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질 이야기》 F. 스콧 피츠제럴드/빛소굴

지난 주 우리집 김장을 끝내고 엄마, 딸램네 배추, 동치미, 파김치 실어다주고 목요일엔 아랫집 어르신 댁 김장 도와 드리고 왔다. 이로써 올해 김장도 잘 마무리가 되었다.
김장 마무리 기념으로 남편과 강원도 양양으로 1박 2일 여행 가는 길~~
평창 지나 정선 진부령 지나는데 저 앞쪽 산으로부터 구름이 올라온다 싶더니 쨍한 하늘인데 약한 눈발이 날렸다. 지금은 대관령 터널 지나는 중인데 비가 내리는 건가? 분간이 안되게 강풍을 동반한 빗방울이 내린다.
산꼭대기 올랐으니 암것도 안오면 그게 이상한거지..ㅠㅠ
어... 또 금방 해가 났네~~^^
뭐야~~~ 이러면서 웃어 버렸다.

빛소굴에서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되었다.
1권은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집 《바질이야기 》, 2권은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이야기》이다. 단편집은 보통 하나의 단편이 표제작이자 단편집의 제목이 되는데 이번 《바질 이야기》는 그와 달리 사춘기 소년 바질 듀크 리의 모험과 달곰쌉쌀한 성장기를 그린 연작소설집이다.
언뜻 《위대한 개츠비》를 집필한 장편작가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작 피츠제럴드의 생계를 책임진 것은 160 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이었다고 한다.
달곰쌉쌀하다니 즐거운 여행길에 가볍게 읽어도 좋지않을까 싶어 가방에 넣어왔다.

다시 하늘이 쨍해졌는데 저 멀리 보이는 산과 바다 위엔 먹구름이 뚜렷이 자릴 잡고 있다. 오후에 강원도는 비소식이 있던데...

그런 파티

1
파티가 끝난 후 도도한 스티븐스 두리에이 한 대와 1909년형 맥스웰 두 대가 빅토리아 한 대와 함께 도롯가에 대기 중이었다.
사내아이들은 쾌활한 소녀들을 가득 실은 스티븐스가 부르릉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서너 명씩 짝지어 줄줄이 거리를 걸었다. 왁자지껄한 
무리도 있고, 말없이 생각에 잠긴 아이들도 있었다. 남들에게 뒤질세라 숨 가쁘게 주변 세상을 흡수하며 언제나 예기치 않은 일을 경험하는 열 살과 열한 살의 그들에게도 잊지 못할 오후였다.


- P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저벨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온 얼굴에, 겨드랑이에 땀이 쏟아지고 있었다. 넋이 나간 채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도티를 애처롭게 바라보면서, 이저벨은 재앙을 눈앞에서 목격한 느낌, 지진의 강한 충격으로 집이 폭삭 주저앉는 장면을 지켜보는 느낌에사로잡혔다.
하지만 그것은 지진도 아니었고 ‘신의 섭리‘도 아니었다. 아니. 이런 일로는 신을 탓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을 서로 저지르는 것은 인간, 그저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삶을 망가뜨렸다.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취했고, 애크미 타이어 회사에서 일한다는 앨시어라는 여자는 윌리 브라운을 원해 그를 차지했다. - P415

이저벨은 이 아이가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녀가 허리를 숙이고 담요를 끌어당겨 에이미의 팔과 목을 잘 덮어주려고 했을 때 그 생각이 마음을 스쳤다. 에이미는 이저벨과 분리되어 있다. 모두와 분리되어 있다. 등받이가 사다리같이 생긴 의자를 침대 가까이 끌어다놓고 앉아, 이저벨은 이 얼굴의 각기 다른 그림자와 형태를 뜯어보았다. 몇 년 사이 아이의 생김새는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 - P480

분리된 사람, 이저벨은 에이미의 뺨에 흩어진 머리카락들을 머뭇거리는 손길로 만지며 또다시 생각했다. 하물며 할머니가 쓰던 벨리크 자기 크리머도 물려받지 못할 아이. 이쯤에서 이저벨은 기대앉았고, 산산조각 난 크리머가 떠오르자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그 하얀 도자기는 이저벨에게 섬세하고 비현실적이고 다정한 어머니를 상징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그 최후가 에이버리 클라크가 그녀의 집에 오기로 한 약속을 잊어버린 사건과 동시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엄청난 슬픔을 안겨다주었고,
이저벨은 아직도 그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깜빡했어요. 이저벨." 그의 말은 그녀의 마음 언저리에 가혹한 흰색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있었다.
- P480

