팅커스 -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
폴 하딩 지음, 정영목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마지막장을 덮은지 아직 12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인가? 아직도 귀에 물이 찬 것 같다.

2010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삼대의 거창한 일화를 다룬 것은 아니다. 그저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소소한 일상들을 보여주고있는데 감각적인 묘사로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두께는 얇지만 읽다보면 풍부한 표현력과 시간을 무너뜨리며 공간의 벽을 허물어 몽롱한 가운데 감각적 묘사들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감동에 젖는 탓에 물에젖은 빵처럼 두툼한 부피로 다가온다.

 

<팅커스>가 폴 하딩의 첫작품이라니...뒤늦은 수상도 눈길을 끌지만 첫작품이라고는 믿기지않을 정도의 농밀한 표현들이 '작가란 뼛속부터 타고나야하는 건가?'란 생각이 들게해 왠지 일반인에 불과한 스스로가 위축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환상적으로 느껴지게하는 마법같은 능력을 지닌 폴 하딩.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이런 감성들을 표현할 수 있게되는 것일까?

 

죽기 전 8일 동안 벌어지는 조지의 의식세계에서 우리도 함께 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의 기억을 공유하며 부유하게 된다.

촌수로 가까운 가족사이지만 사실 서로 애틋한 관계는 아니었던 탓에 물려줄만한 생활습관 같은 것은 없었을 것이고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조지를 통한 각자의 기억 속에서 유기적인 이미지를 볼 수 있다.

 

누구나 그렇지만 가족과 주변의 친지들에게도 이해받을 수 없는 성향이 있어 외롭다.

외로운 영혼을 지닌 크로스비들은 죽기직전의 의식 속에서 초자연적인 경험으로 교류하며 안식을 얻는다.

임종직전이란 시간은 가족들도 경건하게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삶의 전부를 회전하는 기억 속에서 진짜 자신을 찾고 이해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조지는 얼마나 아름다운 임종을 맞이하는가?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 손자의 낭독을 들으며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기억을 거슬러올라가다니...

나 역시 임종 전에는 지금껏 바라보았던 이미지와는 다른 이미지를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될까?

과거에서 받은 상처조차 마지막에는 그렇게 애틋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게 될까?

 

그런 이해를 살아있는 동안 내 옆의 사람과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지.

그렇다면 삶 자체가 더 빛을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을 알고, 상대가 처한 입장을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살아있는 동안 사회적 체계로 씌워진 안경을 더이상 활용할 수 없는 그 시간이 오기 전에 미리 그 안경을 벗을 수 있다면...

 

폴 하딩은 조지의 기억을 더듬어 우리에게 현재의 삶에서 소중함을 잃지않는 현명함을 간직하길 얘기하는 듯 하다.

또한 감각적으로 묘사되는 자연은 비록 앙상한 이미지를 하고있더라도 그의 안내를 통해 가지가지마다 빛을 떠안고 있어 잎이 없어도 풍성하게 다가온다. 지금 당장 나가지 않아도, 창 쪽으로 눈길만 돌려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광에서도 얼마든지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사를 한없이 느끼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이런 아름다운 곳에 있었나?

 

시계에 관한 묘사들이 지금껏 그렇게 속살거리듯 다가온 적이 없었다. 실제로 조지의 손자이든 나의 할머니이든 나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지닌 나의 친지가 나를 향해 다정하게 낭독해주는 듯 하여 볼이 다 간질간질했다. 임종직전의 조지가 놀랠까봐, 설잠에 빠졌을 손녀가 깰까봐 조심스레 낭독하는 그 배려가 느껴져 뱃속이 따땃~해진다. 방안의 평범한 사물들 조차 폴 하딩의 조명을 받는 것 만으로도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사랑받고 있었나?

 

이런 아름다운 곳에서 사랑받고 있었다는 것을 늘 깨닫고 산다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내일은 오늘과 또 다른 설레임과 반짝임이 있을 것이다. 사회적제도가 마련해주는 연말의 여유로움 속에서만이 아니라 늘상 오늘의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느끼고 감사하게하는 <팅커스>.

초반엔 지루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지나치게 잔잔하고 대화의 구성도 경계가 없고 환상적인 구도로 인해 정신이 없다.

