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한 작전 - 서구 중세의 역사를 바꾼 특수작전 이야기
유발 하라리 지음, 김승욱 옮김, 박용진 감수 / 프시케의숲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유발 하라리를 '사피엔스'를 통해서 처음 알게 된 후에, '호모 데우스', '극한의 경험'을 차례 대로 읽었다. '사피엔스'에 중독되어 다시한번 '사피엔스'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어서, '호모 데우스'를 읽었으나, 그 희열을 100% 느끼지는 못했다. 그래서 '극한의 경험'을 읽었지만, 나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 번역된 4권중에서 내가 읽지 않은 마지막 책인 '대담한 작전'을 꺼내들었다. 영문명은 'Special Operations in the Age of Chivalry'였다. '기사도 시기의 특수작전'으로 직역된다. 기사도 시기의 특수작전을 하라리는 어떻게 해부했을까?

 

1. 친절한 출판사의 배려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은 훌륭하지만,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사진과 지도 등의 자료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종종있다. 특히 세계사 책을 읽을 때는 해당 지명의 위치를 알길이 없기에 고등학교 사회과 부도를 펴들때도 있었다. 무책임한 저자와 불친절한 출판사에게 속으로 욕을 날리며 책을 읽는 경우가 너무도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유발 하라리가 첨부하지 않은 사진이나 지도를 친절하게 첨부하여 읽는 사람의 이해를 쉽게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역했다. 특히 144쪽에 제시된 서아시아 지역의 지도는 보두앵 구출작전이 진행되던 시기의 서아시아 판도를 이해하기에 적합했다. 작가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 것은 출판사의 역량이다. 유발하리리의 '대담한 작전'을 돋보이게하는 출판사의 세심한 배려가 빛나는 책이다.

 

2.   유발 하라리의 빛나는 사료 분석 - 니자리파(하시신)

  영어의 assassination과 hashish와 관련 깊은 조직을 아는가? 많은 사람들이 '하사신'파를 떠올릴 것이다. '이슬람의 눈으로 본 세계사'라는 책에서 아주 인상 깊었던 암살 조직이 '하사신파'였다. 암살을 할때 마약(하시신 hashish)을 먹거나, 쾌락의 정원을 맛본 전사들이 죽어서 다시한번 쾌락의 정원에 가기 위해서 암살에 용감히 나선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사실일까? 이슬람에 대한 자료가 워낙적기에 무비판적으로 믿었던 사실들을 하라리는 여러 종류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이들이 암살을 결행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종교적 열정과 박해 받는 소수파의 생존술, '국영' 기숙학교 운영 등 실제적, 역사적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니자라파 피다이(암살자)의 암살 동력을 서술한다. 하라리가 '사피엔스'와 같은 대작을 쓸 수 있었던 밑바탕을 이러한 글들을 통해서 느낄 수 있다.

  말이 나온김에 니자리파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자. 니자리파의 일화중에서 너무도 충격적인 일화가 있다. 니자리파의 우두머리 시난이 전령을 살라딘에게 보냈다. 살라딘이 2명의 호위병을 대동하고 전령을 만나려하자, 전령은 그 2명도 물려줄 것을 요청한다. 이를 살라딘이 거절하자, 전령이 2명의 호위병에게 말한다. "만약 내가 주인의 이름으로 이 술탄을 죽이라고 명한다면 그리하겠느냐?" 맘루크는 칼을 빼들고 명령만 내리라고 말한다. 전령이 2명의 맘루크를 데리고 떠나자, 살라딘은 시난과 화해한다. 물론, 유발 하라리는 이 이야기가 실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지만, 이 일화 자체는 니자리파에게 기가 질리게 만든다. 흩어져 있는 수많은 니자리파가 몇년동안 암살예정자의 주위를 맴돌다가, 그의 심복이 되기도한다. 그들의 우두머리 시난이 명령을 내리면, 그들은 지체없이 암살예정자를 죽여버린다. 놀랍지 않은가?

  그런데, 니자리파는 템플기사단, 병원 기사단은 암살하지 않았다고 한다. 왜그랬을까? 이들 조직들은 특정 리더의 죽음이 조직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기사단은 관료적 조직이며 위계적인 규율로 유지된다. 어느 한사람이 암살로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조직을 이끈다. 반면 한사람의 탁월한 리더십에 의해서 움직이는 조직일 수록 니자리파의 암살효과가 극대화된다. 이부분을 읽으면서, 의열단이 1920년대 후반, 의열투쟁에서 독립군 육성으로 독립운동의 방향전환을 한 이유가 이해가 되었다. 일본 지휘관 한두놈을 죽인다고해서, 독립을 일룰수는 없었다. 일본 지휘관놈 후임에 더 악독한 지휘관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3. 우리역사를 떠올리다.

  서양사를 읽는데, 한국사가 오버랩된다. 내가 한국인인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프랑스왕과 부르고뉴의 샤를 사이의 끊임 없는 암투와 독살 시도, 암살 시도를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교를 해보았다. 어찌하여 이리도 비열한 암투들이 성행할까? 그에 비하면 우리의 역사는 암살 혹은 독살이 적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덕일이 '조선왕 독살사건'이라는 책에서는 조선왕 4명중에서 1명이 독살되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의혹이며, 하나의 설일뿐이다. 반면에 프랑스왕과 부르고뉴의 샤를 사이의 암투와 암살 시도는 실제 역사기록이 남아있다. 기록되지 않은 독살시도는 또 얼마나 많을까?

  7장 '오리올의 방앗간'편에서 프랑수와와 카를 5세 사이에 대격전이 펼쳐진다. 카를 5세의 대군을 몽 모랑시 사령관은 청야전술로 대응한다. 청야전술!! 어디서 많이 들어보지 않았는가? 고구려가, 고려가, 조선이 외세이 침략에 대항해서 펼쳤던 전술이 청야전술이다. 우리의 전형적인 전술을 프랑스에서도 사용할 줄은 몰랐다. 동양과 서양이라는 공간은 다르지만, 전쟁의 전술은 서로 비슷할 수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4. 고전의 향연

  <도덕경(道德經)> 제 36장을 나는 좋아한다.장차 움츠리려면 반드시 반드시 펴고, 장차약하게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고, 장차 피폐하려면 반드시 흥하게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상대방의 마음을 얻으려면, 반드시 먼저 나의 것을 주어야한다. 상대방을 약하게하려면 그들이 승리에 취해서 교마하게 만들어야한다. 그러면 그들은 스스로 무너져내릴 것이다. 그래서 옛말에 '전성기의 왕은 섬기지 말라'는 표현이 있지 않은까? 부르고뉴의 전성기인 샤를 시기에 아이러니컬하게도 부르고뉴의 쇠락이 시작되었다. 암살과 협박, 거짓말로 부르고뉴는 프랑스에 대항할 수 있는 강략한 세력으로 부상한다. 전성기의 그는 교만해져서 이웃나라를 침범하여 영토를 계속 넓히려했다. 그 교만이 재앙을 가져왔고, '부르고뉴왕국'이라는 꿈은 사라지게 된다. '칼로 흥한자 칼로 망한다'고 했지 않은가? 비열한 술수로 흥한 샤를은 자신의 비열한 술수에 빠져 몰락하게 된다.

