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튜브와 인별그램 때문에 점점 장편 소설이나 긴 영화 시청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다. 예전에는 참 영화를 많이 봤었는데 이제는 그 시절보다 더 환경이 좋아지고 거의 보고 싶은 영화들은 다 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극장에도 잘 가지 않게 되었고 영화 보는 것도 시큰둥해져 버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도 가끔 어떤 영화가 갠춘다더라 하는 건 또 그런 SNS으로 알게 된다. 어젯밤에 본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도 그렇게 만나게 된 작품이다.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창조한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정확하게 원전이 어떻게 되더라.

 

개인적으로 원전보다 점점 더 변용이 마음에 들게 되더라. 사고는 진보주의자를 자처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또 보수주의가 웅크리고 있달까. 원전 피노키오도 좋고, 이번에 새로 나온 원전보다 훨씬 더 다크한 피노키오 그리고 반전 메시지를 담은 변용도 마음에 들었다.

 

다크 판타지 애니메이션 피노키오의 시작은 하나의 솔방울로 시작한다. 마스터 제페토 아저씨는 전쟁 중 폭격으로 사랑하는 외아들 카를로를 잃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완벽한 목수로 불리던 이의 추락이 아들의 죽음과 함께 시작된다. 아들이 애지중지하던 솔방울을 아들의 묘 근처에 묻었고, 솔방울에서 싹이 나서 소나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광기에 휩싸인 제페토 아재는 그 소나무를 베어 나무인형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게 바로 피노키오의 탄생이다. ,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생중계하듯 전달하는 이가 있었으니, 이름하야 세바스티안 J. 크리켓이다. 목소리는 이완 맥그리거가 맡았다.

 

클리셰이지만 천둥번개가 쾅쾅 치는 가운데, 새로운 생명 창조에 나서는 마스터 제페토의 모습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연상시켰다. 목수의 아들로 생명을 잃은 카를로의 이미지는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정말 다양한 이미지와 서사의 변용을 이번 피노키오 애니메이션에 담아냈다.

 

숲의 정령들이 모여 나무인형 피노키오의 몸에 들어갔고, 마지막으로 나무의 요정이 등장해서 내일 아침 피노키오에게 사람으로 태어나라고 명한다.

 

날이 밝고, 생명을 얻은 피노키오의 천방지축이 시작된다. 새로운 피조물 피노키오는 인간사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나마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이지 싶다. 병을 깨고, 마스터 제페토의 작업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면서 즐거워하는 피노키오. 아들을 상실한 비통한 마음에 나무인형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가 카를로를 대신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마스터 제페토. 그러니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피노키오의 비극적 운명은 결정된 게 아니었을까. 마스터 제페토를 줄곧 파파라고 부르는 피노키노와의 평행선이 손에 잡힐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다.

 

성당에 간 마스터 제페토를 쫓아간 피노키오는 그곳에서 화려한 데뷔전을 치른다. 나무십자가에 매달린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형상을 따라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골수 파시스트 시장님은 버르장머리가 없는 피노키오가 학교에 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래도 나무인형이라고 차별하지 않아서 다행인가.

 


순종적인 카를로를 닮기 위해 카를로가 사용하던 교과서를 들고 학교에 가겠다던 피노키오는 볼페 백작이 운영하는 유랑극단에 스카웃되어, 노예계약을 맺고 합류한다. 아이들은 원초적으로 즐거움을 원하는 쾌락주의자다. 그런 아이들에게 학교 교실에 앉아서 읽기와 쓰기 그리고 곱셈표를 배우라는 건 어불성설이 아닌가 말이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그런 주입적인 교육 시스템에 가두어지는 아이들의 미래가 참 그렇게 느껴졌다. 결국 획일화된 교육시스템을 통해 길러진 미래의 산업전사 양성이 목적이 아닌가 말이다. 거기에 경쟁까지 첨가되면 무엇이 즐거울까.

 


볼페 백작은 살아 있는 꼭두각시 피노키오의 가치를 알아보고 동업자 바분 스파자투라의 도움을 얻어 피노키오를 이용해서 돈벌이에 나선다. 일단 노예계약으로 피노키오의 인신을 구속하고, 전형적인 아동 노동(child labor)를 실행에 옮긴다. 그렇다고 피노키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도 않는다. 나중에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마스터 제페토의 짐을 덜기 위해 다시 유랑극단에 합류할 때 피노키오는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제페토 아재에게 보내 달라고 요구했지만, 악덕 자본가 볼페 백작이 그럴 리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은 감독이 강력하게 집어넣은 반전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우선 마스터 제페토의 카를로가 폭격으로 성당에서 사망했다. 얼치기 두체가 이끄는 국가 이탈리아는 어린 소년들마저 병사로 만들기 위해 유소년 밀리터리 캠프를 운영한다. 포데스타(시장님?)는 자신의 아들 캔들윅을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용감한 파시스트 전사가 되라고 강요한다.

