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이용해 영화를 보곤 하는데, 1월에는 설 연휴가 끼어 있어서 그런지 좀 많이 봤다. 대부분은 설 연휴기간에 줄창 본 것들이다. 정리하고 보니 1월은 영화만 본 것 같은 느낌..ㅎ

평점은 뭐, 주관적인 생각이 많은 거라 일반적인 영화 평점과 좀 차이가 날듯.

 

 

1. <회사원>     나의 평점: ★

소재는 꽤 참신했지만 그렇고 그런 조폭 영화계열로 마무리되서 많이 아쉬운 영화. 좀 색다르게 연출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이 <달콤한 인생>의 플롯에 '회사원'의 상황을 덧입힌 구조. 근데, 퀄러티는 정말 한참 떨어지는 것 같다. 좀 색다른 영화가 탄생할수도 있었는데, 감독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조폭 생활을 일삼는 사람이 일반 회사원의 애환이 묻어 있는 대사를 한다는 자체가 넌센스다. 그런데, 감독이 이 불협화음의 깊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해서 결과적으로 망한 작품이 된 듯.

 

 

2. <호스트>     나의 평점 : ★

상당히 퀄러티가 떨어지는 영화도 기호에 맞으면 재밌게 보는 편이다. 그저 그런 영화라도 대부분 끝까지 보곤한다. 하지만 몇몇 영화들은 참을 수 없는 지루함과 엉성함으로 보기를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히 SF계열은 아무리 재미없어도 끝까지 보는 스타일인데, 이 영화는 보는 중에 시간 낭비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했다. SF로맨스 물이라 보기엔 엉성해도 넘 엉성한 듯. 특히 주인공이 혼자 대사하는 부분에서는 꺼버리고 싶었다. 몇 번 반복되니, 자연스럽게 off버튼을 눌러버렸다는. 최악의 SF 영화 중 한 편으로 기억 될 듯하다.

 

 

3. <엘리트 스쿼드 2>     나의 평점: ★★★★★

이건 순전히 네이버 영화 평점으로만 선택한 영화다. 평점과 리뷰를 보니, 꽤 높아서 선택한 영화. 아주 드물게 브라질 영화라서 쉽게 몰입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작하자마자부터 엄청나게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연출, 시나리오, 연기 등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듯한 영화. 계열은 액션 장르인데, 본질은 사회 및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영화다.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그 부패가 시스템을 가져 작동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현재 브라질이 월드컵을 앞두고 시위를 하는 이유를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영화다. 사회 비판 영화를 재미 있는 액션 영화로 보일 수 있도록 한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명작이다. 

 

 

4. <언어의 정원>     나의 평점: ★★★★★

신카이 마코토는 애니메이션에 인간의 감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감독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를 이을 감독은 현재 신카이 감독 이외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듯하다. 통속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8세기 <만엽집>에 수록되어 있는 사랑의 시가로 멋지게 해석해 내다니...그것도 45분 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속에서! 더욱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멋진 비주얼까지~

더 이상 지껄이는 건 무의미한 작품이다. 안 보신 분들은 강추드린다. 탄성을 지를만한 비주얼만 봐도 그냥 시간이 갈듯~

 

 

5. <토탈리콜>     나의 평점: ★★★

원작을 리메이크 했는데, 비주얼을 제외하고는 모든 면에서 원작보다 한참 떨어졌다. 개인적으로 아놀드 주연의 <토탈리콜>을 3번 보았다. 볼 때마다 느꼈던 점이 시나리오 자체가 넘 훌륭했다는 거다. 물론 원작 소설이 있는 작품이었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져 소설보다 더 멋진 영화로 만들어진 몇 안 되는 작품이라고 자평하곤 했다. 그래서 몇 년 전 리메이크 판이 개봉됐을 때 영화관에서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먼저 본 사람들의 리뷰가 매우 부정적이라서 그냥 넘어갔다. 한참 지나서 보니 DVD로 나온 게 눈에 띄었고, 주인공 캐스팅이 꽤 괜찮은 것 같아 빌려보았다. 아, 근데 개봉관에서  영화를 보고 실망한 사람들의 이유를 알 것 같다. 플롯 설정이 원작과 너무 달라 많이 이질적이었고, 이게 결정적으로 퀄러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 듯하다. 전작의 클라이막스는 화성의 대기권이 열리면서 화성 이주민들의 식민 상태가 종결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리메이크 작은 식민지 설정 자체가 지구로 되어 있어, 새로운 내용을 보는 듯했지만, 주인공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은 원작의 플롯을 그대로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불협화음이 일어난 듯보인다. 무엇보다 주인공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전개상 개연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많이 보여 많이 아쉬웠다. 그래도 볼만 했던 이유는 원작보다 발전한 비주얼적인 면과 케이트 베킨세일과 제시카 비엘의 액션 연기.

 

 

6. <본 레거시>     나의 평점: ★★★

본 시리즈 완결판이라 광고해서 본 건데, 많은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 영화다. 레이첼 와이즈와 에드워드 노튼의 캐스팅임에도불구하고 이 영화가 평타 수준으로 떨어진 건 아마도 남주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사람처럼 주인공의 연기는 뭔가가 계속 어색했다. 그렇기는 에드워드 노튼도 매한가지였다. 첩보 역할의 캐릭터를 온전히 보여주는 데 실패한 듯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본의 유산이라는 타이틀을 걸기엔 플롯의 연결구조가 함량미달인듯하다. 간간히 언급되는 뉴스와 서류 정보 그리고 이전 배우들의 모습만 비춰주면 본 시리즈와 연결되는 건가? 영화의 주된 내용은 요원들의 약물 투여이고 그걸 왜 투여하고 CIA 요원들이 임무를 행하는지, 본시리즈와 어떤 연결고리가 있어야 참다운 <본 레거시>라 부를만한데, 그럴만한 개연성이 전혀 없다. 그냥 다른 첩보물로 개봉했으면 이보단 나았을 거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영화다. 그냥 첩보물로 보기에는 볼만한 영화이지 않을까 한다.

