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자매> 록산 판이페런
바로대출로 받아온 책이다. 반납일 톡이 왔다.
하루밖에 안남아서 부랴부랴 1주일 반납연기!

1. 니우마르크트의 난투극
1912년 암스테르담, 니우마르크트의 난투극이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다면 아마 브릴레스레이퍼르 가家는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오래된 도시 성문 끝자락에 자리한 유대인 지구 중심 광장, 앳된 청년 요세프 브릴레스레이퍼르가 피트에 헤릿서를 쟁취하기 위해 일생일대의 격전을 치렀다. - P15

두 사람의 집안은 물과 불만큼이나 달랐다. 요세프는 이디시어Yiddish (중앙 및 동부 유럽에서 쓰이던 유대인 언어-옮긴이)를 쓰는 서커스 악단의 후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청과 도매상을 하며 요덴브레이 거리에 정착했다. 브릴레스레이퍼르 가는 금요일 저녁마다 빼놓지않고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열었고 다 함께 연극과 노래를 하며 왁자지껄 어울렸다. - P15

반면 피트에 헤릿서는 프리지아계 언어 Frisian (유럽 북서부 지방의 전통 언어로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와 유사-옮긴이)를 쓰는 유대인이었다. 큰 키에 무뚝뚝한 성격, 적갈색 머리가 특징인 헤릿서 부부는 부두 노동자들과 뱃사람, 매춘부로 득시글한 홍등가 무법지대에 살며 여섯 자녀를 엄격한 규율로 키워냈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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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쓸모> 9. 전쟁과 원예~ 10. 인생의 마지막 계절
˝50대에 생산적인 삶의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80대에도 잘 살아갈 확률이 세 배였다˝는 놀라운 사실, 그리고 경제적 요소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는데서 희망을 가져본다.
이 문장대로라면 난 80대에도 잘 살아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내면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이런 점에서 원예의 육체성이 중요하다. 원예라는 육체 활동은 손톱 밑이 더러워지고, 우리를 흙 속에 심고, 장소와 인생 과정에 새로이 유대감을 쌓는일이다. ‘복숭아 온실, 포도원, 야자 온실, 토마토와 오이 온실, 과일창고‘가 있던 새리즈버리 코트에서 보낸 시절은 테드의 인생을 바꾸었다. 테드는 식물 키우는 일과 땅을 돌보는 일을 사랑하게 되었다. 정원을 만드는 것은 흔히 재창조 과정, 우리에게 각인되고 영감을 준 다른 장소를 회복하려는 시도다.  - P230

노화와 삶의 질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중에 가장 규모가 컸던 하버드 그랜트 연구‘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을 대상으로 몇십 년 동안이어졌다.
이 연구에서 "50대에 생산적인 삶의 방법을 발전시킨 사람들은 80대에도 잘 살아갈 확률이 세 배였다"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경제적 요소가 중요하리라 예상했던 연구자들을 
놀라게 한 결과였고,경제와 의미 있는 삶의 
상관관계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 P242

마찬가지로 놀라운 발견은 육체적 건강 자체는  사람들이 노년의 변화와 상실에 대처하는 방식과 특별한 관계가 없다는 결과였다. 핵심적인 요소는 사람들의 정서적 삶과 그들이 참여하는 활동의 종류였다. 외로움, 불행한 관계, 목적의식 부재는 고령자의 삶의 질을 낮추는 가장 큰 요소로 보였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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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플래너리 오코너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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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그게 벌써 며칠 전이다. 임시저장 한 상태로 진행을 못하고 계속 대기...)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집을 다 읽고 미뤄두었던 집안을 청소하고 썬룸에서 다 마른 빨래를 개어 차곡차곡 주인별로 쌓아 놓고 날이 좀 선선해졌길래 마당에 나가서 잡초를 좀 뽑았다. 잡초를 뽑을 생각은 아니었고 정말 정말 오래 읽고 있었던 현대문학의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을 끝내고 나니 기분이 너무 상쾌하고 뿌듯해지기도 했고, 뭔가 나를 힘들게 하던 숙제 하나를 마친 듯 개운해져서 집안일 대충 정리해놓고 마당에 어슬렁어슬렁 나가본 거였다. 마침 커피도 한 잔 내린 데다가 썬룸에서 내다보니 마당에 보라색 붓꽃이 제대로 난리가 났다. 그래서 커피 들고 어슬렁어슬렁 나가 붓꽃 앞에 쪼그리고 앉아 쳐다보다 그 옆에 무리지어 피어있는, 막 꽃을 피우고 있는 플록스도 보고 이름은 별로지만 유럽이 원산지라는, 꽃분홍색으로 무리지어 피는 끈끈이대나물도 이쁘다 이쁘다 하며 바라보다 쪼그려 앉은 김에 잡초를 뽑게 되었다. 이 잡초 뽑기라는 것이 쭈그려 앉기라는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한 번 시작하면 1 시간 지나는 건 후딱이다. 하다보면 묘하게 투지를 불사르게 만드는 특장점이 있는 일이라 내 오늘은 기어코 너희들을 다 뽑아버리고 말리라는 하등 쓸모없는 노력을 경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잡초는 이길 수가 없다!!! 잡초와의 싸움은 언제나 백전백패... 만고의 진리다~~~^^ 그나마 지금이니까 이런 생각을 하지 비가 잦은 6월이 오면 날도 뜨거운데다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빈틈없이 싸매고 임해도 등짝이 너무나 뜨겁고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그야말로 미친 짓이 된다. 비 한 번 오고 돌아서면 감당 못할 정도로 퍼져서 나중엔 그냥 잔디 깎는 기계로 같이 밀어버리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이 맥락없이 아무때고 시작하게 되는 잡초뽑기 루틴은 당분간 지속이 될 것이다. 별다른 '충동적인 발상'으로 다른 일을 만들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 이리 나의 일상을 장황하게 묘사하는 건 물론 <플래너리 오코너>의, 건조하고 내내 긴장감을 유발하며 섬뜩함이 오히려 빛을 발하는 단편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평온한 일상의 달콤함이라니... 얼마나 좋은지 ... 그러나 이 단편집 속에 일상을 찢어버리는 섬뜩함이 가득하다.  





