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한글역주 1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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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중시여기는 요즘, 진정한 인문학을 만나고 싶었다.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한권씩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던중에, 동야의 고전인 논어를 집어들었다. '노자와 21세기' 강의를 듣고서 부터 나를 매료시켰던 '도올'의 책을 골랐다. 무척이나 두껍고 무거운 책이었다. 3권이니 1년에 1권씩 읽는다면, 3년이면 다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침 일찍일어나, 논어를 한구절씩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1권의 2/3를 읽으면서 모르는 한자를 찾아 여백에 적어 놓고 뜻을 음미하며 읽었다. 진도는 당연히 느렸다. 소의 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논어를 읽다보면 어느새 3권을 다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가장 무식한 질문이 '일주일에 몇권을 읽어요?' 라는 질문이다. 그리고 가장 골빈 대답이 '10만원을 책값으로 써요'라는 대답이다. 책을 어떻게 양으로 말할 수 있으며, 돈으로 말할 수 있는가? 고기를 씹지 않고 삼키면, 소화는 커녕 배탈이 날 수 있다. 논어와 같은 책은 음미하며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해박한 도올 김용옥의 글을 토대로, 차근 차근 읽기 시작하자 나름 재미도 생겨났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았다. 논어를 더 곱씹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팟캐스트 '학자들의 수다'에서 소개하는 논어구절을 '도올 논어'에서 찾아 다시 공부하는 방법을 사용하려한다. 물론 '나즐공'에서 도올의 강의를 들으며, 공부할 수 도 있겠으나, 도올의 시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시야를 보고 싶은 생각에 '학자들의 수다'를 선택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만는 구절이 있다. 논어 위정편에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도올은 이를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라고 해석했다.

공자가 70이 넘어 자신의 삶을 철학적으로 반추한 오리진한 파편이라고 도올은 단언했다. 나는 이 문장을 몇번이나 종이에 써보았다. 그리고 문득, 그 나이가 되면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가 되면 해당시기의 당연한 과제로 주어지는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5세 : 학문에 뜻을 둘 시기 즉,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하는 시기이다. 아니 정해야한다. 15세면 중학교 시기인데, 이제 인문계와 실업계를 선택해야하며, 구체적인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진로를 확정해야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변화하는 입시에서 그중에서도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30세 : 혼자 우뚝 설 나이 즉,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제 스스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우뚝서야한다. 그러나 대학에 와서도 수강신청을 부모에게 물어보는 대학생이 있다. 그리고 30세가 되어서도 부모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젊은 이 들이 많다. 심지어는 회사를 다니는데, 회식이 늦게 끝나서 12시에 딸이 귀가하자, 회사에 항의전화를 하는 부모도 있다고 한다. 해당 시기에 당연히 달성해야할 과제를 우리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핼리콥터맘, 캥거루족이 늘어나는 현실이 시대의 탓일까? 아니면 잘못된 부모의 사랑 때문일까?

 

40세 : 미혹됨이 없어야할 나이이다. 도시 외곽의 한적한 곳을 드라이브하다보면, 수많은 모텔들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집없는 남여들이 낮에도 밤에도 이곳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그들에게는 집이 있겠지만, 그 남녀를 위한 집은 모텔밖에 없나보다. 40세면 가정을 이루고 사랑스런 아이들을 키워야할 나이다. 그런데, 우리의 40대들은 과연 '불혹함'이 없는가? 노래방의 도우미들과 룸쌀롱의 휘황찬란한 번성을 보며 상념에 빠져본다.

 

50세 : 하늘의 뜻을 알나이! 그러나 우리의 50대는 그러한가? 주입식 교육의 폐해가 심각한 세대가 아닐까? 한다. 40대에 보였던 개혁적 진보적인 모습이 50대에게서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의 기득권세력을 비호하며 그들의 논리에 순응한다. 하늘의 뜻을 알아야하거늘, 어찌하여 친일도 괜찬다고 말하는 자들이 내가 만난 50대에는 그리도 많은가? 잘못된 '일본군 위안부' 타결 문제도 두둔하는 그들은 과연 하늘의 올바른 뜻을아는가?

