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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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87년 6월 민주 항쟁.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나로서 그 때의 이야기를 논한다는 것은 아무리 잘 봐줘도 헛소리가 될 것 같다. 그 때를 겪지 못 한 사람으로서 그때의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은 사실상 무리일 테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이 만화 '100도씨'가 더 와닿는다고 한다면 어불성설일까. 




4. 13 호헌조치. 아무리 생각해도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조차 없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지 않았을까.

대학 시절, 주위 형들의 이야기를 귀에 딱지에 앉도록 들으면서도 정말 그랬단 말야? 라면서 무지를 뽐냈던 나. 그러던 중 실제로 눈 앞에서 보는 광경과, 신문 방송에서 나오는 광경이 얼마나 다른지를 몸으로 체감한 후에서야 선배들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열사'라는 칭호 하나를 얻고 목숨을 잃어간 이한열과 김종철, 그리고 '군사독재자', '엄청난 부정축재'로 전국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잘 먹고 잘 살며, 심지어는 한나라당의 취임 인사도 받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면 나 자신의 가치관조차 혼란을 일으키는 아찔함을 느낄 수밖에.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지금 몇 도인지 얼마나 더 불을 때야 하는지.
그래서 불을 때다가 지레 겁을 먹기도 하고 원래 안 꿇는 거야 하며 포기를 하지.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끓어.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나라고 왜 흔들리지 않았겠나. 
다만 그럴 때마다 지금이 99도다…그렇게 믿어야지. 
99도에서 그만두면 너무 아깝잖아. 허허허.






그렇게 그들은 끓었다. 100도씨가 되는 그 순간에.



역사가 증명하는 사람의 끓는 점, 100도씨. 6월 항쟁에서 분명 우리는 끓었다. 99도가 아닌 100도로써.
그런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던 거룩한 역사의 기억, 하지만 또 하나 역사가 증명하는 것은 언제나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것. 
분명 20여년이나 지난 과거에 있었던 일들, 하지만 내가 경험치 못한 것을 마치 데자뷰처럼 느끼게 되는 기묘한 경험. 요즘의 모습에 왜 이리 투영되는 것인지.


민중을 두려워할 존재가 아닌 '말을 듣게 할' 존재로 보는 것부터 마치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체벌을 가하듯 집회를 방해하거나 지하철을 무정차 운행하고, 독재에 항거하며 바닥에 드러누워 비폭력 항쟁을 하는 이들을 공권력의 무자비함으로 진압하는 모습, 심지어는 국민들의 의견들은 묵살하고 그들이 원하는 정책만을 정당성 없이 발표해버리는 것들까지.


이 책의 출간 목적이 '그렇게 힘들게 이룩해낸 우리의 민주 항쟁을 잊지 말자'였던 것인지, 아니면 '역사의 서글픈 반복을 경계하자'인 것인지가 혼동되는 순간이다.




촛농소녀, 브이(for Vendetta), 녹용. 그래서 어쩌자고?!!!


그리고 그런 혼동은 어쩌면 부록이자,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되는 본격 민주주의 학습만화인 '그래서 어쩌자고?'에서 극에 달한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란 것이 그저 국가가 '민주주의'를 표방하면 다 민주주의 국가인 것일까? 그렇다면 대다수의 행복을 논하기 마련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왜 이리 정당성이 문제가 되는가, 그리고 왜 이리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과연 어쩔 수 없는가?



이런 질문들은 어쩌면 대다수의 국민들이 느끼는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 '그래서 어쩌자고?'를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참 우습다. 사실 이 만화는 시민교육센터의 이한씨가 만든 '청소년을 위한' 민주주의 강의를 기반으로 만든 만화다. 나름 열심히 공부하고 산다고 자칭하는 주제에, 나이가 서른줄이나 된 주제에 '청소년용 교제'에 이런 인상적인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참. 작가 최규석의 뛰어난 감각을 통한 만화화가 훌륭한 것이라고 자위해보지만 나 자신조차 이렇게나 무관심해왔다는 것 자체에 새삼 놀랄 수밖에 없다. 






당신은 어떤 부류인가요?




