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 비밀의 공식
알렉스 로비라.프란세스크 미라예스 지음, 박지영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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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현대 과학에서 아인슈타인을 제외하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 유명한 공식 E=mc²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비록 그 공식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하여도 말이다. 이 공식이 현대 물리학을 비롯하여 다른 곳에 끼친 영향력은 원자폭탄을 제외하고도 수없이 많다. 특히 상대성이론은 SF소설과 만나 새로운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무수히 많은 곳에 영향력을 미친 그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공식을 남겼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이런 의문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나는 과학전문 라디오 구성작가다. 아내와 이혼하고 외롭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그에게 PD가 구멍난 초대 손님을 메우라는 주문을 한다. 갑작스런 방송출연과 더불어 <상대적 아인슈타인>의 저자와 논쟁을 펼친다. 이 출연은 한 장의 편지로 이어지고, 아인슈타인이 한동안 살았던 마을 카다케스로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이 여행은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그것은 바로 아인슈타인 죽으면서 남겼다는 비밀의 공식 E=ac²과 관계가 있다. 

카다케스에서 온 편지 주소를 찾아가니 왠 일본인 요시무라가 있다. 그는 나 외에도 세 명의 손님을 더 맞이하고 있다. 그들 모두는 아인슈타인과 관계가 있다. 요시무라도 마찬가지다. 그가 지금 사는 곳은 아인슈타인이 살았던 곳이고, 현재는 아인슈타인의 전기를 집필하고 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새로운 문서가 발견되었다고 말한다. 그곳에서 나는 몇 가지 정보와 소식을 가지고 돌아온다. 하지만 얼마 후 요시무라의 죽음이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진다. 그가 놓아둔 수첩이 괜히 살인사건과 연루되는 자신을 상상하게 만든다. 그러던 중에 요시무라가 집필하고 있던 전기에 대한 마무리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그것도 고액의 선금과 함께 말이다. 이제 그는 비워져 있는 전기를 채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처음엔 단지 비워져 있던 전기의 빈칸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그대로 놓아주지 않는다. 처음 찾아간 곳에서 카다케스에서 만났던 사라를 다시 만난다. 이것이 우연일까? 그녀는 아인슈타인의 첫 번째 아내이자 학문적으로 많은 도움을 준 밀레바를 연구하고 있다. 이 만남은 우연을 가장한 정교한 작업이고, 낯선 곳에서의 만남 후에 또 다른 죽음이 생긴다. 화자가 생각한 편안하고 쉬운 조사 여행은 사라지고 이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거기에 나를 들뜨게 만드는 사라의 존재는 미스터리와 함께 새로운 재미를 준다. 

비밀의 공식을 좇는 것과 사라와의 은근한 로맨스는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소설은 아인슈타인의 첫 아내 밀레바와 그들의 첫째 딸 리제를의 존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가정에서 출발하였지만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작가들은 리제를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그 존재마저도 겨우 알려진 그녀가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발견한 비밀의 공식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관심을 받게 된다. 하지만 현재 그녀는 죽었다. 그녀는 죽었지만 그녀의 손녀는 생존해있다. 이제 손녀를 찾기 위한 긴 여행이 시작한다. 그리고 그 도중에 다시 몇몇 죽음이 발생한다.

전체적으로 무난하고 빠르게 읽힌다. 비밀의 공식 존재를 둘러싼 추격전과 살인들은 사실 상대적으로 약하다. 작가가 자기계발소설이라고 한 것도 스릴러적인 요소가 조금 부족하고, 나의 성장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알려주는 과학 지식은 이 소설을 읽는 또 다른 재미다. 심장을 새로운 시각에서 다가간 부분은 눈길을 끈다. 가정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것도 바로 이런 과학 지식이다. 비록 비밀의 공식이 지닌 의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고 다른 팩션처럼 아쉬움은 준다고 하여도 말이다. 하지만 그 공식이 지닌 의미를 생각하면 그 힘에 절대적으로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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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어제일리어의 사체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8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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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전작에 나온 고마지 형사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새롭다. 이 부분은 살짝 아쉬우면서도 현실적이다. 이 점은 2권부터 읽는다 하여도 전혀 지장이 없게 만드는 장점이 된다. 다만 같은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하다 보니 가끔 낯익은 이름들이 보인다. 이때는 왠지 모르게 반갑다. 그리고 헌책방으로 번역을 했는데 사실은 고서점으로 원제목이 적혀 있다. 이 제목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아마도 전작에 나온 헌책방 기토당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자와 마코토는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바다로 온다. 그것은 바다를 향해 ‘나쁜 놈아!’하고 외치는 것이다. 이 소박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바다를 향해 크게 외친다. 그런데 바다가 그녀의 이런 마음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모양이다. 그녀의 외침에 대한 답으로 한 사내의 시체를 밀어내었기 때문이다. 실직하고, 원형탈모증이 생기고, 이상한 종교에 끌려가고, 자던 호텔이 불타는 불행이 끝까지 그녀에게 붙어 다니는 모양이다. 사체의 제1발견자로 그녀는 형사의 조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녀를 둘러싸고 혹은 직접 마주하는 사건들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제1발견자가 용의자인 것은 당연하다. 고마지 형사반장은 이쓰키하라 형사에게 좀더 많은 조사를 위해 그녀를 근처 호텔에 숙박하게 만든다. 이 호텔에서의 숙박은 또 다른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한끼 식사를 위해 추천을 받고 히가시긴자 거리에서 맛있는 식사를 한 후 헌책방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 헌책방 조금 특이하다. 로맨스 소설만 전문적으로 판다. 노부인 베니코는 엄청난 로맨스 소설 마니아다. 그녀와 마코토의 대화는 마니아나 최소한 전문지식이 있어야만 가능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이 대화 끝에 노부인은 그녀에게 자신이 잠시 병원 검사를 받을 동안 헌책방을 부탁한다. 그것도 적지 않은 급여를 제공하면서 말이다. 노부인의 페이스에 말리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그녀는 그 일을 받아들인다. 