 

밀리터리 캠프에서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경쟁을 벌이던 피노키오와 캔들윅은 사이좋게 무승부로 승부를 내지만, 포데스타는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진짜 권총을 아들 캔들윅에게 건네 주며 권총으로 피노키오를 쏘라고 명령한다. 세상에 이게 아이들이 보는 동화가 맞나 싶을 정도의 설정이었다.

 

참 그전에 유랑극단을 따라 나선 마스터 제페토는 마지막 공연을 위해 카타니아로 떠난 피노키오를 따라잡기 위해 바다에 나섰다가 괴물 물고기에게 삼켜진다. 어째 이 부분에서는 또 성경에 등장하는 요나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결국 모든 서사는 상호연관을 통해 그때에 맞는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 운명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는 죽지 않는 피노키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애니메이션을 통해 피노키오는 두세번 정도의 죽음을 맞는다. 어느 순간 소멸한 숙명의 인간과 달리 피노키오는 명계에서 보내는 시간의 차이 뿐 다시 부활에 성공한다. 죽음마저도 유쾌하게 다루는 게 바로 연출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실력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이야기의 빌런들인 볼페 백작과 포데스타는 동화적 서사의 순리(?)대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볼페 백작은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한 어린이 노동자 피노키오가 스파자투라의 조력으로 자각해서 자신으로부터 떠나려고 하자 자신이 소유할 수 없다면 차라리 불태워 버리자는 막가파식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정말 악랄하지 않은가. 파시스트 국가와 얼치기 지도자 일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들까지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신념으로 무장한 포데스타 역시 죽지 않는 불사신의 병사 피노키오를 전쟁에 이용해 먹을 생각으로 가득차 있다. 이런 빌런들의 최후와 처리는 예정된 수순으로 진행된다.

 

역시 피노키오 서사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괴수 물고기 뱃속에 집결한 마스터 제페토와 피노키오, 미스터 크리켓 그리고 스파자투라의 탈출이다. 평화로워 보이는 바다에 둥둥 떠 있는 무시무시한 기뢰들은 전쟁이 주는 불안과 두려움의 상징이다. 바로 그 기뢰를 이용해서 괴물 물고기의 공격으로부터 탈출하는데 성공한 피노키오는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명계로부터 돌아오는 마지막 결정을 하는 장면에서는 영화 <A.I.>의 데이빗 생각이 바로 났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마스터 제페토를 구하기 위해 피노키오는 어쩌면 보장된 영생을 포기하고 지상으로 복귀한다.

 

뻔히 아는 서사였지만, 결국 엔딩에 가서는 감동의 도가니탕이었다. 가장 대표적인 메시지라고 할 수 있는 반전부터 시작해서, 인간 소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변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게다가 익숙한 피노키오의 전통 서사를 뼈대로 삼아 거부감을 줄이는 기술도 놀라웠다. 무엇보다 나와 다른 이를 내 방식으로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알면서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나부터 바뀌어야 하겠지만.


[뱀다리] 본문에 빼먹었는데 스티븐 킹의 <펫 세머터리>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아 이야기의 변용도 엿볼 수가 있었다. 제페토 아재가 올라탄 배의 선장의 모습에서는 <모비딕>과 후크 선상이 연상되기도 했다. 왜 이렇게 연상되는 것들이 많은지.

마스터 제페토는 초반에 완벽주의자로 등장하는데, 불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의 완벽함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읽히기도 했다.

볼페 백작에게 가스라이팅당하는 연예계의 떠오르는 스타가 된 피노키오의 모습에서는 최근 소속사와 정산 문제로 심각한 분쟁이 발생한 어느 가수가 떠오르기도 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그 이야기를 보고 만들었나 싶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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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16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반전 메시지로의 변용이라니 궁금합니다. 원전을 각색하는 경우 그 원전을 그대로 복사하듯 묘사하느냐 아니면 비틀어트느냐 하는 게 있는데 피노키오처럼 아주 오래된 동화나 고전의 경우는 이렇게 감독이 원하는 방식을 주입시키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에요.
저도 영화관 가본지가 참 오래 되었습니다. 조만간 영웅 보러 가게 될 것 같긴 한데~ 이 영화 재미날 것 같아요!

레삭매냐 2022-12-16 13:34   좋아요 1 | URL
저도 화가님처럼 후자에
더 무게중심을 두고 싶습니다.

전 <아바타>가 보고 싶긴
한데 좁은 영화과에서 3시간
12분을 버틸 재간이 없어서
걱정이네요.

