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비행사>, <그라이펜 호수>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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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람 느뵈

"자, 용기를 냅시다. 고통은 잠시뿐입니다. 
그 후에는 영원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물론입니다. 자, 용기를 냅시다."
계속 팔의 똑같은 부분을 붙잡혀 있다 보니, 마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게가 발을 물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 등골이 오싹했다.
"잠깐만요. 우선 이 팔 좀 놔주세요."
나는 죽기 싫었다. 게다가 만약 죽는다 하더라도 타인에게 끌려서 억지로 죽기는 싫었다. 자살이란 완벽하게 자유로워야 한다. 자살은 보통어 일반적인 죽음과는 다르니까. - P96

뜻밖에도 그는 내 말대로 순순히 팔을 놓아주었다.
마치 목을 졸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가 팔을 놓아주자 폐 속으로 시원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그가 몸을 웅크리더니 마디가 굵은 손가락 두 개로 강물의 온도를 쟀다.
"좀 차갑군."
그는 손가락을 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죠."
"아뇨. 지금 결말을 지어야 합니다." - P97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그 원인은 언제나 나의 고독에서 비롯되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 나는 언제나 그렇게 갈망한다. 다만 아는 사람이 없으니, 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리로 나가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기회가 없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결국 이런 꼴이 되고 만것이다. - P97

신사 라카즈

나는 이 남자에게 내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어쩌면 흥미를 가져줄지도 모른다. 지금 큰맘 먹고 이야기하지 않으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좀이 쑤셔 견딜 수가 없었다.
평소에 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견디고 있는지, 그런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절대 입도 뻥긋 못 할 것도 같았다. 특히 누군가에게 작정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잘 안되었다.
그 남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더구나 큰맘 먹고 말을걸어 볼라치면 그때마다 그는 주머니 속을 뒤지거나 어딘가에 시선을 고정하고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그것만으로도 내 용기를 꺾기에 충분했다. 이런 멋진 신사의 사색을 방해하거나 억지로 이쪽으로 관심을 돌릴 용기가 내겐 없었다. 정말로 말을 걸려면,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을 잘 포착해야만 한다. - P115

나는 라카즈 씨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부자여서만이 아니라 선의를 지닌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침대에서 상상했던 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있는 일이다. 

망상을 하지 않도록 늘 나 자신을 설득하지만, 나의 상상력은 전혀 말을 듣지 않는다.

라카즈 씨의 태도에는 나를 깔보는 경향도 있
었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잘 모르니까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 P130

블랑셰

만약 여기서 블랑셰의 친구와 맞닥뜨린다면, 
그녀는 어떻게 행동할까? 나를 두고 둘이 가버릴까? 갑자기 내가 통증으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그녀는 어떻게 할까?
만약 어딘가의 유리창을 깬다면? 만약 스커트가 찢어진다면? 행인과 부딪친다면……………. - P163

가끔 하는 생각인데, 어쩌면 나는 머리가 좀 이상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늘 행복을 손에 넣으려 하면서도,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엉뚱한 생각이 떠올라 모든 걸 망쳐 버리고 만다. - P163

에필로그

나는 7층 옥탑방에서 조용히 살아왔다. 노랫소
리나 웃음소리를 내지 않도록 늘 신경 썼다. 
왜냐하면 일을 하고 있지 않으니까.

나처럼 일을 하지 않는 인간, 일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은 언제나 미운 오리 새끼이다. 이곳은 노동자들이 사는 아파트이다. 그들과 한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서 일을 하지 않는 나는, 그들에게 분명 바보로 보였을 것이다. - P170

하지만 사실은 그들 모두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고기도, 영화도, 털스웨터도 단념한 사람이다.
 그런 나와 마주치면 그들은 자신들의 구속된 
생활을 자각해야만 했던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입장을 자랑할 생각 같은 건 추호도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롭게 사는 것도,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용납해주지 않는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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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들》 에마뉘엘 보브 × 최정은, 빛소굴

구입해놓은 지 한참 됐는데 이제서야 읽는다.
사놓고 한참 되고 보니 살 때의 설렘은 점차 줄어들고 책등만 봐도 그냥 지루해진다. 그래서 얼른 읽어보기로 했다.

에마뉘엘 보브가 1924년 발표한 이 작품의 주인공 빅토르 바통...
세계대전에 참전해 한쪽 손에 부상을 입어 일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상이군인 연금으로 겨우겨우 연명해 살아간다.
진정한 친구가 너무 그리운 이 친구,
친구를 만들고 싶은 열망이 너무 큰 그의 고독과 단절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외부와의 단절이 오히려 주인공 내면의 생각의 흐름을 디테일한 묘사로 파헤치고 있어 더욱 부각된다.

