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패니메이션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
박태견 / 길벗 / 1997년 1월
평점 :
절판


문화일보 경제부 기자의 애니비평서. 아톰에서 슬램덩크까지 애니를 경제학적,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탁월한 저서.  

현재까지 출간된  애니 분석서 중에서 애니에 대한 중요도를 가장 심도있게 파헤친 책 중 하나이다. 


현직 기자답게 애니를 보는 시각이 날카롭다. 애니 자체의 비평 뿐만아니라 애니가 가진 사회적 힘과 경제적 힘, 문화적 역량을 세심하게 진단하고 한국의 애니 산업이 나아갈 방향 까지 제시한 역저.  

특히 애니가 어떻게 게임산업과 연관되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지, 일본의 대기업과 만화영화 제작사들 그리고 만화가들과의 관계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은 "세계 TV애니메이션 시장의 65%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아니메, 그들만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비밀은 무엇이며 21세기 최고이 부가가치 산업으로 떠오른 만화산업, 그리고 수십년만에 부흥기를 맞이한 국내 만화산업의 일대 도약을 위한 긴급 제안"을 충정어린 마음을 담아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한국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는 아주 괜찮은 저서 이다.  

경영학,경제학을 전공하는 사람 뿐만아니라 사회학, 만화학과 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도서. 그리고 한국 애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애니와 함께 책 읽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 이 책이 지금은 절판이지만 10년 전에 이 책을 읽을 당시 이 책보다 뛰어난 애니의 문화적 사회적 분석서는 단연코 없었다. 이 책이 유일했다. 그런데, 이 책을 뛰어넘는 애니 비평서나 분석서가 아직도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책이 출간 되긴 했지만..  이 책의 판매수입금 중 50%는 박재동 화백이 준비중인 국산 애니 <오돌또기>의 제작 후원금으로 지원된다고 했는데, 어찌돼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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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는 여자
김미진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0년 1월
평점 :
절판


하루만에 읽어버릴 정도로 빨리 읽히는 소설이다. 저번주 전경린에 홀려있었는데...주말을 또 사랑 타령하는 소설에 또 날려버렸다....근데, 재미있는걸 어떡하랴...
사랑에 대한 김미진의 생각을 보자...그 얼마나 전경린과 구별되는지...


<모차르트가 살아있다면>이후 두 번째 접하는 김미진의 장편소설. 모차르트 이후 단편에서 조차 볼 수 없었던 그녀의 작품을 실로 오랜만에 만나 본다. 7년 만인가....그런데, 모차르트 보단 약간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주제의 진부함이 컸다. 물론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다. 3류 통속소설 보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불륜..자전거를 타는 여인이라는 제목에서도 그 상징성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물론 불륜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내내 오래 전에 끝난 드라마 <푸른 안개>가 생각났다. 사회에서 성공했다라고 평가받는 한 중년의 남자가 한 20대 여자에게 영혼을 울리는 사랑을 느껴 가정과 직장을 모두 팽개치고 그 감정을 간직한다는 이야기...그녀는 떠나버리고 그는 아무것도 없는 거지가 되었다는...그 문제의 드라마 <푸른 안개>...사랑을 모르고 앞만 보고 왔던 한 남자 앞에 나타난 사랑에 그는 무너졌다.  

마찬가지로 사랑을 모르고 오로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하고 그럭저럭 살아온 이 소설의 주인공 미목. 어느 날 그녀 앞에 나타난 산 사나이 하훈으로 인해 그녀는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다. 몸의 세포 배열까지...모든 것이 푸른 안개의 주인공 이경영과 똑같다. 뒤늦게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존재를 만나는 사람들의 비극적 결말....<푸른안개>가 그랬고 영화 <데미지>와 <실락원>이 그랬으며 숱한 불륜의 통속소설들이 그랬다. 모두 사회의 지탄을 받는 화냥년 이었으며 가정을 버리는 철면피 가장 이었다.

불륜....모든 도덕을 무너뜨리고 서로 갈구하는 이 감정도 사랑이라 불리울 수 있는가? 모든 것을 파멸로 이끄는 그 열정을 우리는 당당히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가? 그 감정이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누가 보장하는가? 순간의 사랑이 모든 것을 파멸시켜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마음에 담을 수 있는가? 이따위 물음들을 던져본다. 드라마 <푸른 안개>가 종결되었을 때 대부분의 여성들이 이경영을 비난했다. 그럴 수는 없다라고....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바로 그 불륜을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그것도 한 단계 승화시키고 있다. 서로의 숭고한 죽음으로....(하훈은 로체의 정상에서 시신조차 없이 하나의 편지만을 달랑 남기고 죽었다)

김미진은 말한다. 

