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들 세리프
캐슬린 제이미 지음, 장호연 옮김 / 빛소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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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제이미, 작가가 시선을 둔 곳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대상들이 아니다. 고래, 고래의 뼈, 가넷, 줄노랑얼룩가지나방, 쇠바다제비, 그리고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뜻밖의 시공간 무인도 군도들... 작가만의 개성적인 언어와 감성, 통찰이 돋보이는, 아름답게 변주된 멋진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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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 2024-05-15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았습니다. 글이 데려다 주는 곳, 감성, 온유한 필체까지도 특히 좋더라구요. 은하수님 리뷰로 만나니 반갑네요.

은하수 2024-05-15 22:30   좋아요 1 | URL
양장본으로 재출간이 되었나봐요. 작가의 시선, 생각, 문체 넘 좋아서 저도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어요~~^^
 

로나에 대하여
이제 다시 범고래와 만났다. 고래와의 만남은 매번 놀랍다.


로나에 대하여
날이 이미 밝은 어느 아침, 내가 대야에서 머리를 감고 있을 때스튜어트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아침 일찍 북쪽 사면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언덕 꼭대기에서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가리켰다. 바람의 방향이 밤사이에 살짝 바뀌었고, 바다는 하얀 파도가 살짝이는 차분한 모습이었다.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이던 순간-나는수건을 꽉 움켜쥐었다가넷 한 무리, 열에서 열두 마리가 섬으로부터 반 마일 떨어진 곳에서 빠르게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새들의 날개는 햇빛을 받아 파파라치의 카메라불빛처럼 느리고 하얗게 깜빡거렸다. 그것이 내가 처음 목격한 모습이었다. 가넷은 흐느적거리고 축 처져서 독특한 방식으로 날았다.
그리고 평소와 같은 화살 대형이 아니라 물 위에 낮게 무리지어 있었다. - P223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폴 소사텀Poll Thothatom 이라고 하는 좁은 만의 절벽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온 곳이었다. 급경사였지만 목이 부러질 걱정 없이 물가로 뛰어들 수 있는 순한 비탈이 하나 있었다. 이제 만의 입구에서 바다가 뒤로 넓게 펼쳐진 가운데 다섯 개의 까만 지느러미가 수면을 갈랐다.
범고래였다. 지느러미가 햇빛에 반들거렸다. 
길고 똑바른 수컷의 지느러미가 하나, 나머지 넷은 길이가 더 짧고 구부러졌다. 가넷은 이미 꽁무니를 뺐다. 범고래가 천천히 서로를 돌고 있었다. 이따금씩 조용히 물을 뿜으면서 등 부위가 수면으로 올라와 고리 모양의 산호섬처럼 보이기도 했다. 전략을 짜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듯보였다. - P224

파도가 여전히 희미하게 바위를 쓸고 지나갔다. 물과 바위가 만나는 바로 그곳에서 네 마리 범고래가 일렬로 정렬해 있었다. 흥분한 상태였는데도 내가 그들을 바라보는 방식에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내 눈 앞에 정말로 커다란 네 마리 범고래가 있었다. 하지만 흑백의 얼룩덜룩한 제복에서 뭔가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눈 뒤에 있는 흰색 부위였다. 저주의 눈길을 돌리는 거울이나 부적처럼 그 부위가 쳐다보는 시선을 왜곡하는 것 같았다. - P225

범고래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섬에 딱 붙어서 윤곽선을 따라 돌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도 위에서 그들의 뒤를 쫓았다. 또다시나는 범고래를 뒤쫓아 절벽 꼭대기를 달리고 있었다. 또다시! 작년에 셰틀랜드에 갔을 때랑 똑같았다. 그때는 내 친구 팀이 옆에 있었다. 우리는 이보다 훨씬 높은 절벽을 따라 달렸다. - P225

우리는 범고래 네 마리가 섬 전체를 한 바퀴 돌려고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들이 시어풀의 가장자리를 돌아 섬의 서쪽으로 올라올 터이므로 우리 세 명은 그랑프리 대회의 관람객처럼 지름길을 택해 섬에서 가장 높은 언덕까지 질주한 다음 가파른 북쪽 사면으로 황급히 내달렸다. 그곳에 또 하나의 좁은 만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섬을 거의 두 쪽으로 쪼갤 정도로 무척이나 긴 만이었다. 그곳으로 가면 빠르게 내달리는 범고래를 다시 볼 수 있다. - P227

