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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바늘 -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
김경임 지음 / 홍익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문화재 환수 프로젝트'는 반크(VANK) 동아리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활동주제이다. 빼앗긴 우리 문화재를 소개한 플래카드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활동을 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견하지만, 한편으로는 논리의 빈약함에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즉, 우리 문화재를 환수해야한다는 당위성만을 강조할 뿐, 문화재 환수의 국제법적 당위성에 대한 논리적 증명은 부족했다. 사실 문화재 환수에 대한 지식을 전문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설명해줄 수 있는 책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던 차에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은 김경임 저자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책을 만났다. 재미있으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소개하는 그의 필치가 나를 책속으로 빨려들게 했다.
1. 문화재를 예술품으로 만들기.
학교에 세워져있던 단군상을 일부 종교인들이 우상이라며 단군상의 목을 베고, 거대한 바미안 불상을 파괴하는 탈레반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 '왜? 예술품으로 보지 않고, 우상숭배라며 배격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문화재를 예술품으로만 보려는 시각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사악한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지적하고 있다.
<밀로의 비너스>는 너무도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밀로의 비너스>는 팔이 없다. 나의 중학생 시절, 미술선생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재미있는 설명을 하셨다. ‘<밀로의 비너스>의 팔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보았는데, 팔이 있는 것 자체가 무척 어색하여 아마도 처음부터 팔이 없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이 생각한다.'라는 미술 선생님의 설명이 그럴듯하여 <밀로의 비너스>는 원래 팔을 제작하지 않은 것으로 기억했다.
그러나, <밀로의 비너스>는 왼팔과 사과를 쥐고 있는 왼손, 조각상의 받침대 파편이 있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소중한 이들 문화재의 일부분을 없애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적 효과를 위해서 반쯤 매달린 왼팔을 떼어내는 야만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서구인들은 그들의 뿌리라고 하는 헬레니즘 시대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일을 서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밀로의 비너스>는 예술품이지 문화재가 아니다. 아니, 문화재가 아니어야만했다. <밀로의 비너스>상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는 받침대를 파손시켜야 <밀로의 비너스>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래야만, <밀로의 비너스>는 예술품으로만 남는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문화재는 학술적 가치가 없어진다. 그래야만, 제국주의 국가는 식민지의 예술품을 소유하는 것이 편해진다. 그래서 패티 거스튼블리스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화재를 예술품으로 보는 것은 문화재를 그 역사적 맥락에서 분리시키는 방법이며, 제국주의 유럽 문화가 비유럽 문화재를 소유하는 방법이기도 하다."-패티 거스튼블리스<예술과 문화유산>, <클레오파트라의 바늘>68쪽 재인용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미적 가치만 남겨놓아야 <밀로의 비너스>는 그리스의 밀로스 섬에서 뿌리 뽑혀 제국주의자의 품에 앉길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은 ‘인류의 예술품을 소장하며 인류에게 기여한다.’고 말하지만, 진실은 인류의 문화재를 파괴하여 문화재를 단순한 예술품으로 전락시키는 죄악을 저지른 박물관이었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역사적 맥락을 제거하고 문화재를 예술품으로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인간의 사체를 모으는 야만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뉴질랜드의 토이모코(죽은 자의 머리), 호주 태즈메이니아 인골, 남아프리카의 호텐토트 비너스를 전시하고 수집한 사례는 제국주의자들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의 사체는 수집과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인간이 고귀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기초적인 전제이다. 죽은 자의 시신은 그들의 고향으로 돌려보내져야한다. 그들의 역사적 맥락에서, 그들의 역사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하고, 죽어간 그들의 사체를 더 이상 제국주의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소장품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학교에서 있는 단군상이든, 세종대왕 동상이든 모든 인간의 창조품들은 역사적 문화적 맥락이 있다. 그 맥락을 떠나서 문화재를 논할 수 없다. 문화재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하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보편 윤리가 자리 잡아야만 다시는 야만적인 제국주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2. 문화재 가치 깍아 내리기
인류 최초의 인권 문서 '키루스 칙령'의 복제품이 유엔본부 2층의 안전보장이사회와 경제사회이사회 중간의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세계가 인정한 인권 문서가 '키루스 칙령'이다. 그런데, 이 '키루스 칙령'도 제국주의 국가들의 검은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이란인의 조상이 건국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가 서아시아를 통일했다. 대제국을 건설한 키루스 대왕은 피정복민을 관용과 포용으로 다스리겠다는 포부를 '키루스 칙령'에 담아 반포하였다. 그리고 이 '키루스 칙령'이 다시 세상에 빛을 보게 된다. 발견 국가는 영국이고, 발견 장소는 이라크이다. 발견당시 오스만 제국이 이라크를 다스리고 있었다. 이란은 '키루스 칙령'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대영제국 박물관은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발견 장소를 기준으로 본다면, '키루스 칙령'은 이라크에 돌려주어야하고, 발견 당시 지배국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터키'에 돌려주어야한다. 그러나, 키루스 대왕을 계승한 국가는 이란이기에 대영박물관은 '키루스 칙령'을 이란에 돌려주어야한다. 그런데, 반환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키루스 칙령'을 돌려주지 않으려고 내놓은 논리가 참으로 치졸하다. 그들은 '키루스 칙령'의 가치를 깍아 내리는 방법을 사용했다.
