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 1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완용 평전 -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김윤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발칙한’ 평전을 쓰려다 ‘망칙한’ 평전을 쓰다.
-이완용 평전’을 읽고-

몇 년전에 교사 모임에서 한선생님으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이○○ 교수가 대학원 수업에서 “내가 보기에 근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이완용이야! 이완용이 3․1운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미리 알고서도 이를 일제에 알리지 않았으니까 3․1운동이 일어나는데 얼마나 큰 기여를 한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간! ‘아, 저런 괘변을 늘어 놓는 사람이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니...’하는 탄식이 나의 가슴 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모든 대학교수들이 지성인이고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며, 나보다 나을 수 있다는 환상은 사라졌다. 이때부터 매국노 이완용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다. 진정 나는 그의 삶에 대해서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이러던 차에 ‘이완용 평전’을 보았다. 부재가 ‘극단의 시대, 합리성에 포획된 근대적 인간’이라 적혀있었다. 이 부재 또한 이 책을 읽고 싶게 했다. 저자는 왜 이런 부재를 달았을까?

1. 분노하지 않고 이완용을 살피다.
저자 김윤희는 분노하지 않고 찬찬히 이완용의 삶을 서술해갔다. 대표적 매국노 이완용을 이렇게 분노하지 않고 살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김윤희는 천천히 이완용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뜻밖에 사실들도 전해 주었다. 이완용이 탐욕스러운 관리라고 알고 있었는데, 김윤희는 이완용이 전라북도 관찰사로 부임하고 벌어진 여러 비리 사건들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당시 신문에서는 그를 탐관오리로 비판하였으나, 당시의 만연한 부정부패의 구조적 모순 속에서 이완용이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일을 처리하려했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음에도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여자관계도 문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이완용하면 떠오르는 것은 『매천야록』에 며느리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고 이 때문에 아들이 자살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당시 민중들의 이완용에 대한 시선이 투영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이완용의 삶은 정말 뜻밖이었다.