목구멍 위로 위산이 올라오고, 피 맛이 느껴지고, 잔디밭과 하늘이 번쩍하고, 가슴이 쿵쾅거렸다. 갑자기 내 몸뚱어리가 동물의몸임을 새삼 깨달았다. 근육과 신경으로 이루어진 존재. 범고래도다를 바 없었다. 위압적인 동물의 몸으로 얼룩덜룩한 흑백을 걸치고우리를 완전히 압도한다. 우리는 시간에 딱 맞게 도착했다. 범고래가 뾰족한 곳을 전속력으로 돌아 저 아래 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솜털오리eider duck 두 마리가 놀라 달아나는 가운데 범고래는 질주를멈추지 않았다. 또다시 그들이 물속에서 솟구칠 때 내가 똑바로 보았지만, 또다시 눈 뒤쪽의 흰색 부위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다. 흑백은 마술사의 옷이다. 관객을 미혹시키고, 손장난으로 물건을 사라지게 한다.
- P227

잠깐, 우리는 수컷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뒤에 혼자 남겨진 수컷 말이다. 아래에 있는 좁은 만을 내려다보았는데 그곳에 녀석이있었다. 절벽을 돌아 만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까만 등지느러미가물살을 가르는 모습이 마치 쟁반에 담아 균형을 잡으려는 듯 보였다. 헤엄칠 때 지느러미가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이번에는 우리 셋이 말없이 서 있었다. 뭔가 달랐다. 다른 종류의 긴장, 국부적이고 특별한 긴장이 흘렀다. 속도감 넘치고 활기찬 암컷 뒤에 온 이 녀석은 고독한 기운을 풍겼다. 암컷들이 자기들 할일을 하는 동안 예의상 뒤로 물러나 있었던 모양새였다.
그런 그가 이제 나섰다.
- P227

우리가 가져온 필수품에 와인이 많아서 그날 저녁 우리는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했다. 나는 첫 번째 녀석이 몸을 돌리고 옆구리로 바위의  풀들을 맛보는 듯했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제야 땅의 냄새를 맡은 것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고래목은 냄새를 맡지 못한다. 개와 달라서 냄새를 맡는 기관이 없다. 그들은 고작 20야드 떨어져 있었지만 우리와 다른 감각 세계에 살았다. 나는 인간의 잣대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 P230

