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의 징비 - 치욕의 역사는 여기서 끝내야 한다
박기현 지음 / 시루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류성룡의 징비] 참회와 반성의 임진왜란 기록…….

 

 

임진왜란 때 이미 대동아공영을 꽤했던 왜적은 욱일승천기까지 준비하고 철저하게 계획하고 저지른 전쟁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왜적의 침입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방관했으며 당쟁에 휩쓸렸던 때였다. 임진왜란이 허술한 군사체제, 국제 정세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기에 더욱 아쉬운 전쟁이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의병과 의병장, 민초들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만약 류승룡이 전시재상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망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징비록은 당시 전시 재상이었던 류승룡이 남긴 7년 전쟁의 원인과 경과, 그 결과와 참회의 기록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볼 수 없는 국제적인 정세와 조정의 움직임, 전국 백성들의 형편, 전쟁을 지휘했던 자신의 느낌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기에 임진왜란에 대한 진정한 전쟁기록인 셈이다.

 

전쟁 전의 일본을 보자.

일찍이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 통일 전쟁을 펼치면서 일본의 경제와 상권을 장악했다.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총을 보급하게 되면서 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일본군의 군사력도 신식으로 강성해지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의 다이묘들의 불만을 분출시키고자 조선을 넘어 명을 정벌하는 대동아 공영을 야심차게 준비하게 된다, 조선 통신사를 통한 꾸준한 조선 탐색전과 철저한 전쟁 준비를 마친 히데요시는 일본사신으로 온 황윤길과 김성일에게 명나라를 침입한다는 입대명의 답신을 주기에 이른다.

 

한편 전쟁 전의 조선을 보자.

임진왜란이 있기 전 류성룡은 조선의 6대 임금을 모신 정승이었던 신숙주와 성종의 대화록에서 큰 예지력을 발휘한다.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지 말라는 신숙주의 권고를 보며 왜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순신을 전라도 좌수사로, 권율을 의주 목사로 천거했다.

왜적의 침공의도를 알고부터는 명나라에 알리고 전란에 대피하자며 선조에게 청원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의 방어체제를 제승방략에서 진관제로 환원하자는 건의도 하고…….

조선 최고의 명장인 신립과 마주한 류성룡은 왜놈들의 전쟁 준비에 대한 소문을 대해 만일 변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 지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신립은 왜놈이 조총으로 얼마나 맞힐 수 있겠냐며 왜놈을 무시한다.

 

더구나 조정을 혼란케한 것은 일본사신으로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는 전혀 상반된 보고였다. 왜국이 전쟁 준비를 마쳐놓은 듯하다는 서인인 황윤길의 보고에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그런 낌새가 없으니 괜히 두려워하지 말라는 보고를 올리게 된 것이다. 당파적 논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에, 일본의 상황을 알면서도 황윤길의 보고와 전적으로 반대되는 보고를 하는 김성일의 보고에 혼란스런 조정은 무사안일을 택하게 된다. 명나라를 침입하겠으니 조선을 길을 내어 달라는 왜에 대한 보고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혼란을 막을 수는 있었을 텐데...... 두 사람의 보고가 상반된 이유가 당쟁 때문이라니.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터지자 조선의 초기 대응은 부실했고 정보도 엉망이었다. 새벽을 틈타 침입한 왜적 앞에 부산은 금방 쑥대밭이 된 것이다. 군사 20만에 4~5만 척의 왜선에 대한 정보를 군사 1, 적선 400척으로 보고되기도 한다. 쑥대밭이 된 부산의 초전 상황이 조정에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았다. 더구나 초기의 전투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가짜 병부와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이었고, 오합지졸에 엉성한 지휘체제여서 싸움조차 못하고 도망가기 일 수였다고 한다.

급기야 선조를 탓하는 양반들의 상소가 이어지고, 백성들의 원망과 비난의 목소리는 거세지고, 부산, 충주, 한양까지 삽시간에 뚫리고, 왜가 한양에 당도하기 전에 도성은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탈 정도였을 정도다.

 

의주에 가서 기다리다가 명나라로 가자는 이항복, 북도로 가자는 윤두수의 건의가 있었지만, 국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는 류승룡의 만류로 겨우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당시에 선조가 명나라에 들어가서 조선을 비웠다면 조선의 운명이 온전했을까. 임란 후 조선이 명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일은 쉬운 죽 먹기였을 것이다. 어쨌든 권위와 체통에 연연하던 선조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속물이 되어 버렸고, 최적의 요새지라는 조령을 포기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의 패배로 한양은 순식간에 뚫렸고, 백성들의 궁에 대한 방화로 평양 진격은 더욱 빨라졌으니, 왜군이 조선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을까.