  이러한 비극은 샤를에게만 일어나지 않았다. 그의 맞수인, 프랑스의 루이도 만만치 않은 비열한 사람이다. 자신의 이익과 목적을 위해서 납치를 일삼았다. 루이는 부르고뉴 영토를 거의 모두 자신이 것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그가했던 것처럼, 적들이 자신을 납치 혹은 암살할까봐 장원 주위에 도랑을 파고, 철창을 담처럼 둘렀으며, 석궁병을 배치했다. 비열한 행위를 일삼았던 자들은 자신도 그러한 비열한 행위를 당할까봐 두려움에 떠는가 보다. 성경에 '뿌린데로 거두리라'라는 말이 있다고한다. 샤를과 루이! 그들은 뿌린데로 거두었다.

 

  '사피엔스' 이후, 하라리의 마력이 내주위를 감싸고 있다.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는 나의 역사인식과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그의 책들을 더 열심히 찾아서 읽는다. 아직, 유발 하라리가 세계적인 석학으로 발돋움하기 전의 글이기에 기대했던 것 만큼의 희열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나 유럽의 기사도시기 특수작전을 이해하는 좋은 책인 것 만은 확실하다. 지나친 기대를 갖고 읽지 않는다면, 나름은 '특수작전'이 주는 재미를 느끼며 읽어볼만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가토 요코 지음, 윤현명 외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학교수는 모두 자신의 전공분야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는 교수가 얼마나될까? 그래 보통 사람들 보다는 많은 식견을 가지고 있겠지. 그러나 나는 대학교수라는 간판을 가진자가 너무도 수준 이하의 모습을 드러낸 경우를 많이 보았다. K대학의 L교수의 경우, 한국사 국정화에 앞장서며, '국제화시대에 타인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의 심정을 이해해보라는 탐구활동을 만들었다.'라는 괴변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기까지했다. 이렇게 추악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의 교수들을 나는 많이 보아왔다. 때로는 이 사람이 어떻게 교수자리에 앉았는지, 의심이 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아왔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능력도 성품도 함량미달인자가 교수가 되는 모습을 많이 목격한 나는, 도쿄 대학교수가 중고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강의를 엮은 이책에 약간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도쿄대 교수 가토 요코의 내공에 많은 감탄을 했다. 그렇다면 그 내공을 함께 나눠보자.

 

1. 일본인이 바라본 일본사라는 한계

  가토 요코가 도쿄대학교의 탁월한 교수라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이기에 일본의 역사를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예를 들어보자. '미우라는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병력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라는 표현에 어떠한 문제가 있을까? 일제가 일으킨 을미사변은 친러파가 득세하는 상황속에서 친러파의 핵심인 명성황후를 제거하여 한반도에서 일본세력의 확대를 꾀하려는 일본의 극단적 선택이었다. 이를 마치 일제가 흥선 대원군을 재옹립하고자하는 순수한 목적에서 발생한 일로 폄하하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일이다. 일본인으로서 일본의 침략전쟁을 비교적 양심적으로 살펴보고 있는 가토 요코 교수가 을미사변의 목적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그 총명함을 잃어 버렸다.

  가토 요코 교수가 강의한 학생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가토 요코 교수가 "민권파와 후쿠자와가 쌍수를 들어 청일전쟁에 찬성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자 학생들은 "특별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가토 요코 교수는 "아, 예상 밖의 대답이네요. 이거 곤란한데요."라며 멋적어했다. 나는 놀라웠다. '민권파'라는 이름에서 유추하자면, '민'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무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민'을 위해서라도 전쟁에 반대해야하지 않을까? 당연히 의문을 가져야한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에 대해서 전혀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특히 전쟁 처럼 국론을 한군데로 모아야하는 시기라면 국가에 반대되는 의견을 표명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학생들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본의 공산당 조차도 천황제를 부정하지 못했다. 천황제를 부정하느니, 공산주의를 내팽겨쳤다. 국가의 명령에 개인을 자연스럽게 소거해버리는 일본인의 무서운 모습을 일본 학생들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공포가 밀려왔다.

  그럼, 일본의 대중들은 어떠한 역사관을 가지고 있을까?  만주사변에 대한 정당성 여론조사에서, 전쟁전에는 정당하다는 응답이 88%였고, 전쟁이 발발하자 정당하다는 주장이 90%로 치솟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설문조사가 지성인이라고하는 도쿄 대학생을 대상으로한 조사였다는 것이다. 지성인이라도 비판정신이 없다면, 일제의 집단광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달라졌을까? 똑같은 여론 조사자료를 얻을 수는 없지만, 종전 60년 후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을 요미우리신문에서 2005년에 시행했다. '중국과의 전쟁, 미국과의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둘다 침략전쟁이 아니다.'라는 입장이 무려 10.1%였다. 또한 '대답없음'이 21.85였다. 이 수치는 '침략전쟁이 아니다.'라고 당당하게 표현할 수 없기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지 않은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추측할 수 있다. '중국과 전쟁은 침략전쟁이었지만,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었다.'라는 주장은 33.9%였다. '둘다 침략전쟁이었다.'라는 주장은 34.2%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인의 과반수 이상은 미국과의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제대로된 전범처리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의 대중들은 올바른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경화하고 있는 아베정권을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임을 상기시켜본다.

 

2. 장차 약하게 하고 싶다면, 반드시 강하게 만들어라!

 노자 '도덕경' 36장에 '장차 움츠리려면 반드시 펴고 장차 약하게 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며, 장차 피폐하게 하려면 반드시 흥하게하고,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이를 미명이라한다.(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라는 말이 있다. 적을 약하게하려면 반드시 강하게하고, 적의 것을 배앗으려면 반드시 주어라!! 정말 역설적이고 비현실적인 말들로 가득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노자의 이 말이 탁월한 전략임을 입증하는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번째는 케인즈에게서부터 시작된다. 케인즈가 파리강화회의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케인즈하면 우리는 '유효수요이론'을 떠올린다. 영국 대표단의 재무부 수석대표였던 케인즈는 베르사유강화조약 조인을 하지 않고 직책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그리고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를 책으로 내놓았다. 그는 경제학적 관점에서 독일에 대한 가혹한 징벌적 배상금이 대공항을 일으킬 수 있음을 미리 예견했다. 돈이 한쪽에 쏠리게 된다면 세계 경제는 막힐 수 있다. 그러하기에 독일의 산업복구를 도와주고 제품 수출로 배상금을 지불하게 해야함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장차 빼앗으려면 반드시 주아라.'라는 도덕경의 역설적 말을 케인즈는 주장했다. 케인즈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강대국은 몇년 지나지 않아서 세계 대공항을 맞이해 고통을 겪는다. 그리고 그 고통은 전쟁의 전조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보내야했다.

  두번째는 후스의 탁견이다. 1935년 후스는 장제스, 왕자오밍 앞에서 "미국과 소련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정면으로 버티면서 2~3년간 계속 패배해야한다."라고 주장한다. 즉, 일제가 중국 연안의 항만과 창장강 하류 지역을 점령하고, 중국의 여러 성들이 함락된다면,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은 절박한 위협을 느끼며 참전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나의 살을 내주어 적의 뼈를 취하겠다는 후스의 전략은 무모해보이기도하다. 그러나 그의 전략은 정확했다. 격렬히 저항하는 중국에게 일본은 연전연승을 거두지만, 일본은 중일전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된 확전의 길을 걷게 된다. '장차 약하게 만들려면 반드시 강하게 하라'라는 도덕경의 말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례이다.

  '도덕경'을 제왕학의 교과서라고 말한다. 무위자연과 같은 현실도피적 삶을 노래한 책으로 많이들 알고 있으나, 잘뜯어보면 '도덕경'의 탁월한 식견과 마주하게 된다.

 

3. 우리를 되돌아보다. 

