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세트 - 전5권 - 우리 시대 건강한 시민을 위한 열린 한국사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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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책을 만나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5권’을 읽고

 

역사문제연구소의 학자들이 모여 좋은 역사책을 만들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새롭게 만든 책이라 많은 기대를 하게한 책이다. 처음에는 5권이라는 무게감이 나를 부담스럽게도 하였지만, 책을 받아든 순간, 이러한 무게감은 기대감으로 승화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옛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진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림들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하였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우리 역사의 재미에 4월 한달이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자, 그럼 이 책의 이야기를 해보자.



1.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국의 역사

책을 펼치는 순간, 다양한 사진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사실 역사책에 사진과 그림의 중요성이 한층 중요시되고 있다. 각종 영상물을 보면서 자라고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사진 자료와 그림 자료는 역사를 보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주몽이 말달리던 집안현 일대의 사진과,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몽촌토성의 모습과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동모산의 모습은 당시의 역사와 인물들이 자유롭게 사진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이 멀리 떨어진 고대 사람들과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선사한 사진 자료들이 전근대편(제1권~제3권)을 장식했다면, 근대편(제4권과 5권)에서는 쉽게 구해볼 수 없는 사진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역사 이해를 도왔다. 뛰어난 사진 편집은 단연 돋보이는 이 책의 장점이다.



2.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고민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이하 『한국의 역사』로 명명함) 1권을 읽으면서 국사 교과서 속의 역사인식에 길들여진 나는 혼란에 빠졌다. 한과 고조선의 한판 승부(75페이지)를 서술하면서, 한국의 역사라면 당연히 한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나라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고조선은 위만 때부터 한의 외신으로 책봉되면서 주변 나라들과 정치 집단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위만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병위재물로 오히려 주변 지역을 복속했다.(중략) 특히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고 한강 이남에 있는 진국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이 한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중략) 고조선의 이러한 활동은 한과 위만 사이에 맺은 ‘외신’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중략) 이러한 고조선의 움직임은 주변지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맡은 외신의 임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기에 중국의 한을 더욱 자극했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한나라와 고조선과의 전쟁 책임이 고조선에게 있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전쟁이 일어난 결정적인 이유일까?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고조선에게만 전가시킬 수 있는 것일까? 승자의 기록만이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침략의 구실로 삼은 ‘외신으로서의 의무’를 너무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보다 나를 큰 고민에 빠뜨린 것은 ‘한사군, 식민지인가 우리 역사인가?’라는 문제제기였다. 당연히 우리의 역사가 아니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대동강 유역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기에 이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낙랑군을 비롯한 한군현은 앞으로 한국 고대사의 일부로서 그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상’이라는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고대판으로 인식되기에 손색이 없는 주장이었다. 한사군이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한 근거가 ‘한은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을 포섭하고 통제하는 데 그침으로써 토착 세력의 자치에 의존하는 간접적 지배’를 했으며, ‘중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한 삼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나에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시각을 만나는 것도 역사교사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오히려 올바른 역사관의 형성에 저해를 주기도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으로 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인지 나는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3. 신화와 역사 사이의 고민

세계의 지성 아브람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 나면 우리는 늘 마음이 쓸쓸해진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감싸고 있는 신화나 전설의 베일을 걷어내면 나는 종종 마음이 쓸쓸해진다. 민중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그 영웅은 때로는 지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정몽주의 죽음도 이러한 신화를 벗겨내자, 조금은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방원과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 받았던 정몽주가 자신의 죽을 것을 알고는 말을 거꾸로 타고 선죽교를 지나다가 이방원의 심복에 죽었고, 그 다리에서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는 신화를 나는 사실로 알았다.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치면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역사적 사실’로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제2권 ‘정몽주는 어떻게 죽었을까?’에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몽주가 죽은 장소에 대해 나오지 않는다. 당시 기록에는 조영규가 유원이 죽은 것을 조문하고 나오는 정몽주를 기다렷다가 무기로 쳤으나 정몽주는 맞지 않아 말을 채찍질해서 달아났고, 조영규가 이를 쫓아가 말을 쳤는데, 이때 떨어진 정몽주를 죽인 것은 고여 등이었다. 정몽주의 사망 이야기에 선죽교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영조때이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 이방원이 즉위한 이후, 자신에게 정몽주 처럼 충성하라는 의미에서 그를 ‘충신’의 본보기로 삼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신화가 보태져서 오늘날의 정몽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약간은 씁쓸하다. 그러나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볼 줄 알아야만이 참다운 역사교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4. 영교육과정과 『한국의 역사』