2. 그러나 저자가 놓친 사실들....
이완용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분노하지 않고 천천히 들여다 보는 것은 나름의 의의가 있다. 그러나 진정 분노해야할 때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처럼 우리를 분노하게 만드는 사람은 없다. 저자 김윤희는 너무도 냉정하게 이완용의 입장에서 그의 삶을 살펴보고 있었다.
‘차별, 불평등, 억압에 분노하기 보다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실리를 추구’하는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라고 이완용을 평가하는 김윤희는 을사늑약 체결과정을 서술하면서 그를 합리적인 인간으로 그리고 있다. 이러한 김윤희의 침착함은 ‘을사조약은 고종과 9명의 대신들 누구도 찬성하지 않고 결정하지도 않은 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되었다.’라는 결론에서 절정에 다다른다. 을사오적으로 지목된 이들이 을사 늑약에 찬성을 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그러나 ‘발칙’하게도 김윤희는 이것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김윤희는 ‘이완용의 상소’를 근거로 하여 을사늑약의 자구 수정은 이미 고종과 함께 사전에 이루어졌으며, 이완용은 을사늑약에 찬성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토는 고종의 명령을 따른다면, 동양의 대세를 알고 있다면,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면, 그것은 찬성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5명의 대신이 찬성한 것이라고 몰아세웠다.
이때 이완용은 “신이 속으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성상의 하교를 이미 참정이 성명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안건의 귀결은 이미 판가름 난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조금 전에 연석에서 주달(奏達)하는 일이 있게 되어 이러이러하게 아뢰었을 뿐이다. 그러나 끝까지 찬성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라고 밝혔다. …… 이완용은 고종과 합의된 대책이 이미 깨졌음을 알았고, 그다음으로 조약문을 개정하는 협상의 수순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김윤희에게 묻고 싶다.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면, 그것은 찬성이나 마찬가지’라는 이토의 주장이 잘못되었는가? 그리고 이완용의 논리대로 고종이 ‘하교’를 했다고 자구를 수정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조약 문구를 수정한다는 것은 조약을 찬성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하다. 그리고 단호한 부정이 아니면 온건한 찬성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을사늑약 체결은 대한제국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그런데 단호한 반대를 국가 대신으로서 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찬성으로 해석된다. 설사 이완용의 논리대로 고종의 ‘하교’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나라의 대신으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대를 했어야 한다. 그것이 나라의 대신으로서 ‘합리적’인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 김윤희의 ‘발칙’함은 사료 선택에서도 드러난다. 왜? 수많은 사료들 중에서 이완용이 자신의 죄가 없음을 항변하기 위해서 올린 상소문을 선택했을까? 이완용에게 유리한 사료를 선택하고 그 위에서 당시 사건을 살펴보았으니 이완용에게 유리하게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 김윤희는 역사학자이다. 김윤희가 이것을 몰랐을까? 더욱이 “일본의 요구는 대세상 부득이한 것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원만히 타협하여 한국의 지위를 보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라는 이완용의 말은 그의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대세상 부득이한 것”이라는 이완용의 말은 그가 을사늑약에 찬성했다고 충분히 해석할 수 있는 말이다. 김윤희는 이 사료를 왜? 사용하지 않았을까?
김윤희는 여기서 한발자국 더 나가 망국의 책임을 고종에게 돌린다. “여론은 지배 엘리트들이 원하던 방향대로 흘러갔고, 을사5적은 고종이 져야 할 책임까지 모두 짊어져야 했다.”라는 지적에 대해서 나는 분노에 치를 떨었다. 전제군주제 국가에서 나라가 망한 책임에서 고종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려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에도 헤이그에 특사를 보내며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 노력한 사람과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며 이후의 대한제국 병합에 앞장서고 친일의 댓가로 풍족한 여생을 보낸 매국노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설정이다. 누가 더 잘못했는가를 비교하면서 고종보다 이완용이 덜 잘못했으니, 이완용은 잘못이 없다는 그릇된 논리의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다.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고종이 망국의 책임이 있다면, 국가의 대신으로서 이완용에게도 책임이 있다. 더욱이 이후 친일의 죄를 논한다면 이완용 같은 매국노는 고종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조선의 지배층을 무능하고 나약하게 그림으로써 일제의 침략을 합리화하려했던 식민사학자들의 관점을 김윤희가 답습하지 않기를 바란다. 조선 멸망의 책임을 일제에 돌리지 않고 내부로 돌림으로써 일제가 얻으려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자 김윤희는 이완용을 ‘충성스러운 신하’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충성’은 병합조약을 체결할 때까지 이어진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을사조약 체결 때 보여준 고종의 태도로 미루어보면, 완강한 반대만을 지시하지 않았을 것이다. …… 철저히 현실에 순응하는 인물이었던 이완용은 병합을 피할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고, 대세를 인정하는 가운데 최대한 얻을 수 있는 것을 고민했을 것이다. 또한 왕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던 그로서는 고종과 순종의 부탁을 저벌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병합을 하더라도 지켜내야할 것을 지키기 위한 방법과 조약 체결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짤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김윤희의 글을 읽다보면, 고종과 순종이 나라를 일본에 넘기기로 결정했고 이 악역을 이완용이 했으며, 이완용은 고종과 순종에 대한 충성심에서 이러한 악역을 대행한 것처럼 읽혀진다. 이것이 나만의 오독일까? 고종이 내린 병합조약에 대한 지침과 관련된 사료를 제시하지도 않고 저자 김윤희의 추측에 의해서 사건을 서술하고 있으며, 이완용의 입장에서 천천히 당시를 들여다 보고 있다. 나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더욱이 이완용을 ‘충성심이 남달랐’다고 서술한 부분에서는 무척이나 불쾌한 감정이 복받쳤다.
나는 이완용은 고종에 대한 충성심이 별로 없다고 알고 있다. 『매천야록』에는 고종을 강제퇴위 시키기 위해서 이완용이 고종에게 칼을 겨누며 “폐하는 오늘날이 어떤 세상인지 아십니까?” 라는 말을 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고종에 입장에서는 이완용이 나라를 팔아먹는 역할을 하기 보다는 민영환 처럼 자결을 하는 것이 더 충성스러운 신하로 여겨지지 않았을까?

3. 친일파에게는 ‘입장 바꿔 생각해 봐!’가 통하지 않는다.
인생사를 살다보면 자주 듣는 말이 ‘입장 바꿔 생각해 봐! 너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니?’라는 말이다. 타인을 이해할 때 가장 좋은 이 방법은 매국노를 이해할 때는 예외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적 인물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 인물의 입장에서 당시를 생각하면 당시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의 일이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으며, ‘이해’가 된다. 그리고 불행한 것은 당시의 인물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인물의 모든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완용이 만약 다른 시대에 태어났다면, 매국노가 아니었을 거야.”라며 이완용을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일제시대를 네가 살았다면 너는 친일파가 안되었어. 당시를 살았다고 모두 친일파라고 하면 안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도 친일파 매국노의 입장에서 역사를 이해하고, 그들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측은한 마음이 든다.
역사적 인물을 바라보려면 당시의 인물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아야하지만, 다른 선택을 한 인물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 정의’에 과연 부합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어떤 중요한 일을 처리할 때에는 그것이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따지기 보다는 먼저 그 일이 바른길이냐 어긋난 일이냐를 따져서 결정하라”라는 백범 김구의 말씀처럼 한 인물의 선택을 평가할 때도 그 인물의 선택이 과연 ‘합리적’이었느냐보다는 ‘정당’하였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단순히 ‘합리성’만을 따질 때는 친일파도 미화되기 십상이다. 김윤희는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믿는 현대인의 태도를 발견’한다며 이완용의 ‘합리성’이 우리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주장하며 그에 대한 평가에 물타기를 한다. 김윤희여! 제발, 그러지 말아 주시오.