거리의화가 2022-12-16 13:45   좋아요 1 | URL
옆지기는 제가 아바타 보러 가기 싫다고 했더니 오늘 혼자 보러 간다고!ㅎㅎㅎ 러닝타임이 너무 길어요ㅠㅠ

stella.K 2022-12-16 14: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제페토가 여기서 나왔군요. 피노키오는 알아도 제페토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아바타는 그런 단점이 있긴 하지만 본전은 뽑겠네요.
하긴 어제 지하철 고장나서 일곱시간인가 갇혀 있었다는데 화장실도 못 기는 폐쇄적 상황 생각만 해도 끔찍하죠. 울나라 드라마 60분 16부작 이젠 가히 살인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대도 대하드라마 32부작이 만들어진다는군요.

레삭매냐 2022-12-19 09:14   좋아요 1 | URL
그렇죠 아무래도 피노키오
가 주인공이다 보니 :>

새로 나온 피노키오에서는
마스터 제페토의 이야기
비중이 상당하더군요.

예전에 왕건이 200부작
아니었나요? 참 대단합니다.
 


지난 주말에 가보려고 벼르던 빵집에 다녀왔다.

가게 이름은 악토버나인.

커피맛이 갠춘다해서 기대했다. 우리 동네에는 요즘 베이커리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곳이 왕송호수 근방의 카페 리코인데, 가격이 너무 사악해서 잘 가지 않게 된다.



차 끌고 어딜 갈 때마다 주차 때문에 신경이 쓰인다.

항상 물어 보는 말이 주차할 데는 있나요... 아 차가 있으면 편리하긴 한데 주차가 너무 고민이다.

근데 여긴 주차장이 정말 넓다. 문제는 입구가 너무 좁아서 들어가는 순간 맞은 편에서 차가 나오면 노답니다. 다행히 들어갈 때는 차가 없어서 편하게 들어갔지만 나올 적에는.

 

역시 베이커리 카페답게 들어가니 빵테이블에 빵들이 그득하다.

기본 중의 기본이 크루아상 아니던가. 장소는 상당히 넓어 보였다. 일단 자리를 잡고 주문각에 들어가 본다.



그동안 나름 여기저기서 빵들을 먹어 보았지만 이렇게 귀여운 이름의 빵은 또 처음이다.

아기궁뎅이”.

정말 빵이 둥글둥글한 것이 아기궁뎅이 모양으로 생겼다.

다 먹어 보고 싶지만, 금방 칼국시집에서 밥을 먹고 와서 더는 못 먹겠더라.

혹자는 디저트 빵배는 따로 있다고 하던데... 난 아닌 모양.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간만에 들른 칼국시집에는 닝겡들이 만석이었다.

주문한 해물칼국시가 나오는데 장장 40분이나 걸렸다. 오우 지쟈쓰~ 그리고 가격도 오르고 양도 줄었다. 크학!!! 물가가 너무 올랐다.



지금 다시 봐도 침이 쥬르쥬르~ 바게트인지 앙버터인지 잘 모르겠네 그래.

빵 종류가 참 많지만 정작 먹는 건 항상 정해져 있다.



다음 메뉴는 페스츄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는 티라미슈와 크림뷜레다.

 

음식은 하지도 못하지만, 크림뷜레는 최근에 인스타에서 보니 정말 만들기 쉬워 보이던데.

하긴 인스타 음식은 다 쉬어 보이긴 하지.



이건 몽블랑이던가. 어제도 이맛트에서 사다가 먹었다.

이맛트 빵집이 나름 싸서리. 하긴 SPC빵 안 사먹고 이맛트 빵 사다 먹는 건 무엇인지.

결국 대기업에 포위된 소비자의 선택지가 거의 없다는 게 비극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날 나의 픽이었던 나비파이다. 카페 리코 만큼 가격이 사악하지 않아서 다행이지 싶었다.

타임빌라스에서 사악한 단팥빵 가격에 놀랐는데, 지나고 보니 요즘 빵 가격들이 죄다 올라서 그게 비정상이 아닌 모양이다.

 

나비파이는 바삭바삭한 것이 아주 기가 막혔다.

배가 터질 것 같다는 말은 다 구라였고, 바로 다 흡입해 버렸다. 기세 같아서는 하나 더 먹고 싶더라는.



나비파이와 라떼 한 잔 사먹었다. 라떼는 평타였다. 좀 쓴 맛이 돌더라.

 

악토버나인 근처에 달구움이라는 카페가 있다는데... 다음번에는 그곳에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악토버나인은 작은 카페 분위기라기 보다는 약간 대형 카페 삘이라고나 할까.

속달동에 갠춘한 카페들이 많이 생겨서 날 풀리면 투어를 한 번 해봐야지 싶다.



[뱀다리] 덤으로 오늘 먹은 수제 버거 사진 하나 투척.

 

원래 나의 픽은 참치유부초밥과 우동이었으나, 눈발이 펑펑 날리는 가운데 사람들이 모두 배달앱을 돌리는지 15분에서 20분 기다리라고 해서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바로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나의 소듕한 점심 시간 중에 1/3을 웨이팅으로 날릴 순 없으니깐 말이지.