교육과정 학자인 Elliot Eisner는 ‘영교육과정(Null Curriculum)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교사들이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이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강구하거나 어떤 상황을 예측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의 역사』4권에는 ‘항일 의병’에 관한 독립된 서술이 없다. ‘애국계몽운동’에 대해서는 독립된 서술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적극적인 항일 투쟁인 ‘항일 의병’에 관한 서술이 독립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가장 힘없는 민중들이 정부의 명령이 없이도 무장하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 자랑스런 역사를 왜? 독립된 장으로 서술하지 않았을까? 물론, 많은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서술하다보니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항일 의병’은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충분히 독립된 장으로 구성해 놓았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만 서술되어있다. 현대사가 빠져있는 개설서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왜? 무슨 이유로 현대사가 빠져있을까? 현대사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앉아 계시던 국어선생님은 “요즘에는 조금만 시비가 걸릴 것 같으면 알아서 안써요.”라고 말하셨다. 그래? 그래서일까? 잠시 시대의 풍파를 피해가기 위해서?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 잘 쓰여진『한국의 역사』에 너무도 큰 ‘옥의 티’ 있었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한달 동안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나의 눈을 즐겁게 한 화려한 디자인과 사진배치……. 『한국의 역사』4․5권의 생활사 부분은 내가 읽은 다른 책들과 비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다. 이 책에서 이룩한 한국사 개설서로서의 성과가 밑바탕이 되어 더 좋은 역사책이 계속 나올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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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신문 세트 - 전2권 사계절 근현대사신문
강양구 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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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이다.

-『근현대사신문』을 읽고 -


1. 설레임으로 기다린 책.

나의 책장에는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판한, 『역사신문』을 비롯해서 『세계사신문』이 꽂혀 있다. 학습지를 만들거나 교재연구를 할 때 틈틈이 들여다보는 소중한 책이다. 이번에 『근현대사신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기회가 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내내 기다림과 설레임이 교차했고, 기존의 역사신문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라는 기대 섞인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아 보니, 과연 『근현대사신문』만의 색다름이 많았다.



