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축복 - 그러나 다시 기적처럼 오는 것
정애리 지음 / 포북(for book) / 2013년 2월
평점 :
품절
여행!! 책과 함께 떠나고 싶었다. 오랜만에 가족과 여행을 떠나면서 나는 다른 사람이 챙기지 않는 나만의 친구하나를 챙려들었다. 바로 책이다. 팟캐스트 '빨간약 퍼스트 클래스'의 김경집 교수의 제안데로, 여행을 하면서 틈틈이 책을 읽고 싶었다. 무겁지 않으면서도 여행과 함께할 수 있는 책을 골랐다. 물론, 여행지가 제주도이니, 제주도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면 더 없이 좋겠지만, 가족과 가벼운 여행이니 만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을 고르다보니, 정애리의 '축복'을 꺼내들었다. 여행의 틈틈이 읽는 책의 맛을 한번 보자.
1. 여행 첫날, 책장을 넘기며 출발!!
정애리는 나의 초등학교 시절, 주말드라마 '사랑과 진실' 속의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물론, 그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초등학교 시절의 정애리의 모습이 정지된 동영상처럼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다. 연기자로서, 한아이의 어머니로서, 한남자의 아내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그녀가 틈틈이 생활속의 여러 장면들을 사진과 글로 남겼다. 이들 책장을 넘기며 나의 여행의 장면들을 함께 추억의 책속에 기억하자.
2018년 1월 8일 청주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기다렸다. 이런, 비가오는 날씨에 항공기 연결관계로 30분정도 비행기 출발이 지연된단다. 비행기 출발지연은 한편으로는 아쉬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책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니 '단비 내리던 날'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단비가 내리자, 정애리 작가는 환호성을 터트린다. 지금 내리는 겨울비도 단비일까? 지금은 단비가 아니겠지만, 이 비가 올해 농사에 쓰일물이 되겠기에, 멀리보면 단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비가 세상의 때를 씼고, 생명의 물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출발을 기다리던 사이 책장을 살펴봤다. '닭둘기'가 눈에 들어왔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가, 이제는 전염병을 옮기는 새가되어 우리에게 골치덩이가 되었다. 닭이된 비둘기! 닭처럼 된 비둘기! 별다른 노력 없이 먹이를 얻으려는 비둘기는 피둥피둥 살이 찐다. 서슴없이 더러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을 보면서, 정애리는 닭둘기 처럼 되지 말자고 되뇌인다. 이 시대에는 많은 달둘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한때, 닭둘기를 많이들 좋아했고, 그들이 세상을 닭둘기의 놀이터를 만드는데 허수아비처럼 방관만 했다. 닭둘기가 싸놓은 똥들을 지금 우리가 치우면서 다시는 닭둘기가 되지도 말고, 닭둘기가 우리에게 굴림하지 않도록 해야한다고 말한다. 503호는 잘있을까?
제주공항에 들러, 렌터카를 빌려 숙소로 갔다. 제주도 여행을 유행가 가사처럼 외치고 다녔던 딸들이 무척이나 좋아한다. 숙소 근처에서 먹은 제주의 음식은 정말 일품이었다. 입이 짧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우리 딸들이 밥한그릇을 뚝딱해치웠다.
2. 여행 둘째날, 비바람 뒤에 오는 것
제주도 2일차! 강풍주의보가 핸드폰으로 전송되었다. 올해 최고란다. 제주도를 3다도라 했던가! 돌많고 바람 많고, 여자가 많은 곳! 과연 제주도는 바람이 매섭도록 많은 섬이었다. 아침을 먹고, 책장을 폈다. 가족들에 비해서 나의 식사 속도가 빠르다보니, 아침 식사시간은 나의 독서시간이기도 했다.
'비바람 뒤에 오는 것'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태풍이 지나간 뒤에 고요가 밀려오듯, 바람 잦은 뒤에는 반드시 열매 맺을 거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정애리는 말하고 있다. 그래, 이 바람이 지나가면 평온이 올까? 이번 여행의 안전을 기도하며 제주도 여행의 일정을 시작했다.
제주도 여행지를 고를 때, 역사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행을 짜고 싶었다. 그러나, 우리집안의 권력자께서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그래서, 하루에 한곳은 역사유적지를 넣자고 타협했다. 오늘 그래서 제주 4.3 평화 기념관을 가게 되었다. 얼마나 가고 싶은 곳이었던가? 4.3의 비극은 아직도 제주인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영화 '지슬'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4.3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4.3을 처음 알게 되었고,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 수 있다.'를 통해서 사삼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생생하게 4.3을 나의 눈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4.3평화기념관을 관람하며, 우리가족에게 4.3을 되도록 쉽게 설명하려 노력했다. 4.3 평화기념관을 관람을 마치고 아내는 무척이나 충격을 받은 듯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을 때, 느끼는 충격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오늘을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도록한다.
