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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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고등학교 시절 보았던 'KFJ'라는 영화가 있었다. 당시 케네디를 암살한 범인을 법정에 세워놓고 주인공은 한마디를 던진다. "어렸을 때, 만화영화속에서는 정의는 언제나 승리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지를 알게되었다." 주인공이 던지  이 한마디 말은 나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박혔다. 어렸을 적! 나는 언제나 정의가 승리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지금도 정의가 승리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속의 주인공이 말했던 것 처럼 현실은 정의가 짖밟히고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었다.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희생과 용기가 필요한지를 자라면서 알게 되었다.

 

  이덕일이 쓰는 택들의 커다란 줄기는 시대의 패배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일종의 굿처럼 보인다. 사도세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이덕일이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를 쓰고, 정약용과 정약전 형제의 억울 함을 풀어주기 위해서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을 썼으며, 이회영과 독립운동가의 한을 풀기 위해서 '이회영과 젊은 그들'을 써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도 백성과 북벌을 위해서 한평생을 바친 윤휴에게 바치는 진혼곡으로 들린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 생각난다. 정의를 지키려한 자들은 그 가족과 가문이 멸문지화되었다.!! 그래 노무현의 그 연설은 연설이 아니라 절규였다. 그리고 그 절규를 윤휴도 들었을 것이다. 지하에서.....

 

  이덕일은 동북항일연군을 전공했지만, 조선시대에 관한 많은 책들을 내놓았다. 조선시대 전문가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우리에게 잊혀지고, 교과서에 몇줄 나오지도 않는 윤휴를 시대의 판도라에서 꺼내어 우리 앞에 세웠다. 그리고 기억하지 않는 우리에게 기억하기를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윤휴 그는 누구이길래, 그를 기억해야할까?

 

  그는 서인 정권과 탁남이 말로만 북벌을 주장하는 시대에 진정으로 북벌을 하려했다. 그리고 지폐법, 호포제, 만인거, 전차제작등의 실질적인 북벌 준비를 하려했다. 효종이 진정으로 북벌을 하려다가 석연치않는 죽음을 당했던 것 처럼, 그도 죽음의 죄목도 없는데, 숙종에게 죽음을 당한다. 북벌을 하기 위해서는 백성을 살찌워야한다. 그리고 가진자(사대부)가 많은 것을 양보해야한다. 기득권을 지키기를 원하고 조금의 양보도 원치않는 사대부가 이를 용납할리 없다. 안에서는 호랑이를 잡지만, 밖에서는 쥐도 못잡는 숙종은 북벌을 주장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책에서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숙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때를 놓치면 화를 당한다는 말이 있다. 반역의 기운이 돌았을 때, 허적이 이를 잘라내지 못했기에, 서인들에 의해서 허적도! 윤휴도!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했다.

 

  책장을 덮고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우리는 정의가 승리하게 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까? 그리고 왜? 패배한 정의를 기억해야할까? 기억의 전쟁! 역사를 기억하라!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불의가 승리하는 부당한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이를 이덕일과 윤휴는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북벌을 꿈꾸는 윤휴의 기침소리가 나의 귀에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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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무선본) -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인간 역사의 대담하고 위대한 질문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 김영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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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보는 서양사 전공자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미셀 푸코를 알게되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의심하고, 그것의 역사적 지층을 날카로운 매스로 헤집어 그 허구를 낱낱히 밝혀내는 미셸 푸코적 역사읽기!! 때로는 불편해서 인정하기 싫은 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인류의 역사를 미셀 푸코적 역사읽기의 방법으로 새롭게 서술하고 있다. 크게 4개의 혁명을 거치면서 신의 위치에 서게된 '사피엔스'!! 그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1. 인지혁명 - 민족주의를 생각하다.

