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한국 현대사 - 피와 순수의 시대를 살아간 항일독립운동가 19인 이야기
안재성 지음 / 인문서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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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웅은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탄생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5쪽

  저자 안재성이 머리말 "비극의 아름다움"에서 내뱉은 첫문장이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영웅을 좋아하는 이유를 저자 안재성은 냉철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노무현 대통령에서 시작하여 넬슨 제독에 이르기 까지 영웅의 비극적 죽음은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우리 가슴속에 오랫 동안 기억하게한다. 그 이유가 저자의 말대로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사람들은 이웃이 나보다 잘살기를 바라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가 죽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저자의 분석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책장을 넘겼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던진 화두에 답해보자. 


  저자가 제1장에 배치한 인물은 박헌영이다.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을 만들어 항일투쟁을 하다가 광복된 후에는 북한의 부수상까지된 인물이다. 그러나 6.25 전쟁을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일으킨다. 그 댓가였을까? 미제의 간첩으로 몰려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 겸 평양시다 위원장이었던 고봉기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일제, 미제가 못 다 죽인 조선공산주의자들을 김일성이 이어받아 하나씩 다 죽여버렸다." -37쪽


  섬뜩한 문장이다. 그래, 김일성이 항일 투쟁을 했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도 부인 못한다. 그러나, 광복 이후, 가장 큰 친일파는 김일성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했던 그가, 광복 후에는 대단한 친일파가 되었다니? 무슨 뜻일까? 김일성이 6.25를 일으켜 일본이 전쟁 특수를 누릴 수 있게 했다. 패망한 일본은 김일성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일제가 그토록 죽이고 싶었던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을 김일성이 죽여주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김일성과 스탈린이 그들을 죽였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대의명분도, 신념도, 도덕도 져버리는 것이 독재자들이다. 독재자들은 비극의 시대를 살다가 영웅을 죽음을 선물하여 아름답게 만들었다. 

  저자 안재성은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지고 있다. 다음 문장에서 그가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자들에 연민을 갖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박헌영이 이 시대에도 가치를 갖는다면, 전 생애를 바쳐 민족의 자유와 민중의 평등을 위해 싸웠다는 점일 것이다."-15쪽


 모든 독립운동가가 그러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일제에 맞서 싸웠다. 그리고 "광복 이후에 어떠한 나라를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갈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헌영에게는 그런 연민이 들지 않는다. 6.25를 일으켰다는 것 이외에 외눈박이 국제 정세 인식이 거슬린다. 

  경성제대 국문과 교수 김태준이 소련이 폴란드를 합병하고 고려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했으며, 1930년대 중후반 대숙청을 한 것에 대해서 질문했다. 박헌영은 언제나 소련의 입장에서 대답했다. 이것이 그의 한계였다. 소련이한 모든 일이 옳다고 복 자녀와 부인의 이름도 소련식으로 지었다. 박헌영은 소련의 폴란드 합병을 "제국주의적 합병은 아니고 공산주의적인 것이며 일 보 일 보 세계 혁명을 진행하는 일환"으로 평가했다. 그렇다면, 소련이 북한을 합병해도 박헌영은 이를 "세계 혁명을 진행하는 일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스탈린은 김단야를 포함한 수많은 조선인 공산주의자를 간첩혐으로 처형했다. 그가 믿은 소련, 그가 만든 북한은 결국 그를 배신했다. 그리고 그는 미제의 간첩이라는 죄목으로 최후를 맞이한다. 

 박헌영이 6.25 이전에 죽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는 달라졌을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죽은 영웅은 김일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가족도 무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찍 죽지도 못했으며, 김일성과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댓가는 너무도 참혹했다. 그와 그의 가족에게는....

  박헌영과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 중에 수많은 항일 투사가 죽었다. 이 책에 소개된 이관술과 이주하만이 아니다.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들은 남쪽에서 빨갱이로 몰려 죽임을 당했고,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투사들의 보도연맹원으로 학살당했다.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박헌영이 용서가 되지 않았다. 저자 안재성이 그토록 연민을 느끼는 박헌영이건만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없다. 그가 김일성에게 전쟁을 종용했다. 그 결과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의 항일 투쟁이 과연 그의 6.25 전쟁 발발의 책임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것에 면죄부가 될 수있을까?

