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먼로의 죽음
닉 케이브 지음, 임정재 옮김 / 시아출판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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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빠르게 읽히지만 난감한 소설이다. 그렇게 도덕적인 인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버니의 현실과 환상은 불편함을 준다. 섹스중독자에 알코올까지 쉼 없이 마시는 그를 보면서 흔히 왜 그가 그렇게까지 전락한 것인가를 묻기보다 그의 행적을 따라간다. 시간 순으로 흘러가는 도중에 환상과 과거가 교차하는 구성이다. 섹스중독자의 상상력이란 그런 쪽으로만 이어지는 것일까? 이런 의문도 던져본다. 하지만 그의 행동 속엔 현대인의 삶이 들어있다.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렇지.

버니 먼로는 아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고, 빨리 와 달라는 요청 전화를 받는 순간에도 창녀와 함께 있다. 최악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주변을 둘러보면 적지 않은 수의 남편들이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이런 행동을 한다.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이다. 누구나 처음엔 이런 증상에 겁을 먹거나 죄책감을 느끼게 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둔감해진다. 우리가 흔히 자신의 배우자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웃는다는 말을 하는 것과 닮은 점이 있다. 섹스중독자 남편이라면 아마도 더 많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남편을 나쁜 놈이라고 욕하는 것은 쉽다.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아는 것은 어렵다. 그런데 작가는 왜 이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는다. 흔히 좋은 소설이 왜? 라는 의문을 파고드는데 이 소설은 그것을 많은 부분 생략했다. 그럼에도 많은 호평을 받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아마 소설 곳곳에 나오는 현대인의 삶의 단면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극한 우울증과 공포에 굴복하여 자살한 버니의 아내나 버니가 한 판 하려고 방문한 집 속의 여자들이 현대 여성의 삶이 잘 보여주지 않는 어두운 면을 드러낸다. 외로움에, 따뜻한 손길에, 분노에, 추억에 빠져 있고, 그들은 버니의 방문판매 속에서 나름대로의 반응을 보여준다. 

모두 세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봉꾼, 세일즈맨, 데드맨이다. 기본적으로 그는 난봉꾼에 세일즈맨이다. 아내의 자살 후 아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판매 공부를 시킨다고 핑계를 되지만 사실 맡길 곳이 없다. 홀로 방치하지는 못하고 자신의 아버지가 한 것처럼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화장품 방문판매를 한다. 그가 영업을 하거나 섹스를 하는 동안에 아들은 차안에서 백과사전을 읽거나 환상에 빠진다. 가끔 죽은 엄마를 만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아들이 아빠를 무척 사랑한다. 아이에겐 미워할 누구보다 좋아할 누군가가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생활이 아들 버니 주니어에게 늘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엄마가 자살한 후 아빠가 필요했다. 다른 누구의 도움이 아니라 아빠의 존재가 말이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아버지들이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아버지들이다. 아직 미혼인 나에게 그들의 사랑은 놀랍다. 가끔 의무감에 휩싸여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 밑바닥엔 끝없는 애정이 있다. 자식의 팔다리가 부러졌을 때 자신이 아팠으면 한다는 말에선 진심이 가득 묻어나고, 아이를 돌보기 위해 달려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아빠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윤리나 도덕에 의해 이런 역할은 연기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예 이것조차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버니는 이 중에서도 후자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급속하게 무너진다. 돌아갈 곳을 잃은 그가 아들과 함께 떠돌아다니는 과정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와 환상은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킨다. 술과 섹스와 환상이 현실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이 장면들의 묘사 노골적이고 직접적이고 집착적이다. 

