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는 언제까지나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
가와카미 겐이치 지음, 한희선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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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장르가 복합적으로 들어 있다. 스포츠, 성장, 청춘 소설들이 하나로 엮여 있다. 재미있는 것은 시대적 배경이 현대가 아닌 과거란 점이다. 그것도 비틀즈의 <플리즈 플리즈 미>가 나왔던 그 때다. 왜 비틀즈 노래를 말하느냐고? 이 소설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노래이자 변화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가 재미있다고 하는 것은 현재보다 그 시절이 좀더 순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컴퓨터 앞에서 몇 번의 클릭이면 볼 수 있는 것을 그 당시엔 상상력과 사진 등으로 채워야 했고, 아직 어른들의 권위와 폭력이 노골적으로 성행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소설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주인공 가미야마의 학교생활과 야구부 활동이 전반부라면 후반부는 가미야마가 도와다 호수에 가서 겪게 되는 첫사랑과 조그마한 모험들이다. 개인적으로 전반부는 분노하면서 읽었고, 뒷부분은 눈부시게 찬란하고 아기자기하면서 파릇파릇한 사랑 이야기로 즐거웠다. 왜 앞부분에 분노했냐면 학교와 선생들의 횡포 때문이다. 물론 중3 남학생들의 어설프고 열정 가득한 시간들이 주는 재미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의 순수한 열정을 짓밟는 학교의 행동은 최근에 학교와 선생을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느낀 점을 그대로 표현했기에 더 분노했다. 학생을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앞의 말을 뒤집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용기 내어 이 부당한 행위에 저항하고 자신들의 열정을 부르짖는 가미야마 등의 행동을 보면서 속으로 박수를 쳤다. <부디 부디 나>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려 퍼질 때는 헐크처럼 변하는 그를 기대하게 만든다.

<부디 부디 나>는 <플리즈 플리즈 미>를 가미야마가 번역한 것이다. 그는 3루수로 공은 잘 잡지만 불안감 때문에 송구를 제대로 못할 정도로 소심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미군 방송에서 흘러나온 비틀즈의 이 노래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변한다. 늘 주눅 들어 있던 그가 친구 앞에서 이 노래를 자신 있게 부르고, 마음속으로 이 노래를 부르면 용기가 샘솟는다. 마을에서 처음 그 노래의 가치를 깨닫지만 이미 세상은 비틀즈로 인해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소심함이 사라진 그는 주전으로 성장하고, 팀은 승승장구한다. 그리고 교사들의 부당한 행위가 이어지고, 이에 학생들은 조그마한 반항을 한다. 전반부 마지막에 이 노래는 다시 자유를 표출된다.

도와다 호수로 가미야마가 간 것은 아주 불순한 의도다. 친구가 그곳에서 여자들이 가장 많이 처녀를 버린다고 했기 때문이다. 조그마한 중3 학생이 혹시 자신도 섹스를 할 기회를 누릴지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간 것이다. 그것도 홀로 말이다. 거의 노숙을 하면서 그런 기회를 노리지만 작고 멋없는 그에게 다가오는 여자는 없다. 그러다 새벽에 호수에서 나체로 수영하던 여자를 발견한다. 그녀가 바로 사이토 다에다. 전학생이고, 음악 시간에 노래도 부르지 않고, 영어 점수도 나쁘고, 얼굴에 조그마한 흉터가 있는 소심한 그녀 말이다. 그녀는 호숫가 호텔에서 아르바이트 중이다. 이 만남은 성에 대해 호기심 가득한 그를 순수한 첫사랑의 길로 인도한다. 만나고 헤어지면서 두근거리고, 상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고, 서로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던 순간들과 사랑의 고백하고, 상대를 지켜주기 위해 용기를 내는 등의 다양한 이야기가 생생하게 펼쳐진다. 

