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 오늘을 위해 밝히는 역사의 진실
김태훈 지음 / 일상이상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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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김태훈/일상이상]이순신의 두 얼굴

 

저자 김태훈은 10년 전에 이순신이라는 인간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순신의 두 얼굴>을 펴냈다. <이순신의 두 얼굴>을 통해 객관적 입장, 날 것 그대로의 이순신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가 처한 상황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동서양의 해전사와 이순신의 해전을 비교하는 작업도 병행하면서 말이다.

세월이 흐름 지금, 그 당시에 미처 밝히지 못한 것들을 정리해서 개정증보판을 냈다. 다시 이순신 장군을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이순신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영화 <명량>도 봤고, 소설도 읽었다. 이젠 더 깊이 알고 싶었다. 이 책에서는 난중일기, 실록, 다른 기록들을 비교하며 이순신의 여러 면을 보여주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시작해서 결혼을 하고, 무과시험에 합격하고, 전쟁을 치루며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 모두 보여준다. 물론 이순신 장군의 장점과 단점까지도.

1591년 2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이었다. 선조는 정읍 현감이던 이순신을 진도 군수로 발령했고, 진도에 가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라좌수사로 임명했다. 무려 7단계를 뛰어 오른 것이다. 사간원들은 종6품의 수령에서 정3품의 수군 최고위직으로의 승진이 적절치 않다며 선조에게 간언을 했다. 하지만 선조는 인재가 부족하다며 강한 의지로 이순신의 승진을 관철시켰다. 그 바탕에는 서애 류성룡의 천거가 있었다. 어릴 적부터 이순신의 강직한 성품, 불의에 굽히지 않는 성품을 보았던 류승룡이었기에 그를 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조선은 일본 정세에 왜 그리 무지했을까.

임진왜란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랫동안 노렸던 전쟁이었다. 그는 일본통일 전쟁을 이뤄내면서 명예롭고 훌륭한 과업을 이루고 싶었는데, 그 대상이 중국정벌이었다. 정명가도의 명분으로 명으로 가는 길을 조선에 터달라는 것이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통일 전쟁을 통해 정예화된 무사들이 실직 상태였고 신식무기인 조총까지 있었다. 토요토미는 전쟁의 승리를 자신했으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전쟁이었다. 죽더라도 명예롭게 죽기를 바랐다.

조선통신사는 무엇을 했을까.

조선은 그의 끈질긴 요청으로 조선통신사를 일본에 보낼 때, 일본의 전쟁 야욕을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선통신사로 간 황윤길(서인)은 일본의 침략이 감지된다고 보고했고, 김성일(동인)은 그런 낌새가 없다고 보고했다. 결국 집권세력인 동인이었던 김성일의 의견이 받아 들여졌고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대비할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모두 역사책에서도 볼 수 있는 이야기다. 동인과 서인의 당쟁에 휩싸여 있던 정치권, 집단 이기주의에 휩쓸린 집권층의 작태를 보면 어쩜 지금과 그리 유사할까.

 

일본 통일의 기세를 모아 중국 정복의 원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심을 알아 본 쓰시마 도주 다치바나 야스히로. 그는 일본의 야욕을 알았고 전쟁을 막으려고 조선에 알렸지만 조선은 무시했다는 <징비록>의 기록이 있다.

730여쪽에 이르는 책에서는 원균의 모함으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되었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틀렸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실패한 장문포전투도 밝히고 있다. 장문포전투는 적에게 전혀 타격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조선 수군이 심각한 전력 손실을 입은 전투라고 한다. 심지어 이순신이 조정에 올린 장문포전투 보고서가 진실과 들어맞지 않아 조정에 압송될 뻔했고 선조가 이를 막은 사실, 이순신의 <난중일기>가 사실과 다르게 적혀 있다는 사실까지 밝히고 있다.

 

이순신이 3도수군통제사를 그만두겠다고 사임을 원했을 때 내부의 적인 경상우수사 원균을 제거하기 위한 극단의 조처였다고 한다. 이에 조정은 원균을 충청병사로 전출하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고 한다.

 

이덕형이 이순신을 모함해서 이순신이 실각하고 하옥되었다는 이야기는 <선조실록>을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명량해전이 대승을 거둔 해전은 맞지만 그 승리가 일본 육군의 퇴각을 초래했다는 것은 무리라고 한다. 조선의 조정은 일본 육군의 퇴각 사실을 9월 14일에 이미 접하고 있었고 명량해전 1597년 9월 16일에 발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임진왜란 전후의 조선 상황, 이순신 장군이 싸웠던 해전들, 역사적인 세계 해전들, 잘못 해석한 역사들 사실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 있다.

