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로메다 소녀 - 테마소설집 : 십대의 성과 사랑을 말하다 바다로 간 달팽이 13
김도언 외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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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된 순전한 이유 중의 하나가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을 담았다는 소설집의 말미를 차지하고 있는 주원규 작가 때문이었노라고 말한다면 과언일까. 그리고 보니 아주 오래 전에 보낸 청소년기에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왜 그렇게 그 시절에는 하면 안되는 것들이 많았는지 모르겠다. 술과 담배는 물론이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금지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이 끝나자마자 하지 말라는 짓은 죄다 해본 것 같다. 물론 소설집에도 나오듯이 그런다고 들끓는 갈증이 채워지는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주원규 작가의 <엑소 도둑>부터 먼저 읽기 시작했다. 소설집을 대할 때 좋은 점 중의 하나는 순서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읽어도 된다는 점이 아닐까. 역시나 청개구리 심뽀로 그렇게 했다. 요즘 인기 아이돌 그룹이라는 엑소를 등장시키고, 그 엑소의 멤버 카이라는 청년의 티팬티를 훔쳐 달라는 정화의 부탁에 주인공 막구가 긴장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역시 단편답게 잔가지들은 죄다 쳐내 버리고 본론으로 치고 들어간다. 물론 그 임무가 어려우니만큼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걸그룹 뺨치는 미모의 정화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면, 막구와 자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어째 거래가 불온하다는 생각이 어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런 어른의 경고는 막구에겐 들리지 않는다. 이 일은 절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도 정해져 있다. 그래서 예전 동료 돌격대를 소환한다. 그리고 돌격대가 좋아하는 피자빵을 제공하면서 협력할 것을 종용한다. 그리고 어렵사리 얻은 카이의 티팬티를 정화에게 가져다 주었더니, 온라인 사이트에 올려 팔아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 그렇다, 그녀가 원했던 것은 ‘순수’한 팬심이 아니라 금전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클리셰이이긴 하지만 성과 사랑마저 금전으로 치환되는 순수하지 못한 그네들의 성정을 주원규 작가는 면도날처럼 예리하게 파고든다.

 

표제작 <안드로메다 소녀>에는 정말 안드로메다 출신의 소녀 소희가 등장한다. 이제는 아련히 스러져간 원더걸스의 만두소희가 떠오르는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정글 같은 남학교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나는 소희 같은 외계인과 같은 존재다. 그런 이방인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에게 동질감은 가질 수밖에 없다. 안드로메다에서 온 이들은 분리된 게토로 몰아넣고 차별화하고 장면은 현실세계에서도 볼 수 있는 제노포비아(xenophobia)의 다름 아니다. 서유럽에서 악화일로에 있는 반무슬림 정서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지닌 이에게 조금의 관용(똘레랑스)도 허용하지 않는 경직화된 사회가 보이는 듯 싶었다. 안드로메다가 더 이상 살 수가 없어 지구로 왔다는데, 지구마저 그들이 기대한 안식처가 아니기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소희의 말은 이상하게 들린다.

 

구지구와 신지구(나는 처음에 이 단어를 old earth와 new earth로 이해했다)로 분리된 공간이 등장하는 <수지> 역시 비슷한 선상에서 읽을 수 있다. 무조건 새로운 것이 좋다는 걸까, 구지구에 사는 찌질한 인생들은 라디오헤드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노래 <크립>을 들으면서 밤마다 달을 보기 위해 신지구를 찾는다. 달조차 신지구와 구지구의 차이가 있단 말인가. 어느새 일상화된 차별은 서로 공존하는 공간마저 그렇게 나누고 있었다. 십대들에게 그런 공간마저 허용하지 않는 공고한 기득권의 폭력적 양태를 은근하게 비꼬고 있다.