피가 없었다. 우리는 피투성이 상황에 대비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바다표범은 진짜 습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들은 범고래가 자신들에게 보낸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을까? 주위에 바다표범이 많았는데, 범고래는 어떤 녀석도, 외로운 몽상가도 취하지 않았다. 한가하게 빈둥거리는 녀석을 그냥 무시하고. 지나갔다. 마술지팡이를 휘두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일이지? 그저 재고품을 확인하는 차원이었을까? 요란하게 몰려와 찬장의 문을 쾅 열고는 뭐가 있는지 알아본 것일까? 아니면 더 그럴듯한 추정으로 어쩌면 연습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두 어미가 자식들을 범고래의 방식으로 훈련시키는 광경을 본 것이다. 잘 보고 따라해. 
이렇게, 이렇게.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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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들> 캐슬린 제이미/ '가넷 서식지'를 읽으며 드는 생각들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인 캐슬린 제이미의 <시선들>을 읽고 있다. 지난 주부터 지금까지 내내 책이 안읽혀서 여태 끝내지를 못하고 있다. 이제 겨우 3분의 1 정도 읽었을 뿐인데 분명한 건 작가의 시선이 가 닿은 모든 것들, 그것을 글로 풀어내 흥미를 유지하게 만드는 방식도 모두 너무 좋다.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은 북극의 빙하 위 아름다운 오로라, 병리학 실험실, 외딴 섬 새들의 서식지, 그리고 신석기 시대의 유적 발굴지 등이다. 육아에 지치고 세상으로부터 혼자 떨어진 듯 외로워질 때면 시인은 주로 외딴 섬을 꿈꾸고 기다리면서 기어코 보러 떠난다. 보면서 갈망의 시간들을 채운다. 우리의 발걸음이 쉽게 닿지 않는 곳들을 찾아 자연과 교류하고 거기서부터 시인의 사유는 시작이 된다. 시인의 사유와 시선들의 끝에서 빚어지는 문장들은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만들고 공감하게 만들기도 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한 감정의 표출이 전달될 때면 나도 덩달아 동화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 책은 총 14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북극의 오로라를 찾아 떠나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1장 오로라', '2장 병리학'은 병리학실험실에서 환자들의 절개된 조직을 현미경으로 관찰하고 보다 면밀한 검사를 하고 암세포를 찾아낸다든지 전이 여부를 알아본다든지 혹은 갑자기 사망한 남편의 사망 원인을 도저히 알 수가 없어 부검을 의뢰한 아내의 죄를 사해주는 마지막 호의를 베푼다든지 하는 일들에 시선을 맞춘다. 그 생소한 경험의 과정을 글로 썼는데 솔직히 이러한 경험을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글로 읽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신기하고 새로운 경험이었다. '3장 들판의 여자'에서는 박물관으로 신석기 시대의 사발을 보러 갔다가 17 세 무렵 막 학교를 졸업하고 아직은 자신의 장래에 대하여 확신이 없던 어느 날, 들판의 고고학 발굴지에서 무한 반복으로 흙을 긁어내고 퍼 나르던, 그래서 5월의 어느 날인가에는 신기하게도 땅 속의 석관 안에 누워 있는 여자의 유골을 발견한다. 이로써 유적지 발굴은 끝이 났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나는 결국 부모님들이 권하던 비서학교에는 등록을 하지 않았다. 석관의 개봉은 내 마음 속에 깊은 여운을 남겼는데 가능성으로 충만해 있던 그 여름이 앞으로 시를 쓰며 살아갈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4장 가넷 서식지'에서는 BBC의 라디오 프로듀서이며 서로의 아이가 갓난 아이였을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 팀과 일 년에 한 번씩 새들을 보러 떠나는, 새들의 서식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적은 글이다. 둘의 대화는 버려진 밧줄을 물고기로 착각하고 삼키려 했던 불행한 '가넷(gannet, 대서양과 오세아니아 인근에 서식하는 바닷새)들'의 슬픈 날갯짓에 대하여, 거기에 더해져 새들의 생태를 위협하는 플라스틱 오물과 새들의 둥지에 엮여 들어있는 오렌지색, 파란색 나일론 끈 조각과 그물 조각들, 심지어 소포를 묶는 납작한 끈을 살짝 훔쳐가는 이웃 둥지의 가넷들 이야기로 확장된다. 그러한 가넷들을 보면서 그들도 "눈이 있는 생물인지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보는 것을 원한다"는 말이 "우리 인간들과 똑같다"는 것에 공감하게 된다. '가넷 서식지'에서 가장 실감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뜻하지 않은 순간에 마주하게 되는 기적과 같은 5마리 범고래와의 조우의 순간을 묘사해 놓은 장면들이었다. 한번의 호흡으로 적어 나간 것이 아니라 몇 문장의 텀을 두고 잠시 돌아나갔다 오는 것처럼 묘사를 해 놓았다. 마치 인기 드라마를 보다 결정적인 순간에 1분 광고를 보고 돌아오는 것처럼... 그 순간의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1분 이라는 시간이 넘어가선 절대 안되는 것처럼, 작가도 이러한 조우의 순간에 길게 뜸을 들이지는 않고 바로 그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돌아와 묘사를 이어간다. 잔뜩 긴장하며 읽다가 그 순간 나도 크게, 물론 마음 속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시드니 여행에서 잠시 잠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정말 잠시 잠깐 고래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서... 