소년은 자라고 성장한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다. 가끔 이 성장을 앞당기고 싶다. 무리하게 앞당기면 부작용이 생긴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놓아두면 쌓여가는 시간들 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학창시절. 친구들. 선생들. 즐겁고 재미있고 웃겼던 일들. 슬프고 무섭고 분노하고 괴로웠던 일들. 첫사랑의 열정과 순수함. 이별의 아픔과 또 다른 만남. 이런 기억과 추억 속에서 뽑아내고 엮어낸 이야기는 작가의 손길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된다. 이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좋은 작가를 만났다. 약간 전형적인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재미나 가치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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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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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첫 십 년의 저항을 기록한 만화다. 아니 만화란 표현으로 부족하다. 팸플릿이나 전단지나 벽화나 플래카드 등에 그려진 것을 모두 모아놓았다. 이 다양한 장르는 하나의 이야기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은 사람이다. 재난과 저항이란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은 결국 그 나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그가 10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사람들과 그들이 살고 있는 현장에서 본 현실을 담아내었다. 익숙하거나 잘 알고 있는 사실도 많지만 언론에 의해 혹은 나의 무관심에 의해 몰랐던 사실들도 많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서 분노보다 한탄과 어두운 미래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이 만화 첫 장면에서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문장에서 드러난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이런 행동을 지속적으로 펼치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런 행동을 방송이나 언론에서 차단하고, 왜곡하는 현실이 벌어진다. 이런 현실이 나도 모르게 점점 긍정적인 생각을 부정적으로 바꾸고 있다. 저 높은 곳에서 우릴 지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의도한 대로 변하고 있다.

모두 다섯 저항을 이야기한다. 유쾌 발칙하게, 독점 자본에, 전쟁에, 국가 폭력에, 공영주택 빼앗기에 대한 것이다. 이 이야기들은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데 하나 하나가 놀라운 사실들의 나열로 경악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놀랍고 무시무시한 현실 속에서 저항하는 사람들의 활약과 노력에 다시 한 번 더 놀라고, 그들을 존경하게 된다. 동시에 이 저항이나 재난들이 결코 다른 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한국의 현실과 미래로 눈이 자연스럽게 돌아온다. 

왜 외국의 사실들에서 한국 현실을 보게 될까? 먼저 이명박이 서울시장으로 있으면서 펼친 뉴타운 정책이다. 이 정책은 너무나도 미국의 공영주택 개발과 닮아 있다. 낙후되고 문제 있는 지역을 개발하여 살기 좋은 아파트를 만들고, 이 주택을 저소득층에게 공급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결국 이것은 건설업자들과 그들과 유착한 사람들만 좋은 일로 끝났다. 뉴욕이나 뉴올리언스의 공영주택 이야기는 바로 한국 뉴타운 이야기고, 용산 참사와 맞닿아 있다. 수많은 돈을 언론에 쏟아 부으면서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화려한 외양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저소득층의 비참한 삶과 현실은 가려지고 묵살된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억압하는 모순과 부조리가 판을 친다. 사람들은 그들처럼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지 쫓겨난 그들에겐 관심조차 없다.

