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애의 발자국들 뒤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

: 시인 파울 첼란의 흔적을 찾아서 (1)

 

 

작년(2020) 말에파울 첼란 전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 시 전집은 1920년에 출생한 첼란의 탄생 100주년, 사후 5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으로 나오게 되었다. 특히 이 작품은 시인 허수경의 유고 번역작업이기도 하여 더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파울 첼란이라는 시인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내가 그의 시를 읽어본 것은 없다. , 한두 편은 있을 것이다.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가 독일어권 시인들의 자취를 찾아다니며 써내려간 시인의 집에 인용된 시 몇 구절과 만난 인연은 있다.

 

시는 언제나 읽어보고자 하면 번번이 높은 장벽을 마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전문 번역자에게도 매우 난해하다고 알려진 첼란의 시에 굳이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시인의 집을 통해 알게 된 시인의 삶을 조금 들여다보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인들이 마주해야 했던 삶을 조금이나마 상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 여러 번 읽어보았던 책이지만, 다시 파울 첼란이 살던 집과 자취를 찾아간 대목을 읽어보니 처음 읽는 것 같이 새롭다. 언젠가 허수경 시인의 번역으로 만나는 파울 첼란 전집을 읽어보길 바라며, 충동적(?)으로 첼란의 삶을 가능한 한 조사하고 기억해두고 싶었다. 오늘은 전영애 교수의 시인의 집을 기반으로 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앞서 지나 간 첼란의 흔적을 밟아 따라가 보고자 한다.

 

먼저 파울 첼란은 루마니아의 끝자락인 부코비나에서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192011). ‘너도밤나무숲혹은 너도밤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는 부코비나에서 성장했단다. 하지만 가혹한 역사는 식물을 유난히 사랑하던 유대인 청년을 가만히 놔주지 않았다. 나치에 끌려간 부모는 그가 23세일 때 목숨을 잃었다. 그가 18세 일 때(1938) 의대로 진학하고 싶었으나 루마니아에서는 이미 유대인에 대한 엄격한 정원제를 실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프랑스에 있는 의대로 진학하기 위해 프랑스로 가던 중 독일을 지나게 되는데, 그 다음날이 바로 나치가 유대인들의 건물을 급습하여 파괴를 일삼았던 수정의 밤(1938119)’이었다고 한다. 수정의 밤이란 이름은 깨져버린 수많은 유리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밤의 불빛에 반짝반짝 빛났던 광경에서 나온 명명이라고 알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수정의 밤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 훗날 평론가로 이름을 날리게 될 또 다른 유대인 청년이 독일에서 추방을 당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독문학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가족이 추방당해 폴란드로 갔던 것이다. 게다가 라니츠키는 파울 첼란과 동갑인 1920년 생이었다. 수정의 밤 사건이 발생하던 시기, 루마니아 출신의 유대인 청년은 프랑스가 있는 서부로,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청년은 다시 폴란드가 있는 동부로 이주해야 했던 기구한 운명을 떠올려보게 된다. 수정의 밤 이후 나치는 10,000명에 가까운 유대인을 독일 부헨발트 수용소로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전영애 교수에 따르면 이 부헨발트라는 이름 역시 너도밤나무숲혹은 너도밤나무가 많은 곳을 의미한다고 한다. 순간, 같은 의미를 지닌 부코비나에서 출생한 첼란의 삶이 교차한다. 그에게 이 나무의 의미가 어떻게 다가왔을지 짐작해볼 뿐이다.