  이 책은 일본 근대사를 강의한 책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의 역사를 아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는 실미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소선거구제의 문제점을 아는가? 정의당이 거대 정당들 사이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소선거구제'를 비판하고 '중대선거구제', '독일식 정당명부제'를 주장하고 있다. 다양한 국민의 의견이 반영되기 위해서 선거구제를 개편해야한다는 의견 정도로만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이해했다. 그런데, 일본도 '소선거구제'가 실시되는 나라이다. 그리고 이 소선거구제로 인해서 투표의 열의가 높은 60대 이상의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고 있다. 이로인해서 국회의원은 고령층의 이익대변자로 전락했으며, 아이를 기르는 젊은 이들의 이익은 현실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가토 요코 교수가 지적한 일본 선거구제의 문제점은 우리현실에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고향의 시골 노인정에는 난방비와 쌀등이 잘 나온다고 한다. 물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정말 좋은 제도이다. 그런데, 저출산으로 한국사회가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현실 개선을 위한 대책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지난 보수정권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는 생각을 금치 못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젊은이가 투표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있기도 하지만, 노인세대에 유리한 선거구제에도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선거구제는 개혁되어야한다.

  "역사는 교훈을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흔히들 역사를 통해서 교훈을 배울 수 있으며, 그런점에서 역사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토 요코 교수는 그 교훈이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한예로 정치가로서의 압도적인 힘과 군사적 리더십을 겸비했던 사이고 다카모리가 세인난 전쟁을 일으킨 것에 교훈을 얻은 일본정부는 다시는 국민에게 인기있고 지도력을 갖춘 사이고 같은 인물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정부 통수권 독립을 추진한다. 통수권 독립의 결과 일본군부는 정치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게되며,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전쟁 기간 동안 정치 외교 분야와 군사 분야가 서로 소통하지 못했다. 이 사례는 적폐청산을 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기무사 해편을 비롯해서 과거의 적폐를 철저히 개혁을 할때, 과거의 교훈을 토대로 개혁을 함에, 새로운 문제점이 발생할 수도 있음을 유념하며 신중히 개혁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미즈노 히로노리라는 현역군인은 "일본은 전쟁할 자격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믿어지는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일본에서, 그것도 현역군인이 일본의 약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다니....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면 전쟁할 수 없는 나라'라라는 지적을 일본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기습전에 의존해서, 수치를 왜곡해서 그들의 희망사항을 부풀려서 전쟁계획을 수립했고, 많은 동아시아인들을 불행으로 내몰았다. 그런데, 이것은 일본에게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도 지구전을 수행할 수 없다. 대부분의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지구전이 가능한 나라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평화를 외쳐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탁월한 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분촌 이민을 권유하는 현 공무원'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보지 않는가? 일본 정부에서 만주로 이주를 독려하기 위해서 제시한 달콤한 돈에 유혹되어 많은 일본인들이 만주로 갔으며, 전쟁에서 패전하고 나서 돌아오면서 많은 고통을 겪었다. 어찌보며, 정부의 침략전쟁에 협조한 그들의 자업자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에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00고등학교에서 재직했을 때, 돈을 얻어낼 목적으로 교과교실제에 응모해서, 돈만 얻어낸 경우가 있다. 이에 항의했더니, 당시 교장과 교감이라는 자와 소위 부장이라는 작자는 우리 현실에 부적합한 교과교실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부에서 시찰나온다고 하니까 강제로 교과교실제를 하라고 했다. 그때, 소위 관리자라고 불리는 작자들에 대한 신뢰가 사라졌다. 보신주의에 철두철미한 그들은 약자에게는 강하지만, 자신보다 강한자에게는 너무도 비굴해진다. '정부에서 주는 조성금이 탐'나서 주민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내몬 공무원들 처럼....

 

  이책은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강의! 학생들에게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 '이 압권인 책이다. 아울러 일본 침략전쟁의 확전과정과 의도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탁월한 식견을 제공해준다. 조선 중립화론을 유길준과 부들러만이 주장한 것이 아니라, 독일의 슈타인도 주장했다는 새로운 사실들을 알려준다. 쉬우면서도 깊이 있는 역사지식을 얻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8-06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고 뚜껑도 안 열어보고 있네요! ㅎ

강나루 2018-08-06 22:53   좋아요 1 | URL
일단 읽기 시작하면 술술 읽혀요^^

카알벨루치 2018-08-06 22:54   좋아요 1 | URL
조만간 완독소식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ㅎ

카알벨루치 2018-08-06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진명의 황태자비납치사건에서 가토 교수 이야기가 나온것 아닌가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NamGiKim 2018-08-11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서점에서 사려다다 만 책입니다. 좋은 리뷰입니다.^-^

pedrailmin 2018-09-22 16: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성하신 서평들만 모아서 책으로 내셔도 좋을것 같습니다

강나루 2018-09-23 18:14   좋아요 0 | URL
과찬이세요
암튼 책을 쓰고 싶은 것은 사실이에요^^

pedrailmin 2018-09-23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닙니다, 올려주신 서평들 주욱 읽어봤는데 이렇게 다방면의 주제에 깊은 식견을 갖추신 분을 알게 되어서 영광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Redman 2022-03-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우라는 흥선 대원군을 다시 옹립하기 위해 병력을 경복궁에 침투시켜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는 변명할 여지가 없는 일본의 만행이자 쿠데타였습니다. 일본은 친러파의 중심인물인 명성황후를 죽인 다음, 일본과 친한 인사를 정권에 복귀시켰습니다.˝ 언급한 문단 전체를 보면, 친러파를 제거하고 일본의 세력 확대를 꾀한 사건으로서의 을미사변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데요? 역시 역사학자답네요. 한 문장을 가지고, 일본인으로서의 한계라든가, 총명함을 잃었다 같은 평가는 지나친 평가 같습니다.
 
우리말 절대지식 - 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
김승용 지음 / 동아시아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당신은 우리 속담을 얼마나 아는가? 아마 30여개를 넘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속담을 모아 놓은 백과사전이 있지도 않아 속담을 제대로 공부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팟캐스트 '떡국열차'에서 김승용씨가 나와서 우리말과 우리 속담을 풀어 냈다. 내가 한국인이고, 고등교육도 받은 사람이기에 우리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 김승룡의 현란한 우리말 속담 풀이에 푹빠져들면서, 우리의 말과 속담에 대해서 그 흥미 진진한 이야기를 좀더 자세히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우리말 절대지식'을 주문했다. 이 책을 다읽는데 1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 책을 한꺼번에 다 읽는다면 우리말 속담을 제대로 이해하고 나의 생활에 활용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생겼다. 그래서 하루에 1장 ~ 5장씩 읽어 내려갔다. 그 꾸준히 읽어 내려가서 마침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과연 '우리말 절대지식'에는 어떠한 보물이 숨겨져있었을까?

