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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평점 :
폴 오스터의 마지막 소설이다.
그의 1주기에 맞춰 출간되었다고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동안 읽었던 작가의 소설 몇 편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가장 먼저 읽었던 <뉴욕 3부작>은 전철에서 읽기 시작했었다.
내용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뭔가에 홀린 듯 계속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후 그의 소설들을 한 권씩 사서 모으고, 읽었는데 어느 순간 손에서 내려 놓았다.
그의 소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다른 소설가들에게 더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소설을 사서 쌓아두거나 목록은 계속 업데이트했다.
이 마지막 작품을 읽으면서 쌓아둔 책 한두 권을 끄집어 내었다.
나이가 들고, 몸이 늙어간다는 것은 쉽게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날의 날렵함과 강한 체력, 긴 집중력 등은 어느 순간 과거의 영광스러운 기억일 뿐이다.
이 소설의 앞부분은 아내 사후 홀로 늙은 바움가트너의 무력한 하루를 다룬다.
누이에게 전화하는 것을 깜박하고, 계량기 검침원을 지하로 안내하다 다리를 다친다.
검침원의 친절한 모습,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신과 아내의 과거와 과거의 기록 등으로 흘러간다.
앞부분의 무력함은 청춘의 활력과 상실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아내의 어린 시절 이야기, 사랑과 상실, 그녀의 글쓰기 등이 먼저 나온다.
그녀의 첫 이야기도 그녀가 쓴 글을 통해 알려지는데 상당히 매력적이다.
한 소녀가 남자들을 이기면서 얻게 된 성공과 그 후의 실패 등이 재밌게 나온다.
10년 아내를 사고로 잃은 노교수 바움가트너.
아내를 잃은 상실의 고통은 환지통을 앓는 듯하다.
평생 홀로 살 것 같았는데 주변 여자들을 쉼 없이 바꾸었다.
그러다 한 여성을 사랑해 결혼까지 생각하는데 그녀가 관계의 진전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들을 파편적으로 보여주고, 기억은 더 먼 과거로 흘러간다.
그의 부모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 그때와는 다른 감상과 이해들.
아버지가 그에게 전달하지 못한 편지, 아버지가 바라던 삶.
자신이 잘못 이해하고 있던 어머니의 삶과 깊고 진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
나이가 들어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할머니들의 말이 떠오른다.
아내가 신생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일을 하면서 쓴 시와 글들.
바움가트너는 아내의 시를 선별해 한 권의 시집으로 만들었다.
교수인 자신도 몇 권의 책을 아내의 출판사에서 출간했다.
마지막 작품도 준비 중이고, 이 책에 대한 부분은 마지막에 나온다.
아내에 대한 추억과 기억들은 젊은 날의 진한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아내의 첫 시집은 느리지만 꾸준한 판매고를 올린다.
마지막 장으로 넘어가면서 아내에 대해 논문을 쓰겠다는 학생아 나타난다.
자신이 알던 교수의 추천, 그 학생의 열정이 바움가트너를 움직인다.
첫 장면 이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이때 알 수 있다.
표시되지 않았던 시간의 흐름은 노년에 얼마나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지를 알려준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초반에 약간 흐름을 잃었다.
이 흐름을 되찾은 것은 아내의 글이었고, 현실의 무거움은 무겁게 다가왔다.
그의 회상과 쓴 글이 나오면서 움츠렸던 생각과 마음의 문이 열렸다.
아내 안나는 첫사랑을 군대 훈련 중 허망한 사고로 잃고 하루 동안 오열했다.
이후 어떤 삶을 살다 바움가트너를 만났는지 알려주지 않지만 젊음의 회복은 빠르다.
하지만 이 상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님은 남겨진 글로 확인 가능하다.
긴 세월을 살아오면서 만나고 맺은 수많은 관계들.
아내 잃은 상실과 살면서 맺은 관계들 속에 떠오른 기억의 편린들.
이 기억들은 나의 기억 속 단편들과 이어지고, 나의 부족함과 오만함을 떠올렸다.
나이가 들면서 몸은 말라가지만 기억의 가지들은 점점 더 풍성해진다.
바움가트너의 마지막 모험이란 단어가 진한 울림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