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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말, 말, 말
제임스 잉글리스 지음, 강미경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세계적인 명언과 연설들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다. 인간의 말은 맥락속에서 이해해야한다. 여론을 호도하는 극우 정치인들은 특정인의 주장을 앞뒤 맥락을 잘라버리고 자신이 편리한데로 이해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악날한 수법을 사용한다. 맥락을 떠난 말은 진실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진실을 알고 싶다면 그 말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아야한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말들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 말들의 앞뒤 맥락을 살펴보며 그 말들의 위력을 이해해 보고 싶었다.
1. 연설문 선정의 빛과 그림자
이 책의 저자 제임스 잉글리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다. 서양인이라는 그의 출신은 세계적 명연설을 선정할때도 그 한계가 드러났다. 동양의 명연설문은 간디의 연설문과 전범 히로히토 일왕의 연설이 전부이다. 최소안 동서양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없었다. 반면에 호주인인 그는 호주 출신의 명연설문은 꼼꼼히 챙겨 넣었다. 너무도 서양중심의 편향적인 연설문 선정이다. 제갈량의 '출사표'와 단재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을 비롯한 수많은 명문을 넣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
이 책이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페리클레스의 전사자 추도 연설' 처럼 역사의 격랑속에서 이뤄진 명연설문을 만나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성 인권과 참정권에 관한 연설문을 비롯해서, 흑인 인권과 관련된 연설문을 수록했다. 이 책의 원제목이 'Fighting talk'이다. 단지 전쟁에 관한 연설문만을 싣지 않고 흑인 인권과 여성의 권리에 대한 연설을 빼놓치 않은 것이 이책을 더욱 빛나게한다. 물론, 흑백 인종차별 문제가 심각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저널리스트이기에 흑백 인종문제의 중요성을 중요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2. 나의 가슴을 울린 말들!!
세계의 명연설문을 묶어 놓은 이 책속에는 나의 가슴을 울린 말들이 많다. 그중에서 일부를 뽑아서 그 감동을 나눠보자.
"악에 협조하지 않는 것은 선에 협조하는 것만큰이나 중요한 의무입니다." - 마하트마 간디-
'간디평전'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연설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부역했는가? 4대강 사업에 협조하며, 때로는 침묵으로 그들에게 동조했다. 그들에게 빌붙어서, '폭식투쟁'을 하는 일배충들이 날뛰는 아비지옥이었다. 최소한 그 악의 세력에 동조하지 않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를 쓴 저자중에는 내가 아는 사람이 2명이나 있다. 한명은 대학교시절 교수라는 작자고, 한명은 대학원에서 만난 사람이다. 최소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박근혜정권의 국정교과서 작업이 얼마나 우리 역사교육을 뒷걸음치게하는가를 알고 있을텐데, 그들은 박근혜정권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다. 그들은 더이상 '교수님',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암흑의 9년이라는 시간 을 버틴,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은 당신은 용기있는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들이 아버지를 묻는 것보다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만큼 어리석은 자는 세상에 둘도 없다." -헤로도투스-
평화시에는 아들이 어버지를 묻지만, 전쟁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가슴에 먼저 묻는다. 전쟁은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그 전쟁을 미화하며 '숭고한 전쟁'이라 말하며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떠미는 전쟁광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헤로도투스는 전쟁의 비극적 속성을 한마디로 잘 말하고 있다.
"사랑의 반대는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예술의 반대는 추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신앙의 반대는 이단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그리고 생명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라 무관심이다."-엘리 위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작가 엘리 위젤은 절규한다. 인류의 죄악에 무관심할때 그 악은 다시 고개를 들어 우리를 바라보게 된다. 시간이 지날 수록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이 무뎌지는 현실을 보며 엘리 위젤은 악이 다시 고개를 들것이라 몸서리쳤을 것이다. 그이 말대로 관심이 없다면, '사랑, 예술, 신앙, 생명'이 지속될 수 없다. 관심에서 '사랑, 예술, 신앙, 생명'이 지속될 수 있다. 우리 인류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관심에서 시작된다. 요즘 문제가 되는 예멘 난문문제를 비롯해서 팔레스타인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관심'에서 부터 출발한다.