 

7.<컨빅션>     나의 평점: ★★★

conviction은 유죄판결, 강한 신념, 확신 등의 뜻을 갖는 단어다. 영화를 보면 타이틀의 의미가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담게 된 걸 알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일종의 고발 영화 계열의 작품. 자신의 오빠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8년의 형을 살게 되는 동안 여동생은 오빠의 무제를 밝히기 위해 스스로 변호사가 되어 오빠의 무죄를 밝혀내는 놀라운 내용이다. 이게 실화라는 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 정말 영화같은 스토리다. 힐러리 스웽크와 샘 락웰의 탁월한 연기는 실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감동적이지는 않다. 실화 자체가 감동을 유발하기 충분한데 말이다. 그래서 평론가들로부터 좀 박한 평점을 받은 듯. 좀 지루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런 고발 영화는 그만이 갖는 가치가 있기에 별 3개.

 

 

 

8.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     나의 평점: ★★★★

<킹 메이커>를 보고 주목하게 된 배우 라이언 고슬링. 그가 주연으로 나온다길래 봤다. 진부한 내용이지만 감독이 아주 유쾌하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막장으로 흐를만한 이야기가 후반부의 유쾌한 반전으로 인해 '가족에 대한 사랑' 영화로 둔갑했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수작이다. 내가 이 계열의 영화를 무척 기피하는 편인데, 아주 재미있게 보았다.

 

 

9. <플라이트>       나의 평점: ★★

이건 뭐, 항공 스릴러 계열의 작품인줄 알고 기대하며 보았는데, 영화의 주 메시지는 알콜 중독자의 계도(?)를 목적으로 만든 작품인 듯했다. 개인적으로 이런 계몽적인 내용을 종용하는 영화를 아주 싫어한다. 근데, 이 영화는 대놓고 홍보하는 느낌. 비행기 결함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여객기를 베테랑 기장의 기막힌 실력으로 탑승객 대부분을 살리는 경착륙에 성공한다.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기장은 영웅으로 추앙받지만 고질적인 알콜 중독증이 발각되면서, 결국에는 보호감호 처분을 받게 된다. 보다 보면 비행기 사고의 원인이 기체의 결함이냐 아니면 조종사의 과실이냐 라는 이분법적 갈등 구도가 돋보이는 스릴러물로 생각되지만 중반을 넘으면 영화의 초점이 알콜 중독 쪽으로 급선회 한다. 그리고는 알콜 중독 계도용 멘트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뭐, 이런 후반부 내용에 점수를 후하게 주는 분들도 많지만 개인적으로 너무 계도적 상황을 들이대는 것 같아 좀 아쉬운 감이 든다. 플롯 속에서 얼마든지 감상자들로 하여금 조종사의 행위를 판단하게 할 수 있는 게 더 괜찮았을 듯.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스릴러물을 기대했는데, 중독 계도용 영화가 되어 무척 실망스러웠다는.

 

 

10.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나의 평점: ★★★

2012년 영화이다. 9.11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이 사건을 소재로 한 휴먼, 가족 드라마 영화가 봇물 터지게 만들어졌다. 첨에는 이런 류의 영화들이 볼 만했고, 충분히 공감할만 했다. 그런데, 계속 끊임없이 나오니, 식상해졌다. 톰 행크스와 산드라 블록 그리고 토마스 혼의 연기는 정말 훌륭했다. 플롯 구조도 좋았다. 하지만 진부한 주제의식이 맹점이었다. 감동적인 내용이지만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처음에는 아이의 눈으로 이끌어가는 가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후반부를 보니 이건 아이의 엄마 이야기였다. 결국은 가족의 사랑이야기인데, 비슷한 내용을 너무 많이 봐서인지 별로 감흥이 없는 게 흠이다. 이건 개인적인 감상이고, 분명한 건 이 영화가 아주 잘 만들어 졌다는 거. 보는 사람에 따라서 별4개 내지 5개는 받을 수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한다.  

 

 

11. <시크릿>     나의 평점: ★★★★

가진 자들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아무리 추악한 짓을 한다하더라도 권력과 돈이면 모든 것을 무마하고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회고발 작품. TV에 나와 경제 상황을 강의할 정도로 유명한 한 뉴욕의 헤지펀드계의 거물 사업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가정적이고 매너 넘치는 성공한 경영인이다. 하지만 그 이면을 보면 회계 장부를 조작하고 불륜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파렴치다. 어느날 그는 자신의 세컨드를 테우고 지방 간선도로를 달리다 졸음 운전으로 인해 여자가 죽는 사고를 당한다. 이후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경찰에게 꼬리가 잡혀 그가 범인임이 점점 명백해 진다. 하지만  경찰은 그를 잡아 넣지 못한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그가 권력을 갖은 갑부이기 때문. 정황상 범인임이 명백해도 경제적인 권력과 사회적 신망으로 인해 얼마든지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리얼하게 보여준다. 특히 마지막에 갑부가 자수를 하지 않고 연단에 오르는 장면은 압권! 그의 가족으로부터도 외면받지만 그는 여전히 위선의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고 있다. 갑부에 리처드 기어를 캐스팅 한 건 신의 한 수 인듯. 그는 정말 추악한 짓을 능청스럽게 잘도 연기해 낸다. 속편이 기대되는 영화. 로버트 밀러의 딸로 열연한 브릿 말링이라는 여배우를 안 것은 보너스~

 

 

