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 매그놀리아의 살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7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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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이다. 먼저 시리즈의 첫 권이란 점이 시선을 끌었고, 이전에 읽은 작가의 단편집 <의뢰인은 죽었다>에서 큰 재미를 보았기에 주저함이 없었다. 약간 촌티 나는 표지가 과거 만화방을 떠올려주기도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차분하게 다시 들여다보니 예상외로 재미난 부분이 많다. 그리고 단편집을 읽으면서 장편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처음엔 약간 다른 구성과 전개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그 혼란스러움이 정리되고, 시리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일상 미스터리란 말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했다. 그런데 책 목차의 한 제목처럼 용의자가 너무 많다. 앞에 나온 빌라 사람들의 호수와 이름을 오고가면서 이야기에 집중을 했지만 역시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비슷하게 다가온 이름과 상황들이 혼란을 불러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혼란은 뒤로 가면서 사라진다. 반복되고 익숙해지고 점점 많은 정보들이 드러나면서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고 금방 범인을 맞출 정도는 아니다.

빌라 매그놀리아는 모두 열 채다. 아래 위에 각각 다섯 채가 있는 구성이다. 아래층이 1호부터 5호고, 그 중 3호실에서 시체가 발견된다. 이 시체는 태풍이 지나간 후 부동산업자가 집을 소개하기 위해 왔다가 발견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지 알 수 없게 얼굴은 뭉개져 있고, 지문은 지워져 있다. 신원미상의 시체다. 이 때문에 경찰수사는 지지부진하고, 그 수사 과정에서 빌라 사람들의 숨겨진 과거와 악의와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난다. 사람 사는 곳에서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빌라는 좀 심하다. 바로 여기서 혼란과 재미가 생긴다.

작가는 고마지 반장과 히토쓰바시 형사를 내세워 이 빌라 사람들의 숨겨진 사실들을 파헤치고 들춰낸다. 이 둘이 경찰이 할 일을 한다면 빌라 사람들은 아마추어 탐정이 되거나 평범한 이웃 역할을 하거나 의심스러운 과거를 품고 있다. 하나의 사건을 통해 그들은 각자의 감정을 내뱉고,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하나씩 폭로한다. 호의와 악의가 교차하고, 무관심을 가장한 긴장과 좌충우돌하는 존재는 이야기를 정신없게 만든다. 시체의 정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신경전은 의심과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런 와중에 생긴 또 다른 살인사건은 혼란을 가중시킨다. 

고마지 반장이 용의자가 너무 많다, 고 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빌라 사람들 중에 범인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처음에 용의자를 만들고, 하나씩 지워나가는 대신에 거의 마지막까지 용의자를 한 명씩 더 만든다. 점점 더 많은 비밀과 스캔들과 거짓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뒤에 가서 하나로 정리된다. 전형적인 탐정 소설처럼 사건을 설명해준다. 하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 숨겨진 사실들이 많다. 추리로 이것을 채워 넣기엔 나의 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어지는 반전들은 흥미롭고 재미있기는 하지만 반칙이란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 하자키 일상 미스터리 시리즈니 이번 이야기에 나온 사람들 중 몇 명은 다시 나오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다. 개성 강한 주민들과 귀여운 쌍둥이가 있으니 더욱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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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게임
카린 알브테옌 지음, 임소연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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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놀이동산에 버려진다. 장면이 바뀌어 노부인 예르다 페르손이 죽고, 주택관리사 마리안네는 집안을 정리한다. 깔끔한 예르다의 집 냉장고에서 발견된 것은 스웨덴 현대 문학의 거장 악셀 랑네르펠트의 친필 사인 도서다. 거장의 책들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의문을 가진다. 다시 장면은 곧바로 악셀의 아들 얀-에리크의 현재로 넘어간다. 그는 아버지의 작품을 강의하면서 생계를 누리고, 아버지의 후광을 입고 강연장에 온 여자를 유혹한다. 이때부터 소설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북유럽 심리 스릴러란 문구가 있지만 책 후반부까지 스릴러라고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스릴을 느낄만한 장면들이 그다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얀-에리크에서 시작하여 그의 아내 루이세, 아버지 악셀, 어머니 알리세를 그쳐 크리스토페르에 이르게 되면 그들의 현재와 과거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그들이 돌아가며 내뱉는 내밀한 사연들이 낯설음을 넘어 신선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추악한 욕망과 자신들도 모르게 뒤틀린 삶의 흔적들이 전면으로 나오며 강한 흡입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얀-에리크는 강연에서 늘 요제프 슐츠라는 2차 대전 독일군 병사가 아버지 악셀 랑네르펠트의 작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그가 한 행동은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자신도 그 무리가 끼어 사살당한 인물이다. 정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린 그의 행동이 그의 작품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단순히 멋지고 훌륭한 하나의 사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의 대표작 <그림자>와 더불어 이 소설 전체에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그리고 왜 스릴러라고 불리는지도 알게 된다.