"친애하는 세계 시민 여러분, 미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지 묻지 말고 인간의 자유를 위해 우리가 함께 손잡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물어보십시오."-존F.케네디-
우리주변에는 누군가가 자신에게 행운을 주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많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으려는 노력을 하기보다는, 부모 혹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행운을 주길 바라는 사람이 많다. 예전에 교장의 갑질을 보면서 어느 선배교사가 "아니, 왜? 전교조는 뭐하는거야!"라는 말을 나에게 했다. 그 선배교사는 전교조가 모든 학교문제를 앞장서서 해결해주기를 바라는 투였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선생님은 전교조에 왜? 안들어오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 교사라는자는 전교조의 문제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용기가 없어 교장의 갑질에 숨죽이는 비겁한자가,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앞장서서 갑질에 대항해주길 바라면서, 그들은 절대 전교조와 같이 연대하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교조를 욕하면서 전교조가 일구워 놓은 곡식만을 거둬들이려한다. 그들에게 케네디의 말을 해주고 싶다. 옥토를 물려주지 않은 부모를 원망하기 보다는, 자신이 개척할 황무지를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라! 황무지를 옥토로 일굴 수 있는 부모에게 축복을 주어라! 누군가 자신에게 행운을 주기만을 바라는 거지 근성을 버려라!
"우리는 이라크 국민을 해방시키러 들어가는 것이며, 저 고대의 땅에 깃발이 휘날린다면 그것은 그들의 깃발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존경심을 보여라."
"제군은 전투에서는 인정사정 두지 않되 승리에서는 관대해야 한다."
"(이라크) 그 나라에 가거든 살살 걸어라. 아무리 사소한 것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 이라크 국민처럼 고결하고 관대하면서도 올곧은 국민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팀 콜린스 중령-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기 전, 쿠웨이트 사막의 포트 블레어 메인 기지에서 콜린스는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감동적인 연설을 약800명의 미군에게 한다. 이것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군 장교의 연설이라면 당신은 믿겠는가? 미군이 1945년 9월에 인천항을 통해서 한반도에 들어서면서 그들은 '점령군'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2003년 미군은 스스로 '해방군'으로 이라크에 간다고 말하고 있다. 만약 미군에 팀 콜린스 중령과 같은 군인들만 있었다면, 이라크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됐을 것이다. 전쟁터로 가는 미군이 자신의 적국 국민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존경심을 보이라는 연설을 한다. 이것이 그대로 실천되었다면, 미국은 존경을 받았을 것이다. 미군 최고 책임자, 부시 대통령 밑에 어찌 이리도 참다운 군인이 있을 수있는가?라는 의문이 계속해서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장교가 꿈인 학생들에게 읽히고 싶은 명연설문이다.
"아내의 잘못에는 눈을 감고
아내의 미덕에는 후하게 칭찬하라."-윌리엄 피트가 영국 하원 연설에서 프라이어의 시를 인용-
무릎을 탁치게하는 명언이다. 두고두고 마음에 새겨야하는 시구절이다. 아내의 잘못에 눈을 감고 아내의 미덕에 후하게 칭찬해야 가정이 화목하고 평온해진다. 그런데 그것이 잘되지 않는다. 특히 아내의 미덕을 후하게 칭찬하지 못하는 나를 자주 발견한다. 무덤덤한 한국남자의 한계를 이제는 극복해야겠다.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
3.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못합니다.
이원복교수의 연수를 듣다가 놀랐던 기억이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으며, 소크라테스는 국가를 가장 중요한게 생각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도덕교과서의 서술은 잘못된 것임을 법원에서 판결로 이미 결론지었다. 그런데 이원복교수는 아직도 소크라텟가 악법도 법이라고 말했다 강의하고 있으니 너무도 어이가 없었다. 독재정권시절에 만들어진 잘못된 지식이 민주정권이 들어선 지금도 횡횡하는 현실을 보면서 을씨년스러운 느낌이든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유죄판결을 받고 죽었을까? 그의 마직막 변론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좀 우스운 표현을 사용하자면 등에 처럼 성가신 나란 사람은 실은 신이 이 나라에 보냈습니다. 이 나라는 덩치가 커서 움직임이 굼뜬 준마와 같아서 생기를 불어넣을 자극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신이 하루 온종일 어디서나 여러분에게 들러붙어 일깨우고 설득하고 꾸짖으라고 나 같은 등에를 이 나라에 보낸 것입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테니 나를 살려두는 게 좋을 겝니다."