“사랑이 무엇인가요? 심리학자와 병리학자들은 인간의 신비를 낱낱이 해부했고, 인간의 사랑을 맥박 수와 디엔에이와 케미컬 언 밸런스로 도표화했어요. 인간을 알기 위한 노력으로 인간에 대한 신비감, 존엄성 같은 것은 다 깨져 버렸죠. 그러나 극단적 회의주의로 바라볼 필요가 앖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사랑은 오묘한 섭리예요. 과학이나 통계로 추론할 수 는 있지만 결코 증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에요.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거예요.”(하훈)  

“사랑을 사고 파는 사람들, 사랑이라는 감정에 몇 번 멍들고 아예 사랑한다는 것 자체를 포기한 사람들, 사랑에 불능이 된 사람들, 그들에게 귀띔해 주고 싶어요.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랑이라는 절대공간이 존재하고 있어요. 기술 문명의 급류 속에서 아직도 인간이 가장 우수한 종족으로 남아 있는 것은 바로 그 사랑 때문이죠. 사랑은 구정물 같은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 혈관속을 질주하는 운명이에요. 그 운명 속에 갇혔어요.”(미목)

이 둘의 대화를 통해 김미진은 단언한다. 불륜은 존재하지 않는다고...사랑이 그것을 증명했다고...비극으로 완성되야 더없이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과연 그런가? 그러면 그녀와 결혼하고 그녀 만을 바라본 남편 영준은 무엇인가?
나는 불륜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미목이 남편 영준을 죽인 거에 이르러서는 이건 잘못된 관계라는 걸 확신했다.

비극으로 완성한 불륜이 더없이 아름답다고?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영준의 입장에서 봤을땐 그건 결코 사랑일 수 없다. 미목과 하훈의 관계는 그야말로 천생연분. 나중에 진정한 짝을 만났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한쪽을 파멸시키고 당사자도 행복한 시간을 지속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둘 만의 사랑을 불륜, 불장난 등 여러 경멸 스런 어휘로 부르곤 한다. 어느모로 보나 하훈과 미목의 사랑은 세상이 환영하지 않는 그들만의 주관적인 감정이다. 
 

사랑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사랑이라 부르는가? 남녀의 독점적 관계속에서 피어난 독점적인 소유욕을 우리는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거 같다. 소설속 어디에도 단점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포용력은 없다. 오직 열정에 끌려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게 전부다. 살인적인 그리움은 있을지언정 용서하는 포용과 헌신 배려와 같은 건 없다.  

열정이 없어진 순간부터가 나는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열정은 모든 눈을 가려버리지만 그것은 영원하지 않다. 단언컨대 영원하지 않다. 하훈은 영원할 거라 단언하면서 죽어버렸지만... 

열정과 젊음이 사라진 후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랑이 죽음으로 완성된다는 건 넌센스다. 사랑은 인간이 실존해 있을때만 누릴 수 있는 인간만의 특권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죽을때까지 알아가는 과정이 또한 사랑이다. 불륜으로 맺어진 두 남녀가 죽어 더 아름답다는 망발을 어떻게 소설가가 천연덕스럽게 주장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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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심만만 심리학 - 정말 궁금한 사람의 심리를 읽는 90가지 테크닉
시부야 쇼조 지음, 김경인 옮김 / 리더북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부제가 ‘정말 궁금한 사람의 심리를 읽는 90가지 테크닉’이다. 영화 <What women want>의 멜깁슨처럼 여성이 생각하는 것을 바로 들을 수 있다면야 굳이 이러한 책을 읽을 필요가 없겠지만 현실은 몽상이 아니기에 이런 책이 유용한 것 같다.

실험심리학자가 쓴 인간행태 보고서 쯤 될까. 하지만 데스먼드 모리스의 <맨워칭>과는 분명히 다르다. <맨워칭>은 행태 관찰에 중점을 두고 분석한 책이지만 이 책은 거기에다가 ‘관계’의 축을 더한 것이다.

수많은 상황에서 똑같은 행동은 다른 의미를 표현한다. 그게 심리와 연관이 있다는 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 부지불식간에 우리 몸은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적 규칙상 생각한 것들을 바로 말하지 못한다. 그 지점을 우리의 몸은 행동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몸은 알고 있다나~

어느모로 보나, 총 7장으로 구성된 내용을 살펴보면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분석들이 유익하다.

1. 습관으로 그 사람의 숨겨진 성격을 안다.

2. 얼굴표정으로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안다.

3.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주의하라.

4. 무심코 하는 행동으로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5. 업무스타일로 그 사람의 심리를 알 수 있다.