"정권이 바뀌면 지도자들이 개혁을 공약하기 마련이다. 키루스 대왕의 관용 정책은 광대한 제국의 다수 이민족을 다스리기 위해 펼친 현실적인 대안으로 실용주의의 산물일 뿐이다.
이는 피정복민을 다스리는 키루스 대옹의 채찍과 당근 정책으로, 정복자가 민심을 얻을 목적으로 발표한 프로파간다에 불과하다. 이것을 인권선언이라고 믿는다면, 프로파간다의 희생자는 오늘날의 우리가 될 것이다."-30쪽
현란한 문체로 '키루스 칙령'을 깍아 내리고 있는 학자에게 영국이 자랑하는 '대헌장'의 가치를 묻고 싶다. 영국 민주주의 역사에 '대헌장'의 가치는 참으로 대단하다. 그런데, '대헌장'은 귀족들이 왕을 굴복시키고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만든 문서이다. 이 문서를 가지고 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프로파간다이다. 그러나, '대헌장'의 가치는 이후 민주주의 역사에서 확대 해석되었다. 그에 따라 귀족들의 특권을 인정하는 문서에서 민주주의를 이루는데 기여한 문서로 가치가 상승했다. '키루스 칙령'도 마찬가지이다. 키루스 대왕이 정치적 목적에서 '키루스 칙령'을 발표했다하더라도, 오늘날의 인권발전에 기여를 하고 있다면, '최초의 인권선언문'이라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문화재는 그 문화재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에서 해석되느냐가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고 '키루스 칙령'의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문화재를 이란에 되돌려 주지 않으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키루스 칙령'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이 '키루스 칙령'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키루스 칙령'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3. 문화유산의 관련성 부정하기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은 서아시아에서 수많은 문화재를 약탈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나폴레옹의 군대가 발견한 로제타석이다. 2005년, 하와스 박사가 이집트가 반드시 돌려받아야할 문화재 다섯 점 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꼽은 것이 대영 박물관에 있는 로제타석이다. 샹폴리옹에 의해서 로제타석에 기록되어 있는 상형문자가 해독되면서 비로소 이집트의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서 이집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렇게 귀중한 문화재를 대영 박물관은 이집트에 돌려주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제국주의시기에 반출된 수많은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세계의 박물관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시카고 박물관장 제임스 쿠노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이집트와 파라오 시대 이집트오의 관련은 무엇인가? 고대 유물은 이슬람 국가들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에 제작된 것들이다. 고대 유물을 문화재로 규정하는 국내법이나 국제법은 150년 전에 태어난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영토 내에서 발견된, 또는 발견되었다고 믿는 고대 유물을 민족의 정체성과 자부심으로 파악한다. 민족의 유산만 중요하고 세계 문명에 대한 중요성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132쪽
문화재는 그 문화재를 창조한 국가가 소유하거나, 문화재가 최초로 발견된 영토의 소속국가에서 소유해야한다. 이러한 점에서 로제타석은 이집트가 소유하는 것은 당연하다. 과거의 이집트와 현대의 이집트가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영국의 아더왕 전설은 현대 영국과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역사와 문화는 유형무형으로 해당지역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배웠던 슐리만이 아마추어 고고학자가 되어 트로이를 발굴한 예를 보듯이, 수천년 전의 역사와 전설은 그 후손들에 의해서 기억될 때 유형 무형의 강력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집트인들은 이집트의 역사 현장에서 태어나고 살면서 이집트의 역사와 문화를 몸으로 채득했다. 그들이 파라오시대의 이집트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은 제국주의의 유산인 약탈문화재를 지키기 위한 얕은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시카고 박물관장 제임스 쿠노는 "민족의 유산만 중요하고 세계 문명에 대한 중요성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영박물관이 내놓은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집트의 문화재를 소장한 게 아니다. 세계 문명의 일부로서 이집트의 유물을 갖고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유물의 보존이다."