 

나치의 손에 부모를 잃고, 노동수용소에서 우연히살아남은 시인은 전후 파리에 정착하게 된다. 19487월부터 파리의 센 강에 몸을 던졌던 19704월 까지 22년 간 이곳에서 국적 없는 유대인이자 철저한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독일에는 평생 한 번도 살아 본 적도 없지만, 독일어가 모국어였던 시인이다. 달리 말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이들의 언어를 모국어로 해야 했던, 뒤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시인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부모를 수용소에서 잃고, 부모를 죽인 이들의 문학을 이들의 언어로 평생 글을 써야 했던 평론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이 다시 소환되는 지점이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거대한 운명의 물결을 누군들 거스를 수 있었을까? 라이히라니츠키는 자서전 나의 인생에서 그저 그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첼란과 라이히라니츠키의 운명을 일별해보니 이들과는 또 다른 대척점에 있는 한 유대인의 삶을 떠올린다. 바로 독일의 과학자 프리츠 하버다. 그는 무엇보다 질소고정법으로 공기에서 질소를 얻고, 이 질소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방법을 발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합성비료를 만드는 데에 하버의 발견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셈이다. 하버는 이 공로로 1918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친구이기도 하며 역시 유대인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하버가 살충제 개발을 한다는 명목으로 청산염 개발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과학저술가 에른스트 페터 피셔의 금지된 지식에 따르면, 이 청산염은 세포의 신진대사를 방해해서 신체 내부 질식’(175)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나치가 대량 학살에 사용했던 치큰론베라는 독가스의 원리를 하버가 만들었던 것이다. 유대인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독가스가 자신의 형제자매를 학살하는데 사용되었던 모순적인 역사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


다시 첼란의 파리로 되돌아온다. 전영애 교수는 시인의 자취를 따라간 기록에서, 시인의 시선을 상상하며 시인이 보았을 법한 풍경을 바라본다. 교수는 주소 몇 개와 지도 한 장만을 가지고 시인이 살았던 집들과, 걸었음직한 장소를 찾아 길을 나섰다.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플라타너스의 잎뿐이라는 첼란의 문구를 기억하는 교수는 시인이 바라봤음직한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들을 발견한다. 문득 시집 한 권과 지도를 들고 길을 찾아 헤매던 전영해 교수의 시 읽기가 궁금해졌다. 나도 시를 읽는 방법과 관련하여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해서다. 전영애 교수는 파울 첼란을 읽는 일로 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하며, ‘(첼란의 시가) 쉽게 읽히지 않지만 소중히 읽을 수밖에 없는 시라고 말한다. 시인의 집을 펼칠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교수는 시인의 흔적을 따라가는 과정이 또다시 새로운 이들과의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한 생애의 발자국들 위에 내 발자국을 얹어본다.”(66)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나가는 과정뿐만 아니라,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나는 유독 시와 거리가 먼 유형의 사람이지만, 시인의 삶과 이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들은 자신의 작업물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이들에게 초라하고 작은 삶을 소중히 하라는 복음(?)을 전하는 임무를 지닌 이들이 아닐까도 생각해보았다. 다음 글에는 여러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첼란의 흔적으로 이어가보려고 한다. ‘역사와 언어에 대한 회의를 표현했다고 하는 첼란의 언어를 일부나마 들여다보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섬

: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

장 지글러(Jean Ziegler) 지음 |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환대의 전통을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이 할퀴어버린 한 해가 저물어간다.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경제적 어려움과 고립감을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요순시대를 제외하고는 태평한 시대가 과연 있었을까 싶다. 어느 시대건, 지구상의 어느 곳이건 사람에게든, 동식물에게든 태어나 살아가는 일은 지난한 과업인 것 같다. 우리 조상도 어려운 시절에 서로 돕고 상대방을 품어주던 풍습이 있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올해는 우연히 고대 철학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특히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처음 접했다.

 

그 중에서 특히 플라톤은 특이하게도 대화형식을 빌어 자신의 철학을 문학작품처럼 집대성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인데, 여기에는 종종 고대 그리스에 있었던 환대(xenia, 크세니아)’의 전통을 언급한 대목이 나온다. 어떠한 이유로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타인 혹은 다른 나라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상대방(주인)은 도움을 요청한 이(손님)를 환대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전통이 고대 그리스의 정의관을 반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환대의 전통은 시기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가,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오디세이에서도 언급되고 있으며,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인물들의 행동을 찾아볼 수 있다. 나아가 환대의 전통에 따른 당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주인의 도움을 받은 손님은 주인에 대한 빚을 적절하게 보답하는 것 또한 (기대되는) 올바른 응답이기도 했다.