  팀은 내가 소리를 지르자마자, 그를 툭툭 치며 호들갑스럽게 지느러미에 흥분하자마자 범고래를 알아보았다. 이제 세 개의 지느러미가 물 밖으로 보였다. 새까맣고 반들반들한 수컷의 지느러미, 사람 키 높이의 지느러미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느릿한 바다의 움직임을 타고 범고래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느러미에 이어 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며 바닷물을 널찍한 등 양쪽으로 쏟아냈다. 이어 범고래의 안쪽, 흰색과 검은색이 어우러진 안쪽이 보였다. 세 마리가 일치된 동작으로 몸을 젖히자 팀이 내 옆으로 오더니 소리쳤다. "두 마리가 더 있어, 바로 뒤에!" 정말 두 개의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수컷의 것보다 길이가 짧고 더 구부러진 형태였다. 뒤에 나온 두 마리는 뭔가 은밀하게 주고받는 분위기여서 혹시 어미와 새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래들은 차례차례 물을 뿜더니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고, 그 위로 물이 뒤덮였다.(99쪽)




작가의 섬세한 묘사들 속에, 이런 시선들 속에 죽어가는 지구의 환경을 생각하고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문장들을 볼 수 있었는데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조금씩 드러나는 작가의 그런 생각들에 한숨도 나지만 일견 재미있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문장들. 



  박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에 따르면 우리를 구원할 수도 있는 것은 기이한 습성이다. 우리가 이제 막 알아차리기 시작한 "인간 본성이 미래 세대에게 주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인간 본성은 여성의 본성을 말한다. 우리는 

'번식'하지 않는다. 여성들이 선택권과 건강과 번영의 척도를 갖게 되자 즉시 아이를 더 적게 낳거나 낳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윌슨은 이것을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선택"이라고 부른다. 그는 이어지는 세기에 여성들의 권한과 유아 의료 복지가 확대되면 인류의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다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인류가 지구에 요구하는 부담도 줄어들어 파국을 면하고, 우리 자신과 수많은 다른 종들을 미래로 이끌 수 있게 된다. 좋은 전망이다 일종의 절약이다. 한두 자녀만 건강한 성인으로 키우고, 여러분은 자유롭게 다시 바다를 바라보는 일로 돌아갈 수 있다.(104쪽)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지구의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에 대해서라면 나도 일정 부분 인정하고 찬성하는 사람이라 작가의 생각을 읽었을 때 그렇지, 그렇지 하면서 동조하게 된다. 파이어스톤과 같은 급진적 임신, 출산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한편으로 드는 다른 생각의 방향은 역시 나와는 너무 다른 먼 세계에 사는 작가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신석기 시대의 여인, 가넷과 범고래, 그리고 고래의 뼈들로 이루어진 고래 박물관이 있고, 그 글의 전개 방식과 내용을 읽다 보면 재미있지만 느껴지는 거리감은 작은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든 게 처음은 아니고... 문득 작년과 재작년에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읽었던 다른 책들이 생각이 나는데, 그러면서 난 왜 이런 글들이 재밌을까? 내가 느끼는 재미는 내가 가지게 된 거리감과는 또 별개의 감정이다.내가 절대 경험해 보지 못할 분야의 글이어서 그런 걸까??? 아님 너무 부러운 여행의 경험이어서 그런 걸지도...! 잔홍즈의 <여행과 독서>는 2017년에 읽었던 책인데 거기에 수록된 여행기가 사실 하나하나 너무 럭셔리해서 언젠가는 그 중 하나라도 따라해 보고 싶을 정도여서 긴 시간 마음 속에 저장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결코 그런 여행은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은 아니라는 것을. 오랜 시간 부러워했던 여행기였기 때문에 문득 떠올랐을 것이다. 




















난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아니. 동물 행동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었을까?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시선들>,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읽었을 때 나도 문득 이 사람들처럼 무언가 목적이 있는 여행, 학술적인 목적을 가진 여행에 대한 동경이 있었나 보다. 너무 멋져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여행과 독서>를 쓴 잔홍즈, 그리고 캐슬린 제이미처럼 여행을 하고 글로 써낸 이런 책들을 보면서 내가 평소 즐겨 읽는 소설과는 또 다른 재미, 차원이 다른 흥미를 느끼는 것은 내가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동경이나 아쉬움이 커서 그런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했다. 글 잘 쓰는 사람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니까 멋져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더 이어가지는 말자. 이 이상으로 발전하면 그들과 비교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 같은 내 자신에 대한 자괴감에 슬플지도 모르니까. 난 나대로 지금 행복하다고 되뇌어 본다. 오늘도 난 우리 집 현관 데크에 앉아 생각한다. 나는 결코 떠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떠나지 않아도 행복하다는 것을...