에이미가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오늘 아침 두번째로 잠에서 깼을 때 엄마에게 도티의 이야기를 들었고, 몽롱한 괴로움 속에서 최근에 가슴을 두들겨맞고 심장이 으스러지는 고통을 당한 사람이 자기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네 엄마는 정말 친절했어." 베브가 바닥에서 베개를 집어올리며 맞장구를 쳤다.
"아니요." 이저벨이 말했다. "실은 두 분이 저한테 정말 잘해주셨죠." - P507

그랬다. 조난당한 여자들이 있는 이 공간에는 어제도 오늘도친절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간직해야할 비밀은 남아 있었다. 에이미에게는 당연히 로버트슨 선생의어처구니없는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습니다."이저벨의 비밀은 에이버리 클라크를 에이버리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위치에서 무의미한 위치로 남몰래 쫓아내는 것이었다. 심지어 도티조차 자신의 슬픔을 베브에게 모조리 털어놓지는 않았다 - P507

하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계속 나아갈 뿐이다. 사람들은 계속 나아간다.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누군가 친절을 보이면 그것을 받아들여 최대한 깊숙이 스며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은 어둠의 골짜기는 혼자 간직하고 나아가며, 시간이 흐르면 그것도 언젠가 견딜 만해진다는 것을 안다. 도티, 베브, 이저벨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에이미는 어렸다. 무엇을 참을 수 있는지 혹은 참을 수 없는지 아직 몰랐고,
이 자리에 있는 세 엄마에게 어리둥절한 아이처럼 말없이 매달려 있었다. - P508

... 그 순간 이저벨 굿로는 담배 연기가 아직 자욱하게 남은 그녀의 조촐한 거실에서 에이미에게 제이크와 에벌린 커닝햄 이야기의 결말과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그들의 세 자녀에 대해 나직이 일러주고 있었고, 지금까지 에이미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은 자기 잘못이었다고 마무리했다.
에이미는 엄마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소파와 창문과 의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뒤따르는 긴 침묵 속에서 에이미의 눈동자는 거실 안을 두리번거리다가 또다시 이저벨에게로 옮겨갔다. 
"엄마." 마침내 소녀가 입을 뗐다. 이해했다는 듯 눈과 얼굴과 입이 커졌다. "엄마, 저도 저 바깥에 이어진 가족이 있었네요." - P515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과 보낸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듯 이날을 기억할 것이다. 이저벨의 은밀하고 깊숙한 기억 속에는 이날이 그녀가 에이미를 가진‘ 마지막날처럼 느껴질 테니까. 그녀의 기억 속에 나뭇잎들은 항상 금빛이고, 고속도로에는 아침 햇살로 샤워하고 가을 날씨로 빳빳해진 금빛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나무들이 늘어서 있을 것이다. - P537

다시 차에 올라탄 뒤 에이미와 이저벨은 서로 쳐다보았다. 에이미는 "좋아요. 이제 가요" 하고 말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눈썹을 치키고 숨을 짧게 들이마셨고, 두 사람 다 로켓을 타고 떠나기로 합의한 뒤 카운트다운을 기다리는 것처럼 잠시 하나가 
되었다. 
이저벨은 오랫동안 그 순간을 기억하며 딸에게 사랑한다고,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되는데, 고속도로에 다시 들어서자 지금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 영원히 떠나는 사람은 에이미뿐이며, 이저벨이 여기 있는 것은 로켓을 조종하여 이 아이를 이저벨의 품이 아닌 가족과 형제와 친척의 품에 데려다주기 위해서라는 느낌이 점점 강하게 밀려왔기때문이었다.

그들은 말없이 앞만 보고 달렸다.
그렇다. 이저벨은 함께 달리는 이 순간을, 노란 잎들을, 가을의 황금빛을 기억할 것이다.  - P53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이켜보면 이저벨이 눈치를 챘어야 할 단서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 당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을 일들의 장면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휙휙 스치자, 그 행복한 봄의 기억은 송두리째 악의적이고 교활한 것이 되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 기억들을 피할 안식처마저 없어 보였다. 이를테면 빨래를 할 때, 이저벨은 세탁기에서 딸의 속옷을 꺼내면서 새삼 궁금해진다.  - P270

이 브래지어를 그 혐오스러운 남자가 만졌을까? 지금 손에 든 이 분홍색 팬티들은? 그 남자가 껴안으면서 머리를 기댄 블라우스가 이거고, 이 단추에
그의 손가락이 닿았겠지? 그 혐오스러운 인간이 손댄 옷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아낼 방법만 있다면 이저벨은 당장에 그 옷들을 내다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알아낼 방법이 없었고, 그래서 옷이나 팬티는 오염된 채로 그녀의 집에 빨래 바구니에 서랍 속에 고스란히 남았다. 그녀의 집은 침범당했다. - P271