요즘 참 입에 불만을 달고 사는 사람이 많다. 불만은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변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한 사람, 한 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선 나 자신부터. 그런 변화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변혁이다. 하지만 한 번 눈을 뜬 사람들은 쉽게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할 뿐.


사실 이 만화, 6월 민주항쟁 계승 사업 차원에서 만들어진 만화이며(그 덕분에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전국 중고등학교에 현대사의 보충교재로 배포된다고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100도씨도 훌륭하지만 이 '학습만화'를 더 배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이 부록이 가장 중요한 기반을 만들어줄 녀석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집에 한 권씩 두고 아이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충분히 있을 것 같고("아빠, 민주주의가 뭐야?"라는 질문에 당신은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사실 관심을 갖는 것,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무관심의 결과는?




지금 우리는 과연 몇도씨일까.
그리고 그 물이 끓어 넘치려면 앞으로 얼마나 남았을까.
... 안 넘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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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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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SF를 비롯한 장르문학 계열의 작품들을 참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트랜스포머'의 국내 성공은 쾌재를 부를 일이었다. 750만. 웬만한 대작이라 해도 나오기 힘든 국내 관객수. 사실 트랜스포머같은 마이너한(국내에서는) 소재에 SF라는 세계관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관객수는 참 놀라우면서도 즐겁지 않을 수 없다. 무려 북미 제외 흥행 1위라니...

"대체 언제부터 한국에 이 정도의 트랜스포머 팬들이 숨어 있었던거야?"

개인적으로야 워낙 좋아하는 장르인 데다가 트랜스포머에 대한 관심도 있었기에 참 만족스럽게 봤었다. 전반적인 스토리적 재미 등도 괜찮았었고 또 남자의 로망(...)이라는 '변신로봇'을 이렇게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을 주었던 최신 기술을 활용한 변신,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까지. 다만 딱 하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액션 신의 화려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도대체 얘들이 뭐하는 건지 알아먹기 힘든 정신없는 액션 신 구성은 좀 그랬었다(아이맥스관에서 봤다는 점도 좀 작용하긴 했겠지만).
그리고 역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은, 분명 '프롤로그'임에도 불구하고 프롤로그같지 않았다는 것.

그래서 1편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던 시점부터 기다렸던 2편.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을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사회에서 보게 되었다(말 많았던 레드카펫 시사회가 아닌 그 후에 열린 소규모 시사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다렸던 만큼의 답은 충분히 내주었던 것 같다.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전작의 2년 후, 오토봇과 디셉티콘의 세력전 속에서 간신히 세상을 구해낸 샘 윗익키의 평화로운 삶으로 시작된다. 그러던 중, 디셉티콘의 원로라 할 수 있는 '폴른'(원제인 Revenge of The Fallen의 그 폴른)의 계획에 의해 다시 한 번 지구는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그들이 왜 지구를 습격했으며, 지구에 오토봇과 디셉티콘이 왜 내려와서 세력전을 버렸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역사 가운데 어떤 비밀이 바로 이 '지구'에 숨겨져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원제인 '폴른의 복수'와 '패자의 역습'... 음 실제 영화를 보고 난 느낌에서는 그다지... 원작을 살리지 못 한 한국판 부제라는 느낌이 좀 아쉽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부분은 역시 '액션 신의 호쾌함은 살아있되 알아먹기는 쉬워졌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전작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어서 더 눈에 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반적인 등장 로봇들이 늘어나면서 그에 따른 액션신이 더 많아졌고, 전작과 비슷한 느낌이었다면 정말 정신없는 영화가 되었을텐데, 슬로 모 기법, 달라진 카메라 워크 등을 통해 이번 '패자의 역습'의 액션신은 개인적으로 봤을 때 상당히 훌륭한 편이다. 특히 전작에 비해 스케일이 커졌고(사실 이 부분 역시 훨씬 보기 편해진 이유이기도), 그에 비해 호쾌함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점은 높이 사고 싶은 부분이다.






공개된 사진이 이것 뿐이라니...