2. 『근현대사신문』만의 빛깔

근현대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나에게 던져준 화두가 있다. ‘강자들에게 짓밟힌 슬픈 근현대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로 왜, 나아가지 못하였는가? 그들에게 짓밟히기 이전에 왜? 그들을 짓밟지 못하였는가? ‘강대국들에 의해서 나라를 잃었지만 식민의 어둠을 뚫고 광복의 빛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싸웠고, 독재의 어둠을 헤치고 민주를 쟁취했다.’라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개운치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읽게 된, 이 책의 머리말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고단하고 힘들지만 정의의 편에 서 있기에 지칠 줄 몰랐던 조상의 기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힘세고 잘산다고 해서 남을 침략하고 수탈했던 ‘선진 열강’의 근대사를 부러워할 수 있을까?” 이 글귀는 내생각의 옹졸함을 반성하게 했다. 강도에게 도둑질 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왜? 강도가 되지 못했느냐고 말할 수 없듯이,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소국의 민중을 노예로 부린 역사가 자랑스러울 수 없으며 그것을 부러워해서도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근현대사 신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근현대사신문』은 세계사의 시각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있다. 『근현대사신문』은 ‘조선의 개항과 서세 동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구 자본주의 세계와 조선이 만나면서 조선은 반외세 반봉건의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다. 더 이상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를 떠나서는 설명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세계 대공황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는 그러한 외부의 충격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분투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냉전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움직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서술은 역사가 과거의 죽은 사실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민중들의 고뇌를 내가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세계사와 우리역사의 관련성을 잘 조화시켜 구성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국인이 세계사의 초라한 단역이 아니라 늘 당당한 주역”이라고 강조한 글쓴이들이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은 한국인이 온갖 불행을 겪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제국주의, 분단, 빈곤, 독재 등 근현대 세계가 배설한 가장 고약한 범죄와 맞서 싸워왔다”는 것인데, 그러한 역사를 이 『근현대사신문』에서 놓쳐 버렸다. 바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항일무장투쟁사에 대한 서술이다. ‘청산리대첩’을 간단하게 다루었을 뿐,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동북항일연군, 1938년 중국관내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 그리고 조선의용대의 주력부대가 연안으로 이동해서 결성된 조선의용군 등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가 제국주의와 가장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우리의 소중한 역사임에도 이를 『근현대사신문』이 놓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역사가 근현대사 신문에서 기술되지 않기에 ‘과연 우리가 제국주의의 배설물과 적극적으로 싸운 것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생각 마져 든다. 앞으로 이 부분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근현대사신문』은 기존의 역사책들과 구성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각호의 1면 사진을 통해서 해당 시기의 가장 비중 있는 사건을 알 수 있고, 2~3면을 통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관지어 생각해보고, 4면의 사설을 통해서 당시의 중요한 현안을 깊이 있게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반 민중의 삶을 잘 유추할 수 있는 사회‧경제면(5면)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모습을 유추하고, 6면의 과학면을 통해서 과학문명의 진보와 이것이 근현대사를 보다 숨가쁘게 앞으로 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으며, 7면의 문화면과 8면의 생활 단신면을 통해서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당시의 문학, 철학, 영화를 비롯하여 제3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3년에서 5년 사이의 시기를 8면의 신문으로 정리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호외를 통해서 사건을 보다 현장감있게 정리한 것은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숨가쁘게 읽어가면서, 우리가 신문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생생함과 고뇌를 곧바로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살아서 꿈틀거리도록 만든 탁월한 구성력에 다시한번 감탄을 한다.

역사신문의 색다른 빛깔은 그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그동안 소홀히 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곳곳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과학의 진보만을 이야기하는 편향된 역사책과는 달리 세계 과학자의 3분의 1이 전쟁을 준비하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를 반성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과학 기술’을 꿈꾸며 과학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전자 변형작물, 인간 복제 등의 기사를 통해 과학기술이 인간을 재앙으로 내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근현대사신문』의 백미는 바로 ‘제3세계에 대한 재조명’이다. 『근현대사신문』의 근대편에서는 8면의 ‘제3세계 통신’을 통해서면 간간히 알 수 있었던 그들의 역사를 현대편에서는 당당히 각호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의 역사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현대는 그들의 배설물과의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쟁취해가는 제3세계 국가들의 약진과 오만한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보도록 서술하고 있다.

특히 ‘4호의 다시 일어서는 아시아’, ‘6호 4‧19혁명과 아시아‧아프리카 민주화’, ‘14호 필리핀 민중혁명과 아시아의 민주화’, ‘17호 아프리카의 승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뿌려놓은 배설물을 세계 약소국의 민중들의 힘으로 청소하는 통쾌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세계사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으며 항상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저능한 민족’들이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일어서는 장면을 현장감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며, ‘8호 베트남 전쟁’은 민주국가이며 선진국였던 미국이 얼마나 추악한 전쟁을 하고있는지를 세계 민중에게, 그리고 미국의 민중에게 스스로 고발한 전쟁이며(통킹만 사건이 뉴욕타임스에 의해서 미국이 조작한 사건임이 밝혀졌음에도 『근현대사신문』은 베트남이 통킹만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추후에 반드시 정정되어야 한다.), ‘9호 68혁명’은 기성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란을 통해서 이전세대들의 독선을 통쾌하게 부수어주는 기사였다.

