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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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다. 다작으로 유명한 그의 최근작 <몽환화>를 읽었다. 그렇게 많은 책을 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꿋꿋하게 지키면서 이렇게 재밌는 소설을 창작해내는 작가의 재능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하긴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소설 <몽환화>의 결말에서 이런 재능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슬쩍 드러내기도 했다. 역시 고수답다.

 

전설에나 존재하는 노란색 나팔꽃에 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몽환화>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별 개의 사건으로 출발한다. 도쿄 시내 복판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과 중학교 2학년 소년이 마주한 아스라한 기억 속의 첫사랑이라고나 할까. 고수는 자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반드시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그러니 독자는 주의할 지어다. 소설의 어느 부분에서고, 초반의 설정된 이야기가 등장해서 사건 해결에 핵심적인 기능을 하니 말이다.

 

그렇게 두 개의 사건은 많은 시간이 흘러 핵심 사건인 아키야마 슈지 사건에 도달한다. 작가는 두 명의 남녀 주인공에게 사건 해결의 임무를 부여한다. 한 명은 한 때 올림픽 수영 국가대표를 꿈꾸었던 약관의 아키야마 리노, 그녀는 슈지 할아버지의 손녀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의 첫사랑의 주인공인 가모 소타군. 둘은 인생유전이라는 삶의 거친 바다에서 표류 중인 결핍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심인성 현기증으로 인생의 목표였던 수영을 그만 둔 리노와 후쿠시마 지진으로 원자력 공부에 인생을 걸었던 소타는 불가피하게 인생 좌표의 수정을 해야할 운명이다. 이 둘에게 거짓말하지 않는 꽃을 사랑하던 아키야마 슈지 씨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캐는 중차대한 과제가 주어졌다.

 

아, 여기에 사이드킥 한 명도 빼놓을 수가 없다. 사건 담당 하야세 형사다. 자신의 과오로 가정파탄에 이른 하야세 형사는 아들 유타의 보은을 한다는 의미로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다. 이 세 명의 주인공이 소설 <몽환화>를 이끌어 가는 명실상부한 삼두마차다. 물론, 하야세의 개입에는 아들 유타의 강력한 압박도 단단히 한몫했다. 그리고 보니 하야세의 개입이야말로 의외의 개연성이라고나 할까. 소설을 읽고 나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출생의 비밀부터 시작해서 살인사건 그야말로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하는 막장 드라마의 요소는 두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그보다 훨씬 더 품격이 있지만 말이다.

 

소설 <몽환화>는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형사의 그것보다 리노와 소타의 추리력과 과감한 결단력에 더 의존한다. 아버지와의 불화라는 고전 그리스 시대 이래 해결되지 않는 가정불화의 끝에 서 있던 소타는 원자력 공부를 할 정도의 실력으로 냉철한 추리력을 발휘해서 미제 사건에 뛰어 든다. 리노는 약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임기응변으로 탐문을 하고 주변 인물을 동원해서 어쩌면 사건의 키를 쥐고 있을 지도 모르는 미지의 여성 이바 다카시(소타의 첫사랑) 추적에 나선다. 예전 같으면 어림 없었을 시간과 노력의 수고를 최근에 발전된 IT 기술인 휴대전화, 이메일 그리고 블로그나 SNS 서비스 같은 방식으로 처리해 나가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문득 또 앞으로 20년 뒤에는 어떤 방식으로 현재의 모습을 대신할지 궁금해졌다.

 

