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의 나라 백성의 나라 - 상 - 북리 군왕부 살인 사건
김용심 지음 / 보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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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재미있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2005년도에 <천자의 나라>란 제목과 김유인이란 이름으로 보리의 자회사인 오두막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었다. 겉장은 새롭게 만들었지만 나머지는 이전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재활용 혹은 재간을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사실 처음엔 이 사실을 몰랐다. 책을 모두 읽은 후 잠시 여운을 즐기면서 우연히 읽게 된 글 속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절판된 책과 함께 나름 좋은 평을 받은 것이 나온다. 살려낼 가치가 있었다는 보리 출판사의 글에 어느 정도 수긍한다. 재미 측면과 정치의 의미 둘 다를 생각해도 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유명한 판관 포청천에서 그를 도와주었던 협객 전조다. 남협으로 불리며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전조를 전면에 내세운다. 그와 동시에 그 당시 천자였던 인종이 전조와 함께 한다. 기본 줄거리는 무협소설을 따르지만 그 바닥엔 인종이 어떻게 그런 현군이 되었는지 상상으로 구성하고 있다. 이 점이 바로 무협의 재미와 함께 정치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무협의 형식을 빌린 역사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종을 통해 지속적으로 그 시대와 정치에 대한 깨달음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줄거리는 전조가 포청천의 명을 받고 북리 군왕부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런데 이 살인사건의 범인을 책 중반도 가기 전에 이미 누군지 알게 된다. 살인사건과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은 사실 큰 매력을 주기 힘들다. 그리고 무협소설이 지닌 강한 무공에 대한 열망과 대결이 많이 나오지도 않는다. 남성 작가라면 남협 전조를 중심으로 많은 무공대결을 넣어서 볼거리를 늘렸을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여자이자 이런 대결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매력적인 캐릭터 만들기에 더 주력한다. 이 캐릭터들과 그들이 함께 나누는 대화가 사실 이 소설의 가치를 더 높여준다. 

전조. 그는 천하제일검이지만 답답한 남자다. 살검보다 활검을, 한 사람을 죽이기보다 한 사람을 살리길 더 원한다. 자신의 강함을 내세우기보다 부드럽게 굽히고 들어가면서 상황을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강호는 강즉정의 세계다. 강한 것이 정의인 곳에서 그의 부드러움은 약자의 비굴함으로 보일 뿐이다. 이때 드러나는 전조의 무공은 진정 강한 것이 무엇인지, 왜 무공을 수련해야 하는지를 은근히 알려준다. 그리고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고지식한 그의 행동은 뒤로 가면서 우연과 천운이 결합하면서 억지스럽게 다가오지만 그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어준다. 그 덕분에 그의 매력은 더욱 빛나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종. 그는 작가가 역사의 시간을 살짝 바꿔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전조를 통해 갑자기 변한 정치 개혁의 원인을 찾아보려고 한다. 무협에서 자주 나오는 인피면구를 쓰고 암행을 하던 중 전조의 협객행을 보고 반한다. 그 후 북리 군왕부까지 따라가면서 수많은 사건을 겪고, 정신적으로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고 많은 깨달음을 얻는 인물이다. 이것은 이전 제목 <천자의 나라>라 지닌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보여준다. 천자(天子)를 단순히 만인지상의 존재인 하늘의 아들로 규정하기보다 땅위에서 사는 백성들도 바로 하늘의 아들임을 내세우면서 기존 인식을 깨트린다. 바로 이 부분이 평범한 무협소설의 구성과 재미를 넘어 가치를 논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그 외 다양한 인물들이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아령, 북리현, 승휴 등을 비롯한 조연 혹은 단역들이 재미뿐만 아니라 감정의 깊이도 더해주면서 그 시대를 재구성한다. 애틋한 사랑과 강렬한 욕망과 무공대결이 잘 결합하여 책읽기의 속도를 높여준다. 잘 만들어진 무협소설로는 분명히 부족함이 있지만 멋진 캐릭터와 그들의 대화 속에 담겨 있는 역사의식과 정치철학은 단순한 재미만이 아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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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선 탑의 살인 미스터리 야! 7
미나가와 히로코 지음, 지세현 옮김 / 들녘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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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미스터리는 분명히 아니다. 하지만 읽을수록 그 매력이 묻어난다. 그 매력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중반 이후는 작가가 의도한 구성과 전개에 몰입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역시 앞부분은 낯선 나라의 풍경과 삶이 약간은 지루하다. 비록 그곳이 우리와 너무나도 가깝고도 먼 일본이라고 하여도 말이다. 지루한 부분을 지나고 난 후 마지막에 이르게 되면 조심스럽게 작가가 심어놓은 단서들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시간적 배경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는 2차 대전 말 무렵이다. 1945년에서 이야기는 시작하여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첫 번째 화자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이브 아베 긴코다. 그녀는 그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낯선 시간 속으로 우릴 인도한다. 사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주 평범하다. 보통 학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말한다. 하지만 시대는 보통 여학교의 삶을 용납하지 않는다. 공습과 기아로 친구와 가족이 죽고, 학생들은 가미가제 특공대를 위해 군수 공장에서 일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도입부지만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기초와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화자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소설 속 일기와 그 속의 소설이란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의 제목도 바로 일기 속 소설 제목인 <거꾸로 선 탑의 살인>에서 비롯한 것이다. 재미난 것은 이 소설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같이 쓴 작품이란 점이다. 먼저 첫 사람이 이야기의 도입부를 쓰고, 다음 사람이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교묘하게 작가는 순서를 잠깐 바꾸고, 사람들의 혼란을 불러 올 작업을 조금씩 펼친다. 덕분에 중반까지도 그 미스터리를 제대로 깨달을 수 없었다. 이브의 이야기가 미와 사에다로 넘어가면서 그 혼란을 더 가중시키기 때문이다.