이책의 마지막은 ‘19호 6‧15남북정상회담’과 ‘20호 2002한‧일월드컵과 촛불 집회’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과제인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한‧일월드컵에서 보인 길거리응원과 그 이후의 촛불집회의 열기를 통해서 우리역사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3. 진정한 역사를 꿈꾸며.

2009교육과정이 확정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기로한 ‘역사’라는 과목은 ‘한국사’로 바뀌었고 내용도 세계사와 한국사를 각각 30%와 70%로 구성하려했던 당초의 안에서 벗어나 주된 내용이 한국사로 채워질 전망이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조망하고 한국사의 입장에서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수업을 꿈꾸었던 나에게는 커다른 실망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게된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자한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일부는 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ps. 책을 읽던 중에 발견된 내용의 오류들은 앞으로 수정되기를 바란다. ‘돌아오지 않는 황제의 밀사’라는 기사에서 마치 이준열사가 헤이그에서 자결하고 자신의 내장을 회의장에 뿌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준열사는 화병으로 죽었고, 이것이 당시 신문들에 의해서 확대, 과장되어 잘못전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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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출판사 2010-07-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계절출판사입니다.
올려주신 서평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여주신 오류에 대해
"그 부분은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추후 밝혀진 사실은 확인하여 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편찬위원에서 보내왔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는 출판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이우상 지음, 성학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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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은 앙코르와트를 백인의 문화에 대비되는 황색인의 문화로 보고 있다. 어찌보면 지난 19~20세기에 백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짓밟힌 황색인의 보상 심리로보이기도한다. 그러나 이말의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사관이 깔려있음을 직감했다. 러·일전쟁을 황색인종이 백인종에게 거둔 승리로 포장하고 백인종의 식민지배로부터 황색인종을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듯 했다.

2. 이우상은 우리역사에 대해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근저에는 식민사관이 깔려있다.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 999번의 외침을 당하고서도 한번도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하지 않은 나라라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즉, 그는 한번도 대외원정을 간적이 없었고 대외원정이라고는 몽골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나선 일본원정과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나선 베트남 파병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발해의 장문휴 장군이 등주를 공격하여 자사를 죽인 사건은 물론, 고려와 조선에서 대마도 원정을 간 것, 또한 속일본기에 나와 있는 고려선단이 교역을 허락할 것을 종영하며 해상시위를 일본에 한 것...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고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한이서린 역사! 힘이 없는 역사! 그래서 남의 침약만 받아야하는 숙명을 지닌 역사! 로 왜곡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가 제대로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했으면 한다.

그러나 앙코르 와트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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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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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 첫 번째 대화 “두려움과 떨림”

  아밀리 노통은천황을 배알할때 사무라이들이 갖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단어로 일본문화를 설명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말이 일본문화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오랜 동안 막부가 존재하였고, 그 막부가 통치하는 봉건시대가 지속되었던 일본! 그러면서도 막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천황을 없애지 않고 일본을 통치했다. 사무라이들의 절대 복종! 명예를 중시여기는 그들의 문화가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치달으면서도 천황 한명을 살리려 일본의 군부는 항복시기를 늦추며 연합국과의 협상을 했다. 전선에서는 마지막 한사람까지 천황을 위해서 죽겠다면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본토의 수많은 양민들도 천황한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천황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천황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항복했다”고 일본의 국민들에게 말을 한다. 천황은 아직 살아있으며 그리고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천황은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그리고 아밀리 노통은 그의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간단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유미모토사에 1년 계약으로 취직을 하고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업무를 강요당한다. 훨씬 창의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단순한 숫자 처리,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상관에게 복종해야하는 회사의 문화 속에서 순응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 자신은 이 사실을 소설로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작가가 일본 사회를 상대할 수 있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었으리라....