 

역사적 기록이 모두 진실일까, 역사적 해석에 오류는 없는 걸까.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충무공 이순신에 대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쓴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대단한 장군이라고 생각되었는지, 아직도 초록 표지의 그 책이 기억이 난다. 그땐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이해를 못했던 탓에 그저 위대한 장군,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시절의 국가적 상황을 알게 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존재가 더욱 대단해 보인다. 어느 것 하나 이순신에게 유리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 해석에 소소한 오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충정과 용감무쌍은 대단한 것 같다. 생각할수록 든든한 우리의 선조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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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조직을 움직이는가 - 당신이 간과하고 있는 명료함의 힘
패트릭 렌치오니 지음, 홍기대.박서영 옮김 / 전략시티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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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조직을 움직이는가/패트릭 랜치오니/전략시티]이젠 명료함과 소통, 원팀 원스피릿!

 

아마존 선정 올해 최고의 경영 도서

<워싱턴포스트> 선정 올해의 그레이트 리더십 도서

<글로브앤메일>선정 올해의 경영 도서 Top 10

미국 800-CEO-READ 선정 올해의 경영 도서 Top 10

 

많은 기업들이 나왔다가 사라졌다. 경쟁의 시대에 영원한 승자, 최후의 승자, 꾸준한 승자가 되고 싶은 기업들은 오늘도 분투하고 있다.

 

저자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최고의 팀이 되려면 명료함과 소통이라고 한다. 진짜 경쟁력은 기발한 전략이나 마케팅이 아니고, 조직을 얼마나 명료하게 경영하고 소통하느냐 라고 한다. 기업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고 발전하려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할 것이다.

 

그런 경쟁 우위를 위한 시너지는 '원팀 원스피릿'에서 온다고 한다. 원팀 원스피릿이란 조직 구성원 모두가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한 마음으로 매진할 수 있도록 한 팀으로 결속하는 것이다.

목표가 명료하고 모두 공유하고 있다면 조직 구성원 간의 소통도 원활할 것이다. 소통이 원활하면 조직의 근력도 튼실해지고 건강한 조직, 강력한 조직을 키울 것이다.

 

원팀 원스피릿으로 갖춰진 건강한 조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의 말을 정리해 보면......

리더들 간의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 작은 조직의 리더들이 제 기능을 하면서 화합을 도모해야 건강하다. 건강한 조직의 리더들은 행동에서 화합하고 지적으로 화합해야 한다.

핵심질문에 동일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리더들이 앞장서서 명료함을 창출해야 한다.

창출된 명료함을 반복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조직의 목표를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건강한 조직문화 형성이 쉽고 간단하다지만 습관이 되려면 꾸준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시스템을 통해 명료함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명료함을 위해서는 리더 개개인의 책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의견 충돌과 솔직한 논쟁을 받아들이고 명료한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명료한 합의는 헌신을 끌어낸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건강한 충돌을 하게 한다. 책임에 대한 지적, 서로에 대한 지적은 불편하고 어렵지만 팀이나 조직의 힘든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원한다면 똑똑한 조직보다 의견을 나누는 건강한 조직이 필요하다. 건강한 문화가 바탕이 되면 똑똑한 조직이 만들어진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지식과 경험, 지능의 일부만 사용하지만,

건강한 조직은 거의 전부를 활용한다. (본문에서)

 

건강한 조직을 만들게 되면 직원들의 높은 사기, 높은 생산성, 인재들의 낮은 이직률을 가져온다고 한다. 조직 인원이 소수여야 하고, 7~8명 정도가 적당하며, 사적인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현재 리더들이나 미디어, 학계가 조직 건강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조직의 건강이야말로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건강하지 못한 문화는 조직 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비용도 초래할 것이다. 결국엔 자멸하기도 할 것이다.

경쟁력이 건강에 있음에 공감이다. 조직이든 개인이든 말이다. 개인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 건강처럼, 조직도 건강하게 운영된다면 꾸준한 성장은 가능할 것이다.