그러나 덮을 수가 없다. 다 읽고나면 읽기 전의 나와 읽고 난 내 감정의 옷이 사뭇 달라져 있음을 느낄 수 있게될 것이다.   

아까와 똑같아 보인다고?

글쎄...같은 모습인데 대체 왜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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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1-01-0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읽었습니다.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
서진영 지음 / 시드페이퍼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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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넘기기 전에도 평소에 문화재에 관심을 갖는 여유로움을 가지지 못한데 대한 부끄러움이 있었는데,

읽는 순간순간과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이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가치를 찾아주지는 못할망정 잘못했으면 소멸했을지도 모를 분야에 대해 생각하니 아찔할 정도다.

 

첨에는 간결하지 못해서 제목으로서의 기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는데 누가 되었든 제목없이 읽었다면 이 표제를 붙여주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이 단정히 들어선 표지를 한동안 바라봤다.

그냥 미안해서도 안된다. 너무도 미안한 것이다.

외적인 심미성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과 조상들의 정신을 고스란히 품은 기품을 간직한 그 아름다움을 몰라봐주다니 말이다. 빠른 경제&문화성장을 외치며 무분별하게 외래문화를 흡수하고 전통을 소홀히여기며 경시했던 사회풍조 탓으로 돌리기에도 고등교육을 기본으로 받을 수 있는 세대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글귀하나, 사진하나 그 어떤 것도 허투루 지나갈 수가 없다.

장인들의 노고가 느껴지는 그 작품들은 실물이 아닌 사진에서도 그 존재의 부피감을 마구 발산하고 있더라. 아름다움을 넘어 조상들의 정신을 담고있는 그 작품들은 사진으로도 그 기품과 가치를 고요히 뿜어내고 있는데 실제로봤을 저자는 그 감동에 감화되어서 인지 글자 한자한자에도 작품과 장인정신을 대하는 진심이 보인다.

 

저자는 생각보다 굉장히 젊은데 아직 30이 채안되었지만 경박스러움이 없이 진중하고, 또 나이에 맞게 경쾌함도 지니고있다.

장인들을 찾아가는 여정이 친척언니의 편지를 읽는 듯한 자연스러움과 친근함이 베어나와 책으로 우리나라 문화재를 공부한다는 느낌보다 겨울날 사진을 건네받으며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이 주는 두께에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했던 마음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문화재를 소개하면서도 저자의 문학적인 표현들이 곳곳에 베어있어 우리의 전통문화를 보는 맛에 감성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작가의 이런 역량이 아니면 짧은 표현력을 지닌 내가 어찌 그렇게 다양하게 감동을 하겠나!

 

소개되고있는 문화재들은 '시간이 없어서' 관심을 갖지 못했다기엔 민망할 정도로 우리 생활 곳곳에 생활용품으로 함께하고 있었다. 의,식,주,가로 나누어 소개하는 관계로 우리의 생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것'들인데 그저 서구의 세련됨과 새로움을 쫓아 표면상의 아름다움 이상이 주는 전통의 깊이를 멀리하고있던 자신을 반성해본다.

생각해보면 어린시절 큰집에가면 접할 수 있던 소품들도 있었는데 어째서 그 아름다움들을 무시하고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우리 것이라면 외래의 문화보다 좀 투박하고 소박하다는 인상만 강했었는데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에서 보여지는 그 정신과 미가 주는 감동이란 내 얕은 표현력으로 풀기엔 미안할 정도이다. 부족함도 과함도 없는 단아한 아름다움과 자연에 대한 어울림, 여유와 배려까지 아우르는 정신까지 모두 포함한 문화재들은 눈과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동을 표현하기 조심스러울 것이다.

 

생활유지에 급급하던 시절 '빨리빨리'풍조에 젖어 빠른 성장을 했던 그만큼 빠르게 우리 전통이 가진 고귀함도 쉽게 잃어버렸구나 생각하니 지금의 경제적 문화적 풍요로움이 허무하게 느껴질 뿐이다.  아무리 급해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되 결코 잊어선 안되는 것들, 계승하고 발전시켜야하는 문화들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잊어버리다니...

 

하지만 시드페이퍼와 저자와 같은 분들이 전통의 소중함에 대해 일반인에게도 자꾸 일깨우기 위해 노력하는 행보 중 하나인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아름다움>만 보더라도 앞으론 물질적 풍요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국민들이 많아질 것임을 기대해본다.

