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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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하게 사랑의 교회 설립자 옥한흠 목사의 장남 옥성호 씨의 소설 <서초교회 잔혹사>와 기독교와 이슬람교를 각각 한 번 씩 배교한 레자 아슬란의 <젤롯>을 같이 주문했다. 부활절이 다가 오면서 종교 관련 서적이 읽고 싶었던 걸까. 후자는 아직 접하지 못했지만, 전자는 한국 기독교계가 작금에 처한 상황과 맞물려 현실과 소설적 상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서술 때문에 단 이틀 만에 완독할 수가 있었다.

 

쌤앤파커스의 임프린트 <박하>에서 출간된 <서초교회 잔혹사>는 당당하게 표지에서 “장편소설”이라고 이 책의 성격을 규정한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서초교회 잔혹사>가 과연 소설일까라는 생각이 마음을 어지럽혔다. 이 현실을 빼닮은 소설의 배경은 정지만 목사가 설립한 서초교회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는 이 교회 청년부 출신 간사로 신학교를 졸업해서 사역 중인 장세기 목사다. 그저 그런 학교를 졸업하고,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그야말로 평신도 출신 장세기 목사는 한 번 사람을 쓰면 끝까지 믿는 정지만 목사의 간택으로 청년부 교역자의 자리에 오른다. 한편, 은퇴를 앞둔 정 목사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에서 지역 주민을 상대로 교역 중인 김건축 목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내정하면서 소설은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한다.

 

새로운 목사 담임목사 부임을 앞두고 어수선한 가운데, 핵심, 잉여 그리고 건전지 목사라는 세 부류로 작성된 소위 살생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사역하는 교역자들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이렇다할 스펙이 없는 장세기 목사 역시 잉여보다는 좀 낫지만 쓰고 언제든지 교체될 수 있는 건전지 목사로 분류되고 만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게 봉사한다는 사명감으로 청년부에 헌신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달마다 월급통장에 찍히는 사례비와 자동차 그리고 교회에서 제공 받은 사택이라는 물질적 유혹에 흔들리는 보통의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은 사역자의 심리 상태를 저자는 너무나 현실적으로 짚어낸다. 이런 기득권을 과감하게 버리고,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교회 개척이라는 황무지로 나갈 자신이 있는가하고 장세기 목사는 거듭해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드디어 담임목사로 등장한 김건축 목사는 세계선교라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글로벌 미션”이라는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로 포장해서 교역자 회의부터 영어로 진행하겠다는 파격을 선보인다. 비전 성취를 위해 토익 시험을 치르는 건 오히려 약과다. 그리고 자신이 요루바 어로 작곡했다는 “쌀루디 긴다” 송을 모든 교역자들에게 뜻도 가르쳐 주지 않은 채 암기해서 회의 때마다 부르게 한다. 한 발 더 나아가, 담임목사와 부목사 시스템이던 기존 시스템을 부장목사, 과장목사라는 해괴한 명칭으로 고쳐서 수직적 관계로 재편성한다.

 

서초교회의 이런 파격적 행보는 보수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되고, 급기야 글로벌 시대에 맞춰 영어로 진행되는 교역자 회의 취재에 들어가겠다는 발표가 나면서 교회는 또 한 번 술렁이게 된다. 장세기 목사는 사전 교역자 회의 리허설을 통해 김건축 목사의 허풍과는 달리 실제로 그의 형편없는 영어 실력을 알게 되고, 담임목사가 과연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나게 될지 궁금해 한다. 동료 차명진 목사의 예언대로 립싱크로 마지막 영어 기도로 마무리가 되면서 허깨비 같은 그의 실체를 조금씩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김건축 목사가 야심차게 출간한 책이 자신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 미국 출신의 재미교포 목사가 대필했다는 사실이 인터넷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서초교회에 또다른 파란을 몰고 온다. 그야말로 아스트랄한 사건사고가 새 담임목사 부임과 동시에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다.

 

한편, 자신의 밥그릇을 위협할 새로운 청년부 목사가 청빙 중이라는 사실에 절망한 장세기 목사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하며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벼랑 끝에 놓였던 장세기 목사의 운명은 김건축 목사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면서 극적 전환을 맞이하게 된다. 잉여나 건전지 요원이 아닌 핵심 포스트에 배치되면서 권력의 단맛을 알게 된 장세기 목사는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세상의 안락함과 물질의 지속적 공급을 위해 그나마 가지고 있던 양심을 내려놓고, 김건축 목사와 공동운명체가 되는 길을 선택한다.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가 철저하게 왜곡되는 순간을 저자는 일관된 과정을 통해 담담하게 서술한다.