우리 '다락'이라는 동아리의 토론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화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귀에서 시작되었다. 후부키라는 여성과 아멜리라는 여성의 대립구도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트랜디 드라마와 비슷해 보이지만 후부키는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명하복의 문화를 대표하는 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밀리라는 주인공이 후부키를 추월하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것이 여성들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우린 생각했다. 서열적이고 위계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모습이 아니며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짙게 잔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직되고 지극히 비효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어떻게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그러나 관료제적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선입관 부터 벗어던져야 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조직은 관료제화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료제 속에서 창의적으로 모든 사람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수의 엘리트가 창의 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면된다. 사실 아멜리와 같은 창의적인 사람은 단순한 일에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을 위해서는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어쩌면 학력 인플래이션에 의해서 너무 고학력의 사람들을 생산하고 뽑은 결과가 아멜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발전한 이유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장인정신을 들수 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의 장인정신 말이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구조가 경쟁사회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상사’는 바로 사무라이가 모시는 ‘다이묘’이고, 자신은 다이묘의 말에 복종하며 다이묘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이다. 그래서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일본 경제 발전의 한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식회사 제팬이다. 외국제품을 사라고 일본의 수상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호소할 정도로 자국의 물품을 애용하는 일본인. 외국인의 눈에는 그들이 이해될 리 없다. 싼 물건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싼 물건을 사야하지만 비싸지만 자국의 상품을 사는 일본인을 서양의 인물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 화두는 문화상대주의 였다. 일반사회 선생님인 노의환 쌤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미모토사에 온 아멜리가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문화, 그 일본의 문화를 비판하는 벨기에 여성의 글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쁠 수 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서양의 문화를 비판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상당히 탁월한 지적이었다. 밖에서 안을 볼 필요도 있지만 안에서 밖을 볼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뇌리 속에 맴도는 것은 과연 문화상대주의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화제국주의, 자문화 중심주의,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타 문화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를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를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성에 대한 할레, 중국의 전족, 인도의 수티(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같이 죽이는 풍습) 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노의환 쌤과 차안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를 볼 때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해치는 문화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노의환쌤도 약간 긍정적인 생각을 제시했다. 우리의 집단주의가 개인을 억압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편,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해서 노의환 쌤이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집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속에서 나타나는 인식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두발규제 복장규제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발자유, 복장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촛불시위까지 하고, 학교에서 집단행동까지 하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두발, 복장의 규제는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마땅히 개인의 자유는 확대 되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확대가 긍정적인 면만을 보이는 것은 또한 아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주제들만 가지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흥미로운 이야기도 했다. 후부키와 아멜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며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요즘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여성들은 쎄련된 외모에 깔끔한 일처리를 한다. 이를 보고 살아  남기 위해서 전사가 되어 높은 직책에 오른 미혼여성은 신세대 여성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갖게 된다. 마치 여자 교장이 여선생님들에게 더 무섭듯이, 여자 상관이 여성에게는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미혼 여성분들이 자신들이 사회문제이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여쌤들에게 속으로 한마디 했다. '쌤들은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묵사마 어록 제1장-'
이어서 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 성리학적 의식에 순응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어느덧 '다락'모임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 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 시간에는 유봉학 교수의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이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무거운 주제로 보이지만, 상당히 쉬운 글로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이 씌여졌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읽을 꺼리가 있어 더욱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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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조국의 노래
조문기 지음 / 민족문제연구소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너무나 열정적인 한 인간의 고뇌

-'슬픈 조국의 노래'를 읽고-

  슬픈 조국의 노래라는 제목은 보통의 역사책에 비해 상당히 문학적인 제목이었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모순을 상당히 잘 지적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책의 첫장을 펴든 순간! 난 지금 행복해 보이는 우리 조국의 현실이 얼마나 슬픈지를.. 그리고 왜? 이리 슬플 수 밖에 없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서문에서 독립운동가 조문기선생은 이렇게 쓰고 있다. 
 " 엄밀히 말하면 8.15는 민족이 해방된 날이 아니라 친일파가 해방된 날이다. 일제를 주인으로 떠받들던 친일파 주구들이 제 주인을 벗어나 이 땅의 주인으로 우뚝 선 날이다."