9.11 사태 후 미국은 변했다. 애국주의가 모든 것의 중심에 섰다. 이 엄청난 참사는 독점 자본에게 너무나도 매혹적인 일이다. 칼라일로 대변되는 사모펀드의 활약은 눈부시다. 정권은 복수를 부르짖고 거짓된 주장으로 이라크를 침공한다. 전쟁에서 승리하지만 그 덕분에 국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진다. 예산이 그곳으로 돌려지면서 복지와 사회기반시설을 보수나 개선을 위한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애국이란 감정에 휘둘려 젊은 군인들이 타국에서 죽어나가고, 그 전쟁으로 소수의 독점 자본가들은 거대한 부를 이룬다. 이 사건 왠지 최근에 벌어진 천안함 사태와 비슷한 모양이다. 전함이 침몰한 것을 두고 보수단체와 언론은 북침까지 말한다. 근거 없는 주장을 펼치고, 국민을 전쟁으로 몰아넣으려고 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만약 전쟁을 주장하려면 40대 이상이 전쟁터로 나가야 한다. 전쟁을 결정하는 나이대가 바로 40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나가야 한다면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알고 있던 것 이상이다. 화려하게 포장된 이스라엘의 건국 과정은 팔레스타인과 베두인의 재난과 억압과 폭력을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이 펼칠 정책과 행동들은 너무나도 놀라 경악마저도 부족할 정도다. 그리고 석유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다양한 지역의 문제들은 독점 자본과 독재자들의 유착으로 이어지고, 세계화의 이면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투박하고 거친 그림과 구성 속에 담겨 있는 내용도 역시 거칠다. 이 거칠고 사실적인 내용이 세련되고 화려한 독점 자본과 비교된다. 미국과 세계화의 진실을 알고자 한다면 이 거부감 생기는 책을 읽어보라. 그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진면목을 알게 되고, 우리의 비겁한 행동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고 있는지 알고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 물론 지금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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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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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가 직접 뽑은 오에 겐자부로 상 수상작이란 말에 혹시 읽기 힘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쓴 소설을 쉽게 읽은 적이 없기에 그가 뽑은 소설도 그렇지 않을까 괜히 겁먹은 것이다. 하지만 천재 소매치기와 절대 악의 화신이 대결한다는 광고 문구 덕분에 이런 염려를 들어낼 수 있었다. 악과 악의 대결 구도란 점이 속도감을 높여주고, 긴장감을 불러올 것이란 짐작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과장된 표현이다. 

나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매치기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이 능력은 그로 하여금 보통 사람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지갑을 훔쳐내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지만 쉽게 긴장을 풀고 일상 속으로 편안하게 들어갈 수 없다. 비록 그가 소매치기 하는 대상이 부자들이라곤 하지만 그 속엔 친절한 사람도 존재할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선한 사람이 피해를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능력은 반복될수록 나쁜 무리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운명이 소용돌이치고, 긴장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전반부는 그의 과거를 다루고, 후반부는 그의 현재를 다룬다. 과거를 다룬다고 하지만 현재 속에서 회상으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 기자키와의 만남은 절대 악과의 만남이다. 그와 함께 소매치를 했던 이시카와를 회상하면서 드러나는 과거의 사건은 그로 하여금 도쿄를 떠나게 만든다. 그 사건 이후 이시카와의 생사는 알 수 없는데 그가 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이 다시 돌아와 소매치기를 하는 장면인데 그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와 맞물리면서 새로운 사건을 암시한다.

현재의 시간 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자키와의 재회와 그의 협박으로 소매치기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우연히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는 소년의 일이다. 특히 이 소년이 엄마와 함께 어설프게 훔치는 장면은 그로 하여금 과거 속 자신을 떠올려준다. 그들이 들켰다는 것을 알려주고, 이후 소년이 그를 따르면서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데 이 관계가 미래를 바꾸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그리고 소년에게 훔치는 것을 그만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그가 도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과 불안 때문에 그렇다. 

사실 광고 문구처럼 대결 구도에서 오는 긴장과 스릴을 많이 기대했다. 하지만 작가는 전혀 그런 의도가 없다. 소매치기할 때 긴장감이 고조되지만 일시적인 반응일 뿐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가 기자키를 거부하고 대결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다. 자신의 옆에 그 어떤 조력자도 없고,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쓰리’는 것뿐인 상황에서 대결이 펼쳐질 수가 없다. 오히려 기자키가 말한 유럽 귀족의 운명 이야기가 그에게 더 적합하다. 