국내의 여러 그리스 고전 연구자들이 쓴 플라톤의 그리스 문화 읽기에서도 이 환대의 전통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크세니아)는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고, 제우스는 크세니아를 보호하는 신이었다.”(41) 그러니까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요 배경인 트로이 전쟁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이 환대의 전통에 따른 정의관을 어겼기 때문에 발발한 사건이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왕국에서 환대를 받고서는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데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또 어떤 면에서는 헬레네가 트로이 전쟁 중에도 파리스와 트로이의 보호를 받은 것 역시 이러한 전통이 양쪽 사회에서 당연히 지켜지리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조금 책장을 넘기고 있는 플라톤의 자연철학을 담은대화편티마이오스에서는 아예 자연철학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대화의 도입부에서 이 환대의 전통에 얽힌 상황이 등장한다.

 

티마이오스: “어제 당신에게서 제대로 손님 대접을 받은 마당에, 우리 남은 이들이 열의를 다해 당신께 보답하려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코 온당치 않은 일일 테니까요.

(티마이오스, 17b, 김유석 옮김, 아카넷, 25)

 

이처럼 고대 그리스에 명백하게 존재했던 환대의 전통을 장황하게 꺼내들은 이유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장 지글러의 신간 인간 섬의 주요 배경이 바로 그리스의 여러 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인간 섬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줄곧 고대 그리스의 환대의 전통을 떠올렸다. 이 책은 유럽 연합이 유럽으로 유입될 수 있는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전쟁과 고문, 국가의 파괴 등을 피해서 그리스 해안으로 접근하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받아들이는’(12) 핫 스폿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핫 스폿은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에게 해에 있는, 특히 소아시아 지역에 가까운 다섯 곳의 그리스 섬들을 가리킨다.

 

유엔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기도 하고,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저자가 핫 스폿 중 특히 가장 큰 섬인 레스보스 섬의 난민 시설을 방문하고 기록한 내용이 책의 주를 이룬다. 책에는 사진이 없어서 그 현장의 충격이 덜하겠지만, 가족이 몰살당할 위험에 처해 있을 때, 모든 것을 버리고 과밀한 보트를 탄 채 에게 해를 건넜을 수많은 사람들을,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충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환대의 전통을 갖고 있던 그리스가, 공식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는 난민들의 생존에 대한 요청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 핫 스폿, 특히 이 책의 주요 무대인 레스보스 섬에서 이렇게 환대의 전통이 사라져 버린 현실에 그리스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물론 이 책에는 유럽 연합의 자금을 받고 난민들을 몰아내는 그리스 경찰들도 나오지만, 난민 구조 및 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여러 시민 단체들의 활동도 언급되고 있다.

 

인간성의 극단을 시험하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모여 있는 이 화산섬 레스보스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 섬이 특히 기억에 남는 이유는 기원전 7-6세기에 유명했던 시인 사포의 고향이면서 레즈비언이란 용어의 기원이 된 장소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이 섬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립포스의 부름을 받고 펠라로 가서 어린 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기 바로 전의 2년 간 머문 곳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섬에서 물고기와 철새들을 연구하며 동물지라는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탐구방법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관찰하고 증거에 기반 한 보다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방법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지는 서양생물학의 시작을 알리는 작업을 했으며, 이 작업이 바로 이 섬에서 마련된 것이다. (참고 아리스토텔레스 조대호 지음, 아르테, 92-104)

 

이런 배경들을 고려해볼 때, 오늘날 환대의 전통을 보여주었던 그리스의 전통이 서양인들의 삶을 지배하게 된 자본에 의해 무력화되고, 인간성의 위기를 겪는 모습을 인간 섬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환대의 정의관에 따르면, 그리스는 공식적으로 야만의 길에 서기로 결정한 셈이다. 환대의 전통이 고대 그리스에서 문명과 야만을 가르는 기준이었다는 한 고전 연구자의 글에서 오늘날 이 섬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대의 아이러니를 읽는다.