 

1. 잃어버린 우리의 보석들

  군대에서 점심 식사를하기 전에 중대단위로 인원채크를 했다. 일단은 식당으로 이동하기 전에 번호를 외쳤다. '하나!', '둘'..... 그런데, 갑자기 숫자가 끊겼다.  '마흔 아홉!' 그 다음 순서의 병사가 자신이 외쳐야할 '쉰'이라는 단어를 몰라 당황하고 있었다. '오십'은 알아도 '쉰'은 알지 못했다. 이런일이 종종 심심치 않게 발생했다.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이 나에게도 존재함을 이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개호주', '능소니', '초고리', '풀치', '발강이', '모쟁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는가? 그 뜻을 아는가? 이 단어들은 특정 동물의 새끼를 달리부르는 이름이다. '개호주'는 호랑이 새끼를, '능소니'는 곰을, '초고리'는 매를, '풀치'는 갈치를, '발강이'는 잉어를, '모쟁이'는 숭어 새끼를 부르는 명칭이다. 이러한 단어를 사용하는 예를 이책을 읽기 전까지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 이중에서 갈치와 잉어는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는 생선들이다. 우리는 우리 식탁에 오르는 생선들 새끼들의 명칭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동짓달'과 '섣달'이 몇월인지 아는가? 그럼, 그믐이 몇일인가? 물론 이를 쉽게 답하는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를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동짓달'은 11월이고, '섣달'은 12월이다. '그믐'은 그달의 마지막 날로써, 29일이 될 수도 있으며, 30일이 될 수도 있다. 단순히 단어의 뜻풀이만 한다면 이책의 가치는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왜? 섣달이 섣달이지 아는가? 예전에는 12월이 1월이고, 동짓날이 마지막 달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새로운 해가 시작된다하여 12월을 섣달이라했다. 재미있지 않은가? 주옥 같은 우리 말들을 재미있는 어원풀이를 곁들여 소개한다.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이러한 우릿말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2. 맛깔나는 보석!! 우리말 속담들

  '제 똥 구린 줄 모른다.'라는 속담을 아는가? 그렇다면 이와 비슷한 현대 만들어진 속담을 아는가? 모 국회의원이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내로남불'이라는 말을 알 것이다.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하면 불륜!!'. 이와 비슷한 말이 '남이 하면 에로 내가 하면 멜로', '남이 하면 간섭 내가 하면 관심', '니가 하면 비리 내가 하면 의리', '나는 팬이고 너는 빠다'라는 말이 있다. 속담이라면 보통 늦어도 조선시대 쯤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사용될 것이라 추측한다. 그런데, 김승용은 현대에 새로 만들어져 사용되는 속담들까지 수집 정리했다. 언어는 사용되고 있을때, 그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많은 속담들이 사라지고 있지만, 많은 속담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 새로운 속담들이 만들어져 쓰인다면, 우리의 언어 생활은 보다 풍성해질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하나 만들어 보았다.

  '내가하면 장난, 남이하면 괴롭힘!!' 우리 교육 현장에서 친구들을 괴롭히는 학생들이 흔히 '장난이었어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피해자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내로남불'의 학교판!! 이 속담으로 학교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을 예방해보아야겠다!!

 

3. 삶을 들여다보는 보석!! 속담에 숨어있는 조상의 삶과 지혜

  어려서 아버지께서 '구운 게도 다리 떼고 먹어라.'라는 말의 풀이를 해주었던 것이 생각난다. 부모의 시묘살이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물가에 씻으러 갔다가 게를 보고는, 시묘살이가 끝나면 저 게를 잡아먹어야겠다고 입맛을 다셨단다. 그런데 시묘살이 끝나기를 하루 앞두고 이를 못참고서는 게를 잡아 구워먹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이를 보고서 그 사람을 나무랐단다. 그래서 시묘살이하던자가 게를 구워먹기 전에 나무다리를 떼어 놓고 먹었다면 효자소리를 들었을 것이라며, 사람들이 '구운 게도 다리 떼고 먹어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속담 하나에 '시묘살이' 풍습이 녹아있다. 조상의 삶이 녹아있다. 이렇게 조상의 삶이 녹아 있는 보석들이 이책에는 많이 소개되어 있다.

  '가재 물 짐작하듯'이라는 속담을 들어 보았는가? 무엇이든 미리 짐작을 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 속담은 가재를 잘 관찰한 조상들의 세심한 관찰력이 숨어있다. 가재는 허파로 호흡하지 않는다. 물고기 처럼 아가미로 호흡한다. 가재는 커다란 머리 투구 안쪽 공간 사이에 물을 저장하여 그것으로 아가미 호흡을 하며 물 바깥에서도 일정 시간동안 버틸 수있다. 상류의 얕은 물에서 사는 가재가 상류의 물이 줄어들 경우 이사를 가야하는데, 그럴 경우 물바깥에서도 호흡을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때 가재의 호흡법이 빛을 발한다. 가재의 생태를 관찰하고 이를 속담으로 만든 조상의 지혜도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를 글로 자세히 표현한 저자 김승용의 노력은 더욱 감탄을 자아낸다.

 '갓 사러 갔다 망건 사온다.'라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많이 들어보지는 않았어도 들어는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러한 속담이 만들어 졌는지는 아는가? 엣날에 갓과 망건은 매우 비싼 물건이었다. 그런데, 둘의 값이 거의 같았으며, 같은 곳에서 팔았다한다. 자기가 원래 사려던 것을 장사꾼의 말에 흔들려 갓을 사지 않고 망건을 사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한다.

  '칠성판에서 뛰어 났다.'라는 속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칠성판이 관 바닥에 까는 얇은 널조각이며, 여기에 북두칠성을 본떠서 일곱게의 구멍을 뚫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산 김가 셋이 죽은 최가 하나를 못당한다.'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가'가 '최씨'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저승에서 가장 높은 판관인 '최판관'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속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홍치마'를 입는 사람을 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한다. 나이 많은 남자 혹은 홀아비가 돈을 주고 신붓감을 데려 올때 어린 여자나 처녀와 결혼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속담이다.

  속담을 알면 조상들의 삶이 보이고, 속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상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한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사용하지만, 속담이 만들어진 이유를 알면 쉽게 사용할 수 없는 속담이 있고, 너무도 친근함이 느껴지는 속담이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조상의 삶을 말해주고 있다.  

 

4. 잘못 알고 있었던 보석들! 그 참의미를 알게 되다.

  "아빠 까마귀 고기 맛있어요?"라는 나의 질문에 아버지께서는 "먹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그런데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잘 까먹는단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 "먹어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아요?"라고 묻자, "잘 까먹는 사람에게 '까마귀 고기 먹었냐?'라고 하잔니"라고 말씀하셨다. 한방에서는 자연의 동식물이 약재로 사용되기도 하고, 특정 동식물을 먹으면 다양한 효능이 나타나기에 아버지의 말씀을 그때는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까먹다'를 까마귀와 연관시켜 만들어진 속담이라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고서는, 무릎을 탁치며 웃었다.

  '계란유골(鷄卵有骨)'이라는 고사성어를 아는가? 이 고사성어를 두가지로 풀이할 수 있다는 것도 아는가? '계란유골(鷄卵有骨)'이라는 고사를 유정난의 경우 병아리가 되다 말 경우도 있기에 실제로 '뼈가 있다.'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有骨을 '곯아 있다.'의 이두식 표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중학교 한자시간에는 '뼈가 있다.'라는 해석으로만 배웠다. 당연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고사성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할 수도 있는 사실이 재미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라는 고사성어를 아는가? 중학교 '한자' 수업시간에 배웠던 이 고사성어가, 사실은 순수한 고사성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가? 영어속담 "To kill two birds with one stone"을 일본 메이지시대에 '돌 하나 새둘'로 직역한 것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란다. 그 이전에는 '일거양득'만이 사용되었단다.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일본으로부터 많은 말들이 들어왔다. 우리가 잘아는 '혹부리 영감' 동화도 일본의 민담이 일제 강점기 교과서를 통해서 전해진 이야기이다. 우리 문화 속에 일제의 영향력을 지금도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알고 쓰는 속담과 모르고 쓰는 속담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5. 옥의 티를 찾아라!

