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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봄날 ㅣ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6
오 헨리 지음, 송은주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12월
평점 :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마음이 풀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체질상 음식을 많이 먹지는 못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서 여기저기 채널을 찾아 다니면서 이것저것 해보기도 하고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서 자주 먹어본다. 색다르면서 맛있어 보이는 음식들도 식구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한 두 번 해보다 그만두는 경우도 다반사이지만 그럼에도 평소 우리 집에서 해 먹던 스타일대로가 아닌 새로운 방법을 살짝 가미해서 변형한 음식들의 반응이 좋을 때는 더없이 기분이 좋고 뿌듯해서 그 레시피대로 정착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책으로 읽게 되는 음식이야기들이야 말할 것도 없이 넘넘 궁금하고 그 맛이 어떨지 상상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솔직히 우리나라 음식이나 먹어본 음식이 아닌 경우에는 그 맛을 상상할래야 상상이 되지 않고, 그 음식이 이야기의 전개상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을 때는 특히 그 맛이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아마도 이런 궁금증은 외국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누구나 겪는 현상일 것이다.
음식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외국 음식의 메뉴판을 보면 정말 친절하게도 그 음식에 들어간 재료가 무엇인지 구구절절 친절하게 나열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소설 속에서도 뭐가 들어가고 그 재료는 어디에서 온 것이고 어떻게 조리가 되고 어떤 방식으로 숙성이 되고 등등 굳이 이런 거까지 다 써놔야 하나 싶은 것들까지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 부분들이 있다. 어이쿠야! 내가 그걸 읽는다고 해서 맛을 상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아는 재료라면야 음... 그럼 이런 맛이겠군 싶다가도 결정적으로 모르는 양념이나 향신료가 나왔다간 다시 그 맛은 미궁으로 빠지기 일쑤이고 거기에 조리법마저 구구절절 세세히 설명하는 단계라면... 다시 머리를 부여잡고 "아유 머리 아파 이게 대체 뭐람!"을 외치며 관심도는 나락으로 쳐박히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러한 설명을 곁들였을 때 내가 아는 요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너무 간단하지만 맛있게 굽기가 의외로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 스테이크. 지난주 코스** 갔을 때 스테이크용 고기가 넘 좋아보여서 대량 구매하게 되었다. 고기 상태가 너무 좋아서 소분하여 냉동시키기가 너무 아까운 거다. 그래서 주말에 식구들이 모두 모였을 때 구워 먹었다. 날이 좋을 때는 밖에서 숯불을 피워 구워 먹으면 다른 양념이나 가니쉬가 거의 필요가 없고 기름장만으로도 그야말로 금상첨화지만 지금은 추워서 불 피우기 엄두가 안나 따뜻한 실내에서 구워 먹기로 했다. 별거 아니지만 그날의 레시피를 적어보자.
"먹기 한 시간 전에 스테이크용 소고기(미국산)를 꺼내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와 블랙페퍼를 뿌려 시즈닝해두었다가 팬을 센불로 달군 후 스테이크를 앞뒤로 돌려가며 구워준다. 이때 염도가 낮아 스테이크용 소금으로 좋다는 잘츠부르크 소금을 뿌려준다. 스테이크에서 나온 기름을 이용하여 가니쉬를 구워준다. 가니쉬용으로는 아스파라거스, 마늘, 양파, 브라운송이 등을 준비했다. 중불에서 구워 접시에 세팅하고 파슬리 가루를 뿌려준다. 소금장을 내도 좋고 쥬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믹을 종지에 담아내도 좋다."
그야말로 식구들이 순식간에 흡입을 했다는 건 말하나 마나!
여기서 잠깐... 내가 만약 이 잘츠부르크 소금과 주세페 주스티 모데나 5 메달 20 년 산 발사막의 맛을 모른다면.... 그러면 어땠을까. 난 어떤 생각을 할까. 소금이 다 그렇지... 혹은 발사믹이 거기서 거기 아닌가 하면서 상상이 안되니 답답하지만 두루뭉실 그냥 넘어가겠지. 사실 잘추부르크 소금은 내가 생각하기에 염도만 살짝 다를 뿐 일반 소금과 별 차이를 모르겠고 발사믹은 분명 맛이 천차만별이란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레시피를 읽었다면 그 맛이 더 와닿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입니다! 난 이렇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이 된 음식 이야기를 문장으로 읽을 때면 내가 그 맛을 모르고 상상할 수 없어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 더없이 마음이 따스해지면서 깊이 빠져드는 나 자신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자세히 설명된 레시피나 메뉴판을 대할 때면 그 음식에서 정성과 사랑, 따뜻함, 배려가 느껴진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다. 스테이크야 어떻게 구워도 맛있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그 음식을 조리한 사람의 정성과 사랑, 배려, 따뜻함을 함께 먹는 거란 생각이 들어서 더없이 그 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오 헨리의 단편집 『식탁 위의 봄날』에는 음식과 관련한 18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익히 알고 있는 「마녀의 빵」,「크리스마스 선물」,「마지막 잎새」,「경찰과 찬송가」 등은 우리에게 이미 친숙하다. 이 단편집은 오 헨리의 수많은 단편들 중에서 음식과 관련한 단편들을 가려내어 묶었다는데 특별함이 있다. 그의 단편의 주인공들은 대도시의 냉혹하고 무정한 뒷골목에서 가혹한 하층민으로서의 삶을 견디며 살아가지만 작가의 눈에는 따뜻함이 머물러 있다. 가난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머무는 기적과도 같은 한 순간을 그들에게 선물함으로써 사람들은 온기와 희망을 얻는다. 그래서 이 단편집을 읽으면서 잠시 마음이 쉬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애정을 담아 집필했기에 더 음식이 소중했는지도 모른다. 정성을 다한 음식을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친밀감을 느끼고 온기를 나누는 것이야말로 더없이 소중한 일상의 풍경이 아니겠는가!