약간 복잡한 구성이지만 읽는 데는 전혀 힘이 들지 않는다. 전시 상황과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순수한 우정과 사랑은 한 편의 청춘소설을 읽는 재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바탕 위에 세워진 미스터리는 공동 작업 소설로 드러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 분량은 많지 않다. 이 부분은 분명히 아쉬운 부분이다. 마지막에 가서 현실과 가상 세계를 연결시키는데 그 연관성을 쉽게 깨닫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또 작가는 충분한 단서를 제공하기보다 각각 다른 화자를 등장시켜 다양한 시각에서 사건을 보게 만든다. 이런 점이 중반까지 약간의 혼란을 가져오게 했다. 

많은 책과 작가와 화가와 그림이 등장한다. 그 중에선 앙리 바르뷔스의 <지옥>은 가장 중요하다.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바로 훔쳐보기 때문이다. 이 작품 속에서 훔쳐보기는 사건의 중요한 요소다. 각각 다른 화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이런 시각을 조금은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훔쳐보기를 통한 사건 전개와 이에 대한 오해는 재미를 더한다. <지옥>은 이전에 읽었지만 취향에 잘 맞지 않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해 조금은 아쉽다. 다음에 다시 읽고 싶다. 

소녀들의 성장과 사랑과 우정을 다룬다. 감정이 풀려가는 속에 만나게 되는 소녀들은 순수하다. 전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고분고분하게 살아간다. 아니 조금의 반항이나 돌출 행위는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시대다. 이것은 패전 후 선생들의 행동 속에서 그 위선이 살짝 벗겨진다. 하지만 더 이상의 고민을 진전시키기보다 하나의 배경으로 활용만 한다. 이것은 다시 정신대라는 단어를 우리와 완전히 다르게 사용함으로서 두 나라의 간극을 더욱 극심하게 드러낸다. 아쉽지만 한계를 뛰어넘는 작품을 기대하기는 조금 무리다. 

