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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ㅣ 페이지터너스
에마뉘엘 보브 지음, 최정은 옮김 / 빛소굴 / 2023년 8월
평점 :
제목으로만 보면 내 친구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건가 생각을 하게 되지만 아니 아니다.
전쟁에 나갔다가 팔을 다쳐 일을 못하고 상이군인 연금으로 겨우겨우 생활하는 외로운 청년 빅토르 바통은 진실한 친구를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번번이 어떤 이유로 인해 실패하거나 어긋난다. 그런데 또 이상한 건 정말 이 사람이 진정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는 게 맞나 의심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다는 거다. 좀 더 적극적으로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을 해야 친구를 사귈 수 있을텐데 다시 만나자고 하고선 다시 만나러 가지 않는다. 왜 그런 걸까.
맘 깊은 곳에 자신으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열등감이라도 있는 걸까 싶어 안쓰럽다가도 바통이 사람들을 만나면서 끊임없이 속으로 되풀이 하는 생각들이 정말 거의 망상에 가깝다 할 정도로 어이가 없어서 뭐야 이 사람.... 어이가 다 없네! 싶어지는 거다
거기다 지극히 소심하고 찌질해서 이 사람이 하는 행동들을 보고 있으면 속이 터진다. 되지도 않을 온갖 망상들도 어이없는데 소심, 찌질이니 정말 제대로 된 친구를 사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속된 말로 굴러들어 온 복(일자리)을 자기가 걷어차고 자기도 겨우 상이군인 연금으로 연명하는 처지에 쓸데없이 오지랖도 넓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돈과 시간을 나누고 음식도 나눠준다.
이런 삶인데도 죽고 싶지는 않다. 지금은 고독하고 친구를 찾아 거리를 헤매다니는 신세지만 언젠가는 행복한 삶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고 ... 그렇게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눈만 뜨면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니는 것도 좀 안쓰럽... 무슨 로드무비 찍는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갈망한다. 다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기회가 없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만 것이다.(97쪽)"
전쟁, 상이군인연금, 부상당한 팔... 이 세 가지의 모티프를 보면서 <우체국 아가씨>에서 만났던 페르디난트가 떠올랐다.
페르디난트도 전쟁에 참전했다 우여곡절 끝에 귀환한 상이군인, 부상당한 손가락 두 개, 하지만 그는 바통과 달리 상이군인 연금 수혜자는 되지 못했다.
너무 늦게 돌아왔기 때문에 상이군인 연금 신청을 할 수 없었고, 귀환 하기 전날에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전쟁에서 다친 것이라는 인정을 받지도 못했고 그래서 일자리도 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하루하루가 고달프다. 너무도 비슷한 처지의 이 두 청년 중에 과연 누가 더 나은 걸까. 상이군인 연금으로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하지만 너무 외로워 친구를 간절히 원하는 빅토르 바통과 부러진 손가락으로 인해 자신이 간절히 원하는 건축 디자인을 할 수도 없고 심지어 사무원으로는 어느 곳에도 취직을 할 수 없어 생계가 막막해 결국 사랑하는 여인 크리스티네와 함께 막다른 길에 다다른 페르디난트... 사실 페르디난트의 절절함에 나는 마음이 더 끌렸었다.
빅토르 바통의 찌질함과 소심함에 진짜 짜증이 나서 내 친구 하고 싶지는 않지만 결국 하숙집에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걸 보니까 얘도 또 만만치 않아...! 근데 자기가 이상하단 걸 자신도 안다. 거기다 가장 큰 문제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거!!! 아님 일자릴 구하려 노력했지만 계속 거절 당했겠지... 결국 페르디난트처럼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었을 거다. 결국 다시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 귀결되는 듯해서 또 씁쓸...
"가끔 하는 생각인데, 어쩌면 나는 머리가 좀 이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행복을 손에 넣으려 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모든 걸 망쳐버리고 만다."(163쪽)
"고독, 얼마나 아름답고 또 슬픈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고독은 더할 나위 없이 숭고하지만, 내 뜻과 상관없는 오랜 세월의 고독은 한없이 서글프다. 강한 사람은 고독해도 외로움은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약한 존재이다. 그래서 친구가 없으면 외롭다."(174~175쪽)
"나처럼 일을 하지 않는 인간,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은 언제나 미운 오리 새끼이다. 이곳은 노동자들이 사는 아파트이다. 그들과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나는, 그들에게 분명 바보로 보였을 것이다."(170쪽)
이 사람... 처지가 점점 손쓸 수 없이 나빠지고 있다. 눈을 크게 떠도 창문조차 보이지 않는 호텔 방 침대에 누워 살아있다는 감각, 심장 박동 소리가 계속되길 ...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이 심장 박동 소리가 언젠가 분명 허망할 정도로 간단히 멈춰 버릴 거라면서 몸 구석구석을 더듬는 모습...
다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속이 너덜너덜해 입을 때마다 손이 걸리는 코트를 입고 언제까지나 추운 거리를 헤매고 다닐 거 같아 ...
거 참, 마음 쓰이게 하는 묘한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