어쨌든 소설 <몽환화>는 소설의 주인공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설정된 과거의 유산이 그들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작가는 <몽환화>에서 이를 빚이라는 이름의 유산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가 미래가 되고 또 어느 순간엔가는 과거가 되는 것처럼 그 어느 누구도 현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지금의 모습도 결국 과거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었던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진짜 존재하는지 아닌지 모를 노란색 나팔꽃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멋진 추리물을 창조해내는데 성공했다. 그 결론에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이야말로 <몽환화>를 읽는 최고의 재미였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에는 또 눈길이 가는 점이 있다. 절대 사소한 사실도 놓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지만, 캐릭터의 특질을 나타내는 복장에 대한 설명, 누가 무엇을 먹고 마시는지 어쩌면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야말로 그 사람을 상징하는 코드가 아닐까. 하야세 형사가 고급 호텔에서 리필이 되는 비싼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부터 시작해서 탐문을 하기 위해 가게에 들러 필요도 없는 커피를 마시고 화과자를 사는 소타군의 모습에서 일본인 일반을 분석할 수도 있다. 미국 작가라면 이런 사소한 일상 대신 돌직구를 날리지 않았을까? 아들 유타군의 은인에 대한 의례적인 연하장과 서신 교환이 결정적인 단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이마저도 요즘에는 일반화된 이메일로 대신할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여느 소설책처럼 술술 읽히는 마성의 내러티브 전개가 참 마음에 들었다. 아직 덜 여문 듯한 캐릭터들의 활약에 조금 의문이 가긴 했지만 신구 세대를 오가며 탐문하는 고전 스타일도 빠트릴 수 없는 재미였다. 어쩌면 히가시노 게이고는 올드 스쿨 스타일을 고수하면서도 최신 기술의 도입에 있어서도 진취적인 모습을 보이는 중용의 미덕을 다룰 줄 아는 작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전설의 꽃 노란색 나팔꽃인 <몽환화>를 최대한 구현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표지도 마음에 든다. 트랜스페어런트 스타일의 표지의 있고 없고 차이가 이렇게 대단한지 또 몰랐다. 참 재밌게 읽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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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오후 5-7시
장소 : 서울 명동 해치홀

 

지난 주에 이창래 선생 북콘서트가 열린다는 랜덤하우스 공지를 보고 나서 한참을 고민했다. 아니 평일 오후 5시부터라니. 직장인들은 휴가 혹은 반차를 내고 오라는 말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창래 선생의 책을 작년부터 사모으기 시작했지만 정작 읽지 않고 있다가 지난 달에 혹독하게 감기를 앓으면서 데뷔작인 <영원한 이방인>과 비교적 근간인 <생존자>를 단박에 읽어냈다. 그리고 내친 김에 어렵사리 구한 <가족>도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랜덤에서 절판된 <가족>과 <척하는 삶>을 재출간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분이 좋았다.

 

며칠을 그렇게 고민하다가 결국 신청했고, 어제 북콘서트 참석 안내 문자가 도착했다. 지화자~ 그런데 어제 바로 문제가 발생했다. 같이 코업으로 일하는 동료가 오늘 사정으로 결근한다는 비보였다. 이럴 수가! 나마저 자리를 비울 수 없는데... 눈 앞이 캄캄했다. 원래 오늘 두 시간 정도 일찍 퇴근해서 명동으로 가는 플랜이었는데 다 망가졌다.

 

 

 

북콘서트 끝나고 싸인 받을 책까지 골라 놓았는데 이게 어쩔 거란 말인가. 그렇다고 이런 절호의 기회를 포기할 수가 있으랴. 북콘서트는 몰라도 책에 싸인이라도 받자는 심정으로 일을 다 마무리하고 5시 반에 출발했다. 명동행 지하철을 잡아 타고 가까스로 6시 20분경 도착했는데 그 사람 많은 명동에서 북콘서트 장소인 엠플라자의 해치홀을 찾지 못해 황금 같은 시간을 다 까먹어 버렸다네. 일본인 중국인 그리고 태국인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평일 저녁의 명동을 배회하고 있었다. 문득 해외여행 갔을 적에 출퇴근하는 그 나라 사람들 틈에서 관광객처럼 옷을 입고 거리를 누비던 생각에 문득 웃음이 나왔다.

 

