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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노스트라다무스를 생각하면 1999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는 지금의 마야력에 의한 2012년 종말론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왔고, 밀레니엄 버그와 엮이면서 공포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런 분위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였다. 영화나 책 등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서 조용히 사라지거나 예언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다른 이론이 등장했다. 이런 기억들은 사실 약간은 이 책의 내용에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선입견은 책을 읽으면서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작가는 세계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자이자 저술가라고 한다.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해석하기보다 사라진 예언 58개에 관심을 둔다. 이런 접근 방법은 이전 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오류들을 건너뛰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예언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거기에 이 예언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과정과 그 속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강한 개성과 흡입력으로 쉴 새 없이 달리게 만든다. 잊혀진 존재가 작가의 필력과 전문 지식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다.
집시 바벨이 사라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존재를 광고하고, 이를 본 두 사람이 이것을 구매하려고 한다. 한 명은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자 에이커 베일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예언으로 돈을 벌려는 미국작가 사비르다. 베일은 공포를 불러오는 눈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에 흰자위가 없다. 이 눈을 본 사람은 공포를 느낀다. 바벨이 그에게 위험을 느끼고 달아난 것도 바로 이런 위협과 공포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금방 잡힌다. 고문을 당하는 중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놀라운 능력으로 자살은 한다. 그에게 잡히기 전 다른 구매자 사비르를 만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경찰과 베일에게 쫓긴다.
사비르가 바벨에게 들은 두 단어를 통해 집시들에게 가고,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 욜라를 만난다. 방송에서 살인 용의자로 나온 덕분에 집시들에게 죽을 위협에 처하지만 욜라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관습에 따라 욜라의 오빠가 되고, 그들 속에서 잠시 머문다. 하지만 그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 칼크의 추적과 베일의 위협과 예언에 대한 욕망 때문에 떠나게 된다. 그의 곁에 욜라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집시 알렉시가 함께 한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본 세 명의 여행자가 구성되고, 그들은 험난하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모험을 한다.
이후 구성은 쫓고 쫓기고, 위협을 받고, 한 발 앞서 예언의 단서를 찾고, 다시 쫓고 쫓기는 과정의 반복이다. 상당히 단순한 구성인데 이 속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강하고 독특한 개성과 활약이다. 사실 이 속에서 숨겨진 예언이 무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악한 베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리전과 추격전이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베일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 이야기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언제 그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피상적으로 혹은 왜곡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던 집시들이 사라진 소설 속 집시들 관습은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매혹적이다. 어느 부분에선 우리의 무당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 잠시 놀라기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아주 많다. 선과 악의 대결, 숨겨진 비밀, 곳곳에서 나오는 유머, 긴장감을 불러오는 스릴러, 호기심을 불러오는 예언 등. 이런 재료를 가지고 잘 섞고 잘 늘어놓았다. 제목에서 받은 느낌이 금방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재미난 소설이다. 끝으로 달려가면서 사람들의 집념과 욕망이 빚어내는 사건들이 더 가속화된다. 신비로운 체험과 예언은 살짝 그 실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만들지만 재미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댄 브라운의 흐름과 포사이스의 쟈칼이 공존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