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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햄 링컨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양병찬 옮김 / 조윤커뮤니케이션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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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링컨 대통령이 뱀파이어 헌터라는 설정이 강하게 눈길을 끌었다. 처음엔 이런 허무맹랑한 소설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작가의 다른 작품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가 상당한 호평을 받은 것을 보고 어느 정도 기대하게 되었다. 팀 버튼이 영화로 만든다는 소식은 이런 기대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몇 장을 넘기지 않아 몰입하게 되었고 빠르게 읽혔다. 그리고 단숨에 모두 읽었다.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라는 것은 그 시대뿐만 아니라 현재도 뱀파이어가 있어야 가능하다. 작가는 이런 설정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링컨의 일기와 전기와 다른 기록 등을 교묘하게 뒤섞는다. 또 액자구성과 연대순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그 가능성을 사실인 것처럼 만든다. 하지만 이 뱀파이어를 시대에 따라 다른 단어로 바꾼다면 결코 상상에 의한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링컨과 그 시대를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뱀파이어 헨리에서 작가가 링컨의 일기 등을 받아 링컨의 전기를 새롭게 쓰는 구성이다. 링컨에 대한 전기와 관련 기록은 엄청나게 많다. 그 수많은 기록들에서 의문은 늘 생기기 마련이다. 이런 의문과 뱀파이어 헌터라는 상상을 뒤섞어 멋진 역사 판타지를 만들었다. 기본 줄기는 역사 속에 드러나는 링컨의 기록을 따라가고, 그 세부적인 이야기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했다. 소설의 재미는 역사와 허구를 뒤섞고, 예상하지 못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 것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젊은 링컨의 뱀파이어 헌터 행적은 판타지소설을 읽는 듯하다.

소설은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첫 번째는 어린 시절을 다룬다. 그의 탄생과 성장을 다루는데 왜 그가 뱀파이어 헌터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뱀파이어 헌터가 되기 위해 뱀파이어 헨리에게 도움을 받고, 뱀파이어 헌터로 성장한다. 2부는 본격적으로 뱀파이어 헌터로서의 활약을 그려낸다. 헨리가 보낸 정보를 통해 실적을 쌓고, 경험도 점점 늘어난다. 동시에 그의 사랑을 다루고, 정계에 입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지막은 역시 대통령이 된 그의 행적이 중심이다. 남북전쟁과 암살되기까지의 시간을 다루는데 이미 노쇠한 그가 직접 뱀파이어 헌터로 활약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 뱀파이어들이 기생할 수 있는 환경을 제거한다. 역시 여기서도 역사의 시간은 흘러간다.

링컨이 뱀파이어 헌터라는 설정도 기발하지만 남부의 노예제도가 어떤 원인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하는 부분도 뛰어난 설정이다. 노예제도를 단순한 노동력으로만 보지 않고, 뱀파이어들의 양식으로 본 점은 섬뜩하지만 중의적이다. 사실 링컨의 수많은 기록들 중에는 그가 노예제도를 절대적으로 반대한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런 의견을 감안하면 노예제도의 배후에 뱀파이어가 있다는 설정은 판타지로도 읽을 수 있지만 약탈자나 악덕지주 등으로 단어를 바꿔 해석할 수도 있게 만든다. 이 점은 이 소설이 지닌 재미와 의미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전에 <링컨의 우울증>이란 책에서 그에 대한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았다. 그 덕분에 이번 소설을 읽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의 사랑과 우울증, 자식 잃은 아픔, 어머니에 대한 사랑 등을 이해하는데 쉬웠다. 그리고 연대순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어 링컨이 어떻게 성장하고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비록 판타지로 이야기가 재구성되었지만 그의 성장과 업적이 허구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진실 속에 몇 가지 설정만 허구다. 이 허구가 사실과 결합해 재미를 극대화시키지만 말이다. 