버니의 아버지, 버니, 버니의 아들 버니 주니어 이 삼 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순간 이 가족의 과거, 현재, 미래가 충돌하고 얼마나 닮았는지 알게 된다. 버니의 섹스중독이 아버지의 그것과 닮아 있고, 과거 속에서 이런 단서를 발견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충분한 설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청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고 강한 여운을 남기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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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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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사카 고타로의 작품은 대부분 빠르게 재미있게 읽힌다. 가끔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든 경우도 있다. 이번 작품은 후자의 경우다. 사실 앞부분을 읽으면서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부분을 보면서 혼란스러웠다. 엑소시스트가 나오고, 서유기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이 둘의 접점을 찾기 위해 머리는 빠르게 움직였다. 당장 찾아질 리가 없다. 그런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빠지면 후반부에 왜 이런 구성이 생겼고, 서유기가 등장하게 되었는지 알게 된다.

내 이야기와 원숭이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자제품을 파는 엔도 지로다. 부업으로 엑소시스트를 한다. 그가 이런 부업을 하게 된 이유는 이탈리아 유학을 갔을 때 친구의 아버지이자 신부이자 엑소시스트를 따라다니며 경험을 쌓았고, 돌아와서는 이런 경험이 알려지면서 의뢰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어릴 때 짝사랑하던 옆집 헨미 누나가 히키코모리 아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바로 여기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엑소시스트와 히키코모리라는 이상한 구도가 성립되는 것이다.

원숭이 이야기는 서유기 속의 손오공이 화자다. 하지만 등장인물은 이가라시 마코토라는 사고원인 조사원이다. 그는 최고의 조사원으로 꼽히는데 그것은 감정의 개입을 배제한 상태에서 냉철하게 인과관계를 쫓아가기 때문이다. 그에게 내려진 임무는 전산조작의 실수로 생긴 300억 엔의 오발주 사고 원인을 조사하라는 것이다. 그의 조사결과에 따라 프로그램 제작회사와 증권회사의 희비가 교차할 수 있다. 조사를 시작하는데 면담 대상들이 서유기 속 등장인물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전반부의 혼란 대부분이 이런 환상과 손오공의 개입에서 비롯한다.

지로는 타인의 고통이나 슬픔을 느끼면 SOS 신호를 받은 것처럼 달려가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견디기 힘든 사람이다. 이런 마음 때문에 엑소시스트 의뢰가 왔을 때 달려간 것이다. 첫사랑 헨미 누나가 히키코모리 아들 마사토 문제를 상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것에 대해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음 약속을 잡은 것이다. 마사토가 현재처럼 변하게 된 시점을 찾아가던 중 한밤중에 노래하는 특이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 만남은 과거의 사건과 마사토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정보들이 마사토의 히키코모리 문제를 단숨에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코토의 조사는 사고가 발생한 팀으로 먼저 움직인다. 그곳에서 만난 까까머리 과장은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조그마한 대답을 제공하지만 그 원인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않는다. 이제 조사는 오발주 사건을 일으킨 다나카 도루로 옮겨간다. 그가 다나카 도루를 만나로 가는 도중에 생긴 조그마한 에피소드와 장소는 내 이야기와의 접점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힘든다. 그리고 다나카 도루와의 면담은 또 다른 원인에 대해 단서를 던져준다. 그 단서가 다시 그 원인에 대한 의문을 던지지만 말이다.

현실의 내 이야기와 환상의 손오공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바뀌면서 그들은 만난다. 이 만남은 앞에 나온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시에 한 번 더 비틀고 더 깊숙이 파고들고 풍성하게 만든다. 악마, 폭력, 무의식, 죄의식, 정의 등의 무거운 개념들이 그 속에 뿌리를 내리고 다양한 사고와 의미를 탐색하게 만든다. 지로의 과거 엑소시스트 경험은 악마에 대한 서양의 선악 개념을 살짝 비틀고, 현실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 오발주 사건은 소설 속 모든 인과관계의 종착점이자 또 다른 의미를 던져준다. 이야기의 주술적 힘이 가능한가? 하고 말이다. 