12. <코쿠리코 언덕에서>     나의 평점: ★★

지부리 작품들 중에서 최악의 작품은 아마도 <게드 전기>일 것이다. 정말 훌륭한 원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판 애니를 망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 작품이다. 이게 지부리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런데, 이에 버금가는 졸작이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작품의 실질적 지휘자였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는 자기의 한계를 빨리 깨닫는 게 지부리 발전을 위해 이로울 듯하다. 정말 연출력이 형편없었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신파조 출생의 비밀 이야기로 관객을 눈높이를 충족시킨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물론 잘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다카하타 이사오의 <추억은 방울방울>이나 곤도 후시유미의 <귀를 귀울이면>을 떠올리면 신파조라도 얼마든지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니, 이런 작품들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곤도 후시유미가 죽지만 않았더라면 지부리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여하튼 과거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 까지는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애니 극장판에서까지 출생의 비밀을 둘러싼 신파조의 플롯 구조는 참을 수 없다. 감독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작품이라 간단히 평하고 싶다. 

 

 

13. <인 시디어스>     나의 평점: ★★★★

공포영화를 꽤 좋아하는 매니아다. 그래서 즐겨보는 편이다. <쏘우1>을 만든 감독이라해서 주저없이 선택한 영화다. 워낙 <쏘우1>을 강렬하게 봐서(정말 끝에 그런 반전이 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경악할 수준) 기대치가 높았다. 역시 감독은 공포영화의 연출이 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다. 제임스 완. 이 감독의 작품들을 다 찾아 본 것은 아니지만 두 편을 본 소감은 어여 빨리 그가 만든 작품들을 죄다 찾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영화다. 이 영화는 뭐, <드레그 미 투 헬>과 비슷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를 보는 재미는 <드레그>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쏘우1>에는 많이 못 미치지만 그래도 공포영화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어 좋다. 마지막 반전도 꽤 괜찮다. 차기 작을 기대하기 충분한 영화다. (찾아보니 역시 있다.ㅎ)

 

 

14. <제로 다크 서티>     나의 평점: ★★★

이건, 뭐 마지막 30분을 위해 1시간을 훌쩍 넘은 시간을 견뎌야 하는 그런 영화다. 내용은 빈라덴이 어떻게 사살됐는지 알려주는 거. 영화는 빈 라덴 사살 작전의 내막을 잘 모르는, 그냥 결과만을 알고 있는(언론을 통해) 일반인을 위해 친절하게 처음부터 하나씩 알려준다. 그 베일의 핵심은 CIA여자 요원의 집요한 빈 라덴 색출작전이라는 거. 그녀는 CIA에 입사하여 한 일이 이게 전부다. 일게 여자 일반 요원의 작적이라 윗선을 움직이기가 힘들었다는...뭐, 그런 내용인데, 마지막 30여 분을 위해서 1시간 이상은 지루함을 견딜 수 있을 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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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싸리 2014-02-03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대로 연휴 즐기셨네요. 소개한 영화중 본건 없네요. ㅜㅜ 몇 편 보고싶긴합니다.
저는 티브에서 '감시자들' 한 편 봤네요. 죽은 정우성만 불쌍하고 설경구는 의연하게? 사니 왠지 꼴보기 싫더군요. ㅋㅋ

yamoo 2014-02-04 10:07   좋아요 0 | URL
네...잘 논거 같아욤^^ 한국 영화를 별로 못봤습니다. <변호인>을 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못보게 되네요. 티비에서 해 준 <감시자들>도 못봤어요. TV시청을 안하는지라...호불호가 갈려서 이것두 나중에 디비디로 감상하렵니다~ㅎ 쉽싸리님은 이번 연휴 어떠셨는지...잘 지내셨길 바랍니다~^^

비로그인 2014-02-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대단하세요.. 우아.. 이걸 다 보셨군요.. ~~언어의 정원은 저도 챙기겠습니다.. ~~

yamoo 2014-02-04 10:09   좋아요 0 | URL
넵~! 다 봤어요. 물론 보다 재미없었던 건 안 봤습니다만, 그 외 껀 다 봘지요.ㅎ 새벽숲길님께서두 영화 좋아하시는 거 같은데...전, 잡탕이라, 추천 받은 거 위주로 봅니다. 언어의 정원은 꼭 보기길 강추드립니다~^^
 

며칠 전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5)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그냥 가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읽기 시작한 소설집. 작년과 올해 통틀어서 유일하게 읽은 소설집이다. 단언컨대 내가 올 해 다시 소설책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원동력은 바로 체홉의 이 소설집이다.

 

 

지하철에서 단 1편의 작품, 그것도 5페이지에 불과한 소설을 읽었지만 정신적 감흥은 꽤 오래갔다. 그가 단편소설의 천재 작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소설에서 나에게 이런 정도의 포스를 느끼게 한 건 키냐르의 <은밀한 생> 이후 처음이었다.

 

체홉의 소설들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읽은 후 감동은 더 말해서 뭣하랴. 체홉의 유머 단편집도 있어 찾아 봤는데, 그건 또 얼마나 웃기던지. 작품들을 읽으며 찬탄해마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체홉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이다. 그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가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이 계속 머리를 멤돌게 한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며, '암, 그의 작품을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간결한 문체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유머와 위트 이면에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 속에서 체홉이 잡아 내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들을 읽으면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는 느낌이 마구 들게 된다.