 

책이라도 들고 나왔다면 모를까, 맨 손에 이십분 대기는 너무 가혹했다.

하긴 요즘은 책 읽기도 시큰둥하다. 지난달에 연간 목표 달성하고 나니...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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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2-12-15 15: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짝짝짝 지난달에 달성하실 줄 알았어요!!!
저도 오늘 빵 집을 두 곳이나 갔어요.ㅎㅎㅎ
파리 바게뜨에 안 가게 된 이후로
빵집이 멀어서 좀 고생이긴 한데
오늘 아주 좋은 빵집에 가서
멤버십을 만들었죠.^^;;
근데 수제 버거와 맥주를? 아니군요.ㅋㅋ
스프라이트?
탐납니다.ㅋㅋ

레삭매냐 2022-12-16 10:44   좋아요 0 | URL
하루에 빵집 두 개 클리어!
대단하십니다 ㅋㅋㅋ

전 SPC 가능하면 불매하려
고 하는데, 천지사방에 SPC
라 미션이 쉽지 않네요.

프랑스에서는 맥도널에서도
비어를 팔더라구요.
버거에 비어라 -

얄라알라 2022-12-15 15: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40분!!! 최근 2시간 40분 대기 경험 이후, 음식 나오는 시간에도 민감해진 저 ㅋㅋ 책이 있다면 레삭매냐님 4시간도 기다리실 것 같은...20분 공백에 책 없음을 아쉬워하시다니 멋지십니다!

레삭매냐 2022-12-16 10:46   좋아요 1 | URL
웨이팅 시간에 솟아나는
분노 때문에 아마 책도 제대로
읽지 못하지 않을까 싶네요.

사실 웨이팅은 지나가는 행인
들이나 SNS를 위한 광고가
아닐까 싶더라구요. 제 때 손님
못 받으면 미리 공지를 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마냥
기다리게 하는 건 그렇네요.

누굴 위해서 기다립니꽈아!~~~
전 그렇게 안할라구요 ㅋㅋㅋ

서니데이 2022-12-15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알라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 보내시고, 새해에도 좋은 일들 가득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따뜻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레삭매냐 2022-12-16 10:47   좋아요 1 | URL
따뜻한 덧글,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

서니데이님도 해삐 뉴이어
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미미 2022-12-15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목표달성 못했습니다^^;;
그저께 바지락 칼국수 먹었는데 바지락이 너무
많아서 놀람요. 주인언니가 나름 큰 손 이셨던..
다만 칼국수 양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당황했어요.

요즘 물가 너무 올랐죠. 책값도.
수제버거 먹음직스럽네요.
감자는 역시 두꺼운게 진리!

레삭매냐 2022-12-16 10:48   좋아요 1 | URL
그니깐요 -

접 때 방문한 집도 가격 인상
이 되기 전에는 칼국수 면과
바지락이 그득했답니다.

원부자재 상승으로 ...
그랬다고 합니다.

얇다란 감자 프라이보다 역시
두터븐게 좋더라구요 ^^

호우 2022-12-16 0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간목표를 달성하고 느긋하게 숨고르는 12월을 보내고 계시군요. 멋지십니다. 맛있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사진들이 달콤 하네요^^

레삭매냐 2022-12-16 10:49   좋아요 1 | URL
해다마 연간 독서 목표량이
줄어 들지 싶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책 사지 말고
집에 쌓아 둔 책 읽자아~~~
네 다 구라입니다. 또 살겁니다.

분발해서 더 달달한 빵집들
사냥해 보겠습니다.

자목련 2022-12-16 10: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눈으로 빵을 흡입하는 중입니다. 달콤한 빵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이 그립습니다.
미미 님이 드신 칼국수도 먹고 싶습니다.
저도 살짝 거들면 어젯밤에 족발을 시켜 먹었는데 오랜만에 먹는 족발이라 그런지 참 맛있게 먹었습니다. 책 정리는 잠시 멈춤인가요? ㅎ

레삭매냐 2022-12-16 10:51   좋아요 1 | URL
오 칼국시!
저도 녹색 주황색 흰색
삼색 칼국시 사진 나중에
투척해 드리겠습니다.

오옷 저희도 지난 수욜날
간만에 족발 사다 먹었답
니다. 간만에 입에 지름칠
좀 했습니다. 번들번들...

그렇지 않아도 뜨끔했는데
바로 지적해 주시네요.
정리할 책들은 일단 차에 실
어 두긴 했는데, 아직 처분
을 못하고 있네요.

반성해서 다시 도전하겠습
니다.
 
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디노 부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현대문학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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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고대해 마지 않던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이 나왔을 때, 주저하지 않고 책을 주문해서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책을 읽었다. 후속작인 <60개의 이야기>(진짜 60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두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아마 그 무렵에 디노 부차티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취합하다가 <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 (이하 습격’)이란 동화를 빙자한 소설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습격>은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는데 아쉽게도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무슨 말인지 한 개두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밑에 드디어 <습격>이 출간되었다.

