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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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퓰리처상 작가인 주노 디아스가 방한해서 그를 만나 싸인을 받겠노라는 생각으로 작가와의 만남 장소로 발걸음을 부지런히 했다. 그런데, 그 날 주인공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는데 바로 다른 한 명이 오늘 이야기할 <좀비들>의 작가 김중혁이었다. 자신이 하루에 원고지 한 장 쓰는 일매라면, 주노 디아스는 한달에 한 장 쓰는 월매라고 했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누군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의 책은 하나도 읽은 적이 없기에. 그런 다음, 다시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도 그의 책은 읽지 않았다. 더 시간이 지나고서야 최근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의 책 <좀비들>을 읽었다.

 

좀비가 등장하는 하드코어물을 즐기는 지라, 한국판 좀비 이야기가 분명한 <좀비들>에는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했다. 김중혁 작가의 <좀비들>은 한국판 종말론을 다룬 그런 소설이 아니라 온전하게 상실과 극복에 대한 드라마다. 좀비는 다만 작가가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와중에서 만난 한 가지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니 나처럼 유혈이 난무하는 하드코어를 기대한 독자라면 좀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죽음조차도 이 시대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죽었으면서도 죽지 않은 좀비라는 존재에 열광하니 말이다. 며칠간의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세상이 온통 좀비들로 뒤덮였더라는 미드 <워킹 데드>조차도 시즌을 넘기면서 시들한 마당에 좀비와의 대결보다는 온전하게 홀로 사는 세상 이야기가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형이 죽고 나서 형이 남긴 LP판을 차에 싣고 다니며 허그쇼크라는 첨단기술로 튐방지를 하고 음악 감상을 즐기게 된 주인공 채지훈의 이야기로 소설 <좀비들>은 시작된다. 이제는 그 존재마저 부정당하는 LP라는 매체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구닥다리 느낌이 팍팍 풍기는구나. LP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데, 에잇트랙이나 카세트테이프 타령을 하면 어디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온 줄 알겠는걸. 어쨌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감성이라니 글쟁이들에게 안성맞춤이로구나.

 

안테나 감식반의 채지훈은 형이 남긴 이안 데이비스의 스톤플라워라는 공통점으로 뚱보130와 고리오 마을(발자크에 대한 오마쥬인가)의 홍혜정이 차례로 소설의 무대에 등장한다. 결핍이라는 요소를 두루 갖춘 삼총사는 딴따라 음악 감상회에서 스톤플라워의 음악을 온전하게 소비하는 가운데 동질감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들의 균질감은 홍혜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와해되는가 싶었지만, 그녀의 딸 홍이안의 등장으로 다시 긴장감이 촉발된다. 그리고 고리오 마을에 살기 시작한 채지훈의 집에 뜬금없이 나타난 좀비 때문에 서사는 비로소 좀비소설다워지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줄거리와 전개는 예상대로다. 채지훈, 뚱보130과 홍이안 일행은 고리오 마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격리되게 되고, 군부대의 실험 대상이 된 좀비들이 하나둘 탈출해서 그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소설 초반에 등장해서 그다지 비중이 없어 보이던 채지훈의 동료 이경무까지 다시 출현해서 현실세계에 도저히 존재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좀비에 대한 비밀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장장군과 심소령이 주도하는 군부대에서 비밀리에 좀비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으며, 좀비 사냥으로 살인에 무감각한 병사를 양산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이 와중에 뚱보130이 조종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좀비에게 물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채지훈은 분명 군인들이 치료 백신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사지에 뛰어든다.