 

그런데, 어제부터 '정신이 성숙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다. 그러면서 의문점이 계속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정신이 성숙한다는 게 도채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물음. 그리고 여기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걸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사우나에서도, 도무지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조금만 짬이 나면 이 생각이 튀어나온다.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성숙해진다'는 게 아주 이상한 표현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한 것도 자꾸 생각하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분명해 보였던 건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는 명제였다. 헤겔이 말위에 탄 나폴레옹을 처음 보고 '저기 절대정신이 있다'고 외친 것처럼 정신은 있는 것이지 성숙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 실례로 '시대 정신'이 있는 것이지, '시대 정신'이 성숙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친김에 더 나아가 보기로 하자.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소설을 즐기는 면을 보면 말이다. 더군다나 먼 옛날부터 형이상학이라는 이론을 정초해 낸 것을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어떤 고귀한 능력'이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천부인권 사상'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가침(남에게 침해받지 않을)의 기본적인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상 말이다.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 등등.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은 '천부인권 사상'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고귀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분명해 진다. 천부인권이 성숙한다? 이건 너무 이상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 뭐가 성숙하는가? 천부인권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드러나는 정도에 있다. 사회의 발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잘 발현되지 못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쁘게도, 나의 이런 생각은 약 200년 전 혜강(1783~1877) 최한기 선생의 철학에 닿아있다. 혜강은 자신의 기(氣)철학을 펼치면서 아주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설(說)을 내 놓았다. 그게 바로 기일분수(氣一分殊)론이다. (사실 기일분수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서경덕 임성주 등의 기철학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복잡하니, 뼈대만 보도록 하자. 상황을 현대적으로 설정해 보면 이렇다. 다섯 개의 물이 든 비커에 각각 투명한 구슬을 넣는다. (순서대로 1번부터 5번까지) 그리고 1번을 제외하고 2번 비이커부터 먹물을 단계적으로 떨어뜨린다. 마지막 5번 비커의 구슬이 안보일때까지.

 

그러면 다섯 개의 비커는 처음 맑고 투명한 비커에 담긴 비커부터 마지막 5번 비커까지 먹물의 농도에 따라 배열된다. 1번 비커는 아주 투명하여  구슬이 선명하게 보인다. 2번 비커부터 4번 비커까지는 먹물의 탁함 때문에 구슬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인다. 4번 비커는 잘 안보이지만 5번 비커와 비교하면 그래도 비커에 구슬이 담겨져 있는 형태는 볼 수 있다. 5번 비커는 물이 너무 시커멓게 되서 구슬조차 볼 수 없다.

 

혜강 선생의 설명에 따라 해석해 보면, 여기서 구슬은 인간 정신이고 먹물의 탁함 정도는 개인의 기질 차이다. 1번 비커는 기질에 나쁜 것이 전혀 섞이지 않아 본연의 인간 정신이 모두 발현되는 예이다. 그에 비해 5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이 너무도 탁하여 인간 본연의 정신이 하나도 드러나지 못하는 예이다. 2번부터 4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의 탁함 정도에 따라 인간 정신이 발현되는 정도가 다른 예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단계별로 드러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간의 정신이 성숙한다'는 생각을 문제의식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양 사상에 기반한 지성의 산물 때문인 듯하다. 베르그손이 말한대로(<창조적 진화> pp305-306) 지성은 항상 지성과 맞아 떨어지는 '어떤 느낌'을 찾는다.

 

그 '어떤 느낌'이 정신이 될 때 우리의 지성은 정신에게 명백한 공간 표상을 암시해 준다. '성숙'은 당연히 '미성숙'을 전제한다. 미성숙과 성숙의 이 간극, 다시 말해 정신은 단번에 공간을 획득하고 그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일단 공간의 형식을 소유한 정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개념을 재단한다. 그러하기에 '정신이 성숙한다'는 이 비유는 지성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을 공간적으로 구획할 수도 없거니와 이로부터 확장(또는 연장)되는 인격화는 더욱 문제점을 심화시키기 때문. 다시 강조하지만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 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그런 고로 우리가 문학 작품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행위는 우리의 정신이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물에 휘둘려 드러나지 않았던 고귀한 정신이 비로소 문학을 만나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덧.

1. 그럴듯한 말일수록 의심해 보는 깜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설날의 깊어가는 밤이다.

2. 하반부에서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아카넷, 2005) pp305-306 부분을 나름 이해하여 논의 전개 과정에 적용시켜 봤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번역본이 너무 좋지 않아 '지성성과 물질성'부분을 10번 이상 읽었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비문이 넘쳐났다. 본문에 해석된 베르그손의 이론이 오독이라면, 이는 순전히 번역자(번역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음)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10번 이상 읽고 고 박홍규 교수의 <창조적 진화>강독도 참고 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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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 님 덕분에 저 책 ..장바구니에 바로 넣었습니다..~~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자주 꺼내보게 될 것 같은 문장입니다

yamoo 2014-02-03 17:11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 반갑습니다!

혹시 체홉의 소설을 아직 만나지 못하셨다면 이 기회에 읽어보심 좋을 듯싶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일 때문에 읽지 못하다가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습니다. 늦게 만났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라 안도됩니다^^

페이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4-02-0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홉의 작품에 반하셨군요? 행복한 일입니다.
저도 어떤 작품에 매료될 때마다 저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만 같아요.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 아, 어려워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

yamoo 2014-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반했어요.ㅎ 그쵸, 즐거운 일입니다. 앞으로 체홉의 작품이 번역되면 낼름 사 볼 예정입니다..ㅎ

흠...생각해 보시고, 나름 답을 내시면 알려주세요.^^
 

책을 사지말아야지 맨날 다짐을 하건만,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른 날이면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나온다. 그리도 자제했건만 '이건 지금 사야 하는 책이야!'라는 내 속의 나 아닌 나가 나를 대신해 계산을 끝내버린다.

 

정신을 차려보면 책이 손에 들려있고 심한 자괴감에 빠져 하루 종일 자책하곤 한다. 하지만 맨날 그런 건 아니다. 어제 같이 대어(?)를 낚으면 그나마 위안이 되고, 읽고 있으면 흐뭇해지는 바보같은 나를 발견하게 되니까.