다음 코스는 아쿠아 플라리넷이다. 서울에서, 대전에서, 부산에서 아쿠아리움을 관람했던 나에게는 별로 새롭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우리 딸들은 너무도 즐거운 곳이었다. 물개쑈를 보면서 나는 졸음이 쏟아졌다. 아빠는 어째서 잠을 잘 수 있느냐는 딸들의 핀잔이 들려왔다. '아빠는 재미있는 것 싫어해요?' 라는 막내의 말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플라리넷에서 점심을 먹고, 김녕미로공원에 갔다. 미로속을 헤매며 길을 찾았고, 종을 울렸다. 미로공원의 가게에 들렀다. 일년후의 자신에게 보내는 엽서를 보내겠다고 딸들은 부산을 떨었고, 나는 주인 아주머니와 담소를 나눴다. 제주도의 바람이 평소에도 이런가요? 라는 질문에 대해서, 올해 최고로 강한 바람이라고 아주머니는 대답해주었다. 충청도 출신이신 아주머니는, 남편을 따라 제주도에 왔고, 제주도의 생활이 좋다 하신다.
몰아치는 바람을 뚫고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어제 먹었던 맛을 잊지 못해서 또 들른 것이다.
3. 여행 3일차, 멈추지 않는 것이 없기를 바라며...
새벽부터 눈빨이 휘날리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창밖을 근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창밖의 눈빨은 맹렬한 기세로 하늘에서 땅으로 내리치며 땅에 부딪쳤다. 오랜만에 온 제주 여행인데, 맹렬한 눈빨때문에 여행을 망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책장을 펼치자 '멈추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비바람이 분다고 하여 지금 내 시간이 힘들다고 하여 움츠러들지는 마세요. 조금만 지나면 어느새 비는 그치고 지금의 고단함이 추억이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라는 정애리의 글을 읽으며, 무슨 분노가 그리도 많은지 맹렬히 제주도 곳곳으로 내리치는 눈빨도 멈출까? 라는 생각을 했다.
3일차는 항몽 유적지를 먼저 들르기로 했다. 20분이면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를 설득했다. 박정희 정권에서 제대로 된 발굴 조사도 하지 않고 복원을 해놓는 바람에 많은 사실들을 땅속에 묻어버릴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간직한 항몽 유적지!! 고려인의 자주성을 간직한 마지막 대몽항전이었다고 평가할 것인가? 권력쟁탈전에서 패배한 자들의 발악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기는 했지만, 그들이 외세에 맞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역사적 사실만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 항몽유적지 앞에서 묵념을 했다. 그들의 의도는 우리가 추측할 수밖에 없으나, 그들의 숭고한 행동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할 만했다.
다음 코스인 유리의 성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눈빨이 맹렬히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고가 났는지, 정체가 계속되었다. 그래서 재빨리 근처의 '그리스 신화 박물관'으로 경로를 바꾸었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읽고, 연수도 들으면서 제법 상식을 키웠는데, 신들의 이름은 언제나 했갈렸다. 제법 재미있는 박물과 답사를 마치고 차에 와서 시동을 켜고 가족을 기다렸는데, 앗뿔싸! 사건이 터졌다. 우리 호기심 박사님께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분수에서 놀다가 물에 빠졌단다. 재빨리 차에 태워, 젖은 바지를 벗도록 했다. 아내의 내복을 입도록 하고,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그리스 신화 박물관 기념품 매점에 가서 웃옷 한벌을 샀다. 어른 옷을 입으니, 원피스를 입은 것 처럼 보였다. '유리의 성' 박물과 앞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식당주인의 배려로 슬리퍼를 빌려 신고, 신발에 휴지를 넣어 물기를 뺐다. 밥은 맛이었지만, 밥맛을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아내의 양말을 신기고, 양말안에 휴지를 넣었다. 식당주인에게 비닐봉지 2개를 얻어 비닐봉지를 신고 젖은 털부츠를 신도록 했다. 호기심 박사님은 이제 춥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유리의 성에 가고 싶다고 날리를 부린다. 본인의 선택을 존중해서 유리의 성을 향했다. 다들 즐거워했지만, 난 추운 날씨 때문에 관람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4시정도에 관람을 마치고 또한곳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날씨가 심상치 않고, 호기심 박사님의 상태로 봐서 더 이상 무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숙소로 귀환을 결정했다. 그런데,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눈빨이 맹렬히 차창을 때기 시작했다. 바닥에 내린 눈빨이 앞차를 놓아주지 않아, 트럭이 비끄러졌다. 자동차 체인도 하지 않고 거북이 걸음으로 운전을 했는데, 커다란 정체가 연속되었다. 중앙선을 넘어온 사고 차량을 경찰이 조사하는 장면도 보였다. 저녁을 먹으며 오늘 사고없이 무사히 귀환한 것을 감사했다.
다시 책장을 넘겼다. '빛을 보라고 어둠이 있는 거예요'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빛만 있다면 빛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빛을 잘보기 위해서는 어둠이 있어야한다. 마치 환한 도시에서는 별빛이 잘 보이지 않지만, 가로등 조차 없는 시골에서는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도 총총히 빛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보통 빛은 희망을 상징하고, 어둠은 절망을 상징한다. 어둠속에서 빛을 보는 것이 희망이다. 항상 '희망'이라는 북극성을 잃지 않는 것이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방법일 것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눈길을 헤치고 숙소에 도착한 것도 희망이라는 빛을 잃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제주에서의 하루가 저물어 간다.