저자 김윤희는 기존의 이완용 평전과 다르게 그를 서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휩싸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색다른 글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치게 이완용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 우(愚)를 범하게 한 것 같다. 다르게 서술하려는 고민보다는 책한권을 내기 위해서 많은 나무를 베어야하는데 이 책이 그러한 가치가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는 어느 학자의 말을 저자가 되새기길 바란다. 그리고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기에도 부끄러운 이 책을 많은 나무를 희생하면서 까지 발간한 이유를 한겨레 출판부에게도 묻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세트 - 전5권 - 우리 시대 건강한 시민을 위한 열린 한국사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사책을 만나다.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 5권’을 읽고

 

역사문제연구소의 학자들이 모여 좋은 역사책을 만들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의 역사』를 만든 사람들이 새롭게 만든 책이라 많은 기대를 하게한 책이다. 처음에는 5권이라는 무게감이 나를 부담스럽게도 하였지만, 책을 받아든 순간, 이러한 무게감은 기대감으로 승화되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옛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사진과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그림들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하였다. 이 책에서 들려주는 우리 역사의 재미에 4월 한달이 무척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자, 그럼 이 책의 이야기를 해보자.



1. 역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한국의 역사

책을 펼치는 순간, 다양한 사진들이 나를 매료시켰다. 사실 역사책에 사진과 그림의 중요성이 한층 중요시되고 있다. 각종 영상물을 보면서 자라고 생활하는 학생들에게 사진 자료와 그림 자료는 역사를 보다 재미있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 주몽이 말달리던 집안현 일대의 사진과, 백제의 숨결이 살아있는 몽촌토성의 모습과 대조영이 나라를 세운 동모산의 모습은 당시의 역사와 인물들이 자유롭게 사진 속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시간과 공간이 멀리 떨어진 고대 사람들과 자유로운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상상의 날개를 선사한 사진 자료들이 전근대편(제1권~제3권)을 장식했다면, 근대편(제4권과 5권)에서는 쉽게 구해볼 수 없는 사진 자료를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역사 이해를 도왔다. 뛰어난 사진 편집은 단연 돋보이는 이 책의 장점이다.



2.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에 대한 고민

『미래를 여는 한국의 역사』(이하 『한국의 역사』로 명명함) 1권을 읽으면서 국사 교과서 속의 역사인식에 길들여진 나는 혼란에 빠졌다. 한과 고조선의 한판 승부(75페이지)를 서술하면서, 한국의 역사라면 당연히 한국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중국 한나라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고조선은 위만 때부터 한의 외신으로 책봉되면서 주변 나라들과 정치 집단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위만은 중국에서 받아들인 병위재물로 오히려 주변 지역을 복속했다.(중략) 특히 중계무역의 이익을 독점하려고 한강 이남에 있는 진국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이 한과 직접 교역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중략) 고조선의 이러한 활동은 한과 위만 사이에 맺은 ‘외신’규정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중략) 이러한 고조선의 움직임은 주변지역에 대한 관리와 통제를 맡은 외신의 임무를 지키지 않은 것이기에 중국의 한을 더욱 자극했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한나라와 고조선과의 전쟁 책임이 고조선에게 있다는 서술을 하고 있다. 과연 이것이 전쟁이 일어난 결정적인 이유일까? 그리고 전쟁의 책임을 고조선에게만 전가시킬 수 있는 것일까? 승자의 기록만이 남아있는 현실 속에서 침략의 구실로 삼은 ‘외신으로서의 의무’를 너무도 충실히 서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겼다.