  옥에도 티가 있듯이, '우리말 절대지식'에도 약간의 오류가 있다. 우선 명백한 오류로 보이는 몇가지를 찾아보자.

  첫째, ‘자두연두기(煮豆燃豆萁)’와 '자두연두기(煮豆燃豆箕)' 중에서 어느 것이 맞을까? 萁는 '콩깍지기'이고, 箕는 '키기'이다. '콩대를 태워 콩을 삶'는다는 표현을 할 때는 '콩깍지 기'자를 써야 맞다.

  둘째, '성동격서'를 설명하면서 ''손자병법' 36가지 계책 중 여섯 번째 계책으로'라고 설명했다.무엇이 오류일까? '손자병법'과 '36계'는 별도의 책이다. '손자병법'안에 '36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한 듯하다.

  셋째, 131쪽 주에 '나폴레옹도 감옥에서 돈에 매수된 주방장이 음식에 조금씩 넣은 비소에 의해 암살되었다.'라고 서술했다. 여러분도 잘알 듯이, 나폴레옹은 감옥에 갖혀 죽은 것이 아니라,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일생을 마쳤다.

  저자 김승용은 치밀한 자료조사를 통해서 훌륭한 속담사전을 완성했다. 나는 그의 노력을 존중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따르지는 않는다.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을 소개해보자.

  첫째,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말의 어원을 아는가? 이책에는 '송남잡지'를 인용하여, '지금 남녀가 하룻밤의 인연을 맺음을 일컫는다. 왜구가 우리나라를 쳐들어 왔을 때 단 하룻밤을 머물러 자고 가더라도 적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성을 쌓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고등학교 시절, 일본어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는 이와는 다르다.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사람이, 옆집 여성에게 자신이 당신의 남편대신 만리장성을 쌓으러 가겠으니, 자신과 하룻밤을 자자고 했단다. 결국 그 여성과 하룻밤을 자고 만리장성을 쌓으러 그녀의 남편대신 갔다고 한다. 여기에서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다.'라는 속담이 나왔다고 한다. 설득력으로 치자면, '송남잡지'보다는 일본어 선생님의 설명이 설득력이 있다. 그렇다고 일본어 선생님이 들려준 설명이 100% 확실하다고 단정은 못하겠다. 호사가들이 지어낸, 민간어원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둘째, '만만한 놈은 성도 없나'라는 속담의 어원이 무엇일까? 이 책에서는 '누구나 성과 이름이 존재하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내용이라는 주장과 '성'을 성질로 풀이해서 만만한 상대도 감정을 가진 사람으로 성낼 때도 있음을 말한다고 설명한다. 어느 설명이 옳을까? 나는 두번째 설명이 타당하다고 본다. 우리가 잘 알듯이 우리나라 사람들 누구나 성을 갖게 된 것은, 갑오개혁 이후이다. 신분제도가 폐지되면서 해방된 노비들도 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도 나의 추정이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리타분한 사전이 아니다. 맛깔나는 설명과 다양한 사진자료까지 첨부되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우리의 속담을 풀이하고, 속담과 관련있는 고사성어, 현대속담, 생태학적 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토마토가 채소로 분류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채소로 분류되고 있으나, 유럽에서는 과일로 분류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렇게 다양하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책에 가득하다. 한국어를 사랑하는 모두가 이책을 소장하고, 틈틈이 옆에두고 읽었으면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체의 신은 죽었다
프리드리히 니체 &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강윤철 옮김 / 스타북스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니체! 내가 니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중학교 시절 서점에서 였다. 그때 돈으로 천원이면 작은 책한권을 살 수 있었다. 시중의 책을 글자 폰트를 작게하고 얇게 만들어 돈이 부족한 나에게는 참으로 좋은 책이었다. 그 책들 중에서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 나의 눈길을 끌었다. 그리고 그 책을 샀다. 그러나, 5장을 읽고는 다시 책장을 덮었다. 너무도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팟캐스트를 통해서 니체에 대한 다양한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니체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책을 꺼내 들었다.

 

1. 불친절한 니체씨!!

  니체는 불친절하다. 자신의 사상을 독자가 알기 쉽게 풀어써주지 않는다. 그런데, 이책의 출판사는 니체 만큼이나 불친절하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마틴 하이데거가 왜? 썼는지, 그리고 이러한 구성을 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독자에게 말해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출판사는 이러한 설명도 없이 독자에게 이 책을 읽으라고 한다. 1,2,3부를 읽으며, 이해가 되지 않으면 두번씩 읽으며, 4부의 마틴 하이데거의 '신은 죽었다. '라는 논문을 읽으면 니체에게 성큼 다가서리라 믿었다. 그런데, 아뿔싸!! 니체의 사상을 잘 이해하라고 구성한 4부가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니체의 사상에 대한 해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의 사상을 이해해야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이책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 바로 4부였다. 불친절한 니체씨 만큼이나, 하이데거도 불친절했고, 이들을 뛰어넘는 출판사의 불친절함은 나를 감탄하게 했다.

 

2. 여혐 니체!!

  니체라는 이름은 강한 느낌을 준다. 중세의 기나긴 시간동안 인간을 억압해왔던 종교에 맞서서, 당당히 신은 죽었다. 라고 외쳤던 니체!! 당당한 이미지의 니체가 여성 혐오자였다는 사실을 이책을 통해서 알았다. 믿겨지지 않았다. 니체를 연구하는 여자 학자도 있는데, 그 여성학자는 니체의 이러한 여혐론에 대해서 어떠한 기분이 들었을까?

 

"여자는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지 못하며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저없이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복수와 사랑에서 여성은 보다 야만적이다."

"여자를 만든 것이 신의 두번째 실수였다."

"여자는 깊이 있는 척하는 껍데기이다."

 

  왜? 이리도 니체는 여성 혐오자가 되었을까? 니체가 강하게 여성을 비하하고 열등한 존재로 규정할 수록, 니체가 측은해지는 것은 왜일까? 그 정답은 그의 인생을 통해서 찾아야하지 않을까? 니체는 아버지가 5살에 돌아가셨기에, 어머니를 비롯한 3명의 고모와 엘리자베트라는 여동생에 둘러싸여 살아야했다. 그는 여성의 옷을 입도록 강요받았다. 이러한 삶이 내면에 침잠하여 여성 혐오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니체가 '힘의 의지'를 추구 한 것도, 강한자가 되어 여성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니체의 '힘의 의지'는 단순히 '폭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적 불굴의 신념'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성성을 강요받던 니체는 이 강요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라도 '내적 불굴의 신념'이 필요했을 것이다.

 

"성적인 사랑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그러한 기대를 갖는 것에 대한 수치심이 처음부터 여자를 보는 눈을 망쳐 놓는다."

"늘 깜짝할 사이의 많은 어리석은 행동에 대하여 그대들은 연애라고 부른다."

"결혼하기 전 당신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보라. 즉 나는 이 여자와 늙어서도 여전히 대화를 잘 나눌 수 있을까? 결혼생활은 긴 대화이다."

