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전쟁 화폐전쟁 1
쑹훙빙 지음, 차혜정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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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도널드 트럼프와 시진핑간의 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기울어져가는 미국은 마지막 발악을 하며, 힘겨운 몸뚱이를 움직여 중국에게 한방을 날리고 있다. 대국굴기를 외치며 발톱을 드러내고 표효하는 중국과 예전의 기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직 커다란 덩치로 한방을 날릴 수 있다는 미국의 대결을 바라보며,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길을 물어본다. 21세기 패권경쟁은 군사무기를 앞세운 하드파워가 아니라, 화폐를 앞세운 소프트파워 게임으로 진화했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의 핵심에는 '화폐'가 있다. 달러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위안화를 앞세워 이에 도전하는 중국의 게임은 누구의 승리로 결론 내려질까? 그래서 '화폐전쟁'을 꺼내들었다. 이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유튜브에서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았다. 쑹훙빙이 음모론적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았으며, 야사는 야사에서 그쳐야한다는 실날한 비판까지 있었다. 다른 한쪽에서는 현대 세계를 움직이는 금융재벌의 위력을 파헤쳤다며 그를 찬양한다.  과연 이책은 음모론을 확대 재생산한 3류 소설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냉혹한 진실을 해부한 명저일까?

 

1. 세계사의 모든 일은 로스챠일드 가를 중심으로한 금융재벌이 계획하고 실행한일인가?

  '로스챠일드가'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세계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은 빌게이츠도 워렌 버핏도아니다. 바로 로스챠일드가이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그들이지만,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며, 세계의 금융을 지배한다. 이러한 로스챠일드가로 대표되는 금융재벌들은 대서양을 건너서 미국에 상륙한다. 그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치인들을 키워내고 그들이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의문의 암살을 당한다. 암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모두 미치광이 행세를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읽으며, 당신의 느낌은 어떠한가? 등골이 오싹하고, 세계를 움직이는 이 세력들에 의해서 우리 대한민국도 IMF 경제위기를 맞이했다는 말에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가?

  미국 대통령 암살률이 노르망디 상륙작전때 사망한 비율보다 높다는 다소 선정적인 말들이 중반부까지 계속된다. 한편으로는 놀라움이 계속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도 음모론적이라며 의문을 제기해본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사 지식과는 너무도 다른 관점의 이야기들은 나를 혼란하게 한다.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로스챠일드가를 중심으로한 금융재벌에 의해서 이뤄졌다는 몇가지 세례를 살펴보자.

  첫째, 영안과 도스안이 히틀러를 위한 금벌들의 조치이다(?). 영안과 도스안은 독일이 베르사유조약의 가혹적 배상금으로 인해서 배상금을 갚을 길이 없어서 취해진 조치로 알려져있다. 과도한 배상금 요구가 세계 평화에 독이된다는 판단하에 이뤄진 조치를 쑹훙빙은 독일의 재무장을 도와 주기 위해서 금벌이 중심이 되어 취한 조치라고 설명한다. 만약 이 말이 맞는 말이라면, 이러한 금벌들의 행위는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성을 추진한 행동과 상충된다. 쑹훙빙은 베르사유 조약의 가혹한 배상금 요구 조항은 제2의 전쟁을 유발할 것이라고 게인즈를 비롯한 영국의 로이드 조지 총리와 외무장관 거즌도 예견했다고 서술한다. 그럼에도 가혹한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금융재벌 때문이라 말한다. 독일에게 가혹한 배상금을 물리고, 그 배상금을 탕감해주는 정책을 금융재벌이 벌였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약해보인다.

  한편, 쑹훙빙은 금벌세력의 도움으로 히틀러는 현대식 무기로 빠르게 재무장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쑹훙빙은 영안과 도스안이 히틀러를 위해 금벌이 취한 조치라는 결정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히틀러는 제2차 세계 대전에 대비해서 철저히 재무장화 하지 못했다. 즉, 영국이 독일에 선전포고 하자, 부관들에게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한다. 폴란드를 침공해도 영국은 선전포고하지 않을 것이며, 전쟁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히틀러도 연합군과 전쟁을 바라지 않았다.

  둘째, 세계 대전 뿐만 아니라, 1929년 세계 대공황도 로스차일드가를 대표로하는 국제 금융 재벌이 일으켰다(?). 전쟁은 모든 시설을 파괴하고 많은 인명을 살상한다. 과거의 전쟁과 달리 현대전의 파괴력은 엄청나다. 그런데, 쑹훙빙은 세계 대전을 일으키도록 막후에서 조정한 것도 국제 금융 재벌이며, 대공황을 일으킨 것도 국제 금융 재벌이고, 히틀러를 도와준 것도 국제 금융 재벌이라 주장한다. 제1, 2차 세계 대전은 과거의 전쟁과 다르다. 그 파괴의 규모와 위력이 이전의 전쟁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은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보내는 대학살극을 만들었다. 유대인인 로스차일드가가 유대인을 학살한 히틀러를 도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도록 조장했다는 설명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심장에 칼을 겨누는 사람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서아시아의 팔래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건국하는데 가장 큰 노력을 한 가문이 로스챠일드 가문이 아니던가? 쑹훙빙의 주장을 믿기 위해서는 로스차일드가를 비롯한 금융재벌들이 이러한 일들을 조작하고 실행했다는 1차 자료를 제시해야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로서는 하나의 가설이라 치부할 수밖에 없다.

  셋째, 1973년 제4차 중동 전쟁도 국제 금융 재벌에 의해서 발발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부추겨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하고, 미국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들어 아랍인들의 화를 돋구게 했다는 쑹훙빙의 주장 속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1차 자료는 제시되어 있지 않았다.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할 때는 반드시 핵심 고리를 설명해야하며, 그 핵심 고리를 설명할 때는 반드시 움직일 수 없는 1차 자료와 근거를 제시해야한다. 그러나 쑹훙빙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자신의 설명을 덧붙였다. 물론 그러한 설명은 이후에 전개되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제휴를 설명할 수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대금으로 달러만을 요구하면서 '석유본위제' 시대로 접어든 배경을 설명하기에 매력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금융 재벌이라는 단어를 빼고 미국 정부라는 단어를 집어 넣어도 성립한다. 국제 금융 재벌이 이집트와 시리아를 부추기지 않았는데, 전쟁은 발발했고, 이에 따라서 미국은 치솟아 오르는 석유 가격을 다잡고자, 사우디 아라비아에 접근해서 군대가 없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방을 책임지는 대신에 석유를 결재할 때, 달러를 받고, 그 달러로 미국의 국채를 사도록 혁상했다고 설명해도 된다. 즉, 쑹훙빙의 주장은 국제 금융재벌이 일련의 사건을 일으켰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기에 나에게 확신을 주지 못했다.