이야기는 각 등장인물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현재와 과거를 풀어내는 방식이다. 한때 열렬하게 사랑했던 아내 루이세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지 못하는 얀-에리크, 그와 결혼하면서 촉망받던 작가의 길을 포기한 루이세, 노벨 문학상을 받은 남편을 두었지만 한때는 그와 함께 문학을 발표했던 알리세, 이제 풍에 걸려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정신만 살아있는 악셀. 그리고 첫 장면에서 버려졌지만 다 자란 크리스토페르. 이들은 예르다의 죽음을 통해 이어지고, 마리안네의 전화를 통해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과거 속에서 하나씩 드러나는 추악한 욕망과 거짓과 위선과 죽음은 뒤로 가면서 점점 더 힘을 발휘하고 한순간 폭발한다.

루이세와 알리세의 과거와 현재는 가정이란 틀 속에 갇힌 두 지식인 여성들이 안주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삶의 한 측면을 보여준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삶의 시간을 내주면서 그녀들의 삶은 종속적으로 변하고, 문학적 재능은 잊혀진다. 그 속에 펼쳐지는 가정의 위선과 거짓은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이것은 루이세가 알리세의 현재를 보면서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는 장면에서 더 부각된다. 그리고 악셀 일가의 어두운 과거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들은 바로 이런 위선과 거짓에서 비롯했다. 

사실 처음에 읽으면서 하나의 질문, 에피소드 등을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이것들이 뒤로 가면서 껍질을 깨고 나와 놀랍고 추악한 사실들을 알려준다. 어릴 때 자동차 사고로 죽은 줄 알았던 얀-에리크의 동생 안니카의 자살에 대한 진실은 이 모든 위선과 거짓과 욕망과 탐욕이 뒤섞인 결과물이다. 어떻게 수용소 생활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이나 그림자가 지닌 의미 등은 다시 한 번 더 내용을 되짚을 때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감탄하게 만든다. 그 속에 펼쳐지는 욕망에 대한 깊은 심리 묘사는 아! 하고 탄식을 내뱉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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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마리오 리딩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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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트라다무스를 생각하면 1999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당시는 지금의 마야력에 의한 2012년 종말론보다 훨씬 강하게 다가왔고, 밀레니엄 버그와 엮이면서 공포 상황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일상에서 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에 가까워지면서 더 이런 분위기를 상업적으로 활용하였다. 영화나 책 등으로 쏟아져 나온 것도 상당히 많았는데 그 시기가 지나면서 조용히 사라지거나 예언의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등의 다른 이론이 등장했다. 이런 기억들은 사실 약간은 이 책의 내용에 선입견을 가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선입견은 책을 읽으면서 아주 빠르게 사라졌다.

작가는 세계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연구자이자 저술가라고 한다. 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해석하기보다 사라진 예언 58개에 관심을 둔다. 이런 접근 방법은 이전 세기에 벌어진 수많은 오류들을 건너뛰게 만드는 동시에 새로운 예언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온다. 거기에 이 예언의 존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쫓고 쫓기는 과정과 그 속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강한 개성과 흡입력으로 쉴 새 없이 달리게 만든다. 잊혀진 존재가 작가의 필력과 전문 지식에 의해 화려하게 부활하는 순간이다. 

집시 바벨이 사라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의 존재를 광고하고, 이를 본 두 사람이 이것을 구매하려고 한다. 한 명은 냉혹하고 무시무시한 살인자 에이커 베일이고, 다른 한 명은 이 예언으로 돈을 벌려는 미국작가 사비르다. 베일은 공포를 불러오는 눈을 가지고 있다. 한쪽 눈에 흰자위가 없다. 이 눈을 본 사람은 공포를 느낀다. 바벨이 그에게 위험을 느끼고 달아난 것도 바로 이런 위협과 공포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금방 잡힌다. 고문을 당하는 중 가족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놀라운 능력으로 자살은 한다. 그에게 잡히기 전 다른 구매자 사비르를 만나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이 때문에 그는 경찰과 베일에게 쫓긴다.

사비르가 바벨에게 들은 두 단어를 통해 집시들에게 가고, 그곳에서 그의 여동생 욜라를 만난다. 방송에서 살인 용의자로 나온 덕분에 집시들에게 죽을 위협에 처하지만 욜라 덕분에 살아남는다. 그리고 그들의 관습에 따라 욜라의 오빠가 되고, 그들 속에서 잠시 머문다. 하지만 그 살인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형사 칼크의 추적과 베일의 위협과 예언에 대한 욕망 때문에 떠나게 된다. 그의 곁에 욜라 뿐만 아니라 그녀를 사랑하는 집시 알렉시가 함께 한다. 판타지 소설에서 자주 본 세 명의 여행자가 구성되고, 그들은 험난하고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모험을 한다.

