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퀴나하크에서
세계 지도를 가져다가(지구본이 더 좋다) 위도 60도선을 찾고 서쪽으로 이동해보라. 셰틀랜드 제도에서 시작하면 바로 북대서양 상공을 날 수 있다. 그린란드 페어웰 곶의 끄트머리 몇 킬로미터를 스쳐가고, 캐나다의 래브라도에 이어 허드슨 밀이 나타날 것이다. 계속 간다. 60도선은 캐나다 매니토바 주, 서스캐처원 주, 앨버타 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북쪽 국경을 이룬다. 계속 서쪽으로 가면 알래스카 주가 나온다. 계속 더 가다가 마침내 베링해에 이르면 거기서 멈춘다. 바다를 건너면 러시아고 이제 긴 귀향길이 시작된다.
이 선은 알래스카의 마지막 15킬로미터 지역에서 쿠스코큄-유콘 삼각주를 지난다. 지도를 보면 도로는 없고 녹색 물길과 얼음 녹은 웅덩이들만 보일 것이다. ‘퀴나하크 마을‘은 바로 이 해안, 60도선 바로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 카네토크 강이 베링해로 쏟아지는 곳이다. 여름에는 그렇다. 겨울에는 강이 얼고 눈이 높이 쌓인다.
마을 주민은 7백명 가량이고 대부분 유피크Yupik족이다. 이들의 강인 카네토크 강은 유명한 연어 회귀천이다. 카네토크는 ‘새로운 강물 길‘이라는 뜻이다. 이 물기 넘치는 세계에서 강들은 쉽게 경로를 바꾼다. (75쪽)
![](https://image.aladin.co.kr/product/34940/10/cover150/k892934462_1.jpg)
어느 날 아침, 다른 사람들이 모두 현장으로 떠나고 뒤에 남아있던 내가 어슬렁어슬렁 2층에 올라갔더니 워런이 서류와 청구서가 쌓인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2층에는 창문이 있었고 사각의 창밖으로 고요한 툰드라가 내다보였다. - P95
나는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하고 가능하면 유피크 생활에 대해 배우고 싶다고 했지만, 나 자신도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유피크 생활은 주변에 가득 펼쳐져 있었다. 강과 땅, 허름한 오두막, 끝없는 쿼드바이크, 새와 베리, 그리고 불그죽죽한 쿠스푸크를 입고 휴대폰으로 통화 ㅡ"하지만 가족이잖아. 가족을 모른 척하면 안 돼." ㅡ하던 위엄 있는 노부인. 워런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전에도 이런 말을 들었나? 물론 그랬을 것이다. 유럽인들은 긴 세월 동안 이곳을 식민지로 삼고 이들의 ‘야만적 삶‘을 질타하더니 갑자기 간곡한 자세가 되어 이들이 수렵채집인으로서 자연과 맺은 관계에 감탄을 바치고 있었다. - P95
"우리가 이글루에 안 산다고 말해 주세요." "네, 그럴게요." "라스베이거스 사람들은 그랬어요. ‘어? 이글루에 안 산다고?" "그렇게 말할게요. 겨울이 온화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겨울 말인가요? 작년에는 강 얼음이 두 번만 치면 깨졌어요. 우리는 아무 데도 못 갔죠." 워런은 발굴 작업에 대해 말했다. "우리가 어르신들께 탄원을 했어요. 젊은 세대를 위한 거라고요. 아이들이 우리 문화를 어떻게 알겠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제가 자랄 때 우리한테는 교회뿐이었고 우리 문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발굴이 효과가 있나요?" 그러자 워런의 말투가 누그러들었다. "결정적이었죠. 작년에는 전통 춤 잔치를 했어요. 발굴 작업으로 촉발된 거죠. 그거 아셨나요? 거기서 조상들의 무용 가면들이 발굴되고 있어요. 선교사들은 우리 춤이 악마 숭배라고 했죠! 우리를 세뇌했어요! 백 년 동안 마을에는 전통 의례였던 춤 잔치가 없었어요. 한 교사가 어르신들의 기억을 모으고 다른 마을의 사례를 조합해서춤을 재구성했고 젊은이들이 공연을 했죠." - P96
그는 반항적으로 말했다. "처음 북소리가 울릴 때 목덜미의 털이 쭈뼛 일어섰어요. ‘이걸 되찾았어!‘ 하는 생각이었죠. 저는 요새 사냥꾼들에게 순록 앞가슴 털을 버리지 말라고 해요. 그걸로 여자들이 춤 잔치에서 쓰는 부채를 만들거든요. 백 년 만에 처음으로 그게 다시 필요해졌어요." - P96
한 시간 뒤에도 내 감각은 계속 선명해져 갔다. 아마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비새 한 마리가 환한 구름 아래를 날아갔다. 부리에는 가늘고 긴 물고기가 물고 있었다. 그런 뒤 멜리아가 두루미를 보고 나를 불렀다. 우리는 함께 일고 여덟마리의 캐나다두루미가 천천히 날아와서 차례로 땅에 내린뒤 긴 다리로 풀을 헤치고 걷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쯤이면 풀들의 모습이 너무 생생해서 나는 거의 그 맛이 느껴질 정도였다. 겨우 한 시간 동안의 관찰로 이렇게 되었다면 1년, 평생, 천 년은 어떨까? 사람이 한 집단 전체가 얼마나 자연에 조율될 수 있을 것인가? - P128
화자들의 감각이 이렇게 예리한데 어떤 이야기가 ‘진실‘이고 어떤 이야기가 그렇지 않은지 어떻게 알겠는가? 릭은 만약 누날라크 주민들이 여기 돌아온다면-방한 점퍼와 베리 바구니, 피어싱, 문신을 새긴 모습 그대로 자신들의 풍경을 금세 알아볼 거라고 말했다. 풍경이 그렇게 많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 P128
생일 파티 이틀 후 나는 저녁을 먹고 빨간 건물 밖으로 산책을나갔다. 그렇게 아름답고 차분한 저녁에 실내의 전등 빛 아래만 있을 수가 없었다. 밖에는 아이들 대여섯 명이 버려진 창고 같은 건물의 지붕에서 미끄럼을 타고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버려진 창고 같다고 했지만 게으른 표현이다. 나는 이제 그 마을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시작했다. 어떤 창고에는 어구들이 있었다. 작은 것들은 연어를 훈연하는 훈연장이었다. - P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