 

결혼을 하지 않은 니체가 결혼에 대해서, 연애에 대해서 이렇게 깊이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뿐이 아니다. 여성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심리학자 황상민이 한말이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을 거꾸로 생각하며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 ' 여성에 대한 혐오와 결혼에 대한 많은 심오한 격언들은 그만큼 니체가 연애와 결혼을 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루 살로메와 연애하고 싶었고, 그녀와 결혼하고 싶었지만, 루 살로메는 니체를 거부했다. 루 살로메는 니체와 지적인 대화를 나누고는 싶었지만, 그와 잠자리를 같이하기는 싫었다. 여성으로부터 버림받고, 좌절받은 남자의 상처는 깊다.  2011년 오슬로 북서쪽 30Km에 위치한 노동당 청년캠프 행사장(우퇴위아 섬)에서 극우 청년에 의해서 테러가 일어났다. 그 청년의 말중에서 '나도 여자를 사귈것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또한 극우 청년으로, 여성혐오증을 가지고 있으며, 모범적 단일민족 국가로 한국을 뽑았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사랑은 분노로 폭발한다. 니체와 노르웨이의 극우청년의 경우,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었으나,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폭력적 말이나 행동으로 이것이 표출된 것은 아닐까?

  니체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철학자는 결혼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단지 소크라테스가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한다. 이는 결혼하지 못한 니체 자신에 대한 변명으로 들린다. '나도 연애하고 결혼하고 싶다!! 천재인 내가 무엇인 못나서 여성이 없겠는가?'라는 니체의 절규가 나의 귓가에 들린다. "모든 위대한 사랑은 동정의 단계를 초월해 있다." 진정한 사랑은 동정이 아니며, 상대를 동정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하나의 인간! 하나의 인격체로 사랑한다. 악마가 "신은 죽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 때문에 죽었다."라는 말을 했다는 말도 결국 동정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는 뜻이다. 니체는 여성에게 동정의 대상이고 싶지 않았다. 한남자로서, 사랑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루 쌀로메에게 니체는 동정의 대상! 그 이상은 아니었나 보다. 니체를 알면 알수록 그가 더욱 측은해지는 것은 왜일까?

 

3.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란 니체!!

 니체를 공부하면서 도올 김용옥 선생이 떠오른다. 크리스찬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현실 교회를 가장 날카롭게 비판한다. 그렇다고 그가 예수님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니체와 도올은 예수를 성인으로 인정한다. 가장 독실한 크리스찬이었기에 예수의 말과 달리살며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에 쓴 소리를 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신의 자식으로서 누구든다 동등하다. 그런데 예수를 영웅으로 만들어 놓다니!'라고 소리친다. 이 말은 '도마복음'에서 예수를 인간으로 표현한 것과 유사하다. 예수와 인간이 동등하다는 니체의 주장은 크리스찬들에게는 엄청난 발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나는 신에게 영예를 돌려 신을 악의 아버지로 생각"한다는 니체의 말을 가히 충격적이다. 더 큰 폭탄발언을 소개할까? "형제들이여, 내가 지어낸 이 신은 다른 신들이 모두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람들의 작품에 불과하며 망상에 불과하다.' 니체의 이 말은 자신을 전투적 무신론자로 규정한 니챠드 도킨슨을 떠올리게 한다. 크리스찬 가정의 엄격함이 니체를 이렇게 급진적인 철학자로 키웠던 것일까?

  "저 도덕이야 말로 위협가운데서도 가장 위험한 것이라면?"이라 주장하며 '도덕'에 대한 의심을 한다. 서구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윤리에 대한 의심은 보통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다. 한편으로는, 니체의 말이 타당해 보이기도 하다. 한사회에서의 도덕이 다른 사회에서는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된다.(공간의 차이) 또한 한시대의 도덕이 다른 시대의 부도덕일 수도 있다.(시간의 차이) 남편이 죽으면 부인이 따라죽는 사티라는 인도의 풍습 과거에는 도덕적인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시대 인도를 벗어나면 사티는 부도덕한 일이 된다. 그리고 오늘날 사티는 법으로 해서는 안되는 악습으로 규정되어 있다. 현실의 그 어떤 철창도 부수려했던 망치의 철학자 니체! 그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모든 억압을 부수려했다.

  니체를 대표하는 사상중에 하나가 '니힐리즘'이다. 허무주의!! 니체의 니힐리즘은 '최고 가치들이 가치 없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를 하이데거는 '종래의 가치들에 대한 부정은 새로운 가치 선정에 대한 긍정'이라고 말했다. 서구 기독교 도덕에 대한 '니힐리즘'은 새로운 시대의 도덕을 세우기 위한 창조적 파괴일지도 모른다.

 

4. 고통속에 철학을 꽃피운 니체!!

  이책 곳곳에 '병자', '고통',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자주 그의 글에 등장한다는 것은 그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질병',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니체가 매독을 앓기 시작했으며, 결국은 이 매독균이 뇌에 침투하여 그를 미치게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어느 팟캐스트에서는 뇌종양이 그를 괴롭혔고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인도했다는 주장을 했다. 매독과 뇌종양 중에서 한가지만이 니체를 괴롭혔다기 보다는 이 모두가 니체를 괴롭혔을 것이다.  

 

"괴로움이 철학을 낳는다면 만약에 생각 자체가 병으로 부터 압력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것인가?"

"우리 철학가들 역시 우리가 병이 났을 때는 우리의 몸과 영혼은 병에게 맡기고 우리 자신들로부터 눈을 감아버린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전혀하지 않은 것을 보는 것은 나에게는 무거운 일이다."

 

니체는 괴로웠을 것이다. 매독은 잠시 발생했다가 치료를 중단하면 잠복기에 들어가고 이 매독이 재발할 경우 척수에도 침투할 수도 있고, 뇌에 침투할 수 있다. 뇌에 침투할 경우, 매독성 치매로 진행된다.그 고통 속에서 니체는 고통과 죽음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니체는 이 고통에 무릎꿇지 않았다. 니체는 '그들에게 있어 삶에 대한 생각이 몇백배나 더 생각할 만큼 가치있는 것이 되도록'하겠다며 당당히 고통과 죽음에 맞선다.

  혹시 니체의 좌우명이 무엇인지 아는가? "상처에 의해 정신이 성장하고 힘이 회복된다."는 그의 좌우명은 고통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그의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모든 경우가 하나의 행운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이 그렇다.'며 고통의 극단인 전쟁을 찬미하는 어리석은 모습까지 보인다. 그만큼 그는 절실했다. 고통에 무릎꿇지 않으려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희망을 노래했다. '철학은 고작 신체의 해설과 신체에 대한 오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행해진 모든 철학의 목표는 진리가 아닌 다른것 '건강, 미래, 성장, 힘, 생명'이라고 말한다. 신체! 아니 건강한 신체를 그는 희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고통을 승화했다.

 

"내가 심하게 아팠던 시절에 얻은 이득을 난 아직도 다 소모하지 못했다."

"삶이란 또한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모든 것이다."

"오직 거대한 고통만이 영혼의 최종적인 해방자인 것이다."

 

  니체는 고통속에서도 철학을 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을 쏟아낸다. "가장 강한자로서 가장 정신적인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파멸을 보는 곳에서 행복을 발견한다."라는 그의 말은 병으로 무너져가고 있는 자신은 그 질병을 통해서 더 많은 깨달음을 얻을 것이며, 고통과는 상관 없이 행복하다는 신념을 말하고 있다.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떠오른다. 힘든 감옥속에서도 자신의 자유와 신념을 지키려는 지식인의 불굴의 신념이 떠오른다. 20여년을 감옥에서 보내며 인생과 고전의 지혜를 갈고 닦은 신영복이 생각난다. 니체에게 고통은 감옥이었다. 그러나 그 고통이라는 감옥에 굴하지 않고, 신영복이 고전의 지혜를 갈고 닦았듯이, 니체는 고통을 통해서 자신의 철학을 더욱 날카롭게 벼렸다.

