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5
다나베 세이코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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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엔가 일본 작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 작가 참 도발적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예의 작가의 책을 읽은 독서모임에서 그녀보다 고수가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다나베 세이코였다. 아마 <침대의 목적>과 <아주 사적인 시간>을 추천받았던 것 같은데 묵혀 두고 있다가, 지난주에 <춘정 문어발>로 다나베 여사의 문학 세계에 빠져 들었다. 그 다음에 읽은 책이 바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하 <조제>)이다. 이 책도 오래 전, 어느 여행지에서 우연히 어느 커플이 동명의 영화를 꼭 보라고 추천했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렇게 추천 받은 영화라면 바로 구해서 봤을 텐데, 이제 영화마저 나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지라 그냥 안보고 버텼다. 그렇게 길게 돌고 돌아 이제야 <조제>와 만났다.

 

다나베 여사는 1928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87세다. 28세도 아닌 87세라니. 그런데 젊은 처자 못지않은 감각으로 여성들의 은근하면서도 오묘한 심리를 까발리는데 도가 튼 모양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 그녀의 관심은 오욕칠정의 세계가 그야말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파란만장한 남녀 관계에 있다고 했던가. <조제>에 실린 9편의 단편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우리가 즐겨보는 <사랑과 전쟁> 뺨치는 파격적이면서도 달달한 연애이야기를 풀어낸다.

 

자매간에도 질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첫 번째 에피소드인 <어렴풋이 알고 있었어>에서는 일이나 연애에서 모두 잘 나가는 동생을 둔 언니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살림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요즘 말로 하면 모태솔로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는데 이야기의 주인공 고즈에는 그마저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동생 미도리가 어느 날 갑자기 먼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예비신랑감에 필요이상의 기대를 보이는 고즈에. 야릇한 갈등의 전조를 내비친다.

 

다음은 역시 표제작인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다. 조제는 이 단편의 여주인공 구미코가 프랑수아 사강의 소설의 주인공 조제를 본 따 지은 자신의 별명이다. 어려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아 하반신마비의 장애를 가진 조제는 우연한 기회에 대학생 츠네오에게 도움을 받아 인연을 쌓게 된다. 그런 조제를 돌봐주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시고,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런 상황에 처한 조제를 찾아간 츠네오는 동정과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츠네오는 그렇게 조제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보고 싶어 하는 야수의 왕 호랑이를 보러 동물원을 찾는다. 그리고 해변여행을 떠나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들에게 자신들을 투영하며 스스로 죽었다고 생각한다. 완전무결한 행복이 죽음 그 자체라니. 너무 내냉소적인 게 아닐까.

 

아직까지 영화를 보지 않아서 어떤지 모르겠지만, 이 짧은 단편을 가지고 두 시간짜리 영화를 만들려면 반드시 각색 작업이 필요하겠지. 중요한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이벤트는 그대로 가져가면서 러닝타임 두 시간을 채우기 위한 다양한, 하지만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들을 채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가능한 한 롱테이크로 촬영하지 않았을까? 도대체 어떻게 새로운 버전의 <조제>를 만들었을지 궁금하다. 기회가 닿는 대로 영화를 봐야지 싶다.

 

<조제>에는 어쨌거나 다양한 사랑에 대한 버전이 실려 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이모와 조카의 관계를 다룬 <사랑의 관>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아무리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선언과 함께 진행되지만 못내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어쩌면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 강렬한 여운을 남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워커홀릭으로 일에 미친 남편의 빈자리를 채우는 일을 통해 알게 된 연하남과의 줄타기 연애는 아슬아슬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다나베 여사는 절제의 미덕에 대한 서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하긴 무림의 절대고수라면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남편이 일에 미쳐서 나를 돌봐주니 않으니 어쩔 수 없이 바람피우게 되었다, 진부하다 진부해. 치키라는 손가락 인형의 입을 빌려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고전적 수법이 아기자기하게 느껴졌다. 이 양반 대단하구나.