 

어제 알라딘 신림 중고 서점에서 구입한 책은 켄터베리의 안셀무스 주저인 <모놀로기온 프로슬로기온>이다. 예전에 학교 철학개론 교과서에 안셀무스의 '신의 존재론적 증명'이 수록되어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이 무슨 말같지도 않은 증명인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읽으니 그의 치밀한 논증에 경외감이 들 정도였다. 그가 책 속에서 언급하고 있는 물리적 강도의 표현은 분명히 <베르그손>의 <시론>에서도 비슷한 논의를 확인한 바 있다. 결국 베르그손은 안셀무스의 이 책을 읽은 것이 분명하며, 베르그손의 이런 강도에 대한 논의는 11세기까지 소급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전에 알라딘 신림점에서 한 번 사려다 놓친 책인데, 다시 만날 줄은 몰랐다. 아주 흥미롭게 읽고 있는 중이다. 번역도 정말 잘 돼 있어 술술 읽힌다~

 

사실 복수의 책을 병행하여 읽고 있는 지라 안셀무스의 저서를 읽는 건 좀 모험이었다. 요즘 체홉으로 인해 다시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기에. 체홉의 단편들은 정말 재미있고 저절로 몰입이되며 감동까지 있으니 어찌 안 읽을 수 있으랴.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바로 그의 다른 단편집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하루만에 다 읽고 보니, 더 이상 체홉의 단편집은 없었다. 그래서 러시학 문학 코너에서 골라든 책이 레오니트 안드레예프의 <가룟 유다>이다.  십여 페이지가 남아 있어 오늘 중에 다 해치울 수 있겠다.

 

 

 

 

안드레예프는 처음 접한 러시아 작가인데, 이 작품은 꽤 매력이 있다. 유다의 행적을 상상력으로 매꾸어 성경과 전혀 다른 해석을 보여주는 작가의 필력은 예사롭지 않다. 다만 열린책들의 번역본과 비교해서 번역의 퀄러티가 떨어지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상황 상 이해가 여러운 부분이 꽤 있었기 때문. 어쨌거나 이 작품, 읽을 만하다.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만 있는 책이 있다. 살림문고본인 <성스러움과 폭력>. 거의 르네 지라르의 저서들을 압축하여 저자 나름으로 정리해 주는 내용인데, 나름 읽을만하다는 생각이다.

 

 

 

 

 

 

 

더는 책을 사지 말아야 하는데, 항상 다니는 길목에 알라딘 중고서점이 있는지라, 걱정이다. 그냥 지나쳐 가다가 다시 돌아가 돌아봐야 직성이 풀리니....그럼 손에 책이 들려 있고...ㅜㅜ

정신 없는 와중에도 알라딘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게 정말 신기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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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4-01-2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모르는 저자가 많네요. 검색해 봐야겠어요. ^^

체홉의 단편집은 워낙 유명해서 읽었고, 다른 단편집에서도 체홉은 만나지죠.
단편의 대가이죠.
노벨문학상을 탄 앨리스 먼로를 현대의 '안톤 체홉'이라고 할 정도...
아마 소설을 쓰려는 작가지망생들이 제일 관심 있게 본 책 중 하나가 체홉의 단편집일 듯해요.
그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단 생각이 지금 드네요. 오래됐어요.
아마 느낌이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아요. 그런 걸 경험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에요.

yamoo 2014-01-31 23:43   좋아요 0 | URL
안셀무스의 저 책은...혹시 교회에 다니시거나 천주교에 다니시면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근데, 종교가 없으시다면, 뭐 패쓰해도 되는 책입니다..ㅎ

단편의 대가임을 전 요즘에야 알았어요~
흠...작가 지망생들이 제일 관심있게 보는 작가가 체홉이었군요! 몰랐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솨~^^

전 체홉의 다른 소설들을 찾고 있는데, 많이 없네요. 러시아 단편들도 찾아 보는데, 엉뚱하게도 다른 러시아 작가들을 알아가는 이색적인 재미가 있네요~ㅎ

가연 2014-01-26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셀무스의 저 책은 저도 언젠가 꼭 봐야지 하고 벼르던 책이었는데.. 중고로 있었군요ㅠ

yamoo 2014-01-31 23:44   좋아요 0 | URL
아, 가연님도 벼르고 있는 책이었군요! 새로 출간된 책을 보니, 가격이 ㅎㄷㄷ 합니다. 바뀐 건 하나도 없는 듯한데, 1만원 이상 비싸니..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만나는 행운을 누리시길 기원드립니다!ㅎ

세실 2014-02-0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세상에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훠얼씬 많아요.
왜이리 생소할까요?
체홉은 귀여운 여인만 생각나요.

야무님 남은 설 연휴도 편안하시길요~~~~

yamoo 2014-02-03 18:50   좋아요 0 | URL
읽지 않은 책이 수천 배, 아니 수십 만 배 되는 거 같아요..
출판사에서 다투어 고전을 내주지 않으면 그리고 요즘 핫한 신간들을 내 주지 않으면 명저가 뭔지 알 수가 없어요. 정말 생소한 책이 많긴 많아요^^

세실님, 설 연휴 끝나고도 편안히 지내시길~^^
 

요즘 개봉하는 영화들 예고편을 보니, 보고 싶은 영화가 꽤 된다. 그 중에서 <캡틴 하록>은 영화관에 달려가서 볼려고 했는데, 더빙했다고 해서 주춤하고 있다.

 

그런데, 먼저 본 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3D의 비주얼은 훌륭한데, 액션은 별 볼일이 없다고. 더군다나 원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면 다량 실망하겠다는 논지다.

 

아, 이걸 어쩐다나...아무래도 <캡틴 하록>은 DVD 출간을 기다려야 할 듯하다. 실망할 각오를 하고 봐야겠지.