고조선과 한나라와의 전쟁보다 나를 큰 고민에 빠뜨린 것은 ‘한사군, 식민지인가 우리 역사인가?’라는 문제제기였다. 당연히 우리의 역사가 아니며,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한사군이 한반도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대동강 유역에 존재한다고 주장하였기에 이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낙랑군을 비롯한 한군현은 앞으로 한국 고대사의 일부로서 그 역사적 성격을 밝히는 데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대상’이라는 주장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고대판으로 인식되기에 손색이 없는 주장이었다. 한사군이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한 근거가 ‘한은 고조선의 토착 지배층을 포섭하고 통제하는 데 그침으로써 토착 세력의 자치에 의존하는 간접적 지배’를 했으며, ‘중국의 발전된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이 성장하기 시작한 삼국의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나에게 설득력이 전혀 없었다.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시각을 만나는 것도 역사교사로서는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시각이 오히려 올바른 역사관의 형성에 저해를 주기도 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식민지 미화론’으로 까지 이어지는 현실을 바라보며 올바른 역사관이란 무엇인지 나는 한동안 사색에 잠겼다.



3. 신화와 역사 사이의 고민

세계의 지성 아브람 노암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고 나면 우리는 늘 마음이 쓸쓸해진다.”라는 말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감싸고 있는 신화나 전설의 베일을 걷어내면 나는 종종 마음이 쓸쓸해진다. 민중은 영웅을 원한다. 그리고 그 영웅은 때로는 지배자들에 의해서 만들어 진다.

정몽주의 죽음도 이러한 신화를 벗겨내자, 조금은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방원과 ‘하여가’와 ‘단심가’를 주고 받았던 정몽주가 자신의 죽을 것을 알고는 말을 거꾸로 타고 선죽교를 지나다가 이방원의 심복에 죽었고, 그 다리에서 대나무가 솟아 올랐다는 신화를 나는 사실로 알았다. 학생들에게 이를 가르치면서 추호의 의심도 없이 ‘역사적 사실’로 가르쳤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제2권 ‘정몽주는 어떻게 죽었을까?’에서 새로운 진실을 알게 되었다. 『고려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정몽주가 죽은 장소에 대해 나오지 않는다. 당시 기록에는 조영규가 유원이 죽은 것을 조문하고 나오는 정몽주를 기다렷다가 무기로 쳤으나 정몽주는 맞지 않아 말을 채찍질해서 달아났고, 조영규가 이를 쫓아가 말을 쳤는데, 이때 떨어진 정몽주를 죽인 것은 고여 등이었다. 정몽주의 사망 이야기에 선죽교가 등장한 것은 18세기 영조때이다. 정몽주를 죽인 태종 이방원이 즉위한 이후, 자신에게 정몽주 처럼 충성하라는 의미에서 그를 ‘충신’의 본보기로 삼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신화가 보태져서 오늘날의 정몽주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약간은 씁쓸하다. 그러나 신화를 걷어내고 역사적 진실을 볼 줄 알아야만이 참다운 역사교사로 거듭나는 것이 아닐까?



4. 영교육과정과 『한국의 역사』

교육과정 학자인 Elliot Eisner는 ‘영교육과정(Null Curriculum)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학생들이 배워야 할 것들을 교사들이 가르치지 않는 교육과정이 학생들이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강구하거나 어떤 상황을 예측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 있기에 상당히 중요하다.

『한국의 역사』4권에는 ‘항일 의병’에 관한 독립된 서술이 없다. ‘애국계몽운동’에 대해서는 독립된 서술을 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적극적인 항일 투쟁인 ‘항일 의병’에 관한 서술이 독립적으로 서술되어 있지 않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가장 힘없는 민중들이 정부의 명령이 없이도 무장하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 자랑스런 역사를 왜? 독립된 장으로 서술하지 않았을까? 물론, 많은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한 사실들을 서술하다보니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기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수많은 사실들 중에서 ‘항일 의병’은 빼 놓을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이다. 충분히 독립된 장으로 구성해 놓았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역사』는 일제시대까지만 서술되어있다. 현대사가 빠져있는 개설서를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왜? 무슨 이유로 현대사가 빠져있을까? 현대사 부분이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옆에 앉아 계시던 국어선생님은 “요즘에는 조금만 시비가 걸릴 것 같으면 알아서 안써요.”라고 말하셨다. 그래? 그래서일까? 잠시 시대의 풍파를 피해가기 위해서?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까? 잘 쓰여진『한국의 역사』에 너무도 큰 ‘옥의 티’ 있었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한달 동안 『한국의 역사』와 함께한 시간은 너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많은 사색에 잠기게 했다. 새로운 관점과 새로운 역사적 사실들, 그리고 나의 눈을 즐겁게 한 화려한 디자인과 사진배치……. 『한국의 역사』4․5권의 생활사 부분은 내가 읽은 다른 책들과 비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있었다. 이 책에서 이룩한 한국사 개설서로서의 성과가 밑바탕이 되어 더 좋은 역사책이 계속 나올 것을 기대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근현대사신문 세트 - 전2권 사계절 근현대사신문
강양구 외 지음 / 사계절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이다.