 

김건축 목사를 옹호하기 위해 청년부를 대대적으로 동원해서 대여론전에 나선 장세기 목사는 자신에게 부여된 물질과 인적 자원을 총동원해서 담임목사의 각종 비리 방어전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비로소 잉여/건전지 요원에서 일약 핵심 포스트의 자리에 올랐지만, 한 번 이탈하기 시작한 정상 궤도를 유지하기 위해 김건축 목사 그룹은 불가피한 무리수를 지속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강원도 화천 지역에 당회의 승인 없이 임의대로 계획한 잉글리시 타운 설립이 언론에 알려지고, 이 상황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던 원로목사인 정지만 목사가 서초교회는 자신이 시무하던 시절의 서초교회가 아니라는 양심선언을 하면서 파국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건축 목사의 최측근인 마홍위 전무목사의 지휘 아래,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비열한 방법까지 동원되고 그 총대를 장세기 목사가 매게 되면서 잉태된 비극은 건강이 좋지 않던 정지만 목사가 급작스러운 소천으로 마무리된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양심을 가지고 있던 장세기 목사가 회심해서 김건축 목사의 전횡에 맞서는 최후의 영적 전쟁에 나서길 바랬다. 하지만 기득권이 보장하는 세상의 물질적 유혹은 너무 강했고, 담임목사가 제시한 권력의 맛은 너무 달콤했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그렇게 강조했던 고난을 체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그는 온전하게 김건축 목사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자신이야말로 절대순종하는 주의 종이라고 입으로는 외치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대상을 섬기는 블라스피미(blasphemy)가 아닌가. 하나님과 물질의 신인 맘몬을 두 주인으로 섬길 수 없다는 성경 말씀조차 지키지 못하는 이 땅의 교역자들에게 외치는 예언자의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공의를 주장하며 늦기 전에 회개할 것을 부르짖는 예언자의 말은 구약시대부터 대중과 권력자들을 설득하지 못해왔다. 그게 현대에는 소설에 나오는 마 전무목사가 지휘하는 SNS 여론부대의 활동으로 세련되었지만 말이다.

 

소설의 어떤 부분에서는 불편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성직자들이 성무를 집행한다는 이유로 소득세 납부조차 거부하고 있는 마당에, 장세기 목사조차 일인당 국민소득을 월등하게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간접 정황이나 탈식민주의 시대에도 여전히 아프리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무얼 알겠냐는 식의 설정이 그것이다. 하긴 사자 사냥을 취미로 삼는 목사나 있는 마당에 그 정도쯤이야.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디 이 소설에 묘사된 이야기들이 그저 작가의 상상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교계의 지도자라는 이들이 논문 표절을 하고도 충분한 회개 없이 주일 강단에 서고, 배임 횡령으로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처참한 현실이 겹쳐지면서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자고로 견제 받지 않는 권력과 성역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21세기 서초교회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500년 전 민중의 가슴을 울렸던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요구에 다시 한 번 귀기울일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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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롯 - “예수는 정치적 혁명가였다” 20년간의 연구로 복원한 인간 예수를 만나다
레자 아슬란 지음, 민경식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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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아닌 두 번의 배교자가 쓴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 신의 아들이라기 보다 혁명가로서의 조망이 어떻게 서술되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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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36
제프 린제이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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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덱스터가 돌아왔다. 리뷰의 시작으로는 좀 진부하지만 어쨌든. 책으로 먼저 만났던가? 아니면 쇼타임에서 방영되는 덱스터 시리즈로 만났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처음 덱스터를 만난 순간, 어두운 달빛 그림자와 검은 승객을 친구 삼아 날카로운 칼과 공업용 테이프로 무장하고 법망을 피해 유유자적하게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악당들을 처리하는 매혹적인 ‘싸이코패스’ 킬러에게 그만 반하고 말았다. 게다가 냉소적이고, 그만의 유머로 무장되어 있으니 이만한 캐릭터가 없지 싶다. 지난 십년 동안, 제프 린제이는 이 성공적인 캐릭터를 바탕으로 모두 7권의 책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다섯 번 째인 <달콤한 킬러 덱스터>에서는 이전과는 확실하게 다른 무언가를 추구한다. 바로 그에게 진짜 가족이 생긴 것이다.