 

꽃처럼 빠르게 시들어 가는 열망에 대한 본격적인 고찰이라고 할 수 있는 <팬티>는 남고생이었다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상상해봤을 그런 발칙함에 도전한다. 나는 꽃처럼 아름다운 교생 선생님의 첫 수업 시간에 칠판을 빛의 속도로 지우겠다며 창문을 열었다가 그만 교생 샘 영희 씨의 치마를 마릴린 먼로의 그것처럼 펄럭이게 만든다. 주저없이 담임샘의 몽둥이가 나의 머리통을 향해 사정없이 날아들었지만, 이 사건으로 나는 반의 일약 영웅이 됐다. 야릇한 상상에 젖어 사촌누나의 팬티라고 생각하고 습득한 팬티(엄마의 팬티였다)를 가지고 자위를 시도하다가 누나에게 현행범으로 걸려 변태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얻게 된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영희 씨가 자신이 멘토로 따르는 협이 형의 형수감이라는 얘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어이 그녀의 팬티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실물보다 상상이 주는 판타지가 큰 법인 것처럼, 어렵게 이뤄진 나의 열망은 역시 빠르게 소멸해 버렸다. 뒤 따르는 에피소드는 사족처럼 다가온다.

 

<여수 여행>은 또 어쩔 수 없이 그룹 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를 연상케 한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가 아련한 로맨스를 떠올리게 한다면, 김해원 작가의 <여수 여행>은 임신한 십대 소녀만 바라보고 살던 엄마의 상실감과 어쩌겠니 그래도 계속 살아야지라는 체념 섞인 이야기로 버무려져 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지만, 굳이 무시하면서 사는 우리네 삶을 예리하게 타격하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고 산전수전을 다 겪어도 원하지 않는 일이 생겼을 때 허둥대는 건 마찬가지라는 작가의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 걸까.

 

일곱 색깔 무지개처럼 청소년들의 성과 사랑을 다룬 <안드로메다 소녀>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적재되어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도 그래, 나도 그 때 그런 시절이 있었지라는 생각에 과거의 상념 속으로 젖어 들기도 했다. 어느새 소년은 나이를 먹어, ‘왜 안돼’라고 외치던 시절을 지나 왜 안되는지를 설명해야 하는 나이를 먹었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구차한 변명을 대야 하는 그런 순간이 다가올수록 쩔쩔맬 상상을 하니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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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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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빵을 좋아한다. 언젠가부터 아침에는 빵을 먹는다. 오늘 아침에도 우유 두 잔과 슈크림 크루아상 두 개를 먹었다. 그런데 다른 거에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정작 내 입으로 들어가는 먹거리들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져서 내 살이 되고 피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저 싼 값이면 족하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많은 이들이 올해의 책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은 일본 시골빵집 주인장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쓴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읽으면서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먹거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대량생산 대량소비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해서 대량생산된 제품들(먹거리를 포함한)은 단가 후려치기와 노동력 착취를 통한 교환 가치 하락에 방점을 두고 있다. 오, 시작부터 너무 마르크스주의적이 아니냐고? 솔직히 말해 거두절미하고 본론에 들어가자는 것이 나의 속셈이다. 서른이 너머 빵집을 차릴 생각을 하고, 동일본 대지진을 피해 안착한 가쓰야마라는 시골 마을에서 다른 곳보다 서너배는 비싼 빵을 만들어 팔면서 빵집 <다루마리>의 주인 와타나베 씨는 생산수단을 보유한 자본가의 지배로부터 실제적인 독립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저항을 시작한다.