이번 시리즈는 헌책방 어제일리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코토는 항상 시체들을 마주하고, 히자키 마을의 대지주였던 마에다 가문이 사건의 중심에 놓인다. 마코토가 발견한 시체의 정체가 12년 전 가출 혹은 사라진 마에다 히데하루와 닮았기 때문이다. 검시결과 미량의 수면제가 검출되었고, 타살과 자살의 가능성이 모두 있다. 그런데 히데하루로 밝혀질 경우 마에다 가문의 재산 상속에 관한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그것은 마에다 가문의 이권과 부와 질투 등이 뒤섞인 결과다.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시체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그는 과연 타살일까?, 자살일까? 이런 의문을 던지면서 평화로워 보이는 하자키 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사건을 준비한다.

이번 시리즈도 전작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구성에서 일단 비슷하고, 마지막 반전이 다시 펼쳐지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전작과 달리 용의자가 많이 나오지 않는다. 시체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공방과 의문, 하자키 마을을 은연중에 지배하고 있는 마에다 마치코의 존재 등은 그 마을이 주는 소소한 재미와 유머를 넘어선다. 그리고 참 재수 없는 마코토의 일들은 아마추어 탐정 역을 잠시 맡는 치아키의 등장과 더불어 유머와 즐거움을 준다. 치아키의 활약은 갑작스러운 점이 있지만 뒤에 이어질 반전들과 숨겨진 사실들을 생각하면 일상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볍고 재미있게 읽힌다. 일상의 삶이 보이지만 사건은 결코 일상적이지 않다. 사실 제대로 읽은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로맨스 소설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부분에선 낯설기만 했지만 흥미로웠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형성되는 로맨스나 곳곳에서 돌출하는 유머는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리고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는 순간 이야기는 더 깊은 미궁으로 빠진다. 여기서부터 다시 원점에서 사건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이야기에 빠져 추리하는 재미를 놓쳤지만 꼼꼼한 책읽기가 없으면 범인을 추리하기가 쉽지 않다. 불운이 너무 많은 마코토 양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살짝 입가에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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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정원
다치바나 다카시.사토 마사루 지음, 박연정 옮김 / 예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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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제는 너무나도 낯익은 다치바나 다카시와 외교관 출신으로 징역을 산 후 집필활동과 왕성한 독서와 집필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는 사토 마사루의 대담집이다. 이 둘은 엄청난 독서광이자 소장자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소장하고 있는 책이 7~8만 권 정도고, 사토 마사루도 만 5천 권 정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의 만남은 이런 책 소장 이야기로 시작한다. 빌딩 하나를 책으로 채우고도 공간이 부족할 정도라니 대단하다. 이런 설명을 들으면 기가 죽기도 하지만 가슴 한 켠에선 부러움과 더불어 나도 그렇게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생긴다. 현실적으로 이런 공간과 책읽기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책 소장 이야기를 넘어 둘은 ‘21세기를 살아가기 위한 교양서 100권’에 대해 말한다. 100권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천 권이 더 쉽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만약 나에게 천 권을 소개해달라고 하면 무리지만 10권 만 뽑으라고 하면 아주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너무나도 좋은 책을 자주 만나기에 적게 뽑는 것이 오히려 더 힘들다. 열 배 이상의 차이가 나지만 여기서 조그마한 공감대를 형성한 후 두 독서광의 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서가 인류의 뇌를 진화시켰다는 장에서 진정한 교양은 해독제가 된다는 장으로 마무리한다. 그 사이에 지의 전체상이나 20세기에 대한 토론을 거쳐 가짜에 속지 않는 법을 끼워 넣어 그들의 방대한 지식의 세계로 나를 빠트린다. 그 깊이와 폭은 그들이 선택한 목록을 거치면서 더 분명해진다. 역사, 종교, 철학, 고전읽기, 신학, 현대정치, 사이비 과학, 마르크스주의 등을 단순히 훑고 지나가는 수준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분석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이 지식들이 목록과 함께 나올 때 나의 낮은 이해와 지식이 조금 부끄러웠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들의 지식을 모두 습득하거나 이해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보는 세계와 내가 보는 세계가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음을 예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사람의 대담은 그 차이를 넘어 나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그대로 드러나게 만들었다. 