 

실망을 각오하겠다는 말에서 알아차렸겠지만, 나는 하록의 광팬이다. 80년대 초에 나온(82년으로 기억한다)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는 실로 엄청난 퀄러티를 자랑하는 작품이었다. 줄거리는 오래되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하록이 왜 우주해적이 됐는 지 그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극장판이 나온 이유는 캡틴 하록이 아주 갑자기 등장한데서 연유한다. 1977년 방영된 <우주전함 야마토>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입되어 <나르는 전함 V호>로 방영되었다.) 방영될 당시, 야마토호가 적에게 타격되어 괴멸상태에 빠졌었는데, 그때 혜성같이 나타나 야마토 호를 구하고 유유히 사라진 캐릭터가 바로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었다.

 

 

 

 

당시 이 부분 에피소드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하록 선장>의 TV시리즈가 탄생하는 계기됐다고 한다.

 

어쨌든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 세계관(일명 레이지버스라고 함)의 한 축을 담당하는 우주해적의 탄생은 모자이크와 같은 그의 레이지버스에서 빠질 수 없는 캐릭터이다. 마츠모토에 의해 창조된 하록은 압도적인 카리스마로 최고의 남성성을 보여주었고 당시 남성들의 로망이었다고 한다. (최고의 여성 캐릭터는 999의 메테르. 하록은 지금봐도 너무나 멋진 캐릭터다.)

 

하지만 <하록 선장>의 인기는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고 999 TV시리즈(은하철도 999) 방영 이후 폭발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999마지막 편에 갑자기 등장한 하록은 위기에 빠진 999호와 데츠로를 구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그러하기에 '하록은 누구인가'에 대한 마츠모토의 팬 서비스가 <하록 선장>의 외전 격인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극장판이다.

 

 

 

 

이 작품을 감상하지 않으면 <퀸 에메랄다스>, <은하철도 999>, <우주전함 야마토>에서 갑자기 나타난 하록을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호기심만 증폭된다. (뭐, 그 때문에 하록 캐릭터가 탄생한 거지만)

 

그래서 이 작품은 마츠모토의 레이지버스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하록이 해적이 된 동기와 한 쪽 눈을 잃게 된 경위 그리고 그가 타고 다니는 아르카디아호가 어떻게 건조 됐는지 모두 알려주기에 그렇다.

 

외전 형식이지만 작품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퀄러티가 높다. 이 작품의 주제는 자유인데, 하록이 어떻게 자유를 위한 투사가 되는지 아주 밀도 높게 보여준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정말 아포리즘을 방불케하는 멋진 말들로 점철되어 있다. 130분 내내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에 절친인 평생의 친구 도치로의 영혼이 깃든 아르카디아호를 타고 '발진'을 외치는 하록의 대사는 정말 압권이라 할만하다. (1982년에 이런 정도의 극장판을 낸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일본에서는 하록의 인기에 힘입어,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2003년 OVA판까지 만들어지게 된다. 그게 바로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다. 총 13화 분량으로, 린타로(999극장판 1.2의 바로 그 감독)가 감독을 맡아 매드하우스에서 제작되어 DVD로 발매됐다. (이후 니혼 TV를 통해 방영됨.)

 

지금 개봉되고 있는 <캡틴 하록> 3D 극장판의 원작이 아마도 <우주해적 캡틴 하록> OVA DVD판인듯하다. 이 작품은 마츠모토 레이지의 우주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기에, 그 내막을 알고 보는 것이 유익하다. 그렇지 않다면 3D 비주얼위주로 보게되어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지 않을까 한다. (근데, 대부분 원작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이런 한계점을 갖는 듯..)

 

 

그 옛날, 하록의 캐릭터에 심취한 기억이 있는 3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는 <캡틴 하록>이 매우 반가울 듯. 이 만큼 향수를 자극하는 작품도 드무니...

 

이 작품과 하록 캐릭터를 아직 잘 모르는 분들에게 약간의 팁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페이퍼를 발행한다. 부디 재밌게 감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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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4-01-25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걸 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어린 시절 하록선장을 보면서 동경했던 기억이...

yamoo 2014-01-25 16:24   좋아요 0 | URL
세인트님도 하록선장 동경하셨군요! 반가워라~^^

고민 중 발견한 정보가 메가박스에서는 자막 3D라네요. 가서 보고 싶지만 저는 DVD 나올 때 까지 기다려볼 심산입니다^^

사마천 2014-01-25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인 하록, 철이 (데츠로) 그리고 영원한 꿈의 여인 메텔 등.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

yamoo 2014-01-26 13:22   좋아요 0 | URL
사마천님도 레이지버스의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군요! 반갑습니다~^^

격려해주시니, 열심히 글을 올려야겠다는 각오가 불끈~ 솟습니다만....워낙 천성이 게을러서 맘 같지 않네요. 어쨌든 감사합니다!ㅎ

alligatorn 2016-06-0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전함야마토에서 나오는 하록이 나오는편이 몇화인가요?

yamoo 2016-06-11 16:45   좋아요 0 | URL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후반부에 나옵니다. 야마토 호가 적에게 궤멸당할 직전에 나타나거든요~ㅎ
 
[블루레이] 언어의 정원 (16p 설정집) - 한국어 더빙 수록
신카이 마코토 감독, 이리노 미유 외 목소리 / 아트서비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별의 목소리>를 보고 단박에 빠져버린 신카이 마코토 감독. 단 25분여의 러닝타임으로 사람의 감정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감독의 역량에 혀를 내둘렀다. 매우 젊은 감독의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그 울림의 강렬함은 대단했다.