 

똑같은 맛의 빵을 실패하지 않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이 작동한다. 어마어마한 들판에서 기계화된 농법으로 재배된 밀을 대량으로 수입해서, 바로 바닷가에 자리 잡은 대기업화된 제분공장에서 빻은 밀가루를 원료로 해서 순수 배양균이라는 효모를 이용해서 만들어낸 빵이 우리가 쉽게 접하는 빵이다. 이 과정에서 소비자의 선택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그런 대기업화된 빵집이 만든 빵을 살 것이냐 아니냐로 선택지는 좁혀진다. 조금은 허랑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낸 작가는 전쟁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의시가 되보려는 꿈을 꾸기도 하지만, 그놈의 형편없는 시험성적 때문에 농대를 선택하게 되고 시골이야말로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는 장소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를 읽어 보라는 아버지의 조언도 한몫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빵집 <다루마리>는 자본의 총아인 이윤추구를 극도로 혐오한다. 부패하지 않는 돈의 경제야말로 자본주의 모순의 핵심이라는 점을 작가는 적확하게 파악했다. 기계화된 설비로 대량생산된 제품의 교환가치 하락은 필연적으로 노동의 교환가치 하락을 불러온다는 자본주의 철칙마저 간파한 그는 밀가루 반죽을 부패시키는 천연균처럼 돈도 한편으로는 부패도 하고 선순환의 과정을 통해야만 비로소 경제의 활력소가 된다는 점을 주장한다. 글로는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체험한 과정을 소개하고, 또 매 장의 서두에서는 <다루마리>의 주력 상품인 주종 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그림을 통해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소비자협동조합 운동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와타나베 씨는 지역경제를 살리는 그런 소상인 협동조합 운동이야말로 자신이 믿고 실천하고 있는 삶의 방식과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다루마리>에서는 인공적으로 생산된 순수 배양균을 지양하면서, 100년된 고택에 사는 천연균의 힘을 빌어 빵을 발효시키고, 사용하기에는 편리한 플라스틱 용기 대신 인근의 죽세공 장인이 만든 대나무 소쿠리를 사용하며, 맛 좋은 가쓰야마 인근의 물로 빵반죽을 만들며, 역시 자연재배 방식으로 수확한 밀을 사용한다. 그리고 노동을 착취해서 빵을 대량생산 하는 대신 같이 일하는 스태프들에게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부여해서 창조적인 빵만들기를 장려하고 있다. 창조를 닦달해대는 환경이 아닌 충분히 휴식한 호모 루덴스적인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창조를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와타나베 씨는 깨달은 것이다.

 

와타나베 씨의 생각에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작은 활동이 과연 날로 거세지는 자본주의 이윤추구라는 거대한 물결을 막아낼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그리고 누구나 글쓴이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추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래서 와타나베 씨는 정치를 바꾸는 방식이 투표라면, 경제를 바꾸는 방식은 돈 쓰는 방식이라고 선언한다. 책을 통해 배운 사고의 전환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나의 책읽기 체험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와타나베 씨가 이 책을 통해 주장한 아름다운 부패와 순환의 알레고리를 당장 오늘부터라도 나의 실천적 삶에 적용시키는 문제를 고민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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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로열 - 제149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쿠라기 시노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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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 찾는 사이트가 하나 생겼다. <소설리스트>라고 몇몇 작가와 서평꾼들이 주로 새로 출간되는 소설에 대해 알려주는 그런 사이트다. 뭐 절대적인 정보는 아니라지만, 아주 유용하게 사용 중이다. 특히 지난 연말에는 올해의 베스트 3라는 타이틀로 여러 책들을 소개해 주었는데 그 결과, 어쩔 수 없이 책지름신이 강림하여 여러 권을 책을 사게 됐다. 쿠라하시 유미코의 <성소녀>를 필두로 해서 플래너리 오코너 그리고 사쿠라기 시노의 <호텔 로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들을 사모았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해서 오늘까지 <호텔 로열>을 읽었다.

 

아무래도 나오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솔직히 잘 모르는 사쿠라기 시노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는 고향인 홋카이도를 배경으로 작품활동을 한다고 하는데, 관능소설 작가란 타이틀이 무색하지 않게 그 방면에 일가견이 있는 모양이다. 역시 역자후기를 통해 알게 된 정보인데, 작가의 부친께서 진짜 <호텔 로열>이란 이름의 러브호텔을 경영했었다고 한다. 남녀관계의 궁극을 너무 일찍 깨달아서일까, 작가가 괜히 관능소설의 대가가 된 게 아닌 모양이다.