  우리는 8.15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일제의 압제에서 해방된 날! 독립을 쟁취한 날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은 오히려 친일파가 해방된 날로 기억한다. 그래서 이날은 펄럭이는 태극기를 안보려고, 경축의 냄새가 나지 않은 곳을 찾아 피신한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유별나 보이지만 유별나지 않은 지극히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의 서문은 그가 겪어 왔던 한국 현대사의 모순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시작이었다.

  어린 시절 조문기선생의 가정은 부유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으로 짐작되는 아버지 때문에 집안은 기울어져 갔다. 그리고 외할아버지 집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게 된다. 외할아버지는 그에게 '독립'과 '민족'이라는 두 단어를 가슴속으로 깊게 뿌리박게 만든 사람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일제에 친일을 하는 송병준 일가는 그에게 반면교사였으며 독립운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일제와 친일파에 대한 분노를 참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시는 할아버지는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바로보고 무엇이 진실인지를 알려주었다. 이 두사람이 조문기 선생을 숙명적으로 독립의 길을 걷도록 만들었다.

  보통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아주 특별한,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가 독립운동가가 되는 것은 그 시대적 배경 속에서 남들도 갖고 있는 시대에 대한 고민을 행동으로 옮겼을 뿐이다. 조문기 선생은 경성 사범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선생님들 조차도 그가 당연히 합격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가 일본인이 아니기에 합격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유해질 수 없는 세상! 자신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쳐야하는 세상! 능력이 있다해도 일본인이 아니기에 차별받아야하는 세상! 일본인에게 멸시와 수탈을 받으며 고통받아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 속에서 조선의 민초들이 어찌 독립운동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그 시대를 살았다면 친일파가 되어서 일제에 협력하면서 성공하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았겠는가?’ 라고.. 참으로 어이없는 말에 대해서 그 시대를 겪은 조문기 선생이 쓴 이 책을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의 집안이 잘사는 집안의 사람이었던가? 일제는 아무나 친일파로 포섭하지 않았다. 이용의 가치가 있는자를 친일파로 적극 포섭했다. 이광수와 같은 지식인이나, 자본가 지주와 같은 재력가들이다. 과연 그는 그들과 같이 일본으로 부터 간택(?) 받았겠는가? 아니면 민족의 차별속에서 수탈받았겠는가? 설령 그가, 친일파가 되어서 민족의 피를 빨아먹으며 잘산다고 과연 행복할까? 물질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는 세상, 그러한 물질만능의 사고가 시대를 어떻게하면 올바르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본원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흐리게하고 있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손자병법에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퇴’라 했다. 조문기는 우리민족을 억압하는 일제를 실제로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일본행을 결심한다. 일본강관회사에 취직한 그는 그곳에서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를 만난다. 평생의 동지인 유만수! 그도 일제로부터 차별과 박해를 받으며 독립운동의 꿈을 꾸었다. 그의 첫번째 독립운동은 일본 강관파업사건이다. 너무 어리기에, 너무 열정이 넘치기에 행동이 앞서는 조문기에 비해서 유만수는 침착하게 강관파업을 주도했다. 그리고는 더 많은 독립운동을 위해서 강관회사를 빠져나온다. 같은 방에 있던 강윤국 동지 또한 후에 ‘대한 애국 청년당’의 주역이니 그들의 인연은 일본의 강관회사에서 맺어진 것이다.