표지와 제목이 주는 섬뜩함이 소설에선 찾아보기가 힘들다. 액자 구성 속 소설에서 잠시 그 기미를 보여주지만 너무 잠깐이다. 미스터리 요소를 극대화시키기보다 비밀스럽고 미묘한 감정 묘사에 더 공을 들였다. 이 감정들이 미스터리와 결합하여 반전을 보여주는 마지막은 그래서 더 눈길이 간다. 감정이 순수하고, 그 순수함이 과격한 열정으로 비뚤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려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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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살인자 밀리언셀러 클럽 109
로베르트 반 훌릭 지음, 구세희 옮김 / 황금가지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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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 한적한 마을 한위안에 부임한 디 공의 새로운 사건을 다룬다. 한위안은 수도에서 북서쪽으로 300리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마을이다. 수도와 가깝다는 것은 많은 이점이 있지만 잘못될 경우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지리적 배경과 호수 위 꽃배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각각 다른 사건들이 하나씩 꼬여간다. <황금 살인자>에서 만난 디 공과 그의 수하들의 등장과 활약은 반갑고 새로운 수하의 등장은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활약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 고위 관료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문을 여는데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시대도 명이라 칭하고, 그의 지위나 정체뿐만 아니라 호숫가 사건도 혼란스럽다. 하지만 디 공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고을에 부임했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마을 속에서 그 어떤 이상한 낌새도 발견하지 못한 그가 마을 지주 한우형의 초대로 꽃배를 탄다. 이 배 위에서 한 기녀가 멋진 춤으로 사람들은 현혹하는 동시에 그녀가 디 공에서 고을의 비밀에 대해 살짝 내비춘다. 그리고는 잠시 쉬는 시간에 사라진 후 시체로 발견된다. 

부유한 상인 류페이포의 딸 창어와 마을 문학 박사 장웬장의 아들 장후포의 결혼 첫날밤에 생긴 사건은 기이하다. 전혀 외상이 없는 창어가 죽어 있고, 장후포는 호숫가에 흔적을 남긴 후 사라졌다. 장 박사는 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류페이포와 문제가 생긴다. 딸이 장 박사에 의해 죽었다는 것이다. 시체가 발견되었을 때 관가에 알리고, 순리대로 처리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자신의 입장만 생각한 덕분에 문제가 커진 것이다. 그러다 절에 보낸 관을 열었을 때 나타난 전혀 다른 시체는 의문과 또 다른 살인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려준다.

하나의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또 다른 사건이 이어지면서 이야기는 복잡해진다. 부임한 지 두 달이 되었지만 아직 고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디 공은 수하들을 내려 보내 조사를 하거나 본인이 직접 암행하여 정보를 수집한다. 이런 그의 활약을 보면 전형적인 영미 탐정의 모습이다. 작가가 그에게 현대적 탐정의 모습을 조금 부여했지만 본질적으로 그는 판관이다. 그의 판결은 공정해야 하고, 사심이 없어야 한다. 증거에 근거하여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증거를 위해서 그와 수하들이 동분서주하고, 그 속에서 사건이 하나씩 해결된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독립적이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낯선 부임지에서 제대로 그 고을을 파악하지 못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전작 <황금 살인자>에서도 갓 부임한 마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번에도 역시 얼마 되지 않아서 사건들이 벌어진다. 이것은 다른 시리즈에서도 몇 번 반복된 것 같다. 작가는 낯선 환경을 만들고, 그 속에서 그와 수하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사건을 해결하게 한다. 덕분에 독자는 새로운 사실들을 얻게 되고, 기이한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놀라운 이야기에 즐거움을 느낀다. 다른 작품과 달리 이번 소설은 점점 사건의 규모가 커지는데 이것이 오히려 마지막에 가서 힘 빠지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살짝 아쉬운 대목이다.

바둑을 트릭에 이용했는데 그 시대 바둑이 특이한 것인지 모르지만 그런 모형이 나올 수 없다. 트릭으로 나쁘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성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얽히고설킨 관계들과 욕망은 이야기를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곳곳에 펼쳐지는 모험과 기지는 이야기를 재미있고 풍성하게 만들고, 이번에 새롭게 수하가 된 사기꾼 타오간은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제공한다. 앞으로 그의 활약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디 공의 수하 중 가신인 홍량을 제외하면 모두 범죄자들이다. 이들의 과거 전력이 나쁜 일을 알아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데 이 또한 재미고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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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빠이 여행자 마을
이민우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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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은 곳은 ‘빠이’다. 여름 휴가 어디로 갈까? 고민하고 있던 중 이 책 소개글에서 <론리 플래닛>이 “빠이, 여행자들의 메카!”라고 한 부분에서 그냥 넘어갔다. 어떤 곳이기에 이런 찬사를 받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일하는 짬짬이 시간을 내어 빠이를 검색했다. 이전에 태국 여행기에서 본 곳이다. 그때는 그냥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는 곳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다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를 뒤져본다. 호불호가 갈라지는 곳이다. 그냥 가서 둘러보고 나만의 여행을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하지만 휴가를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런 저런 우여곡절 끝에 빠이로 왔다.