천신만고 끝에 해치홀을 찾아 갔는데, 이미 북콘서트는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염치 불구하고 북콘서트장에 들어서니 앉을 자리도 없게 그렇게 대성황이었다. 늦게 와서 앉을 자리 타령하는 것도 참.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외국인이 엄청 많았다는 점이다. 확실하게 외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답게 다국적군의 편성이 다채로웠다. 앞의 부분은 다 잘라 먹고 Q&A 시간의 마지막 두 질문만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창래 선생의 마지막 스피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선생이 영어로 말해 주면 통역사가 우리말로 통역해주는 그런 과정이었는데 확실히 일반 북콘서트보다 진행이 더디고, 두 배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 그리고 긴 호흡의 번역의 경우 전달 부분이 좀 아쉬웠다고나 할까. 이번에 랜덤을 통해 자신의 기존에 출간된 책들이 리이슈되서 출간된 점 그리고 영어로도 많이 읽히지만 새롭게 번역되어 한국말로 읽히는 것도 좋다고 말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 앞 부분도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쩌랴 늦어서 다 듣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시간 부족으로 질의응답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다른 부분은 차치하고 고대하던 싸인을 득템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많은 이들이 나처럼 싸인을 받고 싶어했으나 이창래 선생의 다음 일정 상 그러지 못해 너무 짧게 진행된 싸인회가 아쉬웠다. 어쨌든 난 감명 깊에 읽은 <생존자>와 최신잔 <이런 만조에> 원서에 싸인을 받았다. 싸인 받기 전에 책이 두 권인데 괜찮겠냐고 물으니 선뜻 괜찮다는 말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리고 행사장 입구에서 이번에 재출간된 <가족>과 <척하는 삶>을 정가 14,800원에서 800원 할인된 14,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아직 서점에 깔리지 않은 지라 서점 할인율 10%만 되더라고 사려고 실탄을 준비해 갔는데 가격을 보고는 포기했다. 하긴 책 세권에 싸인을 해달라고 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겠지. 그리고 싸인회에서 아쉬운 점 하나는 싸인해 주실 이름을 적을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한 관계자 분이 싸인 받으려고 선 왼편에 계시지 않고 오른편으로 가버리셔서 못내 당황했다. 너무 급하게 행사장으로 가느라 항상 가지고 다니는 볼펜과 메모지조차 준비하지 못해 당황해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메모지는 관계자분에게 하나 얻고, 볼펜은 앞의 분에게 빌려서 허겁지겁 그렇게 싸인 받을 영문 이름을 적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창래 선생 앞에서 영어 스펠을 하나하나 부르는 쇼를 연출한 뻔 했다.

 

예전에 퓰리처상을 받은 주노 디아스의 싸인을 받았는데, 오늘 싸인 받은 이창래 선생이 앞으로 더 뛰어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셔서 퓰리처상을 넘어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될 그날을 고대해 본다. 나도 노벨상 받은 작가 분의 싸인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하게 될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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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4-05-24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명 받은 책 너무 근사하네요. 아직 이창래 작가님 책은 못 읽어 봤는데 조만간 읽어봐야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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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취미 중의 하나는 책수집이다. 전작을 하는 작가라면 물론이고, 앞으로 읽게 될 작가의 책도 하나둘 사 모으는 그런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지난 가을엔가 나의 취미 대상으로 물색된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이창래 선생의 책들이었다. 이 리뷰 바로 앞에 쓴 <영원한 이방인>에서도 말했지만 국내에 출간된 이창래 선생의 책은 오늘 이야기할 <생존자>외에는 거의 구할 수가 없는 그런 운명에 처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헌책방이 있지 않은가. 헌책방을 통해 절판된 <영원한 이방인>과 <가족>을 차례로 구했다. 비교적 근간에 해당하는 <생존자>도 물론 구했다, 다만 아직 읽지 않았을 뿐. 신작도 아마존을 통해 구입했다. 하지만 책을 사두고도 한참 동안이나 그렇게 읽지 않고 있다가 어느 순간 독서열이 폭발해 버렸다. <영원한 이방인>을 읽고 나서, 상당한 두께 때문에 망설이던 <생존자>를 단박에 읽어냈다. 그것도 지독한 독감으로 고생하던 와중에 말이다. 어쩔 수 없는 책쟁이다.

 

소설 <생존자>는 한국전쟁의 비극으로 시작한다. 전쟁이 언제나 그렇듯 민간인의 희생이 가장 크지 않았던가. 주인공 준 싱어는 전쟁을 겪으면서 아버지와 오빠를 그리고 어머니와 형제자매들을 차례로 잃고 고아가 된다. 가히 충격적인 상실로 시작되는 그녀의 연대기는 고난의 행진에 다름 아니다. 그렇게 36년의 시간이 흘러 공간은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겨진다. 미국에 정착해서 골동품상으로 성공한 준은 암세포가 자신의 육신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업을 정리하고 8년 전 자신의 곁을 떠나 세계를 유랑하는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 나선다. 살아남기 위해 전쟁 중엔 무슨 짓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이제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이창래 작가는 전쟁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준에 이어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착하지 못하는 또 다른 영혼 헥터 브레넌을 창조한다. 헥터와 준 그리고 그들이 한국의 어느 고아원에서 만난 실비 태너는 소설 <생존자>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캐릭터 삼총사다. 준이 전쟁에서 가족을 잃었다면, 아버지를 잃고 전쟁판에 뛰어든 소년 헥터는 삶과 죽음이 실낱같은 차이로 나뉘는 전쟁터에서 인간 고유의 정체성을 상실했다. 전쟁이 끝난지 33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렇기 때문에 50대 중년이 되어서도 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돌이 삶을 계속한다. 그나마 그의 정착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던 도라 역시 불운의 아이콘 준의 등장으로 잃게 된다.