현대문학에서 출간하고 있는 세계문학단편선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이름이 곧 책의 제목이 된다는 점도 신선하다. 물론 별로인 작가도 있지만 그럼에도 이 시리즈를 많이 읽고 싶다는 욕구는 늘상 가지고 있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단편집을 읽고 좋아서 다시 이 책을 선택을 하게 된 것인지 아님 이 책을 먼저 다운 받아 놓고 읽다 질려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책을 구입한 건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책을 구매한 게 자그마치 2015년 4월이었다고 구매 내역에 있으니 구입한 지 9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읽게 된 것이다. 그 동안 내내 방치해 놓았다가 요 근래 현대 문학 세계문학 단편선이 자꾸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 오길래 갑자기 발동이 걸려 읽어보자 싶었는데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의 알 수 없는 끌림에 이 책을 선택한 나를 아주 칭찬하고 싶어진다. 플래너리 오코너는 25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루푸스(홍반성 낭창)가 발병하고 오랜 투병 기간을 거쳐 39 세에 생을 마감했다. 장편 소설 2권과 단편 소설 32 편, 그리고 여러 권의 평론집과 에세이를 남겼다(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 작품들은 특히 높은 평가를 받아서 사후 출간된 그녀의 단편집은 2009년에 전미 도서상을 수상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상의 60주년(2010년)을 앞두고 그동안의 소설 부문 수상작 중에서 최고의 작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인터넷 설문 조사를 실시했을 때 단편소설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최고 중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31 편의 단편을 읽고 나면 그녀의 단편 작품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막론하고 읽히고 있다는 것에 금세 수긍하게 된다. 이 작품들을 쓸 당시 작가의 나이를 생각하면 더 놀랍지 않을 수 없다. 