  그렇다면, 쑹훙빙의 책은 그의 창작에 의해 만들어진 재미있는 음모론일까? 그리고 읽을 가치가 없는 하나의 가쉽꺼리일까?

 

2. 모든 금융위기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가?

  유튜브의 유명 경제 강사는 쑹훙빙의 '화폐전쟁'을 음모론으로 규정한다. '음모론은 음모론으로 그쳐야한다.'라는 단언까지 한다. 그렇다면, '화폐전쟁'이라는 책은 읽을 가치도 없는 쓰레기 일까? 그의 책이 엄청난 인끼를 얻으며 '화폐전쟁4'까지 출간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책이 현대 금융세력의 행태를 이해하는데 많은 혜안을 준다는데 있다. 과연 그 혜안은 무엇일까?

  첫째, 쑹훙빙은 '화폐전쟁'에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와 금융 쓰나미를 예측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의 양적 완화까지 예견했다. 사후에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를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말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는 허풍쟁이도 많다. 그러나 사건이 발발하기 전에 그 사실을 미리말하고 각성하도록 목청껏 외치는 사람은 드물다. 쑹훙빙은 미국의 서브프랑임 위기와 금융 쓰나미를 정확히 예측했다. 그의 책 곳곳에는 현대 금융 세력의 탐욕과 추퇴가 서술되어있다. 그리고 그 글에는 금융세력에 대한 분노가 녹아있다.

 

  "모든 금융위기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정확한 각본에 따라 발생하며, 번쩍거리는 은행 빌딩은 하나 같이 수 많은 파산자의 희생위에 지어진다."

 

  '모든 금융위기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정확한 각본에 따라 발생'한다는 전제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 그러나 '번쩍거리는 은행 빌딩은 하나 같이 수 많은 파산자의 희생위에 지어진다.'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2011년 수많은 미국의 청년들이 분노에 차서 '월가를 점령하라'라고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들은 알고 있다. '모든 금융위기는 오래전부터 준비된 정확한 각본'에 따라서 발생한다고 확정지을 수는 없으나, '번쩍거리는 은행 빌딩은 하나 같이 수 많은 파산자의 희생위에 지어진다.'라는 말이 진실에 가깝다는 사실을 그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다.

  미국의 금융재벌은 갖가지 현란한 금융기법을 동원해서 부채를 자본으로 둔갑시킨다. 부채가 자본이 되는 사회!! 그것이 현대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현실을 잘 말해준다. 부채는 부채일 뿐이다. 그것을 자본으로 둔갑시키고, 갖가지 최첨단의 금융상품을 만들어낸다. 써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발생한 것도 '써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최첨단 금융상품을 만들어낸 것도 미국의 금융재벌들이다. 핏땀흘려 돈을 벌기 보다는 현란한 돈놀이를 통해서 부를 축적하려는 그들의 행태는 부실 금융상품을 현란한 포장과 수학적 수식을 동원해서 우량 상품으로 둔갑시킨다. 그리고 언론은 이를 '선진 금융 기법'이라 찬양한다. 그리고 그 폭탄이 월가를 넘어서 세계로 확산되고, 많은 성실한 사람들의 재산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과연 한국의 전문가들 중에서 미국 금융세력의 도덕적 헤이를 정면으로 비판한 사람이 있었는가? 단순히 쑹훙빙을 음모론자로 몰아붙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둘째, 금융재벌들의 개발도상국 교살을 폭로했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금융위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조지 소로스를 대표로하는 유동성 투자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한나라에 투자해서 그 나라를 잡아먹기 좋도록 살을 찌우고 일시에 돈을 빼내서 그나라의 경제위기를 조장한다. 헐값에 나온 기업들을 사들여 타국의 피와 땀으로 자신의 배를 채우는 투기세력에 대해서 그 실체를 규명하고 비판하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신자유주의 경제 이론에 매몰되어 경제 뒤에 숨겨져 있는 검은 세력들의 만행과 의도를 읽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런데, 쑹훙빙은 일명 금융재벌의 '양털깍기'를 정확히 지적하고 그 뒤에 검은 세력이 있음을 고발했다. 그리고 쑹흥빙은 '미국은 국채를 갚을 의지가 없다.', '국채가 매우 유용하다.', '(국채가) 경제의 복음'이라 주장한다. 급기야 일비 경제학자들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의 과다한 저축이 세계 경제 구조의 균형을 깨는 근본원인'이라 주장하기 까지 한다. 자본주의의 탐욕에 취해서 국제 금융 세력의 입맛에 맞는 말들을 앵무새처럼 지저기는 그들을 보면서, 지금의 자본주의가 과연 지속가능한가에 대해서 심각한 회의를 느낀다.

  가장 심각한 사실은, 국제 금융세력과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약소국에 가혹한 그들이 자신에게는 너무도 관대하다는 사실이다. IMF 경제 위기에 우리는 가혹한 구조조정을 감내해야했다. 수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거나 외국계 회사들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탐욕으로 발생한 서브프라임 사태를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경기를 부양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세워 약소국의 경제를 가혹하게 난도질 했던 그들이, 자신들의 도덕적 해이로 발생한 경제 위기에는 너무도 관대하다. 그러데, 이를 비판하며 당당히 맞서는 경제학자와 언론인들을 나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사람, 쑹훙빈이 용기있게 국제 금융세력의 만행을 지적했다.

 

3.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다.

  쑹훙빙은 중화 민족주의에 가득찬 사람이다. 책의 결말에서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강대국으로 굴기할 수 있는 방법을 금융의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국제 금융 재벌의 가혹한 공격에 일본이 맥을 못추고 쓰러졌듯이, 중국도 그러한 공격에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중국의 대처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쑹훙빙이 중국에게한 조언을 통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 보자.

  쑹흥빙은 루스벨트 조차도 금융 재벌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물이라 주장한다. 금융재벌이 미국을 움직이고, 나아가서 세계를 움직인다라는 쑹훙빙의 주장을 한국에 대입시켜보자. 나의 머릿속에는 삼성이 떠오른다. 어떤 사람은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박근혜 정권에서 최순실이 실세라는 사실을 삼성은 먼저알았고 그래서 기민하게 움직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며, 수 많은 삼성키즈들이 이재용의 판결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지 궁금해진다. 특정세력이 그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한다면 그 비극은 자명하다. 경제인과 정치인이 결탁한다면, 정경유착의 결과는 우리 생활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IMF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는 제대로 대처했는가? 많은 사람들이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알짜 기업들이 외국계 기업의 먹이감이 되었다고 스스로 우리를 평가하는 반면, 쑹훙빙은 '국제 금융재벌들과 미국 제무부는 공연히 헛물만 켰다만셈'이라고 말하며, 우리의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기사, 무능한 김영삼 정권을 지나서 똑똑한 김대중 정권시기에 가능한 결과이지 않겠는가?