 

두 명만으론 부족했을까? 여기에 한국전쟁보다 좀 이른 만주사변 시기에 일본군의 만행으로 선교사업을 하던 부모님을 처참하게 상실한 실비 태너의 악몽이 겹쳐진다. 광란이 지나간 뒤, 미국으로 건너가 착실한 아가씨로 성장하지만 그런 광기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보통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전쟁의 참화로 고아가 된 한국의 아이들을 도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르핀 중독자가 된 목사 사모의 이야기는 반복되는 비극의 재연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생존자>를 통해 강력한 작가의 반전 메시지를 읽을 수가 있었다. 도대체 이보다 더 센 표현과 주제의식으로 전쟁을 반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모두 전쟁 때문에 상실을 겪은 준과 헥터 그리고 실비의 과거가 소설의 들줄이라면, 현재 진행되는 준의 유일한 혈육 니콜라스를 찾는 과정은 소설의 한축을 차지하는 씨줄일 것이다. 이창래 선생은 <영원한 이방인>에서도 보여 주었던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해서 과거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등장인물들이 이런 지독한 상실감에 시달리는 것일까에 대한 과정의 서사를 보여준다. 준이 고용한 탐정 클라인스가 하차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헥터가 죽어가는 준을 데리고 아들 니콜라스를 찾아나선 장면은 미국 로드무비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어쩌면 소설 <생존자>가 한국전쟁을 무대로 했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한국전쟁은 단지 비극을 전개하기 위한 무대일 뿐이다. 장소가 굳이 한국일 필요는 없다. 그것이 일본이나 베트남 혹은 아프간이라도 상관없다. 작가는 그런 공간적 배경보다는 전쟁이 초래하는 보편적 비극에 방점을 찍고 있다. 보편 인류의 마음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흔이 어떻게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고찰과 분석이 이창래 선생이 <생존자>에서 이룬 문학적 성과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가 예상한 한국전쟁의 디테일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내에서 보다 더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도 해봤다.

 

한국전쟁보다 소설에서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앙리 뒤낭이 쓴 <솔페리노의 기억>이 아닐까 싶다. 1859년 6월 24일 유럽의 숙적 프랑스 연합군과 오스트리아 연합군의 30만 명이 맞붙은 치열하고 비참했던 전쟁 후기는 헥터와 실비 그리고 준 모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예의 사건은 지남철처럼 종양으로 죽어가는 준과 그녀를 돕는 헥터를 결국 솔페리노까지 끌어들인다. 서로 다른 층위의 이야기들을 정교하게 지어낸 뒤에, 죽어가는 엄마의 아들 찾아 삼만리라는 멜로까지 곁들인 다음 마주치게 되는 크고 작은 비밀들이 이어지고, 삶이 곧 구원이라는 도정(道程)을 읽으면서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이보다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데뷔작 <영원한 이방인>에서 이창래 선생이 이민자 소설이라는 특수한 양식을 충실하게 수행해 냈다면, <생존자>에서는 보다 세련되고 정교한 방식으로 보편 인류애에 접근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창래 선생의 이런 소설적 전략이야말로 미국 주류 문단에서 호평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독자 지평의 확장이라는 점에서도 보편적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이런 자세야말로 누구에게나 호응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먼저 660쪽에 달하는 책의 두터운 두께에 나처럼 절대 겁먹지 마라. 일단 이창래 선생이 구사하는 서사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책의 두께는 한낱 형상에 지나지 않으니까. 이제 슬슬 <가족>과 원서로 구입한 <온 서치 어 풀 시>를 읽어 볼 때가 된 것 같다. 선생의 팬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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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이방인
이창래 지음, 정영목 옮김 / 나무와숲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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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이민자 소설”을 읽게 됐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작년부터 이창래 선생의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는데, 읽기는 이제야 읽게 됐다. 개인적으로 이창래 작가를 굳이 한국계 미국작가라는 타이틀보다 그냥 미국 작가라고 부르는 편이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그를 한국 출신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해 그의 작품을 하나둘씩 읽으며 느낀 바가 있었다. 한국 작가를 한국 작가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그의 작품에서 읽히지 않았다. 그저 보편적 삶의 일면을 잡아내는 미국에 사는 한국이란 원형을 지닌 작가의 글이라고 생각하면 무난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점 하나, 왜 그는 존 강 같은 미국 이름 대신 부르기에도 어려운 이창래라는 본명을 굳이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이창래 작가는 미국 내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작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많이 알려지거나 팬덤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당장 온라인 서점에서 구할 수 있는 그의 책이 많지 않다는 점이 이런 나의 가설을 반증한다.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신간 <온 서치 어 풀 시> 외에 모두 4권의 책이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작년 초에 나온 <생존자> 말고는 모두 절판과 품절이다. 그의 작품 세계의 시원을 밝혀줄 <영원한 이방인> 역시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구해서 읽게 됐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에게 선물한 책인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헌책방에서 만나게 됐다. 나라면 표지에 그렇게 사연까지 적어준 친구의 책은 절대 팔지 않았을 텐데.