  박헌영의 죽음은 그와 인연을 맺고 있는 남로당계 인사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이승엽과 이강국은 미군정 짹에 포섭된 간첩이다. 박헌영이 미군정의 간첩이 아닌 것에는 동의하지만, 미군정 문서에 의해 밝혀진 사실을 저자 안재성은 반박하지 않고 이승엽이 인천방어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을 근거로 이승엽 간첩설을 반박한다. 


  "현실 공산국의 역사에서 이른바 '간첩' 또는 '밀정'의 생산 작업은 거의 필연적인 것처럼 보인다." -106쪽


  남한의 독재정권도 반대파를 "빨갱이"라고 몰아 붙여 죽였다. 그런데, 북한은 남한보다 더욱 철저하게 김일성 반대파를 숙청했다. 유독 북한에서 남한보다 철저한 숙청이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주의 속성이 공산주의에 더 강하기 때문일까?

  철저한 숙청의 칼바람을 피해간 사람이 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홍덕유이다. 그는 일찍죽는 행운을 얻었기에 미제의 간첩이라는 누명도 쓰지 않았다. 그는 행복하게 두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가 진정 행운이었던 것은 저 끔찍한 한국전쟁과 조선공산당 주류에 대한 숙청을 보지 않은 채 죽었다는 것, 남한에서도 아직 좌익의 기세가 드세던 1947년에 죽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244


  일찍죽는 것이 행운이라니... 이것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더러운 꼴 보기 전에 저 세상에 먼저가는 행운을 누리지 못한자들은 살아남은 댓가를 가혹하게 치뤄야했다. 반면 일찍 죽은 행운을 누린자는 그 가족들도 행복했다. 박진홍의 두자녀가 '혁명 유가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김태준과 어머니 박진홍이 일직 죽어서이다. 부모의 죽음은 어린 자녀에게는 불행일 텐데, 이 시대에는 행운이었다. 만약 김태준과 박진홍이 일찍 죽지 않았다면 그들의 자녀는 노동교화소에서 일찍 세상을 등졌을 것이다. 


  영웅은 비극적인 죽음으로부터 탄생한다. 그러나, 이것이 사람들이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까? 이 책에 소개된 19명의 항일투사들의 죽음은 안타까움만을 더할 뿐 그들에 대한 질투심이나 안도감은 느끼게하지 못했다. '독립운동 열전 2'를 읽었을 때의 기억이 다시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서 공산주의자들의 피난처 소련으로 갔지만 많은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들이 스탈린의 숙청의 칼날 앞에 목숨을 잃었다. 그때 "이러려고 일제에 목숨을 걸고 싸웠는가?"라는 질문이 연이어서 들었다. '잃어버린 한국현대사'를 읽으면서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러려고 목숨걸고 항일투쟁을 했는가?" 일제가 죽이지 못한 그들을 김일성이 대신 죽였다. 그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자기보다 월등한 인간이 행복까지 누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영웅이 실현하고자 했던 웅대한 이상이 좌절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한놈의 왜놈도 살려보내지 않겠다는 결의를 실천 못했으며, 임난 이후의 조선을 이순신이 개혁하지도 못했다. 노무현이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화된 힘을 구축하기 전에 죽었다. 그들이 그 이상을 실현했다면 우리의 삶도 변했을 것이다. 그들의 이상이 실현되지 못한 안타까움이 영웅을 그리워하며 그들을 우리 가슴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이유이다.