사실 빠이에 오기 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없었다. 치앙마이에서 일요시장을 다시 볼 것을 포기하고 미니버스를 예약했다. 누구는 빠이 가는 길에 토하기도 했다지만 나에겐 그냥 좀 고불고불한 길이고, 예전에 가끔 넘곤 했던 대관령과 비슷했다. 함께 탄 프랑스 가족들의 이쁜 언니들이 눈길을 끄는데 꼬마와 자꾸 눈이 마주친다. 가볍게 서로 웃는다. 이렇게 치앙마이에서 3시간을 달려 온 곳이 빠이다. 너무나도 조그마한 마을이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작은 호텔에 들어가 짐을 풀고 마을을 간단하게 한바퀴 돈다. 가려고 마음먹은 곳을 찾아다니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너무 빠른 속도로 걷고 지나가다 보니 놓친 모양이다. 

이렇게 하루를 보낸 후 펼친 이 책은 전날 본 곳이 몇 곳이 나와 반가웠고,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 책은 빠이 여행안내서가 아니다. 그가 이곳 빠이에서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인상을 남긴 것이다. 빠이라는 지명이 어떻게 생겼는지 추론하고, 어떤 외국인이 처음에 이곳을 방문했는지, 1세대 게스트하우스 중 지금도 남아 있는 두엉 게스트하우스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이곳에 온 사라들이 떠나지 못하고 머물거나 다시 돌아오는지 알려준다. 단지 며칠 머물다 갈 예정이고, 낯선 사람과 말도 터지 못한 내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인터뷰 중 두엉의 것은 특히 인상적이다. 빠이의 변화와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연히 잘 곳 없는 여행자들을 재워준 것이 게스트하우스의 시작이란 것과 지금 같은 우기에 일주일 정도 그들도 여행을 떠난다는 것과 귀머거리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 아들이 하는 조그마한 가게는 밤 열시에 문을 닫고, 역시 귀머거리인 아내와 함께 수화를 나누며 걸어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다. 떠나는 날 그냥 무심코 본 곳이 두앙레스토랑이다. 생각보다 큰 규모로 성장했다.

작가가 카피라이터라 그런지 그가 만난 사람 중 광고 일을 한 사람이 많다. 방콕도 우리처럼 일에 빠져 제대로 휴가를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그가 만난 수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벗어나 여기에 매혹되고, 긴 시간을 머문다. 혹시 내가 길가다 본 그가 그들 중 한 명이 아닐까 괜한 상상을 한다. 나보다 몇 년 전 그리고 작가보다 한두 해 먼저 온 사람들이 지금의 빠이를 많은 개발로 많이 변했고 변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스쿠터를 빌려 타고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무수히 짓고 있는 건물들로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곳은 태국의 다른 도시와 다르게 조용하다. 성수기인 겨울엔 어떨지 모르지만 늦게 문을 열고 빨리 문을 닫는 곳이 많다. 늦은 밤 커피 한 잔 하려고 나가도 이미 문을 닫았을 정도다. 뭐 몇 곳은 늦게까지 음악과 술과 대화로 열기 가득하지만 말이다.

사실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으로 일도 조금하고, 책도 읽고, 스쿠터 타고 여기저기를 마구 달리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냥 나 자신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 작가처럼 긴 시간을 머문다면 나 또한 그처럼 외국인과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그가 만났고, 지금도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오기 전에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이상을 했다. 나로 하여금 빠이로 오게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며칠 동안 그냥 해먹에서 쉬다 간 젊은 친구가 작가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 고맙다고 하는 대목에선 깊은 여운을 남긴다. 거기에 대한민국 여행자 미스터 원의 이야기는 혹시 만나면 필요한 여비를 제외하고 모두 주고 싶을 정도로 대단함과 감동을 준다. 