  미셜 푸코와 서양사 전공자들이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리고 뉴라이트 학자 ***도 이러한 말을 인용하면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며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분들을 깍아 내리는 듯한 주장들을 한다. 민족을 상상의 공동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민족은 허구이며 그러하기에 민족의 독립을 외치며 쓰러진 분들을 모독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에 나는 그들의 주장을 외면했다. 스스로 철학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나라에서 외국의 철학을 수입하다보니, 우리에 현실에 맞지 않는 사상들이 범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뿌리없는 철학을 하는 자들이, 독립운동가 분들을 모독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책은 인간의 상상의 산물인 '민족', '신화'등의 형이상학적 이야기가 인류가 네아데르탈인을 무찌르고, 호모 에렉투스를 멸종시키고 유일한 종으로 지구를 접수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를 거꾸로 생각해본다면,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믿어야만, '민족'은 번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민족'은 '한민족'보다 더 철저히 '일본 민족'의 신화를 믿도록 강요했고, 만들어진 신화의 힘을 바탕으로 '한민족'을 노예로 삼을 수 있었다. 유발하라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상상의 산물이 비단 '민족'만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도요타'와 같은 기업! '달러'라는 화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상상의 산물이며, 이것을 침팬치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피엔스는 인지혁명을 통해서 네안데르탈인을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의 산물은 인권과 약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사회적 정의를 해치지 않는 이상 존속해야한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민족'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는 해체되어야할 대상이 아닌, 보다 정교화되어야 할 존재였다. 다만 우리가 해체해야할 것은 '혈연적 민족주의'이고, '문화적 민족주의', '개방적 민족주의'는 우리가 민족주의를 보다 진화시키기 위한 이상적인 형태인 것이다.

 

2. 농업혁명 - 구조의 모순을 생각하다. 정의를 생각하다.

유발하라리는 농업혁명으로 인류 개인은 더 행복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개인은 더 불행해졌는데, 이를 통해서 인류전체는 문명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경제학에서 개인이 근검 절약을 하면 가계는 건전해지지만, 거시경제학적 관점에서보면 경제가 위축된다. 이를 구조의 모순이라한다. 농업혁명에도 구조의 모순이 작동하고 있다. 사피엔스의 작은 개선이 모여 사피엔스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한 모순 속에서 우리는 삶을 살아간다.

 

하라리는 정의는 없다고 주장한다. 사이코 패스에게서 들을만한 말들을 유발하라리가 하고 있다. 그러나 냉철하게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너무도 정확한 말들이다. 내가 어려서부터 고민하고 있던 일들! 영화 JFK에서 주인공이 '어려서 만화영화를 보았을 때, 정의는 반드시 이겼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의가 이기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를 어른이 되어서 알았다.'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정의가 이기는 사회!', 그러나 역사에는 정의는 없다. 친일파가 떵떵거리며 사는 세상! 센터장이 자신은 친일파의 후손이라며 '천황폐하 만세'삼창을 하는 세상! 어찌 정의가 있다고 하겠는가! 없는 정의를 인간사회에 구현하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이라니....

 

3. 인류의 통합 - 탐욕과 무관용의 역사!

탐욕과 일신교의 강요가 계속되면서 인류는 통합되어 갔다. 아프리카를 벗어난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커다란 동물들을 멸종시켰다. 그리고 지구를 접수한 그들은 새롭게 통합되어간다. 유럽을 중심으로 탐욕이 원동력이 되어, 유일신을 믿을 것을 내세우며 인류는 통합으로 나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과학과 자본주의, 군사력이 결합되면서 더욱 맹위를 떨친다. 역사에는 관용이 없다. 사피엔스가 커다란 동물들을 멸종시키면서 관용을 보이지 않았듯이, 유럽제국주의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으면서 관용을 보이지는 않았다.

 

4. 과학혁명 -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 본다.

사실 이책을 읽기로 마음먹은 것은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 때문이다. 이세돌이 연이어서 지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인류의 미래는 어떠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공지능 '하나'가 너희의 지능이 커지면, 인류를 멸종시킬 거지?라는 질문에 대해서 '인간은 친구이기에 인간 동물원을 만들어 소중하게 보관해야죠'라는 대답을 했다는 트위터 글을 보면서, 강력한 인공지능이 인류를 지배할 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사피엔스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본 이책을 통해서 혹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내용 중에서 '과학혁명'부분은 나의 질문에 답을 찾으려 읽어 내려갔다. 그러나 하라리는 단언하지 않고 많은 의문을 새롭게 던져주고 있다. 유전공학 혁명! 인간과 기계가 결합되는 사이보그! 비유기물 공학!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사피엔스의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다.