 

사실 종말을 다룬 대개의 소설이 그렇듯 <좀비들> 역시 대강의 줄거리와 고리오 마을의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결말은 중요한 요소가 되지 못한다. 캐릭터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작가가 추적하는 서사는 무엇 때문에 보다 “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이유에 대한 분석이라고 해야 할까. 어머니의 죽음 이래, 나홀로 사는데 익숙한 채지훈은 형의 죽음을 계기로 비로소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고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댓가라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다. 사랑인지 아니면 동정인지 모를 그런 감정으로 홍혜정의 딸 이안을 대하는 태도나, 뚱보130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에서 채지훈의 감정을 읽을 수가 있다. 어머니나 형의 죽음 앞에서 무력했던 이 청년은 더 이상의 상실을 거부하고 자신에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데 모든 것을 건다.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 기대한 것과 너무 달라 잠시 혼란스러웠다. 제목의 <좀비들>은 정녕 낚시였단 말인가. 책을 읽는 동안은 즐거웠다. 하지만, 좀 시간이 지나고 나서 리뷰를 쓰겠다고 책상머리에 앉았을 때 당혹스러웠다. 내가 과연 이 책을 제대로 읽은 건가? 물론 오독도 독서의 수많은 방법이라지만 여전히 내가 작가가 원래 예상한 궤적을 제대로 따라갔는지 아리송하다.

 

어쨌든 신작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만나기 전, 김중혁을 읽겠노라는 나의 결심은 지켜졌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아니면 한창 독감을 앓으면서 읽어서 그런 거라고 위로하고 싶다.

리딩데이트 : 2014년 4월 18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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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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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이 따르며 사는 낮의 규칙이 아닌, 밤의 규칙에 따라 사는 이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소설이나 영화라는 매개체가 아니고서는 대개 들어본 적이 없을 것이다. 타고난 이야기꾼인 데니스 루헤인이 조(지프) 커글린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들려주는 밤의 규칙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사는 치외법인의 이야기인 <밤에 살다-리브 바이 나이트>는 정말 재밌는 소설이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을 읽기 전에 <밤에 살다>의 프리퀄에 해당하는 <운명의 날>부터 읽었다면 하는 것이다. 어쩌겠나, 이미 다 읽은 소설을 뒤로 하고 되돌아갈 수는 없는 것을. 데니스 루헤인 작가는 자신이 집필하는 모든 소설의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고 들었다. 그리고 이미 <밤에 살다> 역시 영화화가 결정되었다고 한다. 주인공 조 커글린 역은 중년이 되어 그 어느 때보다 빼어난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캐스팅되었단다. <위대한 개츠비>에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역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감독은 갱스터 무비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틴 스코시즈가 맡으면 어떨까 싶다. 아니 벤 어플렉이 직접 연출을 한다고 했던가.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1920년대 보스턴의 찰스타운이다. 수정헌법 18조에 따라 여전히 금주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금주법이 오랜 인간의 욕망마저 제어할 수 없는 법. 사람들은 밀주로 알코올을 탐했으며, 막대한 수입이 따르는 밀주사업에 범죄조직이 개입하는 건 당연지사다. 보스턴의 유명한 경찰서장의 아들로 이제 막 성인의 문턱을 넘은 조 커글린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직업에 대한 반발이라고나 할까, 낮의 규칙이 아닌 밤의 규칙에 매혹되어 범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뭐 부자간의 갈등이라는 요소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일이기에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다만, 그 앞에 프리퀄 <운명의 날>의 여진이 있다는 점은 유념해 두어야 할 듯 싶다.

 

문제는 이 피끓는 청년 조가 에마 굴드라는 팜므파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 지역의 유명한 보스 앨버트 화이트의 애인이라는 점이 바로 문제였다. 그녀와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던 조는 마지막 한탕을 크게 벌이고 도망가기로 마음 먹는다. 문제는 마지막 은행강도짓을 하다가 그만 세 명의 경찰이 죽는 불상사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이 사실에 분노한 아버지 토머스 코글린은 부하 경찰들을 시켜 아들을 거의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팬다. 결국 찰스타운의 교도소에서 복역하게 된 조는 감옥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생존투쟁에 나서게 된다.

 

교도소를 지배하는 거물 마소 페스카토레의 눈에 들지만, 라이벌 앨버트 화이트 일당을 처리해 달라는 거듭되는 청탁을 아버지에게 전달해야 하는 조는 좌불안석이다. 결국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조는 건곤일척의 승부수로 마침내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보스턴 출신 풋내기의 생존기라면 2부는 무대를 한창 시가산업과 럼주밀래로 흥청거리던 도시 플로리다 이보르로 옮겨 진행된다.