 

수록된 사진들과 설명들을 한번읽고 덮기엔 매우 아까운 책이니 가까이두고 가족들이 나누고 친구들이 나누며 두루두루 읽히고싶은 책이었다. 정신적 소양을 살찌워주고 소장가치까지 다분한 책이라 <몰라봐주어 너무도 미안한 그 가격>의 책이다.

문득 우리의 문화재들을 탐방하는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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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소녀
로버트 F. 영 지음, 조현진 옮김 / 리잼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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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마냥 편한 맘으로만 읽을 수 없었던 소설책이었다. 여러 단편을 엮은 책으로 표제로 채택 된 민들레 소녀를 제외하고는 저자가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기인한 풍자가 대부분이었는데 공상과학 장르라고는하지만 너무도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어서 섬짓한 마음이 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짧은 단편들을 모아놔서 금방 읽힐 것 같지만 작품이 내재하고 있는 상징성들을 음미하고 파악하느라 술렁술렁 읽을 수 없다. 특히나 나처럼 변덕이 있는 독자는 1번, 2번, 3번 읽을 때마다 그 느낌이 다르게 다가오기 때문에 어떤 부분은 무엇을 상징한 것인지 모르고 지나친 부분들에 대해서는 다시 읽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표지와 제목으로 그 몽환적인 느낌이 소녀적 감수성을 떠올리게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사회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졌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작가의 역량 덕분에 곳곳에서 고전 시인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짧게나마 접할 수 있으며, 내용 사이에 시적인 표현력이 존재하고있어 미래사회에 대한 경고성을 담은 구성 안에 서정성을 부여하였다. 그런 시적 요소들은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비유나 상징들이 내포하는 와중에도 책을 쉬이 덮을 수 없는 매력적인 이유로 절대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선견지명있는 지식인들의 사상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문가들을 위한 논문형식은 전문적이고 농도는 깊지만 정작 받아들여야하는 대중들과의 소통이 어렵다. 저자 역시 일반 대중들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코드를 가지고있진 않지만 '소설'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고 경계해야할 부분들에대해 경고하여 대중과의 소통을 유연하게 한다.

 

내용만 보아서는 공상과학소설이다싶게 상상력을 부추기고있다. 그렇다고 공상과학이라하면 헐리웃의 거대한 SF영화의 화려함보다는 일상과의 긴밀함을 보여주며,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조차 아기자기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아예 새로운 과학상의 공간에서 큰 스케일을 도입하여 상상의 나래를 펼쳐주기보다는 일상 속의 작은변화로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모호하여 붕~뜨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문장을 즐기며 읽고있다가도 미래를 향한 경고에 순간순간 가슴이 뜨끔한다.

 

일본 애니메이션인 '클라나드'에 소개 된 '그제는 토끼를 보았어요, 어제는 사슴 오늘은 당신을'이라는 구절로 국내에서도 관심을 받아서 인지 표지띠부터 클라나드라는 애니메이션으로 홍보효과를 보려한 것 같은데 굳이 그 애니메이션에 기대지 않았어도 홍보하고 눈길을 끌 수 있는 요소가 넘친다.
오히려 애니메이션으로 관심을 가진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으나 그 외의 독자들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어지는게 안타깝다. 나역시 그 문구자체에 끌렸을 뿐 애니메이션을 통한 소개에는 관심도 가지 않았기 때문.
 

개인적으로 그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표지띠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고, 오히려 그 구절이 눈에 들어와 그 구절만 띄워 짧고 강하게 홍보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민들레 소녀'뿐만 아니라 함께 수록 된 단편들 하나하나마다 인상깊은 서정적 문장들이 많이있기 때문에 '클라나드'라는 애니메이션효과를 배제했을경우 어쩌면 표제며, 홍보문구를 정하는데 더 애먹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많은 관심을 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상상력에 더해지는 서정적인 표현에 담긴 사회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특징을 부각시켜줄 수 있었을텐데...

 

넘치는 정보만큼 다양한 사상과 표현들로 넘실대는 서점 속에서도 단연 으뜸이 되는 것은 고전주의작가인 것은 왜 일까?