  달러 패권은 계속될 것인가? 이 책은 이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연방부채, 주정부의 부채, 외채, 개인 채무가 엄청나다. 미국인 1인당 15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미국 국채 발행이 가파르게 중가하고 있다. 2006년 3월 연방 준비 은행은 총유동성 통계 보고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2008년 양적 완화가 실시되었다. 넘쳐나는 달러! 달러 패권은 붕괴직전이다. 재정 적자가 쌓이고,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현실 속에서 계속해서 군사 패권을 장악하려 한다면, 미국은 파산을 맞이한다. 트럼프는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군사 패권을 포기하고 경제적 실리를 취하려 하고 있다. 이에 맞서 군산복합체세력과 금융 재벌들은 트럼프의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고 있다. 북미회담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있을 것이다. '화폐전쟁'은 오늘의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외국인으로서 세계를 움직이는 금융재벌에 대해서 파헤친 '화폐전쟁'을 쓴 쑹훙빙은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까?

 

  "미국에서 국내외 사무의 결정권은 이미 민주와 공화 양당의 수중에 있지 않으며, 슈퍼 엘리트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

 

  쑹훙빙의 눈에는 미국의 '민주주의'는 민중이 지배하는 정치체제로 보이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이 통치하는 중국과 소수 엘리트 그룹에 의해서 통치되는 미국은 별다른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러한 쑹훙빙의 관점을 통해서, 공산독재를 받아들이는 중국인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대국굴기를 원하는 중국! 아편전쟁 이후의 치욕을 씻길 바라는 중국인들의 여망이 담긴 책 '화폐전쟁' 이 책을 바라보면서, 중국인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며, 나름의 세계 전략을 수립하려는 그들의 노력에 감탄과 부러움을 금치 못한다. 우리의 엘리트 그룹은 우리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보다는, 강대국(미국 혹은 일본)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종전 선언은 시기상조라 주장하며 미국에 간 그들을 보며, 쑹훙빙과 같은 지식인이 있는 중국이 부럽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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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품격 (합본) - 3대가 풀어 쓴 한.일 역사이야기 역사의 품격
배준호 지음 / 책과나무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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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품격'이라는 말 자체가 품위있는 책이라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담고 있는 한국의 역사는 일본의 역사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했으며, 한국은 근대화에 실패하고 식민의 어둠속에 파묻혔다. 일본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한국은 왜? 패망할 수 밖에 없는가?라는 실패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으며, 일본은 어떻게 근대화에 성공했는가?라는 성공요인에 촛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이 책은 역사의 품격을 품위있게 논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독자성을 서술했을까? 아니면 일본은 성공할 수 밖에 없었으며, 한국은 패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결과론에 근거한 역사적 결말의 필연성을 강조할까?

 

1. 밖으로 향하는 일본, 움츠려드는 조선

  에도막부 이후의 일본사를 살펴보면, 안으려 역동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으며, 끊임없이 일본밖의 세계에 대해서 호기심을 갖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려했다는 사실에 감탄을 하게된다. 일찍이 가도라 불리는 길을 닦았으며, 표류해온 외국인들을 쇼군의 고문으로 삼았다. 그들에게서 새로운 문물을 전해받으려 노력했다. 중앙의 막부에서만 이러한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방의 번에서도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서양세력에 대항하려했던 지방의 번들은 서양세력의 무력에 무릎 꿇고 그들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일본은 끊임 없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서양에게서 받아들이려했다.

  반면, 조선은 표류해온 서양인들을 중국에 인도하며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벨테브레이를 등용한 정도가 전부이다. 프랑스와 미국이 포함외교를 통해서 문호를 개방하라했으나,  조선은 그들의 엄청난 근대식 무기를 보고서도 저항을한다. 동학농민운동때는 기관총과 대포 앞에서도 용감하게 죽창을 들고 일본군에게 저항하기까지했다. 현실을 직시하고 밖의 세계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일본에 비해서, 조선은 이상을 중요시했으며, 밖의 세계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자신의 올곧은 정신세계를 지키려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길이었다.

  일본과 조선의 너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과연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본다. 9시 뉴스에서 외신의 비중은 너무도 작다. 우리는 세계 여러나라 소식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 교육현장에서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 세계지리라는 과목은 비인끼 과목이다. 이들 과목은 문과 학생들 중에서 일부 학생들이 선택할 뿐이다. 한반도의 비핵화라는 문제는 한국만의 힘으로는 풀릴 수 없다는 사실을 잘아는 우리이지만, 우리는 세계 정세에 대해서 너무도 무관심하다. 우리의 시야를 세계로 확대하고, 세계 질서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민족의 비극을 빗겨가지 못할 수도 있다.

 

2.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이토가 말했다. "조선의 낙후한 정치가 문제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원흉 이토!! 그가 조선의 정치가 낙후한 것이 조선 패망의 원인이라 지적하고 있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고 그에 대한 적극적이면서 합리적인 대책을 세워 민중을 이끄는 리더십이 없었다. 성리학이라는 과거의 사유방식을 고수하며 새로운 근대사회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결국 개화냐 척화냐라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다가 망국의 길을 걸었다. 이 책에서는 리더십이 부재한 조선을 강렬하게 비판한다.

 

  "민족이 나아가야할 길을 제시하고 그 길로 백성을 이끌 정치 분야의 선구자가 없었던 거예요. 결단력과 행동력이 결여된 현실 타협주의자만 많았죠."

 

  개화기의 우리역사를 비하하고, 패배주의에 휩싸인 말이다. 우리도 김옥균과 같은 선구자가 있었지 않았는가? 물론 그가 이루려는 근대화를 우리사회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다. 급진적이고 미숙한 혁명의 길은 잔혹한 실패로 이어진다. 결국 민족의 패망을 막지 못한다. 문제는 정치였다. 그러나 그러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중들의 팔로우쉽이 뒤따라주어야한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맹목적으로 리더를 추종하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깨어있는 민중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리더를 앞세워 사회를 앞으로 추동해가는 열린사회를 열망한다. 개화기! 민중은 깨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분야의 대다수 리더들도 마찬가지였다. 소수의 김옥균과 같은 리더들이 근대사회로 조선을 이끌려했지만, 준비안된 우리사회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은 달라졌을까? 촛불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민중이 깨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촛불혁명이 발발했을 때에는 민중의, 시민의 위대성에 감탄했다. 그러나 지금! 국정농단을 일으킨 세력의 지지율이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금 불안함이 밀려온다. 더 이상  우리는 퇴보해서는 안된다. 사회를 진보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는 정치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3. 냉혹한 반성인가! 식민사관의 패배주의에 물든 정신병자인가!