이 한 권으로 이야기가 완결되기도 하지만 현대에 부활한 뱀파이어 링컨을 다룬 다음 권이 곧 나온다고 한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로 대부분 사라진 뱀파이어가 어떻게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그들을 퇴치하기 위한 뱀파이어 링컨의 헌터 행이 어떻게 진행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에선 어떻게 근대, 현대 역사와 연결시킬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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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리디 쌀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창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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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 그림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돼지코를 단 인물이 시가를 물고 있는데 그가 바로 끝내주는 회장님 토볼드다. 이 표지가 보여주듯이 햄버거 왕 토볼드는 욕심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가 신봉하는 신자유주의는 너무나도 노골적이고, 그의 탐욕은 끝이 없다. 이런 인물을 옆에서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이전에 이런 인물이나 현실을 비난하고 욕했던 사람이라면 더욱 말이다. 그런데 현실의 빈곤함과 호기심에 항복한 화자가 회장님의 전기 작가로 취업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한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을 소설로 만들었다.

처음부터 목줄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 이 표현을 사용하게 된 까닭을 애완작가로 전락한 화자가 보여준다. 화자의 관찰을 통해 드러나는 회장님의 삶은 화려한 외양뿐만 아니라 불면과 걱정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그가 낮 시간동안 보여주는 강력하고 위협적인 생활에 쉽게 묻힌다. 이런 생활을 만나며 화자는 점점 변해간다. 처음엔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지만 삶은 윤택해지고 편안해지면서 사치와 향락이 주는 유혹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경멸과 모멸감으로 회장을 보던 시선은 어느 순간 그의 가벼운 손길과 권력에 사그라지면서 없어진다.

토볼드는 세계최고의 거부다. 그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이윤과 매출 증대와 주가 등이다. 오죽하면 애완견 이름도 다운존스일까. 자신의 제국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닌 그는 이제 국경을 넘어 세계의 지배자로 올라가길 원한다. 이런 그의 욕망은 자신의 삶을 기록할 작가를 원하고, 화자는 그렇게 선택되었다. 그는 작가에게 메모할 것과 뺄 것을 요구하고, 자신의 말을 복음이라 칭한다. 이것은 그가 미국으로 오면서 마케팅의 원전으로 삼은 성경과도 관계가 있다. 한때 마케팅 관련 서적에서 예수를 마케팅의 천재라고 한 적이 있는데 회장님도 예수에게 한 수 배운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전하는 복음은 성경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토볼드가 전하는 복음은 신자유주의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사회복지정책을 욕하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칭송한다. 그의 저속한 행동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불편하게 만들지만 그가 가진 권력은 이를 참아내게 한다. 끝없는 욕망과 이것을 이루기 위한 행동은 그 앞에 어떤 장애가 생기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만약 장애가 생기면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그것을 없애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한다. 이것은 자본이 지닌 속성을 그대로 구현한 것이다. 작가는 토볼드를 통해 현재 자본주의의 진짜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인물 속에는 수많은 자본주의 경영자의 모습이 섞여있다. 그래서 이 불쾌하면서도 흥미로운 인물에 계속 관심을 두게 된다.

부분적인 장면들만 본다면 상당히 재미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읽으면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다. 풍자와 해학으로 가득한 소설인데 그것은 온전하게 누리지 못한다. 나의 내공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취향 차이인지 모르겠다. 회장의 수많은 말도 되지 않는 궤변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패스트푸드를 개발하면서 핵심으로 생각한 ‘버린다’는 것이다. 없애고 버리는 과정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한 그가 수많은 현자들이 말한 버려라는 말을 새롭게 해석한 것은 역시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알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전체적인 윤곽을 잡지 못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수많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그와 어머니의 이야기, 아내 씬디와의 관계, 천부적인 마케팅 능력,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집념과 행동, 과도한 탐욕에서 비롯한 불안과 불면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밤들, 그가 전하고자 하는 복음들. 특히 그가 전하는 복음은 아마도 현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말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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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온 편지
최인호 지음, 양현모 사진 / 누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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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곡이다. 어머니와 아들로 맺은 42년간의 인연과 추억을 담고 있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이것은 최근 작가의 많은 에세이에서 드러나는 감정이다. 그런데 다른 책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성모와 예수에 대한 찬양이 솔직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혹시 신앙고백서가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어머니다.