 

7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사람과 풍경이 있는 소설 <호텔 로열>은 연작소설집으로 공간적 배경은 호텔 로열과 직간접적 연관성을 이루며 역순으로 전개된다. 한창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사랑을 나눌 곳을 원하던 연인들에게 사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던 호텔 로열의 폐허에서 연인의 누드 사진을 찍겠다고 찾아오는가 하면, 한 때 문전성시를 영업을 마치고 폐업하던 날 그동안 성실하게 성인용품을 대주던 업자와 일탈을 감행하려던 주인장의 딸의 유혹이 배어 있기도 하다. 가족의 봉안을 맡은 주지 스님의 처는 대를 이어 가며, 사찰을 후원하는 단가의 자제와 묘한 관계를 맺는다.

 

예의 스님이 다른 곳으로 독경을 하러 가게 되어 굳은 돈으로 빡빡한 현실에서 벗어나 러브호텔을 찾은 중년부부의 이야기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자그마치 20년 동안이나 자신의 스승과 불륜 관계를 맺은 아내에 대한 실망으로 출장길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제자와 어디론가 떠나 버리는 수학 선생님의 이야기는 구슬프다. 어쩌면 이 두 사람이 <호텔 로열>에서 벌어진 정사(情死) 사건의 주인공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홋카이도 동부 지방에 위치한 구시로(釧路) 습원은 두루미와 사슴으로 유명한 명소라고 한다. 아칸 산 부근에 위치한 국제 두루미 센터는 자연생태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하다. 소설의 어디선가에서도 아마 두루미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푸른 녹지가 장관이라는 곳 언덕에 위치한 러브호텔, 그곳의 풍경을 바탕으로 벌어지는 사람들의 희로애락 이야기가 <호텔 로열>을 채우고 있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의 소설은 그렇게 풍경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렇다고 특별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네 삶처럼 평범한 이들이 빚어내는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배어 있다. 그 이야기의 궤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즐겁다.

 

연작소설 특유의 서사구조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그렇게 이어진다. 때로는 <호텔 로열>이라는 공간이, 혹은 전작에 등장한 캐릭터가 다음 이야기에서 접점을 이루면서 실타래처럼 얽힌 소설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준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복잡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단순하면서도 명징함이야말로 <호텔 로열>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작가가 관찰한 그네들의 삶에 어떤 절묘한 해답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정말 오랜 시간 바람을 피웠다는 무력감에도, 오래전 집을 나가 자수성가했다고 생각한 아들이 실은 조폭이었다는 사실에서도,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어렵게 번 돈으로 분위기도 모르는 남편과 러브호텔에 가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에서도 소소한 삶의 진실이 느껴진다. 그런 삶의 진실에 관능까지 더하니 어찌 맛깔스럽지 않겠는가 말이다.

 

사쿠라기 시노 작가와의 첫 만남은 강렬하면서도 담백했다. 작년에 모두 그녀의 작품이 세 권 출간됐는데, 남은 두 편의 작품에 도전해 보고 싶다. 양양한 을미년이 이제 시작이니, 이루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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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인, 재욱, 재훈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5
정세랑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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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순전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나의 절친 이름과 같은 이름이 떡하니 표지에 박혀 있어서라고 한다면 너무 단순한 걸까.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는 노벨라 시리즈, 우연한 기회에 초능력을 갖게 된 삼남매의 이야기가 쏠쏠하다.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삼남매는 서해안의 모처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여행길에서 먹은 형광색 나는 바지락칼국수 때문에 초능력을 얻게 된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 초능력을 어떻게 쓰는가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다. 어려서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면서 저런 초능력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그런 초능력이 허황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한 번도 초능력 타령을 한 적이 없다. 지금도 아마 그런 나의 생각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재인, 재욱, 재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초능력은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다. 표지에 보면 손톱깎이 하나, 열쇠 한 개 그리고 레이저 포인터 이렇게 그들의 초능력을 상징하는 요상해 보이는 물건들이 나열되어 있다. 사실 레이저 포인터의 경우에는 소설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화학과 출신으로 대전의 연구실에서 생활하는 큰누나 재인은 깎이지 않는 강력한 손톱을 자랑한다. 애걔, 이게 무슨 초능력이야 싶지만 자신의 특기인 사물에 대한 관찰과 연구를 바탕으로 같이 사는 친구 경아를 스토커 남친으로부터 구하게 된다.