 

레스보스 지역을 비롯한 그리스-터기 지역은 지진이 특히 많이 일어나는 곳으로 유명한 것 같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지난 10월에도 강도 7.2의 강진이 그리스-터키 지역에 발생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핫 스폿에서 난민 대기자들이 코로나 팬데믹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경험했을 지진을 상상해보려 했다. 우리도 전쟁과 공포, 배고픔을 극복하고자 터전을 떠난 조상의 역사가 있었음을 떠올려본다면, 이 난민 대기자들이 어떤 대우를 받는 것이 옳은 일일지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당장 이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우리는 이들이 처한 상황과 이들이 느낄법한 감정들을 이해해보도록 상상력을 발휘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환대를 응당 해야 할 의무로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보다, 도움을 요청하는 손님과 주인과의 관계가 인간사에서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상상력에 힘입은 바가 클 것이다. 인간 섬을 읽고, 저물어가는 한 해를 되돌아보며, 올해를 마무리하는 생각으로 환대의 에토스를 떠올려보았다. 내년에도 우리는 한동안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모두가 어렵지만 내년에는 나부터도 내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겠다





[언급한 책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2O 망각의

이반 일리치 지음 | 안희곤 옮김 | 사월의책


젠더

허택 옮김 | 사월의책
















이제는 나오지 않을 줄만 알았던 이반 일리치의 책을 년간의 공백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반 일리치를 검색하면 대부분의 결과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 검색되곤 하여 다소 번거롭긴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는 이반 일리치는 물론 다른 사람이다. 1926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한 일리치는 뭐랄까 상당히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타이틀을 뭐라고 딱히 정하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상가의 면모와 역사가의 면모에 카톨릭 사제이기도 철학자라고 있을까. 일리치의 저작을 단지 권만 읽어보았을 뿐이지만, 나는 일리치를 우리에게 문제를 던지는 문제아라고 평가한 적이 있었다. 일리치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것을 다르게 있는 여지를 극대화한다. 그리고 해결책 혹은 답을 독자에게 주지는 않는다. 악동처럼 독자에서 질문을 던지고 독자가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최근에 미셸 푸코를 알고 싶어서 그의 책을 두어 읽어보았는데, 일리치와 푸코는 물론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한편으로는 가지 유사한 점도 발견할 있었다. 사람 모두 현대의 어떤 문제점을 분석할 , 역사적 관점에서 그리고 계보학적 관점에서 과거의 언어나 역사적 맥락을 짚어보는 작업을 한다. 사람 모두 1926 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 사람이 관심을 가졌던 대상에는 전문가의 문제 있다. 다만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전문지식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전략적 위치에 주목하고 눈여겨본 바가 있다. 반면 일리치는 전문가가 지녀온 권력, 우리가 전문가라는 집단에 권위를 맡겨버린 현상에 대해 비판한 바가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전문가라는 집단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서서 이야기한 바가 있었다. 물론 나는 아직 사람을 어설프게만 알고 있다고 미리 자백하겠다. 그러니 사람의 철학에 대해서는 이상 아는 척을 하지는 않겠다.


     이반 일리치가 현대 사회에 던지는 생각거리, 질문들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사랑의 기술》 저자 에리히 프롬의 옆집에 살면서 절친으로 지내기도 했던 일리치는 주장의 독특함으로 인하여 실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우파로부터 총격을 받기도 하고, 천주교 사제이면서도 교황청을 비판하여 마찰을 빚다가 사제직을 관두기도 했다. 좌파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많은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반 일리치라는 사람이 정도라면 그는 인성이 이상한 사람이었을까하는 의구심을 가질만도 하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일리치에게는 현대 사회를 이루는 모든 요소가 다시보기 다르게 보기 대상이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말하자면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할 있는 모든 대상을 의심해보고 따져보고 질문을 던져본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리치의 여러 저작을 떠올려보면, 그는 대체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줄기를 이루고 있는 같다. 푸코가 권력 개념에 기반하여 병원, 정신병원, 감시 시설, 통제, 성소수자 등에 대한 차별과 배제 등의 주제에 대해 문제제기와 분석을 했다면, 일리치 역시 병원, 학교의 문제, 남녀문제 등을 현대 문명과의 관련성 속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했다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 현대 문명에 대해 다시 보고, 다르게 바라볼 것을 요청하는 일리치의 사상 역시 진지한 독자들에게 유의미한생각 거리를 던져줄 있다고 생각한다.   