 

그나마 광해군의 활약과 결사항쟁으로 싸우는 병사들, 평양까지 순식간에 진격한 왜의 보급을 끊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진군을 멈추게 된 왜군, 조선을 넘보려던 여진족 누르하치의 구원병 제의를 거절한 류승룡은 명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게 되고, 전쟁 중 이순신의 하옥에 대한 부당함을 상소 등 긴박하게 흐르는 전쟁의 기록들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역사란 지나간 흔적을 되새기도 오늘의 삶에 교훈을 얻기 위한 기록일 것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라는 난리를 치르면서 조선의 역사가들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록 유산을 중시하던 조선에서 그 많은 학자들은 왜 임진왜란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막을 수도 있었던 난리, 일찍 끝낼 수도 있었던 전쟁이기에 가슴에 사무치는 회한이나 반성의 기록이 분명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혹시 가보로라도 남겨진 개인 기록은 없을까. 보다 많은 징비의 기록들이 전해졌다면 일제 강점기를 그리 허망하게 맞이하진 않았을 텐데……. 임진왜란이 일제강점기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참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1562(선조25)에서 1598년까지의 그 당시의 상황이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132)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강철 무지개
최인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철무지개]90년 후 미래한국의 풍경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

 

이 책은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최인석의 12번째 장편소설이다. 이미 중견 작가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저자이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다.

 

 

소설은 2105년 미래의 대한민국이 배경이다. 앞으로 90년 후 근미래사회의 한국이다. 비무장지대를 오갈 수 있고 북한을 지나 중국과의 국경을 넘나든다는 설정이 통일보다는 분단의 고착화를 보여주고 사회는 더 정교하게 기계화되고 시스템화된 모습이다. 효율화라는 가치 속에 인간성은 더욱 소멸되고 기계성이 사회를 장악한 모습이다. 국가 기능은 축소되고 사기업이 득세하면서 더욱 탐욕스러워진 세상에서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라는 단어조차 무색해진 세계다.

 

선택된 자들만 살아가는 SS울트라 에너지돔은 의식주, 교육, 직업, 의료, 세금도 모두 무상인 환상적인 집합거주지구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지역이기에 사람들은 늘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어디에도 갈만한 곳, 숨을 만한 곳은 없을 정도로 모든 기록이 코드화 되어 있다.

 

건조하고 기계적인 세계인 SS 울트라마켓 계산원인 지니(차지연)는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의 비정규직인 재선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폐허가 된 서해안을 찾는다.

 

거대 기업인 SS 울트라마켓은 계산에 오류가 생기면 교정되기까지 판매장의 모든 직원이 퇴근을 못하는 시스템인데다 책임자가 차액을 물거나 작업카드를 빼앗기고 해고당하는 곳이다. 계산대의 지연은 늘 기계적인 말만 반복하는 기계 인간 같은 자신의 모습, 높은 물가에 비해 턱 없이 낮은 보수로 일하는 것에 점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일인용의 무비베드에서 규칙적으로 잠을 청해야하는 SS울트라돔은 점점 신물이 나고 남자와의 연애도 늘 기계적이고 무미건조하다. 마치 감정의 뇌가 제거된 인간 같다.

 

한편 재선은 서울클라우드 익스프레스의 비정규직이다. 그의 한 달짜리 직업카드는 늘 고용불안을 가져온다. 일회용의 폐기용 노동자로서의 삶이 끝나고 나서 카드를 불법 사용하게 되면

테러리스트로 지목된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직원을 소모적인 부품으로 대하는 기업 시스템이다. 모든 시스템이 너무나 잘 짜여 있기에 쉽게 대항하지 못하는 기업 위주의 사회에서 사랑과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다.

 

서해안의 폐허는 중국 핵폐기물을 실은 중국 화물선 인줘호의 공해상에서의 침몰로 서해가 죽음의 바다가 됐기 때문이다. 출입금지가 된 서해안은 유령의 땅이 되고, 둘 만의 사랑을 위해 탈출해온 곳이지만 결국엔 붙잡히게 되고…….

 

회장인 한창수의 수술을 위해 날아간 멕시코시티에선 미모의 여간호사인 아이리스가 실종된다. 그녀가 실종된 지 몇 년이 지나자 아이리스의 애인이라는 제임스가 나타나 그녀를 찾게 되고 결국 아이리스는 테러리스트가 되어 나타나는데…….

