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천사>라는 이미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이상적인 여성성을 규정하려는 노력의 결정체로서 19세기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더 많은 사회적 기대에 부응해서 살아가야 했다. 문학 작품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 <집안의 천사>는 가정이라는 안식처를 관장하는 사람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게 가정과 가족의 기능을 원활하게 하고,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사실일까요???) 오로지 주변 사람들을 위해 가정을 편안한 휴식처로 만드는 데 힘쓸 뿐 전혀 사심이 없는 존재이며, 거기다 매우 순수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희생과 헌신의 화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상당 부분강요당한 이미지이지만.)
3장에서는 <집안의 천사>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여성성 뿐만 아니라 이를 비판하는 문학 작품들을 다수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또한 그동안 읽어왔던 빅토리아 시대의 영미문학 작품들의 배경을 한 번에 정리하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어 그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는 책읽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장 재밌는 건 책에 대한 내용을 풀어주는 거다. <집안의 천사>라는 시詩가 연작시의 형태로 실제로 지어진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빅토리아 시대에 이상적인 여성상들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고 가장 관례적인 형태는 상냥하고 자기희생적이며 가정적 미덕의 화신인 <집안의 천사>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코번트리 팻모어Coventry Patmore가 지은 동명의 장편 이야기 시인 『집안의 천사The Angel in the House』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1854년에 출간되기 시작한 팻모어의 시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성에 대한 당대의 보편적인 개념들의 진수를 상당 부분 집약하고 재구성하였다.(P116)
1857~1859년의 인도항쟁은 그 이 전의 인도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던 정책에서 점차 위압적인 제국주의 정책으로의 전환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음. 영국은 이 항쟁으로 제국주의 유지에 커다란 위기감을 느낌. 이 당시 문학 작품이나 신문의 기사에 나타난 수사적 표현을 살펴보면 국민들 사이에서 남성들에게 기사도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인도에서 날뛰는 폭도들의 약탈 대상이며 피해를 입는 대상이 너무나 어이없게도 결국은 식민지에서 멀리 떨어진 <영국의 여성들과 아이들>이었다는 것만 보아도 몹시일방적이고 편협한 시각이었으며 제국죽의의 유지를 위하여 만들어진 재현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을 부각하고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대의명분은 잔혹한 방법으로 인도인들을 핍박하는 강인하고 기사도적인 수호자로서의 위치를 점하는 남성성, 여기에 대비하여 <집안의 천사>로서 구체화되고 이상화된 여성성의 이미지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명분으로서 작용하였고, 또 한편으로는 인도 항쟁에 대한 영국인들의 두려움이 집단적 히스테리의 상태에 머물렀음을 반증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집안의 천사>를 거부하고 그를 죽이려 한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일화는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성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많이 약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사라지지 않은 잔영으로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울프는 기존의 남성적 기준과 기대치에 여성 작가로서의 도전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천사>의 살해가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울프는 <내가 서평을 쓰고 있을 때 나와 내 원고지 사이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곤 했던 것이 바로 이 환영이었습니다. (...) 내 시간을 낭비하게 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나를 너무나도 괴롭혔으므로 나는 마침네 그녀를 죽여 버렸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집안의 천사'를 죽이는 일은 여성 작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 중의 하나였지요>라고 기술한다. 울프는 글을 쓰기 사작할 때마다 <그녀의 날개 그림자가 내 원고지 위에 드리워졌습니다. 나는 방에서 그녀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p121)
그럼에도 여성이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울프는 천사와 맞섰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그녀는 좀처럼 죽지 않았습니다.(...) 어떤 실체를 죽이는 것보다 유령을 죽이는 것은 한층 더 어려운 일입니다.>...<만약 내가 고소를 당해 법정에 서게 된다면 나는 정당방위였다고 변명할 것입니다. 내가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녀가 나를 죽였을 테니까요. 그녀는 나의 글에서 핵심을 빼앗아갔을 것입니다>(P122)라고 했을 정도였다.
샌드라 길버트와 수잔 구바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보니 또 반가운 마음~~^^
읽다 말았지만 이 책은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하고 있다.
일레인 쇼월터의 책은 『페미니스트 비평과 여성문학』만 검색이 된다.