ps. 옥의티

"공산주의와 동거하느니 영구분단을 하거나 아니면 북진 통일을 하겠다는 이승만과 김구 세력들을 상대" -317쪽

=> 김구는 분단을 막기 위해서 남북협상을 했다. 사실을 왜곡하고 백범을 모욕하는 표현을 수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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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반제투쟁을 하고 독립운동을 계속한 것은공산주의자 및 그 영도 하에 있는 진보적 학생 소시민 노동자들입니다.
1925년 12월에 일어난 제1차 공산당사건으로 공산당의 대부분 간부가피검되었으나 이에도 굴하지 않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시 진영을 정돈대하여 가지고 운동을 전개하고 있던 중 1926년 4월 25일 이조 최후의왕이척이 서거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는 왜놈들한테 눌려서 신음하는 조선민족에게 반일적 감정을 고취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6월 10일을 기하여 반일 대시위를 결행하기로 결정하고 각 단체와 연락하야 운동을 계획한 것이 그만 미숙에 발각된 것입니다. - P241

군정 당국은 실정에 눈을 가려, 일터를 찾아 방황하는 노동자를 파업한마하고 잠도 못 자고 쉬지도 못한 채 추수에 여념 없는 농민을 태업한•다고 하며, 자기 식량도 미처 거두지 못하는 가난한 농민에게 곡물 판매를 거부한다고 책망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선동하여 경제를 혼란케 하는책임이 인민위원회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아첨과 모략을 능사로 하는 친일파, 민족 반역자, 반동 세력에 둘러싸여 포위되어 있는 군정 당국은 그 본래의 사명을 망각하고 민주주의의 발전을 억압하는 반동 세력의 대두를 조장하고 있다. - P247

8월 중순의 어느 날 밤이었다. 우리 군정학교 학생들이 숙사 뜨락에 앉아서 즐겁게 노래 부르며 휴식의 한때를 보낼 때였다.
신화사에서 사업하는 조선 동무들이 느닷없이 우리들 속에 뛰어들면서일제 놈들이 이제 곧 항복서에 조인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인심을 흥분시키는 특대 희소식은 삽시에 군정학교 전체 교원과 학생들 - P307

속에 퍼졌다. 하여 라가평 언덕은 조선군정학교 교원과 학생들의 열광적인 만세소리와 환호소리로 들끓었다.
군정학교 교원과 학생들은 이 기꺼운 소식을 부근 백성들에게 알리려고저마다 횃불을 추켜들고 시위 행렬을 지었다. 숙사 언덕을 내려선 시위행렬은 라가평 마을을 오르내리면서 "항일전쟁 승리 만세!" "중국공산당 만세!", "모 주석 만세!"를 높이높이 외쳤다.
한없이 격동된 마을의 백성들도 횃불을 추켜들고 군정학교 교원과 학생들의 시위 행렬 속에 뛰어들었다. 환희와 격정으로 충만한 여름밤 횃불시위는 샐녘까지 계속되었다. - P308

밀사를 따라 당나귀를 타고 연안을 향해 들어갔다. 서금서 연안까지2만 5천 리 밤과 낮을 이어서 몇 날 몇 밤을 산속으로,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인가라고는 도무지 볼 수 없고 오직 감나무와 호두나무가보일 뿐이다. 별만이 총총한 이역 하늘 아래, 교교한 밤을 나귀에 몸을의지하고 가노라면 바위 위에 크게 나타나는 글자들이 보인다.
"토벌을 가는 길은 도망하기에 가장 좋은 기회다. 어디로든지 빠져나와우리에게로 오라! 너희를 맞을 준비가 다 되어 있다."
이는 팔로군에서 우리들의 학병들을 부르는 신호이다. 흐르는 달빛 아래은은히 클로즈업해 나타나는 우리의 국문 - 공연히 눈물이 죽죽 흐른다. - P326

조선의용대장 시절의 김원봉.