 

무당의 딸 영희는 꼬임에 넘어가 노숙자 신세에서 마릴린이라는 가명으로 매춘을 하게 된다. 이후 탈출에 성공하면서 다시 노숙자가 되고, 끼니를 해결하기위해 찾아간 밥차를 통해 기독 단체에 들어가면서 나오미로 개명을 한다.

 

북한의 중강진까지 배달한 뒤 작업 지시를 받고 베이징으로 가는 모습에서 동북아에서 휴전선이 무너지고 국경선이 개방되는 긍정의 모습은 있다. 하지만 민영화로 인한 거대 기업의 출현은 개발과 소비, 에너지돔과 에너지돔과의 세계적인 네트워크화, 국가조차 네트워크 속으로 합류하거나 거대기업이 국가를 사버리는 형국을 보며 기업인의 탐욕을 꼬집고 있다.

 

 

공익이 없는 기업의 문제, 일회용의 폐기용 노동자이자 소모적인 일꾼으로 밥벌이에 나서야하는 비정규직의 세분화, 모든 인간과 사물의 코드화로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받는 체제, 초거대기업의 횡포와 직업카드가 없으면 테러리스트로 지정되는 폐쇄적인 사회의 모습에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그래도 자유의지를 찾고,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자 사회시스템을 거부하고 탈출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게 된다. 90년 후 미래한국의 풍경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대부분의 미래소설처럼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그리며 한 줄기 희망을 찾고 있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징비록 - 전시 재상 유성룡과 임진왜란 7년의 기록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 징비록] 서애 류승룡이 남긴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들...

 

요즘은 징비록과 서애 류승룡이 대세인가 보다. 드라마로 만나고 있는 징비록을 소설로 만나다니. 임진왜란 7년 동안 전시를 이끌었던 전시 재상 류성룡이 쓴 징비록을 읽고 있으니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만감이 교차한다. 국제 정세를 무시한 조정 중신들에게 속상했다가, 전쟁 중에도 당파싸움에 몰두하는 권력층에 분노했다가, 도성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피난 가는 임금과 신하들이 괘씸하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도 이순신의 해전에서의 승리와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키는 모습에 가슴뭉클해지기도 하고, .....

 

 

 

 

소설로 만나는 소설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이 안동 하회 마을로 파직 낙향한 후 큰아들이 죽고 홍수가 난 뒤 서미동 농환재에 머물던 시절, 승지 이효원과의 만남으로 시작한다. 전쟁의 기록인 <호종일기>를 남긴 승지 이효원과의 만남은 전쟁의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통하는 사이였을 것이다.

 

임진왜란의 시작은 일본 전국을 통일한 풍신수길의 야심에서 시작했다. 그는 외아들이 죽자 상투를 자르며 명과 조선 정벌을 외쳤고 세밀한 대동아 공영을 계획했다.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봄에 조선으로 출정해서 여름엔 요동, 겨울엔 북경까지 점령한다는 조선과 명을 한꺼번에 삼키려는 거대하고 야심찬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기초 작업으로 명호옥(나고야)에서 전진 기지를 마련하고 군비 마련, 전투식량 비축, 군사 징발, 선발대로 16만을 추렸다. 실제로 그 당시 왜군 병력은 전투병 158천 명, 예비군 88천 명, 후방 경비 병력 12천 명, 수군 8천 명을 편성하고, 인부와 사공까지 합하면 모두 200만 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같은 시기 조선의 상황을 보면, 전쟁 전 풍신수길이 조선 침략 의도를 알고 대마도주 종의지나 승려 현소 등이 알렸지만 조선의 왕과 비변사에서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병조판서 이이의 시무육조 건의도 무시했다. 하지만 류승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왜군의 동태를 수상히 여겨 정읍 현감인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천거했고 형조정량으로 일하던 권율을 발탁했다.

 

한편, 명나라에서는 조선과 왜가 짜고 명을 친다는 소문에 흥분하고 있었기에, 조선의 입장에서는 명을 달래야 했다. 조선은 의주 목사 김여물이 성을 고치고 군사훈련 하는 것마저 트집 잡고 명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며 김여물을 잡아 가두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임란 중에 선조는 김여물을 꺼내 탄금대로 보내 싸우게 해야했고 그가 쌓은 의주성에서 피신까지 했다고 하니…….

