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싱 1 오싱 1
하시다 스가코 지음, 김균 옮김 / 청조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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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싱1] 일곱 살에 시작된 오싱의 이야기가 너무 눈물겨워.

 

 

 

1900년대 초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 소설 <오싱>

곧 영화로 개봉한다고 하는데…….

 

가난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한다는 게 맞는 말일까.

일곱 살에 남의 집 더부살이를 떠난 오싱의 이야기가 지금의 아이들과 비교해 보면 상상이 안 되는데…….

 

83세의 여장부 오싱은 아들 히토시의 17번째 슈퍼마켓 체인 스토어 오픈식날 가출한다.

엄마와 함께 왔었던 추억의 긴상온천으로 아무도 모르게 떠난 것이다. 아끼던 옷들을 챙겨 계획적인 가출을 하다니! 왜 하필 중요한 날에 자리를 피했을까.

 

할머니 일이라면 뭐든지 훤하다는 손자 게이는 할머니가 해 준 이야기 속에서 힌트를 얻어 긴상온천으로 온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온 손자와 할머니의 추억여행은 시작된다.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은 버킷 리스트처럼 오싱은 가고 싶던 곳을 찾아다니게 된다.

 

누구나 죽기 전에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추억여행을 원하게 될까.

먼 기억 속에 숨겨 둔 추억을 이야기를 할 때 오싱의 얼굴에선 끝없는 미소가 피어나고 눈은 더욱 생기 있어진다.

 

눈 덮인 마을에 대한 오싱의 추억은 어떤 것일까.

집을 떠나 걷기 시작한 길이 바로 친구를 찾아 떠나는 순례길이 된 소설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처럼 오싱에게도 순례길이 되는데.......

 

80년 전, 이곳에선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07년에 작고 초라한 초가집에서 일어난 일들을 오싱은 손자에게 이야기한다.

7살에 시작한 더부살이 인생을 이야기 하려니 서러운 눈물이 흐르고…….

굶주림을 면하고자 시작한 남의 집 더부살이를 손자는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시절 가난의 굴레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남의 집에서 밤마다 엄마를 부르다 잠이 들게 되고…….

 

학교 가는 아이들이 부러운 오싱의 도둑공부로 인해 생각지도 않게 학교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다 할머니가 주신 은화가 오해를 부르고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는데…….

포목점의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둑 누명을 쓰게 되자 그 집을 뛰쳐나온다.

그리고 집으로 오는 길에 숯구이 마쓰조 영감과 탈영병 쥰사쿠를 알게 된다. 눈 쌓인 산 속 생활 속에서 쥰사쿠에게서 글을 배우며 즐겁게 생활한다.

 

겨울을 넘기고 봄이 왔을 때 오싱은 그리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다 두 번째로 가게 된 더부살이 집은 쌀 도매상이었다.

인정 많은 안방마님의 배려, 동갑내기 주인 딸의 시샘, 질투, 우정은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약간의 위로가 되었을까. 좋은 옷, 좀 더 나은 음식, 안주인의 인심은 오싱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된다.

주인집 딸의 책들을 빌려 읽으며 오싱은 학구열이 가득한 당찬 의지의 소녀로 자라게 되는데......

 

처음엔 오싱의 이야기에 느낌이 와 닿을까 싶었는데......

세월의 격차가 너무 크고 일본이라는 배경에 공감이 갈까 싶었는데........

눈시울을 붉혀가며 읽느라 혼이 나는 소설이다.

6.25 전후의 삶을 살았다면 가난과 굶주림에 대한 공감이 더 깊을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오싱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영화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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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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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브 데이즈] 우리는 서로 마음을 나누고 있을까.

 

 

<빅 픽쳐>를 읽으면서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의 팬이 되어 버렸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에는 인물에 대한 치밀한 분석, 직업과 사물에 대한 지식의 깊이, 마지막까지 반전이 있는 이야기가 있기에 저절로 집중하며 읽게 되는데…….

<파이브 데이즈>에서도 영상의학과 문학, 언어, 시, 인물의 심리분석 등이 뛰어나기에 읽는 재미는 배가 된다. 역시 더글라스 케네디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통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일까? 서로를 인정해주는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에게 없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이 호감을 가지게 할까?

가족들에게서 이런 통하는 마음을 가질 수는 없는 걸까?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마음을 열어 보이는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한데…….

 

잘못된 결혼인 줄도 모르고 그럭저럭 행복하다고 살아왔던 로라는 결혼 23년차인 워킹 맘이다. 현명한 아내, 지혜로운 엄마, 능력 있는 직장여성이라는 3박자를 잘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면 살아왔다.