우리나라의 '외규장각도서'를 프랑스가 반환하지 않을 때도 이러한 논리를 내세웠다. 제국주의 시절 탈취한 문화재를 소장한 세계 유수의 박물관이 이러한 논리에 동조하고 있다. 그들의 논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바로 '인류 보편의 박물관 선언'을 분석해보자.
4. '인류 보편의 박물관 선언'의 함정.
문명국이라 자처했던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야만인이라 취급했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의 문화재를 약탈해서 고가에 거래했다. 나이지리아의 베닌 브론즈를 소장한 대영박물관은 "응징 전쟁"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마치 병인양요 시기, 우리가 프랑스 신부를 처형했기에 외규장각도서를 약탈한 것은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그들에게는 작물을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정의는 통용되지 않는다.
제국주의라는 야만의 시대에서 벗어나, 정의와 인도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가 세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요즘, 약탈문화재를 반환해야한다는 공감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 윤리가 제국주의 시기의 영광을 기억하는 박물관에서는 통용되지 않는다. 2002년 10월, 독일 민휀에서 대영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40개의 박물관 미술관 관장들이 '인류 보편 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라는 제목의 선언문을 발표했다. '비조 클럽'이라 불리는 이들 박물관은 21세기 문명 세계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선언을 당당하게 발표했다.(물론 얕쌉한 대영 박물관은 엘긴 마블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서명하지 않았다.)
"과거 취득한 문화재는 구입, 기증, 또는 파르타지를 통해서 이들을 관리해 온 박물관의 일부가 되었고, 이들을 소장한 국가의 유산의 일부가 되었다."-404쪽
작물을 취득한 제국주의 박물관의 일부가 되어버린 문화재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참으로 놀라운 주장이다. 개인의 소유권을 엄청난 가치로 여기는 서구인이 약소국의 소유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마치 거울뉴런이 사라져버린 사이코패스 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시할 뿐, 문화재를 약탈당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약소국의 아픔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인류 보편 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라는 문서는 더욱 황당한 논리로 끝을 맺는다.
"박물관은 끊임없는 재해석 과정에 의해 지식을 촉진시키는 임무를 행함으로써 문화 발전의 담당자를 자임한다. 각각의 문화재는 이러한 과정에 공헌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하고 다면적인 문화재를 소장한 박물관의 차원을 제한하는 것은 모든 관람자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다."-405쪽
제국주의 박물관만이 문화재를 '끊임없는 재해석 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는 오만한 주장을 하고 있다. 해당 문화재의 가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국가는 해당 문화재의 소유국이다. 우리나라의 '외규장각도서'가 프랑스에서 중국문서로 분류되어 훼손된 채 서고에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제국주의 박물관에서 썩어서 사라지는 수많은 문화재에 대해서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제국주의 박물관은 약소국에서 약탈한 '다면적인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세계의 수많은 약소국이 자국의 문화재를 보기 위해서 제국주의 박물관을 방문해야한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관광수입을 얻으며 이를 '모든 관람자의 이익'으로 포장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제국주의 박물관의 이익만이 중요할 뿐, 문화재 원소유국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다.
일찍이, 나폴레옹전쟁을 정리하기 위해서 빈회의가 열렸다. 이때, 국제적 차원에서 최초로 전시 약탈 문화재 반환이 결정되었고, 향후 국제 관습법으로 약탈문화재 반환이 정립되었다. 1970년 유네스코 협약, 1995년 유니드로아 협약이 체결되면서 불법 문화재의 반환에 관한 규정이 마련되었다. 국제 관습법과 국제법이 이들 제국주의 박물관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다. 아니,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고 있는 제국주의 박물관이 세계적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 자체가 인류의 비극이다.
“힘이 정의라고 떼를 쓰는 일 처럼 우리를 분개하게 하는 일은 없고, 정의가 힘의 뒷받침을 받지 못해 정의로 의연히 서지 못하고 불의로 몰리는 일처럼 안타까운 일은 없다.”라는 파스칼의 말처럼, 아직 국제사회는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힘 있는 제국주의 박물관이 자신을 정의라 외치고 있다. 약소국은 힘이 없어 정의로 의연히 서지 못하고 있다. 정의가 바로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 학생들은 '반크' 동아리를 만들었다. 우리 문화재에 대한 사랑과 우리 역사에 대한 애정에서 출발한 동아리 활동은 열정적이고 대견해보인다. 그러나, 반크 동아리 활동을 지켜보면서 항상 2%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다. 학생들의 열정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탄탄한 논리가 필요했다. 학생들의 열정에 역사적, 국적법적 지식과 논리가 뒷받침되어야 보편 정의에 힘이 실린다. 이러한 의미에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재미와 의미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책이라 평가할 수 있다. 저자 김경임이 이 책에서 약속한 대로 약탈문화재 반환 운동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관련 서적을 더 많이 저술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