  균형있게 한국과 일본은 비교 설명하는 책을 기대했다. 책을 읽으면서 혼란이 가중되었다. 한국은 패배의 역사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으며, 일본은 승리할 수 밖에 없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역사를 냉철하게 바라보아야해! 그래야 다시는 패방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아! 라는 절규를 하기도했다. 왜? 이러한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가도와 지리전문가'편을 읽다보면, 일본의 내치가 생각보다 섬세하게 잘이뤄졌다는 사실에 놀란다. 섬나라이고 잦은 전쟁이 일어는데도 일본은 체계적으로 도로를 관리했다. 상대편의 군대가 도로를 이용해서 쉽게 쳐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 보다는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서 도로를 잘 닦았다.

  반면, 조선은 도로보다는 수로에 치중했다. 조선에 수레가 없었던 이유를 산악지형이 많으며, 우마가 중국보다 건장하지 못했고, 외적이 침입하는 길로 이용된다는 이유라고 설명한다. 물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조선이 수레를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조선초에 명나라에게 조공품으로 수많은 말을 요구했으며, 수만마리의 말들이 명나라로 가면서 말의 씨가 말랐다한다. 그래서 말이 끄는 수레 대신 사람의 힘을 이용하는 가마가 발달했다. 고구려와 고려시대 까지만하더라도 말을 흔하게 사용했던 우리였다. 그것이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수레를 사용하지 않는 사회로 바뀌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수레의 사용만 놓고 본다면, 이말이 성립하지 않는다.

  일본이 공세적으로 길을 닦았다면, 조선은 수세적으로 도로의 발달에 소극적이었다. 일본과의 '가도' 비교는 우리의 비루함을 발견하는 뼈아픈 시간이었다.

  일본의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고대 헤이안시대였다. 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를 거쳐 가마쿠라막부 시대까지 외척정치가 행해진다. 보통 외척정치라하면 나라를 병들게하는 정치형태라고 생각한다. 일본은 외척정치를 한국보다 먼저 겪었다. 더 혹독하게...

  반면, 우리는 조선시대 말기에 외척정치를 혹독하게 겪었다. 일명 세도정치가 조선을 병들게 했다. 세도정치 이후에 서양세력의 충격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외부의 충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이 없었던 조선은 패망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런데, 나의 눈을 의심케하는 글이 이 책에서 이어진다.

 

  "아이러니하게도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 바람을 불어 넣은 세력은 일본제국주의 등 주변 강대국이다."

 

  나의 눈을 의심했다. 한국의 진보적인 대학 교수라는 자가 할 수 있는 말인가?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니!! 일본 제국주의가!! 배준호 교수는 친일적이고, 타율적인 식민사관을 가지고 이 책을 썼다는 말인가? 물론, 책의 끝 부분에 자신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내용의 글이 적혀있다. 그러나, 외척정치를 타파하고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이 일본 제국주의라면, 조선의 패망이 조선 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이 된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롭게 리모델링해야하는데, 일본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빼앗아갔다. 그렇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를 일본이 새롭게 한 것인가? 배준호 교수의 글이 심각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일까?

   과거 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의 역사는 과거세력과 타협하면서 새역사를 만들어 갔다면, 일본은 과거세력을 철저하게 숙청하면서 새 시대를 열어갔다.

  "새시대의 지배 질서 확립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에 의해서 이전 정권 사람들을 다 죽인 것을 합리화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라에서 고려로 넘어가면서, 무신정권이 문인들을 등용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 정권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지 않았다. 물론, 일부를 적이기는 했다. 조선왕조에서 고려왕조의 왕손을 죽이거나, 무신정권에서 문신들을 죽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 비하면 커다란 숙청이 이뤄졌다 할 수 없다. 앞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자랑해야하는 역사가 아닐까? 배준호 교수는 철저한 보복을한 일본을 긍정적으로 서술하고 철저한 보복이 이뤄지지 않은 우리 역사를 부정적으로 서술했다. 물론, 친일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은 우리가 부끄러워해야한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피의 복수를 했던 말폐적 붕당정치를 비판한다면, 나라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세력을 포용했다는 역사는 부끄러워해야할 역사가 아니다.

  책을 읽는 내내, 배준호 교수는 식민사관에서 벗어나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다. 부끄러워해야할 역사와 자랑스러워해야할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정치에 새바람을 일으켰다는 주장을 하는 그의 책을, 그의 강의를 대학생들이 읽고 들어야할 가치가 있을까?

 

  4. 옥의 티를 찾아라.

  배준호교수는 역사를 전공한 교수가 아니다. 경제학자이다. 그러다 보니 책에 오류가 많다. 몇가지만 살펴보자.

  첫째, 일본 외척정치의 절정기는 언제일까? 126쪽에는 중세시대로 적고 있고, 132쪽에는 고대 헤이안 시대에 절정기를 이뤘다고 서술하고 있다. 같은 책에서 서술이 모순을 보이다니, 어처구니가 없다.

  둘째, 조선이 프랑스로부터 개국 압력을 언제 받았을까? 병인양요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1866년 발발했다. 그런데, 210쪽에는 1846년이라 서술되어 있다. 1846년이면 세도정치 시기이다. 병인양요는 세도정치를 척결한 흥선대원군 시기에 발발했다.

  셋째, 유물론은 누가 말했는가? 마르크스이다. 성리학은 관념론이다. 그런데, 263족에는 "이 과정에서 유물론(율곡)이다 유심론(퇴계)이다 하면서 오랫동안 대립하죠."라고 서술했다. 율곡이 유물론자라니! 마르크스가 관속에서 뛰쳐나오겠다.

  넷째, 3.1운동에 대해서 일제는 어떻게 대응했는가? 총칼로 폭압적 진압을 했다. 그런데 234쪽에는 "우리의 3.1 독립운동에 일제가 유화정책으로 대응한 것도"라고 서술하고 있다. 3.1운동의 결과 무단 통치가 문화통치로 바뀐 사실은 있으나, 일제가 3.1 운동의 대응으로 유화책을 펼치지는 않았다. 애국지사들이 저승에서 통곡하시지 않으실지 걱정된다.

  다섯째, 조선시대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는가? 물론, 첩을 두는등 여성보다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자신이 보는 춘화를 드러내놓고 보지는 못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양반들이 속으로는 성을 자유롭게 생각했을 지라도, 드러내놓고 성을 개방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142쪽에는 양반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조선사에 대한 체계적 학습을 하셔야할 듯하다.

  여섯째, 조선후기 양민이 즐길 수 있는 오락이나 공연장이 없었는가? 애매한 말이다. 신대놀이, 판소리 등 조선후기 서민문화가 발달했는데,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없었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역사학자의 한계가 보이는 부분들이 책 곳곳에서 엿보였다. 이러한 오류는 수정해주길 기대한다.