 

전반부에서 조 커글린의 개인사에 집중이 되었다면, 후반부는 어떻게 해서 조가 범죄조직의 최상층부까지 올라가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기술해준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을 해도 폭력은 폭력을 낳을 수밖에 없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조는 불법적인 럼주밀매 뿐만 아니라 추후에 금주법이 폐지될 경우를 대비해 부자들을 겨냥한 도박산업을 플로리다 전체에 도입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조 커글린은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밤의 규칙에 따라 사는 자신이야말로 치외법인이라는 오만한 주장을 펼친다. 하긴 이미 자신의 운명을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늦었다.

 

실패한 은행털이 멤버였던 디온 바로톨로와 재회한 조는 지옥 같았던 찰스타운에서 살아남은 특유의 배짱을 무기로 철천지 원수 같은 앨버트 화이트를 플로리다에서 쫓아내고 명실상부한 보스의 자리에 오른다. 조는 경찰서장, 시의회의원, 하원의원, 언론을 매수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의 안전을 도모한다. 비록 치외법인이긴 하지만, 찰스타운 교도소에서 세월을 죽이기 위해 엄청난 양의 독서를 하며 그야말로 엘리트 조폭의 길을 걷는 조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교훈을 무시하며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데니스 루헤인은 조 커글린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통해, 유래 없는 경제호황으로 흥청거리던 시절의 모습과 물질에 대한 끝없는 인간의 욕망을 유감없이 그려냈다. 소설적 재미뿐만 아니라 미국이 쿠바에 개입해서 실질적으로 마차도와 바티스타 정권을 통해 쿠바를 지배하던 사실도 간간히 들려준다. 나중에 조의 애인이 되는 그라시엘라도 그렇게 미국으로부터 쿠바를 해방시키기 위해 범죄도 마다하지 않지만, 범죄자의 아내가 되어 검은 돈으로 자선사업에 매진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조 커글린 역시 사업상으로는 냉혈한에 가깝지만, 자기 주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여 자신을 배신한 디온을 용서하는가 하면 자신의 주인인 마소의 명령을 거부하면서까지 밀주사업가를 보호하거나 제거 지시가 떨어진 로레타 피기스에 손대지 않는 유약한 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과연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지닌 캐릭터를 디카프리오가 어떻게 연기해 보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욕망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로레타 피기스의 종교적 열정에 대한 조의 반응도 인상적이다. 그녀의 맹활약으로 자신의 야심찬 계획이 무너지는 과정을 보면서도 폭력적 방법에 호소하지 않는 이성적인 보스의 판단에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건 과연 나 혼자 뿐이었을까. 물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어둠의 규칙 때문에 자신도 무언가 잃을 수 있다는 걸 그 당시엔 과연 몰랐을까.

 

러브 스토리, 아버지와의 불화, 우정과 배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2인자의 분투를 그린 갱스터 드라마라는 그야말로 오락적 재미를 두루 장전한 <밤에 살다>는 확실히 수작이다. 소설의 마지막까지 그 결말을 가늠할 수 없는 연속되는 반전 역시 멋지다. 한 때 살았던 메트로 보스턴의 친근한 지명을 회상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그 당시에도 썩 좋은 동네는 아니었지만, 찰스타운이 한 때 그렇게 살벌한 동네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범죄조직 내에서 이탈리아 계와 아일랜드 계의 전통적인 갈등, 플로리다로 무대를 옮겨서는 새로 등장한 에스파냐 사람들과 쿠바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이름조차 생소한 KKK단 까지 가세한 인종갈등도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데니스 루헤인의 <밤에 살다>는 소설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이나 사건 하나 허투루 배치하지 않고, 치밀한 계획 아래 쓰인 웰메이드 소설이라고 부르고 싶다. 37년간 경찰에 몸담아 오면서 체득한 끊을 수 없는 폭력의 재생산을 경고한 선지자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한 탕자의 수난기가 꼭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으로 여담 한 번 하자면, 커글린 가문 중에서 서부로 가서 시나리오 작가가 된 에이든 커글린의 이야기도 가능하면 스핀오프로 한 번 만들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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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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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작가의 시원을 읽는 건 뜻깊은 일일 것이다. 내한에 즈음해서 요 네스뵈 작가의 데뷔작 <박쥐>를 읽기 시작했다. 400쪽이 넘어가는 두툼한 분량만큼이나 북구 출신 신예 작가의 글(이제는 오버그라운드 작가의 글이 되었지만) 예상대로 읽기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달리기 시작하면서 읽는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사실 요 네스뵈 작가의 책은 비교적 근간이 <스노우맨>으로 처음 만났는데, 시발점은 자신의 구역인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출발하다니. 그 기백이 보통이 아니다.