주석 김 선생이 의용대를 대표하여 자못 명확한 어조로 연설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과거 조선 인민은 중국의 매차의 혁명에 참가하였는바, 특히 동북에서 유격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실례로된다. 그러므로 이번에 중국 당국은 그들이 조선이라는 뚜렷한 기치를들고 항전사업에 참가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김 선생은 자못 영광스러움을 느끼게 되며 그 의의가 중대하다고 인정하였다.
"우리들의 역량이 작다고 깔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선의 3천만 민중은 모두 우리의 역량입니다. 아니, 전 중국의 4억 5천만 동포들이 모두우리의 역량입니다."
힘 있는 말마디마다가 매 청중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 P374

1939년 3월 나는 조선의용대 본부의 소환령을 받고 본부가 자리 잡은계림으로 갔다. 그때 김구 선생은 서안에서 광복군을 세웠다. 그리하여중경에 있던 어떤 사람들은 서안으로 갔지만 장수연, 김위, 김화순 등 여성들을 포함한 우리 일행 40명은 계림으로 갔다.
계림에 이르러보니 조선의용대는 약 300명의 당당한 진용을 이루었고 3 - P375

개 지대와 부녀대로 나뉘어 있었다. 조선의용대 본부는 임철애를 부녀대대장으로, 나를 부녀대 부대장으로 임명했다. - P376

조선의용대가 싸움마다 패주하는 국민당 군대와 계속 배합작전을 하며오늘의 후방이 내일 아침이면 전선이 되는 국민당 구역에서 항일선전을 - P385

계속한다는 것은 자멸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시기 날마다 붕괴되는 국민당의 전선과는 반대로 공산당과 팔로군은항일전선에 진출하여 적후 근거지를 세우고 일제 침략자들의 뒤통수를때렸다. 하여 일제 침략자들은 국민당 군대에 대한 전면적인 군사진공을정치상의 회유정책으로 바꾸고 진공의 예봉을 공산당과 팔로군으로 동렸다.
조선의용대 전사들은 항일을 하는 이상, 진정으로 항일하는 공산당과 팔로군을 도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 P386

중국군사위원회의 강력한 종용으로 광복군과 조선의용대의 통합 계획이 드디어 실천에 옮겨져서 이해 5월에 조선의용대가 광복군 제1지대로편입되었다. 조선의용대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었던 약산 김원봉이 광복군으로 편입되면서 광복군 총사령은 이청천, 참모장은 김홍일이 맡고있었는데, 김홍일은 중국군에서 파견된 셈이었다. - P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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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 - 다가올 기회를 읽는 30개국 세계경제기행
박정호 지음 / 반니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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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교수는 내가 좋아하는 경제학자이다. 그는 다른 경제학자와는 다른면이 많다. 타경제학자들이 경제학의 이론에 매몰되어 현실을 보지 못하는 반면, 그는 경제를 말하면서 국제 정세와 세계사, 지리학등 다방면으로 세상을 설명한다. 도그마에 갖힌 외눈박이 경제학자들과는 너무도 다른 시야를 지닌 학자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과감하게 펼쳤다. 


  '세계지도를 펼치면 돈의 흐름이 보인다.'라는 다소 속물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조근조근 30여개국의 역사와 경제상황, 지리적 위치를 종합하여 쉽게 설명해주는 그의 책에 강한 매력을 느끼며 책장을 넘겼다. 

  그의 책을 읽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라는 분야별로 격벽을 쌓고 통섭을하지 못했던 내가 그 격벽을 깨고 세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 몇가지를 예로 살들어보자. 

  첫째, 네덜란드는 상업국가이다. 세계 최초로 증권 거래소를 개업했던 것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이다. 하녀도 주식에 투자했던 시기에 우리는 조선의 왕들이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 세계사는 격벽속의 지식은 통합되지 않고 잠자고 있었다. 현재 세계적 농업국가가 네덜란드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시절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상업국가였던 네덜란드가 어떻게하여 세계적인 농업국가가 되었는지 전혀 의문을 품지 않았다. 사회시간에 배운 지식과 세계사 시간에 배운 네덜란드라는 한나라의 지식은 서로 다른 격벽속에서 잠을자고 있었다. 