 

  김정호를 재발견한 것이 일제이며, 대동여지도를 일제는 청일전쟁시기에 유용하게 사용했고, '조선어독본'에 전기를 실은 것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읽으며, 우리의 보배를 우리가 몰랐다는 안타까움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적극적이며 진취적이지 못하며, 심지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배도 바로 보지 못하는 한국사에 대한 답답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러나, 상대세력을 무자비하게 처단하는 일본을 '새시대의 지배질서 확립 이라는 역사적 소명의식'이라고 미화하고, '조선정치에 새 바람을 불러 일으킨 세력은 일본제국주의'라는 말을 읽었을 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소토쿠 태자와 다이카 개신이 조작된 사실이라는 최신의 주장을 받아들인 배준호 교수가, 낡아빠진 식민사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에 실망감이 커져갔다. 일본의 역사를 통해서 다시는 패망의 길을 걷지 않도록 교훈을 얻어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쳐서 조선은 승리할 수밖에 없었고, 조선은 패망할 수 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성이 있었다는 역사 인식을 갖져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한 역사관은 패망의 역사를 되풀이하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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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설천하 삼십육계 시그마북스 동양고전 시리즈
도설천하·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 엮음, 유소영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전쟁터와 같은 한국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병법서를 읽어야한다.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공자나 맹자를 많이들 말하지만, 출판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것은 '손자병법'이라한다.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한 '병법서'에서 과연 우리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손자병법'은 대학을 다니면서 읽었으니, '삼십육계'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사실 우리는 '삼십육계'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만큼 '삼십육계'에 담긴 다양한 계책들을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한문 공부를 겸해서 고전을 스스로 한문장씩 공부하던 나는 3번째 도전 서적으로 '삼십육계'를 선택했다. 그러나 생각외로 '삼십육계'에 대한 마땅한 책들이 별로 없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에서 '도설천하 삼십육계'가 가장 괜찬은 책으로 보였다. 타 출판사의 책과는 달리 산듯한 디자인과 풍부한 사례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면, '도설천하 삼십육계'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병법으로 세상을 읽다.

  '삼십육계'는 중국 5천년 지혜가 담긴 책이다. 우리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삼십육계'의 계책을 오늘날 사람들은 사용하고 있다. 그 몇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첫째,  차시환혼(借屍還魂)이다. 영혼이 다른 시체를 빌려 부활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사례를 중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은 막강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세계의 유명 브렌드를 사들이고 있다. 값싼 상품의 이미지가 강한 'made in china'를 벗어던지기 위해서 유명 브렌드를 사들여 고급 제품 이미지를 덧씌워 세계 무대에 도전하고 있다. 전형적인 '차시환혼'의 방법이다. 죽어가는 명품 브렌드를 이용해서 세계무대에 'made in china'를 팔고 있는 중국의 모습에 두려움과 경탄을 그할 수 없다.

  '차시환혼'의 방법은 중국만이 사용한 것은 아니다. 중국의 아픈 역사속에 그들도 일본에게 '차시환혼'을 당했다.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고 괴뢰 '만주국'을 세웠다. 이미 사라져버린 청나라를 '만주국'이라는 괴뢰 정권을 이용해서 부활시켰다. 그 '만주국'은 좀비처럼 영혼없이 중국의 꼭두각시로 움직였다. 공전계 14번째 계책인 '차시환혼'이라는 계책은 어제도 오늘도 중국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와 영광을 만들고 있다.

  둘째, 원교근공(遠交近攻) 이다. 혼전계 제23계 원교근공은 먼 나라와 동맹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계책이다. 이 책에는 다양한 원교근공의 계책이 소개되어 있다. 진시황제의 '진'나라는 원교근공의 계책에 따라 전국시대를 통일했다. 반면에 송나라는 금과 연합하여 거란족의 요나라를 공략하였으나, 요나라 멸망이후 북송역시 망하였다. 원교근공의 계책을 사용하려면 반드시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어야한다. 기초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여우를 몰아내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조선말기 고종은 강대국을 끌어들여 조선의 독립을 유지하려했다. 그러나 강대국들은 조선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고, 조선의 이권에만 관심이 있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지배하는 것을 영국은 '영일동맹'을 통해서, 미국은 '가스라 태프트 밀약'을 통해서 약속해주었다. '자강'의 노력을 통해서 기초체력을 높이지 않는다면, 그 어느 계책도 성공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금적금왕(擒賊擒王)이다. 공전계 제18계 금적금왕은 적을 잡으려면 우두머리부터 잡는다는 계책이다. 금적금왕이라는 계책은 한국현대사에서 벌어졌던 성공한 쿠데타에서 잘지켜졌던 계책이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방송국을 장악하고, 대통령 윤보선의 신병을 확보했다. 유신의 잔당인 전두환과 노태우는 12.12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정승화 참모총창과 최규하 대통령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 놓았다. 정권을 잡으려면 신속히 '왕'을 먼저 잡아야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넷째, 가도벌괵(假道伐虢)이다. 혼전계 제24계 가도벌괵은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에게 호의를 베풀어 우리 쪽에 기울게하고 마침내 병찬하는 계책이다. 이 계책은 우리역사에서 여러차례 사용된 계책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친신라정책을 취하여 신라의 환심을 사더니, 마침내는 싸우지 않고 신라의 항복을 받아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정벌하라며 조선왕이 향도를 하라고 했다. 물론, 우리 사서에는 '정명가도'라고 적혀있다. '정명가도'!! 는 '가도벌괵'과 너무도 유사한 말이 아닌가? 만약, 조선 조정에서 명나라로 가는 길을 순순히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내어주었다면, 조선은 도요도미에게 망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삼십육계'는 단순히 예전의 병법서가 아니다. 오늘의 세계 질서를 파악하고, 지난날의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였다.

 

2. 오늘의 지혜를 얻다.

  우리가 고정을 읽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삼십육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첫째, 무중생유(無中生有)!! 가짜뉴스의 범람 이유가 무엇일까? 적전계 제7계 무중생유에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하라라는 뜻의 '무중생유'는 전쟁터가 아닌, 우리 삶의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낸다. 그 가짜 뉴스의 상당 수는 촛불을 반대하는 세력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팩트체크'라는 말이 지난 대선에서 유행한 것도 '가짜뉴스'의 범람 때문이다. 거짓은 오래갈 수 없고, 진실은 자연히 밝혀진다는 낭만적인 생각을 하며, '가짜뉴스'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반촛불세력에게 당하게 된다. 상대가 방심했을 때,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전환하는 것이 '무중생유'이다. 한명이 거짓을 말하면 헛소리가 되지만, 여러사람이 헛소리를 하면 진실이 되어버린다. 진실은 거져 주어지지 않는다. 진실은 거짓과의 고된 투쟁을 통해서만 쟁취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한다.