이후 구성은 쫓고 쫓기고, 위협을 받고, 한 발 앞서 예언의 단서를 찾고, 다시 쫓고 쫓기는 과정의 반복이다. 상당히 단순한 구성인데 이 속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등장인물들의 강하고 독특한 개성과 활약이다. 사실 이 속에서 숨겨진 예언이 무얼까 하는 의문이 생기기는 하지만 악한 베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심리전과 추격전이 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베일의 공포에 짓눌린 사람들의 반응은 다음 이야기의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언제 그것을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그리고 피상적으로 혹은 왜곡된 정보를 통해 알고 있던 집시들이 사라진 소설 속 집시들 관습은 신기하고 놀라우면서도 매혹적이다. 어느 부분에선 우리의 무당과 비슷한 모습이 보여 잠시 놀라기도 했다.

방대한 지식과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재미는 아주 많다. 선과 악의 대결, 숨겨진 비밀, 곳곳에서 나오는 유머, 긴장감을 불러오는 스릴러, 호기심을 불러오는 예언 등. 이런 재료를 가지고 잘 섞고 잘 늘어놓았다. 제목에서 받은 느낌이 금방 사라지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재미난 소설이다. 끝으로 달려가면서 사람들의 집념과 욕망이 빚어내는 사건들이 더 가속화된다. 신비로운 체험과 예언은 살짝 그 실체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게 만들지만 재미엔 그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댄 브라운의 흐름과 포사이스의 쟈칼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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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현상금 견인 도시 연대기 2
필립 리브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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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런던의 멸망 후 톰과 헤스터의 새로운 모험담이다. 이번엔 얼음썰매를 타고 움직이는 앵커리지란 도시가 무대다. 전작처럼 한 곳에 머물며 벌어지는 사건이 아니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앵커리지란 도시가 있다. 이 도시는 시장 선출 제도가 아닌 왕위 세습제가 이어지는 곳이다. 이 도시의 여왕은 십 대인 프레야다. 병으로 부모들이 죽은 후 어린 나이에 일찍 여왕이 되었다. 그 도시는 전염병 덕분에 시민이 많지도 않다. 허울뿐인 여왕이다. 하지만 긴 세월을 이어온 제도와 관습과 예절은 아직도 남아 있다. 인구가 겨우 50명 정도인데도 말이다. 바로 여기서 재미있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생긴다. 작가의 재미있고 기발한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다.

여왕 프레야. 그녀는 어리다. 허울뿐인 여왕이지만 한 도시를 책임져야 한다. 형식적일지 모르지만 그녀는 도시가 갈 곳을 정한다. 이 결정은 인구가 많지 않은 앵커리지를 새로운 모험으로 몰아간다. 그리고 이 도시는 뛰어난 엔진을 보유하고 있다. 이 엔진과 오랜 세월 모아둔 부는 다른 약탈 도시들이 탐 낼만 하다. 그중 한 곳인 아크에인절은 앵커리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현상금을 걸 정도다. 처음에 이곳을 방문한 주인공 둘은 이런 홍보에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미래는 알 수 없다. 성장하는 그들과 외모에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헤스터가 있는 한은 말이다.

이번 작품은 이 두 주인공들의 흔들리는 감정과 성장을 다룬다.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도시의 여왕인 프레야.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헤스터. 이 둘 사이에 잠시 방황하는 톰. 각자 다른 성장 배경을 가진 이들의 오해와 욕망이 뒤섞이고, 분노와 질투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 때문에 새로운 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망인 질투와 소유욕에서 비롯한다. 톰을 자신의 남자로 다시 만들기 위해 헤스터는 앵커리지의 정보를 아크에인절에게 알려준다. 단순할 것 같은 이야기가 여기서 다시 한 번 꼬이기 시작한다.

전작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설명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다. 현대에 대한 은유와 풍자가 곳곳에 스며있고, 멸망 후 세계에 대한 거대한 상상력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 특히 엉클로 불리는 도둑들의 두목과 그가 다스리는 도시는 이 시리즈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이 엉클은 훔친 아이들의 왕으로 군림하면서 탁월한 기술과 정보로 도시들의 부를 몰래 훔친다. 그의 명령은 아이들에게 절대적이고, 그의 명령을 받은 아이들은 잠수함 같은 것을 타고 도시에 몰래 붙어 물건을 훔친다. 앵커리지에 붙어 도둑질하던 카울이 세 남녀의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살짝 끼워들던 그 순간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엔 허풍선이 교수가 한 명 등장한다. 님로드 페니로얄 교수다. 역사학자로 불리길 바라지만 그의 저작들은 모두 상상력의 산물이다.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그 시대에 소설 같은 재미를 주는 그의 작품과 명성에 매혹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 중 두 명이 바로 톰과 프레야다. 톰과 프레야는 그를 만나는 순간부터 매혹된다. 이 매혹은 앵커리지를 새로운 모험으로 이끄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그 매혹의 중심에 아메리카 대륙이 있다. 역사 속에 실존했던 대륙이지만 다시 아메리카 대륙은 꿈과 희망이 살아있는 신대륙으로 변한다. 