열린 마음, 소통, 솔직, 배려, 공동 목표를 공유하고 공동 책임을 의식하는 것은 건강 조직을 위한 기본적인 요소들이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얼마나 적용하고 있을까. 조직이든 개인이든 명료함과 소통은 중요함을 생각하게 된다.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무시되든 명료함과 소통의 이야기다. 저자는 고객과 고객사들의 사례를 통해 명료함과 소통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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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리더십 - 세계가 존경하는 인권 지도자 청소년 멘토 시리즈
유한준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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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리더십/유한준/북스타]용서하고 화해하라!

 

남아공의 대통령이었던 넬슨 만델라, 세계가 그를 추억하지 않을까. 그가 없었다면 토박이 흑인들의 인권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넘어질 때마다 일어서라는 그의 말이 진한 감동을 울리며 그를 그립게 만든다.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1918~2013)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브 지방 트란스케이 움타타의 작은 마을 음베조에서 템부족 추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넉넉한 살림이었지만 백인 판사가 보고를 거부한 아버지를 반역죄로 몰았고 이들의 땅과 가축을 모두 몰수해 버렸다. 그 바람에 만델라 가족은 작은 섬마을로 쫓겨나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만델라는 템부족 마을을 다스리던 섭정의 양아들이 되어 클라그뷔리 중학교로 진학 했고, 영국식 감리교 교육을 받았다. 총명했던 그는 포트헤어 대학에 진학해서 법학과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정당한 학생운동을 하고도 학교 측의 방침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그리고 더 넓은 도시 요하네스버그로 옮겨 법률사무소 서기로 일하며 변호사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백인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탄압받는 흑인들의 인권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인도 간디의 무저항주의를 받아 들여 아파르트헤이트(백인들의 인종 격리 정책) 에 저항했다. 하지만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18명의 사망자를 보면서 무력투쟁의 필요를 느끼게 된다.

 

억울하게 괴롭힘을 당하거나 포위를 당할 때에는

자신의 정당함을 숨기지 말고 맞서는 것이 중요하다. - 만델라

 

1943년 비트바테르스란트 대학에서 법학 공부를 하게 된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한 흑인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흑인들은 교육에서 제외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1952년에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사무소를 열었는데, 백인이 아닌 이로는 처음이었다고 한다.

 

그는 교육, 거주, 대중교통 등에서 백인과 흑인을 분리하는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공산주의 활동에 연루되었다며 체포되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1955년 남아프리카 인종분리정책에 반대하는 <자유헌장> 선포하기도 했다.

 

1960년 집회에서 경찰의 무차별 총기난사로 흑인 69명이 사망하자 만델라는 '민족의 창'이라는 군대를 조직하게 된다. 무력 투쟁의 필요를 더욱 느낀 것이다. 그러다가 1962년 체포되어 5년 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1964년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게 된다. 이후 만델라는 로벤 섬 교도소에서 27년 간 복역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학업을 이어나갔다. 교도소에서 문맹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현재 로벤 섬 교도소는 억압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감옥에서 나온 만델라는 성공회 주교 데스몬트 투투 주교 등과 함께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었고 잔악한 폭력 가해자들을 가려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죄를 고백하고 뉘우친 인사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사면해 주었다. 피해 가족들에게는 경제적인 보상도 해주었다.

 

그렇게 흑인들을 차별하고 압박하던 백인 정부 사람들을 용서하고 화해하는 과거 청산 작업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백인 정부와 줄루족 등과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성공의 배경에는 서로에게 원한과 보복이 없는 고백과 화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용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노력으로 1993년 그 공로로 데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로 흑인이 투표권을 행사한 민주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대통령, 세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것이다.

2013년 12월 5일 95세를 일기로 그는 세상을 떠났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사람에 의해 사람이 억압받는 일이 결코, 결코, 결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자유가 흘러넘치도록 하자. - 만델라

원래 흑인들의 땅에 황금을 찾아왔던 백인들. 무력으로 땅을 빼앗고 주인행세를 했던 백인들이었다. 더구나 말도 안 되는 차별 법을 만들어 흑인을 인간 이하로 대했고 탄압했다. 하지만 만델라는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화해라고 여겼다. 지금 흑인들이 제자리를 찾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바탕에는 만델라를 비롯한 인권 투사들의 저항운동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긴 흑인차별의 역사를 종식 시키는데 온 몸을 바친 만델라. 지금은 가고 없지만 그는 남아공의 태양으로 흑인들의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세계가 존경하는 인권 지도자 만델라, 아름다운 리더다.

 

북스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된 서평입니다.

한우리북카페 서평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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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죽음의 바다 1 - 이순신 최후의 날
배상열 지음 / 황금책방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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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 죽음의 바다/배상열/황금책방]세계 해전 사상 유례가 없다는 명량해전, 이순신 장군이 그립다!