 

전작 <친절한 킬러 덱스터>에서 몇 달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덱스터와 리타 사이에 릴리 앤이라는 새 생명이 태어나고 그동안 킬링을 낙으로 삼아온 연쇄살인마가 드디어 인위적인 웃음과 꾸며낸 인간관계를 벗어 버리고 마침내 진짜 인간이 되기 시작하는 과정을 <달콤한 킬러 덱스터>는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왜 제목은 <달콤한 킬러 덱스터>로 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그리고 덱스터는 릴리 앤의 미래를 위해 어둠에서 벗어나 양지의 사람이 되겠노라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그런 이유로 계속해서 덱스터의 취미생활을 기대했던 독자에게 개과천선한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비로소 인간궤도에 접어든 덱스터를 가만 놔두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 그 이름은 마이애미 강력계의 데보라 모건 경사다. 그녀가 맡은 어느 사립고등학교 여학생의 실종 사건 현장에서 대량의 피가 발견되면서, 경찰 소속의 혈흔분석가 덱스터의 결심은 꼬이기 시작한다.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덱스터가 개입된 사건의 강도는 생각보다 세다. 그 정도로 마이애미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들이 엽기적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이번에는 카니벌, 식인종이 등장한다. 맙소사.

 

게다가 아주 오래 전에 데보라를 거의 죽일 뻔한 덱스터의 친형 브라이언까지 등장해서 스토리를 흥미롭게 만든다. 의붓아버지 해리에게 자제력을 배운 덱스터와는 달리,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처럼 폭주하는 브라이언과 데보라가 다시 만나기라도 한다면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갑자기 등장한 브라이언은 리타와 애스터, 코디의 환심을 사면서 덱스터 월드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착륙을 시도한다. 그 와중에 소외감을 느끼는 덱스터. 자신의 취미생활 포기선언으로 검은 승객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고 그야말로 감이 떨어진 덱스터에게 그나마 하나 남은 진짜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데보라는 자꾸만 약한 소리를 해댄다. 도대체 이 괴짜 남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달콤한 킬러 덱스터>는 두 개의 트랙으로 진행된다. 실종된 사만다 알도바르를 추적하는 과정(사실 이 부분이 훨씬 더 재밌다)과 아이의 출산이라는 극적인 체험을 한 킬러 덱스터 내부의 미묘한 심리 변화에 대한 두 가지 전혀 다른 방식의 서사구조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릴리 앤의 탄생으로 어쩔 수 없이 아빠가 된 킬러의 변심이라니. 독자는 어쩌면 배신감을 느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10년 동안 진행된 캐릭터라면 뭐 이 정도의 변심 혹은 변신은 눈감아 줄 만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예전에 드래골볼 시리즈의 손오공처럼 우주로 날아가 상상 그 이상의 초강적들과 대면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달콤한 킬러 덱스터>는 좀 더 쎈 인스톨을 위해 잠시 쉬어가는 이야기 정도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물론 실종된 사만다를 찾는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대적 카니벌들과의 대결을 보면 그렇지도 않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끄는 이슈 중의 하나는 덱스터와 오랜 동반자 관계였던 검은 승객과의 날선 갈등이다. 더 이상 취미생활을 하지 않겠노라는 덱스터의 선언에 덱스터 월드의 실제적인 지배자였던 검은 승객은 더 이상의 영감을 덱스터에게 주지 않겠다는 듯 그를 궁지에 몰아 넣기 시작한다. 최강의 파트너였었는데, 이제 막 태어난 아기에게 정신을 빼앗긴 남자에게 검은 승객이 자비를 베풀 리가 없다. 이에 더해, 어느 순간 등장해서 덱스터 가정의 인기를 독차지한 브라이언 역시 주목할 만한 캐릭터다. 독자는 내내 그가 왜 이 시점에 등장했을까 하는 의문을 소설의 결말까지 제프 린제이는 숨기고 알려주지 않는다. 비중 있는 캐릭터인 만큼 인상적인 한방을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리뷰의 제목으로 <마이애미 뱀파이어 클럽>이라고 뽑았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혐오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기에 자세한 언급을 가급적 피하고 싶다. 그 내용을 알고 싶으신 분들은 직접 책을 읽어 보시라. 좀 엽기적이다.