모든 것이 침범당했다. 사실이 그랬다. 그녀의 직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꼼짝없이 딸과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을 뿐 아니라ㅡ도티 브라운의 자리에 앉은 에이미의 존재를 한순간도 느끼지 않은 적이 없었다 ㅡ에이버리 클라크도 당황스러운지 그녀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으므로, 이제 이저벨에게는 달콤하고 은밀하게 자신의 것으로 여겨졌던 생활의 일부마저 사라져버렸다. - P271

적어도 그녀는 그의 입이 무거우리라는 것은 알았다. 그는 그런 남자였다. 그래서 그녀와 같이 일하고 지금 같이 점심을 먹는 이 여자들이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녀는 앉아서 복숭아를 야금거렸다. 하지만 뚱뚱이 베브가 <에이번> 지를 곁눈질하면서 "립스틱 두 개와 영양크림 하나. 이걸 계산하려면 펜이 필요해. 나는 수학에는 늘 젬병이었거든" 하고 말하자 이저벨의 점심은 끝나버렸다. 더는 먹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수학에는 젬병‘이라는 말 때문이었다.  - P271

‘수학‘이라는 한 단어로 이저벨은 배를 걷어차인 것 같았고, 그해 겨울밤 집에 돌아왔을 때 집이 텅 빈 것을 알고 딸이 데비 케이 돈처럼 유괴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듯이 집안을 뒤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제 그 딸이 그녀를 속여온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에이미가 말하지 않았던가. "몇몇 아이들은 수학을 잘해서 학교 끝나고 남아요." 그래서 한번은 이저벨이 "네 할아버지도 숫자를 잘 다루셨거든, 네가 할아버지를 닮았나보다" 하고멍청하게 지껄이지 않았던가?) 에이미가 그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자신을 속였다니!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이저벨은 정신이 멍했다. 그녀는 복숭아를 도시락 봉지에 넣고 통째로 버렸다. -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 여자답게 안하면 시집 못가‘ 따위와 같은 진부하고 닳고 닳은 꼬리를 달고서도 ‘처녀다움‘에 반기를 드는, 모순에 가득 찬 존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이다. 또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의 성과 생식을 따져 묻고 밝히는 가운데에서만 여자를 인간으로 보편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자의 투쟁은 자신의 볼품없는 모양새를 직시하며, 자신이 급진적이면서도 뭔가 얼빠진 짓도 한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나를 이렇게 만든 적을 압박하는 싸움이다. 말 그대로 엉망인 채로, 엉망진창인 채로 적을 압박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 P70

지적인 여자가 지적인 영역에서 위로를 받고서 약간의 나르시시즘 양념을 뿌려 자기 구미에 맞게 내놓은 기존 여성운동의 논리와 남자의 의식과 그논리구조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따르면서 여자임을 초월해 남자처럼 되자,
남자처럼 되어서 혁명하는 여자가 되자고 하는 운동의 논리는 같다. 지적인 동시에 육체적인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는 이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뻔한 논리를 자신의 살과 뼈를 통해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해야 한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렇게 여자답게 안하면 시집 못가‘ 따위와 같은 진부하고 닳고 닳은 꼬리를 달고서도 ‘처녀다움‘에 반기를 드는, 모순에 가득 찬 존재가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이다. 또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의 성과 생식을 따져 묻고 밝하는 가운데에서만 여자를 인간으로 보편화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여자의 투쟁은 자신의 볼품없는 모양새를 직시하며, 자신이 급진적이면서도 뭔가 얼빠진 짓도 한다는 것을 직시하면서 나를 이렇게 만든 적을 압박하는 싸움이다. 말 그대로 엉망인 채로, 엉망진창인 채로 적을 압박하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 - P70

지적인 여자가 지적인 영역에서 위로를 받고서 약간의 나르시시즘 양념을 뿌려 자기 구미에 맞게 내놓은 기존 여성운동의 논리와 남자의 의식과 그논리 구조에 공손히 무릎을 꿇고 따르면서 여자임을 초월해 남자처럼 되자,
남자처럼 되어서 혁명하는 여자가 되자고 하는 운동의 논리는 같다. 지적인 동시에 육체적인 ‘지금 여기에 있는 여자‘는 이렇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뻔한 논리를 자신의 살과 뼈를 통해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해야 한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