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흩날리는 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4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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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을 처음 읽은 것이 <아웃>일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그 분위기와 전개와 구성에 완전히 반했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추리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때라 더 그랬다. 그러면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몇 권 더 읽었지만 <아웃>을 능가하는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아웃>과 나란히 놓아두고 싶은 작품을 만났다. 아직 사놓고 읽지 않은 그녀의 작품들을 생각하면 몇 권 더 생길지 모르지만 말이다.

1993년 미로 시리즈 첫 권으로 출간된 작품이다. 사실 상의 데뷔작으로 제39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에 대한 소개 중 눈길을 끈 것은 ‘일본 여성 하드보일드의 위대한 시작점’이란 평이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최고봉으로 하라 료의 작품을 꼽는데 이 작품은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그녀는 탐정이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남자 탐정처럼 무력을 어느 정도 갖춘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무라노 미로가 어떻게 탐정 일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사건과 사람들의 관계와 삶은 어둠 저 깊은 곳에서 급격하게 떠오른다.

어느 소설처럼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미로는 자살한 남편에 대한 기분 나쁜 꿈을 꾸다가 깬다. 그녀를 깨운 것은 전화벨 소리다. 시간은 오전 3시 조금 전이다. 받지 않고 그냥 잔다.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한 남자에게 전화가 온다. 그녀가 있는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곧 나루세가 온다. 그는 친구 요코의 남자 친구다. 그가 온 이유는 요코가 1억 엔을 들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돈이 야쿠자의 돈임을 생각하면 위험하다. 이때만 하여도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무력증에 빠져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다. 바로 요코의 실종과 1억 엔이 맞물려 그녀를 조사 탐정의 길로 인도한다.

1억 엔. 요코의 실종. 이 둘은 동시에 생겼다. 이 둘을 같이 묶어서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왜 위험한 1억 엔을 들고 달아난 것일까? 이런 의문을 뒤로 하고 미로와 나루세는 그녀의 흔적을 쫓게 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실들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요코의 모습이 아니다. 거짓과 허세와 욕망과 사랑이 뒤엉켜 있다. 하나씩 조사할 때마다 낯선 요코의 모습이 보인다. 그 낯설음은 요코만의 것이 아니다. 미로 자신의 낯설음도 같이 드러난다. 이 과정을 작가는 건조하면서 사실적인 문장으로 표현한다. 대단하고 매력적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사실 어느 정도 도식적이다. 친구가 사라지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건 전화가 미로라면 당연히 그녀가 의심받는다. 여기에 야쿠자가 개입하고, 남자 친구도 사라진 돈에 대해 결백하고, 사건 해결을 위한 시한이 정해져 있다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도식적인 전개를 통해 긴장감을 불어넣고, 사건 해결 과정에서 만나고 드러나게 되는 사실들은 그녀만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게 만든다. 육체적으로 너무나도 무력한 그녀가 어떻게 감성과 상상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지 말이다.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243쪽)란 아버지의 말은 중요한 순간에 그녀에게 영감을 준다. 평범해 보이는 사건의 이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이 바로 이 소설이 주는 또 다른 재미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구성 같은데 그 속에 담겨 있는 인간의 뒤틀리고 어두운 욕망과 악의 등이 그런 부분을 지운다. 가볍게 시작하여 무겁게 읽히지만 몰입도가 좋아 단숨에 읽게 된다. 지금 이 순간 먼저 나온 <다크>를 다른 작품 출간 전에 읽을까 고민한다. 미로의 길이 어디로 어떻게 이어지는지와 그 어두운 길을 확인하고픈 마음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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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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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표지를 펼치면 섬뜩한 그림으로 변신한다. 이미 알고 있던 이미지지만 늦은 밤 붉은 빛의 표지를 볼 때면 가슴 한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감정이 묘하다. 제목 또한 마찬가지다. 장르문학에 관심 없는 사람이 본다면 아마 ‘뭐 이런 책이 있나?’하고 욕할 정도의 표지와 제목이다. 그것은 이 책을 들고 전철을 탈 때 사람들의 시선에 괜히 신경이 쓰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시선끌기란 측면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외형적인 이야기로 시작한 것은 초판본 표지가 기존 변신 표지들과 다른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한낮에 펼치면 조금 밋밋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내용은 읽으면서 요코미조 세이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한 일본색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한 가문의 지벌이란 설정과 머리 없는 귀신의 등장은 이제 웬만큼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한 나에게 변함없이 혼란을 가져다준다. 환상을 지우고, 사실에만 집중하면 해답을 얻을 수 있다는 추리소설의 금언을 알고 있다고 하여도 말이다.