책 속의 이야기가 현실 속에서 만나는 재미는 생각한 것보다 크거나 혹은 감동이 없다. 그것은 이곳 빠이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다루어진 이야기가 사실 그대로 전하고 있다고 하여도 지나가면서 보기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수박 겉핥기식 여행이 주는 아쉬움인지도 모른다. 과장된 표현이 살짝 느껴지지만 그 바탕은 변함이 없다. 저녁 전 한 잔의 커피를 마시기 위해 간 곳이 이미 문을 닫았다. 강가에 있는 방갈로는 다음에 오면 이곳을 숙소를 정해라고 손짓한다. 만약 이 책을 읽고 빠이에 온다면 작가나 나와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빠이를 즐기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고, 앞에 놓인 현실을 무시하기엔 나 자신이 너무 현실적이다. 빠이를 떠나며 다음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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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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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오랜만에 출간한 장편소설이자 내가 오랜만에 읽은 작가의 소설이다. 한때 그녀는 무수한 문학상을 수상하고 문학계 중심부에 위치한 듯했다. 한국문학에 잠시 눈을 뗀 사이 그녀의 이름은 기억 속 저편으로 잠시 숨어있었다. 집에 있는 몇 권의 소설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고는 하지만 이미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도 버거웠다. 그런데 왜 이 소설에 눈이 갔을까? 그것은 이제 기억에도 희미한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는 소개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뉴스에 둔감하다. 그 당시 오대양 사건이 매스컴을 도배했지만 깊이 있는 정보를 쌓지는 않았다. 그 당시 세계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사건들이나 책에서 본 이야기에 너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지존파 사건과 더불어 나의 기억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사건들도 그 빈도나 정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제대로 몰랐던 오대양 사건을 어떤 식으로 파헤쳤을까 하는 호기심이 이 책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지만 결국 다루고 있는 것은 모티브일 뿐 그 사건이 아니다. 

“이 냄새다.”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문장으로 시작한다. 화자인 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출생부터 그 당시 신신양회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보통의 공장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식당에서 일하는 여자들과 공장 노동자들과의 농지거리가 오고 가는 와중에 어머니의 존재는 우뚝 선 채로 모두를 압도한다. 나중에 어머니의 권위와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깨닫지만 그녀는 과거와 현재 속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떻게 신신양회를 비롯한 거대한 기업군을 거느리고 성장했는지, 또 왜 그렇게 몰락하게 되었는지 하고 말이다. 

소설의 구성은 조금 복잡하다. 모두 읽고 나면 그 구성이 특별한 것이 없지만 읽을 동안은 과거와 현재, 나와 다른 등장인물이 뒤섞이면서 조금 혼란을 가져온다. 나의 시점과 주변 이야기에서 갑자기 김준이라는 탤런트로 옮겨 가고 다시 최영주로 이어지면서 잠시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김준에서 최영주로 이어지는 고리에서 김준의 비중이 점점 사라지는 부분은 조금 아쉽다. 조금은 급작스런 퇴장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정교하게 짜인 구성이라고 해야 하나? 약간은 의문이다. 특히 김준이 받은 A라는 편지는 소설의 제목이자 끝나는 순간까지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것이 무얼까? 하고 말이다.

과거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그 속에 미래 이야기도 같이 다루고 있다. 신신의 지배자들은 여자들이고, 이미 그녀들은 자유연애와 사회의 윤리나 도덕에서 조금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고, 어머니의 과도한 욕심은 너무 앞만 보고 달리면서 생기는 큰 문제를 낳게 한다. 여기서 작가는 모계사회에서도 안정과 평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뭐 이것은 나의 확대해석일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멘트로 대변되는 80년대 건설붐은 현재와 너무나 닮아 있다. 이것은 다시 기태영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신신의 아들이 등장하면서 반복된다. 남자냐, 여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도한 욕심과 탐욕이 문제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오대양 사건을 모티브로 한 신신의 집단 자살사건은 허구와 사실이 교차하는 와중에 정확한 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렇게 악착스러웠고 자유로웠던 그녀들이 죽음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그만큼 의외인 것이다. 하지만 왜 그녀들이 그 당시 하나의 도구로서 혹은 자유의지로 아이들을 낳고 그곳에서 살았는지 알려주는 대목에선 그 시절 혹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남성 폭력, 가정 폭력 문제를 다시 한 번 되짚어 보게 만든다. 그리고 어떻게 그 사건들이 과거의 사건으로 이어졌고 현재까지 그 영향을 미쳤는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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