 

원제 <Native Speaker:영원한 이방인>의 주인공은 헨리 파크다. 한국식 이름은 박병호 씨였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한국 이민자이자 플러싱에서 청과상을 하며 성공을 일군 입지적전 이민 1세대의 아들 헨리 파크는 준수한 대학 교육을 받고, 진짜 미국 여자와 결혼까지 해서 미국인으로 연착륙하는데 성공한 남자다. 소설은 그런 성공한 미국 남자의 파경에 다다른 결혼 생활로 시작된다. 추락의 저편에는 상실이 담겨 있다. 사랑하는 아들 밋을 불의의 사고로 잃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모종의 스파이 업무(끝까지 헨리의 임무가 무엇인지 정부인지 개인의 사적 임무인지 밝혀지지 않는다)를 수행하는 헨리의 직업 때문에 아내 릴리아는 그의 곁을 떠나려고 마음먹는다. 그것도 거의 모욕에 가까운 메시지를 남겨둔 채 말이다.

 

자연히 소설의 서사 구조는 플래시백 기법을 채용해서 과거와 현재라는 두 가지 축으로 헨리 파크 혹은 직장에서는 ‘파키’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박병호 씨 삶의 궤적을 추적해 가기 시작한다. 한국의 유수의 대학을 나와 뉴욕의 청과상을 하는 헨리의 아버지는 자신의 이민 선배가 그랬듯이 착취당하며 그들에게 일과 사업하는 법을 배우고, 시간이 흘러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을 적에도 역시 같은 방법으로 후임 이민자들의 노동을 착취해 가며 사업을 일구고, 성공적인 이민 가정을 꾸리는데 전력을 다한다. 아무래도 이 과정에서 줌파 라히리의 이민자 소설보다는 좀 더 유교적인 (이민)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진력을 다하는 모습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면면이 드러나게 된다.

 

다른 하나는 현재 파키, 헨리 파크 그리고 박병호 씨가 맡고 있는 주 임무인 성공한 뉴욕시 의원 존 강에 대한 보고서 작성이다. 가족의 상실과 해체라는 불행을 겪은 파키는 어쩔 수 없이 직장에서의 임무에까지 영향을 받은 모양이다. 아마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였을 것이다. 아시아인답게 꼼꼼한 일처리를 인정받던 파키가 고객의 의뢰 대상자인 필리핀 출신 정신과 의사와 선을 넘어 지나치게 친해지는 바람에 결국 직장 상사인 데니스 호글랜드의 눈 밖에 나고 만다. 어찌어찌 덮고 넘어가게 된 파키에게 보스 호글랜드는 새로운 일거리를 맡긴다. 플러싱 출신으로 소수민족 출신 시의원인 존 강은 시장 출마라는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인종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한창 매스컴의 각광을 받는 인물이다. 물론 자수성가해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역시 정치판에서 좋은 이미지 구축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파키는 바로 이 전도유망한 정치인 존 강의 캠프에 침투해서 그의 모든 것을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특명을 맡는다.