 

<박쥐>는 노르웨이 출신의 준 셀레브리티 잉게르 홀테르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자 오슬로 경찰서에서 주인공 해리 홀레(오지 사람들은 모두 ‘홀리’라고 부른다)를 파견해서 사건을 맡긴다. 나도 오스트레일리아를 여행하면서 참 많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점이 참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노르웨이 경찰이 오지 경찰들과 협력해서 사건과 영어로 진행되는 각종 회의에 통역 없이 참석하고 다양한 부류의 용의자들을 취조하는 장면에선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이번에 방한한 요 네스뵈 작가를 직접 만나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어쨌든 우리의 주인공 해리 홀리 형사는 오지 경찰에서 파트너로 정해준 앤드류 켄싱턴 형사와 짝을 이뤄 살해당한 자국민의 죽음을 밝히는 작업에 착수한다. 이 광활한 대륙에서 그야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아닌가. 그리고 어느 순간 독자는 소설 <박쥐>가 범인을 쫓는 하나의 과정과 애버리진(오지 원주민) 출신으로 ‘도둑맞은 세대’를 대표하는 앤드류 켄싱턴의 과거와 정체성, 그리고 왈라-무라-버버로 이루어진 애버리진 전설이 서로 엉킨 그야말로 복잡하기 짝이 없는 실타래 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소설 중반에서 헤맨 나의 개인적 경험 탓이지 싶다.

 

짧은 호흡으로 탁탁 치고 나가는 맛은 좋지만, 쉽게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하는 단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구성이 조금은 아쉽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아서일까. 모름지기 독자도 작가와 함께 성장하기 마련이다. 본궤도에 오르지 않은 미완성의 트랙에서 뛰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해리 홀리 형사는 사건 해결을 위해 시드니에서 잉게르 홀테르와 관련된 주변 인물 탐색에 나서면서 아주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연달아 만난다. 우선 그가 도움을 받고 있는 오지 경찰들은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하자. 첫 작품에서부터 경찰을 범인으로 고르는 작가는 없을 테니 패스. 배우이자 복장도착자 오토 레흐트나겔, 잉게르가 일하던 바의 동료인 스웨덴 출신의 비르기타 엔퀴스트, 앤드류의 소개로 알게된 아마추어 권투선수 로빈 투움바(요즘 유행하는 오지 식당의 파스타 이름과 똑같다), 킹스크로스의 여인 샌드러, 시드니의 최고 악질 포주 테디 몬가비, 잉게르의 집주인이자 노출증환자인 로버트슨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전 남친으로 이민자 출신의 드럭킹 에반스 화이트. 뭐 이 정도면 용의자 리스트는 차고 넘칠 정도다.

 

자꾸만 요 네스뵈 작가가 노르웨이가 아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해리 홀레 시리즈를 시작했는지 궁금해진다. 작가는 이제 막 썸타기 시작한 같은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매력녀 비르기타와 대화하는 방식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습관처럼 맥주를 들이키는 오지 사람들은 상대하면서 유난히 바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해리 홀레는 알코올 섭취를 기피하고 애꿎은 콜라만 거푸 들이킨다. 두 가지 추정을 해본다. 처음부터 마실 수 없거나, 이제 더 마시면 안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마시길 거부하는. 그렇다, 해리 홀레는 알코올중독자다. 이거 공무원인 형사에게 너무 치명적인 거 아닌가. 단서는 그의 꿈에 자주 등장하는 로니 스티안센이라는 이름이다.