 

60세 : 귀가 순해지는 나이! 그러나 지금의 60대는 절대 귀가 순하지 않다. 무식하면 똥고집을 신념으로 착각한다. 근거없는 주장을 하며 자신의 말을 강요하는 일부 60대를 나는 많이 보았다. 귀가 닫혀있는 '어버이 연합'이여 '효녀부대'를 보면서 공자가 말했듯이 귀가 순해질 수는 없는가? 그대들은 '불취하문'이라 말했던 공자에게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하는가?

 

70대 : 하고자하는데로 하더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어야할 나이! 그러나 과연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70대를 보았는가? 보았다면 참으로 행운이다. 참다운 어른이 없는 시대이다. 버스에서 어느 노인을 만났다면 과연 그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해야할지 의문이 든다. 그가 친일을 옹호하고 독재를 찬양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도 없는데.... 단지 나이가 많다고 공경의 표시로 자리를 양보해야할까? 나이가 많으면 지혜롭고 현명한가? 까스통을 들고 시위를하는 할배들과 독재와 친일을 찬양하는 그들에게서 공가가 말한 '종심소욕 불유구'라는 모습은 찾아지지 않는다.

 

공자의 '논어'를 읽으면서 이를 현재적으로 다시 재해석하면 할 수록 그 단맛에 빠져든다. '창조적 오독'이라는 말이 있다. 선현들이 공자를 연구한 것을 내가 교조적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그 시대에는 그시대 나름의 시대적 요청속에서 공자를 해석하였다. 나 또한 오늘의 상황 속에서 공자의 말을 재핵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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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의 이슬람 - 9.11 테러 10년과 달라진 이슬람 세계
이희수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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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을 다니면서 무하마드 깐수라는 교수에 대한 소문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이슬람 사람이래", "이슬람 사람이 한국말을 잘한데"라는 선배들의 말에, 무하마드 깐수 라는 교수가 궁금해졌다. 그는 무슨 이유로 한국이라는 나라에 왔는가? 동서문화 교류가 그의 전공이었다. 대학 도서관 서가에서 그의 책 머릿글을 읽었다. "한국은 하늘도 아름답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글은 2천년전 신라의 땅에 왔던 어느 무슬림의 말같이 들리기도 했다. 그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어떠한 감상을 갖고 있는지 직접 묻고 싶어졌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하던 어느날,  "반납 완료되었습니다."라고 말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발길을 돌리던 그 교수의 수업 '아시아지역사'를 수강신청했다. 그리고 그와 강의실에서 만나 진솔한 동서문화 교류의 역사를 배우고 토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어느날 기숙사에서 신문을 펼쳤다. "단국대학교 무하마드 깐수 간첩으로 드러나"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겉으로 보아도 무슬림으로 보이는 그 사람이 간첩이었다니... 더욱이 북한에도 아내가 있고 남한에도 아내가 있었다. 설마하는 생각과 속았다는 생각이 교차해다. 나에게 이슬람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사람은 나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나의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세월을 흘렀다. 대학에서 기나긴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나의 진로를 두고 수많은 고민으로 눈물을 흘리며 밤을 세웠다. 그리고 역사와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사랑하는 역사를 가까이에서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역사관련 직업을 얻기 위해서 취업재수를 하면서 부단히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시험을 보았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여행가로 '여행기'를 남긴 사람의 이름은?"이라는 시험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이븐 바투타였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코폴로'라고 답을 섰다. 이슬람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이 문제로 많은 사람들의 당락이 결정되었다. 서구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알아도, 이슬람의 유명한 여행가 이븐바투타는 모르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시험에 합격하고 신문을 펴들었다. 오래된 기사속에서 '정수일 세계에서 2번째로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완역하다'라는 기사가 눈에 띄였다. 시험문제에 '이븐 바투타'가 나온 이유를 알게되었다. 그리고 '동서 문화는 대립의 역사가 아니라 교류의 역사이다. 시대적 소명을 이루고 싶다.'라는 정수일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사뮤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이라는 책에서 이슬람 문명과 크리스트교 문명을 대립의 시각에서 바라보았다면, 그는 문명을 교류의 역사로 바라보있다.