 

이런 체험 후에, 감독의 작품들은 거의 내 두 눈을 훔쳐갔다. 작품들 모두 좋았지만 항상 <별의 목소리>에 비해 2% 정도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어 아쉬웠다. 콕 집어 뭐라고 할 수 없는 그 느낌. (뭐, 그런거 있지 않나.. 가슴이 먹먹하고 어떤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피부를 통해 올라오는 전율감에 휩싸이는 그런 느낌말이다.^^)

 

헌데, 오늘 만난(그제 토요일) <언어의 정원>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 듯 보였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주말마다 나는 공공도서관에 간다. 책을 빌리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목적은 DVD를 빌려 보기 위해서다. 집에서 나온 김에 항상 들르는 곳이 알라딘 중고 서점. 철학코너와 역사 코너에서 둘러보고 흥미진진한 두 권을 사서 도서관으로 갔다.

 

원래는 <빅 피처>를 빌려보려고 했다. 헌데 누군가가 빌려갔단다. 그래서 차선으로 덴젤 워싱턴 주연의 <플라이트>를 신청했는데, 그것도 역시 대출 중. 그래서 그냥 예약을 해 놓고 나올 찰나, 누군가 반납하고 갔는지 사서가 <언어의 정원>을 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걸 보겠다고 하니, 사서가 그러라고.

 

이 작품에 대해서 여러 말들이 많았다. 아쉬워하는 소리가 많았는데, 아마도 짧은 러닝타임 때문인 듯했다. 많은 것을 담으려 했는데, 분량상 한계에 봉착했다나 뭐라나. 하지만 짧은 시간으로도 놀라운 완성도를 자랑했던 신카이 감독이었다. 기대감에 차서 보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나는 이 작품을 3시간여 동안 감상했다. 불과 46분에 불과한 러닝타임이지만 처음 보고 자막이 올라갈 때 울컥했다. 아름다운 영상뿐만 아니라 화면 속에 감정을 담아내는 디테일에 있어서는 단연 최고였다고 생각됐기 때문. 그리고는 계속 봤다.

 

줄거리는 그저 그런 통속적인 내용이었다. 남고생과 여선생의 사랑이야기. 하지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만엽집>의 가키노모토노 히로마로의 시구 두 편을 통해 격조 높은 사랑의 시가로 승화시켰다. 이 작품의 타이틀인 <언어의 정원>은 정원 속에서 두 주인공이 이 시가로 연을 맺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나는 이 작품을 연속으로 3번 보았고, 최고의 연출력이 발휘되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무려 10번도 넘게 돌려 보았다. 사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같은 부분을 10번 이상 반복해서 본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무척 드라마틱하게 연출된 부분에 꽂히곤 하는데, 기억나는 작품으로는 대작 <베르세르크>가 있다. 이 tv시리즈 작품에서 가츠가 불사의 조드와 목숨을 건 칼싸움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감독이 정말 연출을 끝내주게 했다고 생각해서 수십 번을 반복해서 보곤 했다. 볼 때마다 감탄하곤 한다. 정말 질리지 않는다.

 

그 다음 비슷하게 반복해서 본 작품이 24부작 <페이트 스테이트 나이트> 엔딩 부분이다. 여주와 남주가 헤어지는 장면인데, 무척이나 상실감이 컸다. 그래서 이 부분도 십수 번 반복해서 보았다. 이별하면서 흐르는 엔딩곡이 정말 압권이었다.

 

<언어의 정원>에서는 엔딩 바로 전 장면이 나로 하여금 동일한 행위를 반복하게 했다. 아키즈키(남주)가 사랑 고백 후 유키노(여주)의 방을 나오고, 유키노는 혼자 흐느껴 운다. 그러다가 시(만엽집에 나오는 시가)를 생각하고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키즈키를 따라가 아키즈키와 마주한다. 그녀에게 대고 무자비하게 사랑의 불만을 쏟아놓는 아키즈키에게 유키노가 달려드는 상황이다.

 

특히 아키즈키가 그녀에 대해서 심하게 몰아세울 때 유키노의 표정변화와 마지막 아키즈키에게 달려들기 직전 한 줄기 햇빛이 유키노의 얼굴에 비춰지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내가 왜 이 장면에서 그렇게 뻑 갔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테리다) 이후 그를 안고 통곡하면서 그녀가 하는 말은 이 작품의 방점을 찍는 클라이막스가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 사진 직전이 클라이 막스. 여기서부터 엔딩곡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 작품을 반복해서 보다 보니, 갑자기 내가 알라딘에서 구입한 두 권 중 한 권이 <만엽집>에 대한 책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1994년 조선일보사에서 나온 <노래하는 역사>라는 책인데, 저자인 이영희님이 <만엽집>을 통해 한일 언어문화를 연구한 필생의 역작이다. (2009년에 2권으로 재간된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문가가 아니라서(이영희 씨는 신문사 기자 출신) 매우 저평가 된 저작이지만 일본에서는 일본 학자들에 의해 ‘이영희 테제’로 널리 알려진 책이다. 책의 결론은 <만엽집>에 쓰여진 언어가 신라의 이두였고, 신라어와 고구려어가 현재 일본어의 뿌리가 된다는 것.

 

시구 하나하나에 놀라운 상징과 그 시대의 상황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어 해석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책이 <만엽집>이다. 에로틱한 시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데, 시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두로 읽어야 할 곳이 산재해 있다고. 이 시가들을 연구하는 것은 신라와 백제 그리고 고구려 언어를 이해하는 귀중한 뿌리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언어의 정원>을 보게 된 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했던 이유다.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테마로 다루어지고 있는 시 두 편은 <만엽집> 제 11권에 실려있다. (참고로 아래 시가의 번역도 이두를 알아야 제대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시대의 표기는 현재의 일본어식 표현과 전혀 다른 이두를 일본어에 맞게 사용했기에 그렇다고.)