   조문기선생의 자서전에는 이해못할 사람이 나온다. 조문기선생 자신의 아버지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했는지 조문기 자신도 모르다. 또한 일본에서 그에게 은신처를 마련해주고 지도해 주었던 서상한이라는 사람 또한 이해못할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위험을 무릎서고 조문기선생을 도왔던 서상한! 그러나 그는 좌익계의 자료에는 독립운동가를 전향시킨 민족 반역자로 기록되어있다. 과연 그랬을까? 하는 의문부터 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보험을 들어 놓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일제시대 일본에 협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독립운동 자금을 내 놓는 기행을 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독립운동가의 제거 대상 명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상한! 그도 그러한 보험을 들어 놓은 이중간첩이 아닐까? 어디까지나 나의 추측이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평생의 독립운동 동지를 만나게 했고, 민족의 피를 빨아먹고 있는 박춘금이라는 친일파를 제거의 대상으로 지목하게된 시기였다. 바로 그것이 그 유명한 '부민관 폭파사건'이다.

  여명의 눈동자라는 드리마와 TV다큐멘터리에서는 치밀한 계획 속에서 신속하게 이루어진 의거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조문기 선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대한 애국청년단을 만든 조문기선생과 유만수 동지는 폭파 작업장에서 다이나마이트를 빼내어 시한폭탄을 만들었다. 그것도 갖가지 실험을 거쳐 '아시아격분대회'에 아슬아슬에게 맞추어 갔다. 폭탄을 어디에 설치해야 될지도 일본 헌병들 앞에서 동지들과 실랑이하며 간신히 결정했다. 정말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성공하기 힘든 일이었다. 보통 독립운동은 성공한 것보다 상당수의 거사가 모의 단계에서 발각되거나 실행했어도 폭탄이 터지지 않아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해서 조문기 선생의 '부민관 폭파사건'은 젊은이들의 의기와 하늘이 도운와 성공한 의거였다. 보통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랑은 과장해서 말하지만 조문기 선생은 진솔하게 자신의 독립운동을 서술했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이 나와는 멀기만한 사람이기보다는 이웃집 할아버지와 같은 친근함을 느끼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지만 열정이 앞서서 실수도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면서 자신의 양심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행동할 수있는 당당한 독립투사 조문기! 그의 웃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더 많은 의거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조국은 그의 생각보다 빨리 해방을 맞이했다. 그러나 어린 독립운동가 조문기는 열정은 하늘을 찔렀을지라도 세상은 그러한 열정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야속해졌다. 강대국이 자신의 입맞데로 우리의 운명을 저울질하고 있을 때, 이에 편승해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민족을 두동강이내는 민족의 반역자들과 친일파들... 이에 대항해서 민족이 두동강이 나는 것만은 막으려는 조문기의 의거... 그러나 동지의 배신을 당하는 쓰라린 경험을 하게된다.