그리고 두번째, 메간 폭스. 정말 예뻐졌다. 전작에서는 그냥 '예쁘네'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영화를 잘 찍은건지 아니면 뭔가 성장에 따른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본 영화들의 여주인공들 중에서 단연 최고(...)로 뽑을 만큼이나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액션 영화의 헤로인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배우는 역시 연기가 중요하겠지만, 거기에 미모가 받쳐준다면 당연히 우위를 점할 수 밖에(뭐...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외모 지상주의자는 절대 아니다...).









스포일러성이라 언급은 피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왜?'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을 뽑자면, 먼저 전반적인 개연성이 좀 약하다는 것. 액션 영화를 스토리나 개연성으로 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쏟아붓는 분량의 시원함과 액션의 강렬함 속에서 중간 중간 맥을 끊어놓는 개연성의 빈곤은 참 아쉬운 점이다. 생각없이 그냥 즐기는 영화가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것도 '왜?'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면 그건 좀 아니지 않은가.



그리고 또 하나, 전작에서도 그랬지만, 전반적인 유머 센스가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꼭 억지스러운 유머를 하는 오토봇을 등장시키는 이유가 좀 궁금하다. 나쁘지 않게 즐겁게 웃다가 이 녀석들의 농담을 보고 있으면 왠지 짜증이(...). 뭐 이건 취향 차 겠지만서도.


내일 개봉할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전체 예매의 90%에 육박하는 가공할만한 예매율을 보이는 등, 벌써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몇몇 아쉬운 점이 있긴 하지만 지난 달 개봉했던 '스타 트렉 : 더 비기닝'에 버금갈만한 올 최고의 블록버스터 중 한 편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고. 이런 좋은 SF 영화들이 국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점점 장르 문학, 장르 영화라 할 수 있는 SF, 판타지 등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국내에서도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아닌, 다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란다.

그리고 관심있는 분들이라면 최근 세미콜론에서 발매된 트랜스포머 관련 서적들도 한 번 보시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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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타트 일본어 - 이 책으로도 안되면 포기해라! 리스타트 일본어 1
바른일어연구회 지음 / 북스토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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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의 언어 관련 서적의 최고 이슈는 역시 뉴런의 '잉글리시 리스타트' 시리즈를 위시한 '원어 그 자체로서의 습득'에 대한 책들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잉글리시 리스타트' 시리즈의 엄청난 판매량과 폭발적인 반응부터 비슷한 맥락의 책들의 잇다른 발매 등으로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현상이 매우 반가웠다. 우리가 한국어를 익힐 때 과연 '공부'를 했는가... 를 묻는다면 지금의 대부분의 습득 방법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고, 개인적인 경험상으로도 영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들으며 영어로 말하는 환경이 영어 습득에 얼마나 큰 이점을 가져다주는지를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방법론에 대해 반가움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리스타트' 관련 책들의 장점이 바로 이런 것. 정말 편하게 그림을 즐기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



그러던 중 알게 된 '리스타트 일본어'. '모국어 간섭을 배제한 일본어 학습서'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표방한 책으로 기본적인 성향은 앞서 언급했던 책들과 거의 같고, 기존의 영어 교육만이 아닌 이제는 일본어 교육에도 '모국어 간섭'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론을 적용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코노,소노, 아노. '이'와 '저' 그리고 '그'의 오묘한 차이를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다.


기본적인 학습 방법은 단어 자체의 의미와 발음, 철자등을 외우고 그것으로 문장을 만들어가던 것이 아니라, 각각의 단어 혹은 문장과 그에 따른 그림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말의 의미를 습득해가는, 그야말로 일반적인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말을 깨우쳐가는 원론적인 언어 습득 방식이다. 그리고 반복해서 읽는다기보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같은 단어, 같은 상황들이 다음 상황이나 그림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반복되는 구성을 통해 자연스러운 반복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되기도 하고.




그리고 이런 반복되는 그림들과 단어, 문장들을 주욱 따라가는 것과 함께, 그간 습득한 내용들의 빈칸 채워 넣기 등의 문제 풀이를 통해 다시 한 번 되새기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잉글리시 리스타트'나 그와 비슷한 맥락의 책들을 본 분들이 있다면 이해하기 쉬울 듯.