 

책의 표지에 술병 속에 들어 있는 죽음, 애버리진에겐 죽음을 상징하는 박쥐가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이 두 가지가 각각 상징하는 것을 깨달았다. 병이 상징하는 알코올중독에 빠진 채, 차라리 동료 대신 자신이 죽었어야 한다는 자책이 파도처럼 해리 홀레를 엄습한다. 술을 마시고 운전해서 범인을 추격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동료 스티안센은 죽었고 그가 몰던 차에 친 소년은 하반신 마비가 되었다. 이제 슬슬 오슬로에서 잘 나가던 형사가 본국도 아닌 멀리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내쫓긴 이유가 설명된다. 앞으로 긴 시리즈의 주인공이 될 해리 홀레인데 이 정도 트라우마는 갖추는 게 독자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뭐 부족한 부분들은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채워 넣으면 될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책 읽기가 한결 여유롭다.

 

초짜 작가답지 않게, 능란하게 범인일 거라고 생각한 인물을 쫓다가 브레이크를 걸고 급반전 시키는 실력이 탁월하다. 아직 분량이 많이 남았는데 이렇게 쉽게 범인이 잡히진 않겠지하는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다. 용의 선상에 오른 범인 리스트가 하나둘씩 지워지고, 설상가상으로 해리 홀레 형사의 주변 인물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범인추적은 그야말로 미궁 속에 빠져든다. 도대체 누가 범인이지? 결정적인 단서 대신 아주 희미한 힌트를 발판으로 해리 홀레의 추격은 피날레를 맞이한다.

 

엽기적인 싸이코패스가 등장했던 <스노우맨>의 오싹한 공포에 비하면, <박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휴가처럼 느껴질 정도다. 지금까지 모두 10편이 출간된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서 이제 겨우 2편을 읽었을 뿐이다. 본국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삼아 종횡무진 활약을 전개하는 해리 홀레는 확실히 한 때 전도유망한 축구선수로 필드를 누비던 요 네스뵈 작가의 분신일 수밖에 없다. 그가 구사할 또 다른 스릴러 드리블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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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청접대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2
아리카와 히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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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참 제목이 요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청접대과>라는 제목 만으로는 이 소설을 짐작할 요량이 없다. 하지만, 이 요상한 제목의 저자 아리카와 히로가 <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의 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야릇한 기대가 들기 시작한다. 이번엔 또 무슨 기상천외한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줄까하는 그런 기대 말이다. 그리고 예상대로, 작가가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일을 바탕으로 해서 재구성한 소설 <현청접대과>는 마음에 쏙 들 정도로 재밌었고, 단박에 읽었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 소설의 무대가 되는 일본 시코쿠 섬의 고치 현이 어디쯤 있는지 구글맵으로 검색해 봤다. 그러자 소설의 주인공 가케미즈가 판다 유치론의 기요토 가즈마사에게 강제로 떠밀려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묘진산을 비롯해서, 서포터 묘진 다키와 아이스크림 데이트(?)를 아키 바닷가 그리고 고치현 관광부의 접대과가 일본 전국에 홍보하려고 노력했던 시만토 강과 니요도 강 같이 소설을 통해 익숙해진 지명이 쏟아져 나왔다. 그야말로 시코쿠는 도쿄나 오사카 같은 도회와는 다른 산과 일급수로 유명한 강 그리고 바닷가로 둘러쌓인 관광에 최적화된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정보다. 이런 정보가 빛을 보기 위해[觀光] 유람을 떠나는 이들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관광입현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고치 현의 공무원들이 이 중차대한 문제를 맡았다는 점이다.