미쓰다 신조란 작가 처음이다. 본격 미스터리와 민속적 호러를 결합시킨 작품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일본에는 수백만의 신들이 있다고 할 정도인데 그것을 잘 살리는 작가인 모양이다. 이번 작품은 히가미 가의 저주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다. 무대는 히메카미 촌이고, 각각 다른 두 시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첫 번째는 이치가미 가의 십삼야 참배고, 두 번째는 이십삼야 참배다. 이 마을에서 이치가미 가는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아오쿠비의 지벌은 그 가문 대대로 자손이 귀한 상태로 만든다. 그것은 가문의 남자들이 자라면서 한 명씩 사고 등으로 죽는 것이다. 이런 일이 몇 백 년을 이어오면 믿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의 구성은 흥미롭다. 히메카미 촌의 머리 없는 살인사건을 추리소설 작가가 된 전직 주재소 순사의 아내 다카야시키 다에코가 그 사건을 소설로 바꿔 연재하는 것이다. 작가가 화자로 등장하지 않고, 그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남편 다카야시키 하지메와 그 사건을 중심에서 관찰한 하인 이쿠타 요시타카라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풀어낸다.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고, 이전 기록과 기억을 더듬어 그 당시 벌어진 사건의 사실을 나열하면서 독자 탐정들의 의견을 요청한다. 독자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다. 중간에 이전 미스터리 작품에서 화자나 의외의 인물이 범인이었다는 설정을 거부하면서 말이다.

두 개의 시간 대에서 벌어지는 머리 없는 살인사건은 참 많이 꼬여있다. 히가미 가의 독특한 전통과 아오쿠비의 지벌이 맞물려 펼쳐진다. 이 가문의 수장은 역시 이치가미 가인데 이 집안에 남자 상속자가 없으면 다른 집안이 이치가미 가가 되고, 그 집안은 후타가미나 미카미 가가 된다. 한 마을 지배할 정도의 가문이라면 그 속에 욕망이 꿈틀거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대대로 전해지는 저주는 욕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이용하기 딱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기괴한 환상과 저주가 엮이고, 이어지는 머리 없는 살인사건이 이것을 더 증폭시키면서 미로 속으로 끌고 가기 때문이다.

작가가 단서를 던지면서 독자들에게 범인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을 때 나 또한 작가의 의도대로 범인을 찍었다. 읽으면서 혹시 했던 부분들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 무시하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너무 순진했다. 전체 구성을 너무 얕보고, 사실에 집중하기보다 지벌과 머리 없는 존재들에 너무 매혹된 것이다. 뭐 이런 것 때문에 뒤에 펼쳐지는 반전의 연속이 주는 재미를 만끽하게 되지 말이다. 참 도조 겐야 시리즈라고 하지만 그가 등장하는 것은 중간에 잠시 기차 속에서 만나고 마지막에 진짜 범인을 추리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것이 전부다. 그 짧은 등장이 충분히 인상적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작품에서 만나게 될 도조 겐야는 어떤 모습일지 지금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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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칼랭
로맹 가리 지음, 이주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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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로맹 가리의 소설을 읽었다. 이 작가에 대해 잘 모를 때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를 읽었다. 그때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이 책이 보이면 친구에게 추천하곤 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의 많은 책이 절판되었고, 찾기가 쉽지 않았다. 헌책방을 돌아다니며 로맹 가리의 이름이 보이면 사곤 했지만 무지했던 그 당시 에밀 아자르가 그인지는 몰랐다. 아마 그때 에밀 아자르로 출간된 책을 샀다면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작가도 많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낸 첫 번째 소설이다. 공쿠르 상을 두 번 받은 것으로 유명한 그이지만 <자기 앞의 생>에 나온 글을 읽다보면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선입견을 벗어내기 위해 선택한 것이 무명의 젊은 작가 에밀 아자르다. 그의 새 이름과 작품은 출판사에 호응을 받지만 약간의 편집을 요청받는다. 아마 로맹 가리로 출판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거장과 신인의 차이가 여기서 갈린다. 그리고 이 편집된 부분이 이번 책에 실려 있다.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개인적으로 편집자들의 선택이 더 읽기 편한 것은 사실이다.

그로칼랭은 쿠쟁 씨가 키우는 비단뱀의 이름이다. 그로칼랭이란 이름은 열렬한 포옹이란 뜻이다. 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쿠쟁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외로움을 들어줄 존재다. 2미터 20센티의 비단뱀이 쿠쟁의 몸을 감을 때 느낀 편안함과 동질감은 외로움에 지친 그를 편안한 휴식으로 인도한다. 이것은 그로칼랭만 그런 것이 아니다. 비단뱀의 먹이로 산 생쥐에게도 그의 감정은 이입된다. 이 감정은 순수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속에 집착도 담겨 있다. 자신의 감정에 몰입하고 타인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는 행동에서 그것은 잘 드러난다. 그런 행동은 두려움과 공포가 바닥에 깔려 있지만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껍질 속에서도 불편해 하는 것은 그 껍질이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118쪽)란 문장은 비단뱀이 탈피를 하여도 비단뱀인 것에 반해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불편한 다른 껍질을 뒤집어 쓴 채로 살아야 하는 현실을 말한다. 이것은 쿠쟁 씨가 회사에 나가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나 나중에 그가 결혼을 꿈꾸었던 드레퓌스 씨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삶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그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기만 할 뿐이다. 