 

파키는 자신의 삶에 등장한 다양한 인물과의 관계를 통해 신산하기 짝이 없는 미국 이민사회의 은밀한 속살을 조금씩 내보인다. 상부상조라는 유교적 질서에 입각해서 이룬 존 강의 성공신화는 모래성처럼 그렇게 무너지기 쉬운 기반 위에 세운 것이었다. 소설 속에서 파키가 고백하듯, 미국 사회로의 완전한 동화는 미국 건국 이래 WASP가 아닌 소수민족에게 여전히 쉽지 않은 임무다. 고등교육을 통한 완벽한 영어 구사와 전문 분야에서의 성취는 파키의 아버지로 대변되는 이민 1세대에게는 기대하기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1.5세대인 파키에게도 예의 미션은 여전히 쉽지 않은 미션으로, ‘영원한 이방인’으로서의 고단함과 불안이 소설의 곳곳을 누비고 있다.

 

솔직히 <영원한 이방인>은 연이어 읽은 <생존자>처럼 엄청난 몰입도를 자랑하지 않는다. 어느 새내기 작가의 데뷔작이어서 그랬을까?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절대보편이 보이지 않아서였을까? 어쩌면 좀 오래된 번역 탓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중요한 갈등 구조를 이루는 릴리아와의 불화의 근원을 추적하는 과정과 파키의 성장기는 흥미로웠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의 축인 존 강의 점진적 부상과 극적인 추락은 상대적으로 힘이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에 반해 <생존자>의 구성과 전개는 연륜과 작가의 내공이 쌓인 덕분인지 가히 엄청났다.

 

원제보다 <영원한 이방인>이라는 우리나라 제목이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쩌면 이창래 작가가 쓴 영어가 아닌 번역판으로 읽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에서 내내 파키는 진정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이미 그는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유년 시절의 교육과 속어나 은어, 자기들끼리만의 특별한 무언가를 공유하면서도 결국 소위 말하는 주류사회에 동화될 수 없어 결국 정체미상의 (산업) 스파이가 되고 만 이방인이라기보다 오히려 경계인(marginal man)에 가까운 작가의 페르소나 파키의 안부가 문득 궁금해졌다. 오늘도 여전히 안녕하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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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집
줌파 라히리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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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하면 어쩔 수 없는 허핑턴 포스트의 아니스 쉬바니가 꼽은 15명의 과대평가된 미국 현대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15명 중에 당당하게 10번째로 선정된 줌파 라히리의 글이 도대체 어떻기에 이런 가혹한 평가를 서슴지 않고 내렸는지 궁금하다. 최근작 <저지대>를 읽기에 앞서 그녀 작품 세계의 근원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작품 <축복받은 집>을 읽는 게 순서일 것 같아 이 책부터 읽게 됐다. 그리고 모두 9개의 소설이 실린 이 소설집으로 단박에 퓰리처상을 수상하면서 미국 문단의 총아로 떠올랐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어떤 이는 등단하기 위해 그렇게 애를 쓰건만, 또 누구는 이렇게 신데렐라가 되는구나 싶었다.

 

줌파 라히리는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녀 부모의 출신은 인도 서벵골 출신으로, 그녀의 작품을 소위 <이민자 소설>이라고 부르게 하는 근원을 제공한다. 2살 때, 라히리의 가족은 미국 로드 아일랜드로 이주했고, 그녀의 아버지는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로드 아일랜드 대학에서 사서로 일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통해 그녀의 약력을 읽다 보니, 그녀 소설의 고갱이를 접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녀의 어머니는 아이들이 서벵골의 문화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 종종 고향인 캘커타를 방문하곤 했다고 한다. 이 역시 <질병 통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보스턴 대학에서 다양한 학위를 취득하고, PhD까지 받은 줌파 라히리의 소설에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나도 한 때 살았던 곳이라 그런지 그녀 소설에 나오는 지명이 아주 익숙해서 읽는 동안, 등장인물의 동선을 따라 잡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왠지 그녀의 작품에서의 공간은 그녀 부모의 고향인 동양과 그녀가 나고 자란 서양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로 나뉘는 느낌이 드는데, 문득 그녀가 벵골에서 자라났다면 그녀가 지금 미국 문학계에서 누리는 지위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출간되기 전 <뉴요커>에 발표된 <섹시>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내로서는 최악의 악몽이었어”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유부남을 만난 여자 미랜더의 이야기다. 직장 동료 락스미와 수다로 락스미의 사촌 형부가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바람이 났다는 이야기는 미랜더의 불길한 미래에 대한 전조로 다가온다. 사랑인지 욕망인지 알 수 없는 불길 같은 감정에 휩싸인 미랜더는 꼬마 로힌이 정의하는 “섹시”란 말뜻을 듣고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린다. 자신의 정부가 자기에게 섹시하다고 말했는데,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섹시의 뜻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는 말에 미랜더는 비로소 깨달음에 도달한다. 크리스천 사이언스 센터 마파리움에서의 추억은 이제 과거가 되어 버린다.