특히 그들이 서재 책장에서 꺼낸 100권 중 읽은 책이 많지 않다는 것은 두 나라의 문화나 역사적 차이를 염두에 두더라도 나의 책읽기가 편중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이 대담과 목록을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와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이 나올 때는 낯설음과 아쉬움을 느꼈다. 무신론자인 다치바나와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사토의 신학 대담은 신의 수축이란 낯선 개념을 알게 하는 즐거움은 있지만 끝장 토론이 아닌 단순한 지식의 나열에 멈춰 이 대담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런 한계는 정치나 철학 등으로 옮겨 가서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지식을 맛볼 수는 있지만 그 깊은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그들이 내놓은 목록과 대담 속에서 같이 다루어진 책을 읽는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뽑은 목록을 중심으로 이 책의 대담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독서를 강조한 다치바나와 정보계통 일을 하여 그 부분에 강점이 있는 사토의 지식이 밖으로 드러날 때는 나만의 독서법과 지식을 쌓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지 않았거나 읽었지만 읽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 있는 책 목록을 보면서 너무나도 방대한 책의 세계를 다시 생각한다. 사놓고 읽지 않은 수많은 책들과 읽으면서 알게 된 작가들의 새 번역본들이나 출판물을 생각하면 구입을 멈출 수 없다. 최소한 다치바나가 말한 실전에 도움이 되는 독서기술 중 하나는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구입에 멈추고 읽기가 점점 뒤로 밀리는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의 깊이 있고 체계적인 독서 지식은 부럽기 그지없다. 책읽기에 더 많은 노력과 몰입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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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운 살인자
서미애 지음 / 노블마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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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편들을 다른 곳에 만난 적이 있다. 장편 <인형의 정원>도 읽었다. 이전에는 그녀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지 못했다. 완성도나 재미 면에서 아쉬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열 편의 단편추리소설은 다르다. 각각 다른 분위기와 인물을 등장시켜 몰입하게 만들고, 감성을 자극하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한국 추리소설을 잘 읽지 않는 나에겐 낯설지만 이미 그녀는 대단히 유명하다. 이 단편집으로 그녀를 좀더 주시하게 되었다.

표제작 <반가운 살인자>는 유오성이 주연한 영화로 더 유명하다. 이 영화에 대해 큰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이 단편추리소설이 원작이다. 영화는 원작과 분명 다르게 이야기가 풀렸을 것이다. 살을 더 많이 붙이고, 결말도 약간 바꾸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살인자가 반가울 때는 언제일까?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죽였을 때, 살인자를 쫓는데 그를 만났을 때, 아니면 이 소설처럼 다른 사람 손에 죽기를 원할 때. 이렇게 소설은 의문을 품게 만들고, 아버지와 남편의 권위와 경제력을 상실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간결하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풀어낸다.

<반가운 살인자>와 함께 여운을 강하게 주는 두 작품이 있다. 이 세 작품은 개인적으로 이 단편집에서 가장 마음에 든다. <숟가락 두 개>는 처음엔 손가락 두 개로 잘못 읽기도 했지만 이야기가 점점 풀려나가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전과 13범과 벙어리 여자의 관계와 삶이 현실의 모순을 드러내고,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가슴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에 두 개의 숟가락이 의미하는 바와 형사의 의지와 의욕이 결합하여 보여주는 장면은 또 다른 아픔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경계선>은 한 왕따 학생의 심리와 시선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공격하거나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늘 상상에 멈추고, 학교 킹카 효리의 도움을 받은 후 우연히 본 낯설게 변신한 그녀를 조용히 따라다닌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두 죽음은 순간의 선택이나 실수가 어떤 위치에 우리를 놓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 경계선에 선 두 남녀의 마지막 모습은 새로운 출발을 암시하기도 한다.