책의 단계는 굉장히 초반. 전반적인 내용이 단어 수준이고 이 페이지가 이 책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야말로 초급 일본어인 셈.

개인적으로는 처음 책을 열어보고 히라가나, 가타가나와 함께 한글 독음이 달려 있는 데에 상당히 실망을 했다. '모국어 간섭 배제'를 논하면서 한글로 눈이 가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되었던 것. 하지만 차츰 읽어가면서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분명 그냥 일본어만이 적혀있는 것이 훨씬 교육적 효과라는 면에서 높았겠지만 문제는 국내에서 알파벳은 언어 습득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지만, 가타가나나 히라가나의 경우는 그 문자 자체가 생소한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 책 자체가 어쩌면 굉장히 '초급 일본어' 수준이기 때문에 추후 좀 더 난이도가 있는 책들이 나온다면 그 책부터는 그야말로 '모국어 간섭' 없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것이, 기존의 '잉글리시 리스타트' 등에서도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MP3를 공급했던 전례가 있지만 이 '리스타트 일본어'의 경우는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를 배울 수 있는 '깜빡이식'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최근 GP32라는 국산 휴대용 게임기가 '깜빡이 영어' 때문에 자알 팔려나가는 것을 보면 꽤 효과가 있는 반복 학습법이 아닐까 하며, 이를 통해 우선 일본의 문자에 익숙해진다면 일본어를 습득한다는 것이 훨씬 쉬워질 테니까.

전반적으로 '리스타트' 언어 습득법의 책으로서 갖춰야 할 부분을 고루 갖추고 있는 괜찮은 일본어 서적이라는 느낌이다. 전반적으로 공부가 아니라 주욱 따라 읽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론 자체도 매력적이고. 다만 앞서 언급했듯 굉장히 '초급'인 셈이니까, 그 부분은 꼭 염두에 두시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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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 - 공상과학 현실화 프로젝트 02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 지음 / 스튜디오본프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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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년의 만화영화(애니메이션이 아니다)들은 왠지 지금것들보다 훨씬 훌륭했었다고 자기 혼자 만족할 때가 있다. 시대와 트랜드의 변화, 이미 '아저씨'라 불릴 수 있는 내 나이는 나몰라라 하고 이렇게 바보같은 소리를 내뱉고 있지만 실제로 그런걸.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그리고 '은하철도 999'는 그런 내 헛된 믿음 속에서도 그 중심에 있는 작품 중 하나다. 메텔같은 여자와 결혼할 거라고 마음 속 깊이 했던 맹세(웃지 마시라. 잘 생각해보면 당신도?), '메텔은 로봇이야!'라고 소리치던 친구 녀석과 한 바탕 싸움을 벌였던 기억, 지금까지도 개인적인 멘토 중의 하나인 '캡틴 하록'과의 첫 만남 등, 유년 시절의 정서에 큰 영향을 미쳤던 작품이었다.






일본에서는 한 공항에 메텔 로봇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키타큐슈 공항의 이 메텔 로봇은 최신 기술을 통해 사람들의 질문에 답변을 해 준다고(!!) / 출처:위키피디






일본 굴지의 건설회사 마에다 건설, 그들이 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해(한국이나 일본이나 건설회사에 대한 이미지는 비슷한가보다),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설립한 '판타지 영업부'. 그들이 이 '은하철도 999'를 선택한 것은 그런 이 작품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나같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겠지. 그리고 실제 "과거에, 미래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던 애니메이션 속의 무언가를 지금의 기술력이라면 만들 수 있을까?"라는 컨셉 자체가 매우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것도 실제 건설 회사에서 일하는 베테랑들의 손으로 말이다.




애니메이션의 장면장면이 전반적인 책 내용에 녹아있다. 이 철저한 사전 지식들이 전반적인 책의 흥미도를 굉장히 높여준다.