       이반 일리치는 우리가 물의 화학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H2O 물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전에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이반 일리치,데이비드 케일리 지음, 권루시안 옮김, 물레2010) 읽다가 H2O 망각의 이라는 텍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내용이 상당히 궁금했더랬다. 아마도 《이반 일리치와 나눈 대화》중에서 9 질료가 제거된 세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의미를 따지며, 의미의 변천을 따라가는 내용이 소개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인간이 인식하는 이라는 대상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분석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 영감을 주는 신화적 상상력의 있었다면, 과학혁명을 지나 물이 H2O라고 인식 이후의, 혹은 현대 자본주의 문명에서 갖는 위상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같다. 짐작이 맞는지를 알아보려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텍스트가 과연 번역되어 나올까 하는 아쉬움과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결국  H2O 망각의 통해 그동안의 궁금증을 해소할 있게 되어 무엇보다 반가울 따름이다.        














이미 출간된 이반 일리치 전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3월의 첫날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이달의 첫 글을 올려봅니다.

오늘은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소개를 겸합니다.

제가 주목하게된 도서는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벤야민 번역하기>입니다.




 1월 중순, 그러니까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 소식이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같이 출간되어 더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게 된 책이기도 합니다.

(마스크를 구하듯 줄을 서서 책을 사려는 독서인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책소개를 보면 이 책의 정체는 모호합니다. 
 역사책 같기도하고, 평론집 비슷하면서, 우리 삶의 다양한 지점을 
 관통하고 있는 생각 모음집인듯 보입니다. 
 (아직 않읽어 봤으므로, 기대평만...^^)
  발터 벤야민의 전방위적인 생각과 글쓰기의 방식과 닮았을까요.
 
  분명해보이는 것은, 
  저자의 글쓰기가 바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자의 특이한 이력과 다양한 독서(곧 다양한 관심)이 모여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룬 유기체 같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묵직하지만, 언젠간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2004년에 저자 김재준이 '여성동아'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가 있으니, 참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국민대 김재준 교수의 ‘창의적인 영재 교육법’
   
  이 기사는 다분히 자녀가 있는 부모의 시선에서 관심을 가질만한 '교육법'을 화두로 삼고 기획한 기사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우리의 독서 현실과 독서 방법, 그리고 글쓰기의 중요성'으로 다가옵니다.
 
  우리 사회에서 '영재'란 단어가 같은 의미는 다분히 '엘리트 양성'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에 이 단어 사용에 조심스럽네요.  
  기사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아무리 좋은 학교 교육 제도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고 봐야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입시를 위한 학원 없는 사회', '타인에게 공감하고 자신을 발견하는 공부'를 아이들이 접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데에 관심이 생깁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 또는 그러한 노력도 없이) 남자-여자를 대립구도로만 보거나,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쉬운 현실입니다. 
교육제도 또한 그렇습니다.

학교제도에 순응하기만 하는 '자신의 생각이 부족한'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생각의 힘을 기르게 할 수 없을까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자의대로 빼앗고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신문기사 하나에도 생각이 많아 지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경태 대표는 주간지 편집기자 생활을 시작으로하여 한겨례에 입사한 편집자, 편집장 언론분야에 30 몸담았던 분이었습니다. 오늘은 책에 대한 내용 보다도 유치한 생각이 어떻게 아이디어가 있는가?’ 대해 기획과 편집자의 시선으로 본인의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였습니다. 여기서 아이디어라는 것은 제가 이해하기에는 문제의식을 반영하는 글쓰기(기사쓰기와 같은) 기획의 관점에서 적용되는 아이디어로 적용 범위를 좁혀야 이해가 쉬울 같습니다.  