 

기다릴 수가 없어서 바로 주문장을 날렸고, 지난주에 받아서 주말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77년 전에 나온 <습격>은 가히 클래식이라 부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습격>의 출발은 디노 부차티 아재가 조카들에게 그려주던 그림에서 출발했다고 했던가. 스타일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 스타일이지만, 소설이 품고 있는 서사는 아이들의 사고 영역을 단박에 뛰어넘는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 즈음에, 시칠리아 산속에 곰들이 평화롭게 사는 왕국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평화에 방점을 찍는다, 평화. 그러던 어느 날, 베어 킹덤의 왕자 토니오가 사냥꾼들에게 납치되어 갔다. 평화가 깨지기 시작했다. 토니오의 아빠 레온치오 왕은 왜 동료 곰들에게 왜 솔직하게 아들의 납치 사실을 말하지 않고 토니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말했을까. 그 다음 위기는 혹독한 겨울과 굶주림이었다. 곰들은 결의를 다지기 시작한다, 이대로 죽을 바에야 평야에 사는 인간들과 한바탕 싸움을 벌이자고. 갈등의 시작이다. 추위와 굶주림에 내몰린 곰들의 싸움이 시작된다.

 

당시 시칠리아의 인간 세상은 독재자 대공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산골에 사는 곰들보다 훨씬 더 좋은 무기로 무장한 상태였다. 그리고 궁정의 천문학자 데암브로시스 교수는 산속에서 적들이 쳐들어 올 거라고 예언한다. 대공은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산에 군대를 파견해서 살아 있는 건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깊은 동굴 속에 숨어 있던 곰들과 산의 노인 말고는 모두가 죽어 버렸다. 살아 남은 곰들과 인간의 대결 구도가 완벽하게 구성됐다.

 

곰들이 가만 있었을까? 아니다. 베어 킹덤의 군대도 인간군과 싸우기 위해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뱀 같이 기다란 행렬을 만들면서. 초반에는 곰군단은 소총과 대포로 무장한 인간들에게 밀리지만, 용감한 곰 바보네의 분전에 힘입어 인간군을 전멸시킨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신화나 판타지에서도 영웅의 탄생은 불가결한 요소가 아닌가 싶다.

 

독재자 대공은 곰군단의 진격을 막기 위해 멧돼지 부대와 유령들이 사는 성 그리고 피에 굶주린 고양이 맘모네를 동원해서 공격에 나선다. 적대적인 세력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현실에서도 종종 볼 수가 있다.

 

어쨌든 그때마다 곰돌이들은 영웅적인 분전과 운빨로 위기를 모면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곰군단은 마침내 인간들의 수도 앞에 놓인 요새 코르모라노 성에 도달한다. 하지만 마지막 관문을 뚫기에는 곰군단에게도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성을 공격할 때마다, 막심한 피해가 발생했다. 이대로 공격을 마치고 다시 추운 산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하지만 결국 곰대포라는 신무기(?)를 동원해서 프란지파네가 조직한 50마리의 곰특공대가 마지막 공격에 성공하면서 드디어 곰들의 세상이 열렸다. 혁명적 순간이 달성되지만, 그때부터 타락 역시 신속하게 진행된다.

 

그때 마침 대공 일당은 엑셀시오르 극장에서 공연을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무대 위에서 줄타기 공연을 하던 곡예사는 바로 레온치오 왕의 잃어버린 아들 토니오였다. 세상에나! 그리고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악랄한 대공은 레온치오에게 총을 겨누는 대신 토니오를 저격한다. , 과연 우리의 토니오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인가?

 

엉터리 파시스트 지도자 일 두체 무솔리니 때문에 이탈리아는 추축국의 일원으로 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으로 뛰어 들었다. 피자와 파스타 그리고 와인을 사랑하던 이탈리아 병사들은 히틀러의 세계 정복이라는 터무니없는 욕망에 동원되어 스탈린그라드의 치열한 전투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어갔다. 북아프리카를 제패한 미국과 영국 연합군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상륙하면서 결국 파시스트 정부는 붕괴되었다. 파시즘 통치 아래 숨죽이고 있던 이탈리아 민중들은 빨치산을 조직해서 무솔리니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마치 레온치오 왕과 곰군단처럼 말이다.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파시스트 무리들과 나치 독일군은 자연스레 독재자 대공으로 등치된다.