그래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이 '은하철도999 우주레일을 건설하라!'가 되겠다. 원작 은하철도 999에서 우주 열차인 999호가 발차하는 데 사용되었던 우주 레일. 실제로 그것을 만들어보자는 것이 프로젝트의 발단. 재미있는 것은 '철저히 애니메이션에 입각해서'라는 그들의 방법론. TV판과 극장판을 넘나들며 애니메이션의 각 에피소드들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서 우주레일의 각 부분들을 기획해나가는 부분이 참 재미있다. '철저한 고증'이라기엔 원작 자체가 그리 과학적이라 하긴 힘든(죄송합니다. 마츠모토 레이지 선생님) 부분이 있기 때문에 좀 우습긴 하지만, 이런 노선을 택했기 때문에 더 그 기획 자체가 재미있고 또 원작의 팬들에게 더 큰 재미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세 편의 극장판을 다시 한 번 봤다(그래야 더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해서). 그리고 실제로 그랬고.






현대 기술에 기획을 적용해 나가는 과정이 상당히 재미있다.


그리고 그런 기획에 따라 '현대의 기술로서 적용할 수 있는지'를 하나씩 타진해 간다. 실제 건설의 전문 기술, 그리고 전문가들의 자문을 통해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가고, 몇 번의 좌절과 위기 속에서 결국 그럴듯한 결론을 내어 나가는 과정들이 흥미롭다. 특히 건축, 토목 분야에 몸담고 있지 않으면 전혀 모를만한 기술적인 요소들을 아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나가는 과정들, 그리고 '아, 지금의 건축 기술이라면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하고 새삼 놀라게 하는 부분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마에다 건설'이라는 곳에 대해 신뢰감을 갖게 되어가는 것을 느끼고 '헉!'하고 놀라기도 했고.




500억이면 만들 수 있답니다. 정말 누군가 만들어주시지 않겠어요?(아... 우주 기차가 문제겠군요...)


그리고 결국 그렇게 만들어져 은하철도 주식회사에 보내질 한 장의 견적서. 지금의 기술로서 실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 굉장히 색다른 느낌을 준다. 머릿 속에서만 존재하던 무언가가 실제로 현실화되었다는 느낌이 갖는 성취감과 이미 보내버린 유년시절의 가닥을 어렴풋이 잡은 듯한 아찔함이 합해져 기묘한 여운으로 남는다. 




판타지 영업부의 첫번째 기획이었던 마징가 Z 지하기지. 이 때는 모형까지 만들었다고... 조만간 읽을 예정.


사실 이 책의 기획은 처음이 아니다. 같은 컨셉으로 '마징가 Z'라는 또 하나의 명작 애니메이션을 기반으로 '지하기지'(라기보단 오수처리장으로 위장된 격납고)를 실제 건설하는 프로젝트가 같은 '마에다건설 판타지 영업부'를 통해 이루어졌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의 홈페이지(http://www.maeda.co.jp/fantasy/)를 통해 지속적으로 연재되고 있고. 어쩌면 '건설회사는 일반인들과 거의 접점이 없다'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 이 책. 국내의 건설회사에게 시사하는 바도 꽤 많다는 생각이 든다. 어쩔 수 없어... 가 아니라 그럼 어떻게 할까? 에서 시작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실제 일반인들과의 관계 개선에 대성공한 마에다 건설. 그런 그들의 앞으로의 프로젝트들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결정적으로 그런 발상의 전환이 참 재미있는 경험을 줬으니까.


은하철도 999로 소년 시절을 보냈던 광서방같은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하며, 그렇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도 쉽고 즐겁게 최신 건설 기술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로 한 번 읽어보길 권한다.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곳, 그리고 시간은 참 짜릿한 법이니까.








다음 프로젝트는 무려 '그란투리스모 4'(!). 게임에까지 접목할 정도로 게임이 일반화되어있다는 사실에 게이머로서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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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기별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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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2세의 나이에 사실상 소설가로서는 처녀작이라 할 수 있는 '칼의 노래'를 두 달만에 탈고하고 "실존적 사유의 미학적 전투"라는 어렵지만 근사한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작가 김훈. 게다가 100만부가 넘는 판매량을 올릴 만큼이나 컸던 대중적인 인정.