작가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머니와 싸우면서 산다. 특히 어릴 때는 더욱 그렇다. 왜 그렇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지, 왜 나를 믿어주지 않는지, 왜 나만 미워하는지, 왜 그렇게 다른 사람과 악착같이 싸우는지 등으로 어머니와 다툰다. 외출할 때 늙으신 어머니가 곱게 화장하는 모습도 예뻐 보이지 않고, 예쁘게 입지 않고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 것도 싫다. 왜 내가 하자는 대로 하지 않고 고집을 피우는지도 얄밉고, 다른 부모처럼 맛있는 반찬을 싸주지 않아서 점심 도시락이 부끄럽다. 이런 수많은 감정들이 쌓이고 쌓이지만 어느 순간 나이가 들면서 그렇게 쌓였던 것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그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다.

현실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만 우리는 대부분 또 싸우고 미워하고 싸우고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이런 일상의 반복이 삶이기에 뭐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싸움과 미움이 어느 순간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리워지는 순간도 생긴다. 그 순간이 바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음을 깨달을 때다. 이 상실감은 갑자기 찾아온다. 그리고 사람을 마구 흔들어놓는다. 이런 감정들과 추억들은 그리움과 사랑으로 우릴 가득 채우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서 작가가 하는 수많은 말들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움, 부끄러움, 추억, 사랑, 기억, 신앙, 기도 등이 그것들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부분은 일본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듣고 장례를 치루고 다시 일본에 일 때문에 돌아간 후까지의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천주교 신자의 입장에서 하나씩 연결하면서 풀어낸 것이다. 여기엔 어머니와 성모가 묘하게 겹쳐서 다가오는 대목이 여럿 있다. 물론 성모나 성녀의 반열에 그의 어머니가 놓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에겐 어머니가 그들 못지않은 존재다. 성경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가 풀어낸 어머니의 위대함과 사랑은 가슴 깊이 파고든다.

사실 아직 미혼인 내가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기는 무리가 있다. 경험하지 못한 자의 피상적인 감정들이 더 많다. 이미 어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는 부분도 많지만 현실에선 그 사랑보다 나의 편안함이 더 중요하다. 나이가 한살한살 먹어감에 따라 좀더 많은 부분을 공감하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작가가 아버지 산소에서 어머니에게 한 행동이나 말들은 실제 우리의 삶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에도 그가 그렇게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를 낳고 키워주고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자라면서 다툰 그 수많은 일들로 어느 순간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자 삶이다.

이 책에서 만난 작가의 어머니가 사실 새롭지는 않다. 이미 다른 책에서 본 이야기도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그것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작가들이 나이가 듦에 따라 어머니를 그리워하면서 글을 쓴 것이 요즘엔 이해된다. 어릴 때 우리와 가장 많은 시간은 보낸 분이 바로 어머니고,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 부은 분이 어머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간 신앙고백서 같은 분위기의 글들은 비신자에겐 과장된 표현처럼 다가온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차이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책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일부만 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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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바이러스 2010-06-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봤습니다^^
 
황금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8
로베르트 반 홀릭 지음, 신혜연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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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디 공 시리즈를 읽었다. 예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시리즈의 다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서양인이 본 중국 고대 판공 이야기라 약간 어색한 부분이 많았다. 아마 다른 문화권이라서 사물을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란 범주에서 본다면 나름 재미가 있었다. 허술한 부분도 있고,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시대를 감안한다면 너그럽게 봐줄 수 있었다. 현대 추리물처럼 치밀한 구성보다 인물과 시대에 더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좋지 않은 번역도 한몫 거든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리즈를 열심히 읽은 것은 나름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디 공 시리즈 중 읽지 않은 것이 몇 편 있는데 그 중 <황금살인자>도 끼워있다.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쉽게 빠져들었다. 이번 소설은 디 공이 처음으로 수령으로 부임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친구들과 작별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 왜 그가 출세가 보장된 길을 벗어나 힘든 수령으로 나가는지만 관심을 두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장면이 앞으로 벌어질 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역할을 단숨에 깨닫기에는 너무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말이다.