 

인간 세계를 정복한 다음, 곰들은 인간처럼 타락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레온치오 왕은 선량한 군주였지만, 다른 곰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종장 살니트로 같이 타락한 곰들이 주도해서 왕의 동상을 만들기도 했다. 무언가 이상한 조짐을 느낀 충성스러운 젤소미노 같은 곰의 조언에도 레온치오 왕은 도무지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다 불법도박장에서 아들 토니오를 발견한 왕은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바다뱀이 출몰해서 왕국을 위협했다. 비록 측근들의 부패를 막진 못했지만, 곰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레온치오 왕은 바다뱀을 처단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현장에 출동한다. 국난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고 나서는 이게 바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이 아니던가. 참 씁쓸한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레온치오는 유언으로 모든 곰들은 산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했다. 서로 다른 세계의 통합은 그만큼 어렵다는 깨달음의 소산이었을까. 산에서 살던 시절에는 비록 춥고 배고팠지만, 자신들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엄청난 손실 끝에 인간 세상에 정착했지만 그 자리는 곰들에게 어울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레온치오의 유언에 따라, 곰들은 위대한 왕의 시신을 메고 산으로 돌아간다.

 

작년에 만난 <타타르인의 사막>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작품 역시 고전의 반열에 올릴 만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과 반파시스트 투쟁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디노 부차티는 인간과 싸우는 곰돌이들이 등장하는 판타지에 가까운 동화를 창조해냈다. 개인적으로 액션 판타지라고 생각하는 <습격>에는 정말 다양한 층위의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 파괴로 그 어느 때보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별을 습격하고 있다. 곰돌이들은 추위와 굶주림에 대항해서 보다 적극적인 모습으로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 우리는 거듭되는 자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작가가 의도한 바보네와 프란지파네 그리고 레온치오 왕으로 대변되는 영웅 서사 신화에서는 통쾌함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의 원천은 도도한 민중이 주도하는 흐름이 아닌 소수 선각자들의 행동이라는 걸까. 인간 세상을 정복한 곰들이 점차 타락해 가는 과정은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발로라는 지적도 새겨들을 만하지 않은가. 세상이 다 그러하니, 나 하나쯤은 괜찮지 않겠냐는 식의 비겁한 변명에 대해서 일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하나부터 그러지 말아야 하지 않겠냐고.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싱글맨>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다. 시간 날 때마다 계속해서 읽는다. 디노 부차티의 <습격>도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될 것 같다. , <습격>의 애니메이션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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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2-12-15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첫 서재의 달인이시군요! 축하드립니다^^ㅎ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예전 엠블럼은 부끄러버서
다 감추어 놓았는데 헷 -

물감 2022-12-15 14: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달 축하드립니다 :)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물감님.

alummii 2022-12-15 21: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 타타르인의 사막 >인상깊게 읽었었는데 이 동화는 무엇인가 했더니 이런 내용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서달 축하드려요

레삭매냐 2022-12-16 10:42   좋아요 1 | URL
디노 부차티 작가의 다른 책들
도 많이 나왔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2-12-15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동화도 썼군요~
레삭매냐님 서재의달인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22-12-16 10:43   좋아요 1 | URL
동화를 빙자한 정치 소설
이 아닐까 싶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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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리를 하지 못한다. 대신 설거지는 누구보다 잘한다고 자부한다. 이젠 거의 머신 수준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가사 분담이라고 해야 하나. 고무장갑 따위는 사용하지 않는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하면 뽀드득 감촉을 느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첫 부분을 읽고 나서 한 일주일 정도 묵혔다가 다시 집어 들었는데 발동이 금방 걸렸다. 주인공은 25세의 요리사 링고(린코). 산촌에 사는 엄마 루리코 여사의 곁을 떠나 십년 만에 연인 알리바바에게 배신당하고 할머니가 물려주신 메이지 시대의 겨된장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아마 고향은 그런 곳인가 보다. 언제라도 돌아가도 누군가 반겨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엄마 루리코 여사와는 사이가 좋지 못한 편이다.

 

지난 십년 동안 여러 가지 요리를 배우고, 또 할머니가 차려 주시는 음식에 대한 사랑의 추억을 품은 링고 양은 고향 산촌에서 나는 재료로 식당을 차릴 계획을 세운다. 서먹한 루리코 여사가 부탁한 옛 친구 구마 씨는 링고의 좋은 친구이자 조력자로 활동한다. 이동수단을 제공해 주기도 하고, ‘달팽이 식당을 개업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당연히 1호 손님은 바로 구마 씨였다. 무언가 거창한 요리를 대접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딸과 도망간 아르헨티나에서 온 시뇨리타가 만들어 주던 카레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구마 시는 부탁한다. 사랑을 이루어준다는 링고 씨의 요리가게가 빛을 발하게 되는 석류 카레가 그렇게 탄생한다.

 

2호 손님으로 어린 시절 무섭기만 했던 검은 상복의 미망인 할머니 그리고 3호 손님으로는 고등학교 커플이 차례로 등장한다. 곤조와 프로 정신으로 무장한 자영업자답게 링고 씨는 하루에 한 손님만 받는 원칙을 세운다. 그리고 사전 면담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요리를 선택한다. , 초기 손님 중에 후계자와 선생님 커플도 있었던가. 생각 같아서는 모든 케이스를 다 소개하고 싶으나 나의 기억력이 그에 미치지 못함을 고백한다.