신에 대한 불경죄와 젊은이들을 오염시켰다는 죄목으로 기소된 그가 배심원들에게 할 수있는 말이 아니다. 그의 변론을 읽으면 그가 과연 살고 싶어서 이런말을 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든다. 소크라테스는 배심원들을 내려다보며 꾸짖고 있다. 배심원들은 소크라테스를 제정신이 아닌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아슬아슬하게 유죄판결이 나온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소크라테스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내가 닭 한 마리를 빚졌네. 기억해 두었다가 갚아주게"라고 했다. 의술의 신에게 빚을 졌다는 말을 통해서 그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죽음을 택했고, 그래서 배심원들의 유죄선고를 유도했다는 점에서 그는 탈출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독배를 마셨다. 자신의 이상을 위해서..
우리가 아는 명연설중에 페리클레스의 전사자 추도 연설을 빼놓을 수 없다. 세계사 시험문제 지문으로도 자주나오는 이 명연설을 직접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도 무척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페리클레스의 명연설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없는 내용이 있다.
"아직도 출산할 수 있는 나이라면 죽은 자식을 대신할 자식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기운을 내십시오. 새로 태어난 자식은 잃어버린 자식을 잊게 해줄 뿐만 아니라 부국강병에도 기여할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에게 할 말인가? 개인을 부국강병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고 있다. 마치 개인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처럼 들리는 이 연설을 21세기에 한다면 아마도 수많은 여성들의 미투의 대상이 될 것이다.
요즘, 미투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찍이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턴의 연설을 읽으면, 몹시 불편한 느낌이 많이 든다.
"남성성은 파괴적이고, 고집스럽고, 이기적이며, 과정이 심하고, 전쟁과 폭력과 정복과 탈취를 사랑하고,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모두에 불화와 무질서와 질빙과 죽음을 야기합니다."
워싱턴에서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며 이러한 연설을 한 그녀를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여성과 남성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화합의 관계여야한다.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주어야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적으로 돌린다면 인류는 생존할 수없다. 나의 주장이 옳다고 타인의 인격을 말살하는 행위는 인류를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여성이 권력을 쥔다고 반드시 여성성을 발휘하여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 전대통령을 보면서 과연 여성이 권력을 쥐면 반드시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볼 수있을까? 남성이든 여성이든 권력을 쥐면 누구든지 폭군도 될 수 있고, 현군도 될 수있다. 남성과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 각각의 그릇의 차이이다. 권력을 참되게 행사할 수 있는 그릇이 아닌자가 권력을 갖게되면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의 여성운동도 서로를 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화합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루디 줄리아니 유욕 시장의 명연설을 읽으며, 그의 테러없는 세상을 향한 이상에 공감한다. 그러나 테러의 원인을 다각도로 보지 못한점은 매우 아쉽다. 9.11테러의 원인을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찾는 의견이 많다. 오사마 빈라덴이 사실은 사우디의 부잣집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가 왜? 반미주의자가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다. 지금 서아시아(중동) 문제의 근본적원인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순 중에 하나는 강대국들! 정확히 이야기하면 매이져 석유기억들이 너무도 싼값으로 석유를 중동에서 사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의 자원이 강대국들의 매이져 기업들에 의해서 헐값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분노를 쌓았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과 아프카니스탄 전쟁을 거치면서 테러리스트들은 그 분노를 더욱 키웠다. 마침내 'IS'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라는 괴물을 키우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졌다. 이책에 소개된 많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연설을 쫒은 결과는 너무도 참담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용서'와 '사랑'일 것이다.
하임 헤르조그의 '시오니즘은 인종주의'라는 유엔 결의안에 대한 반박 연설을 읽으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하임 헤르조는 나치에 의해서 벌어진 '크리스탈나흐트(수정의 밤)'사건에서 이야기를 출발한다. 마치 시오니즘을 인종주의로 규정한 사람들이 나치의 동조자인 듯한 인상을 주는 연설을 읽으며, 오늘날의 팔래스타인 문제가 떠올랐다. 어제의 약자인 유대인들이 오늘의 강자가되어, 오늘의 약자인 팔래스타인인들에게 가하는 참상이 떠올랐다. 폭력은 대물림되는 것일까? 어제의 피해자가 오늘의 가해자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길이 없다.
4. 연민의 글
강해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때로는 연민의 정이 든다. 강철같은 심장을 가졌을 것으로 생각되는 엘리자베스 1세, 사자의 심장을 가진 맹수로 보이는 나폴레옹! 그들의 글에서 오히려 연민이 느껴진다.