6. 소품이나 패션으로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7. 말투로 그 사람의 본심을 알 수 있다.

1장과 2장 그리고 7장은 일터와 연애전선에서 오해를 줄이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게끔 도움을 받을 수 있다. 3장은 피해야 할 사람을 알려주고 6장은 첫인상 관리에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여러 행태가 심리를 표현한다는 점을 짚고 있는데, 이미 알고 있던 것도 있고 좀 억지스러운 사례들도 눈에 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것, 그럴듯한 분석들이 꽤 있어 읽어 나쁠 건 하나도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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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습관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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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을 읽었습니다. 읽는 중에도 계속 불편했습니다. 대담하고도 도발적인 섹스에 대한 내용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책 말미에, 이 책이 문화일보에서 기획된 '우리시대 젊은 여성의 성과 사랑'의 기획의도 하에서 쓰인 글을 한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 문화일보 소설 난에 릴레이식으로 젊은 여성작가들의 소설들이 연재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여간~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절대~ 지하철에서 읽을 수 없습니다. 낮 뜨거워서. 거의 포르노소설을 방불케하는 적나라한 내용으로 인해. 첫 장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장까지 그 수위가 유지됩니다.

그런데 마광수의 저작들과 남과 여에 대한 다른 연애지상주의자들의 책을 꽤 봐왔지만, 전경린의 <열정의 습관>만큼 수위가 높고 불편한 책은 못 보았습니다. 마광수교수의 <성애론>과 여타 감각적인 소설들이 남성의 입장에서 서술된 것이라면 이 책은 철저히 여성의 입장에서 묘사되어 있어, 느낌이 무척 다릅니다. 저는 그것을 불편함이라 느낌입니다만...

확실히 여자와 남자가 느끼는 성과 사랑은 철저히 다른 것 같습니다. 똑같은 행위를 하는 와중에서도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사랑으로 인해, 섹스로 인해 고뇌하는 것 또한 범주가 확실히 다름을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소설은 단편식의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미홍, 인교, 가현 등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을 부각시켜 단편을 구성하고, 이들을 친구관계로 엮어 한편의 장편소설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제는 위에서 밝혔던 대로 여자들이 느끼는 성과 사랑을 가식을 벗어던지고 좀 더 진지하게 얘기해 보자는 것입니다.

미홍은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순간순간의 느낌에 충실한 여자. 인교는 무엇이 사랑인지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서 번뇌하는 여자. 가현은 사랑이 뭔지는 모르지만 섹스가 반드시 동반되야 하지만, 그 진실이 무엇인지 흐릿해서 오르가즘에 집착하는 여자.

소설은 이 3명의 여성을 등장시켜 작가의 성애론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무리 봐도 주인공은 미홍입니다. 인교와 가현은 미홍의 논리를 완성시키기 위한 보조적 장치이자 보론인 것 같고, 요점은 미홍인 것 같습니다.

미홍을 대리해서 전경린이 주장하고 있는 느낌 있는 사랑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랑은 결국은 섹스이고, 섹스는 느낌으로 인해서, 순간순간의 감각에 충실한 것이 그의 삶에 가장 충실하다는 생각에는 ‘아니야~!’를 외치게 됩니다.

전경린은 무수한 사랑에 대한 담론을 쏟아내지만, 솔직히 저로서는 동의할 수 없는 것들뿐입니다. 이전의 여성작가들이 묘사한 성적내용은 매우 추상적이고 고리타분해서 그저 그렇고, 전경린은 너무 급진적이어서 불편합니다.

이 작품은 그냥 가벼운 불편한 소설만은 아닙니다. 감각적으로 시작된 첫 장의 에피소드가 뒤로 갈수록 심각해지고 진실로 묻고 있습니다. ‘그런 것으로 인해 네가 행복하니’라고. ‘그런 행위가 진정한 사랑인가’라고. 그리고 ‘섹스가 한 인간의 삶속에 무슨 의미인가’라고.

인생은 여러 경우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인간, 저런 인생. 하지만 미홍이 보여주는 삶은 중독된 쾌락주의자의 모습입니다. 오로지 섹스에 탐닉하는…. 그런 식의 주장이라면, 마약도 동일한 맥락으로 상습복용을 정당화 시킬 수 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물론 가식을 벗어던진 느낌에 충실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그걸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자유연애에 찬성표를 던지지만 사랑이라는 표현은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랑도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을 존중해주는 것처럼 섹스를 제외한 사랑이 모든 가식은 아닐 것이고, 인간 실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오로지 섹스에 의한 감각적 느낌에만 머물기에는 인간의 사랑이 과연 1차원적일 수밖에 없는지...무한한 의문의 듭니다.