 

 

 

 

남자는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알고는 있기나 하나? 열 살 연상의 남자는 연하의 여자를 자신의 별장에 고이 모셔 두고 일에 너무 바쁜 나머지 찾지 않는다. 폭주족이 인근에 출몰하자, 자기 대신 조카를 보낸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묘한 긴장감을 즐기는 듯 한 태도가 영 마뜩치 않다. 결혼 중에 다른 여자를 임신시키고 헤어지는 순간에도 밥타령을 하는 남편의 “욕망에 충실한 빛나는 에고”를 냉소적으로 찬양하기도 한다. 전처와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두 집 살림을 하는 남편을 호색의 날다람쥐라고 부르는 에리코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요즘 유행하는 말로 썸타는 사이도 아니면서 내 것인 듯 아닌 듯한 그런 미묘한 여성의 감정선을 잡아내는 기술이 정말 유려하다.

 

이렇게 다양한 사랑의 방정식을 통해 다나베 여사는 남자들에게 묻는 것 같다. 니들이 사랑이 뭔지 아냐고 말이다. 물론 이 질문은 남자는 소중한 취미라고 쓴 다나베 여사 정도는 돼야 물을 수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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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퇴장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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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필립 로스의 신작 <유령 퇴장>의 원제인 Exit, Ghost는 셰익스피어 희비극에 나오는 무대 용어라는 말로 이 리뷰를 시작하고 싶다. 누가 읽어도 노대가의 얼터 이고(alter ego)가 분명한 네이선 주커먼을 전면에 내세운 소설 <유령 퇴장>은 2011년 911테러 이후, 테러가 일상의 위협이 되어 버린 시절에 남성성을 잃은 71살 노작가의 욕망 고백이다.

 

탱글우드 축제로도 유명한 버크셔 산골에 지난 11년간 자발적 혹은 타의에 의한 은둔을 하던 주커먼은 암에 걸려 밀레니엄 캐피탈 뉴욕으로 복귀한다. 더 치명적이었던 것은 예의 암이 근원지가 전립선이었고,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전립선 절제술은 문필가로 필명을 날리던 노작가를 요실금 때문에 기저귀 차고 다니는 한물 간 노인네로 격하시켰다는 점이다. 그냥 그렇게 조용하게 근치 치료를 마치고 다시 버크셔로 복귀하려던 주커먼의 계획은 뉴욕 리뷰 지의 광고란의 부동산 교환 공고를 보고 전화 다이얼을 돌리는 순간, 무모한 순간으로 돌입하게 된다.

 

여느 작가들처럼 노숙한 주커먼 역시 노년에 자신의 영감을 불러 일으켜줄 대상으로 젊은 여성을 골랐던가. 30대 초반의 여피 부부 제이미 로건이 대상이다. 이미 발기불능으로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을 상실한 주커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으로서의 욕망마저 거세된 것은 아니었다. 한편, 소설가를 꿈꾸는 제이미와 그녀의 남편 빌리 데이비도프(유대계 미국인)는 1년 정도 뉴욕에서 떨어진 외딴 곳에서 집필 활동을 꿈꾼다. 그런 마당에 나름 이름난 작가인 주커먼의 산골 오두막에서 지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황홀한 경험이겠는가.

 