 

날이 좀 무뎌지긴 했지만 역시 덱스터는 덱스터였다. 쇼타임 드라마도 시즌 1,2만 보고 나머지는 패스해서 요즘 덱스터의 활동상이 좀 궁금해졌다. 이미 미국에서는 <달콤한 킬러 덱스터>의 후속작으로 두 편의 소설이 더 발표되었다고 하는데, 명실상부하게 진짜 아빠가 된 덱스터의 진화가 궁금하다. 그나저나 이제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게 된 마이클 C. 홀의 덱스터 표지 이미지가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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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10-10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오래 전에 덱스터 시리즈를 읽으셨군요ㅎ 전 드라마는 보았는데 원작 소설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다 읽었습니다.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더 스크랩 - 1980년대를 추억하며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5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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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게 8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를 들라고 한다면 주저 하지 않고 마이클 잭슨을 꼽을 것이다. 모두가 다 아는 1982년 말에 발표된 그의 전설적인 앨범 <스릴러>는 미국 내에서만 3,000만장이 팔린 메가 히트 앨범이었다. 그런데, 코널 대학 출신의 휴이 루이스가 이끄는 밴드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는 2014년을 사는 사람 중에 모르는 이가 더 많을 것 같다. 이제는 세계적인 대작가가 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스크랩>에는 그런 1980년대 소위 정크시대를 그리는 회상으로 가득하다.

 

우선,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신인작가에 지나지 않았던 하루키는 미국 내 가십을 주로 다루는 잡지들인 <피플>과 <배너티 페어>를 비롯해서 <뉴욕 타임즈>, <뉴요커> 같은 다양한 소스를 통해 자신의 밥줄인 글거리를 찾아낸다. 바로 위에 등장하는 마이클 잭슨만 하더라도, 진짜를 보기 원하는 팬들을 위해 프로모터들이 미국 전역에서 마이클 잭슨을 닮은 흑인 청년을 선발해서 지방 쇼 무대에 올렸다고 한다. 그들이 진짜 마이클 잭슨처럼 노래를 부를 리는 만무하고, 립싱크로 춤만 제대로 춰도 하루 일당으로 300달러나 벌었다고 하니 놀랄 지경이다. 이런 요지경 속의 삶을 하루키는 정확하게 포착해낸다.

 

<스크랩>의 특징은 미소의 냉전 대결이 극한으로 치닫던 1984년에 개최된 LA 올림픽에 대한 하루키의 심드렁함으로 대변된다. 그가 예전부터 달리기를 좋아하는 마라톤 팬이라는 건 알았지만, 정작 올림픽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서도 딱히 관심 없어하는 “쿨”함이라니. 하긴 오늘날의 하루키라면 그래도 누가 뭐라고 그러겠냐만 초짜 작가 시절에도 그럴 수 있다니, 그의 배짱이 놀랍기만 하다. 보통 그런 배짱은 일가(一家)를 이룬 다음에 하는 게 아니었던가.

 

하루키의 관심 분야는 정말 다양하다. 1980년대 새로 등장한 질병인 헤르페스를 필두로 해서, ‘미스터 악터버’로 알려진 레지 잭슨이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 미국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나가는 이들에게 손 인사를 하는 낙에 산다는 고물상 부자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다양하다. 그리고 보니 이제는 영화업계나 정치판에서 거물이 된 “터미네이터” 아널드 슈워제네거도 등장하는구나. 이미 그 시절에 부자였던 슈워제네거가 영화에 출연한 건 단지 취미였다는 말에 그만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달콤한 팝송 “Top of the World"의 주인공 카렌 카펜터가 가수 시절 내내 오빠에게 콤플렉스로 시달렸다는 점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됐다. 사실 어떤 건 딱히 관심도 없는 부분이었는데, 역시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하루키는 사실의 표면 밑에 숨겨 있는 핵심을 집어내는데 역시나 탁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하루키의 열혈 팬은 아니면서도, 그의 책을 꾸역꾸역 읽어대고 있다.

 