빠르게 읽고, 혼란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 이 순간 잘 짜인 구성과 작가가 곳곳에 던져놓은 이야기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별개의 것처럼 흘러가다 하나로 이어지고, 인과관계를 치밀하면서도 교묘하게 연결하여 다시금 소설 속으로 생각을 던지게 만들고, 끝없이 상상력을 펼치게 한다. 그리고 손오공 분신 이야기는 대단히 흥미롭고 놀랍다. 서유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원작에 대한 오마주가 엿보이며 그 의식의 끝자락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작가가 가장 쓰고 싶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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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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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하면 뭔가 떠오르는 사건이 있나? 일제 치하에서 벌어진 사건 중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연도는 분명히 아니다. 외우기를 잘 못하고 싫어하는 이유도 있지만 이 연도에 벌어진 특별한 사건을 역사시간에 혹은 다른 곳에서 중점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없다. 그러니 처음 이 연도를 보았을 때 아무 것도 연상되지 않았다. 그리고 부제로 나온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란 문장은 또 다른 낯설음을 준다. 그래도 역사를 좋아하고 좀 읽었다는 나의 지식이 그 바닥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세계일보 사회부 캡이었던 저자는 2006년 8.15기획특집 기사를 낸다. 후배 기자들과 함께 서울 시내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과 관리 실태를 탐사보도 했다. 유적지들 중 많은 수가 지자체의 관리 소홀과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쓸쓸히 방치되고 있었다. 이 부분에서 나 자신도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리고 기획특집 가운데 1923년 경성을 뒤흔든 사나이 김상옥과 황옥에 대한 이야기를 묻어두기 아까웠다고 한다. 기획시리즈 후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자료를 찾고 수집하여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하길 3년 만에 단행본으로 나왔다. 왜 이런 과정을 쓰냐고? 저자의 노력 덕분에 잊고 있거나 몰랐던 역사의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의 행동에 고마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김상옥과 황옥이란 이름 너무 낯설다. 의열단과 김원봉이 낯익은 것에 비해 더 그렇다. 김상옥은 국사교과서에도 나온다지만 황옥은 그 이름조차 없다고 한다. 역사 속에서도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직 그가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뒤로 하고 잘 몰랐던 1923년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국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던진 두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동지들을 만났다.

이야기는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대담한 행동은 일제 경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 분노를 자아낸다. 누가 이런 대담한 행동을 했을까? 경찰들은 그 범인을 정확하게 추리하지 못한다. 그러다 김상옥이 몰래 잠입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가 범인일까? 그것과 상관없이 그는 잡아야 할 큰 적이다. 여기부터 이야기는 그를 잡기 위해 일제 경찰이 어떤 활동을 했는지, 그가 이 체포를 피하기 위해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와 그가 다시 경성으로 돌아온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김상옥이 어떻게 자라고 독립운동에 매진하고 그가 어떤 존재인지 간략하게 설명한다. 이 과정을 지나면 의열단 단원으로 그가 경성으로 온 이유를 설명하고, 그의 잠입이 들통한 후의 도피활동을 다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그가 보여주는 대담하고 멋진 활약은 한편의 액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쫓는 자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그의 활약이 개인만의 것이 아쫓기는 자의 긴장감 속에 하나씩 드러나는 친일파와 항일파의 존재는 많은니라 조선의 독립을 바라던 수많은 인민의 것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멋진 장면들로 가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김상옥의 임무 실패와 함께 그해에 있었던 또 하나의 대담한 작전이 있다. 의열단의 폭탄 투척 사건이다. 이 사건은 결론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저자는 실패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 속에서 활약한 황옥에 중점을 둔다. 그는 일제 고등계 형사다. 이 직위는 친일파 중에서도 악질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속엔 숨겨진 사실이 있다. 경찰 속에서 그의 존재는 제5열이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친일 경찰 역할을 하지만 독립운동에 대한 열망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항일운동가가 많은 도움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3.1 만세 운동으로 놀란 일제가 외형적 압박 정책을 바꿨지만 내부적으로 더 고도의 정치 술책을 펼치고 경찰 숫자를 더 늘렸다. 이 늘어난 경찰들은 더 많은 밀고자와 친일파를 거느리고 치안유지에 힘쓴다. 이런 상황에서 폭탄 투척으로 일제 요인들을 암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충분한 자금도 없는 의열단임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저자는 황옥과 김시현을 중심에 두고, 어떻게 자금을 모으고, 고성능 폭탄을 만들고,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주었는지 알려주고, 어떤 기지를 발휘하여 폭탄을 가지고 들어왔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 또한 감동적이고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아마도 이 두 사건이 실패로 끝났기에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개와 의지와 노력은 그 어떤 찬사를 보내도 부족하다. 일제 강점 초창기에 이미 많은 친일파와 밀고자 덕분에 실패한 것을 생각하면 그 이후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해방 후 김원봉이나 김시현 등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이 느낀 절망감과 허탈함과 분노는 과거완료형이 아니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그냥 덮어두려는 세력이 있는 한 현재진행형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나 인물의 형상에 아주 약간 아쉬움이 있지만 잊고 있던 역사와 인물들을 되살린 것으로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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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 떠나지 않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이세진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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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큰 기대 없이 읽었다가 예상외의 재미를 누렸던 첫 작품의 기억이 희미해진 지금 그의 두 번째 소설을 만났다. 전작 <살았더라면>처럼 이번도 조건문을 내건 제목이다. 이 조건문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선택의 순간을 말한다. 이것은 옛날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하나처럼 선택받지 못한 또 다른 길에 대한 갈망이자 현실에 대한 불만족이다.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 다른 선택을 하면 어땠을까? 이런 의문들이 쌓여 밖으로 표출될 때 우리 과거 속으로 돌아가게 된다. 다니엘과 장, 이 두 남자의 이야기는 바로 거기서 시작한다.