 

전시상황임을 알리는 남산 봉수대 횃불이 5개가 피어오르는 중에도 불구하고 파벌싸움을 벌였던 중신들은 동래에서 송상현의 피 묻은 보고가 올라와서야 긴급함을 알게 되는 장면은 어이없어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다. 준비되지 않은 군사력으로 그나마 나라를 빼앗기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고......

 

어명을 받기 전에는 군사작전조차 펼치지 못하는 지휘체제인 제승방략으로인해 제대로 된 군사작전까지 펼치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황이 속출되고, 인력이 부족한데도 책임추궁을 하며 애꿎은 무인들만 죽이는 상황도 발생하고, 더구나 징집할 군인들을 기록한 병부엔 가짜 군인들로 가득하고, 무기고는 텅 비어 있는 실정이고, 결국 순식간에 동래가 무너지고, 파죽지세로 한양까지 왜군이 장악하게 되고, 선조는 평양성을 거쳐 압록강 입구인 의주까지 피신해야 했던 상황이었다. 더구나 선조는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에 들어갈 생각까지 한 대목에서는 분노가...... 그래도 왕세자로 지명된 18세의 광해군이 남아서 전시 조선을 이끌며 백성들과 의병장들을 격려했던 대목에서는 위로도 받고......

 

세도가들의 무사 안일한 태도, 명나라까지 넘보는 일본의 치밀한 계획성, 전쟁이 발발하자 나라와 백성을 지키기보다 먼저 도망치는 관리들과 장수들,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명나라까지 넘보는 분위기인데, 조선의 조정과 관리들은 그런 정보를 모두 무시하며 자신들의 권력욕만 채우고 있는 모습, 분노한 백성들이 왕이 빠져나간 궁을 불태우는 장면, 그 와중에도 왜에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덤비려는 군인들과 백성들, 목숨 걸고 대드는 모습에 정복 전쟁이 쉽지 않음을 예감하는 일본 무사들, 백성들의 저항에 뒤늦게 반성하는 조정,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해전에서의 승리로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왜적을 떨게 한 이야기, 빼앗긴 땅을 찾으려고 전국에서 일어난 의병장과 의병들, 이런 숨 막히는 드라마가 또 있을까.

 

책에서는 욱일승천기로 불리는 일장기가 등장하는 내력도 나오고, 조선 국왕을 일본 천황으로 옹립하고, 일본이 명나라 황제가 되려는 시나리오 등 대동아공영과 내선일치의 뿌리가 여기서 시작했다니......

 

애초에 일본을 다녀왔던 황윤길과 김성일의 왜의 침략에 대한 보고가 일치했다면, 조선은 임진왜란에 대비할 수 있었을까. 이순신 장군과 의병장, 선조의 중국행을 만류한 군신들, 면천법을 쓰면서까지 전쟁을 지휘했던 광해군이 없었다면, 류승룡 같은 명재상이 없었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야기들이다.

 

 

 

 

징비록은 서애 류승룡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 난이 일어난 배경과 과정을 밝혀 다시는 이런 수모를 겪지 않도록 조선의 잘못을 징계하고자 쓴 기록이다. 전시재상이 되어 나라가 없어질 위기까지 몰리면서 느꼈을 비애가 전해지는, 유비무환의 충정을 담은 전쟁 기록이다.

 

참고로, 저자인 서애 류성룡은 중종 37년에 경상도 의성 지방에서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아들로 태어났다. 16세에 향시에 급제한 그는 21세에 퇴계 이황의 문하에 들어갔고, 25(1566)에 문과에 급제해 승문원 권지부정자로 관직에 올랐다. 임진왜란 때에는 좌의정과 병조판서를 겸했고 도체찰사에 임명되어 군무도 총괄했다. 선조가 난을 피해 개성으로 갔을 때 영의정이 되었고, 평양에서는 왜가 쳐들어오지 않는다는 김성일(같은 동인)을 두둔했고 나라를 그르쳤다는 반대파의 탄핵을 받아 파직 당해 백의종군했다. 서울 수복 후 다시 영의정이 되었고, 훈련도감의 제조를 맡아 군비 강화와 인재 양성을 도모한 전시재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렌디피티 - 우연을 성공으로 이끄는 혁신의 힘 PSI 좋은책 11
맷 킹돈 지음, 정경옥 옮김, 김경훈.신기호 감수 / 이담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렌디피티] 우연을 성공으로, 행운을 지혜롭게 성공으로 이끄는 혁신의 힘!