앙리 비야르
1
고독이 나를 짓누른다. 친구가 그립다. 진실한 친구가………….
이런 나의 탄식을 곁에서 들어줄 사람이라면 아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그 누구하고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거리를 헤매다 밤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손톱만큼밖에 안 되는 우정과 사랑이라도 얻을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을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 것이다.

진심으로 우정을 베풀어 주는 사람에게, 나는 한없이 친절해질 수 있다. 연금도 침대도 독차지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상대방을 거역하거나 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 P37

나의 희망은,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전부 들
어주는 것뿐이다. 강아지처럼 어디든 따라다닐 것이다. 그 사람이 농담하면 나는 항상 통쾌하게 웃어 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 사람을 슬프게 한다면, 나 역시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나는 한없이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 P38

그렇다. 비야르도 다른 인간들과 다르지 않았다. 앙리비야르, 내가 그와 만난 것은 약국 앞의 군중들 틈에서였다.
나는 길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불안에 떤다. 시체가 누워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지만 호기심과는 또 다른 어떤 욕구에 이끌려 군중사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된다. 언제나 정신을 차려보면, 내가 사람들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눈을 가릴 준비는 하고 있다. 주위에 있는 구경꾼들이 떠드는 소리는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 먼저 알고 싶기 때문이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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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천사>라는 이미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의 결정체로서 19세기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서 살아가야 했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집안의 천사>는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관장하는 사람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게 가정과 가족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사실일까요???) 오로지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편안한 휴식처로 만드는 데 힘쓸 뿐 전혀 사심이 없는 존재이며, 거기다 매우 순수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희생과 헌신의 화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상당 부분강요당한 이미지이지만.) 

3장에서는 <집안의 천사>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여성성 뿐만 아니라 이를 비판하는 문학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그동안 읽어왔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미문학 작품들의 배경을 한 번에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 그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는 책읽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장 재밌는 건 책에 대한 내용을 풀어주는 거다. <집안의 천사>라는 시詩가 연작시의 형태로 실제로 지어진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이상적인 여성상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관례적인 형태는 상냥하고 자기희생적이며 가정적 미덕의 화신인 <집안의 천사>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코번트리 팻모어Coventry Patmore가 지은 동명의 장편 이야기 시인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1854년에 출간되기 시작한 팻모어의 시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성에 대한 당대의 보편적인 개념들의 진수를 상당 부분 집약하고 재구성하였다.(P116)



1857~1859년의 인도항쟁은  그 이 전의 인도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정책에서 점차 위압적인 제국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음. 영국은 이 항쟁으로 제국주의 유지에 커다란 위기감을 느낌. 이 당시 문학 작품이나 신문의 기사에 나타난 수사적 표현을 살펴보면 국민들 사이에서 남성들에게 기사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에서 날뛰는 폭도들의 약탈 대상이며 피해를 입는 대상이 너무나 어이없게도 결국은 식민지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의 여성들과 아이들>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몹시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이었으며 제국죽의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진 재현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을 부각하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대의명분은 잔혹한 방법으로 인도인들을 핍박하는 강인하고 기사도적인 수호자로서의 위치를 점하는 남성성, 여기에 대비하여 <집안의 천사>로서 구체화되고 이상화된 여성성의 이미지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명분으로서 작용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인도 항쟁에 대한 영국인들의 두려움이 집단적 히스테리의 상태에 머물렀음을 반증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집안의 천사>를 거부하고 그를 죽이려 한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일화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성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잔영으로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울프는 기존의 남성적 기준과 기대치에 여성 작가로서의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천사>의 살해가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울프는 <내가 서평을 쓰고 있을 때 나와 내 원고지 사이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곤 했던 것이 바로 이 환영이었습니다. (...) 내 시간을 낭비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혔으므로 나는 마침네 그녀를 죽여 버렸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은 여성 작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였지요>라고 기술한다. 울프는 글을 쓰기 사작할 때마다 <그녀의 날개 그림자가 내 원고지 위에 드리워졌습니다. 나는 방에서 그녀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p121) 

그럼에도 여성이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울프는 천사와 맞섰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어떤 실체를 죽이는 것보다 유령을 죽이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일입니다.>...<만약 내가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나의 글에서 핵심을 빼앗아갔을 것입니다>(P122)라고 했을 정도였다.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또 반가운 마음~~^^

읽다 말았지만 이 책은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고 있다.

일레인 쇼월터의 책은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문학』만 검색이 된다.