소설 <유령 퇴장>은 노년의 작가와 여피 부부의 미묘한 관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한 때 젊은 시절의 주커먼이 숭배해 마지않던, 하지만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불세출의 작가 E.I. 로노프(이하 매니 로노프)를 필립 로스는 등장시킨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을 중심(이복누이와의 근친상간)으로 한 전기를 통해 일약 문단의 스타가 되려고 결심한 제이미의 전 남자친구이자 프리랜서 작가인 리처드 클리먼은 집요하게 주커먼에게 매달리면서 자신에게 협조를 요구한다. 그가 그렇게 뻔뻔하게 나오는 데는, 로노프의 마지막 애인이었지만 이제는 암에 걸려 역시 치료 중인 에이미 벨레트가 건네준 로노프의 장편 소설 사본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유령 퇴장>은 2004년 재선을 노리는 조지 W. 부시와 민주당 대선후보 존 케리의 대결 시기인 10월말에서 11월초까지의 일주일을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심지어 세계대전을 치르면서도 공격받지 않았던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인 타격에 의한 충격을 제이미 로건의 다양한 방식의 공격적인 언사를 통해 필립 로스는 절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텍사스 휴스턴 유전재벌 아버지를 둔 제이미는 별다른 직업 없이,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의 어퍼사이드 아파트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고 있다. 게다가 자신을 숭배하는 남편까지 둔 그런 매력적인 여성이다. 임포텐츠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 싶어 하는 무기력한 노작가의 치열한 욕망 고백은 한편으로는 자신이 숭배해온 작가 로노프를 방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을 에이미에게 약속하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필립 로스가 진짜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저물어 가는 삶의 말년에 서서 훗날 어떤 치기 어린 젊은 작가가 나서서 자신의 삶을 들춰내서 망신을 주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아니었을까? 노골적인 작가의 욕망을 <그와 그녀>라는 다이얼로그 방식으로 풀어나가면서도(필립 로스의 문학적 상상인지 아니면 실재했던 이야기인지 그 경계마저 모호하다), 자신이 올곧게 주장하는 ‘젊은이들이여 제발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말라’는 경고는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자신도 젊었을 적에는 그랬었노라고 말하는 모순에도 도달한다. 성공과 명성을 원하는 리처드 클리먼(저널리스트 혹은 작가지망생)을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막을 것이냔 말이다. 자신만의 신화에 흠집을 내고, 성공에 집착한 남자를 모욕하는 방법으로 타격을 가하려는 주커먼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리고 설사 그가 전혀 사실이 아닌 주장으로, 로노프에 대한 (의도적) 명예훼손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밝혀줄 사람은 이미 사자(死者)가 아니었던가.

 

필립 로스는 반복해서, 욕망에 사로잡힌 주커먼의 언동이 무모하다고 곳곳에서 독자에게 신호를 보낸다. 문단에서 성공을 거둔 것 말고는 전혀 내세울 게 없는 자신보다 무려 40살이 많은 이 노땅 작가에게 제이미 로건이 뭐가 아쉬워서 끌린단 말인가. 그녀에게 돈이 부족한가, 배움이 모자라나(그녀가 하버드 출신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11년 전에 시작된 살해 협박 때문에 자발적(?) 은둔에 들어간 주커먼은 자신의 인생에 아무도 들이지 않는 삶의 방식을 고수했지만, 일견 무모해 보이는 순간의 욕망 때문에 판단착오의 연쇄반응을 경험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에 눈이 먼 주커먼이 치명적인 실수로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필립 로스 정도 되는 작가가 그 정도의 분별력은 가지고 있겠지.

 

<유령 퇴장>은 올해 82세의 필립 로스가 지난 2007년(75세)에 발표한 주커먼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70대 노대가는 여전히 자신만의 영역에서 자신의 언어로 빛나는 순간을 창조해내고 있었다. 휴대전화로 점령당한 밀레니엄 캐피탈 거리에 대한 생생한 묘사, 문인과 문창생 간에 끝없이 이어지는 현학적 대화 그리고 클리먼 같은 풋내기 부수기야말로 생의 마지막을 앞둔 문학 십자군인 자신의 마지막 임무라고 선언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과연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생각한 얼터 이고의 ‘퇴장’이 사실일까. 살아 있는 미국 문학의 전설이 되어 가고 있는 필립 로스의 대단원은 어디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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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 문어발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3
다나베 세이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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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어느 커플이 지나가는 걸 봤다. 그런데 둘이서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었는데 여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의 인상이 아주 못마땅해 보였다. 그러면 맛있는 걸 같이 먹으면서, 이유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 보면 좀 풀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침이다 보니 토스트나 김밥 혹은 샌드위치로 해결해야 하니 그것도 좀 난망해 보였다. 가능하면 고즈넉한 저녁 시간에 팔팔 끓는 국물 요리라도 앞에 두고 이야기를 시도해 보면 한결 낫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며칠에 걸쳐 다나베 세이코 여사의 <춘정 문어발>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예의 커플의 남자친구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사실 다나베 세이코 여사의 필명은 오랫동안 들어왔으면서도 정작 처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춘정 문어발>이었다. 인간사 오욕칠정 중에 애욕과 식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일까. 아무래도 여성 작가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다양한 맛을 자랑하는 요리와 재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남녀 간의 애정(愛情)의 형태를 유쾌하게 들려준다. 모두 8편의 에피소드가 실린 이 소설집은 읽을수록 감칠맛(우아미)이 난다.