서른일곱에 혼자 사는 그가 창녀를 찾아가는 것은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분명히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서겠지만 다른 하나는 그의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게 만들어줄 조그마한 신체접촉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로칼랭처럼 안아주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행위를 갈망하는 것은 그의 외로움이 얼마나 심한지 알려준다. 그리고 공권력이나 타인에 의한 폭력을 상당히 두려워하는데 이것은 사환의 초대와 맞물려 드러난다. 초판본과 복원판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 중 하나가 이것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읽기 편한 것은 초판본이지만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알기는 분명히 복원판이 좋다.

비단뱀 그로칼랭에 대한 글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현대인의 삶과 외로움을 담고 있다. 점점 기계화되고 산업화되면서 우린 서로가 신체접촉할 일이 줄어들고 고독을 느낀다. 이것이 극대화된 것이 생태학적 결말에서 그로칼랭과 자신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부분이다. 앞부분과 달라진 분위기 탓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지만 몇 번이고 펼쳐 읽게 만든다. 그래도 어렵다. 아마 이런 이유로 편집자들이 삭제를 요구한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초판본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 에밀 아자르이자 로맹 가리인 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직 내가 정확하게 발견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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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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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초에 <노인의 전쟁>을 샀다. 언제나 처럼 사둔 뒤 읽지 않았다. 이번 책을 읽기 전 시리즈 전편을 읽고자 했는데 책이 보이지 않는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유령여단>을 먼저 읽었다. 보통 때 같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전편을 찾아 읽었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글을 보니 이 작품을 먼저 읽어도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펼쳐 읽기 시작했고, 광대한 우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책 앞쪽에 <노인의 전쟁> 줄거리가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상당히 불만이다. 아직 전작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결과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작의 주인공인 존 테리가 이번엔 직접 나오지 않는다. 이런 점이 아마도 이 소설을 먼저 읽어도 전체를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 속에 나오는 많은 설명들이 나중에 <노인의 전쟁>을 읽을 때 그 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읽는 순서가 바뀔 때 주는 이득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다음 이야기와 앞 이야기에 관심이 많이 갔다. 그와 동시에 이번 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뇌도우미란 존재가 일본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전뇌를 연상시켰다. <공각기동대>가 어떤 영향력을 미쳤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소설 곳곳에 일본 문화의 흔적이 나오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작가도 곳곳에서 sf 걸작들을 말하면서 그 영향을 말한다. 다행히 읽은 책들이 많아서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 많다. 

뇌도우미란 존재보다 인간의 의식 혹은 기억 등을 물리적으로 저장하는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먼저 생긴다. 이것은 이미 <공각기동대>에서 다루어진 것이지만 인간의 존재 가치를 생각할 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철학적 물음을 던지면서 또 하나의 중대한 문제를 다룬다. 그것은 DNA 조작을 통해 만들어진 인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재러드 디랙도 바로 그렇게 탄생한 인물이다. 특수부대용으로 만들어진 육체에 부탱의 의식을 집어넣어 그가 만들어졌다. 그가 만들어진 목적은 부탱을 잡기 위해서다. 그러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아무리 의식을 이식받았다고 하여도 단숨에 모든 기억을 되살려 그의 추적하는 것은 무리다. 그래서 그에게 스트레스를 가하고, 억압된 상황과 부탱의 기억이 만나는 곳에서 그 흔적을 찾고자 한다. 

이 시대 특수부대용으로 만들어진 인물들의 능력은 대단하다. 뇌도우미와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보통 사람이 수십 년을 배워야 할 수 있는 것을 며칠 만에 익힌다. 이미 육체적으로 성인의 외형을 갖추었고, 능력은 유전자 조작으로 강화되어 있다. 뇌도우미는 필요한 자료를 무수히 많이 가지고 있다. 이 뇌도우미는 특수부대원 사이를 통합시키면서 유대감을 높여주고, 생각만으로 대화가 가능하게 한다. 이런 능력은 전투능력을 극대화시키고, 각 발육한 그들의 경험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이 뒤에는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지만 말이다.