-『근현대사신문』을 읽고 -


1. 설레임으로 기다린 책.

나의 책장에는 사계절 출판사에서 출판한, 『역사신문』을 비롯해서 『세계사신문』이 꽂혀 있다. 학습지를 만들거나 교재연구를 할 때 틈틈이 들여다보는 소중한 책이다. 이번에 『근현대사신문』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읽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기회가 되어 책을 읽게 되었다. 책을 신청하고 기다리는 내내 기다림과 설레임이 교차했고, 기존의 역사신문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라는 기대 섞인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책을 받아 보니, 과연 『근현대사신문』만의 색다름이 많았다.



2. 『근현대사신문』만의 빛깔

근현대사를 배우고 가르치면서 학생들이 나에게 던져준 화두가 있다. ‘강자들에게 짓밟힌 슬픈 근현대사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 슬프다’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본과 같은 제국주의 국가로 왜, 나아가지 못하였는가? 그들에게 짓밟히기 이전에 왜? 그들을 짓밟지 못하였는가? ‘강대국들에 의해서 나라를 잃었지만 식민의 어둠을 뚫고 광복의 빛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싸웠고, 독재의 어둠을 헤치고 민주를 쟁취했다.’라고 우리의 근현대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개운치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읽게 된, 이 책의 머리말이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처럼 고단하고 힘들지만 정의의 편에 서 있기에 지칠 줄 몰랐던 조상의 기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힘세고 잘산다고 해서 남을 침략하고 수탈했던 ‘선진 열강’의 근대사를 부러워할 수 있을까?” 이 글귀는 내생각의 옹졸함을 반성하게 했다. 강도에게 도둑질 당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는 왜? 강도가 되지 못했느냐고 말할 수 없듯이, 약한 나라를 침략하고 약소국의 민중을 노예로 부린 역사가 자랑스러울 수 없으며 그것을 부러워해서도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근현대사 신문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었다.

『근현대사신문』은 세계사의 시각에서 우리역사를 바라보면서도 우리의 입장에서 세계를 조망할 수 있도록 서술되어있다. 『근현대사신문』은 ‘조선의 개항과 서세 동점’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면서 서구 자본주의 세계와 조선이 만나면서 조선은 반외세 반봉건의 이중의 과제를 떠안게 된다. 더 이상 우리의 역사는 세계사를 떠나서는 설명이 안되는 시대가 되었다. 중국혁명과 러시아 혁명 그리고 세계 대공황 등 세계의 굵직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우리는 그러한 외부의 충격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 분투했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도 냉전을 비롯한 여러 사건들은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움직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필체로 서술하고 있다.

현재 사건이 진행되는 현장감이 살아있는 서술은 역사가 과거의 죽은 사실이 아니라 지금 살아서 꿈틀대는 생명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당시를 살았던 민중들의 고뇌를 내가 느껴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도 세계사와 우리역사의 관련성을 잘 조화시켜 구성한 구성력이 돋보인다.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국인이 세계사의 초라한 단역이 아니라 늘 당당한 주역”이라고 강조한 글쓴이들이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은 한국인이 온갖 불행을 겪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제국주의, 분단, 빈곤, 독재 등 근현대 세계가 배설한 가장 고약한 범죄와 맞서 싸워왔다”는 것인데, 그러한 역사를 이 『근현대사신문』에서 놓쳐 버렸다. 바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항일무장투쟁사에 대한 서술이다. ‘청산리대첩’을 간단하게 다루었을 뿐, 1930년대 만주에서 활약한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 동북항일연군, 1938년 중국관내에서 결성된 조선의용대, 그리고 조선의용대의 주력부대가 연안으로 이동해서 결성된 조선의용군 등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단한마디의 언급도 없다. 우리가 제국주의와 가장 적극적으로 치열하게 싸운 우리의 소중한 역사임에도 이를 『근현대사신문』이 놓친 것은 너무도 아쉬운 일이었다. 더욱이 이러한 역사가 근현대사 신문에서 기술되지 않기에 ‘과연 우리가 제국주의의 배설물과 적극적으로 싸운 것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생각 마져 든다. 앞으로 이 부분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작은 기대를 가져본다.