 


우선 본인의 글쓰기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종을이야기하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강연 참석자 중에는 대부분이 언론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인 같았습니다. 언론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나 이미 면접을 봤던 사람도 있었구요. 우선 고경태 대표가 본인의 글쓰기에 자극을 주고 심지어는 혁명적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책은 이오덕 선생의 우리글 바로쓰기 박경리 작가의 토지였습니다. 종을 이야기했는데, 각각 여러 권의 책이라 읽기에는 노력이 필요할 같습니다.

 


저자의 글쓰기 방침은 우선 쉽게 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쉬운 입말이라고 표현하더군요. 문어체보다는 입에서 나오는 구어체로 쉽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은 같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단문쓰기를 언급했습니다. 물론 박경리 선생의 문장은 복문도 많은 편이지만 읽히는 문장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였구요


 

고경태 대표는 유치한 ’, ‘유치한 생각이란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기에 낮은 곳에서 생각해보자고 합니다. 아이디어라는 것은 질문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입니다. 질문이란 문제의식을 갖는 , 그리고 같은 침묵을 통해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발견하게 되어 곳을 파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이미 6권의 책을 펴낸 저자로서) 경험을 돌아보면, 책을 썼던 것이 계속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더라는 말이구요. 유치한 생각은 (당대의) 담론을 일상의 것으로 끌어다 놓는 시도이기도 하다고 합니다


 

고경태 대표가 한겨레에서 일하는 동안 사회의 이슈가 되었던 주제는 책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 방사와 동물권 논의, 형제복지원 사건 보도,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등과 같은 굵직 굵직한 이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언론인들, 기자들에게 베트남 양민 학살 사건 같은 시간이 지난 사건들오 여전히 제대로 조명을 받고 있지 못하기에, 궁금증을 가지고 탐사를 해보라고 말합니다. 아직 해결해야할 숙제가 많다고 말이죠. 이런 점에서는 유치해보이더라도 역사의 맥락 파악하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이들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일, 시대 정신 혹은 시대의 징후를 포착하는 노력을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있게된다는 말입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오는 한겨레 21에서 시노하라의 8·15’ 표지 기사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한 할아버지, 60년대 일본 전공투 세대인 아버지, 그리고 당시 20대인 대학생 아들, 이렇게 3대가 맞는 일본의 패전 기념일(815) 의미를 짚어보기 위해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거대한 주제의 담론으로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개별주체들이 받는 영향을 구체적으로 조명함으로써 역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했던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상당히 인상적인 기획 취재였습니다.

 


저는 강연이 끝나고 질문 시간에 고경태 대표에게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1] 굿바이, 편집장에서 인문학 칼럼 연재를 중단한 착한 필자’ 1, 2 나오는데, 실명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죠. 대답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서 대답하진 않겠습니다

 

[2] 중에 형제복지원관련 보도를 3부에 걸쳐 장편의 글을 연재했는데, 기사가 소설 구조를 차용한 글쓰기 시도한 기사입니다. 저도 글쓰기 방식이 궁금해져서 질문했는데요, 질문은 기존의 탐사 보도와 관련 기사 글쓰기와 기사가 어떤 점이 다른가를 물었습니다.  자세한 대답은 아니었습니다만, ‘소설 구조 적용한 기사라는 젓은 서사 내러티브를 사용하여 호흡의 글을 썼던 것인데, 편이 200 원고지 120매정도의 글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A4용지 장에 대략 1500자로 계산합니다만, 그렇다면 기사는 A4용지 16 정도의 기사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기사 치고는 상당히 글인 셈입니다.

 


이렇게 서사가 있는 논픽션 글쓰기 방식이 실제 기사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글은 일단 호흡이 길기 때문에 요즘에는 흔히 활용되는 것은 아닌 같습니다. 일단 서사 내러티브를 적용하려면 탄탄한 구성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호흡의 글과 탄탄한 구성을 갖추기란 쉽지 않으며, 독자가 읽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이상 고경태 저자의 저서 굿바이, 편집장출간 기념 강연회를 다녀온 후기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