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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33 - 세상을 울린 칠레 광부 33인의 위대한 희망
조나단 프랭클린 지음, 이원경 옮김, 유영만 해설 / 월드김영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집을 고를 때 내가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부분은 바로 '채광'이다.
몇년 전에 아파트들을 너무 빽빽하게 지으며 집에 빛이 잘 안드는 집들이 난무했었는데 사람이 건강하게 생활하기 위해서는 썩 좋은 환경이 아니기에 그런 건축유행이 달갑잖았다.
아늑한 공간은 좋지만 24시간 빛이 없는 그런 밀폐된 공간에서 긍정적으로 사고하고 건강하게 생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개폐의 자유가 주어진 집에서도 '빛의 결여'는 사람의 행동양상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데 개폐의 자유가 없는 밀폐 된 공간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69일간 갖혀있어야 한다는건 상상만으로도 몸서리처지는 일이다.
69일이라는 것도 플랜A,B,C의 꾸준한 진척상황에 대한 성공의 결과로 빚은 기간일 뿐, 더 연장되었을지도 모르는(어쩌면 그 와중에 붕괴위험이 있을 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이성적인 행동을 바란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는 일일 것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기적같은 일이 작년 8월 칠레에서 일어났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THE33>에서는 광부들이 스스로의 삶에 새 희망을 부여한다.
69일간의 긴 기간동안 최소한의 마찰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냈다. 최소한이라고는 해도 당시에는 문제가 생길 때 마다 큰 스트레스를 동반하는 일 이었겠지만 일반적으로 목숨이 결부된 그런 위험한 밀폐성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부작용들에 비한다면 거의 기적적이라고 볼 수 있을만큼 평화스러웠다.
사람은 끝까지 가 보아야 알 수 있다고 하는데 평소에 근엄하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던 사람들도 극한 상황이 닥치면 본연의 모습일지는 몰라도 약하거나 실망스러운 상황을 연출하기 쉽다.
<THE33>의 33명의 광부들은 그동안 만족스럽지 못했던 아들, 책임감이 부족한 아버지,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 보다는 하루하루의 쾌락을 위해 돈을 쓰는게 일반화 된 그룹이었다.
비단 이들만이 그런 삶을 살아가는게 아니라 법률적으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은 대부분이 안전보다 돈을 택할 정도의 동기가 되는 생계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69일간의 그들이 보여준 민주적인 생활방식은 지금까지의 그들이 보여준 그 이상의 가능성을 새로 발견하게하는 계기가 되었다.
보통 우리는 '다시 태어난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33인의 광부들은 땅속에 '묻혔다가' 구출되는 과정 속에서 전보다 더 나은 자신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진정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밝히고 싶지 않은 사생활을 칠레 전역에 드러내게되어 괴로울 조니같은 광부들은 안타깝지만 그 외 대부분의 광부들은 이번 사건을 통하여 좀 더 가족의 소중함과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사회적 인망이 높은 엘리트 집단이라 하여도 이렇게 침착하고 민주적인 방법으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건 거의 불가능일 것이다. 그들은 광산의 위험을 알기에 대처하는데 있어 유리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 위험성을 실질적으로 알고 있기에 정신적 불안을 심하게 느낄 수 있는 상태에서도 소사회를 구성하는데 성공했고 지상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잠재적인 재능들을 일깨우며 모든게 기계화 된 현대에 휴머니즘적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아마 그들은 그들의 성공적인 구출작전이 가지는 그 이상의 의미에 대해 상상도 못했겠지만 1명도 좌초되지않고 절박한 상황을 희망으로 이끌어낸 그들의 기지와 이성은 앞으로도 전례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 상황이기에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도 내가 밟고 서 있는 땅이 불안정하게 느껴지며 조마조마하던 그 순간들.
광부들과 구조대원, 의사들은 모두 협심하여 구조작전을 최선의 방향으로 이끌고 있었지만 구출되기 전 까지는 완전히 안심할 수 없었던 탓에 가슴을 졸여가며 읽었기 때문에 모두 구출이 되었을 땐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타인조차 그들의 생존에 대해 응원을 하고 가슴을 졸였는데 가족들은 얼마나 악몽같은 시간이었을지....
그들 가족에게 다시는 이런 끔찍한 시간이 없도록 정치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라인이 제대로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도 생계유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위험한 현장에서 일할 수 밖에 없는 분들이 적지않게 계신다.
외국의 이런 사례들을 발판삼아 조금이라도 그분들과 그 가족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들을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