『근현대사신문』은 기존의 역사책들과 구성면에서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각호의 1면 사진을 통해서 해당 시기의 가장 비중 있는 사건을 알 수 있고, 2~3면을 통해서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관지어 생각해보고, 4면의 사설을 통해서 당시의 중요한 현안을 깊이 있게 성찰해 볼 수 있었다. 또한 일반 민중의 삶을 잘 유추할 수 있는 사회‧경제면(5면)을 통해서 당시의 생활모습을 유추하고, 6면의 과학면을 통해서 과학문명의 진보와 이것이 근현대사를 보다 숨가쁘게 앞으로 밀고 있는 현실을 직면할 수 있었으며, 7면의 문화면과 8면의 생활 단신면을 통해서 우리가 지나치기 쉬운 당시의 문학, 철학, 영화를 비롯하여 제3세계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3년에서 5년 사이의 시기를 8면의 신문으로 정리하고 중요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는 호외를 통해서 사건을 보다 현장감있게 정리한 것은 다른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박진감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한페이지 한페이지를 숨가쁘게 읽어가면서, 우리가 신문기사를 읽으며 느끼는 생생함과 고뇌를 곧바로 이 책에서 느낄 수 있었다. 역사를 살아서 꿈틀거리도록 만든 탁월한 구성력에 다시한번 감탄을 한다.

역사신문의 색다른 빛깔은 그 내용에서도 나타난다. 그동안 소홀히 되었던 여성들의 역사를 곳곳에서 생생하게 전하고 있으며, 과학의 진보만을 이야기하는 편향된 역사책과는 달리 세계 과학자의 3분의 1이 전쟁을 준비하는 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를 반성하고 ‘사람의 얼굴을 한 과학 기술’을 꿈꾸며 과학을 평화를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 분투하는 루카스 항공 노동자들의 모습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전자 변형작물, 인간 복제 등의 기사를 통해 과학기술이 인간을 재앙으로 내볼 수도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근현대사신문』의 백미는 바로 ‘제3세계에 대한 재조명’이다. 『근현대사신문』의 근대편에서는 8면의 ‘제3세계 통신’을 통해서면 간간히 알 수 있었던 그들의 역사를 현대편에서는 당당히 각호의 제목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근대의 역사가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면, 현대는 그들의 배설물과의 투쟁을 통해서 자유를 쟁취해가는 제3세계 국가들의 약진과 오만한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의 반성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기대해보도록 서술하고 있다.

특히 ‘4호의 다시 일어서는 아시아’, ‘6호 4‧19혁명과 아시아‧아프리카 민주화’, ‘14호 필리핀 민중혁명과 아시아의 민주화’, ‘17호 아프리카의 승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뿌려놓은 배설물을 세계 약소국의 민중들의 힘으로 청소하는 통쾌한 역사를 다루고 있다. 단순히 세계사의 주변부에 지나지 않으며 항상 수탈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던 ‘저능한 민족’들이 세계사의 주인공으로 일어서는 장면을 현장감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며, ‘8호 베트남 전쟁’은 민주국가이며 선진국였던 미국이 얼마나 추악한 전쟁을 하고있는지를 세계 민중에게, 그리고 미국의 민중에게 스스로 고발한 전쟁이며(통킹만 사건이 뉴욕타임스에 의해서 미국이 조작한 사건임이 밝혀졌음에도 『근현대사신문』은 베트남이 통킹만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는 추후에 반드시 정정되어야 한다.), ‘9호 68혁명’은 기성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의 반란을 통해서 이전세대들의 독선을 통쾌하게 부수어주는 기사였다.

이책의 마지막은 ‘19호 6‧15남북정상회담’과 ‘20호 2002한‧일월드컵과 촛불 집회’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는 우리 현대사의 과제인 평화통일이라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서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한‧일월드컵에서 보인 길거리응원과 그 이후의 촛불집회의 열기를 통해서 우리역사의 희망을 노래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3. 진정한 역사를 꿈꾸며.

2009교육과정이 확정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에서 배우기로한 ‘역사’라는 과목은 ‘한국사’로 바뀌었고 내용도 세계사와 한국사를 각각 30%와 70%로 구성하려했던 당초의 안에서 벗어나 주된 내용이 한국사로 채워질 전망이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사의 시각에서 한국사를 조망하고 한국사의 입장에서 세계사를 바라볼 수 있는 역사수업을 꿈꾸었던 나에게는 커다른 실망이다. 그러나 이번에 읽게된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위안을 얻고자한다. 편협한 일국사에서 벗어나 세계를 끌어 안으려는 노력이 『근현대사신문』을 통해서 일부는 달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ps. 책을 읽던 중에 발견된 내용의 오류들은 앞으로 수정되기를 바란다. ‘돌아오지 않는 황제의 밀사’라는 기사에서 마치 이준열사가 헤이그에서 자결하고 자신의 내장을 회의장에 뿌린 것처럼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준열사는 화병으로 죽었고, 이것이 당시 신문들에 의해서 확대, 과장되어 잘못전해진 것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계절출판사 2010-07-27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사계절출판사입니다.
올려주신 서평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 덧붙여주신 오류에 대해
"그 부분은 당시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대한매일신보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추후 밝혀진 사실은 확인하여 책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라는 답변을 편찬위원에서 보내왔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는 출판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앙코르 와트의 모든 것
이우상 지음, 성학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은 앙코르와트를 백인의 문화에 대비되는 황색인의 문화로 보고 있다. 어찌보면 지난 19~20세기에 백인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짓밟힌 황색인의 보상 심리로보이기도한다. 그러나 이말의 속에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사관이 깔려있음을 직감했다. 러·일전쟁을 황색인종이 백인종에게 거둔 승리로 포장하고 백인종의 식민지배로부터 황색인종을 해방시킨 전쟁이라고 태평양 전쟁을 미화시키고, 대동아 공영권을 부르짖었던 일제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 놓은듯 했다.