  Amorfati(운명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서서히 죽어가는 니체는 절규한다. "적어도 나는 언젠가 반드시 하나의 긍정자가 되고 싶다."이 말은 지금은 긍정자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병마와 싸우며 긍정자가 되기 위해서 니체는 노력한다. "오늘 가장 좋게 웃는 자는 역시 최후에도 웃을 것이다." 지금 당장 웃는다면, 그는 죽을 때도 웃을 것이다. '영원회귀'라는 말을 이때 사용해야되지 않을까? '고통'이라는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긍정자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 니체!! 그는 초인을 찾는다. '초인이란 필요한 일을 견디어 나아갈 뿐아니라 그 고난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고통을 견디어 나갈 뿐만 아니라, 고통을 사랑하려하는 니체의 모습이 느껴진다. 세상에 고통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더 나아가 상대방의 아픔까지 사랑하는 자가 있을까? 있다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일 것이다. 사랑할때 우리는 고통을 인내하며 상대방의 고통까지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할때 초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자랑스럽게 사는 것이 그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사람은 자랑스럽게 죽어야 한다."

 

  니체는 자랑스럽게 살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죽음을 선택하고 싶었다. 그러나 니체의 이 소망을 이뤄지지 않는다. 1889년 투린에서 마부의 채찍을 맞는 말을 감싸 앉으며 그는 쓰러진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뛰어 넘어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려했던 초인은 그렇게 쓰러졌다. 그리고 10여년을 병실에서 살다가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한다. 그때가 8월 25일이었다.

 

5. 니체가 들려주는 아포리즘!!

  니체의 글은 문학적이며 많은 명언들로 가득차 있다. 이 책에 소개된 많은 명언들이 나의 가슴을 울리게 한다. 그 명언중에 일부를 소개해본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가 그 법칙을 획득해 낸 윤리 이외의 어떤 윤리도 알지 못한다."

  '그 법칙을 획득해낸 윤리'란 무엇일까? 외부에서 강요되거나 맹목적 복종을 요구하는 윤리를 구체적 '삶의 문답'으로 해부해내는 능력을 말한다. 노예의 윤리를 거부하고 당당히 자신의 윤리로 살면서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인간만이 웃음을 고안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깊이 괴로워하고 있다."

  동물중에서 '우울증'을 알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혹은 과로사를 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지 않을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가장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는 니체의 탁월한 지적은 한국의 현실에서 너무도 유효하다.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모든 것은 댓가를 필요로한다. 그런데 인간은 아무것도 버리고 싶어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얻으려한다. 희생없이 댓가만을 바란다면 그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사랑하는 여성을 원한다면 시간과 돈과 사랑을 한여성에게 쏟아야하듯이....

 

"알맞은 정도라면 소유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도를 넘어서면 소유가 주인이 되고 소유하는 자가 노예가 된다."

  황금만능의 시대! 감질! 금수저가 활개치는 시대! 우리사회에 적절한 니체의 명언이다. 회사원들을 자신의 기쁨조로 여기며 갑질을 해대는 재벌 2세와 3세는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로 인해서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진리는 힘이 필요로 한다."

  '정의는 힘이 필요하다.'라는 말로 치환가능하다. 정의도 진리도, 진실도 힘이 있어야 정의일 수 있고 진리일 수 있다. 세월호의 진실은 촛불혁명이라는 힘을 필요로했고, 그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다.

 

 

   니체는  "그 같은 자유정신은 존재하고 있지도, 전에 존재해 본 적도 없다."라고 말했다. '자유정신에 대한 부정이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몸이 약하고 지독한 고통속에서 살아야했던 니체에게 '자유정신'은 부정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이것이 건강한 육체에 대한 희구로 이어졌을 것이다.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읽으며, 나는 강한 니체의 모습이 떠오르기 보다는 아프고 고뇌하는 인간 니체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그 고통속에서 완성된 철학을 나의 지식으로 단시일내에 정복하기란 너무도 힘들다. "산맥 중에서 가장 가깝게 가는 길은 산봉우리에서 산봉우리까지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긴 다리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라는 니체의 말처럼, 그의 명언을 읽기 위해서는 긴다리가 필요했다. 나에게 긴다리가 없다면 긴 장대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어린시절 기다란 장대를 개울에다 짚고 반대편으로 넘어가던 일이 생각난다. 스타북스 출판사에서 만약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장대를 이책의 곳곳에 배치했다면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책을 읽기에 좀더 수월했을 것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20-09-0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너무 길어 앞에 조금 봤는데 시간이 많으신가 보네요. 저 같으면 리뷰 안 쓰고 책 한권이라도 더 볼 듯^^;;

강나루 2020-09-03 21:25   좋아요 0 | URL
독서 초보는 책을 읽고 독서를 좀한 사람은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독서 고수는 자신의 책을 쓰지요

candidx 2022-10-16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세한 리뷰 너무 감사합니다.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나루 2022-10-16 17:58   좋아요 0 | URL
도움이 되었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극한의 경험 - 유발 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희주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발 할라리!! '사피엔스'를 읽었을 때, 그에게 받은 강력한 계시(새로운 깨달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한권의 책으로 엮어 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역사를 새로운 역사로 바라보며, 나에게 강력한 계시를 주었다. 그의 전공이 중세 전쟁사이고, 한국에 번역된 책이 '호모 데우스'말고서도 2권이 더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모 데우스'도 '사피엔스' 만큼은 아니지만, 나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기에 그의 책을 더 읽기로 결심했다. '대담한 작전'과 '극한의 경험' 중에서 어느 것을 먼저 읽을 것이지를 고민했다. '대담한 작전'이 단편적인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보인 반면에, '극한의 경험'은 유발 하라리 만의 통찰이 묻어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이전에 전쟁하는 인간 '호모 벨리쿠스'가 있다."라는 표지글이 나를 강력하게 끌어 당겼다. 그리고 책장을 넘겼다.

 

1. 고통이 우리에게 새로운 '계시'를 줄 수 있을까?

  유발 하라리는 이 책에서 '계시(revelation)'이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계시'라는 단어를 종교적 의미의 단어로 받아들인다면, 이 책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오히려 '새로운 깨달음'으로 해석하는 것이 유발 하라리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깨달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통이 우리에게 '계시'를 줄 수 있을까? 특히 극한의 경험인 전쟁을 통해서 '계시'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본다. '군대 갔다와야 사람된다.'라는 말을 흔히 듣고, 번지 점푸를 하거나 커다란 동물을 사냥하고, 고통을 참을 줄 알아야 성인으로 인정하는 풍습이 인류의 문화 속에 녹아 있다. '고통'이 새로운 '계시'를 준다는 인류의 인식은 과연 타당한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의 머릿속을 맴도는 화두이다. 우리는 이 화두에 앞서 해답을 얻었던 씻다르타의 경험을 되새겨 보아야할 것이다. 씻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고행'을 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고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명상'을 한다. 그리고 그 명상을 통해서 위대한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다.

  반면 예수의 죽음, 십자가의 죽음, 예수의 수난 등, 서양 근대초기의 문화속에는 고통을 새로운 깨달음이나 개종의 장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많이 있었다. 상해를 무거운 벌로 다스리는 서양인들! 백인들의 경우, 동양인들 보다 진통제 처방을 많이 사용한다고 한다. 고통을 잘 참아내지 못하는 백인들이 오히려 고통을 통해서 계시를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인식을 만들어 낸점이 아이러니컬하다.