제롬. 그는 이슬람 테러리스트의 자살테러로 죽었다. 시체조차 온전하게 찾지 못할 정도의 처참한 죽음이다. 이 사랑스런 아들의 죽음은 한 가족을 절망과 끝없는 충격에 빠트린다. 특히 아버지 다니엘은 이 무저갱 같은 절망과 상실을 테러리스트에 대한 분노로 바꾼다. 이제 그의 삶은 테러를 지시했다고 추정되는 이슬람 종교지도자 셰이크 살인에 목표를 둔다. 살인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도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이것을 실행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이 살인을 위한 준비과정과 심리묘사와 과거가 이야기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다.

거리의 부랑자 장은 갑자기 납치된다. 누가 그를 납치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단지 10년 전 그가 죽인 이슬람 종교지도자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할 뿐이다. 이 10년의 세월은 알코올 중독과 절망과 추락의 시간이었다. 죽음을 늘 생각하였지만 결코 실천할 자신이 없었던 그에게 이슬람 과격분자 같은 사람들의 납치는 조그마한 편안함을 줄 정도다. 중동에서 있었던 처형장면을 생각하면서 자신도 그 같은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까 추측할 뿐이다. 그의 납치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 축이 형성된다.

다니엘과 장, 이 두 남자의 이야기가 교대로 펼쳐진다.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찬 상태에서 죽이고자 하는 대상에게 접근하려는 과정과 함께 펼쳐지는 다니엘의 과거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그냥 보통의 건달이었던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만난 후 어떻게 자신을 절제하고 변하고 성공하게 되었는지 추억과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 성공은 그에겐 성취감을, 가족에rps 경제적 풍요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이 성공에 대한 욕망은 어느 순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를 잠시 잊게 만든다. 작가는 그의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현재로 오면서 왜 그렇게 복수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사실 이야기의 다른 한 축을 구성하고 있는 장은 납치되어 비디오로 녹화된 후 주체적인 존재보다 대상으로 더 많이 다루어진다. 그의 현재 마음 상태를 다루고 있지만 이슬람 과격분자들에게 납치된 사실이 방송된 후 미디어와 관료들의 대응과 반응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미디어 방송의 대상이 되어 그의 존재가 여론 속에서 개인이 아닌 하나의 상징처럼 다루어진다. 이것은 테러리스트의 질문처럼 그의 가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와 맞닿아 있다. 그러면서 장의 이야기는 점점 앵커 에릭 중심으로 옮겨간다. 이 중심 이동은 단순하게 이야기 거리가 없어 생긴 것이 아니라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 의한 것이다.