  영국과의 연이은 전쟁에서 네덜란드는 패배했다. 그렇지만, 상업의 패권을 빼앗겼지만, 네덜란드가 가지고 있었던 상업국가로서의 DNA는 사그러들지 않았다. 농업에 상업국가 네덜란드의 DNA가 살아 숨셨다. 카카오를 전량 수입해서 11억 kg의 카카오 중에서 4분의 1은 곧바로 제3국에 재판매하고 나머지는 파우더와 버터 등으로 가공해서 다시 해외에 수출한다. 네덜란드는 상인의 농업을 하고 있었다. 상인이하는 농업은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가을에 걷어들이는 전통적인 농민의 농업과는 달랐다. 그것이 네덜란드가 농업국가로 우뚝설 수 있는 비결이었다. 

  둘째, 러시아의 숙원사업은 부동항을 찾는 것이다. 세계사 시간에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아서 흑해와 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진출하려한 역사를 배웠다.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서 영국이 부던히도 노력한 역사를 흥미롭게 배웠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는 세계사라는 격벽 속에서 고히 잠들어있었다. 가끔 역사책을 들춰볼 때만이 그 역사는 잠에서 깨어났다. 

  환경뉴스를 보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해서 북극항로가 열린다는 기사를 자주 접했다. 투발루처럼 지구 온난화가 저지대의 약속국에게는 국토를 포기까지해야하는 위기이지만, 동토의 제국 러시아에게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는 기회의 시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 지식도 환경이라는 격벽속에서만 살아있었다. 

  러시아에 대한 세계사 격벽속의 지식과 환경이라는 격벽 속의 지식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박정호 교수는 두 지식을 만나게 해주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숙원 사업인 부동항 문제는 최근들어 지구 온난화로 해결될 듯해 보인다. "107쪽


  "부동항 확보 = 지구온난화로 북극항로가 열린다." 이 쉬운 지식의 연결을 나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지식을 연결 시키면 지식의 벽을 허물 수 있다면, 나의 사유의 폭과 깊이는 더없이 깊고 넓어질 수 있다. 박정호 교수를 통해서 맞본 지식 연결의 기쁨은 너무도 컸다. 


  박정호 교수가 찾은 마지막 지역은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미지의 영역, 다리엔 갭이다. 파나마의 야비사와 콜롬비아의 투르보 사이에 존재하는, 길이 160km, 폭 50km의 정글과 늪지대로 지구에서 가장 우거진 오지가 다리엔 갭이다. 독충과 악어, 재규어와 아나콘다, 마약조직과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장악한 이땅에 목숨을 걸고 밈국으로 향하는 이주자들이 있다. 박정호 교수는 "언젠가 다리엔 갭이 개발되는 시점이 우리 인류가 지금보다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시기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인류가 다리엔 갭을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에 맞겨두는 여유가 있을 때 우리사회가 성숙한 사회로 나아갈 수있다고 믿는다. 세계를 개발과 투자의 시각으로만 보기 보다는 때로는 여유를 갖고 그들을 있는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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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으로 읽는 한국 현대사
김호기.박태균 지음 /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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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만큼 쟁점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좌우익의 극한 대립속에서 근대화와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수행한 대한민국은 그 내부에 갈등과 대립이 많을 수밖에 없다.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의 40꼭지가 한국현대사의 모든 쟁점을 살핀 것은 아니다. 사회학을 전공한 김호기와 역사를 전공한 박태균의 조합으로 한국사회의 정치사적 쟁점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를 아우르는 쟁점을 두루 살폈다. 