밀리터리 SF소설의 재미를 어느 정도 간직하면서 뇌도우미란 설정을 통해 과학적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이런 어려운 질문을 뒤로 두고 이야기에 집중만 해도 충분히 재미있다. 음모가 중첩되고, 특수부대의 전투가 긴박한 액션과 속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어려운 개념과 설정이 초반에 약간 진도를 더디게 만들지만 재러드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펼치면서 집중도와 가독성이 높아진다. 작가가 만들어낸 무기와 도구들은 머릿속에서 어떤 것일까 상상하는 즐거움을 주고, 광대한 우주와 외계인의 낯선 모습은 이전에 본 SF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려보게 만든다. 빨리 <노인의 전쟁>을 찾아서 읽고, 다음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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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9-08 2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어제 하드SF 라고 하는 제임스 호건의 '별의 계승자' 를 재밌게 읽고났더니 이런 책이 또 끌립니다. 이 책도 좋아할만한 내용인것 같네요.
리뷰 잘 봤습니다.^^
 
카사노바 살인사건 탐정 글래디 골드 시리즈 3
리타 라킨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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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에서 멋지게 살인사건을 해결하고 연인 잭과 함께 여행을 떠난 그녀에게 한 통의 전보가 온다. 소피가 위급하다는 전보다. 두 연인의 아름다운 사랑이 결실을 맺으려는 순간에 온 이 전보는 오히려 둘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든다. 그것은 소피의 상태가 정상이고, 이 둘의 아름다운 여행이 글래디 골드의 조그마한 마음 씀씀이 때문에 깨어졌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두 노 연인의 사랑을 정말 애타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연인들의 헤어짐은 살인사건이 개입되어 있다. 다만 피해 여성들이 너무 나이가 많다는 점에서 사고사로 판정이 나지만 말이다.

연쇄살인범 필립 스마이스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노신사다. 그가 실버타운에 등장하면 홀로 사는 노부인들의 열정이 불탄다. 그의 사랑을 갈구하고, 노골적인 시선을 던진다. 이런 행동은 그의 숨겨진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지만 그만큼 매력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쇄 살인에 그 누구도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머니 에스더의 죽음을 이상하게 생각한 아들 앨빈 퍼거슨이 우리의 멋진 노부인 탐정단에게 이 사건을 의뢰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고 하면서 말이다. 물론 95세의 시어머니가 죽은 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아내의 반대를 뿌리치고 말이다. 

사건 의뢰를 받고 용의자를 조사해야 하는데 그가 돌아다니며 머무는 실버타운이 보통 비싼 곳이 아니다. 그녀가 머무는 실버타운처럼 정이 넘치는 곳은 아니지만 그 화려함은 노부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제 필립 스마이스가 머물 예정인 윌밍턴 하우스로 잠입해야 한다. 의뢰자의 허락만으로 부족한 것이 이런 곳의 특징이다. 가십을 무기로 조용히 머물면서 용의자를 조사하겠다는 조건으로 그녀들의 입주가 허락된다. 이 멋진 곳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그녀 친구들의 바람은 동생 애비의 차지가 된다. 

이번 작품은 전작 같은 할머니들의 활약이 조금 부족하다. 잠입한 곳 특성상 그녀들이 직접 현장에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들의 외곽 지원과 이어지는 변태 사건과 여기저기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이 소소한 재미와 즐거움을 준다. 거기에 애비는 필립 스마이스와 진짜 사랑에 빠진다. 오랫동안 억눌러져 있던 감정이 치명적 매력을 가진 그의 등장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틈이 생긴다. 하지만 애비는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위험한 인물 탓에 글래디 골드는 불안함이 가중된다.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이유가 또 생긴 것이다.

노년의 로맨스가 이번에도 펼쳐진다. 이 사랑은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그런데 이 살인으로 살인자가 얻게 되는 경제적 이익이 없다. 유산을 얻는 것도 아니고, 어떤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현실에서 그를 의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의 할머니 탐정단은 보통의 탐정들이 아니다. 그녀들의 다양한 경험과 직관은 알게 모르게 사건을 해결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소설을 재미있게 만든다. 그리고 언제 어떤 일이 생겨도 이상할 것이 없는 노년의 불안함과 그들의 숨겨진 열정들이 잘 버물려져서 긴장감을 유지시킨다. 특히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두려움과 외로움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바로 이런 감정과 심리들이 살인자에게 이용되는 것이다. 유쾌하고 즐거운 이야기 진행 속에서 알싸한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리즈를 읽으면서 너무 짧은 시간에 많은 연쇄살인이 벌어진다고 느낀다. 아마 그녀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설정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개성 강한 노부인들의 활약과 세밀한 심리 묘사는 드러난 범인을 쫓는 그 이상의 재미를 준다. 사실에 점점 접근하고, 그 속에 드러난 위협이 현실로 드러날 때 멋진 액션은 없지만 그녀들은 다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이 또한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이번엔 변태의 정체가 밝혀지고, 이 사건이 이상하게 풀리면서 머릿속에서 즐겁고 재미난 상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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