<미국의 송어낚시>로 유명한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아직 그의 대표작을 읽어 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그가 일본에서도 널리 읽혔다는 건 또 처음 알았다. 하루키의 글을 읽다가 브라우티건의 죽음과 선배 작가 헤밍웨이의 그것이 비슷한 건 또 왜일까하는 궁금증에 도달하기도 했다. 좋지 않은 선례는 계속해서 반복되는 법일까 싶기도 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도 철도와 의료 민영화 이슈가 뜨거운데, 선진국이라는 미국에서는 교정 시설(교도소)까지도 이미 정크시대에 사설화가 이뤄진 모양이다. 이미 그 시절(66만 명)로부터 30년 정도가 지났는데 지금 교정시설에 수감된 죄수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그들에게 소용되는 연간 비용이 평균 14,400달러라고 하는데 비용절감 차원에서 관영(?) 교도소보다 훨씬 더 적게 비용이 드는 사기업 형태의 교도소가 늘어나는 것도 시장원리에 맞을 진 모르겠지만, 도덕과 윤리적으로 맞는 것인지 하루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사는 우리 지구별이지만, 운석사냥꾼이 다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홀로코스트 가해자였던 전직 나치들의 뒤를 쫓는 나치 헌터의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남미의 볼리비아에서 숨어 살던 “리옹의 도살자” 클라우스 바르비를 추격해서 잡아낸 이야기도 짜릿했다. 유명 영화 <러브 스토리>의 저자 에릭 시걸이 부와 명성을 얻었지만, 독자나 비평가들로부터 경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인상적이었다. 후배 작가 하루키의 두 가지나 이뤘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는 따끔한 지적도 멋지다.

 

서두에 등장한 휴이 루이스의 근황이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를 통해 그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봤다. 나도 한 때, 무척이나 좋아하던 가수라 그런지 하루키의 글이 자극이 됐다. 유명 대학을 졸업한 엔지니어로서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로큰롤 음악을 하기 위해 늦깎이 록가수로 데뷔해서 우리나이로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활동 중인 그의 모습이 반가웠다. 뭐 이런 게 삶 아니겠냐고 묻고 싶다. 에너지가 넘치고, 무언가 지금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던 정크시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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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 없다. 왕의 귀환이다.
아, 그리고 보니 내가 <언더 더 돔>을 다 읽었던가? 아마 1권과 2권만 읽고 세 번째 권은 읽지 못했지 싶다. 나와 미스터리의 제왕 스티븐 킹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리고 2013년 여름, 왕이 다시 돌아왔다(우리나라에는 겨울에 도착했다).
원서로는 283쪽, 전작에 비해 확실히 가볍다(번역판은 400쪽이 넘어가는구나, 얏호 뻥튀기). 제왕이 오랫동안 구상해왔다는 놀이동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모태로 한 여름 소설 <조이랜드>가 그렇게 탄생했다.

 

80년대를 주름 잡았던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에서처럼 열기에 휩싸여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 발산을 하지 못해 방황하던 청소년들을 정체불명의 몬스터가 습격하는 슬래셔물의 패턴을 스티븐 킹은 그대로 차용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황금가지에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믿고 읽는 월터 컨이 쓴 뉴욕타임즈 리뷰를 찾아봤다. 쇼킹까지는 아닐지라도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라고 해야 할까. 대학 2학년 선배가 캠프 파이어에서 마쉬멜로우를 구워 먹으며 신입생에게 들려주는 그런 정체를 알 수 없는 야릇한 이야기들. 아마 우리네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을까.

 

리뷰에 따르면, 소설 <조이랜드>에는 빼어난 플롯이나 가공할만한 악당이 등장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란다. 다만, 긴장감을 유발하는 ‘크리피네스(creepiness)’가 줄기차게 등장할 뿐.

 

주인공 데빈 존스는 소설가를 꿈꾸었지만, 잡지 기고가가 되어 순수했던 70년대(정화하게 말하면 1973년,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해)를 회고한다. 당시 그는 예민한 성품의 숫총각으로 애인과 결별하고, 노스캐롤라이나의 호러 하우스 <조이랜드>에서 알바를 뛰게 된다. 소설의 무대가 되는 조이랜드에서 수년 전, 린다 그레이라는 이름의 여자가 살해되었고, 그녀의 유령이 이 놀이동산에 출몰한다. 어때 흥미롭지 않은가? 그리고 실연의 상처를 지닌 데빈은 필연적으로 린다 그레이의 유령에 강박증을 느끼게 된다는 뭐 그런 내용이다.

 

예전에 심리학 수업에서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포비아 중의 하나가 바로 clownphobia라는 말을 듣고 좀 놀란 적이 있다. 놀이동산에서 삐에로 분장이나 동물탈을 쓰고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캐릭터들을 오히려 아이들이 무서워 하다니. 스티븐 킹은 우리에게 가장 친근한 장소에서도 오싹한 스릴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선보인다. 하긴 옛날 초등학교 시절, 공동묘지 위에 학교에 세워졌다는 학교괴담 정도는 이제 가소롭기까지 하지만. 그 위에 이제 막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으로 접어드는 과도기에 선 청년을 얹은 성장소설, 뭐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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