  진정으로 전쟁이라는 극한의 체험이 인간을 종교적 계시,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 수 있을까? 전쟁 후에 군인들이 수도원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유발하라리가 지적했듯이, 수도원에 상이군인 수용시설로 많이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한다면, 전쟁이 새로운 깨달음을 준다는 결론은 유보되어야한다. 예수회를 만든 로욜라도 전쟁의 참상을 보고 종교적 계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이뤄진 독서와 명상이 그를 새로운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전쟁이 계시를 주진않았다. 깊은 성찰과 독서가 그에게 계시를 주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 경험이 종교적 계시를 주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은 왜일까? 뇌과학에서 입증되었듯이,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단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뿐이다. 상이 군인이 은둔자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합리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귀향한 군인을 부모 형제들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기록을 유발 하라리는 전쟁이 이들을 성숙시켰기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이에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전쟁이라는 커다란 풍파가 그들을 빨리 늙고 살기 등등한 존재로 만들었을 뿐이다. 대학에서 복학한 예비역들이 아저씨 처럼 나이들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쉽게 이해갈 것이다.

 

2, 한국군대 문화의 뿌리를 해부하다.

  흔히들 우리 군대문화는 일제 강점기 일본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만주군과 일본군에서 군대생활하던 친일군인들이 한국군의 주류가 되었고, 그들이 만든 한국군에는 일본군에서 흔히보이는 구타와 얼차려 등의 비인간적인 악습들이 그대로 일제의 잔재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조국을 위해서 스스로 독립군에 입대한 군인들에게는 구타와 무조건적 강요가 필요 없을 것이다. 반면에 강제로 군대에 끌려와 자신과 상관없는 전쟁에 동원되는 사람을 움직이려면 구타와 강요는 필연적이다.

  현재 우리군의 모든 악습은 일본군에서 왔다는 선입견은 타당할까? 유발 하라리는 나에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군대가면 똑똑한 사람도 생각을 못하는 멍청한 행동을 한다. "내가 왜그랬을까?"라는 말을 외치며 얼차려를 받는 훈련병들을 생각하면, 군대에 들어와서 왜? 생각을 못하는 존재로 변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군대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가 된 것은 데카르트 때문이었다. 데카르트? 그는 위대한 철학자가 아닌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한 그가, 군인을 생각하지 않는 존재로 만드는데 기여를 했다니..... 그러나 사실이다. 데카르트는 프랑스의 젊은 귀족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서 장교로 입대했으며, 30년 전쟁이 한창일때 보헤미아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서 가던 중에, 화로에 몸을 녹이다가 '고기토 에르고썸'을 생각해 낸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군대에 적용된다. 데카르트의 정신이 육체를 통제하듯, 장교들이 사병을 확고히 통제하도록 군대가 만들어진다. 머스킷총 발사에서 장전까지 32개의 개별동장으로 나눠 반복 연습시키고, 기계처럼 전장에서 총을 쏘도록 훈련시킨다. 아는 것이 가장 적은 사람이 가장 잘 복종한다. 사병은 생각하지 않는 육체적 존재로 전락한다. 오직 생각은 장교들이 할 뿐이다.

   정신과 육체라는 이분법적 생각! 그리고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데카르트의 사상은 놀랍게도 한국군에서도 목격된다. 군에 입대하고 특히, 신병교육대에서 오직 생존만을 생각하며 군사훈련을 받았다. 생각하는 존쟁기 보다는 조교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기계로 만들어졌다.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도 시키는데로만 하면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계급이 올라가 생각을 해야할 때는 머리가 아팠다. 군대는 나를 기계적 존재로 만들어 갔다. 그 시초는 데카르트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3. 생각하는 군대가 강한 군대이다.

  17.18세기 구체제 군대는 나폴레옹의 군대에게 철저히 유린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구체제의 사병들은 감시의 대상이었다. 언제 탈영할지 모르기에 산림에서 산개대형의 훈련을 하지 않았다. 오직 연병장에서 기계와 같은 반복된 훈련만을 했다. 기병은 적을 감시하기 보다는 보병의 탈영을 감시했다. 이는 군사천재였던 프리드리히 대왕의 군대도 마찬가지 였다. 더욱이 프로이센 군대는 '태형'이라는 악습이 오랫 동안 남아있었다. '태형'과 같은 강한 체벌은 군인의 명예심을 말살 시키고, 전투의지를 상실시킨다. 군인 개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군대와 스스로 생각하고 그들을 고귀한 인간으로 대하는 프랑스군대 중에서 어느 군대의 전투력이 강하겠는가? 구체제의 군대가 프랑스군대의 문화와 훈련법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프랑스군대는 연전연승을 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지 않은가? 프로이센의 군대에서 보였던 감시와 처벌이라는 문화가 한국군대에도 있다. 내가 군복무 중에도 구타는 암암리에 있었다. 구타를 없애려는 노력을 군대를 몰라서 하는 망상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도 많았다. 생각하지 말고 선임병의 명령에 복종만 할것을 강요하고 이를 따랐다. 프랑스 군대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도록 훈련받았다. 부사관도 사병도 작전계획을 이해해야한다고 프랑스 군은 믿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로봇군대! 스스로 생가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훈련중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하고 무조건 뛰도록 훈련받았다. 우리군대문화는 아직도 프랑스 군대의 앞선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프로이센 군대의 낡은 문화에 취해있다. 적어도 내가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까지는 말이다.

  클라우 제비츠는 '전쟁론'에서 "군대 정신이 훈련 숙달보다 훌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군대를 강한 군대로 만들고 싶다면, 생각하는 군대, 군인에게 강한 자부심을 주는 군대 문화를 만들어야할 것이다.

 

4. 전쟁이 계시를 준다는 믿음의 탄생! 그리고 비극의 시작

  낭만주의와 민족주의가 광기처럼 퍼져나가면서 전쟁을 '숭고한 것'으로 여기고 '평화를 상업적 정신을 따르는 천박한 사리사욕'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참전 경험을 '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인식과 경험'이라며 동생의 입대를 축하하는 사람까지 출현한다. 낭만주의 시기에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싹이 트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체험이 축복일 수 없다. '평화만 아니라면, 그곳에서 겪은 것을 제 아이에게 경험하고 싶'다는 글 속에서 소름돋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전쟁의 경험을 새로운 계시를 받는 숭고한 경험으로 생각하는 수 많은 사람들이 출현한다. 물론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환멸을 느끼고 자신이 생각했던 전쟁의 숭고함이 망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는 탈영을 결심하는 병사들도 출현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병사들의 깨달음이 낭만주의와 민족주의라는 커다란 '주의'를 꺾어 놓지는 못했다. 그리고 1차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소위 남자다움을 폭력과 근육에서 찾는 사람들이 있다. 남자라면 군대에 갔다와야 사람이된다고 생각하는 살마들! 남자는 거칠고 강하게 키워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이러한 믿음이 더큰 폭력을 낳고 인류를 파멸로 몰아 넣는다. 진정한 남자다움은 인간다움에 있다는 사실을 우린 기억해야한다. 폭력은 숭고한 것이 아니라 야만적인 것이며, 근육은 남성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미일 뿐임을 깨달아야한다.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사담 후세인"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이책을 저술했다. 전쟁을 빼 놓고 인류의 역사를 서술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연구할 수밖에 없다. 유발하라리의 전쟁 문화사 '극한의 경험'을 통해서 새로운 계시를 얻었다. 그것은 강한 군대는 폭력에 의해서 병사를 기계로 만들으로써 완성되는 것아 아니라, 존중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군대로 탈바꿈함으로서 이뤄질 수 있다는 진리이다. 우리 학교도 마찬가지다. 강하게 학생을 억압함으로써 명품교육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함으로써 참된 인간을 길러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