. 김용옥 선생이 물었다. "해탈하고 싶은가?"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다"라는 말을 예상할 것이다. 그런데, 달라이라마는 "해탈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윤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참모습을 깨달아야한다. 그러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 더 이상 고통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났다.'라는 말이 있다. 현실이 고통스럽다하더라도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사는 것이 났지, 해탈하여 더 이상 이승에 있지 못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우파니샤드에는 천상은 하늘이 아니라, 더 이상 태어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이 되어 늙거나 병들거나 죽지 않는 가장 자유롭고 행복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 천상의 즐거움 보다. 생노병사의 고통속에서 서로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오늘이 우리에게는 소중하다. 나는 해탈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승을 어떻게 살아야할까? 우파니샤드에는 "이 세상에서 그대가 행한 바대로 육신이 죽은 뒤에 이루어지리라. 그러므로 자신이 이룰 일을 스스로 만들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신에게 묻지 말고, 스스로 알려고 노력하고 행하라는 말이다. 임재스님의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내가 머무르는 곳에서 주인이 된다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세계가 된다는 이말을 나는 가슴에 새기고 있다.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내 맡기기 보다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진취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3.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할까?

  우파니샤드에는 "육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자신의 참모습을 보라"라고 말한다. 육신에 대한 집착이 참다운 자신의 모습을 보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말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몸뚱이와 연계해서 생각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아보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온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완전한 자유 속의 자신을 깨달으라는 말이다. 과연 육신은 깨달음에 걸림돌일까? 흔히들 빠져드는 오류가, 육체보다 정신이 더 소중하다는 잘못된 믿음이다. 육신은 껍데기에 불과하기 때문이 이 육신을 원하는 사람에게 보시를 할 수도 있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사이비 종교도 있다. 육신은 정신의 집이다. 집이 없으면, 정신은 머물곳도 쉴곳도 없다. 정신과 육체는 어느 것이 더 소중하고 어느 것이 덜 소중한 관계가 아니다. 서로에게 위안이되며, 서로에게 쉼터가 되어주는 상생의 관계이다. 자신의 육체를 괴롭힌다고 해서, 깨달음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처님이 고행을 하는 것을 통해서 깨달을 수 없음을 이미 설파하셨다. 공자님도 문질빈빈(文質彬彬) 이라 했다. 외양의 아름다움과 내면의 미가 서로 잘 어울려야한다는 말이다. 정신과 육체도 서로 잘 어울려야 참다운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다. 육체가 괴로운데, 올바른 정신이 깃들 수 있겠는가? 아파니샤드의 이원론적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다.

 

3. 이 세상은 환영이니, 멋데로 살아도 될까?

  우파니샤드의 이원론적 생각을 접했을 때, 혹시 우파니샤드가 허무주의에 흐른 철학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나 우파니샤드에는 '인간이여,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백년 살아갈 소망을 가질지어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이 세상은 환영(마야)이니 버려라가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살아라. 단! 집착하지 말라!라고 말하고 있다. 우파니샤든는 허무주의를 경계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숭배하는 자는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만 빠져 있는 자는 그 보다 깊은 어둠속으로 들어가게 되리라'

 우파니샤드는 어느 한쪽의 극단에 서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라라고 외치고 있다. 우파니샤드는 극단에 서지 않고 중용을 강조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사람들은 우파니샤드의 이 말을 가슴속에 새겨야할 것이다.

 

4. 인도의 종교관은 일신관일까? 다신관일까? 범재신관일까?

  인도의 종교하면, 브라만교가 인도의 토착종교와 결합해서 새롭게 탄생한, 힌두교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힌두교는 다신교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유일한 실재인 근원 존재(브라흐만)만이 진정한 신이라고 하면, 일신관이고, 아바타로 나타나는 다른 모습의 존재 모두를 신이라 부르기 때문에 다신관이라 할 수도 있으며, 근원 존재가 만물 하나하나에 존재하므로 신이 어디에나 있다고 하기 때문에 범재신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도에서는 우주의 순항법칙이기도한 자연의 여러가지 힘에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 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서 신은 하나일 수도 있으며, 셋일수도 있으며, 300일수도 있고, 3000일수도 있는 것이다. 신은 숫자에 얽매이지 않기에 이름 붙이는 대로 불릴 수 있다. 신은 사람이 이름 붙여 부를때는 사람에게 대상이 되지만, 본래 대상이 될 수 없다. 우리의 얇팍한 지식으로 인도인의 정신세계를 이해할 수없다. 마음을 비우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해야한다. 인도인의 이러한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도를 도라하면 도가 아니다.'라는 노자의 말이 생각난다. 개념화하고 규정하고 분류하고 분석하는데 익숙해져있는 현대인들의 사고관이 인도철학을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이 든다.

 

 '귀속말로 전하는 지혜'라는 부재가 붙은 '우파니샤드'라는 책은 우파니샤드를 쉽게 풀어 놓았지만, 쉽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에서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쏟아 내고 있다. 이들 질문에 답하기가 만만치 않다. 우파니샤드를 통해서 인도 철학의 신비를 조금은 보았다는 점에서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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