하지만 로라는 왠지 스트레스가 쌓이고 이성을 잃는 순간도 생기고 어딘지 우울하다.

남편과의 사이도 별로인 것 같고 아들과 딸과의 대화도 껄끄럽고 가족들의 인정도 받지 못하는 듯하다.

 

어느 날 영상의학과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가 보험세일즈맨인 코플랜드를 알게 된다. 비슷한 습관을 가진 남자 코플랜드를 만나면서 몇 년 동안 자신을 괴롭힌 가장 근원적인 생각을 말하게 되면서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로라는 그동안 가족들에 맞춰 사느라 정작 자신을 돌 볼 시간이 없었음을,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해 본 적이 없었음을, 가족들과 통하는 대화 한 번 제대로 못해 봤음을 깨닫게 된다.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살아가면서 부딪히게 될 온갖 역경을 함께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닐까요? 물론 동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너무 비현실적인......(책에서)

 

로라는 코플랜드와의 대화를 통해 남편의 실직이 가정의 균열을 가져왔음을, 아들과의 대화가 일방적이고 강요적이었음을, 딸의 신뢰를 전혀 얻고 있지 않음을 알게 된다.

 

바캉스 갈 때를 빼곤 생활공간이 집과 직장뿐인 생활이었다. 사생활도 전혀 없이 오직 가정과 직장에 충실히 살아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코플랜드와의 대화를 통해서야 스스로 인생의 한계를 정해 놓고 살아온 세월들을 돌아보게 된다. 인생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는데 주변을 둘러보지도 못했고 일상탈출은 생각도 못하다니…….

 

아들과 딸, 남편, 직장동료 앞에서 늘 긍정의 가면을 쓰고 살아온 세월들을 돌아보며 자신의 가정이 진정으로 화목한 적이 있었는지를 되묻게 된다.

긍정의 가면 뒤에 숨은 진실을 한 번도 들여다 본적이 없다니!

자신을 들여다 본 시간이 없었다니!

자신의 집을 대출로 마련하면서도 좋았던 기억이 전혀 없었다니!

 

그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 왔을까?

얼마나 가식으로 살아온 걸까?

서로가 서로에게 손 내밀지 못하고 위로한다고 꺼낸 말이나 사랑한다는 말은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굳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기억뿐인데…….

마음을 통하며 산다는 게 이리도 어려운 걸까.

 

로라와 코플랜드는 5일간의 일정동안 서로의 허점을 들어 내보이며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나간다.

일상탈출을 꿈꾸던 로라에게 해피엔딩은 무엇일까.

더글라스 케네디답게 이 소설도 예외 없이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 소설은 진정한 나를 찾는 5일간의 여정을 그린 이야기다.

행복을 정말 손에 넣고 있는지, 지금 사는 게 만족스러운지를 반문하게 하는 소설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스스로 한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상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를 잘 그려낸 소설이다.

상대의 말을 존중해주고 상대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데…….

매일 마음을 나누고 살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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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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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문학의 힘에 기댄  인문학적인 연애심리테라피

 

 

소설 속에 나오는 사랑의 형태나 사랑의 심리를 분석해 본다면 현실의 사랑문제에 답을 얻을 수 있을까.

때로는 달콤하고 때로는 격정적인 사랑, 때로는 괴팍하고 때로는 죽음을 불사를 정도의 뜨거운 사랑 이야기는 현실과 맞닿아 있기도 한데......

그렇다면 소설 속 연인들을 통해 현실의 아픈 사랑을 치유할 수 있을까.

사랑은 설렘이기도 하고 배반이기도 하기에 늘 달콤한 것만은 아니다. 사랑은 오히려 혼란스럽고 아프고 쓴 맛일 수 있다.

허기진 아이처럼 사랑에 허덕이다 보면 고민스럽기까지 하다. 뭐가 부족한 걸까. 진정한 사랑이 아닌 걸까. 양념이 부족한 음식처럼 무엇을 더 첨가해야하나.

 

 

이 책은 명작소설 속에 나오는 신경증이나 광기에 가까운 기이한 연인의 심리, 판타지를 벗긴 사랑의 누추한 면모 혹은 인문학적 통찰, 사랑의 기적 또는 기적을 행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좋은 소설은 이미 이런 미친 듯한 기묘한 심리들을 발견하고 묘사했다. 좋은 소설은 마음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담은 '마음의 백과사전'이다.

(책에서)

 

훌륭한 소설은 말하기 꺼려지던 심층심리를 명명백백하게 언어로 드러낸다고 하는데, 소설은 자신의 심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거울 같은 것인가.