 

조선 선조시절. 왜군은 20일 만에 부산을 거쳐 한양까지 쳐들어 왔다. 걸어서도 힘든 길을 3갈래로 나눠 파죽지세로 올라왔던 것이다. 왜가 쳐들어 올 리가 없다던 왕과 권력층들은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 심지어 그 와중에도 당파싸움을 일삼았고,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에 들어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니 나라 전체가 풍전등화, 백척간두의 상태였다. 백성들에겐 도망을 가느냐. 목숨을 걸고 싸우냐의 선택지만 남았다. 물러난다고 목숨을 부지하리란 보장도 없지만 그렇다고 싸우기에는 너무나 겁에 질려 있었다.

이 시절, 서애 류성룡과 성웅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땠을까. 조선은 온전할 수 있었을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위대한 지도자 한 명이 절실한 요즈음 그래서 이순신 이야기에 더욱 빨려들게 된다.

 

명량 죽음의 바다. 영화로 먼저 접했다. 배우들의 열연을 보러 간 게 아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을 보러 간 것이다. 위태로운 나라를 지키고자 처절했던 마음을 다스리고 수적으로 열악한 함선을 거느리고 승리를 거두는 명장 이순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다. 53세의 이순신 역할에 나이가 좀 드신 최민식 장군이란 것만 빼면 영화의 전투신이나 피란민 상황은 기록대로 잘 표현한 영화였다. 특히 전투신은 대단했다.

세계 해전 사상 유례가 없다는 명량해전.

12척과 정비 중이던 1척을 보태 13척으로 적 130척을 물리쳤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론 적의 함대가 500여척이었다고 한다. 조선함선 1대 당 저 함선 10척 이상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그 당시 이순신의 불리함은 함선 수의 열세와 더불어 패잔병 의식으로 기가 꺾인 수군의 정신 상태였다. 두려움에 휩싸인 수군의 나약한 모습이 문제였다. 죽음의 공포로 떨고 있던 군사들이 어찌 싸움을 한단 말인가. 실제로 죽음이 두려워 도망간 자도 있었다니 조선 수군의 분위기는 짐작할 만하다.

반면 왜군은 육지에서의 승리로 싸움에 대한 의욕이 가득 찼던 시기였다.

하지만 패배한 원균과 달리 이순신은 각지에 정찰병을 보내 일본 수군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다. 늘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있었기에 적의 야습이나 염탐도 놓치지 않았다.

당시 조선 수군은 이순신 장군마저 무너지면 해상장악권까지 일본에 빼앗겨 서해안을 빼앗기는 상황이었다.

왜군도 10여 척의 초라한 조선 수군의 동태를 정확히 파악했고 이순신을 물리치면 한강으로 올라갈 계획에 벅차 있었다.

그렇게 절대 불리한 조선 수군의 상황을 알고 왜군은 여러 편대를 겹쳐서 명량으로 쳐들어 왔다. 이순신에게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한 판의 결전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군사들에게 명한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이 말은 죽음을 앞에 둔 비장한 독려였고 죽기를 각오한 마지막 전투라는 의미였다. 이순신 장군은 13척의 함선 뒤에 피란 어선 100여 척으로 위장을 해야 할 정도로 초라한 군대였다.

하지만 모든 게 불리한 것은 아니었다. 명량해협은 폭이 좁아 왜군이 한꺼번에 공격할 수 없다는 장점이 있었다. 물살이 빠르고 물의 방향이 바뀔 때 공격과 수세의 흐름을 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엔 이순신 장군이 탄 한 척의 배만 싸우고 있을 정도로 모두 군사들은 죽음 앞에 겁을 먹고 있었다. 이순신은 초요기를 올리고, 군사들을 독려하며 일선에서 앞장 서 싸워야 했다.

다행히 바다에 떠다니는 적장 구루시마 미치후사의 시체를 건져 적장의 머리를 돛대에 걸었다. 이를 본 왜군은 당황하기 시작했고 조선 수군은 더욱 용기를 내서 싸웠다. 결과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승리였다. 당시 더 이상 피란갈 곳이 없었던 많은 피란민들이 구경했다고 한다.

명량대첩은 겁먹은 부하들을 격려하기 위해 앞장선 이순신의 솔선수범이 돋보이는 전투였다. 수적으론 열세지만 그의 살신성인의 정신이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으리라. 또한 지리적 이점을 전술에 이용한 통찰은 그의 승리에 대한 갈망이 컸음을 말해준다.