이 책에 따르면 엘리자베스는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통념을 거부하면서 예사로 침을 뱉고, 욕설을 일삼고, 맥주를 즐겨 마셔 백성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당신은 이 글을 읽으며 어떤 마음을 들었는가? 엘리자베스에게서 정이 떨어졌는가? 나는 오히려 그녀가 애처럽게 보인다. '천일의 앤'이라는 이야기로 유명한 그녀의 어머니는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했다. 가장 행복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여야할 부부가,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고 죽임을 당하는 관계가 되었을 때, 자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남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그녀는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왜곡된 남성상은 그녀를 불행에 빠뜨렸다. 그녀는 '국가와 결혼했다.'라고 말하며 결혼을 거부한 것도 그녀의 불행한 가정사에서 비롯되었다 본다. 남자를 사랑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은 상처를 받았다. 누구도 그녀의 아픔을 보듬어줄 수없었을 것이다.
"프랑스, 군대, 조세핀"-나폴레옹-
나폴레옹이 1821년 죽음에 임박했을 때, 그의 본처 조세핀의 이름을 불렀다.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그녀와 이혼했다. 그리고 아들을 얻었지만, 그는 황위를 잃어버린다. 조세핀과 있을때, 그는 인생의 오르막길에 올랐고, 그녀를 떠나보면서 그의 인생도 내리막길을 걷는다. 죽음의 모래시계가 떠날때를 알릴때, 그는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면서 얼마나 많은 회안을 느꼈을까?
"그대의 선조들이 큰 물을 건너 이섬에 상륙하면서 말이오. (중략) 그러면서 조그만 자리 하나만 달라고 청했소. 우리는 그들을 가엾게 여겨 그 부탁을 들어주었고, 그들은 우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소. 우리는 그들에게 옥수수와 고기를 주었으나, 그들은 그 보답으로 우리에게 독을 주었소."
"형제여, 예전에는 우리의 자리가 넓었고 그대들의 자리는 무척 좁았소. 이제 그대들은 아주 큰 민족이 되었고, 우리에게는 담요를 펼 곳마져 남아 있지 않소. 그대들은 우리나라를 온통 차지해 놓고도 만족할 줄을 모르는 구려. 우리에게 그대들의 종교까지 강요하려 들다니 말이요."-사고예와타 추장-
청교도들을 환대하며 친구로 대해주었지만, 그들은 인디언친구들의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낯선 사람이 오면 환대하라 가르친다. 그러나 진정으로 환대한 것이 오히려 독으로 되돌아 오기도한다. 사고예와타 추장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한다. 환대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환대받을 가치가 있는자에게만 환대를 해야한다. 환대할자와 환대하지 말아야할자를 구분하는 능력을 우리는 가지고 있는가? 제주도의 예멘 난민들은 환대의 대상인가? 환대하지 말아야할 자인가?
"오스트레일리아 노동자들은 영국의 대의가 정당하다고 굳게 확신하기에 그 중추가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전력을 다해 기여해왔습니다.(중략) 그들의 조상은 잉글랜드에서, 아일랜드에서, 스코틀랜드에서, 웨일스에서 왔습니다. 그들은 영국 국민을 수세기에 걸쳐 결집시켜온 핏줄과 영광과 말을 물려받았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종과 언어가 본토와 같은 영국 땅입니다."-존 커틴-
영국의 이익이 자신들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생각을 읽으며 착잡한 연민을 느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영국을 위해서 전쟁에 뛰어들었지만, 일본군이 남진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협하자 영국은 과연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해서 싸웠을까? 처칠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시아를 일본에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미국 군대를 영국 방어에 투입한다는 내용의 비밀협정을 루스벨트 대통령과 체결하기도 했다. 스스로를 영국인으로 착각하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의 모습을 보면서 착잡한 연민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이 책에는 우리의 피를 끓게하는 많은 연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 연설들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중에서 '징병과 전쟁을 비판한 무정부주의자의 연설'을 한 에머 골드먼이 가장 인상적이다. 그녀는 투옥과 추방을 여러차례 당하면서도 불굴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미국 국민 모두가 들고 일어나 우리는 누가 뭐래도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미국의 남녀 무구에게나 자유와 기회를 의미하는 그런 민주주의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라고 외친다. 그녀는 온몸으로 주어진 천국은 없음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천국을 원한다면 당신이 사는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라고 우리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과거 이명박근혜정권에서 새로운 천국을 맛보기 위해서 이민을 가려는 자들이 많았다. 그러나 천국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땅을 천국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은 어느곳에서도 천국을 발견할 수 없다. 이땅이 지옥이라면, 우리 다함께 이땅을 천국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자! 그것이 이땅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자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