 

재인의 초능력에 비하면 재욱의 그것은 좀 더 특별하다. 시야가 붉어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지점을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인과 재욱에 비해 좀 더 다른 모양새의 막내 동생 재훈은 가장 먼저 자신의 초능력을 감지해 내지만 그 능력 역시 소박하기 짝이 없다. 엘리베이터와의 교감이라니. 세 남매에게 각기 다른 세 가지 물건들이 소포로 배달되면서 그들은 각각 save 1, save 2 그리고 save 3 라는 미션을 부여 받는다. 그 미션이 무엇인지는 소설을 읽어 보시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니.

 

정세랑 작가의 노벨라 <재인, 재욱, 재훈>은 최근 유행하는 경장편 소설이다. 사실 도끼 선생의 <죄와 벌> 같은 대작 장편소설을 끈기 있게 읽어낼 참을성도 생각보다 부족하니 경장편이 대세인 요즘 세태를 나무라고 싶은 마음은 없다. 사람들은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고 하는데, 독서 말고도 관심을 사로잡는 온갖 것들에 포위되어 있는 마당에 대작소설을 읽기에는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끈기도 너무 부족하다고 고백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새해 첫 독서로 <재인, 재욱, 재훈>은 나에게 안성맞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미녀선발대회에 참가한 미녀들에게 희망이 무어냐고 물을 때마다 월드 피스(world peace)"라는 대답이 자동으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슈퍼내추럴 파워를 가진 슈퍼히어로들 역시 세계를 구하는 것이 자신의 미션이라는 말도 새삼스럽지 않을 것 같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슈퍼내추럴 파워를 가진 재인, 재욱 그리고 재훈 역시 거창하게 세상을 구하는데 동원됐다면 비현실적이었을 것이다.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자기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작가는 독자의 이성과 감성을 예리하게 타격한다. 그들이 구한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말이다. 물론 인과관계를 정확하게 짚으면서 설명해 보라고 한다면 또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내 생각은 그렇단 말이다.

 

세 사람이 처한 상황 중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케이스가 바로 막내동생 재훈의 조지아 염소농장 이야기였는데, 작가의 친동생의 실제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엮은 이야기라고 하니 좀 얼떨떨하기도 했다. 작가의 말대로 정말 타인의 이야기를 참고만 잘하면 직접 사막에 가보지 않고서도 사막에서 벌어지는 일을 눈앞에서 본 것처럼 서술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이 부분은 정말 참고할 만하다. 물론 체화의 문제는 또 다른 것이겠지만 말이다.

 

<재인, 재욱, 재훈>은 은행나무의 노벨라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인데, 시리즈의 전작과 앞으로 나올 작품들이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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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거인 철학하는 아이 3
마이클 포먼 글.그림, 민유리 옮김, 이상희 해설 / 이마주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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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사두기만 아직도 읽어볼 생각도 못하고 있다. 나폴레옹 전쟁시대를 다룬 대역사물이라고 하는데, 전쟁 뒤에 따르는 평화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을까라고 아직 읽어 보지 못한 독자의 심정으로 생각해본다. 어린이 브랜드 이마주에서 나온 마이클 포먼의 <두 거인>은 책의 뒷면에 나온 대로 전쟁의 어리석음과 평화의 의미를 다룬 책이다.