2. 이우상은 우리역사에 대해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그의 근저에는 식민사관이 깔려있다. 한번도 남의 나라를 침략하지 않은 나라 999번의 외침을 당하고서도 한번도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하지 않은 나라라는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즉, 그는 한번도 대외원정을 간적이 없었고 대외원정이라고는 몽골에 의해서 강제적으로 나선 일본원정과 미국의 요청에 의해서 나선 베트남 파병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발해의 장문휴 장군이 등주를 공격하여 자사를 죽인 사건은 물론, 고려와 조선에서 대마도 원정을 간 것, 또한 속일본기에 나와 있는 고려선단이 교역을 허락할 것을 종영하며 해상시위를 일본에 한 것... 이러한 우리의 역사를 외면하고 식민사학이 주장하는 한이서린 역사! 힘이 없는 역사! 그래서 남의 침약만 받아야하는 숙명을 지닌 역사! 로 왜곡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한다. 그가 제대로 우리 역사를 다시 공부했으면 한다.

그러나 앙코르 와트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과 여행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려움과 떨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락 첫 번째 대화 “두려움과 떨림”

  아밀리 노통은천황을 배알할때 사무라이들이 갖는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단어로 일본문화를 설명한다. 어찌보면 단순한 이 말이 일본문화를 정확하게 집어내고 있다.

오랜 동안 막부가 존재하였고, 그 막부가 통치하는 봉건시대가 지속되었던 일본! 그러면서도 막부는 허수아비에 불과한 천황을 없애지 않고 일본을 통치했다. 사무라이들의 절대 복종! 명예를 중시여기는 그들의 문화가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강화되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패망으로 치달으면서도 천황 한명을 살리려 일본의 군부는 항복시기를 늦추며 연합국과의 협상을 했다. 전선에서는 마지막 한사람까지 천황을 위해서 죽겠다면 치열하게 항전하다가 최후를 맞이한다. 본토의 수많은 양민들도 천황한명을 살리기 위한 희생물에 불과했다. 폭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그들은 천황 한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천황은 “세계 평화를 위해서 항복했다”고 일본의 국민들에게 말을 한다. 천황은 아직 살아있으며 그리고 일본인들의 가슴 속에 천황은 살아있는 “신”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역사는 일본인들의 생활에 깊숙히 침투해 있다. 그리고 아밀리 노통은 그의 책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간단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유미모토사에 1년 계약으로 취직을 하고 그는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는 업무를 강요당한다. 훨씬 창의적인 능력을 갖고 있음에도 그는 단순한 숫자 처리,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러면서도 절대 상관에게 복종해야하는 회사의 문화 속에서 순응한다. 이를 개혁하기 위한 처절한 투쟁은 하지 않는다. 단지 작가 자신은 이 사실을 소설로 남겨서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것이 작가가 일본 사회를 상대할 수 있는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투쟁 방법이었으리라....




우리 '다락'이라는 동아리의 토론은 여기서 부터 시작되었다.




첫번째 화두는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글귀에서 시작되었다. 후부키라는 여성과 아멜리라는 여성의 대립구도가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트랜디 드라마와 비슷해 보이지만 후부키는 지금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명하복의 문화를 대표하는 한 인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밀리라는 주인공이 후부키를 추월하는 것을 보고 질투하는 것이 여성들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우린 생각했다. 서열적이고 위계 질서가 중시되는 사회! 이것은 비단 일본만의 모습이 아니며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에서도 아직까지 짙게 잔존하고 있는 유산이다.
우리는 다시 한번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경직되고 지극히 비효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일본이 어떻게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는가? 이 풀리지 않는 의문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해야하는가?