31 편의 단편들 중 몇 몇 작품(제라늄, 심판의 날...등은 뉴욕이다)을 제외하고 작품의 배경은 미국 남부 지방이다. 이 남부는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아직 흑백의 분리가 남아있고 북부에 비해 낙후한 지역이다. 산업의 기반은 농장을 경영하는, 당연히 백인이다. 그리고 흑인들은 여전히 노예와 같은 처지이며 가난한 이방인들과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궁핍한 생활에 처해있는 현실을 포착해 내어 보여준다(작물, 추방자, 파커의 등 등등 ). 종교적으로도 독실해서 주로 프로테스탄트 신앙이 삶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곳이며 기반을 잡지 못한 젊은이들은 종교적으로 빠져들고 곳곳에서 설교자들이 등장하여 사람들을 모으는 모습이다(감자 깎는 칼, 강, 죽은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등). 이렇게 혼란스러운 남부 지역으로서의 작품의 배경은 작가 자신이 남부 출신이고 외가와 친가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앙을 가졌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백인과 흑인은 여전히 남부의 농장에서 지주와 노예로 나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도시 지역에서는 흑인들의 지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한다(제라늄, 계시,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심판의 날 등). 또한 작가가 북부에서의 생활을 하던 5 년여의 시기는 대학 생활, 여러 작가들과의 교류를 하며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딛던 시기였는데 고작 25 살이라는 나이에 루푸스의 발병으로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농장에서 지내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간다. 젊은 여성으로서 발전한 북부에서의 생활의 경험은 작품에서 결코 긍정적으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젊은 사람들은 교육을 받으러 북부로 떠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공적인 삶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깊은 오한, 계시, 파트리지 축제). 남부 지방이 북부보다 낙후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궁핍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지만 남부와 북부의 상황이 대비된다기 보다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혼란상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추구하는 저런 문제 의식이나 주제들은 오늘날의 상황과는 다소 간의 차이와 거리가 분명 존재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드러나는 배경적 지식이나 주제의식보다는 다른 어떤 요소를 더 눈여겨보게 되고 끌리는 건 나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니 말이다. 그런 생각이란 바로 인물들이 자주 보여주는 어떤 말, 행동, 판단, 호기심, 선입견 같은 것들. 바로 한 순간의 충동적인 행동, 섣부른 판단, 혹은 과도한 호기심과 선입견 등등이 어떤 불행한 결과를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어땠을지, 그럼에도 그 순간의 선택과 충동적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것이다. 다시 돌아간대도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말이다. 여기의 인물들은 아마도 분명 다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을 거라고,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그건 너무 자명해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래서 자꾸 눈에 들어오고 거슬리고 그래서 긴장하게 되고 불행하거나 예기치 못한 결말에 이르러서는 그 가차없음에 가슴이 섬뜩해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완벽함을 여기에서 다시 실감하게 된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 '당신이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 '가정의 안락', '오르는 것은 한데 모인다' 등의 작품은 그 결말이 한편 섬뜩하고 무서워서 정말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좋은 사람은 드물다'의 초반은 캘리포니아로 여행을 떠나는 여느 가족과 별반 다르지 않게 소란스럽고 어수선하다. 이 정신없는 가족은 할머니와 아들 부부, 그리고 어린 세 명의 자녀들과 고양이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할머니는 "충동적으로", 그냥 말하면 안들어줄거 같아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 자신이 젊은 시절 방문한 적이 있는 대농장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아이들도 보채고 난리라 마음이 약해진 아들은 차를 돌려 샛길로 빠져 어머니가 말한 대농장의 저택을 찾아가는데, 어느 순간 할머니는 그 대농장이 사실은 조지아 주가 아니라 테네시 주에 있다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고, 놀라서 발로 여행 가방을 걷어차는 바람에 놀란 고양이가 운전하는 아들의 목으로 튀어오르고 차는 낮은 협곡 아래로 굴러 내리는 사고를 당한다. 가족들은 차 밖으로 튕겨져 나가버리지만 다행히 큰 부상을 당한 사람은 없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님 차라리 다쳐서 일어나기 힘든 상황이었으면 나았다고 해야 할지... 뒤에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그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지나가던 차를 보고 세웠는데... 아뿔싸! 차에서 내리는 세 남자가 모두 총을 들고 다가온다. 이때부터 긴장감이 극에 달한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 운전석에서 내린 남자는 신문에 난 "탈옥한 죄수 부적응자"가 아닌가. 극도로 위험한 인물임에 틀림없는데 하필... 뭐 그 뒤는 대충 말하지 않아도 알만하다. 총을 세 자루나 들고 내렸는데 그걸로 뭘 했겠는가!

그러니 차라리 사고가 났을 때 곧장 일어날 정도가 되지 않게 좀 더 다쳐서, 좀 더 누워있었다면 흉악한 놈들을 만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는거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럼 최소한 몰살은 면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 세상이 왜 이리 점점 더 험악해지는지... 외출하면서 빗장도 걸지 않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런 시절이 대체 언제였던 건지... 정말로 "좋은 사람은 참 드물다"는 말에... "왜 아니겠어요!" 하고 대답해 주고 싶다. 