 

달팽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사랑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달팽이 식당이 순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지만, 소문이 나는 만큼 시기 질투하는 인간들도 따라오기 마련이다. 머리카락(?) 테러를 당하기도 하지만, 링고 씨는 꿋꿋하게 위기를 돌파해 간다. 말이 필요없다, 면담을 통해 상대방이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 줄 알게 된 다음부터 상상력을 가미한 요리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게다가 약간의 신파 한 숟갈까지 곁들이니 어찌 책이 재밌지 아니한가 말이다.

 

어린 시절부터 원수 같았던 네오콘 아재에게 재료가 없는 긴급 상황에서 오차즈케를 만들어 대접하는 장면도 마음에 들었다. 무언가 그동안 얼어붙었던 관계의 해빙이 시작되는 순간이라고나 할까. 약간은 동화풍인 것 같기도 하고. 동네 꼬마 고즈에가 데려온 거식증 토끼의 입맛 살리기 대작전도 좀 작위적인 면이 없진 않았지만 나름 괜찮았다.

 

링고 씨가 품은 출생의 비밀 그리고 루리코 여사의 첫사랑과 불치병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급격하게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렇게 애써 빌드업을 해놓고 무너뜨린단 말인가. 신파가 지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 모든 게 다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지.

 

결국 오가와 이토 작가는 삶의 모든 순간을 담담하게 맞이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요리에 실어 날린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실연도, 또 나를 창조해준 부모와의 숙명적인 이별도. 다만 그 모든 순간에 솔루션으로 등장하는 매개가 바로 요리라는 점에 쿵하고 방점을 찍는다. 루리코 여사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엘메스 역시 해체되어, 자신의 늦깎이 사랑의 결실인 피로연에 참석한 이들의 입을 즐겁게 해준다. 우리가 먹는 것들은 모두 대지의 어머니 그러니까 땅에서 나고 자란 것이라는 말도 빠뜨리지 않는다. 사실 루리코 여사를 잃은 링고가 그랬던 것처럼, 실의에 빠졌을 때는 모든 게 귀찮기 마련이다. 평소에도 해먹지 않을 요리를 먹을 자신이 없을 것 같다. 그럴 적에는 인스턴트식품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삶의 모든 순간에 요리가, 음식이 등장하는 것처럼 링고 씨가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에서 탈출하게 되는 것도 역시나 요리였다. 조금은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유리창에 부딪혀 죽은 산비둘기 요리를 하는 장면은 좀 그렇더라.

 

말미에 수록된 <초코문>은 스핀오프 스타일의 이야기로 좀 간지러운 느낌이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서사의 전개는 좀 진부하게 다가왔지만, 다른 건 몰라도 작가의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만큼은 평가해주고 싶다. 링고 씨가 꼴랑 십년 만에 그렇게 전 세계 요리를 마스터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이긴 하지만. 책 읽는 동안, 즐거웠다. 그거면 됐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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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Vol.2 - 문명의 기둥 사피엔스 : 그래픽 히스토리 2
다니엘 카사나브 그림, 김명주 옮김, 유발 하라리 원작, 다비드 반데르묄렝 각색 / 김영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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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역사라는 학문은 해석을 근간으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어느 지점에서 해석하느냐에 따라, 팩트는 다르게 보여지지 않을까. 이번에 유발 하라리 작가의 <사피엔스>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 강화된 느낌이다.

 

현생 인류 호모 사피엔스의 먹고사니즈므이 디폴트값은 수렵채집이었다. 그들은 광활한 대지의 어머니의 땅에서 나고 자란 것들을 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혁명이 발생했다. 물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폭력을 수반한 기득권 세력을 타파하는 그런 혁명이 아닌 굉장히 순조로운, 하지만 훗날 인류의 역사를 바꾸게 될 그런 혁명이었다. 그것은 바로 농업혁명이었다.

 

만화가는 파우스트밀을 등장시켜, 인류를 속박의 굴레로 몰아가는 파우스트밀의 속삭임을 듣게 해준다. 우리 인간은 수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 시절에는 당장 먹고 사는 일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좀 더 복잡한 상상의 허구가 만들어낸 불안감에 떨고 있다. 내가 애써 마련한 아파트값이 폭락하지나 않는지, 몇푼 더 받겠다고 저축은행에 넣은 예금이 날아가지나 않을지, 노년에 돈이 없어 폐휴지를 모으는 일을 하게 되지나 않을지 기타 등등.

 

이런 모든 두려움의 근원이 되는 출발점이 바로 농업혁명이었다. 인류는 수확량이 많은 밀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곧바로 근심 걱정에 휩싸이게 되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비가 너무 적게 와도 걱정이었다. 게다가 병충해는 또 어떤가. 비록 생산성으로 미래의 불확실성을 조금 덜기는 했지만 그 댓가는 혹독했다. 평생 노동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유발 하라리 작가는 여전히 수렵채집을 고집하는 원시인들과 최신 유행인 농업혁명에 가담한 이들의 비교를 통해 우리네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들려준다.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른 삶인지 여전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원시시대 이래 인간이 풀 수 없는 그런 고민이 아닐까 싶다.