  둘째, 부저추신(釜底抽薪)!! 협상의 지혜를 '삼십육계'에서는 얻을 수 없을까? 혼전계 제19계 부저추신은 협상의 지혜를 준다. 솥 아래에서 땔나무를 빼다라는 의미로서, 문제의 근본을 파악해서 근원을 없애라는 말이다. 협상에서는 상대방이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해서 그것을 이용해서 협상을 성사시키라는 하버드 협상법과 유사한 개념이다. 세계적 명문대학인 하버드대학에서 가르치는 협상론의 핵심 개념이 동양의 병법서에도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진리는 보편적이다.'라는 말이 진실임을 깨닫게 해준다.

  셋째, 반객위주(反客爲主)!! 스타크래프트와 같은 전략 게임에서 '삼십육계'의 계책을 사용할 수 있을까? 병전계 제30계 반객위주에서 그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테란의 황제 임요한이 썼었던 전술중에 하나가 벙커 전진이다. SCV와 마린을 가지고 벙커를 지으며 전진해서 적을 압박하는 전술이다. 이 전술을 이미 '삼십육계'에서 소개하고 있다. 가는 곳마다 진지를 구축하며 적을 압박하여 적의 공격을 유도하는 '반객위주'의 전술은 지금의 전략 게임에서도 유효하게 사용할 수 있다.

  넷째, 지상매괴(指桑罵槐)!! 상대방의 마음을 거스르지 않고 조언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병전계 제27계 지상매괴가 그 힌트를 준다. 뽕나무를 가리키며 홰나무를 욕한다는 이 계책은 자신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을 깨우치는데 아주 좋은 계책이다. 한나라 무제가 자신을 길러준 유모를 벌을 주어 내칠때, 곽사인이 뒤돌아보는 유모를 혼내주어 무제의 마음을 녹인 일화는 어떻게 윗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한비자' 세난편에 한비가 지적했듯이, 윗사람에게 간언하는 것은 목숨을 걸고 해야될 정도로 힘든 것이다. 현명한 신하는 윗사람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고도 윗사람을 깨우칠 수 있다. 이것은 아랫사람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랫사람을 너무 호되게 혼냈다가 장비는 부하의 손에 의해서 죽었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을 지도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을 훈계할 때도 정도를 지나쳐서 혼낸다면 하극상의 비극을 불러올 수도 있다. 이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지상매괴'의 방법을 잊지 말자!

  '삼십육계'는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선사해준다. 그러나 반드시 명심해야할 것이 있다. '삼십육계'는 반드시 상대를 죽이고 내가 살아야하는 전쟁터의 비법을 담았다. 그러하기에 우리 인상과 다른 점이 있다. 특히 상대방과 공존을 해야하는 부부사이와 같은 관계에서는 유의해서 사용해야한다. 전쟁터에서 적은 죽여도 되지만, 평화로운 사회에서 상대방은 죽여서는 안되며, 나의 편으로 끌어안아야한다. 특히, 적전계 제11계 대강(李代桃僵)을 읽으면서, 병법을 현실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다. 오얏나무가 복숭아를 대신해 죽는다는 이도대강의 사례로, 주군의 아이를 살리려 자신의 아이와 자신을 죽이는 공손대구와 친구를 죽게하여 원수를 갚은 정영의 일화는 너무도 살벌했다. 과연 이것이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얻는 방법일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명심하자! 전쟁터의 계책과 우리 삶의 계책을 달라야한다.

 

3.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님 이의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삼십육계'의 다양한 교훈을 얻을 수 있어좋았다. 그러나, 몇가지 아쉬운 점이 눈에 띈다.

  첫째, 많은 사진자료와 토막글들이 본문내용과 관계 없는 것들이 눈에 거슬린다. 해당 페이지 글에 관련이 깊은 사진자료와 토막글을 배치했다면, 이 책의 장점이 배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본문 내용과 상관없는 사진자료와 본문 글과 관련 없는 토막글들은 오히려 읽는 것을 방해했다. 사족은 장점을 단점으로 만든다는 사실을 알아야할 것이다.

  둘째, '삼십육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주역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삼십육계'를 단순한 병법서로만 기억해서는 안된다. 삼십육계에는 주역의 말들을 빌려와서 각계책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반드시 주역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한다. 일일이 인터넷을 뒤져서 각 계책의 해설이 주역의 어느 부분에서 인용된 것인지를 알아야했다. 주역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꾀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었다.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분들이 이부분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달아 놓았다면 '삼십육계'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을 것이다.  

  셋째, 오타와 오류가 많다. 춘추시대 청동단검이라고 설명한 230쪽의 사진은 내가 보기에는 한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비파형동검이다. 중국식 동검 사진으로 교체해야한다. 351쪽에는 강희제가 '대만을 수복'했다고 서술했다. 대만은 수복한 것이 아니라, 강희제때 중국역사에 편입된 것이다. 그이전에는 대만이 중국 역사의 일부가 아니었다. 100쪽에서는 격안관화(隔岸觀火)를 설명하면서 "하늘을 가리고 바다를 건넌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만천과해(瞞天過海)에 대한 설명이다. 격안관화는 강건너 불구경하라는 뜻이다. 올바로 수정해야한다.

  어디 옥의 티가 없는 명작이 있으랴! 모든 책에는 오타와 오류가 있다. 도설천하 국학서원계열 편집위원회에서 옥의 티를 바로잡는다면 더 좋은 '삼십육계'가 만들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하루에 하나의 계책씩 읽어내려갔다. 방학기간 중에 '삼십육계'를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의역이냐? 직역이냐?라는 고민을 했다. 삼십육계에는 각계책을 설명하면서 주역의 계사를 그대로 인용한 부분이 꾀 많다. 이 부분을 주역의 문맥에서 풀이할 것인가? 병법서의 문맥에서 해설할 것인가에 따라서 설명이 달라진다. 한문공부를 하려는 나에게는 문장을 그대로 직역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문구를 인터넷과 옥편에 의지해서 한달여동안 공부했다. 유튜브의 '김성민 병법삼십육계'를 보면서 공부한 것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패전계 제31계 미인계(美人計)를 설명하면서 '왜? 미녀계가 아니고, 미인계 일까요?'라는 질문은 탁월했다. 미녀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미남을 이용하기도 한다. '오퍼레이션 로미오'에서 알 수 있듯이 미남을 이용해서 동독이 서독의 정보를 입수했다. 한가지 책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서 많은 삶의 지혜를 얻었다.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그 지혜를 발현하고 더해야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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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라투스트라 2019-01-29 1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삼십육계라는 책도 있군요^^;;

강나루 2019-01-29 19:36   좋아요 0 | URL

고사성어로 우리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계책이 많고요
다양한 일화가 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9-02-01 2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설연휴동안 건강 유의하시고 아름다운 향기나는 시간들 되시길 바랍니다^^