디 공의 성격을 잘 나타내주는 장면이 있다. 그것은 부임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두 도적과의 관계다. 그를 털려는 도적과 무술대결을 펼치고, 도적을 잡으려는 관병들에게 자신의 부하라고 말하는 대목은 그의 용기와 관대함과 세심한 관찰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이후 두 도적은 그의 수하가 되고 앞으로 펼쳐질 사건을 해결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렇게 디 공은 좋은 수하를 얻고, 부임지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생각과 많이 다른 현실이다. 전임 수령은 귀신이 되어 나타나고, 수령의 죽음은 의문으로 가득하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죽음의 이유를 밝혀내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한 고을의 수령이 하나의 일만 볼 수 없다. 다양한 민원이 들어오게 마련이다. 토지 경계 같은 민사사건도 있고, 신부실종사건이나 농가의 살인사건 같은 형사사건도 있다. 민사는 당사자 두 사람이 합의하면 쉽게 해결되지만 형사는 다르다. 처음 선박업자 쿠가 자신의 신부 실종 사건을 의뢰했을 때만 하여도 그냥 단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 농가의 살인사건과 어느 정도 연관성을 보여주면서 단순함을 넘어 새로운 모습을 띤다. 개별 사건이 하나의 큰 사건으로 연결되면서 큰 그림의 밑그림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구성을 상당히 좋아하는데 무난하고 매끄럽게 연결했다.

이번 소설에서 특히 눈이 가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고구려 유민에 대한 것이다. 한국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 작가가 중국 자료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 적지 않은 오류가 있다. 이런 것을 감안하고 읽게 되는데 그래도 가슴 한 쪽에서 감상적으로 움직인다. 좀더 깊이 있게 다루거나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나왔으면 하는 부분도 있지만 왜곡된 기록으로 다루어지기보다 그냥 이 상태로 머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언제나처럼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표지 그림이 의미하는 바를 뒤늦게 깨닫게 된다. 전임 수령의 살해와 관계가 있다. 예전에 읽은 시리즈의 앞 권에 대해 기억은 거의 없지만 잘 만든 표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귀신을 등장시키고, 장면 하나하나, 사건 하나하나를 공들여 배치한 것이 뒤로 가면서 그 힘을 발휘한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들을 연결시키며 전체를 이해하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디 공의 모습은 현실적이면서 아주 탁월하다. 또 유서우쳰의 <수령지침서>에 나온 말씀은 현대 명탐정들이 여러 차례 말한 것이지만 명심하고 또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독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용어의 선택이나 번역에서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조금 있다. 원작과 비교하지 못해 어떨지 모르지만 그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는 개인적으로 이제껏 읽은 디 공 시리즈 중 최고가 아닌가 생각한다. 현대 추리작가들의 시대물이나 추리소설에 비해 조금 낯선 전개와 분위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한 번 빠지면 색다른 매력이 가득하다. 물론 이것은 그 매력을 깨달을 때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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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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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회색영혼>을 사실 아주 재미없고 힘들게 읽었다. 작품 문제가 아니라 읽는 나에게 더 많은 문제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아 대충 읽은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러운 책읽기였다. 그리고 이번 작품도 읽기 전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약간은 걱정되었다. 하지만 다른 자세로 책을 들었고, 지난번보다 더 세심하게 음미하며 읽었다. 그러면서 왜 이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게 되었다. 깊은 관찰과 사색을 통해 만들어낸 문장과 그 결과물이 읽는 내내 가슴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9쪽)이란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한 문장으로 작가는 두 가지 효과를 누린다. 하나는 화자가 누군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일이 무엇인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혹시 그 일에 어느 정도 그가 연관성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가지게 만든다. 이런 멋진 문장으로 문을 열고, 브로덱이 기록한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야기들이 시간 순이 아니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고, 기록의 대상도 바뀐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복잡한 구성이다. 아마도 이런 구성과 깊이 있고 사색적인 문장이 이전에 재미를 못 누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가장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그 일’이다. 뭐 길래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까 의문이 계속 생긴다. ‘그 일’이 안더러 즉 타인과 관련된 일임을 금방 말하지만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그가 무관하다고 외쳤는지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과거 속으로 들어간다. 과거 속에서 벌어진 일 중 가장 참혹한 것은 아마 인간이 아닌 똥개 브로덱으로 살았던 시간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개처럼 행동하면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던 그 순간 말이다. 왜 그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살리면서 ‘그 일’을 연관시키는 것일까? 의문이 살짝 생긴다.