내 전공에서 새로움을 개척하겠다고 아예 동떨어진 공간에 작품을 지을 순 없는데, 의욕이 앞서다보니 근본을 잊거나 파괴하는 경우가 많아서일 것이다. 로버트 F.영은 공상과학소설을 쓰면서도 화려하고 과함이 없지만 부족함도 없이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밀려오는 설레이는 감정의 변화를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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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 - 살아가는 동안 놓쳐서는 안 되는 것들
루프레히트 슈미트.되르테 쉬퍼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호스피스 로이히트포이어는 등대불빛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요리사 루프레히트 슈미트의 요리사로서의 자존감을 증명하는 장소이다. 왠만한 고급레스토랑의 주방장까지 지낸 사람이 더 큰 커리어를 쌓기 위해 욕망과 포부가 대단할텐데 루프레히트는 그런 사회적위치에 연연하지않고 본인의 마음에 귀기울여 그동안 요리사로서 총족되지 않았던 2%를 찾았다.
 
요리사로서 미식가의 입맛을 충족시키는만큼의 기쁨이 어딨을까?
그런데 미식은 커녕 최소한의 미음형식의 음식도 겨우 섭취하는 사람들과 과식이 허용되지않는 장소에서 요리사로서의 자괴감을 느낄 요소들이 충분한 호스피스에서 본인 경력 중 최대의 만족을 느끼고 있다니 루프레히트는 확실히 보통의 요리사는 아니다.
 
로이히트포이어의 간호사들, 간병자들, 후원자들, 봉사자들이 있지만 환자들의 마음에 등대불빛을 비춰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루프레히트가 아닐까? 어떤 호스피스에도 간병에 필요한 인력이 있지만 요리사를 두어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신경쓰도록하는 곳은 극히 드물 것이다. 게다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도 음식을 먹고싶은 마음조차 없을 것인데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풍기는 냄새로 잃어버린 식욕을 상기시키고 조금이라도 맛보게하고싶은 욕구를 부추긴다는 것 자체가 마법같다.
 

병원에서조차 더이상 호전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들어오는 호스피스는 육체적으로도 음식물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정신적으로 음식을 즐기기 힘든 장소다. 더이상 삶에대한 욕심을 접었는데 무슨 의욕으로 식욕까지 바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루프레히트는 숱하게 여러 입실자들과의 만남과 이별에서 요리만으로 심경을 변화시키고 행동까지 유발한다.

 

<내 생의 마지막 저녁 식사>에서는 루프레히트의 감성을 담은 요리가 가져오는 소통만을 얘기하는 것을 넘어 입실자와 그 가족구성원을 통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간유형과 그 사회성을 보여주며, 급작스럽게 당면하게 된 죽음앞에서의 변화로 우리가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있는지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제목을 그냥 식사도 아니고 '저녁 식사'라고 작명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여유롭고 행복한 저녁을 먹고 잠들 듯이 생을 마감하길 바라는 우리들의 소망을 반영한 것일까? 그만큼 평소에는 생각지도 않았지만 <마지막 식사>가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죽음을 직면하고 우리는 어떤 음식을 바라게 될까?

 

로이히트포이어의 사람들은 대단한 기교와 기술이 필요한 음식을 바라지않는다. 그들은 일상 속에서 즐겨왔던 음식 '추억'을 상기시키는 음식에 감동하고 감사한다. 그동안 바쁘게 살아오느라 '소중'한데도 그렇게 대해오지 못한 일상들에 대한 행동의 변화까지 보이는 사람들에게 경이로움까지 느끼게된다. '삶을 만끽하는 순간'에 그럴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되더라도 그 짧은 시간이나마 입실자들은 마지막 남은 시간들에 공을들여 생활한다.

 

곧 끝날 시간들에 공을 들이다니? 이 노력들이 '요리'로 이뤄지다니?

삶의 소중함, 중요한 순간들은 늘 사소한데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게다가 먹는다는건 살아있다는 반증이니 아플 수록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소망을 품게된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지금까진 먹는게 그냥 당연한 것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입실자 중 음식섭취 자체가 불가능한 부인이 있었는데 그녀를 위한 루프레히트의 노력은 그를 더이상 요리사로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로이히트포이어에 활력을 불어넣는 절대적인 존재임을 확신시켜주고있다.