절대 악과의 대결에서 오는 긴장과 스릴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재미가 가득하다. 그가 소매치기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심리묘사와 세부적인 상황 설명은 긴박감을 주고 몰입하게 만든다. 그의 감정과 심리를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기자키의 등장은 언제 무엇이 터질지 모르는 긴장감을 불러온다. 특히 마지막 세 번의 쓰리는 누군가에게서 흔적도 없이 무엇인가를 훔친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가 필요한지 알려준다. 그의 세부적인 묘사를 통해 머릿속에 그려지는 쓰리 장면은 한 편의 아름다운 예술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열린 결말인데 속편을 통해 광고 문구 같은 대결구도가 본격적으로 펼쳐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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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4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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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가 돌아왔다. 그것도 유부남으로 말이다. 연쇄살인범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그의 활약이 이번에도 펼쳐진다. 그런데 그가 리타와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왠지 모르게 약해진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이 메마르고 이성에 의해 감정을 연기하던 그가 이제 한 가정의 가장이 되면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변화를 긍정적으로 본다. 지켜야 할 것이 생기면 좀더 조심하게 되고, 약점이 생기고, 적들은 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기는 위협은 덱스터 혼자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의 문제로 확대되고 이야기는 더욱 풍성해진다.

파리 신혼여행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덱스터에게 파리는 따분한 공간일 뿐이다. 리타가 즐거움과 기쁨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그가 그리워하는 것은 마이애미의 밤거리다. 자신 속에 있는 검은 승객과 함께 죽일 대상을 물색하고, 끔찍한 살인으로 욕망을 채우고 싶어 한다. 물론 파리에서도 가능하지만 그곳은 정보도 없고, 능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다 떠오른 명소가 모르그 가란 것은 그의 따분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기한이 있고, 그리워하던 마이애미로 돌아온다.

신혼여행을 마치고 온 첫날 끔찍한 시체가 그를 기다린다. 해변 가에서 뱃속에 내장 대신 과일바구니를 채워 넣은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이것이 단 한 구라면 문제가 없을 텐데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시체들은 보기 좋은 모양을 전시된 것처럼 꾸며졌고, 덱스터 속의 검은 승객은 이 시체들을 보고도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는다. 이 연쇄살인사건 담당형사가 된 데보라는 덱스터의 정체를 이미 안 상태고, 그에게 사건을 해결할 단서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른다. 그리곤 단서를 찾아 그녀는 덱스터와 함께 현장을 돌아다니고, 관광청에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용의자를 방문하던 중 칼에 찔린다. 그녀의 생명은 위태로워지고, 덱스터의 이성은 감정에게 자리를 살짝 내준다.

이번 소설은 이미 파리 신혼여행에서 단서를 살짝 흘려놓았다. 그 단서는 이번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단서를 따라 가다가 만나게 되는 하나의 동영상은 덱스터를 불안으로 몰아가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데보라를 찌른 범인이 풀려난 후 그가 저지른 살인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이 영상을 따라가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은 끔찍하고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범인이 보여준 영상에서 그의 가족의 위험이 드러난다. 덕분에 시리즈 속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덱스터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까 하는 호기심을 낳게 한다.

덱스터. 그는 강하다. 착하고 성실한 혈액분석가란 겉모습을 치워내면 냉정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연쇄살인범이 나타난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를 생각하면 이 반영웅이 얼마나 매혹적이었는지 모른다. 분명히 악을 법의 신판으로 물리쳐야 하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 그가 보여준 거침없는 살인은 가슴 한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욕망을 채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작가가 선 대 악이 아닌 악 대 악의 대결구도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 독자 속 검은 승객을 살짝 깨우게 만든다. 

이번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가족은 무겁지만 낯익은 소재다. 데보라가 덱스터 정체 때문에 갈등하고 고민하는 것이나 덱스터가 리타에게 계속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하는 현실이 모순적으로 펼쳐진다. 아직 그의 정체를 둘러싼 갈등을 덮어두고 펼치지 않았지만 시리즈가 계속되면 반드시 전면에서 부각될 내용이다. 그리고 리타 아이들의 성장과 활약은 또 다른 재미를 준다. 특히 코디의 말과 행동은 작은 덱스터나 다름없다. 이 아이들과 리타와 데보라로 이루어진 가족이 그를 어떤 식으로 변하게 할지 상상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약간 무뎌진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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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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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원서능력자가 아닌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원서를 읽을 수 없어서 좋아하는 작가의 시리즈나 미출간작을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요즘엔 다르다. 그렇지 않아도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데 좋은 작가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쌓여 있는 책도 많은데 원서까지 읽고 쌓아야 한다면 가뜩이나 부족한 공간과 돈이 더 부족해질 것이다. 버나드 콘웰은 이 책 포함하여 두 권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나에게 안타까움과 다행을 동시에 줬다.