전작에서 깔아놓은 이야기와 새로운 상황과 설정들이 엮이면서 즐겁고 재미난 이야기로 가득하다. 시리즈 앞부분이라 궁금한 점이 많은데 다음 이야기를 벌써부터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엉클이 다스리는 도시에서 벌어지는 조그마한 사건은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고, 인간 속에 감춰진 사악한 욕망을 그대로 표출한다. 변함없이 살인에 주저함이 없고, 외면하고 있던 본성은 뒤로 가면서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전작에서 낯선 세계가 점점 익숙해지면서 동화된다. 질투와 오해와 사랑으로 빚어진 사건은 두 갈래 진행으로 다양한 즐거움을 주고,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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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가는 이야기 작가의 발견 3
김보영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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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초기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읽었고, 뒤에 쓴 글을 모은 <진화신화>보다 더 취향에 맞다. 이 단편집의 반은 이미 <누군가를 만났어>에서 읽은 것이지만 다시 읽었다. 다시 읽으면서 예전에 놓친 부분이나 그때 단편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새롭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의 이 단편집에서 SF 거장들의 작품 흔적을 발견한 동시에 그녀의 대단함과 성장을 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초기작 같은 작품이 계속 나왔으면 하는데 현재 쓰고 있다는 장편은 어떨지 모르겠다.

여섯 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다. 첫 작품인 <촉각의 경험>에서 이전에 아주 흥분하면서 읽었던 중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 시리즈까지 초기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번에도 느낀 것이지만 <미래로 가는 사람들>에서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시리즈가 떠오른 것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바탕을 둔 시간여행과 문명의 발전 때문이다. 마지막 <합>편은 <유년기의 끝>이 연상되었다. 하지만 이런 연상은 단순히 흔적일 뿐이다. 그녀는 시간여행자를 내세워 좀더 깊은 사유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우주와 인간의 삶을 상상이상의 것으로 확대했다. 개인적으로 한국SF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섯 번째 감각>은 레이 브래드버리의 <화씨 451>의 오마주 같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이 책이 사라진 세계를 다루었다면 김보영은 소리가 사라진 세계를 창조했다. 책이 모두 불탄 세계에서 사람들이 외워서 책을 전한 것처럼 이 단편에서 소리가 사라진 곳에서 그 소리를 듣고 말하는 사람들을 등장시켰다. 처음엔 육감보다 낮은 숫자에 혼란이 왔지만 읽으면서 그 낯선 세계에 점점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소리가 사라진 세계를 상상하면서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초능력이란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처녀작 <촉각의 경험>은 클론을 등장시키고, 그의 꿈을 알고 싶어 하는 클론 주인의 욕망을 다룬다. 이 욕망이 클론과의 교류를 통해 또 다른 변화를 불러오는데 인간이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녀의 전공이 작품 전반에 잘 살아 있다. <우수한 유전자>는 반전을 품고 있지만 입장에 따라 누가 더 행복한 지를 묻는다. 세상에서 행복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생각난다.

<종의 기원> 연작은 독립적으로 읽어도 문제가 없겠지만 역시 앞의 이야기를 읽은 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이 사라진 후 인간이 만든 로봇만 살아남은 미래를 다룬다. 이들이 이룩한 세계는 너무나도 인간과 닮아 있다. 그들의 창조신화는 성경의 또 다른 버전이고, 이야기 속에서 다루는 창조론과 진화론은 현재에 대한 풍자이자 은유다. 교조적으로 변하고 도식화된 세계에서 새로운 학설과 인물의 등장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에 약간의 변화가 있지만 그대로 살아있고, 로봇의 행동 속에 인간들이 가지고 있는 무비판적이고 무조건적인 숭배와 신앙을 그래도 재현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한다. 다음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한다.

아직 나의 SF 내공이 부족하여 그녀의 작품을 해석한 사람들과 다른 작가의 작품을 연상한 경우가 많다. 어쩌면 나의 오독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까지 환상소설보다 하드SF 쪽에 더 많은 재능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원작이나 역사 속 한 이야기를 진화시키는 그녀의 능력은 늘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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