두 달만의 탈고, 처녀작이 밀리언셀러.
놀랄만큼이나 인상적인 그의 성취에 그의 연보를 살펴보다 또 한 번 놀랐다. 늦으막히 소설가로서의 이름을 알렸을 뿐, 이미 그 전부터 '우리시대 최고 미문의 에세이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던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개인적인 교양의 일천함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하겠다).
뭐 그래서 '바다의 기별'을 읽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겠다.

그래서 펴든 '바다의 기별'. 왜 이리 걸리는 게 많은 텍스트일까. 까끌한 아픔들, 까칠한 고민들, 빡빡한 부정들이 텍스트의 흐름을 자꾸 멈추게 한다. 왜 그의 가난은 가히 '설화적'이었으며, 왜 뇌종양은 음식에서 '구린내'를 양산하며, 사랑은 '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인 것일까. 분명 어느 책이든 그런 빡빡함도 한참을 씹으면 은은한 단내가 나기 마련이건만 개인적으로는 참 책장 넘어가는 소리가 더딘 책이었다. 왠지 그런 빡빡함이 신파적이거나 연민을 끌어내는 것을 의도적으로 막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직접적이기에 더욱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들고.

몇 번을 그냥 덮을까... 라는 고민을 하다가 그 빡빡함도 맛이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더니 왠걸. 평소 다른 에세이를 읽으면서 느낄 수 없었던 그런 독특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가 '우리시대 최고 미문의 에세이스트'로 평가받는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빡빡한, 슬픔의 언어 속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로 구성된 글들이었지만 그 가운데 관통하는 하나의 이미지는 분명 행복이었다. 설화적인 가난을 만들어낸, 적잖은 술과 무책임함으로 묘사되는 아버지임에도 그를 두둔하는,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야 온전히 그를 이해하는' 우리네 소박한 삶에 대한 이해와 어루만짐. 그리고 그에 의한 행복함이야말로 어쩌면 이 책 전반을 관통하는 정서가 아닐까 한다.

그런 언어로 쓰여진 이 책 속에는 그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 담겨있다. 글과 국악, '칼의 노래'의 배경이 되었을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그와 함께 난중일기가 갖는 텍스트적 탁월함까지), 칠장사와 임꺽정, 오치균의 그림... 에세이라는 것이 어떤 작가의 실질적인 내면을 어렴풋하게 보여주는 경향이 있고기 마련이지만, 이 책은 그런 에세이들 중에서도 이런 경향이 매우 강하다. 절절하게 표현하기 때문일까. 그의 글이 갖는 특성이 왜 나오는지, 왜 이렇게 깔깔했던 것인지 왠지 책을 보면서 점점 알아가게 된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의 글맛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느꼈던 것이 바로 오치균의 그림에 대한 글. 책 뒤에 그의 그림들이 함께 실려있는데 개인적으로도 꽤 마음에 들어버렸다. 오치균의 그림 실력 때문일까... 아니면 김훈의 글 때문일까...


그리고 13편의 에세이와 함께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는 그의 작품들 속의 서문들, 그리고 수상 소감은 그런 의미에서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부록이라는 느낌이다. 그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는 부분에서 각각의 작품들이 어떤 생각으로 쓰여졌는지를 밝혀주는 서문과 수상 소감들은 또 다른 에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잘 쓰여져 있었다. 전에 소설의 앞부분에서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랄까.



이렇게 모아놓고보니 새삼 놀랍다. 그만큼 늦으막에, 그리고 단시간에 이렇게나 높은 평가를 받은 작가가 있었던가...


사실 개인적으로 어두운 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에세이라면. 한 작가의 소설은 어둡고 무겁더라도 별 상관없이 읽는데,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왠지 가슴을 살살 간지르는 부드럽고 현실적인 그런 에세이를 참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책, '바다의 기별'은 잘 못 펴 든 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내 스타일이 아냐'라는 이야기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야기, 그의 소박한 삶 속의 행복을 끝까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내 취향을 고려해볼 때 참 이상한 일이다. 여러 의미에서 참 국내 최고의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손색이 없다는 느낌이다.

다음은 자전거 여행도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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