똥개 브로덱으로 수용소에서 살면서 생존한 그를 보고 놀란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다. 그를 죽은 자로 기록한 그들이기에 놀란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뒤에 드러나는 사실을 읽으면 꼭 그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그도 또한 안더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두 안더러가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은 삶을 대하는 자세 때문이다. 똥개처럼 행동하면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브로덱과 이름조차 말하지 않은 안더러의 삶은 그들을 보고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것이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결정했다.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브로덱이 작성하는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마을 사람들의 어두운 삶과 행동을 덮어주는 목적으로 의뢰한 것이다. 그런데 브로덱의 양심은 사실과 거짓 뒤에 숨겨진 이면을 보려고 한다. 똥개 브로덱이 인간으로 위치를 바꾼 것이다. 그리고 안더러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대화를 통해 얻은 정보를 그림으로 보여주었을 때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추악하고 더러운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 때문에 ‘그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것은 다시 브로덱의 보고서와 관계있다. 브로덱이 보고서를 두 개 작성한 것이다. 하나는 보고용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을 찾는 기록이다. 

전쟁은 사람을 엄청나게 변하게 만든다. 생존을 위해 그들은 거침없이 변한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이 브로덱이 사는 마을이라면 수용소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인간임을 잊지 않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죽는 것이다. 그런 고결한 인격이 삶의 현장에선 쉽게 뒤집어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모자일 경우는 침묵으로 그 사실을 덮어두려한다. 이것을 파헤치려고 하니 그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브로덱의 보고서와 안더러의 그림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이 참혹한 현실의 일부를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파괴와 약탈로 연결시킨 것은 인간의 어두운 삶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약탈과 파괴와 살인이 벌어지는 현장을 견디지 못해 떠난 브로덱이 수용소에서 삶을 위해 똥개가 된 것도 어쩌면 가해자로 변신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이것은 또 안더러의 ‘그 일’을 자신이 막아내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과도 이어진다. 이렇게 그는 최소한의 자신을 지킨다. 하지만 그의 이런 모습은 변절자와 가해자들에게 불안하고 위태로운 행동이다. 시장 오어슈비어가 그 보고서를 읽고 두 눈이 먼 여자 아이의 예를 든 것도 바로 하나의 경고인 것이다. 파헤치지 말고 그냥 덮어두라고 말이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는 무엇을 쓸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쓰다 보니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 그가 사랑하는 아내 에멜리아, 딸 푸셰트, 그를 거둔 페도린 등과의 관계도 그렇다. ‘정화의 밤’과 인간에 대한 것도 그렇다. 그 외 이야기들도 많지만 모두 쓸 수 없다. 다만 첫 문장의 ‘그 일’만 간단히 적는다. 다시 읽으면 더 많은 것이 다가올 것 같다. 그리고 이전에 그 가치를 몰랐던 <회색영혼>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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