"일레인 쇼월터Elaine Showalter의 『그들만의 문학A Literature of Their Own』이나 샌드라 길버트Sandra Gilbert와 수잔 구바Susan Gubar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The Madwoman in the Attic』와 같이 19세기를 재조명하려는 1970년대의 혁신적인 페미니즘 비평서들은 울프와 마찬가지로 <집안의 천사>가 당시 여성 작가들에게 장애물로 작용한 망령이었다는 의견들을 펼친다. 쇼월터는 <집안의 천사>에 대해 <완벽한 숙녀가 되어야 하는 여성으로서(...) 충실한 마음으로 남자들에게 복종하면서도, 내면의 순결함과 신앙심에서는 강직하며, 가정이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관장하는 여왕>이라고 설명한다.(P123)
빅토리아 시대의 <천사>이미지와 <천사에 반대되는> 타락한 천사의 이미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을 작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메리 엘리자베스 브래든은 『오들리 부인의 비밀Lady Audlley's Secret』에서 아름답고 상냥한 모습을 지닌 이상적인 금발 여인의 정체가 사실은 재산을 노리고 남자에게 접근한 교활한 여자였을 뿐만 아니라 살인까지도 서슴지 않는 인물이었다는 묘사로 천사에 대한 이미지와 사회적 인식을 조롱하기도 하였다. 이와 반대로 가정적인 모습의 화신이자 순수함으로 이상화된 여성성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인 『오래된 골동품 상점The Old Curiosity Shop』의 리틀 넬Little Nell, 그리고 『데이비드 카퍼필드David Copperfield』의 아그네스 윅필드Agnes Wickfield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영국 언론의 인도항쟁에 대한 묘사가 허구적으로 연출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인데 특히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칸푸르에서의 항쟁이 일어난 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직접 목격하지 않은 어느 성직자의 기고문을 보면 그 기사의 황당함과 허구성을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200여명의 영국 여성과 어린이들을 포로로 잡고 있던 문제의 인도 지도자가 영국군의 진주에 포로들을 살해하라 명하였고 강간, 굴욕, 사지 절단 등 가혹 행위를 일삼는다는 등의 생생한 이야기가 널리 퍼지면서 칸푸르와 비비가르의 학살 장소였던 여자 숙소는 영국 여성의 희생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집안의 천사>가 인도 항쟁의 상징적인 희생자가 되었으며, 희생 당한 여성의 정치적 가치는 <폭도들이 여성 포로들을 구세주처럼 십자가에 처형시켰다는 주장>과 같은 사례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유럽인들의 상상력과 문학적 전통에서 유래한 묘사를 통해 공포감을 대대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아이들은 상자에 넣은 채 불에 태워지거나, 아버지의 인육을 먹도록 강요당했으며, 임산부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도려내졌고, 여자들은 사지를 절단당했다"는 등의 이미지는 동양인의 사고라기보다는 유럽인들의 사고를 더 잘 드러내고 있으며, 고전과 성경에서 비롯된 문학 전통은 영국인들에게 순교와 영웅주의, 복수 등의 각본을 제공했다. 이러한 폭동에 대한 영국 여성의 희생과 성적 취약성은 대대적으로 묘사된 반면 인도항쟁의 다른 희생자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항쟁이 진행되면서 훨씬 더 많은 인도 여성들이 영국 남성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그들의 참상은 어디에서도 보도되지 않았다.(P135)"
인도항쟁을 다룬 소설들은 우후죽순 발표되었는데 작품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였다. 찰스 디킨스와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윌리 콜린스의 『문스톤』은 인도항쟁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다루어낸 작품으로 손꼽힌다. 보르헤스, T.S.엘리엇으로부터 최고의 추리소설이란 찬사를 받은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회고로 사건을 파헤쳐나가는 독특한 구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1799년 인도의 세랑가파탐, 힌두교 사원을 습격한 영국 장교 존 헌카슬은 승려들을 죽이고 신비의 보석 '문스톤'을 손에 넣는다. 그러나 '달의 신'의 무시무시한 저주를 받은 '문스톤'은 여러사람들의 손을 거치면서 예기치 못한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소설 속의 남성들은 주인공을 지키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지만 레이첼에게 어떤 일도 직접 의논하는 일은 없다.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휘할 기회는 제공하지 않는 남성들과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소설의 서사 구조는 레이첼을 <집안의 천사>로서 보호 받을 자격은 있으나 정보를 공유하거나 동등한 위치에는 서 있을 수 없는 가정에서의 영역만을 제공하는데 동조한다.
그러나 이후 출간된 소설들은 공정성 면에서 이 작품에 필적할 만한 작품은 등장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을 당시에는 잘 알지 못했지만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을 바탕으로 작품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 아서 코난 도일 경의 셜록 홈즈 시리즈 중 하나인 『네 사람의 서명』은 인도 항쟁의 이야기를 외국인 혐오증의 측면에서 서술한 훌륭한 본보기이다.
이 작품에서도 인도의 보물을 훔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선한 구석이라고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영국인 조너선 스몰Tonathan Small"이라고 하는 전형적인 인종 차별주의자의 시점에서 인도항쟁을 묘사한다. 인도 항쟁의 당사자들을 "검은 악귀"로, 인도를 야만성의 상징으로 묘사함으로써 문명의 상징인 영국과 대조를 이루도록 한다. 특히 여성들의 죽음을 더 극적이고 잔인한 죽음으로 몰아감으로써 영국 남성들을 영웅적인 구출자의 위치로 격상시킨다. 거기다 더 어이없다고 느낀 것은 여기서 셜록 홈즈의 임무는 보물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메리를 인도의 위협에서 보호하고 왓슨과 결혼시키는 것에 둔다. 코난 도일은 <역식민화>의 공포를 영국에까지 끌어들여 단순히 영국에 거주하는 여성들 뿐만 아니라 본토의 영국 여성들도 잠재적인 공격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암시함으로써 영국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제국주의로서의 영국의 잔인한 본모습은 <제 4장 성적 착취와 영국 제국주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두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