본인의 추측인 '향'으로 부인을 만족시키는데 빗나가자 다소 좌절하지만 포기하지않고 '음악'으로 다가가고자한다. 여기서 본인의 한정된 정보로 CD를 굽지않고, 생소한 문화에 대한 주변의 자문을 반영하여 본인은 의외다 싶은 탱고음악으로 부인께 크리스마스 기념으로 요리대신 선물한다. 애초에 확신을 갖고 한 선물이 아니라 바쁜와중에 잊고 있었을 정도였는데 전해들은 부인의 반응에 루프레히트는 얼마나 뿌듯하고 가슴이 뜨거워졌을까!

 

이 외에도 다른입실자들과의 다양한 스토리들이 더이상 '요리'는 업무수행의 일환이 아니라 루프레히트가 로이히트포이어에 활력을 불어넣는 수단 중에 하나인 것임을 증명한다.

죽음을 많이접한 사람이지만 죽음에 익숙해지기 보다는 더 경건함을 고취시키고 그 마지막에 희망을 주는 사람!

 

'마지막에 어떤 식사를 하고싶은가?'와 함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의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한다.

사회전반적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심적 여유와 풍요가 만연한 시즌이왔다.

그 마음을 이어가 지금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행복한 한때를 보내기 위한 구상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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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전아리 지음, 장유정 원작 / 노블마인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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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뮤지컬이 먼저 나왔다고하니 소설과 영화 두 분야에서 원작이 어떻다고 비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책부터 읽었으니 나에겐 책이 원작으로 느껴져서인지 책의 내용을 살렸으면하는 마음이 있었다.

책의 내용으로 캐릭터를 설정했어도 꽤 그럴 듯 할 것 같다. (이름도 영화보다 책에서의 이름이 더 이미지에 부합하는 듯)

 

아...다만 효정이 스스로 첫사랑을 추억으로 남기려는 마음이 있으면서 굳이 성재의 사무실을 방문한다는건 첫사랑의 추억을 바래지 않도록하려는 마음과 찾고자하는 마음이 갈등으로 빚어낸 설정이라고 생각되긴 하지만, 그보다는 영화에서처럼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등록한다는 설정이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실을 배경으로 내용이 전개되어도 괜찮았을 듯~싶으나 극중 성재의 성격상 그런 로맨틱함은 좀 부자연스러우니 책 속의 캐릭터와 배경은 잘 맞아 흐른 듯 싶다.

 

애초에 영화배우가 캐스팅되고 책이 써진건가?

전아리작가의 인물묘사는 임수정과 공유를 구체적으로 그려내고 있어, 영화를 보지않은 상태에서도 영상미가 느껴지게하는 맛이 있었다. 멜로에 딱 어울리는 사랑스러운 얼굴과 체구의 임수정, 듬직하고 성실해보이나 조금은 뺀질거릴 것도 같은 이미지의 공유가 책속의 두 캐릭터에 잘 맞아떨어져 영화의 캐릭터와 내용도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물론 캐릭터 설정이 다르고 전개방식도 달랐지만 영화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와서 두 작품을 비교하기 보다는 다르게 받아들이게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어느정도 흐름을 같이하고 있어서 책에서 보지 못했던 영상미를 영화가 채워주고, 첫사랑을 두고 상상되는 환상을 책에서 충족할 수 있다는 장점!

인도에 가본적이 없어서 효정의 인도여행 도중의 묘사가 내 머릿속에서 제대로 시뮬레이션을 이루지 못 했지만, 영화에서 지우의  인도여행으로 인도의 여행 중에 가질 수 있는 타문화에 대한 신선함을 아름다운 영상미로 볼 수 있었다.

 

여행을하면 다른 내가 되는 것일까?

연애에는 관심도 없던 효정도 낯선 여행지에서 왠지 든든한 김종욱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다시 한국으로 와서는 전처럼 연애에 무신경해진 듯 하지만...

사실 무신경하다기 보다는 김종욱에 대한 마음으로 다른 사랑을 하지못한 것은 아닐까...?