"일레인 쇼월터Elaine Showalter의 『그들만의 문학A Literature of Their Own』이나 샌드라 길버트Sandra Gilbert와 수잔 구바Susan Gubar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The Madwoman in the Attic』와 같이 19세기를 재조명하려는 1970년대의 혁신적인 페미니즘 비평서들은 울프와 마찬가지로 <집안의 천사>가 당시 여성 작가들에게 장애물로 작용한 망령이었다는 의견들을 펼친다. 쇼월터는 <집안의 천사>에 대해 <완벽한 숙녀가 되어야 하는 여성으로서(...) 충실한 마음으로 남자들에게 복종하면서도, 내면의 순결함과 신앙심에서는 강직하며, 가정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관장하는 여왕>이라고 설명한다.(P123)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이미지와 <천사에 반대되는> 타락한 천사의 이미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은 『오들리 부인의 비밀Lady Audlley's Secret』에서 아름답고 상냥한 모습을 지닌 이상적인 금발 여인의 정체가 사실은 재산을 노리고 남자에게 접근한 교활한 여자였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묘사로 천사에 대한 이미지와 사회적 인식을 조롱하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가정적인 모습의 화신이자 순수함으로 이상화된 여성성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인 『오래된 골동품 상점The Old Curiosity Shop』의 리틀 넬Little Nell, 그리고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의 아그네스 윅필드Agnes Wickfield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언론의 인도항쟁에 대한 묘사가 허구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특히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칸푸르에서의 항쟁이 일어난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직접 목격하지 않은 어느 성직자의 기고문을 보면 그 기사의 황당함과 허구성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200여명의 영국 여성과 어린이들을 포로로 잡고 있던 문제의 인도 지도자가 영국군의 진주에 포로들을 살해하라 명하였고 강간, 굴욕, 사지 절단 등 가혹 행위를 일삼는다는 등의 생생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칸푸르와 비비가르의 학살 장소였던 여자 숙소는 영국 여성의 희생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집안의 천사>가 인도 항쟁의 상징적인 희생자가 되었으며, 희생 당한 여성의 정치적 가치는 <폭도들이 여성 포로들을 구세주처럼 십자가에 처형시켰다는 주장>과 같은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유럽인들의 상상력과 문학적 전통에서 유래한 묘사를 통해 공포감을 대대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아이들은 상자에 넣은 채 불에 태워지거나, 아버지의 인육을 먹도록 강요당했으며, 임산부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도려내졌고, 여자들은 사지를 절단당했다"는 등의 이미지는 동양인의 사고라기보다는 유럽인들의 사고를 더 잘 드러내고 있으며, 고전과 성경에서 비롯된 문학 전통은 영국인들에게 순교와 영웅주의, 복수 등의 각본을 제공했다. 이러한 폭동에 대한 영국 여성의 희생과 성적 취약성은 대대적으로 묘사된 반면 인도항쟁의 다른 희생자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항쟁이 진행되면서 훨씬 더 많은 인도 여성들이 영국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그들의 참상은 어디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P135)" 







인도항쟁을 다룬 소설들은 우후죽순 발표되었는데 작품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찰스 디킨스와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윌리 콜린스의 『문스톤』은 인도항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어낸 작품으로 손꼽힌다. 보르헤스, T.S.엘리엇으로부터 최고의 추리소설이란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회고로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1799년 인도의 세랑가파탐, 힌두교 사원을 습격한 영국 장교 존 헌카슬은 승려들을 죽이고 신비의 보석 '문스톤'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달의 신'의 무시무시한 저주를 받은 '문스톤'은 여러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의 남성들은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지만 레이첼에게 어떤 일도 직접 의논하는 일은 없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휘할 기회는 제공하지 않는 남성들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소설의 서사 구조는 레이첼을 <집안의 천사>로서 보호 받을 자격은 있으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동등한 위치에는 서 있을 수 없는 가정에서의 영역만을 제공하는데 동조한다.  




