솔직히 이 책은 불편했지만, 여성이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어떤 흥분의 매카니즘을 갖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습니다. 사실적인 묘사가 없었다면 몰랐을  여성들의 사랑관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어 큰 소득을 올렸다고 생각됩니다. 읽을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읽는 이의 사랑에 대한 가치만큼 더 많은 생각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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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빌리 그래함 지음, 지상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죽음이란 무엇일까? 두려운 것, 알 수 없는 것, 부정적인 것들의 언표일까? 일차적으로 죽음은 생명의 소멸이다. 소멸하지 않는 생명체를 없다. 죽음은 한계적 개념이다. 그래서 인간을 특징지운다. 인간의 굴레란 다름 아닌 죽음이기에. 죽음이 없다면 그 존재는 인간이 아닌 柛일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존재란 하이데거의 표현처럼 ‘죽음을 위한 존재’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은 ‘죽음의 개념’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죽음을 신학적 차원으로 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그래서 죽음에 대한 방대한 신학적이고 실증적인 보고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수많은 예화와 교훈적 경구, 통찰적이고 적절한 성경의 인용들로 가득차있다. 자살이 왜 죄가 되는지, 믿는 사람들의 병과 갑작스런 죽음, 빨리 죽는 것과 늦게 죽는 것의 차이, 안락사 문제등 죽음과 관계된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그레헴 목사는 죽음은 두려운 것이 아니고 우리가 의연히 받아들여야만 될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삶과 떨어질레야 떨어질 수 없다. 죽음은 두려운 것이고 삶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편견일 뿐이다. 죽음은 삶을 전제로 하고 삶은 죽음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으로서 죽는 다는 것을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주님의 친절한 팔에 안기기 위한 일종의 통과의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기차가 종착역을 향하여 앞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인간의 삶의 여정도 끝을 향해 달려가는 존재이다. 곧 살아간다는 것은 생명의 끝을 향해 서서히 죽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우리의 삶이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좋을까? 이 책에서는 그 과정을 성경적으로 검토하면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회개와 구원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부대끼면서 살아가야할 일상의 생활을 간과 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본적 생활 태도는 아마도 우리에게 내일이 없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아닐까? 내일이 없다는 생각은 오늘이 생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오늘 떠오르는 태양을 내일 다시 볼 수 있다는 암묵적 전제는 오늘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죽음을 언도받은 사람만이 시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뼈저리게 느끼며 어제의 일상이 새로운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 것처럼, 유예된 시간이 얼마 없다는 마음가짐은 사소한 것에서도 하나님을 볼 수 있고 사소한 일상의 일들과 인간의 문제들에 좀 더 너그러워지며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죽음에 대해서는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는 한계상황이 있게 된다. 이 책의 저자인 훌륭한 그레헴 목사조차도 그가 죽음에 직면 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완전한 평화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떠나야 한다는 현실사이에서 갈등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아무리 주님의 품에 안긴다 하더라도 죽음에 대한 슬픔만은 남게 된다.

 죽음에는 1인칭 죽음, 2인칭 죽음, 3인칭 죽음이 있다고 한다. 1인칭 죽음인 자신의 죽음은 지각될 수 없다. 죽고 난 뒤 어떤 감정인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3인칭 죽음은 이러저런 아무개의 죽음이다.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닌 3인칭의 죽음도 전혀 슬픔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나에게 의미 있는 존재인 2인칭의 죽음은 차원이 달라진다. 이 2인칭의 죽음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한다. 이는 우리의 부모, 형제 ,친구가 죽는 것이다. 이들 속에 있는 내가 죽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억제할 수 없는 슬픔의 눈물, 죽음의 공포, 죽음의 비극성을 인식하게 된다.

 저자는 이 책에서 2인칭 죽음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슬픔과 비극성 때문에 실의에 빠지고 좌절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빨리 일상의 생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그 역할을 호스피스들이 떠맡아야 할 사명으로 보고, 호스피스제도를 바람직한 그리스도인들이 지향해야할 봉사정신으로 보고 있다. 그는 호스피스 활동으로 인해 죽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모습으로 죽을 것인가?’는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물음과 같다. 모든 생명체가 다 죽음을 맞이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그 죽음의 존재가 필연적 사실임을 인식하면서 살고 있다.

 죽음은 인간을 인간이게끔 조건지워주는 대전제이다. 그것은 시작과 끝이다. 언젠가 우리는 죽은 사람들의 환영의 모습만을 갖고 살아가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다음 세대의 기억 속에만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죽음은 남아있는 사람과의 필연적 이별을 수반하는 하나의 여정의 끝이지만, 그것은 단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재회를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여정의 시작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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