<남편을 죽이는 서른 가지 방법>과 <그녀만의 테크닉>은 이전에 읽은 듯하여 크게 새로움을 느끼지 못했고, <냄새 없애는 방법>은 우리가 자신하는 감각이 어느 순간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이 작품은 그녀의 소설이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는지 알려준다. <살인 협주곡>은 서로를 죽이려는 부부의 여행이 주는 긴장감이 왠지 모르게 뒤로 가면서 코믹하게 흘러간다. 블랙유머의 재미는 있지만 그 과정은 조금 아쉽다. <정글에 악마가 산다>는 과다한 욕심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고, 먹고 먹히는 정글의 법칙을 되돌아보게 한다. 

<비밀을 묻다>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구성이 눈길을 끌지만 너무 쉽게 결말이 예상된다. 하지만 그 결말보다 부자 남편의 죽음을 둘러싸고 퍼지는 소문과 질시가 더 흥미롭다. <거울 보는 남자>는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자신이 받았던 핍박을 타인에게 전가하려는 사람과 무책임한 학설을 내놓은 학자의 대립이 간결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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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
쑤퉁 지음, 김재영 옮김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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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가 중국 유일의 여황제였기 때문인지 유명 작가들이 관심을 가진다. 샨사의 <측천무후>가 몇 년 전 번역되었는데 이번엔 쑤퉁이다. 최근 작품인가 하고 연보를 찾아보니 비교적 초기인 1993년 작품이다. 얼마 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들어진 신라 선덕여왕을 생각하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왕이나 여황제는 시선을 끌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물론 이 둘의 왕위 쟁탈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무측천에 대한 여러 가지 평을 생각하면서 쑤퉁은 어떤 점을 부각시켰을까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마 다음에 샨사의 작품을 읽고 남녀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무측천을 보게 되는지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두 가지 시각을 가지고 이야기는 전개된다. 하나는 측천무후가 되기까지 과정과 그 후를 다루고, 다른 하나는 그 사이에 그녀의 자식들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처음엔 재인 무조가 된 배경과 태종의 궁녀로 살다가 그의 죽음 후 어떻게 비구니로 전락했는지를 다룬다. 이후 새로운 황제의 황후와 소의 간의 다툼 속에 일개 소의에서 어떻게 자신의 위치를 다졌는지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비정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데 이것은 그녀가 천후가 되는 지름길이다. 권력을 완전히 잡은 후 여황으로 오른 그녀의 전횡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져 생생하게 살아있다. 하지만 쑤퉁은 그녀의 위대함보다 그녀가 풀어놓은 공포에 더 초점을 맞추었다.

그녀의 비정함과 무서움과 권력욕은 그녀의 아들들에 의해 잘 드러난다. 먼저 나오는 태자 홍은 천후였던 어머니에게 독살된다. 독살된 배경을 귀신이 된 그가 삶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면서 보여준다. 그는 꿈꾸던 당의 미래는 천후가 꿈꾸던 미래에 방해물이다. 자신의 딸마저 목 졸라 죽여 정치적으로 이용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그녀에게 이런 행동은 큰 일이 아니다. 이후 태자 현을 거쳐 예종으로 이야기가 건너가면서 정적이나 신하의 시선이 아닌 아들이자 최대의 적인 당의 황자들 시선으로 풀어낸다. 이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권력 주변에 풀어놓은 공포와 권력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역사적 사실을 따라 흘러가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그녀의 위대함이 아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어떻게 신하를 다스렸고, 그녀가 만들어놓은 상황 속에서 어떻게 그들이 움직였는지 잘 알려준다. 이 모든 중심엔 여황이 되고 무 씨 왕조를 만들고자하는 의지와 욕망이다. 밀고와 부패와 공포와 고문은 그녀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신을 거스르는 존재는 아들마저도 거침없이 제거하는 그녀의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라면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욕망에 충실했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보여준 행동들은 거대한 부패와 비리를 양산했지만 제국의 운영에 큰 부담을 준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그 후 당의 역사를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 천측무후를 말할 때 늘 나오는 남창들이 그녀를 비난하는 하나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늙은 재상이 그녀를 위대한 여황으로 평가하는 부분에선 약간 혼란스럽고 어느 부분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은 뺐다. 욕망에 집중한다. 이 과정을 보면서 한 명의 소녀가 어떻게 위대한 여황으로 변신했는지 알게 된다. 그녀의 위대한 업적을 모르는 사람에겐 그 위대함이 낯설다. 고문과 학살과 밀고 등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여인의 욕망이 어떤 과정을 통해 드러나고 실현되는지 보는 것은 참혹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흥미롭다. 남성 작가가 본 측천무후의 욕망과 여성 작가가 본 욕망이 어떤 차이와 비슷한 점이 있을지 궁금하다. 그녀를 다룬 다른 작품을 읽고 다시 한 번 더 쑤투의 측천무후를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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