 

원작에서 타이틀이었던 <질병 통역사> 역시 흥미로운 이야기다. 미국으로 이주한 인도계 미국 가정의 관광 가이드에 나선 카파시 씨는 관광가이드이면서 병원에서 질병 통역사라는 아주 흥미로운 직업을 가진 사나이다. 그의 꿈은 원대했지만, 실상은 고작 고향에 남아 관광객들을 상대하는 가이드일 뿐이다. 다스 부부를 안내하며, 다스 부인과의 지속된 우정에 대해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그녀가 들려주는 충격적인 사실에 카파시 씨는 자신이 꿈꾸던 일들이 한낱 공상에 지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단편소설의 정수인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찰나의 미학이라고 해야 할까.

 

줌파 라히리는 문학이라는 틀을 통해 미국 주류 사회에 진입했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 인도계 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어떤 사고를 가지고 있는지 명백하게 보여주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도 고유의 음식을 해먹고, 인도 식품점에서 비디오를 빌려다 보고, 결혼 배우자를 인도 본국에 가서 구해오는 삶의 방식이 한편으로는 낯설면서도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뭔가가 그녀의 글에는 배어 있다. 그 점이야말로 타국에 사는 이민자 혹은 이방인으로서 이질감의 원형이라고 해야 할까.

 

이야기의 한 축을 이루는 서양(미국)에서의 삶에 대한 희망이 있다고 한다면,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동양(인도)의 삶에는 딱히 이렇다라고 표현하기 그런 비루함이 한 층위를 이룬다. <진짜 경비원>에 나오는 계단 청소부 부리 마의 이야기가 그렇다. 공동주택 청소부인 부리 마는 자발적으로 경비원 역할까지 떠맡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무 일이 없을 때의 이야기다. 달랄 부부의 호의로 공동주택의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세면대를 설치하게 되면서 부리 마가 추후에 겪게 될 비극은 잉태된다. 공동주택의 거의 모든 이가 자기 집 보수에 정신이 없고 사설 경비원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던 부리 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들이 아끼던 공용 세면대가 털리자 흥분한 사람들은 부리 마의 탓으로 돌리고 다른 “진짜” 경비원을 채용하자고 목소리를 높인다. 공동체의 안위를 위한다고 하면서도 막상 사적 이익이 침해받을 경우 사정없이 공동체원을 내쫓을 수 있다는 냉혹한 폭력의 실체를 슬쩍 엿볼 수가 있었다.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인 <세 번째이자 마지막 대륙>은 테크(MIT) 도서관의 사서로 미지의 대륙에서 새출발하는 줌파 라히리 아버지의 과거를 재현해낸다. 테크나 하바드에 다니는 남자에게만 방을 내준다는 고약한 집주인 밑에서 소위 ‘마지막 대륙’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나의 소소한 일상이 화자의 내러티브를 타고 전해진다. 미국의 달착륙 사실을 인류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며 세입자에게 ‘굉장하다’라고 말하라고 강요하는 크로프트 부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팍스 아메리카나의 발로로 보면 과장일까. 라히리의 아버지는 새로 결혼한 아내 말라의 합류로 가정을 이루고, 세 대륙에서 살아남은 끈질긴 자신의 생명력에 자부심을 가지며 신세계에서 극복하지 못할 장애물은 없노라고 선포한다.

 

삶의 진실을 마주할수록, 사랑이라는 과제가 쉽지 않다는 걸 작가는 9개의 소설을 통해 들려준다. 이런저런 질곡이 있다고 해서 사랑을 마다할 수는 없지 않은가. <축복받은 집>을 읽고 나서 확실히 느낌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문단의 찬양처럼 그렇게 대단한 작가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출발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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