 

여성작가이면서도 에피소드의 모든 화자는 하나 같이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건 양보 못한다는 사고로 단단하게 무장한 남정네들이다. 그런데 다나베 세이코 여사는 그들이 추구하는 식탐의 이면에 또 애정 전선을 구축한다. 모름지기 음식의 코드에는 나눔이 빠질 수 없다는 반증일까?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홀로 먹는 것은 궁상스러워 보인다. 그렇다고 주인공 남자들이 가이세키나 일류 회요리 같은 고급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천박(?)해 보이는 길거리 음식인 다코야키, 오코노미야키 혹은 제대로 만든 일본 계절요리를 원한다.

 

문제는 그들의 파트너들이 손품이 많이 간다는 둥, 요즘에는 누가 그런 구식 음식을 먹느냐면서 타박을 하고 음식 기행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남자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까지 감행하면서 자신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기쓰네(유부) 우동 같은 자칭 천박한 음식에 탐닉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나베 세이코 여사는 그럼 연인보다 음식을 택한 건가라는 질문도 빼놓지 않는다. 초년의 불꽃 같이 타오르는 사랑이야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고른 주인공들은 모두가 중년 혹은 초로의 신사들로 “크림” 냄새 나는 서양식 보다 정통 일본식을 고집한다. 이런 음식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그들이 당면한 갈등의 단초가 된다.

 

또 하나 주인공들의 희구하는 음식은 추억의 요리들이다. 그냥 끼니를 때우기 위해 배를 채우는 그런 음식이 아니라, 과거를 떠올리고 회상하는 특별한 매개체로 작용한다. 그러니 손품이 많이 간다는 이유로 제작을 거부하는 부인들에게 반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어처구니없이 불륜을 저지르면서도 요상한 도치법까지 사용해 가면서 그런 상황에서 남자는 그럴 수밖에 없노라는 핑계까지 대지 않는가. 산더미 같이 쌓인 고래 고기를 스테이크로 요리해서 먹거나 미즈나를 넣은 고래 스키야키를 ‘아작아작 냄비’라고 부르며 끓여 먹던 시절은 오롯하게 개인적인 것인데, 고로나 오바케에 대한 남자의 집착을 어떻게 현재의 아내와 딸이 이해해 줄 수 있겠는가. 다나베 세이코 여사는 반복해서 그야말로 초코파이 정(情)이 담긴 남자들의 요리에 대한 추억을 상기시킨다.

 

 