 

농업혁명에 수반된 것이 야생동물들의 가축화다. 인류의 벗인 댕댕이가 가장 먼저 가축화가 되었다지. 지금은 댕댕이들이 상전이 되었지만, 인류가 던져주는 먹거리에 길들여진 댕댕이들과의 협업은 아주 성공적이었던 모양이다. 그 다음에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닭, 치킨에 대한 이야기다.

 

이 부분까지 읽어 보고 나서 마침 뜬 치킨 로드에 대한 기사도 검색해 봤다. 현생 닭의 기원은 동남아에서 살던 적색야계(red jungle fowl)라는 녀석이었다. 가축화의 아주 성공적인 케이스로 지금도 굉장히 효율적으로 인류에게 단백질원으로 공급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70%의 이상이 가정이 일주일에 한 번은 닭을 먹는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는 220억 마리 정도가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야생에서 살 수 있는 평균 수명의 1/50 정도 밖에 살지 못하는 점은 비극이긴 하다. 돼지나 소도 마찬가지 운명이라는 점을 저자는 콕 찝어서 지적한다.

 

농업혁명에는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농업혁명으로 잉여생산이 이루어지고 정주생활이 기본이 되면서 기근과 전염병 그리고 폭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기술발전과 세계화에 따른 부작용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몇 년 동안의 기억이 떠올랐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수그러들긴 했지만, 전문가들은 수년 내에 더 쎈 놈들이 올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농업혁명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지도자와 사제 같이 무위도식하는 계급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도시국가와 제국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게 됐다. 이런 스케일이 큰 국가들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수와 양을 기록하는 문제였다. 그 해결책이 바로 문자의 발명이었다. 그렇게 발명한 문자로 시나 신화 그리고 이야기들도 다루게 된 것은 부차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관료제 역시 이런 시스템을 부양하기 위한 아주 효율적인 제도였다고 언급한다.

 

국가나 집단의 통치를 담당한 계급들은 저자가 주장하는 이른바 상상의 질서를 만들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시스템을 영원히 지속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계급 제도와 시스템을 만들고 시간을 녹여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케이스에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인도의 카스트 제도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여전히 태어나면서부터 얼토당토않은 야만적인 카스트 제도에 고통 받는 수억의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어떤 점에서 부에 따른 차별과 인종주의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지 않나 싶다.

 

인종주의의 대표적 국가인 미국의 경우를 보자.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1776년 독립선언에서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선언했지만, 흑인과 여성은 그들이 말하는 인간에서 배제되었다. 독립선언 백년 뒤, 60만 명이 죽은 내전까지 치르면서 노예해방을 선포했지만 흑인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비슷한 형편의 백인 가정에 비해 흑인가정의 진학률을 형편없이 낮았다. 그리고 사이비 생물학까지 동원한 백인들의 프로파간다는 집요하게 진행됐다. 학업을 통한 성공의 사다리 오르기는 흑인들에게 쉽지 않은 태스크였다. 그러는 백인우월주의자들이 퍼뜨린 혐오의 메시지는 계속해서 전파되면서 흑인차별의 철옹성은 굳어져 갔다. 젠더 이슈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바로 이런 허구 위에 지어진 상상의 질서와 고루한 가부장 시스템을 철저하게 타파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농업혁명 같이 획기적인 역사의 발전은 상당 부분 우연에 근거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었다고 말한다.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모를 상상의 질서 해체는 보다 더 복잡한 미션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자각한 민중에 의해 지난 백 년 동안, 말도 안 되는 상상의 질서는 조금씩 해체의 수순을 밟고 있다. 물론 미국에서 49년 동안 존속되어온 낙태법 폐기 같은 반동적 움직임도 있었지만, 이후 선거에서 깨어 있는 시민들은 이런 반동에 대해 브레이크를 걸었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퇴행과 진보의 조합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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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12-12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냐님. 사피엔스를 얼마 전 다시 읽었는데 그래픽노블이라. 흥미롭습니다^^ 그림은 어떤가요? 덕분에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래픽노블이 점점 더 많이 나오는 듯 싶네요. 사피엔스는 고전까지는 아니지만 스테디셀러인데 이런 책들이 그래픽노블로 나오는 것을 보면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키려는 목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22-12-13 08:56   좋아요 0 | URL
전 아직 사피엔스는 책으로
만나 보지 못해서 이렇게
그래픽 노블로 보고 있답니다.

그림은 제가 유럽쪽 작가들의
그림체를 좋아해서 그런진 몰
라도 만족했습니다.

원소스멀티유즈의 전형이라고
나 할까요. 공감하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