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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으로 일본을 말한다 - 일본 문화재 이면에 도사린 복제와 조작의 관행을 추적한다
김경임 지음 / 홍익 / 2023년 4월
평점 :
김경임을 '클레오파타라의 바늘' 인터넷 강연으로 처음 만났다. 우리 문화재 반환에 대한 탄탄한 놀리와 세계 문화재 반환에 운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감탄했다. 그후,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1,2'를 읽으며 저자 김경임의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일본 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썼다. 머뭇거림없이 그녀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일본인과 문화재의 어떤면이 나를 놀라게했을까?
첫번째는 폐불훼석이다. 일본사 수업준비를 하다가 우연히 일본의 폐불훼석을 소재로한 그림을 보았다. 신불습합 즉, 하치만신상에서 보듯이, 불교의 영향을 받아 신토의 신은 승려의 모습을 하고 있다. 불교와 신토는 서로 융합하였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불상을 부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불교와 신토는 한몸에 서로다른 얼굴을하고 있었는데, 신토라는 얼굴을 내세우기 위해서 불교라는 얼굴을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수많은 문화재가 사라졌다. 신토를 국가 종교로 만들어 천황중심의 국가 이념을 굳건히하기 위한 메이지 정부의 어리석음이 수많은 문화재를 다시는 복구할 수 없게 훼손했다.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다 슈는 이를 "'페리 쇼크'로 인해 굴욕적인 개국을 강요당하고 침투하는 서양 세력에 의미 있는 항거 한 번 못해 보고 스스로 선택한 맹목적인 서구 추종의 결과, 자존심과 자기 정체성이 상실되어 나타난 정신분열 병자의 행동"이라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폐불훼석을 그치게한 것은 서구와 맞서기 위해서는 일본만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문물'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문화재'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일본은 임신검사라는 일본 최초의 문화재 조사를 시작했다. 더욱이 1873년 빈 만국박람회 출품물 확보를 위해서라도 일본 문화재를 조사하고 폐불훼석을 막아야만했다. 일본의 문화재 정책은 철저히 일본 근대가 만들어낸 정책이다. 일본의 근대화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파괴해야했다. 그러나, 그것이 천황중심의 일본을 만드는데 필요하다면, 손바닥을 뒤집듯이 쉽게 정책을 바꾸어 보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은 보존에서 그치지 않았다.
둘째, 일본은 수많은 복제품을 만든다. 일본은 문화재를 복제하여 국내에 전시할뿐만 아니라, 해외에 팔기도했다. 문화재 복제를 단순한 문화재의 보존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산업으로 생각해서 많은 문화재가 복제되었다. 과거의 사라진 기술을 문화재 복제 산업을 통해서 계승한다는 의미도 있으나, 문화재 복제를 하나의 산업으로 여기는 일본인의 정신세계가 자못 흥미롭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본 천황가의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알고 있는 '쇼소인의 보물 대부분(95%)이 박래품이 아니고, 일본제 복제품'이라는 사실이다. 외부의 선진 문물을 재빨리 복재해내는 그들의 장인정신(?)이 놀랍기도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2019년 NHK의 다큐멘터리이다.
"8세기 일본이 이같이 막대한 외국제 보물을 복제한 배경에는 일본의 국가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것이다. 거대 제국 당나라에 맞서려 했던 쇼무천황은 신생 일본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획기적 전략으로서 보물을 국산화했다는 것이다.박래품 보물을 대량 복제함으로써 일본을 보물의 제작국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설명인데, 이른바 오늘날 '물건을 만드는 나라'로서 장인정신에 충만한 일본의 원형은 8세기 쇼무천황의 국가프로젝트에 기원이 있다는 것이다."(229~230쪽)
사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주장을 펼치는 NHK 다큐멘터리의 대담성이 놀랍고, 복재품을 잘 만드는 일본의 저력(?)을 이렇게 미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한번 놀란다.
세번째, 일본의 이웃나라 문화재 약탈과 활용이다. 일보은 동양의 오래된 문화와 동양문명의 진수를 보존 계승하여 독자적으로 문화를 발전시켜온 맹주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시아의 변방에 자리잡은 일본은 자신의 바램을 이웃나라의 문화재로 증명하고 싶었다.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은 일본이 이웃나라의 문화재를 약탈하는 호기를 마련해주었다. 한국에서는 임나일본부를 증명해줄 수있는 유물을 찾기 위해서 마구잡이식 발굴이 이뤄졌으며, 중국에서도 도굴과 약탈이 행해졌다. 때로는 파괴되어 없어질뻔한 문화재를 일본이 보관하다 돌려주었다는 선전도했다.
일본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약탈된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아직도 본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를 천황제국가 일본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도구로,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를 그 노획물로 여기는 일본인들의 삐뚤어진 문화재 관념이 바뀌지 않는 이상, 문화재가 본래의 자리를 찾기는 힘들것같다.
'워너 전설'이라는 것이 있다. 나라와 교토가 미군의 공습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워너의 노력 덕분이라는 전설이다. 일본 미술을 존경했던 랭던 워너가 일본문화재 목록을 작성하여 일본의 고도에 간직된 고대 문화재의 중요성을 미국에 호소하여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전설을 일본인들은 듣고 싶었다. 일본인이 듣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던 GHQ의 민간정보교육국 홍보담당관 헨더슨 중령은 일본인들에게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해줌으로서 미군정에 대한 성공적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문화재는 과거의 것이라기보다는 현재 필요에 의해서 복제되고, 새로 창조되는 것이라 믿는 일본인들의 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서구인들에게 '저펜이 넘버워(Japas is number one)'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하는 그들은 필요에 따라서 문화재를 훼손하기도하고, 필요하다면 부수었던 문화재를 다시 복재하여 재탄생시키기도한다. 때로는 자신들의 문화재를 서양인들이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한다. 내면의 자존감을 키워서 당당히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기 보다는 타인의 시선에 아름다워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들의 애처러운 모습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