  다양한 쟁점을 살펴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사회를 폭넓게 조망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책읽는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양날의 검이었다. 다양한 주제를 살펴볼 수는 있었지만, 깊이있는 성찰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깊이있는 성찰을 하려면 해당 주제의 책들을 읽던가, '논쟁으로 읽는 한국현대사'라는 책이 태백산맥 정도의 권수와 분량으로 늘어나야할 것이다. 해당 분야를 전공할 사람이 아니라면 그렇게 두꺼운 책 읽기에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머리를 식힐겸 꺼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한국 현대사의 쟁점을 쉽게 정리하면서 새롭게 읽을 책과 관심가는 분야를 찾기에 좋은 책이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정독해볼 것을 추천한다. 300쪽 분량의 얇은 책이지만 절대 내용은 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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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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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트럼프의 등장" 어느 외국 기자는 그의 등장을 이렇게 표현했다. k로 시작하는 다양한 우리 문화 상품에 한껏 국뽕이 차오르지만 그를 "k-트럼프"라고 표현한 것을 직면하고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가 당선되는 날, 나는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심하게 좌절했다.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보내야하는가? 심각한 우울감에 TV뉴스를 보지 않았다. 박근혜 때보다 충격은 너무컸다. 한번은 모르고 그럴수 있다. 그러나 2번은 어리석은 것이다. 난 국민이 현명하다고 믿지 않는다. 박근혜를 뽑은 노인들을 보며, 인생의 지혜를 가진 노인분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달았다. 그를 뽑은 국민을 보면서 실수를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땅의 민주화 운동을 하고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정치에도 뛰어들었던 유시민은 어떠한 만감이 교차할까? "매불쑈", "다스베이다"에 출현하여 쏟아내는 그의 정치 평론은 때로는 너무도 통쾌했고, 때로는 너무도 탁월했다. 그리고 둘다일 경우가 더 많았다. 그의 비꼬는 형식의 논평은 그에 대한 분노를 삭이며 최대한 냉정을 되찾으려는 몸부림으로 보였다. 그러한 몸부림은 이책의 곳곳에서 느껴졌다. 

  "극단적 무능", "독재자 행태", "학습능력 결여", "비굴한 사대주의", "권력 사유화"라는 그가 인기 없는 이유에 격한 공감이 갔다. 이러한 자가 대한민국의 최고 통치권좌가 되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겨지지 않다. 아니 그러한 자를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의 어리석음이 이해되지 않는다. 집값이 더 오르길 바라며 그를 뽑은 사람, 집값이 올라서 심판하기 위해서 그를 뽑은 사람, 검찰총장이고 서울대를 나왔으니 잘할 것 같아서 뽑았다는 사람, 그냥 예전대로 뽑던대로 뽑았다는 노인들.... 그들의 어리석은 선택 후에 한국 경제 지표의 추락으로, 한반도 전쟁 위기로 이어졌다. 최고 통치권자는 위기를 예방하고 조정하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능력도, 의지도 가지고 있는가?

  그를 탄생시키는데 한국 언론의 역할이 컸다. 박근혜의 진면목을 목도했을때, 언론이 박근혜에 대한 마사지를 얼마나 잘 해주었으면 국민이 박근혜의 정신상태를 알지 못했는지 한탄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보수권력 앞에서는 작아지는 한국의 언론은 박근혜의 탄생을 도왔다. 그리고 그의 탄생도 도왔다. 진보 후보에 대해서는 메서운 언론의 칼날을 들이대는데 왜? 보수 후보에 대해서는 그 언론의 칼날을 휘두르지 못할까? 유시민은 한국 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 그들도 하루하루를 고달프게 사는 회사원일 뿐이다. 그들에게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 사회 정의를 위해서, 이땅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정론을 펼것을 기대한 우리가 죄인이다. 사주의 눈치를 보며, 권력의 눈치를 보며 그들도 하루를 숨가쁘게 살 뿐이었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전통언론이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다면, 김어준과 "뉴스타파"로 대표되는 유튜브 기반의 언론인들이 진실의 파수꾼역할을 하고 있다. 기성언론은 김어준과 뉴스타파를 유튜버라고 부를뿐 언론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희망이다. 

 트럼프의 당선을 놀라는 언론 기사를 보았다. 트럼프의 당선을 이변이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서, 당신들은 미국 주류언론의 기사를 통역했을 뿐, 진정한 분석을 할 줄몰랐고 하지도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헤리스를 당선시키기 위해서 헤리스에게 유리한 여론조사문항을 만들었다. 고졸이하의 노동자들을 여론조사에 포함시킬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다. 그러니 헤리스와 트럼프가 박빙이라는 어리석은 결과가 나올 수밖에..... 미국은 친민주당 언론이, 한국은 친 보수언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에게 유튜브를 기반으로한 진정한 언론인들은 반기를 들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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