그러나 이후 출간된 소설들은 공정성 면에서 이 작품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을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네 사람의 서명』은 인도 항쟁의 이야기를 외국인 혐오증의 측면에서 서술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 작품에서도 인도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선한 구석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영국인 조너선 스몰Tonathan Small"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의 시점에서 인도항쟁을 묘사한다. 인도 항쟁의 당사자들을 "검은 악귀"로, 인도를 야만성의 상징으로 묘사함으로써 문명의 상징인 영국과 대조를 이루도록 한다. 특히 여성들의 죽음을 더 극적이고 잔인한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영국 남성들을 영웅적인 구출자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거기다 더 어이없다고 느낀 것은 여기서 셜록 홈즈의 임무는 보물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메리를 인도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왓슨과 결혼시키는 것에 둔다. 코난 도일은 <역식민화>의 공포를 영국에까지 끌어들여 단순히 영국에 거주하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본토의 영국 여성들도 잠재적인 공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영국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제국주의로서의 영국의 잔인한 본모습은 <제 4장 성적 착취와 영국 제국주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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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쓰코는 삶의 보람을 느꼈다.
그날부터 10월 10일 가을 축제날의 그 가증스러운 사건이 있기까지, 에쓰코는 살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면서 살아왔다.
에쓰코는 결코 구원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그녀에게도 삶의 보람이 생긴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인생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또한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조금이라도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다름 아닌 이 어려움이 에쓰코가 느끼는 행복의 근거이며, 세상에서 말하는 ‘삶의 보람‘과도 같은 것이다. 즉, 우리는 삶의 의미를 모색하고, 아직 그것을 구하지 못한 동안에도 어쨌든 살아가고 있다. - P116

이때부터 에쓰코의 본능은 사냥꾼의 본능과 비슷해졌다. 어쩌다 저 멀리 조그만 덤불 속에서 산토끼의 하얀 꼬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그녀의 지혜는 날카로워지고, 온몸의 피가 요동치고, 근육이 꿈틀거리며, 신경 조직이 날아가는 화살처럼 팽팽하게 긴장한다. 이런 삶의 보람이 사라진 한가한 날에는 사냥꾼도 언뜻 다른 사람처럼 보이고, 아궁이 옆에서 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기력한 세월을 보내게 된다. - P118

어떤 사람에게는 사는 것이 너무나 쉽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나 어렵다. 인종 차별보다 더 심한 이런 불공정에 에쓰코는 아무런 저항을 느끼지 
못했다.
‘쉬운 게 좋은 건 당연하다‘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왜 그런가 하면, 사는 것이 쉬운 사람은 그 쉬운 것을 삶의 핑계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은 그걸 금세 삶의 핑계로 삼는다. 사는 게 어렵다는 것은 결코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삶에서 어려움을 찾아내는 능력은 어떤 의미에선 우리의 삶을 사람답게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우리에게 삶은 어렵지도 쉽지도 않은, 발을 디딜 수도 없는 진공의 구슬이 되어버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삶이 그렇게 보이지 않게 방해하는 능력이며, 삶이 쉬운 사람들에겐 알 수 없는 능력이긴 해도, 그것은 특별한 능력이 아닌 그저 일상의 필수품에 지나지 않는다.  - P118

그녀가 느끼는 삶의 보람은 더 이상 내일도, 모레도, 모든 미래도 짐으로 여기지 않게 했다. 그것이 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없지만, 무게 중심이 미묘하게 이동함으로써 에쓰코의 몸을 가볍게 미래로 향하게 했다.
희망 때문인가 하면 결코 그렇지는 않았다………….  - P119

에쓰코는 하루 종일 사부로와 미요의 행동을 감시했다. 그들이 어딘가 나무 그늘에서 입술을 맞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밤중에 멀리 떨어진 방과 방 사이에 실 같은 걸 연결해 둔 것은 아닌지……………. 그런 발견은 그녀를 괴롭힐 뿐일 텐데, 그렇다고 해도 불확실성에서 오는 고통은 그 이상일 것 같아서, 에쓰코는 두 사람의 사랑의 증거를 찾기 위해 어떤 비열한 행동도 마다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녀의 행동은 인간이 스스로를 괴롭히기 위해 쏟을 수 있는 열정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섬뜩할 정도로 확실하게 증명했다고 볼수 있다. 단지 희망을 잃기 위해서 이토록 쏟아붓는 열정은 어쩌면 인간 존재의 가시적인 형식, 그것이 유선형이든 아치형이든 어떤 형식의 충실한 모형일지도 모른다. 열정이라는 것은 하나의 형식이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그토록 온전히 구현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 P119

...... 인생을 살다 보면 무엇이든 가능할 것처럼 믿어지는 순간이 몇 번 도래하고, 아마도 이 순간에 사람들은 평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엿보게 된다. 그것들은 한번 망각의 늪에 깔려 있다가도 가끔씩 되살아나 세상의 고통과 환희가 얼마나 풍요로운 것인지 다시금 우리에게 암시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이 운명적인 순간을 피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어떤 인간도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보게 되는 불행과 한 번쯤은 맞닥뜨린다...... - P137