그러나 관료제적 구조가 비효율적이라는 선입관 부터 벗어던져야 했다. 삼성이라는 거대 조직이 굴러가기 위해서, 사람이 바뀌어도 조직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 조직은 관료제화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관료제 속에서 창의적으로 모든 사람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소수의 엘리트가 창의 적으로 조직을 이끌어 가면된다. 사실 아멜리와 같은 창의적인 사람은 단순한 일에 적응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직을 위해서는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어쩌면 학력 인플래이션에 의해서 너무 고학력의 사람들을 생산하고 뽑은 결과가 아멜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이라는 나라가 발전한 이유에 대해서 나의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장인정신을 들수 있다. 하나의 물건을 만들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일본의 장인정신 말이다.

그리고 상명하복의 구조가 경쟁사회에서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 것도 사실이다. ‘상사’는 바로 사무라이가 모시는 ‘다이묘’이고, 자신은 다이묘의 말에 복종하며 다이묘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하는 ‘사무라이’이다. 그래서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문화가 일본 경제 발전의 한요인으로 작용했다. 또 하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주식회사 제팬이다. 외국제품을 사라고 일본의 수상이 TV에 나와 국민에게 호소할 정도로 자국의 물품을 애용하는 일본인. 외국인의 눈에는 그들이 이해될 리 없다. 싼 물건이면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싼 물건을 사야하지만 비싸지만 자국의 상품을 사는 일본인을 서양의 인물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 화두는 문화상대주의 였다. 일반사회 선생님인 노의환 쌤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본다면, 유미모토사에 온 아멜리가 오히려 자신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인물로 보일 수 있다는 지적을 했다. 외국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문화, 그 일본의 문화를 비판하는 벨기에 여성의 글이 일본인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쁠 수 도 있다는 지적이다. 그리고 이것을 뛰어넘어 오히려 서양의 문화를 비판할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했다. 상당히 탁월한 지적이었다. 밖에서 안을 볼 필요도 있지만 안에서 밖을 볼 필요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뇌리 속에 맴도는 것은 과연 문화상대주의가 절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문화제국주의, 자문화 중심주의, 문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타 문화를 해석하고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문화를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것이 과연 옳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잔인한 학대를 나는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여성에 대한 할레, 중국의 전족, 인도의 수티(남편이 죽으면 부인도 같이 죽이는 풍습) 등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노의환 쌤과 차안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화를 볼 때 자유, 평등, 박애 등의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해치는 문화는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노의환쌤도 약간 긍정적인 생각을 제시했다. 우리의 집단주의가 개인을 억압하는 작용을 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한편, 개인과 집단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관해서 노의환 쌤이 계속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집단을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 개인의 자유만을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이는 지금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 속에서 나타나는 인식으로 보인다.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두발규제 복장규제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두발자유, 복장의 자유를 원한다. 그리고 심지어는 촛불시위까지 하고, 학교에서 집단행동까지 하는 예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학교 전체를 위해서 두발, 복장의 규제는 필요한 것인가? 그리고 필요하다면 개인의 자유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참으로 어려운 주제이다. 마땅히 개인의 자유는 확대 되어가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확대가 긍정적인 면만을 보이는 것은 또한 아니다. 이러한 딜레마는 앞으로 우리의 과제로 남겨두기로 하자.

우리는 이러한 심각한 주제들만 가지고 대화를 한 것은 아니다. 머리를 식힐겸 흥미로운 이야기도 했다. 후부키와 아멜리와의 관계를 이야기하던 중에 고학력 미혼여성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포기하고 치열한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사투를 벌이며 높은 지위에 올랐으나, 요즘 새로 들어온 신세대 여성들은 쎄련된 외모에 깔끔한 일처리를 한다. 이를 보고 살아  남기 위해서 전사가 되어 높은 직책에 오른 미혼여성은 신세대 여성에게 부러움과 질투를 갖게 된다. 마치 여자 교장이 여선생님들에게 더 무섭듯이, 여자 상관이 여성에게는 더 무섭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미혼 여성분들이 자신들이 사회문제이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나는 여쌤들에게 속으로 한마디 했다. '쌤들은 사회 문제가 아닙니다. -묵사마 어록 제1장-'
이어서 나는 여성들이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남성우월의식, 성리학적 의식에 순응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해서 어느덧 '다락'모임을 정리해야할 시간이 되었다. 조그마한 책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 꺼리를 제공한 책이다. 그리고 그러한 이야기가 우리가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주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다음 시간에는 유봉학 교수의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이라는 책을 읽고 대화를 하기로 했다. 무거운 주제로 보이지만, 상당히 쉬운 글로 대중들에게 이야기하듯 글이 씌여졌다. 중간 중간 재미있는 읽을 꺼리가 있어 더욱 우리의 구미를 당기게 한다. 자, 그럼 다음 시간에 만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01 | 102 | 10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