멀리멀리 떠난 사람은 떠난 거고 난 안 떠나도 우리 집 데크에 앉아 정원에 저 난초며 플록스며 작약들이 내일이면 활짝 필 텐데 뭔 비가 온다고 난리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런 책들은 찾아 읽을 수 있다~~!^^




오늘... 해외에서 살고 있는 하나 뿐인 내 동생이 연락을 해왔다. 6월 마지막 주에 한국 들어와서 6주 정도 있다 갈 건데 우리 집 근처에 있을만한 방을 구할 수 있는지 알아봐 주면 안되냐고. 중,고등학교 다니는 조카 두 녀석과 같이 온다는데 내가 이사하고 아직 우리 집도 안 와 본 상태인지라 우리 집에 초대하고 싶지만.. 그리고  재작년엔 우리 아들이 나가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오라고 했었는데 갑자기 아들이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바람에 방도 없고... 다락방에 재울 수도 없고... 아쉬움만 가득이다. 동네에 깨끗한 원룸이 있을지 아는 부동산 중개소 사장님께 전화 드려 놨다. 하나 뿐인 여동생이자 지금은 유일한 동생인데... 왜 속상하지... 다 해주고 싶은데... 적당한 방이 나오면 정말 좋겠다. 나 혼자 동생이 오면 하고 싶은 일, 보여주고 싶은 거, 같이 가고 싶은 곳, 맛있는 음식점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면서 하루 종일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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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들> 캐슬린 제이미/2장 병리학


"좀 더 볼래요? 감염에 관심 있다고 했죠? 당신을 위해서 감염된 샘플 두 개를 옆에 치워놓았어요."
"친절하시군요.‘
이번에 아래에 펼쳐진 풍경은 황홀한 사파이어 푸른빛이었다.
북쪽으로 면한 해안선이 보였고, 1마일가량 내륙 ㅡ이렇게 말할 수있다면 ㅡ으로 들어간 곳에 규칙적인 간격의 타원형들이 해안을 향해 있었다. 꼭 분화구나 스포츠 경기장처럼 보였다. 프랭크는 나름 차분하고 조리 있게 설명했다. 그가 ‘주상柱狀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그가 타원형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기둥들을 수평으로 잘라놓은 것으로 산 분비선이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위 내벽에 와 있었다. - P47

타원형 구조 사이에 골짜기들이 해안으로 난 것이 보였다. 프랭크는 이런 계곡에 있는 뭔가를 내게 보여주려고 했는데, 나는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 이 현미경에는 대상을 가리키는 커서가 없었으므로 여러 차례 끈질기게 시도해야 했다. 풍경과 언어가 어우러진대단히 인간적인 순간이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풍경속에서 안내하는 것 말이다. 내가 본 풍경은 참으로 황홀했다. 삼각주와 습지, 반도와 고리 모양의 산호섬. 그 안에는 있는 보이지 않는 풍경까지. 여러분은 우주의 비밀을, 인체와 지구의 신비로운 결합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다고 상상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감히 말하자면 그것은 우리의눈과 관계가 있다. - P47

사바나 초원을 살피도록 적응된 수렵 채집인의 눈으로 언덕 사면의 계곡들을 들여다본다. 아주 자그마한 것을 풍경처럼 보일 때까지 확대하면 이제 우리는 활동에 나설 수 있다.
"저기 있네요!" 프랭크가 말했다. "시골 풍경 같지 않나요? 풀을 뜯어 먹고 있어요!"
나도 보았다. 대단히 어둡고 확대했는데도 여전히 작은 타원형 점들 예닐곱 개가 푸른 계곡에 걸쳐  있었다. 까마득히 위에서 바라본 툰드라의 사향소 같았다. - P48