이 말할 수 없는 즐거움, 이 침묵의 말할 수 없는 풍요로움은 에쓰코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안겨주었다. 자신의 고통을 완성하기 위해 허락한 잠깐의 여유를 이렇게까지 즐기고 있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끝도 없는 이야기를 계속할 생각인가? 고통스럽지만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 P159

"그래." 에쓰코는 지친 듯이 말했다. 그 말에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너는 미요를 사랑하니?"
사부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 단어였다.
그 단어는 자신과는 거리가 먼, 뭔가 특별한, 사치스러운 어휘에 속하는 것 같았다. 그 말에는 무언가 잉여의 것, 절실하지 않은 것, 불필요한 것이라는 어감이 있었다. 자신과 미요를 이어주는 절실한 관계, 그러나 반드시 영속적이지는 않은 관계, 어느 반경 안에 놓이면 서로를 끌어당기지만 그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끌어당기지 않는 자석과 같은 관계에는 사랑이라는 단어가 그다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았다. 사부로는 야키치가 아마 미요와 자기 사이를 갈라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예측은 그를 괴롭히지 않았다. 미요의 임신 소식을 듣고도 이 젊은 일꾼에겐 도무지 아버지라는 자각이 생기지 않았다. - P163

하지만 지금 에쓰코가 느끼는 불안에는 그녀의 독창적인 불안과 이질적인, 뭔가 평범한 요소가 있었다. 미요를 내쫓는 행동을 했을 때 이미 이 새로운 불안의 첫 징후가 보였지만, 그녀가 이렇게 서서히 저지르는 과오의 크기는 그녀가 이 땅에서 부여받은 하나의 역할, 이땅에서 그녀가 간신히 앉을 수 있게 허용된 하나의 의자를 잃게 할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겐 입구인 것이 그녀에겐 출구일 수도 있었다. 그 문은 망루만큼 높은 곳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 입구로 올라가는 것을 포기하지만, 처음부터 그곳에 살았던 에쓰코가 창문이 없는 방에서 나가기 위해 출입문을 열면 발을 헛디뎌 추락사할지도 모른다. 이 방을 결코 떠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이방을 떠나기 위해 이용되는 모든 지혜의 유일한 초석일지도 모르는데………… - P217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또! 또 시작이다.
얼핏 유용해 보이는 이 단어는 여전히 그에겐 아무렇게나 살아왔던 평온한 삶에 불필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 살아야 할 삶에 불필요한 틀을 끼우는, 잉여의 개념으로만 느껴졌다. 이 단어가 생활필수품으로 존재하고, 때와 경우에 따라서는 이 단어에 생사를 걸 수있는, 그런 삶이 영위되는 공간을 그는 가지고 있지 않다. 가지고 있기는커녕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그런 공간의 주인이 그 방을 없애기 위해 집 전체에 불을 질러버리는 어리석은 행동을 그가 이해할 수 있을까? - P230

이 순박한 소년을 여기까지 몰아붙인 건 누구였을까?
여기까지 몰아넣고 단지 그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어설픈 대답을 말하게 한 것은 누구의 죄일까?
사부로는 감정보다는 세상 물정이 가르쳐주는 판단에 의지하기로 했다. 어릴 때부터 남의 밥을 먹고 자란 소년에게 흔히 있을 수 있는 해결책이다.
잠시 생각해 보면 에쓰코의 눈빛이 자신의 이름을 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걸 그도 금방 읽어낼 수 있었다. - P231

여태까지 귀찮고 성가신 응대에 지쳐 있는 동안 사부로가 가끔씩 눈을 치뜨고 바라본 에쓰코는 여자가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인 괴물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정신의 살덩어리, 괴로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피를 흘리기도 하고, 기뻐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는, 노골적인 신경조직의 덩어리였다.
그런데 일어서서 옷을 여미는 에쓰코에게 사부로는 처음으로 여자를 느꼈다. 에쓰코가 온실을 나가려고 한다. 그가 팔을 뻗고 막아선다.
에쓰코는 몸을 비틀어 사부로의 눈동자를 찌를 듯이 들여다본다.
물풀이 우거진 어두운 물속에서 보트의 노가 다른 보트의 선저에 부딪히듯, 이때 몇 겹의 옷을 사이에 두고 그의 단단한 팔 근육과 에쓰코의 가슴께 부드러운 살이 생생하게 부딪히는 것이 느껴졌다.
사부로는 더 이상 그녀가 쳐다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입을 벌리고 소리는 내지 않지만 안심시키려는 듯한 쾌활한 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두세 차례 재빨리 눈을 깜박였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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