23전 23승의 대승에 이순신의 살신성인의 정신, 공포 심리를 싸움정신으로 무장시킨 리더십이 바탕에 깔려 있음을 보게 된다.

영화 <명량>을 보고, 소설 <명량>을 읽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요즘이다. 아무리 보고, 여러 번 읽어도 지겹지 않다. 이런 지도자가 태어난 나라에 살기에,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책을 써 준 작가, 영화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위기의 한국이기에 현명한 지도자 한 사람이 아쉽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싸우는 이순신 장군 같은 지도자, 이젠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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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멀리 가고 싶은 너에게 - 시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딸의 유럽 여행
이미상 글.사진, 솨니 그림 / 달콤한책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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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멀리 가고 싶은 너에게/이미상/솨니/달콤한책]엄마와 딸의 알콩달콩 뭉클한 여행기!

 

시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17세 딸의 유럽 여행이라면 모두들 부러워 할 여행이다. 낯선 장소에서 시간 여행을 하며 글을 쓰는 엄마와 그림을 그리는 딸의 모습은 지극히 낭만적이기에. 게다가 3개월 동안의 넉넉한 시간이 느긋한 여행을 즐기게 했을 텐데. 책을 읽는 내내 알콩달콩 뭉클한 풍경화가 그려졌다.

솨니는 중학교를 자퇴하고 미시간 예술학교를 다니던 딸이었다. 방학 때 한국행 비행기 표가 아깝다며 파리에서 지구 멸망 전에 보고 싶은 그림을 잔뜩 보겠다는 딸을 걱정하며 엄마도 얼떨결에 나선 여행이었다.

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로의 여정은 햇살과 바람, 예술과 인문학으로의 여정이었다.

아르메리아 광장에 앉아 알무데나 대성당을 그리는 딸, 생전 처음으로 맞는 하늘빛과 강렬한 태양을 감상하는 엄마. 멋지다, 멋져. 다른 장소, 다른 시간 속에서는 언어도, 감상도 다른 법인가 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전시회를 감상하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의 <게르니카>방도 구경 한다.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전시를 보며 엄마와 딸이 나누는 교감이 수준 높으면서도 정겹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본다. 단발음의 감탄사가 나온다. 솨니는 "세상에…….3D 같아!"하며 감탄사를 내뱉는다. 왜 그토록 많은 화가가 벨라스케스를 모사했는지 알겠다. 화가들은 빛과 투쟁해야 하는 존재들. 빛을 다루는 예술가들은 신과 진배없다. 벨라스케스에게 경의를......(본문에서)

 

호퍼는 이름은 들어봤고 벨라스케스는 이름조차 생소한 화가인데, 이리 절찬을 하다니. 궁금해진다. 벨라스케스.

순례자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이베리아 반도의 땅끝 마을 '피니스테레'를 여행하고 그렇게 에스파냐,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로의 여정이 끝나 버렸다. 읽는 내가 다 아쉬운 이야기들이다.

 

프랑스의 몽생미셸 수도원 솨니 그림, 잘 생겼다! 표지에 있는 사진보다 솨니의 그림이 더 끌린다. 어쩜 그리도 잘 그릴까. 디즈니랜드 성이 몽생미셸 수도원을 본뜬 건 줄 처음 알았다.

 

세상어디나 친절한 사람, 불친절한 사람은 공존한다. 긴 바케트 샌드위치를 잘라달라고 했을 때 거절하는 여직원이 있는가 하면 흔쾌히 잘라주는 다른 가게 남자도 있으니. 미술관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호스텔 여직원이 있는가 하면 미술관이 모두 문을 열었다는 미소 띈 자전거 대여소의 여직권도 있으니.

-엄마,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경지에 오르는 때가 있어. 나도 모르게 기둥처럼 하늘로 솟아 저절로 그려질 때가 있지 마치 접신하듯이. (중략)

-말로는 할 수 없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게 예술이니까. 네루다가 말했잖아. 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고흐도 말했잖아. 그림으로가 아니면 어떨 말도 할 수 없다고. (본문에서)

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 그대로 따뜻한 풍경화다. 엄마를 닮은 딸, 딸을 닮은 엄마의 여행기엔 문학이 있고 미술이 있다. 다른 세대가 같은 공간에서 느끼는 감정의 차이도 체감할 수 있는 여행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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