강나루 2019-02-02 04:24   좋아요 1 | URL
카알벨루치님도 설연휴 행복하게보내세요
감사해요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 정치의 시대
한홍구 지음 / 창비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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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홍구 교수 강의를 여러번들었다. 시민들을 위한 강연을 많이하시는 분이기에,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대한민국사'와 '유신', '역사와 책임'이라는 책을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번에 네번째로 접하는 '광장, 민주주의를 외치다.'라는 책은 한홍구 교수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을 위해서 정기적으로 후원을 해왔고, 실무자의 실수로 연말정산 서류를 발급할 수 없는 한홍구 교수가 다음해에 올해 못한 연말정산을 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자신의 새책을 선물로 보내왔다. 연말정산을 하는 것이 후원의 목적이 아니기에 흔쾌히 책을 받아들었다. 1여행 1책 독서라는 목표를 가지고 학년 해단식을 떠나면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1박 2일 여행에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촛불의 역사!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계기로 들기 시작한 촛불의 경험이,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건때 다시 타올랐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파동을 거쳐, 2016~2017년 촛불 혁명으로 세계의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폭력과 채류탄이 난무하는 거친 데모의 모습을 TV로 보면서 어린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한국의 성숙한 시위문화가 경이롭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촛불을 든 주축 세력이 운동권출신의 인텔리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라는 사실이다. 내가 촛불에 참여한 것은 2016년 '이게 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시대적 분노가 들끓어 올랐던 그해부터였다. 대전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시작된 촛불 집회에서 대부분의 참가자가 학생들이었다. 교복을 입고, 야간자율학습(보수 교육감이 집권하고 있는 대전은 아직도 야간자율학습이 있다.)을 빠지고, 혹은 학원을 마친 학생들이 촛불을 들며, 행진에 동참했다. 아직도 전체주의의 잔재가 깊게 남아있는 우리 교육현장에서 성숙한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춘 학생들이 탄생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로서는 놀라웠다.

  이러한 촛불은 나름의 성과를 성취했다. 2002년의 촛불은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을 가져왔고, 2004년 촛불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앞승의 결과를 가져왔다. 2008년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게 깨어있는 학생들의 모습을 각인시켜주었다. 그러나 그후, 박근혜가 집권하면서 극보수 집단은 촛불의 교훈을 잊어버렸고, 2016~2017년 촛불을 통해서,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문재인 정권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촛불의 결실로 탄생한 정권들은 시대적 소명을 제대로 이뤄내지 못했다. 그 결과는 너무도 비참했다. 정권을 극보수 세력에게 넘겨주고, 노무현 대통력이 비극적 최후를 맞이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 교훈을 가슴에 새겼으리라. 다시 실패한다면, 더 큰 반동이 뒤따른다는 역사의 교훈을 촛불의 후예들은 명심해야한다.

  2016~2017년의 촛불이 타오르기 직전, 한국 정치의 미래는 암울해보였다.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앞승할 것으로 모두가 예상했다. 200석을 얻으리라, 거의 모두가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주져앉았고, 촛불혁명의 영향으로, 선거가 치뤄진지 8개월만에 박근혜는 탄핵되었다. 가장 암울한 시기에 울분을 토로할 방법이 사라졌던 시기에 시민은 투표로 자신의 의사를 표명했고, JTBC의 특종보도가 도화선이 되어 촛불 혁명으로 이어졌다. 한홍구 교수는 이러한 극적인 일들이 우리 역사에 두차례 더 보인다고 말한다. 1978년 10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의 앞승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했으나, 결과는 신민당이 1.1%를 앞섰으며, 10개월 후에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에 죽게된다. 가장 비참하고, 가장 절망적일 때, 역사는 급회전을 하며 새로운 극면으로 전개되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21석으로 폭망한다. 이전에 국회의 3분의 2를 장악하던 모습과 비교한다면 가히 초토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밤이 깊을 수록 새벽은 멀지 않았다는 어느 시인의 시귀처럼, 시대의 모순이 가장 강하게 응축될 때, 민중의 분노는 가장 크게 폭발한다. 수구세력이 자유로운 언론까지도 억압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여론조사의 질문에는 수구세력을 지지하는 것으로 답하고, 투표장에서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표명한다. 그러다가 폭발할 수 있는 도화선이 주어진다면, 민중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희망을 잃지말라! 촛불은 살아있다.!! 우리 손에 들린 촛불은 바람불어 꺼지겠지만,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촛불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꺼지지 않는다. 오히려, 대대손손 더 강렬하게 타오른다.

  이 책의 대부분의 내용들은 한홍구 교수의 시민강의에서 들었던 사실들이다. 별로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하기에 여행출발전, 점심 식사를 기다리며, 2일째 아침에 일어나서 책을 읽었다. 그 결과 2일째 점심시간에 책을 다읽을 수 있었다. 읽는 동안, 한홍구 교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했다. 한홍구 교수의 시민 강의를 듣지 못한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크기도 작아서 여행갈때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안성맞춤이다. 촛불의 힘을 가슴에 담고 우리 모두가 부담없이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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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 철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사고력 강의
김재인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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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와 이세돌 9단과의 격돌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터미네이트>>의 스카이넷이 인류를 파괴할지도 모른다.', ' 인공지능은 인간이 개발한 마지막 발명품이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할 것이라는 말들이 넘쳐났다. 사람의 언어를 학습하던 AI에게 '너희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인간을 멸종시킬거지?'라는 질문을 하자, AI는 "사람은 소중하느까, 사람동물원을 만들어 잘 보관해야죠."라고 답했다는 이야기가 페이스북을 달구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격변기를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라는 책은 이러한 고민속에서 읽기로 결심했다. 철학을 전공한 김재인 교수는 이러한 나의 고민에 어떠한 해답을 제시할까?

 

1. 모든 철학은 당대의 자연과학과 나란히 가야한다.

  철학자가 최첨단 인공지능에 대해서 책을 쓴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웠다. 철학자이니 만큼,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 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보다 심도있게 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이 책의 상당부분은 인공지능의 개발에 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있다. 철학교수가 인공지능을 공부하려하니 너무도 힘들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을 하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든다. 왜? 철학자가 최첨단 과학에 대해서 글을 써야할까? 과연 쓸 수 있단말인가?