흔히들 유행가를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라고 한다. 소설도 그런 역할을 하겠지.

 

윤대녕의 <달에서 나눈 얘기>에서는 어떤 사랑을 치유할까.

새로 시작한 연애가 반복적인 고뇌와 번뇌만 안겨준다면, 윤대녕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한 명상으로 가득한 짧은 소설이다.

2% 부족한 사랑으로 시작하는 결핍된 사랑 이야기다.

 

어느 날 자동차 사고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여자가 남자를 찾아온다.

남자는 중학생 때부터 여자를 짝사랑하며 쫓아다니지만 대학생이 된 여자는 남자를 버리고 다른 사람을 사귄다.

여자는 절망과 고독 속에서 세 번의 자살 시도를 이야기하고 남자에게 청혼한다. 그러자 남자는 자신을 사랑하는지 묻는다.

여자는 솔직하게 답한다. 남자가 절실하다고, 아직 사랑인지는 모르겠다고.

남자는 자신의 마음에 자문해 본다. 그리고 그녀에게 결혼하자고 한다.

여자는 지금부터라도 남자를 사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하고 남자는 그 말이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결핍된 만남, 결핍된 사랑이다. 불타는 사랑보다 불 지피는 사랑이다.

온전히 내 것이어야 만족하는 사랑은 왠지 불안하다. 결국 터지고 마는 활화산 같다.

부족한 채, 덜 채운 채 시작하는 사랑에는 채움의 미학이 있지 않을까.

 

상대의 완전함을 찬탄하는 시간보다 불완전함을 발견하는 사건이 더욱더 사랑을 성장시키는 토양노릇을 한다. 상대의 결핍은 다른 무엇보다 강력한 에로스의 화살인 셈이다. 결핍 있는 상대에게 매혹되는 이유는 그의 결핍이 나의 결핍을 환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중략)……상대의 결핍은 내 결핍을 일깨워준다. 내 결핍을 깨달아야 사랑을 꿈꿀 수 있다. 스스로 온전하다고 믿는 사람은 사랑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한다. (책에서)

 

저자는 열렬한 사랑 한가운데도 결핍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데…….

부족을 채우는 것도 사랑의 재미겠지. 시련을 통해 사랑이 더 튼실해지듯이.

그리스 신화의 에로스도 결핍과 풍요의 중간에 있는 자라고 한다.

결핍을 아는 자 풍요의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랑에 대한 결핍을 맛보았다면 풍요의 빛도 눈부시게 볼 수 있으리라.

결핍이 절박할수록 풍요를 위한 열정도 불태울 수 있으리라.

 

완전한 사랑에 대한 전설. 완전한 사랑에 대한 그림들은 이상향, 유토피아, 샹그릴라에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부족함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 행복의 길임을 생각한다.

 

어떤 이는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다 사랑앓이를 시작하게 되고 어떤 이는 신경증적 혼란에 빠지면서 불안 의심, 두려움이라는 심리적 좌절을 겪기도 한다.

사랑이 치명적인 허무인 사람도 있고 만능의 묘약인 사람도 있다.

사랑은 허무와 누추한 국면들도 있지만 구원의 힘도 있다.

사랑은 환상과 잔혹성도 있지만 치유의 힘도 있다.

 

순수한 끌림에서 비롯된 사랑, 서로 첫눈에 반한 사랑, 현실적인 압박감을 이겨낸 사랑, 상대만 보이는 사랑을 다양한 소설 속에서 끄집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놀랍다.

소설을 읽으며 사랑에 억눌렀던 마음을 풀어내고 어두워진 마음을 밝게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핍 속에서도 건강하고 풍요로운 사랑, 행복한 사랑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은 '프레시안'에 연재된 <박수현의 연애상담소>를 책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소설형식의 서두, 에세이 형식의 본문이 정말 특이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연인들의 연애심리를 파헤친 책이다.

문학이 지닌 치유의 힘에 기대고 싶은 이들을 위한 인문학적인 연애심리테라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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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
앨리스 먼로 지음, 서정은 옮김 / 뿔(웅진)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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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이란, 이런 것!

 

 

82세의 현역 작가인 앨리스 먼로에 대한 평가에는 최고라는 찬사가 거침없이 붙는다.

북미 최고의 단편작가, 단편 소설의 정수를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체호프, 캐나다 총독문학상 의 유일한 3회 수상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캐나다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여성 작가로는 13번 째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북미권에서 1993년 미국 소설가 토니 모리슨 이후 20년 만에 나왔기에 북미권을 뜨겁게 달궈 화제가 되기도 했다는데…….