그만큼 그 사람에 대한 마음이 수채화처럼 너무 맑고 예뻐서 그 자리에 두지 못하면 시들까봐 차마 찾을 수 없는 그 마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효정에 대한 인물묘사는 어쩌면 지금의 나를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날 정도로 공감이 갔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불효가 될 줄이야....라는 구절은 지금의 내심정과 꼭 같아서 "그래.사람이라고 누구나 20대는 연애에 관심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잘못이야!"라는 내 생각을 더 단단히 해줬다.

우리 부모님 입장에선 부작용인 듯 하나~개인적으론 위로받은 느낌이다.

 

성재는 초반에 진상스런 이미지로 시작됐으나 곧 그의 과거를 통해 바라보면서 그가 진지하게 연애를 하지못했던 그간의 패턴에 대해서 이해하게 된다.

처음엔 그렇게 순수하고 금방 사랑에 빠지던 성재였지만, 곧 레저활동을 즐기듯 '누구든'상관없는 연애생활을 이어간다.

이렇듯 겉은 성숙하지만 둘 다 사랑엔 미숙하고 다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부턴 너무 쉬워진다는 말...

'사랑'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대체 쉽다는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할지 모르겠지만 '진심'을 동반할 수 있다는 뜻이라면,

사랑의 경우는 노력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억울한 분야다.

 

효정은 막 시작한 첫사랑에 대한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깨고싶지않은 두려움...

성재는 그간 실패했던 사랑의 반복에 대한 두려움...

둘은 서로 다른 연애패턴을 보여주지만 그 마음속엔 '사랑'을 아름답게 바라보기 때문에 잃고싶어하지 않는 두려움이란 공통된 마음을 보여준다.

 

겉으론 둘 다 쿨~해보이지만 글쎄...?

쉽게만나 하룻밤을 즐기고 헤어지는건 쿨한게 아니라 문란한거지, 상처받을 것에대해 두려워하지 않고 이거저거 재지않고 마음가는대로 사랑하는게 쿨~한 것!

혜진을 통한 작가의 말에 마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식으로 해석해보고 저런 식으로 해석해봐도...아무리 생각해도 쿨한 사람에 속하진 못하는구나...;;

 

전작의 몇몇 작품들에 비해 다소 경쾌해진 연애소설이라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접하는 느낌이었다.

전아리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본건 아니었지만 나이에 비해 작품에 녹아있는 삶의 노련한 표현들에 흠칫흠칫 놀라게된다.

젊은 나이에 보여줄 수 있는 가벼움보다 중견작가들의 구수함을 느낄때면 이 작가는 엄마 탯줄잡고 놀 때부터 소설구상을 했나 싶을 정도다.

앞으로도 계속 문학쪽으로 엄청난 내공을 쌓아 큰 기둥이 될 것 같아 지켜보고싶은 작가 중 하나이다.

 

김종욱을 찾아가는 과정도 막연하게 처리한 것이 아니라 보다 사실적으로 처리해주고 있어서 나도 흥신소라도 통해서 첫사랑을 찾고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나같은 경우엔 나를 괴롭히던 짝꿍을!)

사람마다 다 맘속에 풋내나서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추억을 간직하며 첫사랑을 기억한다.

그래서 첫사랑에 연연하는 사람이 있고, 효정처럼 그 아름다움을 변질시키지 않으려고 억지로 찾을 수 있는 방법도 차단하며 기억으로만 남기려는 사람이 있는 것이겠지...

그만큼 누구에게나 '첫사랑'은 참 특별하다.

 

처음하는 사랑이 첫사랑은 아닌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어려운 만큼 지금까지의 내가 기억나지 않을만큼 변화를 이루게 되고, 현실에서 마음을 뜨겁게하는 사람이 생긴 시점부터 사랑이라면 효정과 성재는 이제 첫사랑을 하게되는게 아닐까?

특별한 공간이 아닌 현실에서 어긋나지않는 타이밍으로 서로의 마음이 동시에 닿고 있는 지금의 상태가 말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픈기억, 첫사랑에 대한 아름다움을 퇴색시킬까봐 두려운 마음들만이 성재와 효정의 사랑에 방해요소는 아닐꺼라 생각한다. 사랑은 인연이라 생각하는 나에게 둘에게 지금껏 그 인연이 없어 미성숙한 연애의 원인을 찾았던 것은 아닐지...? 지금까지와는 가슴떨림이 느끼고 있으니 이제는 쿨하게 사랑하기를!

정말 내가 지금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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