4. 여행 4일차. 소금으로 살 것을 다짐해요.
텔레비젼이 날리가 났다. 어제부터 중산간 도로가 통제되었으며, 일부 도로에서는 스노우 체인을 한 트럭만 운행을 허용한단다. 어렵게 제주도에 온가족이 왔는데 이 여행을 망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엉금 엉금 해안도로를 타고 가면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잠수함 체험장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혹시 사고라도 나면 어찌하나?하는 근심도 마음 한켠에서 스멀스멀 올라왔다. 복잡한 마음에 책을 펼쳤다. '욕심 때문에'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비워 두세요. 욕심만 내버려도 당신이 훌씬 아름다워질 거에요.'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욕심을 버리자! 여행이라는 욕심을 비우자. 그럼 세상이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래, 예정된 여행지를 버리고, 시내로 방향을 틀었다.
제주 민속박물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허름한 곳이었다. 그러나, 전국대회 대상을 받은 한지 공예작품을 비롯해서, 많은 유물들을 볼 수 있었으며, 박물관장님의 가야금 병창을 들을 수 있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박물관장님은 영화 '지슬'에서 아버지 역을 맡기도 했단다. 나에게 4.3 평화기념관에 갔다 왔느냐고 묻고, 1층의 도서관도 열어 보여주었다. 내부의 인테리어만 잘하면 꾀 알찬 장소가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받은 도서관이었다.
제주에 와서 반드시 먹어야할 것이 있다고 우리집 권력자께서 주장하시어, 맛집을 찾아 헤맸다. 회맛이 육지에서 먹던 것과 별반 다르지도 않았는데, 권력자께서는 맛있다고 연신 찬탄을 한다. 딸들은 맛있다고 몇점 먹더니 이내 먹지 않았고, 나는 굴복음밥을 시켜 딸들에게 나눠주었다. 딸들과 나는 회보다는 굴복음밥이 더 맛있었다. 그러나 우리 권력자님께서는 회가 맛있다며, 회를 다드시고는 매운탕도 먹어야하는데 배불러서 못먹는다고 한탄을 하신다. 책장을 펴들었다. '가짜 말고 진짜'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소금으로 살기를 다짐해요. 자기를 다 버리고 녹아내려야 맛을 내는 소금처럼 살다 가기를 소망합니다.'라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그래, 소금처럼, 자신이 바다물속에 녹아들어가 바다를 썩지 않게 하듯이,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녹아들어가 가족에게 평화를 주어야겠다. 권력자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맛있다고 맞장구를 쳐줘야겠다.
점심을 먹고나니 눈빨이 너무도 맹렬히 대지를 향해 치닫았다. 숙소로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했으나, 역사유적지를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다. 삼성혈이나 관덕정 정도는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덕정을 검색하니, 바로 코앞이었다. 권력자님의 눈치를 보며, 가자고 했다. 겨우 관덕정에 들러 제주도의 통치가 행해지던 그곳에서 과거의 제주를 만났다. 눈보라가 치는 관덕정과 제주목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너무도 추웠다.
숙소에 와서 뉴스를 들으니, 비행기가 연착되고, 4천여명의 승객들이 발이 묶였단다. 내일 우리는 출발할 수 있을까?
5. 5일차, 여행을 마치며,
아침부터 뉴스를 살폈다. 최대규모의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며, 온통 제주 공항의 모습으로 뉴스가 도배되었다. 빨리 아침을 먹고, 공항으로가서 사태를 살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이참에 일주일 더 제주도에 있자며, 권력자님과 딸들은 기뻐하는 아이러니컬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책을 폈다. '살은 셀프입니다.'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물만 셀프가 아니다. 삶도 셀프이다. 오늘 여행의 이 난관을 헤처나갈 사람도 나다. 셀프다.
급히 퇴실을 하고, 자동차의 눈을 치웠다. 스노우 체인도 하지 않고 렌터카를 반납하러 갔더니, 렌터카 직원이 놀란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가 지연되기는 했어도, 오늘 출발한단다. 간신히 이륙해서, 청주공항에 도착하니, 앗뿔싸!! 공항 주차장에 주차시켰던 차가 방전되었다. 보험회사를 불렀으나, 감감무소식!! 옆차는 벌써 보험회사가 왔는데, 싸다고 가입했던 보험사가 서비스도 역시 싼 값을 하나보다. 그래도 옆차의 보험회사 분들이 마음이 좋아서, 나에게 무료로 시동을 걸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가 보다.
여행은 이렇게 마쳤다. 정애리도 이책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있다. '전 세계, 수백 명의 내 자식들다 불러 모아 놓고 꿈결 같은 환갑잔치 할 거예요' 라는 말에는 '아름다운 여인, 정애리'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는 말을 실처하면서 열심히 사는 정애리! 그녀는 누구에게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이렇게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것일까? 사랑을 줄 수있기에 그녀는 축복받은 사람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 행복한 제주의 여행을 '축복'과 함께한 것도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우리 모두 '축복'을 받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