반전의 재미도 일품이다. 다코야키 애호가로 대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노총각 나카야는 홀로된 어머니와 같이 살 신붓감을 구하다가 그만 혼기를 놓쳐 버렸다. 자신에게 거침없이 대하는 요즘 처녀들에게 눈살을 찌푸리고, 천생연분 짝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죽어버려, 대머리’ 같은 소리나 듣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데루코라는 처자와 다코야키 인연으로 무언가 잘되어 간다고 싶었지만, 알고 보니 그 끝자락이 불륜이었다는 외통수에 직면한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짝이라고 생각했던 데루코는 그저 다코야키 메이트가 되길 원하는 연상의 뻔뻔한 아줌마였다는 사실에 대머리 노총각은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재밌는 건 요리가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헤어진 전처와 우연히 만나 화해하고 갈등을 풀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하긴 정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밥정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처음 데이트를 시작하는 연인들이 그렇게 무섭게 먹는 것에 매달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름지기 인간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밥정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미리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한 가지 다나베 세이코 여사는 이 맛깔스런 소설집에서 은연중에 일본 요리에 대한 자긍심을 곳곳에 심어 두고 있다는 점이 느껴졌다. 팔팔 끓는 복지리 요리에는 맥주보다는 도쿠리에 담아 데운 니혼슈가 어울리고, 적생강이니 흰된장 같이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간사이 지방 그 중에서도 특히 일품요리로 유명한 오사카의 서민 요리에 방점을 찍는다. 이와 더불어 가정과 직장에서 소외 받는 중년 남성들의 대체 취미로 말하기 부끄러운 ‘방정하지 못한’ 식도락을 추천하기도 한다. 날이 쌀쌀해지는 초겨울 퇴근길에 자신만의 단골집을 찾아 돼지고기 기본 오코노미야키를 주문해서, 시원한 맥주 한 조끼를 걸치며 상상력이 가미된 요리를 즐기는 재미도 없이 도대체 무슨 낙으로 사느냐고 다나베 세이코 여사는 묻는 것처럼 들린다.

 

한동안 진지한 책들을 읽는 통에 그냥 무턱대고 가벼우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읽고 싶었었는데 다나베 세이코 여사의 <춘정 문어발>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이제 시작하는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출발이 산뜻해서 너무 기분이 좋다. 선택지가 많으니 배스킨 라빈스의 31가지 아이스크림처럼 골라 읽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다.

 

리딩데이트 : 2014년 7월 22일 ~ 7월 26일 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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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조의 바다 위에서
이창래 지음, 나동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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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이창래 선생의 신작, 6월도 한참 넘어 7월에 간신히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기존의 작품과 달리 찬반, 호불호가 갈린 작품이라고 하는데 우선 읽고 나서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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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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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다. 아주 오래 전이었다. 그런데 왜 내가 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오래 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표제작인 <대성당>이 맹인 이야기였다는 점 정도 밖에는.

 

이번에 팟캐스트에서 누군가 낭독한 버전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영어 원서를 비교해 가면서 듣고, 읽었다. 처음에는 원서 없이 두 번을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 책 읽는 것과 타인이 읽는 것을 듣는 것은 천양지차였다. 오래 전에는 낭독이 독서의 대세였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책은 혼자 읽는 묵독으로 바뀌었다고 했던가. 묵독만 하다 보니, 낭독으로 서사를 쫓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대신 귀에 착착 감기는 어느 특정한 에피소드들은 머릿속에 각인되는 느낌이었다.

 

소설 <대성당>에는 모두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어느 부부에게 아내의 오랜 친구 맹인(the blind man)의 이름은 로버트다. 소설의 화자 나는 로버트 대신, 맹인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아내 친구의 방문이 못마땅하다. 자기 스스로 맹인에 대한 편견을 영화를 통해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맹인 로버트의 방문을 통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편견들과 직접 마주하는 체험을 겪는다.

 

화자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공군 장교)과 한 번의 결혼 경력이 있다. 아내는 십년 전, 시애틀에서 로버트에게 고용되어 일하게 된 후 지속적으로 “테이프”를 통한 연락을 가져 오고 있다. 테이프라, 상당히 고전적인 방법이고 맹인에게 보다 확실한 음성을 통한 전달이라는 방식에서 소통에 제격이다. 공군 장교의 아내로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아내는 다량의 수면제와 진을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것조차 실패하고 어찌어찌하여 지금의 나와 잘 살고 있다.

 

이어지는 대화와 서사를 통해 아내와 맹인 로버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사항을 알게 되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알게 된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지금 3년째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별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술이나 마약 혹은 마리화나를 즐기며 늦게까지 안잔다는 것 정도 밖에는. 이렇게 아주 평범한 사람의 일상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인 맹인 로버트가 나타나, 나는 생뚱맞게도 그에게 ‘대성당’을 설명해 주려다 아예 로버트의 제안으로 그림까지 그려 주게 되는 상황을 맞이한다. 그게 마치 목숨이 걸린 중요한 일인 것처럼 말이다.