"이것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Helicobacter pylori 입니다. 박테리아죠. 위벽을 자극해서 위산을 과하게 분비하도록 만들어 위궤양의 원인이 됩니다. 지금은 이렇게 확실하지만 1984년에야 발견되었답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병리학자가 염증으로 부어오른 위장과 이 균사이의 관계를 알아냈어요. 그는 살짝 미치광이였어요. 그래서 아무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박테리아가 위궤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죠. 하지만...... 그는 또 다른 정신 나간 학자와 작업해서 함께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죠. 요점은 사람은 자신이 기대하는 것, 자신에게 익숙한 것을 보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가끔은 순진한 눈으로, 보다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할 필요가 있어요………."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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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 내내 번잡하고 고생스런 집안 일에 치이다 몸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인지 아침 먹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책 읽으려고 앉았다가 나도 모르는 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언제부터 잠이 든 건지 시간을 알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는데 중간에 외출했다 돌아온 남편도 들어와 보고 아들도 문 한 번 열어보더니 나가고 다시 한참이 지난 듯한 느낌에 일어나 보니 5시가 넘었더라는... 대체 낮잠을 몇 시간을 잔 건지 알 수가 없네. 

목요일 장시간의 운전이 너무 힘에 부쳤었나 보다. 어제도 하루 종일 바빠 몸이 쉴 틈이 없었다.

이젠 나의 몸을 맹신하면 안된다. 멍한 정신으로 책을 읽으려니 통 정신 집중이 안된다. 그래서 천천히 시 몇 편을 읽었다.



창비에서 벌서 500권에 이르는 시집을 펴냈다. 그 중 몇 권을 읽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은 작가들의 시집이 출간됐다니 놀랍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총 77명의 시인들이 창비시선 전 시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거나 즐겨 읽는 시편들을 추천해 주었고 이를 받아 중복되는 작품과 시인을 최소한으로 추려내고 최종 73 편의 작품이 이 한 권의 시집으로 엮었다. 시선집의 제목 '한 사람의 노래가 온 거리에 노래를'은 신경림 시인의 『농무』(창비시선 1)의 수록작 「그 여름」의 시구에서 따왔다고 한다. 시집은 총 4부로 구성이 되어있고 오늘은 며칠 전에 이어 제 1부와 2부의 시 몇 편을 읽었다. 시 한편을 읽었을 뿐인데 마치 단편 소설 한 작품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압축적인 시어의 힘 덕분일 것이다. 김언희 시인의 '4월의 키리에'와 전욱진 시인의 '미아리'를 읽고 특히 더 그랬다. 



4월의 키리에 


김언희



1

양가죽을 벗기듯이

벗기소서 우리의 가죽을


우리가 흘린 피 웅덩이 속에 우리를 오래 세워두소서

핏물이 눈알까지 차오르도록


갈고리에 우리 뒷덜미를 걸어두소서

흔들흔들 서서 잠들게 하소서


발끝으로 

서서

자게 하소서  


2

우리가 흘린 피로 우리의 내장을 채우소서

우리에게 먹이소서


우리에게 우리를 

먹이소서


우리가 낙태한 아기들이 우리에게 붉은 

태반을 먹이듯이


우리가 도살한 짐승들이 우리에게 

피순대를 먹이듯이


먹이소서 우리에게 우리를

한점 한점


끝까지

먹이소서



***



미아리


장욱진


언제부터 한쪽이 결린다던 누나는

얼마 안 가 해만 지면 몸져누웠다

이웃들도 의사들도 점집에나 보내보라 했지만

싫다고 싫다고 악을 썼는데

이번에는 내가 앓아눕자

누나는 조용히 내림굿을 받았다

누나가 늘 바라던 방이 그때 생겼다


차림이고 낯이고 전부 다 어두운

인간처의 낮에는 방울 소리 지나서

마음이 열리거나 닫히는 소리

닳도록 손 비비는 소리는 저녁상 치우면 들렸다

문득 잠에서 깨 오줌 누러 가는 한밤

초에 켠 불이 많아 아늑하게 깊숙하게

밝은 그 방으로 모르는 할머니가 들어갔고


일요일엔 모처럼 티셔츠를 입고 나와

누나는 시고 단 귤 먹고 싶다 했다

요앞 청과에 좀 다녀오라 어머니가 심부름을 시키시면

나는 싫다고 싫다고 버팅기다 내쫓기듯

집을 나와 내리막길 걸으면 푸른청과 보이고

오르막길 걸으면 끝에 영광교회 나와서

낑낑 오르는 신자들 매번 저기 마귀 동생 간다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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