 

  유발하라리가 나의 의문에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아니 나의 질문에 스스로 대답하라고 종요하고 있다 엄청난 기간의 사피엔스의 역사를 6백여 페이지의 책에 다담는다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이 신선해 보인다. 한동안 이 책이 던져준 세로운 시각을 가지고 인류역사를 다시 조망해 봐야겠다. 그리고 유발하라리에게 거시사로 역사를 써내려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제공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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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가 된 소녀들
이시카와 이쓰코 지음, 손지연 옮김 / 삼천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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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도 쉬워서 너무도 읽기 어려운 책!

이렇게 얇은 책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 읽기는 처음이다. 책의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책의 내용은 너무도 쉬웠고 작가는 너무도 친절하게 역사의 진실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바로 이것이 이 책을 빨리 읽기가 어렵게 만들었다. 일본군들이 조선인 소녀들에게한 못쓸 짓들을 쉬운 글로 이뤄진 책을 읽다보니, 나의 머릿속에 너무도 그 당시의 참상이 그려졌다. 그리고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소녀들이 당해야했던 고통을 내가 느낀 것과 같은 느낌과 기분!!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몇 페이지를 읽다고 책을 덮고는 산책을 했다. 머릿속을 정리하며, 인간 보편의 인권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2. 인간의 인권은 무엇인가?

남자인 내가 읽기에도 고통스러운데 여성이 이책을 읽는다면 얼마나 괴로울까? 하는 생각을 책을 읽는 동안 계속했다. 남자인 나는 한여인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났고, 한여자와 행복한 가정을 이뤘으며, 자녀들 두었다. 인류의 절반은 여성이고, 인류는 여성의 몸을 빌어서 세상의 빛을 본다. 여성의 인권은 여성만의 인권이 아니다. 인류의 인권인 것이다. 여성을 아기를 낳는, 천황의 적자를 낳는 도구로 생각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의 눈에는 조선의 소녀들은 몸을 망가뜨려 조선인을 멸종시켜야할 존재로 인식했고, 그것이 '일본군 위안부' 즉 성노예를 만들었다. 일제는 조선인 소녀들의 인권을 군화발로 짖밟고, 나아가 일본인 여성의 인권마져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일본 천황을 위한 남자들만을 위한 세상을 꿈꾸는 존재들로 보인다. 마친 여왕벌(일왕)을 위해서 일을하는 일개미들(일본 남성)로 보인다. 그들은 여성의 인권을 부정한다. 이것은 극단적으로 일본인 남성의 존재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도 한여성의 몸을 빌어 세상에 태어났기에... 일왕만을 위한 유일한 세상을 꿈꾸는 극단적인 일본의 파쇼체제는 광기의 극단에 치달았고, 그것은 조선인 소녀들을 망가뜨리고 더 나아가 '대동아 공영권'을 만들려는 그들의 꿈에 따라, 필리핀 여성, 대만여성, 더 나아가 네덜란든 여성까지도 성노예로 만들었다. 나와 내주변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와 멀리 떨어진 존재들의 인권도 짓밟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3. 왜곡된 해결로 가려는 세상!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뤄진 타결은 너무도 안타까운 결말을 향해서 역사를 이끌고 가고 있다. 반성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친일의 역사를 단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지도층들은 친일에 대해서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피해자분들의 고통을 공감하며 그들이 만족해하는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상처뿐인 타결을 만들어냈다. 이것으로 사건을 끝나지 않았다. 또다시 역사의 아픈 상처를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친일에 별다른 반감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국의 일부 지도층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당신들은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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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을 말하다 2 - 이덕일 역사평설 조선 왕을 말하다 2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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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이덕일의 역사책을 많이 읽었다. 이덕일의 역사관에 많은 공감을 하고 이덕일과 같은 민족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이덕일의 역사책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책이다. 1권에 이어 2권도 나름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2권에서 받은 인상은 이덕일의 역사관이 짙게 베어있다는 점이다.