「하그레이브스의 연기」에서 미국 남부 스타일의 줄렙(위스키에 설탕, 박하 등을 넣은 청량음료)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을 다해 만들어 대접하는 모습, 「녹색의 문」에서 며칠 간 굶어 쓰러지기까지 한 처음 만난 아가씨를 위해 한달음에 달려나가 두 팔 가득 음식을 구해 온 젊은이, 추수감사절을 맞아 굶주리고 있는 신사를 위해 식당에 자리를 마련하고 배불리 먹이려는 마음을 담은 「추수 감사절의 두 신사 」,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는 복숭아를 구하기 위해 봄날의 늦은 밤거리를 헤매는 권투선수의 이야기를 담은 「힘들게 얻은 과일의 작은 흠집」등을 읽노라면 재치있는 그 입담과 따스한 배려의 마음이 저절로 전해져 옴을 느끼게 된다.
이 단편집에서 가장 길다고 할 수 있는 「식탁 위의 큐피드」는 그야말로 음식 자체가 작품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식탁에서 먹고 또 먹고 끊임없이 먹어대는 남성들의 모습을 "두 발 달린 되새김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며 두 청년의 구애를 거절하던 메임 양이 어느 날 언니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제프의 마차를 얻어타고 같이 길을 가게 되었는데 길을 잃은데다 갑작스런 폭우에 외딴 오두막에 피신을 하게 되고 물이 빠지지 않아 며칠 간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배가 너무 고파진 그녀와 제프는 맛있는 음식을 상상하며 줄줄이 음식들을 나열하는데 그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거 아닌가. 두껍게 썬 고기는 레어로, 프렌치프라이랑 계란 여섯 개를 부드럽게 휘저은 스크램블드 에그를 토스트 위에 얹고, 생맥주 한 잔,미디엄으로 구운 스테이크와 줄리엔(잘게 썬 야채를 넣은 묽은 수프) 세 개, 팬케이크는 노릇하게, 쌀을 곁들인 작은 카레 양념 닭구이, 아이스크림이랑 커스터드 한 컵, 닭간 파이랑 토스트에 바른 콩팥 소테, 양 구이, 박하 소스랑 칠면조 샐러드, 속을 채운 올리브, 산딸기 타르트랑 옥수수 빵, 하드 소스 뿌린 사과 파이에 듀베리 파이... 이 얼마나 즐거운 대화인지... 그들이 먹고 싶은 음식 이야기는 끝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그녀는 남자들에 대한 편견을 떨쳐버린다.
익히 아는 단편이지만 「크리스마스 선물」의 두 연인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들의 대단히 자랑스러운 재산을 기꺼이 팔아버린다. 아내 '델라'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 남편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금시계의 줄을 장만한다. 남편 '짐'은 금시계를 팔아 아내의 아름다운 머리를 더욱 윤기나게 빗어내릴 수 있는 빗 세트를 선물한다. 서로의 선물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심정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저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한다.
" ....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은 아무도 셀 수 없을 거예요. 고기 넣을까요. 짐?"
"델라, 우리 크리스마스 선물은 잠시 치워두도록 합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좋은 것들이라서요. 당신 빗을 살 돈을 마련하느라 시계를 팔았어요. 이제 고기를 넣어도 되겠군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오 헨리는 대중적인 인기에 비해 평단의 평가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단편들의 전개가 지나치게 우연이 남발되고 있고 비극보다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식탁 위의 봄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등은 모두 주인공들의 만남이 예기치 못한 우연에 의한 경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을 하고 있고 이러한 플롯은 '오 헨리 트위스트'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고 할 정도로 억지스러운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오 헨리의 작품을 읽는 재미를 떨어뜨리지는 못하는 거 같다. 사실 정말 짧은 단편인데도 그 속에서 주인공들의 삶을 응원하고 있고 제발 원하는 그 사람을 빨리 만나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내 마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렴 어때! 세라가 그토록 기다리는 월터를 어떻게든 만나기를 바라게 되고(식탁 위의 봄날), 도시에서의 외롭고 힘든 삶에 지쳐 브로드웨이의 여름 휴양지에 있는 아르카디아로 찾아온 두 젊은이 메이미와 지미 맥매너스가 꼭 이루어지길 바라게 되고(아르카디아의 단기 투숙객들), 결정적으로 어린 딸 '애글레이아'를 잃어버리고 회한에 젖어 있던 방앗간 주인 에이브럼 신부가 체스터 양을 만났을 때 제발 그 체스터 양이 '애글레이아 양'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되는 것은 정말 나도 어쩌지 못한다(물레방아가 있는 교회).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흘러가게 된다. 그래서 두 부녀의 극적인 재회가 정말 억지스럽고 신파도 이런 신파가 없다 싶지만 그럼에도 감격스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음식 이야기이건 아니건 오 헨리의 단편들에는 역시 따뜻함이 느껴지고 뭔가 앞으로는 잘 될거라는 낙관적인 믿음을 갖게 되고 결국 사랑스러운 주인공들에 감동하게 된다. 가끔은 이렇게 무조건적으로 행복한 결말이나 신파조의 이야기를 읽는 것도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달까... 마음이 우울할 땐 오 헨리의 단편을 읽으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오 헨리의 단편들처럼 우리 현실도 이렇게 따뜻하고 낙관적인 믿음으로 가득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탄핵안이 가결되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우리들의 삶은 어떻게 좀 나아지려는지 도통 낙관할 수가 없으니 가슴이 답답하다. 현실은 동화가 아니다. ㅈㅁ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