 

이십몇년전에 이미 고치 현에는 관광객을 동원하기 위해 서일본에서 처음으로 동물원에 판다를 유치하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낸 기인이 있었다. 문제는 복지부동, 비효율의 대명사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공무원들이 이 기발한 기획을 내던진 입안자를 내쳤다는 사실이다. 시간을 그렇게 흘러흘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이렇다 하게 내세울 게 없는 고치 현은 많은 돈을 들여 관광입현을 목표로 공무원들을 닦달하기 시작한다. 민간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공무원들은 그저 기획과 공무원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한 나머지 실제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쌈박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 가케미즈 역시 그들 중의 하나지만 고치 출신의 소설가 요시카도 씨를 홍보대사로 임명하게 되면서 극적인 전환을 이루게 된다.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요시카도 씨는 전화로 따끔하게 가케미즈를 혼내면서, 고수가 하수를 훈련하듯 접대과의 말단 공무원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한다. 공무원 마인드에 푹 절은 가케미즈에게 요시카도의 지적은 그야말로 복음처럼 들린다. 그의 지적을 따르기만 한다면, 고치현의 목표인 관광입현도 불가능한 임무는 아닌 것처럼 보일 정도다. 우선 똑똑한 여성 스태프를 한 명 고용하고, 민간의 관광 전문가에게 쌈박한 기획안을 의뢰하는 것으로 가케미즈는 요시카도가 던져준 화제를 풀기 시작한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여성 스태프로 묘진 다키가 등장하고(독자는 바로 그녀와 가케미즈가 썸을 타리라는 것을 직감한다) 연이어 20년 전 판다 유치론의 주창자 기요토 가즈마사 씨와 만남을 통해 고치 현을 통째로 레저랜드로 만들자는 그야말로 야심찬 플랜이 가동되기 시작한다. 다 좋은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예산과 심의를 맡은 고치 현 간부들의 승낙을 얻느냐는 것이다.

 

융통성 없지만 정면돌파를 선택한 가케미즈는 기요토의 딸 사와 씨에게 물벼락을 맞기도 하고 또 뺨까지 맞아 가면서 이 어려운 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고치현 레저랜드 계획을 세운 기요토 씨가 현청의 고루한 고집쟁이들 때문에 도중하차하는 사태까지 겹치면서 한 때 난관에 봉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리카와 히로 작가는 그 때마다 적절한 유머와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하는 남녀간의 미묘한 관계 설정 그리고 역시 소설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작가 요시카도와 그의 양아버지 기요토의 알려지지 않은 관계를 조금씩 풀어가며, 풋내기 가케미즈를 멋쟁이 남자로 거듭나게 만드는 구성으로 소설 <현청접대과>를 흥미진진하면서도 유쾌한 소설로 유도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요즘 한창 규제개혁과 더불어 각종 사회공공시설의 민간참여가 대세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관료개혁이 우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민에게 복부해야할 관료 계급이 하나의 기득권층이 되어 시민 위에 군림하는 형세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불필요한 규제 또한 개혁의 대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관료/공무원이 아닌가. 소설 <현청접대과>는 공무원들이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비효율적인 마인드로 철저하게 무장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일본과 무역 거래를 하면서 문서 타령을 수도 없이 해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관청의 각종 규제와 씨름하고 있는 그네들의 일면을 볼 수도 있었다. 트러블슈팅에 있어 문서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불필요한 문서 작업으로 요시카도가 소설에서 지적하는 무엇보다 귀중한 시간 잡아먹기로 발목을 잡고 있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도 들었다.

 

소설 <현청접대과>에서 재밌는 점 중의 하나는 작가 자신의 역할도 상당 부분 차지한다는 점이다. 물론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집필한 탓일 수도 있겠지만, 도무지 움직이지 않으려고 하는 공무원들을 조종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고, 퍼블릭 코멘트/옴부즈만 시스템을 이용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 포인트야말로 여론에 약한 그네들의 약점을 파고드는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클린 히트였다고나 할까.