 

뉴욕에 갈 때는 기차의 오른편에서, 되돌아 올 때는 기차의 왼편에 앉아야 한다는 것 따위가 무슨 중요한 일일까 싶다. 식전주로 스카치를 마시고, 식탁에서의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마치 식탁을 뜯어 먹기라도 할 기세로 큐브 스테이크와 스캘럽 포테이토 그리고 녹색 콩 등을 무섭게 먹어 치운 세 사람의 균열은 먼저 아내에게 수마(睡魔)가 다가오면서 찾아온다. 균열은 위기인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대화에서 자신의 소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화에 끼어 보려고 노력하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대화 도중에 텔레비전을 켜다니. 하지만 또 역설적으로 그렇게 텔레비전에 등장한 대성당(cathedral)이 아내가 자리에서 빠진 가운데, 나와 맹인 로버트를 이어주는 묘한 매개체로 작동한다.

 

꽁한 스타일의 “나”와는 달리 담배도 씩씩하게 잘 피고 스스로를 스카치파(派)라고 부르며, 화자를 젊은 양반(bub)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맹인 로버트는 암웨이 판매업에도 종사했고, 아마추어 무선사로 활동하면서 세상의 누구와도 친구 먹을 수 있는 그런 캐릭터로 등장한다. 초대 받은 집의 낯선 호스트에게서 마리화나를 권유받고서도, 모든 걸 배울 수 있다는 그런 자세로 임하는 로버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물을 뛰어넘은 그런 사나이가 아닐까. 주변에서, 특히 영화에서, 보고 들은 (왜곡된) 정보를 가지고 상대방을 재단하는 속좁은 편견을 가진 나야말로 대부분의 소시민의 자아를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보이지도 않는 로버트 앞에서 졸음에 겨워하는 아내의 탐스런 허벅지를 가리려는 나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캐치해낸 레이먼드 카버의 찰나의 미학 또한 일품이다.

 

시기 혹은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인 화자가 맹인 로버트와 함께 직접 대성당을 그리며 화해해 가는 과정은 <대성당>의 하이라이트다. 소통을 거부하는 화자에 비해, 열린 마음으로 ‘나’의 이야기를 구하며 대성당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고, 더 나아가 아예 한 번 그려봐 달라는 진심 어린 부탁으로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는 맹인의 자세는 고의적으로 자신을 무시하는 젊은 양반보다 우월한 인격체의 발현으로 다가온다.

 

김연수 작가의 번역과 팟캐스트 방송의 낭독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후자의 경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조금은 메마른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물론 서사와 컨텐츠에 집중하기에는 상대적으로 좋았지만 감정이입 차원에서는 아쉬웠다. 작가인 김연수 씨가 직접 번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무래도 본인 작가이다 보니, 원작자의 충실하기 보다는 매끄러운 번역에 치중한 느낌이다. 가령 예를 들어 본문 중에 나오는 “strange”를 ‘이상하다’라고 번역하기보다 ‘신비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예를 보자. 그냥 딱 보기에도 이상하다와 신비하다는 너무 거리가 멀지 않나? 성당 곳곳에 장식하는 괴물 석상인 가고일(gargoyle)이 이무기란다. 맹인 로버트가 화자를 호칭할 때 사용하는 “bub”를 젊은 양반이라는 표현도 상당히 우리 식 아닌가. 그냥 젊은 친구라고 했다면 너무 건방져 보여서 굳이 ‘양반’을 고른 걸까.

 

예전에 읽을 적에는 <대성당>의 서사에 방점을 찍었다면, 이번에 오디오와 원서로 대조하면서 접했을 땐 등장인물들 간의 관계와 소통, 내면의 심리 등에 중점을 두면서 읽었다. 역시 좋은 글은 사골 국물 우리듯 몇 번이고 읽어도 그 맛이 줄어들지 않는다. 문득 존 치버의 단편과 레이먼드 카버의 다른 단편들을 이번 기회에 만나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의 참맛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삶의 진실과 마주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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