'당신이 지키는 것은 어쩌면 당신의 생명'에는 귀머거리 딸과 외롭고 황량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노부인이 등장한다(두 모녀의 이름도 똑같다. 루시넬 크레이터. 그러니 두 모녀는 사실 한 몸과 같다). 툇마루에 딸과 앉아 있을 때 딱 봐도 그냥 떠돌이이고 앙상한 몸에 왼팔이 절반뿐인 남자가 지나가다 노부인의 집 마당으로 들어온다. 남자는 좋은 사람일까. 아니다. 교활하고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되지도 않을 말장난과 논리로 노부인의 관심을 끌고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려 한다. 그의 관심은 노부인의 집 헛간에 있는 녹슨 자동차에 있다. 노부인의 필요를 간파한 그는 얼렁뚱땅 들어앉아 남자 없는 집의 살림살이를 고쳐주고 지붕도 얹어주고 뭐도 고쳐주고... 하면서 눌러앉는 듯 보인다. 일단 노부인의 관심을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아직 자동차는 고치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노부인의 관심은 그가 귀머거리 딸의 남편으로 그들의 집에 눌러살 수 있는 것인가에 있다. 이게 정말 가당치도 않은 일이란 걸 읽다 보면 다 알겠는데 노부인과 귀머거리 딸만 모른다. 노부인은 딸의 앞날을 생각하여 이 집에 눌러앉아 살아줄 남자가 절실하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 없이 그들에게 떨어진 사람이 이 떠돌이 청년이다. 그래서 이미 파국이 예정되어 있다. 드디어 자동차를 고쳐 초라한 외팔이 청년에서 남자로서의 권위를 회복하고 의기양양해진 떠돌이 청년은 결혼을 받아들이고 어찌저찌 돈을 받아내어 귀머거리 아내를 태우고 신혼여행이란 것을 떠난다. 청년의 속내는 알지도 못하면서 어찌 귀하디 귀한 딸을 이리 쉽게 내어준단 말인가...!

"나는 자네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딸을 주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자네 행동거지가 제대로 된 것을 보았어." 이게 신혼여행을 떠나는 청년에게 노부인이 한 말이다. 딸과는 영원히 안녕이겠지. 왜냐하면 자기 이름도 사는 곳도 말할 줄 모르는 노부인의 소중한 딸 루시넬 크레이터는 집으로부터 160 킬로미터 정도를 떨어진 소도시의 식당에 버려지기 때문이다. 그의 목적은 모빌로 가기 위한 자동차를 얻는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참으로 끔찍한 결말이다.




할머니의 사소한 거짓말, 순간적인 충동이 일어나는 것은 여행 중에 있었으니 크게 잘못이랄 것도 없다. 평소라면 그랬다. 또 노부인의 선택은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굳이 따져보자면 애초에 집안에 들이지 말았어야 했겠지만... 길 가는 불쌍한 젊은이에게 약간의 은혜를 베푸는 것이 뭐 그리 큰 잘못일까. 그 젊은이가 선량한 사람이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그러나 소설 속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사소한 거짓말, 순간적인 충동의 결과가 너무도 참혹한 현실로 이어진다. 정말 그 가차없이 행해지는 악인들의 행동은 충동적이면서 계획적이고 일상적이어서 더 무섭다. 피할 방법이 없다. 그러니 그 순간 악인이 되지 못한 우리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저 평범한 일상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저 악인을 만나지 않기를, 의도적으로 더해진 악담에 분노하지 않기를, 순간적인 분노를 잘 다스리기를, 끝까지 선행을 베풀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 이렇게 기도해야 하는 것일까. 플래너리 오코너는 이에 대해서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적나라하게 파헤쳐 최악을 보여줄 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 그래서 더 간절히 바라게 될 뿐이다.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기를. 평온한 일상에 감사하기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실망하지 않기를, 그래서 지금 더 행복해지기를.... 더 감사하게 되는 오늘이다. 이것이 작가가 나에게 주는 메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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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2024-05-22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청난 에너지로 서평 오려주셔서 감사히 읽었습니다. 너무 공감가는 ‘잡초와의 싸움‘, 산 지 9년만에 꺼내 읽은 책의 39살에 죽은 작가 이야기, 섣부른 판단과 충동, 호기심으로 불행한 결말에 이르는 인물들에 대한 단상 그리고 이어지는 작품 설명 모두 즐겁게 읽었습니다. ~^^

은하수 2024-05-22 14:07   좋아요 1 | URL
즐겁게 읽으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이런 단편집 리뷰가 사실 제일 어렵더라구요. 하하..
오늘 하루도 무사함에 감사하는 맘입니다.
마루☆님께서도 평온한 하루이셨길 바랍니다^^
 
이아생트의 정원 문지 스펙트럼
앙리 보스코 지음, 정영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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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상징과 은유, 그리고 몽상과 마법의 정원을 깨고 사랑의 기적을 완성한 이아생트와 콩스탕탱의 마지막이 뇌리에 각인될 작품. 결국 이아생트의 정원은 지금 우리에게 충만한, 봄을 맞이한 온 세상, ˝온 누리의 정원 혹은 이 대지임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두 젊은이도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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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생트의 정원> 뱀과 별
‘반바지 입은 나귀‘가 계속 등장한다. 주인도 없이 혼자 어딘가를 향해 간다. 궁금하다.
작가의 전작인 <반바지 당나귀>를 읽어야 하나...