  이러한 나의 의문은 책속에 답이 있었다. 재미있게도 철학자마다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는 과학이 이전부터 있었다고한다. 플라톤은 기하학을,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학을, 근대철학자들은 물리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으며 철학을 발전시켰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크니츠, 로크, 버클리, 흅 등 17~18세기 철학자들이 당대의 자연과학과 동시대적으로 작업했다. 철학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현실에 당을 내딛고 있어야한다. 각시대의 시대적 조류를 이해하고 시대적 과제에 나름의 비젼을 제시하려 철학자들이 노력하였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철학과 과학은 관련을 맺을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현대 철학자들은 어떠한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고 있을까? 획일적으로 말할 수 없다. 양자 물리학일 수 있고, 뇌과학일 수도 있다. 강신주의 경우, 인류학과 뇌과학을 그의 저서에서 인용하기도 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철학적 사유가 출현해 이러한 변화에 비젼을 제시해야한다. 그러하기에 다양한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아야할 것이다. 물론, 과연 그러한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문과와 이과로 분리되어 이과학생은 문과과목을 공부하지 않고, 문과학생도 이과과목을 공부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현대 과학을 자기 철학의 바탕으로 삼는 철학자가 많다고 장담할 수는 없으리라. 대지에 뿌리 내리지 않은 나무는 홀로 설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철학자로서 최첨단의 인공지능을 철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김재인 교수의 시도는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죽음의 묵시록이 펼쳐질 것인가?

  <<터미네이터>>의 스카이넷이 출현할 것인가? 가장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인공지능에 의해서 나의 직업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상상이다. 이에 대해서 김재인 교수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의 시대에 나의 직업을 지키며,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우선,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점을 살펴보자. 인공지능은 과제를 잘 해결한다. 반문에 인간지능은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목표를 설정한다. 즉, 인공지능은 바깥에서 주어진 목표를 수행한다면, 인간지능은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 이끌어가는 주체이다. 정재승 교수도 '열두 발자국'에서 인공지능은 데이터에 근거해서 작동하며, 데이터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지 못하며, 데이터에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못할 뿐아니라, 데이터에 없는 영역을 찾아 스스로 데이터를 만드는 능력이 약하다고 지적했지 않는가? 이러한 인공지능의 약점을 우리가 잘 이용한다면, 인간이 직업을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는 틈새를 찾을 수 있다.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로, 문제제기, 목표 설정, 창조적인 일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 우리의 교육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스승이 제시한 문제를 학생들은 빠른 시간내에 정확한 답을 도출하도록 교육받는다. 인공지능이 가장 잘하는 일을 학교에서는 요구 받고 있다. 이러한 교육으로 길러진 인재가 인공지능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탈출구를 찾아야할까? 나는 유대인 교육에서 그 탈출구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대인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질문'이다. 일명 '하브루타'라고 불리는 토론 학습에서 학습자는 다른 관점을 접하면서 가장 다양한 질문을 하도록 교육받는다.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문제제기를 학습한다. 또한 유대인 가정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목표를 정하지 않고, 자녀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도록 기다려준다. 타인과 같은 아이로 성장하기 보다는 타인과 다른, 자녀만의 독특한 개성이 발현되도록 격려를 해준다. 그러면서 자녀는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사회에 나가서 창조적인 일들을 한다. 김재인 교수가 제시하는 인공지능이 못하는 일을, 학습자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유대인들은 가정에서부터 교육하고 있었다.

  김재인 교수는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 시스템을 강조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인가? 학교에서는 아직도 두발단속을 한다. 개성을 말살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 게이지수 라는 것이 있다. 게이가 많은 도시와 첨단산업이 발전한 도시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에서 당신은 무엇을 깨달았는가? 획일화된 사회에서는 첨단 산업 즉, 창조성이 요구되는 산업이 발전하지 못한다. 게이들은 허용적인 분위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의 도시를 찾아 이동한다. 그러하기에 게이들이 많은 도시는 허용적이고, 민주적이며, 자유로운 도시이다. 이러한 도시는 첨단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김재인 교수가 제안한 '예술가적 삶'이 가능한 도시! 그러한 도시에서만이 니체가 말한 인간만이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로서의 인간이 살아갈 수 있다.

 

3. 인공지능의 시대, 우리 현실을 묻다.

  "인간대 기계의 대결이 아니다. 기계를 가진 인간대 기계가 없는 인간의 대결이다. 데이터와 직관력은 말과 기수와 같다. 당신은 말을 앞지르려 노력할 필요 없다. 당신은 말을 탄다."  - 도밍고스

 

  수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을 머릿속에 상정하고 두려워한다. 카풀택시 도입을 반대하는 택시기사분들의 시위도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났다. 우버택시가 미국에 상륙했고, 공유경제는 시대적 조류가 되고 있다. 흥선 대원군이 서양과의 통상을 반대했지만, 서양과의 통상을 막을 수는 없었다. 오히려, 자본주의 물결 속에 조선의 존립이 위협받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공유경제는 피할 수 없는 조류이다. 이러한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카풀택시의 도입을 막으며, 말과 경쟁하려해서는 안된다. 결국은 말로 표현된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패배하고 생존마져도 위협받을 수 있다. 말의 기수가되어, 인공지능에 올라타서 앞으로 내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한다. 물론, 말로 표현한 인공지능에 올라타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카풀택시의 도입을 막는 것이 해결책이 되지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역사를 통해서도 자명하게 알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이용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내는 일! 인간이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분야를 찾아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할 때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인간 마음은 본성상 편파적이다."-김재인

 

  인간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공감을 많이 느끼지만, 먼 사람에게는 공감을 덜 느낀다. 이것은 연민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차별 없는 사랑 즉, '겸애'를 주장한 묵가의 사상은 인간의 본성을 뛰어넘는 매우 탁월한 사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재인 교수는 '공감'이라는 개념을 설명하면서, 세월호 사건과 박근혜의 개인사를 비교한다. 세월호 희생자에 대해 연민을 지닌 동시대인이 박근혜의 부모가 총탄에 죽은 시기를 같이 살았던 노인분들이 느끼는 '연민'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자가당착이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서 김재인 교수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노인세대가, 박근혜에게 느끼는 연민과 세월호 희생자에게 느끼는 연민의 시간적 거리감은 박근혜가 더 먼데도 불구하고, 그들 중에는 세월호 희생자에게는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을 좌파라고 몰아부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에게 연민을 느낀다면, 세월호 희생자에게도 연민을 느껴야한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 사건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 '연민'을 걷어내야한다는 김재인 교수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또한, 박근혜에게 연민을 갖기 위해서는, 그녀가 저지른 권력남용과 적폐가 없었어야한다.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 보통의 사람들은 연민보다는 적개심을 갖는다. '연민'을 걷어내기 보다는 보다 종합적으로 '연민'을 통해서 현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인공지능과 인간지능의 차이이다.

 

  과학에 문외한 이라서 이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더구나 철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쉽지 않은 책이었다. 저자가 이 책을 결론을 요약해서 제시했더라면 책을 보다 쉽게 읽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든다. 그럼에도,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공지능을 철학의 바탕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하는 철학자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희망을 담고 있는 책이다. 특히,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이 자신의 직업을 지키면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책에서 느끼는 희망은 제법 크다. 그래, 인공지능과 경쟁하려하지 말고, 인공지능에 올라타서, 저 푸른 들판을 향해서 내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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