깊은 연륜이 묻어나는 화사한 미소천사인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소설만을 써 왔다는데…….

오늘 그녀의 소설집을 만났다.

 

처음에 나오는 단편소설이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다.

 

새 비서가 알려준 놀이는 딱 하나. 종이에 남자 애 이름과 자기 이름을 적고는 서로 같은 철자를 지워버린 다음, 남은 글자 수에 맞춰 손가락으로,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을 차례로 말하면서 세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 숫자에 딱 걸리는 단어가 그 남자 애와 나 사이의 운명이라면서....(책에서)

 

조해너는 맥컬리 씨의 가정부다.

그녀는 주근깨가 난 넓은 이마의 붉은 곱슬머리를 가진 여자다.

약간 시골스럽기도 하고 약간 이국적이기도 한 그녀는 수수한 차림이다. 여태 남의 집에서 일만 했으니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만한 패션 감각도 없고 도시사람 같은 세련미는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여인이다.

 

그녀는 식탁과 의자, 침실용 가구 일체와 소파, 커피 테이블과 낮은 탁자, 거실 등, 진열장과 식기 세트를 기차로 배송하기 위해 역으로 간다. 그리고 자신의 기차표도 끊는다.

부드로가 있다는 서스캐치원의 그디니아 행으로 가려고.

대륙횡단 열차를 타고 별 탈 없이 가구를 옮길 수 있을까. 부드로는 반겨 줄까.

 

그녀의 행색은 그대로 월레츠 부인이다. 이전에 가정부로 있었던 월레츠 부인의 옷을 물려받았기에 할머니 티가 철철 난다.

그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급 의상실로 간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가보다 2배나 비싼 옷을 산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겁 없이 저지르는 것일까.

 

뭘 걸치느냐에 따라 자기가 좀 그럴 듯해지는 것 같은 이런 어리석은 느낌은 평생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책에서)

 

좋은 일이 있냐는 의상실 점원의 말에 결혼을 하게 될 것 같아요. 라고 무심코 내뱉는다.

결혼. 부드로의 입에서 결혼이야기는 나온 적도 없는데…….

그가 역으로 마중 나와 주기는 할까.

 

언제나 예의 바르고 말 수 적은 노인 맥컬린은 갑자기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너무 억울해서다.

왜냐하면, 가정부 조해너가 마르셀의 가구를 가지고 부드로에게 간다는 작별편지를 읽게 된 것이다.

맥컬리의 사위인 부드로 씨에게 가구를 보내며 자신도 따라간다고. 허걱.

맥컬리의 사위인 부드로는 맥컬리의 모든 것을 가져가 버렸다.

수술 받으러 갔다가 죽은 가엾은 딸 마르셀도 그의 탓만 같고.

이제 가정부까지 챙겨 달아난 것이다.

그래도 사위라고 가구를 담보로 돈을 빌려줬는데, 또다시 가구를 담보로 돈을 빌려 달라는 파렴치하고 믿을 수 없는 공군 장교 사위를 이젠 고소하려고 했는데…….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다니.

 

아이의 장난이 어른들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을까. 장난 같은 인생.

부드로의 딸인 이디스의 장난 편지가 모든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 줄이야.

이디스는 조해너의 편지를 받고는 아버지인 척 장난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편지를 받은 조해너는 부드로가 자신에게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편지는 점점 농도 짙은 애정 편지로 바뀌게 되고.

마지막 장난 편지에는 와주면 좋겠다고 적혀있고…….

 

자신에게 관심과 사랑을 표현해 준 첫 남자이니 더 망설일 것도 없어진 그녀.

조해너는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멋진 옷까지 입고 그디니아 역에 도착한다.

아무도 없고 황량한 바람뿐인 역에.

 

물어서 찾아간 허름한 이층건물.

사람이 살지 않는 듯 한 건물에 부드로가 기침을 하며 누워있다.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 조해너와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심지어 그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는 부드로와의 만남.

독자의 입장에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보고 있는 긴장감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그녀의 간호를 받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 부르도는 그녀의 가방에서 그녀의 이름과 통장과 지폐를 본다. 장인 집에서 잠깐 봤을 뿐, 가정부의 이름도 몰랐고 말도 해 본적이 없었는데…….

지금 호텔은 돈 먹는 호텔이니 정리하고 다른 걸 알아보라는 조해너의 충고.

지금에야말로 조해너 같은 여자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드로.

 

골려주려고 시작한 아이의 유치한 편지장난이 어른들의 삶에 사랑과 미움, 행복을 가져온다는 이야기가 잔잔히 흐른다. 마치 한적한 시골풍경 같은 단순한 이야기에 조금씩 반전을 곁들이는 이야기다.