 

우연이 행운이 되고, 행운이 성공이 되려면 그런 우연의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많은 노력 끝에 우연이 필연도 되는 법이다. 우연에 따른 행운 같은 세렌디피티도 알고 보면 많은 노력의 결과물일 것이다. 행운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그래서 공감된 책이다.

 

 

serendipity

세렌딥의 세 왕자에 대한 동화에서 시작된 세렌디피티는 완전한 우연에서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을 이뤄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실패의 결과에서 발견을 이뤄내는 것이다. 얼핏 보면 세렌디피티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인 것 같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의미는 준비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연히 지혜를 모았더니 대박을 치는 경우다.

 

만약 관습적인 사고방식에 굳어 있는 조직에서 혁신을 일으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맷 킹돈은 그런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맷 킹돈은 상업적인 성공에 우연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시기와 장소,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는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끈기를 가지고 아이디어를 내고 성공을 향한 집념이 있었다고 한다. 혁신을 위한 노력과 집념이 있는 이에게 세렌디피티는 찾아온다고 한다.

 

발명과 아이디어를 창의적으로 개발하는 능력은 근육과 같으며, 그것을 운동으로 키우거나 그대로 퇴화하게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17)

 

맷 킹돈이 말하는 혁신의 과정을 보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동료들과 협업하고 반감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대음 방식이다. 창의성에다 성공적인 상업적 출시가 이뤄지는 것이다. 단순한 고객이 인생 전반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고객사의 고정관념과 은어에 현혹되지 않고 항상 아이디어를 현실화해야 한다. 착수한 프로젝트에 대한 영감을 얻어야 하고, 우연에 의하지만 행복하고 이로운 결과를 내는 것, 힘들게 얻어진 것, 열심히 준비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한다.

 

세렌디피티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보자.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말고 너무 많이 말하지 말고, 그냥 시도하라. 인맥을 관리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밗 갈채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때로는 말을 중단하고 경청할 때를 알아야 한다. 겸손히 귀를 기울여야 다른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외적인 요소를 포용하고 외부의 사람과 협력하라. 넓게 가는 확장적 사고와 깊게 가는 수축적 사고를 잘 활용하라. 일을 마무리하려면 끊임없이 노력하되 창의적인 사람의 재능을 얻어라. 타성에 젖지 말고 서로 연결하고 보태고 융합하는 시도야말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주변을 보고 이면을 보고 벗어나보는 겪은 새로운 시야를 제공한다.

 

혁신은 분노하는 사람, 양면적인 사람, 거절하는 사람, 직접 해결하는 사람이 있는 주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95)

 

맷 킹돈은 세렌디피티를 이루려면 혁신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혁신을 위해서는 때로는 선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해적이 되어야 서로 다른 시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의도적인 영감을 얻기 위한 자극 탐사도 알려준다. 혁신가가 가장 좋아하는 무기인 아이디어를 실천하는 방법, 혁신을 위한 충돌의 공간, 장애물 극복 방법에 대한 노하우도 알려 준다.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라 실용서다.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론인데다 혁신을 원하는 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여러 기업의 사례,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 혁신에 대한 교훈적인 경험을 담았다.

 

 

우연하게 얻은 성공의 이면에 노력과 준비성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회가 왔어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우연을 성공으로 이끌고 싶다면, 세렌디피티의 행운을 잡고 싶다면 혁신을 해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다. 무엇보다 혁신의 위력을 실제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기에 생생하게 느껴진다.

우연을 성공으로 연결하고 싶다면, 세렌디피티를 원한다면 알아두면 좋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혁명의 맛 - 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가쓰미 요이치 지음, 임정은 옮김 / 교양인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혁명의 맛]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요리는 인간의 삶과 공존한다. 사회변화와 함께 한다. 생활이 풍요로워질수록 요리 종류는 다변화되었고, 세상이 빨라질수록 음식도 인스턴트화 되었고, 불안한 사회일수록 자극적인 맛을 찾았다. 중국에서도 수많은 왕조의 변화, 혁명의 역사와 함께 음식의 변화들이 있었다고 한다. 음식의 역사를 탐험하다 보면 중국 혁명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미식을 즐기는 문화의 발달은 송나라 때부터다. 강남의 싱싱한 나물과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게 된다. 청나라 때는 만주족과 한족 문화가 융합하면서 만한전석이 더욱 화려해지기도 한다. 문화혁명기에는 소박한 요리인 노동병 메뉴가 등장하고, 등소평의 개방 이후에는 음식점의 다양화가 이뤄진다.