 

시간적 배경은 아주 오래전 옛날, 그리고 공간적 배경은 아름다운 나라다. 이 나라에는 샘과 보리스라는 두 명의 친한 거인이 살고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였다. 샘과 보리스는 분홍색 조가비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싸움을 벌인다. 결국 싸움판 끝에 대홍수가 나고, 신발은커녕 양말도 서로 바꿔 신고 멀리 떨어진 섬으로 헤어지게 된다. 그게 끝이 아니다. 서로 멀리 떨어진 섬에서 서로에 대한 감정 때문에 큰 돌멩이를 날려 다치게 하고, 커다란 돌 방망이를 들고 쳐들어가 친구를 해칠 계획까지 세운다. 그러다 샘과 보리스는 서로 짝짝이 양말을 신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지난 싸움이 모두 부질 없었노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분쟁에 대한 아주 이상적인 해결책이 아닐 수 없다. 나머지는 둘 다 행복하게 잘 지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전쟁/다툼의의 시초는 아무 것도 아닌 분홍색 조가비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분홍색 조가비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가 아닐까. 다시 동화 속의 이야기로 돌아가, 현실세계의 전쟁도 그렇게 단순한 이유에서 시작된다면 문제해결이 쉽지 않을까. 양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려 있는 영토분쟁을 필두로 해서, 자국에서는 없는 에너지 자원 확보를 위한 무력 충돌, 특정지역의 패권과 정치적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부른 전쟁 등 분쟁의 원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그래도 영국 출신의 노작가 마이클 포먼은 <두 거인>에서 분홍색 조가비라는 아무 것도 아닌 재화를 등장시켜 전쟁의 원인이 되는 이유가 어쩌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가설을 세운다.

 

전쟁과 평화는 야누스처럼 이면을 가지고 있다. 전쟁이 시작이라면 평화는 끝을 상징한다. 어떤 전쟁도 끝이 없을 수 없고, 한쪽편이 이기든 지든 평화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는 두 거인이 싸움을 벌이면서도 짝짝이 양말을 신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평화 대신 전쟁을 누구 원하겠는가. , 천문학적 무기 시스템을 팔아야 존재할 수 있는 다국적 군산복합체 정도가 있을까. 역설적으로 전쟁/다툼의 시작이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타협을 통한 평화도 거인들의 짝짝이 양말이 가져다준 화해처럼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아이들을 위해 마이클 포먼이 그린 동화답게 정교한 그림 대신, <두 거인>은 큼지막한 글씨와 조금은 투박해 보이는 그림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거인의 그림은 골판지 재료를 찢어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보면 전쟁과 평화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잡아낼 수 있는 과연 철학하는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해졌다. 그들의 생각도 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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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03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아무것도 아니긴요..무려 그들은 눈에
보이는 분홍의 조개라는 실체를 두고 전쟁..
그런 것이니..눈에 뵈지않는 이념과 사상을
놓고 싸우는 것보단 적어도 실리주의.끝이나도 양말이 짝짝이라도 곧 어깨동무 하겠지요.

그런데. 이야기라는건 다 거기서 거기인가봐요.아니면 모티프ㅡ얻어..그런건가??
이 거인족 하니..갑자기 일애니 원피스 중
거인족스토리가 상당히 비슷하다 했어요. 투박하고 단순한 그림체 맘에들어요..
처음 앞의 질문부분까지만 읽고 답을 했어요.
다 읽으면 결론을 내 놓으실 듯 해서요.
그럼 누가..이 동화를 보겠나..싶어.
서둘러 제 답을 쓰고..결론은 같더라도.
그때는
아..양말을 나눠 신자..하고..ㅎㅎ
생각하는 동화 고맙습니다. 계속 소개 부탁드려요..재미있네요..
그럼 깊은밤 ~ 굿나잇! 꿀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