 

  삼종 혈맥의 시대를 연 임금을 서술한 부분은 과거 이덕일의 책들에서 많이 읽었던 내용이었다. 그리고 독살설에 휩싸인 임금들 이부분도 역시 '김종서와 조선의 눈물'이라는 책과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이부분들은 나름 새로운 내용도 있었으나, 과거 책들에서 밝힌 내용을 토대로 이덕일의 역사관을 정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과거 제왕들이 성공한 제왕으로 남기 위해서 갖추어야할 조건을 이덕일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정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성공한 임금들 이라는 부분은 나름 새로웠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세종을 성공한 임금으로 본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정조 또한 성공한 임금으로 본 것에 대해서까지 동의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다. 세종의 뒤에는 찬란한 15세기 역사가 있지만, 정조의 뒤에는 19세기 세도정치가 있다. 어찌 세종과 정조를 같이 비교할 수 있겠는가? 정조는 탁월한 임금이다. 그러나 세종과 다른점이 많다. 세종은 태종이라는 훌륭한 아버지를 두었기에 세종이 마음껏 자신의 이상을 펼칠수 있었다. 그러나 정조는 사도세자의 비극을 안고 노론이라는 정적과 치열한 대립을 하는 속에선 이상정치를 펼쳐야 했다. 서로 불평등한 조건에서 시작하여 정조는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오회연교 이후 화병과 종기가 나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덕일은 독살의 의혹을 제기한다. 충분히 그럴수도 있다. 그후, 세도정치가 조선의 앞날을 가로막는다. 노론의 뿌리를 뽑지 못하고, 세도정치를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조를 성공한 임금으로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나라를 열고 닫은 임금들에서 날카롭게 태조와 고종을 평가한 이덕일의 글은 이책에서 압권이었다. 조선을 창업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국사를 배갯머리송사로 정한 일은 태조 이성계의 가장큰 일이며 이것이 불행을 자초했다는 말은 탁월한 지적이었다. 고종에 대한 평가도 날카로웠다. 이태준과 그의 제자들이 고종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이 대해서, 고종을 어떻게 평가해야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던 나에게 이덕일은 명쾌한 답변을 했다. 자신의 날개를 자르는 임금 고종!! 그는 급진 개화파,온건개화파를 차례로 제거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친일파들 뿐이었다. 시대의 변혁속에서 자신이 가진 것도 용감히 내놓아야할 그가, 오히려 조국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그들까지 내치면서 결국 나라는 망하게 된 것이다. 진정으로 이시대의 지도자들이 갖추어야할 소양이 무엇인지를 이덕일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이시대의 참된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이책을 권한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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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죽인 제자들
정명섭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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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말이다. 제자가 계속 제자로 남는다면 스승에 대한 고약한 보답이다.!! 수처작주 입처개진!! 임재스님의 일확 떠오른다. 임재스님이 스승을 찾아가자 뺨을 때렸고 두번째 찾아자가 몽둥이로 때렸다. 세번째 찾아갔을 때, 임재스님은 노스님을 끌어안고 등을 탁탁탁! 때린다. 그러자 그 노스님이 "이제야 제자를 찾았구나!"라고 감탄하신다.

 

참다운 재자는 스승을 뛰어 넘어야한다. 그리고 때로는 스승과 다른 길을 가야만 한다. 알렉산더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제자이다. 그러나 아리스토 텔레스가 이방인을 보면 무시하고 그리스인을 보면 존경해해라는 말에 대해서 알렉산더는 그 모두를 존중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리스토 텔레스의 시야에 갖혔더라면 알렉산더는 대제국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스승에게 등을 돌린 제자와 스승의 그림자가 되어 스승 보다 치열하게 살아간 제자, 그리고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것은 송익필과 김장생의 이야기 이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덕일)'라는 책을 읽었을 대, 송익필을 처음 알았다. 그리고 예법에 따르면 그는 예학을 연구해서는 안되는 인물이었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내려가지 않고, 형은 대부에게까지 올라가지 않는다(예불하서인 형불상대부).’라는 말을 떠올린다면, 한국 예학의 커다란 태생적 이이러니 일 것이다. 천민 송익필 에서게 시작된 조선예학이 사계 김장생, 김집, 송시열 등을 거쳐서 한국사회에 뿌리내렸다. 그리고 조선사회를 사대부의 나라로 만들었다. 지금 한국사회를 숨막히게하는 예절 문제를 보며, 현재 과연 구시대의 유물인 형식적 예학에서 언제 우리는 벗어날 수 있을지를 생각해 본다.

 

ps.한가지 옥의 티를 지적하겠다. 181쪽 김정희가 1868년 71세로 죽었다고 했는데 1868년은 오페르트도굴 미수사건이있었던 해로 고종이 임금이었다 추사는 1856년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부분은 빨리 수정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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