 

  사회에 나와서 이슬람에 대한 강의와 이슬람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그리고 9.11테러가 일어나고 파리 테러가 일어나면서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하늘을 치솟았다. 나에게 이슬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슬람과 한반도의 기나긴 교류의 역사 처럼, 나와 이슬람과의 인연은 좁은 실개천이지만, 면면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내가 이슬람에 대해서 올바른 시각을 주변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이것이 '문명의 충돌'에서 '문명의 교류'로 이행할 수 있는 첩경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한 개설서라고 하면 딱 좋을 책이다. 내가 과거에 읽었던 책들이 주로 이슬람의 역사와 관련된 책이었다면, 이책은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이슬람과 우리와의 교류, 종교 분쟁의 원인과 치유책 에 대한 종합 보고서와 같은 책이었다.

 

이 책을 내려 놓는 순간 나에게 밀려든 이슬람에 대한 이산은 '슬픈 이슬람'이라는 단어다. 한때 너무도 찬란한 역사를 이룩하였던 머나먼 문명 '이슬람'! 그러나 지금은 서세 동점의 시기에 제국주의 서구에게 철저히 짖밟히고, 억눌리며 20세기를 보내야했다. 특히 유대인들은 유럽 기독교 세계에서 받았던 수모와 박해를 팔레스타인의 주인들에게 앙갚은 하듯이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슬픈 이슬람' 지금의 파리 테러는 슬픈 자들의 추악하고 처절한 절규이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이들이 죄없는 영혼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지 않는다면, 그들은 다시 악의 구렁텅이로 우리를 끌고 갈 것이다. 종교의 대립과 반목속에서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 종교에 배타적인 종교인들은, 이슬람이 과거 보여주었던 '관용'의 모습을 떠올리며, '슬픈 이슬람의' 눈물을 닦아 주길 바란다.

 

피의 보복은 또 다른 피의 보복을 가져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깨닫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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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08-25 0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1-08-25 05:52   좋아요 0 | URL
제 글을 읽어 주시고 좋아요도 눌러주시니 제가 고맙지요
 
조벽 교수의 명강의 노하우 & 노와이 - 개정판 희망의 교육 5부작 2
조벽 지음 / 해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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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김용옥 선생의 '노자와 21세기'를 무척이나 재미있고 부러운 눈으로 보았던 기억이난다. 나도 도올 김용옥과 같은 강의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했다. 그리고 남을 가르쳐야하는 직업을 갖게되면서 나의 바램은 나의 필수요건이 되었다. 현직 교사를 학원강사와 비교하면서 비난하는 사회의 따가운 목소리를 들으며 탁월한 강의에 관심은 높아졌다.

 

  좋은 강의는 평범함에 답이 있었다. 학원강사의 번지르한 강의도 그 실력의 일천함이 드러나는 순가 불신의 대상이 되기 싶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강의에 내가 아니, 우리가 열광했던 것은 그 강의 속에 무한한 깊이 때문이었다. 해박한 지식! 동서양을 넘나드는 철학적 박식함이 우리를 앞도한다. 이러한 전공분야에 대한 탁월한 실력을 바탕으로 할 때, 강의는 빛날 수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명강의 노하우들도 전공분야에 대한 탄탄한 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리라....