작은 단편소설 속에 반전과 긴장, 스릴과 순수함을 한꺼번에 녹아내는 작가만의 재치가 가득하다.

감미롭고도 강렬한 문장으로 우리의 삶을 노래한 소설가라는 찬사가 무색하지 않은 소설이다.

미움, 우정, 구애, 사랑, 결혼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쓴 아홉 빛깔 이야기가 맛깔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2007년 5월 전 세계 상영되었던 화제의 영화 <Away from Her>의 원작이라고 한다.

<타임> 선정 2001년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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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1 - 송지나 대본집
송지나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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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시계 1,2] 퇴근시계라던 드라마, 책으로 읽다.

 

 

방송 드라마 역사상 한 획을 그었다는 모래시계를 책으로 만났다. 대본집 형식으로 된 독특한 책이다. <모래시계> 드라마를 본 적이 없지만 워낙 인기가 있어서 서울의 남녀 직장인들까지 끌어 들여서 드라마 방영 시간에는 도로가 텅 빈다는 말까지 있었는데...... 일명 퇴근시계라는 닉네임도 얻었다는 그 유명한 드라마가 아닌가. 20여 년 의 세월이 흘러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이름인데......

 

고 김종학 PD가 총 감독하고 송지나 작가가 대본을 쓴 모래시계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두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이뤄진 작품이라고 한다.

힘의 정체는 무엇일까. 실상일까 허상일까.

갈수록 힘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그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는데......

 

모래시계는 고현정, 최민수로 기억되는 드라마인데, 박상원이 메인이어서 놀랍다.

손현주, 이정재도 살짝 나오고......

 

강우석(박상원 분).

가난한 촌부의 아들이었던 우석은 어릴 때부터 수재였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늘 민주주의를 지키는 아들이 되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을 원했고 까마귀 노는 곳에 가지 말기를 당부했다.

하지만 군에 입대하게 되면서 가게 된 곳은 광주사태의 현장이었다. 힘없는 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야 하는 자신의 입장, 심지어 첫사랑 혜린을 무너뜨리고 친구인 태수마저 죽음으로 몰아야 했던 현실 앞에서 신념이란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을까. 정의가 힘 앞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참담했을까.

 

박태수(최민수 분)

우석의 친구이자 싸움맨이다. 육사로 진학을 하려다 아버지의 빨치산 이력 때문에 거절 당하고 정치깡패의 길로 들어선다. 어렸을 때부터 근육이 근질거렸을까. 머리보다 주먹이 앞선 그에겐 어둠의 주먹세계가 운명 같은 길이었을까.

그는 친구 우석을 만나며 혜린을 알게 되고 혜린을 짝사랑하게 된다.

우연히 친한 후배와 밥 한 끼 먹겠다고 찾아간 광주에서 그는 강자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게 된다. 그렇게 역사의 현장과 마주하게 되고......

그리고 신분에 맞지 않는 여인을 사랑했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삼청교육대에 끌려가게 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과 함께 하는 것, 평생을 믿어온 친구와 함께하는 것이었는데, 세상은 그의 소소한 소원마저 이루기 힘든 곳일까.

 

윤혜린(고현정 분)

아버지가 인생의 전부였고 방패막이었던 어린 시절, 아버지가 납치당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점점 알아간다.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한 아버지, 부패 세력을 등에 업은 악덕 사업가 아버지의 진실임을 알고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태수를 제거하려는 아버지의 음모를 알고 아버지의 사업을 잇는다. 하지만 아니러니 하게도 그녀의  아버지는 태수와 손을 잡은 권력들에 의해 숨을 거두고 만다.

 

힘이란 무엇인가, 권력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는 책도 읽었고, 그렇기에 우리의 기억에는 나쁜 기억이 더 많아서 부정적이라는 책도 읽었다.

제자 백가인 순자의 말대로 인간의 본심은 선이 아닐지도 모른다.

늘 다투고 분노하고 비방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는 모습이 하루에도 몇 번은 있을 텐데.....

 

이 책을 읽으니 마치 역사의 현장에 와 잇는 기분이다.

전해들은 역사이지만 늘 가슴을 아프게 한 이야기였는데, 책 속의 장면들이 너무 실감나서 눈물을 훔치게 된다.

<모래시계>는 시대의 아픔을 배경으로 한 멜로드라마이기도 하고, 힘과 권력과 욕망에 대한 사회적 드라마이기도 하다.

지금 재방영된다면 다시 퇴근시계가 될 수 있을까. 세월이 이만큼 흘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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