스톤헨지. 세계 불가사의 중 하나다. 이곳을 두고 수많은 학설이 오고 간다.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하여 각 방위가 천체운행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등과 결합하여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이곳에서 비밀 종교 의식을 펼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었고, 현재도 이곳에선 종교의식이 펼쳐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정확한 용도나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이 없다. 

작가는 불가사의한 스톤헨지의 비밀을 선사시대로 우릴 인도하고 그 거대한 상상력으로 풀어낸다. 그 속엔 그 시대의 삶, 사랑, 탐욕, 마법, 음모, 전투, 모험, 과학 등이 담겨있다. 그 중심엔 해와 달의 신이 있고, 배다른 세 형제가 얽히고설킨다. 기본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지만 그 시간은 현대의 것과 다르다. 특히 형제 중 사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그의 삶은 굴곡이 심하다. 부족장이었던 아버지가 큰형에게 죽은 후 노예로 팔려가고, 그 상인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보고, 노예로 변한 것이 또 다른 음모임이 드러난 후에도 그의 삶은 계속해서 수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이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데 가장 이성적이고 과학적이면서 인도적인 인물이다.

이야기는 사반이 큰형 렌가에게 죽임을 당할 뻔한 사연에서 시작한다. 성인식을 아직 치르지 않은 소년 사반이 큰형에게 사냥 등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다가 이방인을 발견한다. 이방인을 환대하는 것을 예상하지만 이 시대 이방인은 약탈자이자 도둑이다. 이방인을 뒤쫓아 가서 그를 죽인다. 그가 가진 물건 중 황금이 있다. 형은 자신이 가지려고 하고, 동생은 부족장인 아버지에게 가져다주려고 한다. 이 때문에 충돌이 생기고, 이 기회를 노려 사반을 죽이려한 것이다. 하지만 바로 이 황금이 이 거대한 상상력을 움직이는 동력원이고, 모든 사건의 원인이 된다.

렌가가 호전적인 전사로 폭력과 죽음을 보여준다면 둘째 형 카마반은 영악하고 음모와 마법으로 사람을 휘어잡는 인물이다. 사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신비하면서도 광기에 찬 인물이다. 불구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지만 태양신 슬라올의 사제임을 자청해 나서고, 달의 신 라하나를 숭배하는 여마법사 사나스에게 마법을 배우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지식을 쌓은 후 명성을 떨친다. 미신이 넘실거리던 그 시절 어느 정도 자연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고, 슬라올에 대한 광신은 스톤헨지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모든 폭력과 광기의 또 다른 표출이다. 

한 소년의 성장을 따라가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부족의 삶과 사랑과 종교가 생생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자연 현상은 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오고, 현재에서 보면 아주 조그마한 지식이 거대한 저주와 마법으로 둔갑하여 그 시대를 지배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설정은 성인식에서 실패하여 전사가 되지 못한 아이들이 사제가 되는데 이들이 점점 또 다른 권력을 잡고, 전사들에게 공포를 심어준다는 것이다. 육체적 능력이 부족한 그들이 지식으로 지배계급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조금은 알게 된다.

전작에서도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질 못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손에서 떼기가 쉽지 않다. 하나의 돌을 옮기기 위해 그들이 들이는 공력과 시간을 생각하며 한 장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이 세 형제의 대립과 갈등이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신에 대한 순수한 사랑과 찬양은 두려움의 또 다른 얼굴임을 보게 되고, 고대인의 삶에서 시간의 옷을 벗겨내면 바로 우리 자신이다. 세밀한 묘사와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과 거대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 소설을 읽으면서 소설이 지닌 매력에 흠뻑 젖어들었다. 갑자기 스톤헨지를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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