 

  좋은 강의는 열정에 기반하고 있다. 한비야가 대중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무엇을 하던지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라!' 이 말은 모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일을 찾으라는 말로 풀이할 수 있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을 선택하면 열정이 생긴다. 그리고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내가 좋아하는 역사에 대한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쏟았던 수많은 시간을 생각해보면, 열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좋은 강의는 소통에 있다. 교단에서 교사도 내려올 때가 되었다.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에는 사회가 많이 변했다. 성리학적 세계관은 무너졌다. 50대 이상의 분들은 아직도 성리학적 세계관 권위주의적 세계관에 사시는 분들이 많다. 아직도 6.25 전야에 살고계시는 70대 분들을 보면, 너무도 심한 세대차이에 진저리가 쳐진다. 그럼 10대 우리아이들은 어떻겠는가? 맞벌이 가정, 편부모 가정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 과거의 권위주의적 질서를 교실에서 강요할 수있을까? 내가 먼저 교단에서 내려오자! 그리고 학생들에게 다가가자. 이것이 새로운 교육의 시작일 것이다.

 

  겨울방학 시기마다 교육학에 관한 책들을 1권이상 읽고 있다. 지난 시간 동안의 교육을 되돌아보면서, 나를 반성해본다. 좋은 교육이란 무엇이며, 훌륭한 교육방법은 무엇인지를 오늘도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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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
이덕일.김병기 지음 / 예스위캔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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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성과 일본의 성차이는?

한국의 산성과 일본의 산성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보민사상'에 있다고 본다. 일본내에서의 전쟁은 무사들끼리의 전쟁이다. 성을 점령해도 백성들은 해치지 않는다. 백성들도 세금을 바쳐야할 사람이 바뀐것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하지 않다. 산성은 보통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서 백성들이 돌을 날라 쌓은 것이다. 그리고 적이 쳐들어오면, 산성으로 올라가 적과 끝까지 싸운다. 이것이 우리의 산성이 일본의 산성과 다른점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산성의 한조각 돌조차도 헛되이 버릴 수 없는 이유이다.

 

2.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싸우고자 하는 의지이다.

이덕일의 책중에서 '산성으로 보는 5000년 한국사'를 집어든 것도 이 때문이다. 산성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싶었다. 그러나 왜적에 대비해서 백성들의 피와 땀을 댓가로 쌓은 성들이 정작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싸움한번 못하고 버려지는 일이 조선시대에 많았다. 죽주산성, 남한산성 등등 임진왜란때 큰소리치던 지배층들은 왜군이 몰려오자 백성을 버리고 이 땅을 버리고 도망쳤다. 선조는 요동으로 가려하기까지 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장에게 강한 놈들! 왜군 앞에서는 비겁하게 도망치더니, 불쌍한 민초들에게는 가렴주구를 서슴치 않는다. 왜이리도 요새 높은 양반들하고 비슷한지.... 그 많던 관방시설들을 버리고 도망한 자들! 민초들과 함께 생사를 같이하려는 지배층이 없는 한, 아무리 열심히 쌓은 철옹성이라할지라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헌신짝밖에는 되지 않는다.

 

3.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이러한 산성들이 이제는 더이상 관방시설로써, 보민사상의 장소로 의미를 갖지 않는다. 단지 이곳을 답사하면서 산성을 쌓으며 핏땀흘린 민초들의 고통과 수많은 전쟁을 머릿속에 그릴 뿐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산성은 어떻게 다시태어나야할까? 과거의 산성이 적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는 관방시설이라면, 오늘의 산성은 가족의 화목을 다지는 사랑의 장소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지친 일상을 산성을 오르며 사랑을 돈독하게하고, 연인이 서로 손을 맞잡고 미래를 약속하는 장소로 다시 태어나야한다. 그럴 때만이 산성은 퇴락한 돌무덕이에서, 사랑의 산성으로 행복의 산성으로 우리 곁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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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의 역사 1 - 3,000년 인류 역사 속에서 펼쳐진 국가 인간 군사 경영 전략의 모든 것 전략의 역사 시리즈 1
로렌스 프리드먼 지음, 이경식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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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다니며 한문을 공부할겸, 인생을 사는 지혜를 배울겸해서 손무의 '손자병법'을 3번쯤 읽었다. 탁월한 병법서라, 읽으면 바로 인생의 지혜가 생길줄 알았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로운 격언 몇개를 더 얻는 이상의 지혜를 안겨주지 못했다. 그후, 손빈의 '손빈병법'을 읽었다. 원론적인 '손자병법'에 비해서 '손빈병법'은 구체적인 진용을 말하며 전국시대의 병법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갔다.