‘떠나지 않았더라면’이란 가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모든 이야기는 그가 떠났기 때문에 생겼다. 다니엘은 제롬의 복수를 위해 떠났다고 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가 떠남으로 남아있던 아내와 또 다른 아들은 버림받고 큰 상처를 입는다. 만약 그가 이들마저 잃었다면 그의 선택에 대해 박수를 치거나 최소한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는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에 먹혀 가족을 버린 것이다. 그것이 자신이 생각할 때 가장 올바른 행동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셰이크가 중동에서 일어났고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미군 등의 폭격에 의한 죽음을 말하는 순간 그 명분이 사라진다. 

잘 짜인 구성과 빠른 전개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면서 빠르게 읽힌다. 두 화자의 정체는 얼마 읽지 않아 쉽게 알게 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각각 다른 주제와 무게로 재미를 준다. 상당히 무거운 주제임에도 긴장감은 이어지고, 읽는 나 자신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읽게 한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들이 과도한 설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주제의식과 긴 여운을 남겨놓은 장면으로 사그라진다. 그리고 다시금 나에게 묻는다.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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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엄마 찬양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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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지 2주가 넘었다.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었지만 몇 가지 구성과 인상만 간단히 머릿속을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점점 쓰는 것을 미뤄두고 있었다. 어떤 식으로 느낌을 적어나갈 것인가 몇 번을 생각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기억과 스쳐지나간 감상에 집중해보자고 생각했다. 조금은 다른 사람들의 평이나 책 소개에 기대어서 말이다.

모두 열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 그림이 들어간 장은 모두 여섯이다. 여섯 그림은 이야기와 별개의 것처럼 보이지만 등장인물들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이 소설 대단히 에로틱하고 페티시하다. 어느 장면은 너무 노골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순간도 있다. 멋진 엉덩이에 집착하는 리고베르토 씨의 행동 속엔 페티시즘이 보인다. 그의 이런 집착은 첫 그림 설명 속에서 잘 드러난다. 뭐 덕분에 그가 다른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는 좋은 일이 있지만 말이다.

재혼한 루크레시아에게 하나의 근심이 있다. 그것은 리고베르토의 아들 알폰소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폰소가 편지 한 장을 보냈다. 생일 축하 편지다. 편지에 감동한 그녀가 늦은 밤 그의 방을 찾아간다. 이 둘의 만남이 보통이라면 화기애애하고 기쁨으로 충만해야 하지만 알폰소의 행동 하나가 그녀로 하여금 의문을 잠기게 한다. 이 행동들은 새엄마를 찬양하는 것인데 뒤로 가면서 노골적인 유혹으로 바뀐다. 이 속에 숨겨진 욕망과 뒤틀린 감정은 이 소설이 단순한 포르노그래피가 아님을 알려준다.

이번 소설은 단숨에 읽었지만 쉽게 몰입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많지 않은 분량과 에로틱한 장면이 단숨에 읽게 만들었다면 은유와 풍자가 뒤섞인 장면들은 그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며 몰입을 방해했다. 각자의 욕망에 충실한 세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입에 발린 거짓으로 사람을 유혹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변명으로 욕망을 정당화시키는 모습은 역설적이지만 지독하게 인간적이다. 내적 갈등이 욕망에 손을 들고,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은 도덕의 탈을 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겉으로 욕할지 모르지만 인류의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온 일이다. 

사악한 아이 알폰소의 나이가 몇 인지 지금도 궁금하다. 아이로 불리지만 그의 심리와 행동은 결코 어리지 않다. 마지막 장에서 펼쳐지는 은밀한 요혹은 다음을 궁금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정보들이 다음 이야기 <리고베르토 씨의 비밀노트>에 나올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소설 속에서 가장 욕망에 솔직한 리고베르토 씨의 규칙적이고 강박적인 행동들은 살짝 남의 비밀을 엿본 듯한 재미를 준다. 약간 거부감이 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요사의 다른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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