갑자기 나타난 이 순수하고 우아한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이아생트와 관련이 있을테지..!





...그 연기는 금단의 지역에서 올라왔기 때문인데, 그곳에는 나이 든 마법사, 섬에서흘러왔다는 과객이 산다. 그는 무슨 주문을 건 건지 나무들과 과일들을 키워냈다. 그 주문은 짐승들까지 홀렸고 물도불도 바람마저도 복종했다. 그는 혼자서 구릉들을 지나 제갈 길 가는 마법의 당나귀를 한 마리 갖고 있었다. 한데 이당나귀는 가끔 활짝 핀 금작화를 가득, 아니면 아몬드 나뭇가지를 일요일 아침 성당 앞에 가져다 놓았다. 축일이면 본당 신부님은 이 꽃다발을 동정 성모님 제단에 올려놓았다.
비록 그 꽃이 마법사에게서 온 선물이라 할지라도. 정말이지 마을 사람들의 의견으로는, 주는 사람이 마법을 부린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겨울이면 괴상하게 의장을 갖춘 나귀, 즉 반바지 입은 나귀가 모는 사람도 없이, 사려깊은 기색으로 이 고장 들판을 혼자서 밟아갈 수 있었으랴. - P286

사람이 기억하는 한, 이토록 지혜로운 나귀는 없었던거다. 나귀의 주인에 대해선 그가 혼자 산중에 살고, 마을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는다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었다. 늙었다고들 했다. 아침과 저녁이면 바람에 저 푸르스름한 연기를 실어 보냈지만, 마을 사람 그 누구도 실제 저위에 올라가서 무슨 나무로 불을 피운 건지 알아볼 염을 내지 않았다. 오직 신부님만이 거기 한번 올라갔으나 방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았다. - P287

우리는 이렇듯 평화롭게 일주일을 지냈다. 손님은 얌전하고 눈에 띄지 않았다. 거의 마주치지도 않았다. 일찍 나가서 늦게 들어왔고, 가끔은 식사에 응하면서 말수는 적었다. 무엇보다 단순하고 다정했으나 속내를 쉬 꺼내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아르뷔스틴과 낡은 별채를 좋아했다. 나는 그를 거기 홀로 기거하게 내버려 두었다. 이런 적당한 거리감을 그는 기꺼워했다. 시도니가 그의 거처를 청소해주었으나,
우리끼리 그에 대해선 일상 용건 외에는 거의 말을 나누지 않았다. 아침이면 그의 가벼운 발걸음이 들렸다. 아이 발걸음 같았다. 그는 숲으로 가곤 했다.  - P379

그와 함께 있을 때는 그를 정색하고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리를 뜨면 그의 모습을 잘 되짚어볼 수 있었다. 그의 순수함은 놀라웠다. 맹하니 순진하거나 무지하게나 억지 부리는 순수가 아니었다. 그는 기민한 감각과 정확한 눈썰미와 풍부한 기억의 소유자였고, 잠시 그 시선에 어떤 불길이 이는 때도 있었다. 그래도 막 유년에서 벗어난 모습이었다. 어떤 점에서 그가 이토록 부드러웠던 건지, 집어내 말할 수는 없었다. 반듯한 윤곽이 가끔 굳어지면서 넓은어깨에서는 청년의 기상이 느껴졌다. 그러나 머리에서부터발끝에 이르기까지 수줍은 우아함이 맴돌고 있었다. 이 우아함이 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 P380

나는 그가 일어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정말이지 그러지 못했다. 그는 크게 애를 쓰다가 압도된 듯 다시 주저앉았다. 그러면서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마치 자기 자신에게 말을 하듯이, 나보다 더 부드럽게 내처 불렀다.
"이아생트......"
이아생트가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는 몸을 일으킬 수 있었고, 나를 향해 떨리고 약간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 콩스탕탱 글로리오입니다."
그가 이아생트를 향해 걸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어렵사리단 한 걸음을 뗄 수 있었을 뿐이다.
이아생트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
있었다.
하지만 심연의 침잠된 고요를 뒤흔드는 생명력이 그녀의 두눈에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보았다. 내가 거기 있었다. -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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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5-21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로는....<반바지 당나귀>-<이아생트>-<이아생트 정원> 순으로 읽어야 좋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은하수 2024-05-21 13:40   좋아요 0 | URL
전 마지막부터....ㅎㅎ
<반바지 당나귀>로 돌아가긴 가야겠네요.
읽다보니 이 작품이 환상소설인가??? 싶어져서 약간 실망했는데
그래도 매력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