 

이 소설로 우리에게는 정말 알려지지 않은 시코쿠 고치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할거리 그리고 먹거리로 넘치는 곳이라니 가보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리고 관광의 빈틈을 메워주는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권리에 대한 지적도 멋지다. 훗날 내가 시코쿠에 가게 된다면 그건 전적으로 아리카와 히로 작가의 <현청접대과>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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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정용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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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책 모임을 앞두고 정용준 작가의 <바벨>을 읽었다. 유사 이래 새로운 것이 없다고 했던가. 고래로 신화의 재창조는 작가들의 단골 메뉴가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새로울 것 없는 소재를 가지고, 어떻게 다시 맛깔나게 창조하는가라는 간단해 보이면서도 결코 녹록치 않은 과제를 다루냐는 것이다. 진부하지만 일종의 독이 든 성배라고나 할까. 익숙한 소재이기 때문에 독자의 이목을 비교적 쉽게 끌 수는 있지만, 무언가 특별한 한 방을 보여주지 않으면 나락으로 추락해 버릴 수 있다.

 

내가 처음 만난 정용준 작가의 글은 <얼음의 나라 아이라>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얼음 나라의 아이라 여왕을 만나 편지를 가지고 오지만, 전언이 녹자 괴상한 소리만이 남았다고 했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래서 리뷰는 책을 읽는 대로 써야 하건만. 어쨌든, 말이 화근이 된 시대를 소설은 배경으로 한다. 닥터 노아라는 미치광이 박사에 의해 “펠릿”이라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마다 생성되는 유기물은 사람들로부터 ‘말’을 빼앗아 버렸다. 말을 하면서 만들어진 푸른 가스는 발목 주변에 칙칙하고 냄새 나는 덩어리가 되어 달라붙는다. 각종 설화로 이러저러한 스캔들에 시달린 연예인들의 얼굴이 얼핏 떠오른다. 기록의 시대에 시간이 지나도 그런 설화는 당사자의 발목을 잡는다. 소설 <바벨>에서 펠릿은 공평하게 모든 인류에게 적용된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도, 그 반대에 서 있는 가난뱅이도 모두 펠릿을 달고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렇게 한 십년을 살게 되자 사람들은 말하기를 포기하고 팜패드라는 것을 발명해서 필기로 의사소통을 대신하게 된다. 아마 아날로그 감성을 가진 사람은 노트를 가지고 다니며 글을 쓰겠지. 이 모든 게 그 닥터 노아 때문이 아닌가. 물론 이런 와중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있을 테고, 말을 하지 못해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내놓지 못하는 정부를 향해 분출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신문사에 근무하는 요나가 소설 <바벨>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연구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단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펠릿이 바이러스 같은 형태로 전 인류에게 전염되어 아무도 펠릿 없이 말을 할 수 없다는 전개와 설정은 일품이다. 다만 니느웨로 가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 방향으로 가다가 풍랑을 만나 거대한 고기 뱃속에 갇혀 죽을 뻔한 불손한 선지자 요나의 지향점이 어떠하리라는 것 정도는 상식일 게다.

 

어린 시절 유달리 말을 더듬었던 닥터 노아의 끈질긴 말에 대한 연구가 전 인류에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재앙을 불러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시작을 맡은 이가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소설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모든 서사의 초점은 과연 유일한 희망인 닥터 노아가 펠릿을 처리할 수 있는 해법을 개발할 수 있는가에 맞춰진다.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가 타락한 인류를 심판하기 위해 물의 심판에 앞서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원했듯이, 닥터 노아 역시 그런 비슷한 임무를 맡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버린다. 성서에 나오는 서사와 주요 인물을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의도가 자못 궁금해졌다.

 

펠릿이 지배하는 세상에 순응해서 살자는 방식을 고집하는 마리 그룹과 그에 반대해서 몸으로 저항을 마다하지 않는 전투적인 아벳 그룹 사이에서 주인공 요나는 방황하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요나의 타자화된 시선을 통한 객관성의 담보는 그렇기 때문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들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이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여기까지 밖에 올 수 없었나 하는 그윽한 아쉬움에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신에게 도전하겠다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오리지널 바벨탑 스토리의 거창함 대신 그저 살기 위해 커터로 펠릿을 잘라내는 연약한 존재에 대한 묘사가 잔상처럼 그렇게 드리워져 있다.

 

독서 모임 시간에 나온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문득 소설 <바벨>은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서사와 영화의 그것은 또 다르겠지만, 말이 족쇄가 되는 세상에 아주 적합한 영화 소재가 아닐까 하는 그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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