 

인생을 살면서, 삶이 쌓이면서, 손자가 나에게 해주었던 많은 전략들이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그때는 왜?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겉으로는 웃으면서 인자한 분같은 사람이, 사실은 더욱 악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상대가 강하면, 그것을 피하고, 상대가 방심했을 때 상대의 약점을 공격하는 그런 무서운 사람! 바로 손자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세상사는 지혜를 나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인생의 쓴맛을 겪으면서 비로소 이해를 했다.

 

인생의 전환기에 서가의 많은 책들 속에서 '전략의 역사'가 나의 눈에 띄였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인생의 지혜를 얻고 싶었다.

 

전략의 역사 제1권을 읽으며, 놀라운 사실 몇가지를 발견했다. 전략이라는 것은 인류가 탄생하면서 생존을 위해서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침팬치 조차 침입-매복-습격 등의 전술, 전략을 펼쳤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갖추어야할 전략을 유인원들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글이었다. 이러한 전술은, 고대에는 위압이라는 강제수단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쉬운 전략부터, 속임수를 통해서 적을 속이는 고도화된 전략으로 발전하고, 손자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사탄의 전략으로 한층 더욱 정교해진다.

 

1권은 군사전략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할애하고 있다. 전략이란 군대에서 먼저사용해서 사회로 급속도로 확산된 용어이니, 군사전략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당연한일이다.

 

군사전략에 대한 설명은 전쟁천재 나폴레옹에서 부터 시작된다. 품속에 '손자병법'을 가지고 다니며 전략을 연구한 나폴레옹, 그리고 그를 지켜보며 전략을 공부한 앙리 조미니와 클라우제비츠, 이들에게 영향을 받은 몰트케 등등 ... 보다 정교해지는 전략의 역사는 나의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미국의 남북전쟁과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보다 전쟁은 대규모화되었고 무기의 살상력은 더욱 커졌다. 이시기 전략은 국가의 생존을 결정하는 복잡한 두뇌싸움이었다. 그러나, 핵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전략의 판도는 단숨에 낡은 것이 되었다. 지구멸망의 도구이기도한 핵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더큰 보복이 뒤따를 수있기에 핵억지력이 생겼다. 그리고 핵억지력을 믿기에 비합리성의 합리성이 생겨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강대국들 사이의 전쟁이 아닌, 국지전이 중요하게 나타나면서 게릴라전이 부상한다. 아리비아의 로렌스, 마오쩌둥과 보응우옌잡이 게릴라전의 신화를 써내려간다. 소련이 붕괴하고 초강대국 미국에 대응할 나라가 사라졌다. 그러나, 절대 강국이 아이러니하게도 비대칭전, 제4세대 전쟁 속에서 헤매고 있다. 강력한 무기로 이라크를 제압했으나, 이라크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국!!

 

전략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더욱 정교해지는 전략과 더 무시무시해지는 무기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되었다. 언제라도 사용되면 인류는 멸망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 그러하기에 이 무기를 사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이 필요해졌다. 그리고 핵을 가지고 있는 쪽은 이 무기를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대방에게 과시하게된다. 자신이 똘아이라는 것을 과시한다. 이럴수록 상대방은 똘아이를 달래려한다. 이것이 비합리성의 합리성이다. 지금의 한반도 현실을 보는듯하다. 그럼, 이 똘아이를 어떻게 해야할까? 치킨게임처럼, 핸들을 뽑아내고 엑셀을 밟아야할까?

 

많은 생각끝에, 어머니의 따스함이 이 똘아이를 진정시킬 명약이라는 생각을 했다. 똘아이에게 매를 사용하면 사용할 수록 똘아이의 '비합리성의 합리성'에 말려들게 된다. 이 똘아이에게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줄때만이 똘아이의 마음을 움직여 이성을 되찾을 것이다.

 

진정 이시대의 진정한 전략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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