  이제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그의 머리 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었다. 역사의 수레바퀴밑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나 시대는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에서 그는 북조선노동당 농림성 간부가 된다. 그는 ‘좌’냐 ‘우’냐하는 이념보다는 민족이 우선이었다. 민족을 떠나서는 좌도 우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남한은 친일파와 우익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조문기는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 경찰 출신의 경찰에게 모진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좌도 경험했지만 그의 길이 아니었다. 그 후에도 좌익은 그를 포섭하려했으나 그는 이를 뿌리쳤다. 그에게 민족 보다 더 우선하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이념이라는 허울의 노예가 되어 우리민족을 두동강이 내는 것도 모자라서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싸우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쪽이 아니면 적이라는 흑백논리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현실! 그러나 그 어느 쪽도 그의 길이 아니었다. 이러한 조문기 선생의 고통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만약 나라면 어느 길을 선택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마도 조문기 선생과 같은 길을 걷지 않았을까? 좌와 우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지식인! 이념보다는 민족을 사랑하지만 순수한 민족주의자가 설자리가 없는 극단의 시대에서 갈길을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이제 그는 그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지배해온 ‘민족’과 ‘조국’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싶었다. 10년여의 배우생활을 한것도 바로 그러한 의도에서였으리라.. 그러나 조국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배우생활을 청산한 그를 냉엄한 조국은 대통령 암살, 정부전복음모사건으로 현실에 내동댕이쳤다. 어제의 독립동지들을 해방된 조국의 유치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의 입신출세에 눈이먼 경찰들에게 고문을 당하면서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허위자백을 하지 않았다. 친일경찰이 우리 경찰계를 장악하면서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기술이 그대로 민주투사들을 고문하는데 이어졌다. 조문기선생은 일제시대 일본헌병에게 고문당하고 해방된 조국에서 다시 친일파 출신 경찰들에 의해서 혹독한 고문을 여러차례 당한다. 해방된 공간에서 친일파에게 독립운동가가 고문을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현실! 어찌 조문기선생에게는 조국이 슬퍼보이지 않았겠는가! 친일파의 나라가 되어버린 현실속에서 조용히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에게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유만수 동지 덕택으로 사회주의 운동을 했던 아내와 결혼한다. 서로의 지향점이 같았기에 결혼을 할 수 있었으나 조문기선생의 아내는 집안 일에는 관심없는 남편 덕택에 모진 고생을 한다. 뿐만 아니라 딸 정화 또한 친척집에서 자라며 설움을 당해야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특징! 자신의 가정보다는 민족을 위해서 헌신하는 모습을 조문기선생에게서도 그대로 보였다.

  조문기 선생의 평생동지 유만수의 죽음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했다. 유만수 동지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궁금해서 나도 모르게 책장을 두세장 넘겼다. 조문기 선생은 ‘유-만-수-동-지-는-굶-어-죽-었-다.’라고 써 놓았다. 순간 머릿속이 멍했다. 어찌 독립운동가가 굶어 죽을 수 있는가! 그것도 독립이된 조국에서!! 나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을 읽어 내려갔다. 유만수 동지는 과거 사설군단 조직등의 사건에 연루된 경력으로 인해서 제데로된 직업을 갖을 수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변변치 않은 직업이지만 고된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결과 결핵을 앓게된다. 유만수 동지를 살리기 위해서 조문기 선생은 혼신의 노력을 했다. 다행히 어느 정도 병이 나아갈 즈음 다시 가족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했고 유만수 동지는 병이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하게된다. 조문기 선생이 굶어 죽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독립운동가 유만수 동지의 죽음은 너무도 슬펐다.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세간의 씁쓸한 말들이 빈말이 아닌, 바로 우리의 슬픈 현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슬픈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후손들에게 과연 무슨 변명을 할 수 있겠는가!

  조문기! 그는 제2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 광복회에서 느꼈던 실망을 민족문제 연구소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희망으로 바꾸고 있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그는 그의 여생을 보내고 있다. '방관자는 방조자와 같다. 방조자는 바로 공범자와 다르지 않다.'라는 조문기 선생의 글귀가 나의 가슴을 찔렀다. 친일파가 영웅으로 대접받는 세상! 독립운동가가 설움을 당해야하는 세상! 이러한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 그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친일 청산에 임하고 있다. 과연 역사교사인 나는 시대적 과제인 친일 청산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나 자신을 다시한번 반성해본다.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의 자서전 '슬픈 조국의 노래'는 우리 근현대사의 모순을 아주 솔찍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고 있었다. 그가 겪어야했던 이시대의 모순들! 친일파는 죽었는데 친일 청산은 해서 뭣하느냐는 사람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뉴라이트에게 과연 이시대 우리 조선인의 삶이 어떠했는지 확인하라며 이책을 드리밀고 싶다. '식민지 수탈론'이니 '식민지 근대화론'이니하는 거대 담론을 말하기 보다는 과연 그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책을 통해서 잔잔하게 보여 준다면 식민지 시대를 미화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그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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