 

책에서는 음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단면들을 보여준다.

양고기 요리를 즐겼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 쌀밥을 즐겼던 주원장, 강남을 8차례나 방문했던 건륭제 때는 만한전석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닭과 오리 요리를 좋아한 건륭제, 중국 역사에서 항상 국가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환관들이 미식가가 된 사연들,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던 서태후, 달걀 하나가 서태후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명의 환관을 거쳐야 할 정도로 까다로웠던 서태후 이야기 등 역사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청대에 내성의 후퉁(뒷골목)에서 팔던 바이미저우(흰 쌀죽), 유타오(막대기 모양의 튀긴 빵), 싱런차(살구씨 속을 갈아 쌀가루와 설탕을 넣고 끓인 차), 더우장(두유), 소금에 절인 달걀, 더우츠(중국식 청국장) 등을 팔던 행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치 예전에 골목마다 외치던 찹쌀떡 사려~~’처럼 말이다.

 

오늘날 베이징 명물로 자리 잡은 솬양러우(양고기 샤브샤브)’카오양러우(양 불고기)’ 같은 요리는 몽골 지배의 흔적이라는 이야기, 중국 궁중 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에 담긴 통치술, 홍위병의 혁명적 요리, 서역 후이족에서 온 볶음밥인 차오판이, 곡식을 빻아 먹는 화베이 지역의 요리, 쓰촨요리인 매콤한 비빔국수인 단단몐(擔擔麵) 의 인기가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의 인기로 오른 이야기, 마오쩌둥의 시대엔 매운 요리가 유행했던 이야기, 중국을 대표했던 광둥 요리, 중국에서 시작한 라몐, 왕조가 세워질 때마다 요리에 대한 요구가 달랐던 중국, 서양요리와 융합하는 상하이 요리, 쑤저우 요리와 한저우 요리의 융합 등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이자 리얼리즘의 대표인 루쉰이 베이징 장발여관에 묶으면서 쓴 읽기를 통해보는 뒷골목 음식문화도 볼 수 있다. 베이징에서 중국 경극의 황금 시대를 연 경극 스타 메이란팡이 즐기던 신맛이 강한 더우즈(豆汁, 콩국)도 소개 한다.

문화혁명기엔 베이징의 고급 음식점에선 노동병 메뉴만을 내놓아야 했는데, 노동병 메뉴는 요리 하나와 옥수수 만터우, 건더기가 거의 없는 국으로 된 식단이었다.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한 소박하게 차린 식단이었다.

 

맨 마지막 장의 고추와 쓰촨요리의 탄생에서는 조선을 거쳐 들어간 고추가 둥베이를 통해 조선족과 여진족이 즐기던 맛이된 사연, 중국의 매운 맛에 합류하는 과정, 마오쩌둥의 출생지인 후난에 고추가 최초로 전파되면서 혁명을 위해 매운 것을 먹자고 외쳤던 마오쩌둥 이야기까지 흥미롭다.

 

사실 청나라 중기까지 귀족, 지방 호족, 부유층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급 요리는 비밀에 붙였기에 기록이 없었고 구전요리라고 한다. 문화혁명기에는 요리명칭이 바뀌기도 하고, 신중국이 건국되는 시기에는 번체자를 간체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자가 생기기도 하고...

 

지금은 전반적으로 매운 요리가 대세라고 한다. 기존의 매운 요리로는 쓰촨 요리였는데, 지금은 매운맛 요리가 인기라고 해서 지역별 전통 요리의 특색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4대요리인 베이징, 광둥, 상하이, 쓰촨 요리 등 전통적인 조리법과 요리가 조금씩 해체되고 융합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의 요리 평론가이자 미술감정가인 가쓰미 요이치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 미술품 감정과 국제적인 가격 판정을 의뢰받아 중국을 방문했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중국 음식 맛을 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를 음식 탐사를 하다보면 중국의 왕조의 흥망사와 중국 혁명의 풍경, 개방 이후의 음식의 변천사를 만날 수 있다.

 

금은 해체와 파편화, 융합의 시대다. 마찬가지로 중국 요리도 해체와 파편화, 융합의 과정을 거치며 변모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왕조의 변천, 혁명의 역사와 함께 한 중국 음식의 해체와 융합의 맛있는 이야기다. 읽는 내내 음식의 맛이 어떨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군침을 돌게 하는 탐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