 

 

[원문과 번역된 시가]

雷神 小動 刺雲 雨零耶 君將留

천둥소리 울리고 하늘 흐려 비가 온다면 그대 여기 머무르게 하련만

 

雷神 不動 雖不零 吾將留 妹留者

천둥소리 울리고 비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

 

[작품에서 번역된 자막]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린다면 돌아가려는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이곳에 머무를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만엽집>은 사랑의 시가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시기(약 8세기) 사랑의 표현은 '孤悲'였다. (이 단어는 포스터에서도 쓰여져 있다) 새기자면 '외로움을 느끼는 비애'정도 될 듯하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만엽집> 시대의 사랑을 메타포로 가져온 게 분명하다.

 

하지만 꽤 단호히 주장할 수 있는 건, 이 작품이 8세기에 그려진 사랑의 의미를 그대로 차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메타포는 깔 돼 거기에 자신의 해석을 얹어 아주 멋지게 해석해 내었다. 나는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남주 설정에서 감독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일본 아스카 시대 시가의 명인으로 칭송받는 가키노모토노 히로마노의 시 두 편은 2013년 도쿄의 정원 안에서 주인공들로 인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비가 오는 정원의 한 정자(휴게터)에서 유키노는 아키즈키를 처음 만난다. 간단한 인사 후에 헤어지는 찰나, 천둥이 치면서 비가 오는 배경으로 유키노가 아키즈키에게 읊어 주는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오고, 구름이 끼고 비라도 내린다면 돌아가려는 널 붙잡을 수 있을 텐데(천둥소리 울리고 하늘 흐려 비가 온다면 그대 여기 머무르게 하련만)”이라는 시구는 8세기 때 이미 사어(死語)가 된 고전 언어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2개월 후에 유키노의 시에 답하는 아키즈키의 “천둥소리가 저 멀리서 들리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당신이 붙잡아 주신다면 난 이곳에 머무를 겁니다.(천둥소리 울리고 비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역시 더 이상 고어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의 사랑의 언어다.

 

이 모든 대화가 도쿄 한 복판의 정원에서(대개가 비 오는 상황) 오고 간다. 남녀 두 주인공이 6월에 처음 만나 9월에 헤어지기 까지, 유키노와 아키즈키는 비가 오는 날만 만나서 서로 위해주면서 가까워진다. 그 매개의 중요한 한 축이 바로 <만엽집>의 사랑의 시가다. (다른 하나는 ‘구두’)

 

그리고 아키즈키의 사랑 고백 후 혼자 울먹이며 앉아 있는 유키노에게 천둥소리 울리고 비 오지 않아도 나는 여기 머무르오 그대 가지 마라 하시면이라고 읊조리는 아키즈키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유키노는 그를 잡으러 간다.

 

아키즈키를 안으며 통곡하면서 하는 유키노의 말, 즉 그녀가 낙심해서 살 기력을 잃었을 때 다시 발을딛고 살 수 있게 해 준 이가 바로 아키즈키였다는 말은 사랑이 언어를 넘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일종의 알랑비탈?)을 깨닫게 한다.

 

 

 

신카이 마코토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망가진 삶'을 치유하고 계속 살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는 걸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만엽집>의 시가를 하나의 축으로하고, 다른 하나는 ‘걷는다’라는 행위가 구두와 함께 등장하는 플롯 구조를 완성한 듯.

 

이는 아키즈키가 구두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으로 설정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왜 구두였을까? 구두는 개인의 일상의 삶을 지탱해 주는 물리적 사물이자, 개인의 정체성과 자존심의 상징이기도 하다.

 

유키노는 일부 학생들의 그릇된 모함으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학교에 출근하지 못한다. 그 대신 공원으로 향한다. 이 상황은 심리적으로 정상이 아님을 나타낸다. 아키즈키에게 구두 디자인 문제로 자신의 발을 맡길 때, 그녀가 '걸을 수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은 그래서 중요하다. <만엽집>의 사랑(孤悲)을 감독이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지 알려주고 있는 포인트이기에 그렇다.

 

결국 마지막 클라이막스에서 유키노가 통곡하면서 하는 대사는, 감독이 8세기 사랑의 시가를 어떻게 자기식으로 해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명장면이지 않을까한다.

 

 

어쨌거나, 개인적으로 <별의 목소리>를 보고 난 후 계속 채워지지 않았던 2%를 충만히 채울 수 있어 뿌듯하다. <언어의 정원>이 아니라 '영상의 정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대단한 비주얼을 보는 것은 더블 보너스~! 

 

덧.

마지막 엔딩 곡이 너무 좋다. 마지막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엔딩 곡 때문에 반복 횟수를 늘렸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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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4-01-20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도 놀랍고, 『노래하는 역사』라는 책은 더 놀랍고,
yamoo 님의 해석마저 놀랍네요... 그저 감탄.. 감탄..

yamoo 2014-01-23 12:20   좋아요 0 | URL
영화는 정말 잘 만들었습니다. 오렌님께서 보시면 어떠실지...
<노래하는 역사>는 저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처음 건졌습니다. 94년도에 출간되고 01년에 재출간 되었는데도 전 모르고 있었습니다. 보니, 아주 좋은 책이더군요. 끝내주는 삽화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릴 뿐입니다!^^

페크pek0501 2014-01-22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카이 마코토가 이 작품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아마도 '망가진 삶'을 치유하고 계속 살아가게 할 수 있는 힘이 바로 사랑이라는 걸 일깨우고 싶었던 것 같다."
- 결국 사랑이란~
"사랑만이 굽은 것을 펴고, 회복하고, 조정하고, 일으켜 세울 수 있다. 진정한 창조력을 갖춘 사랑이야말로 완벽한 구원자다." - <초역 니체의 말 2>에서.
망가진 삶을 일으켜 세우는 것도 창조력이죠.

작품 해석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문제가 될 순 없는 것이죠.
작품은 독자나 관객의 해석에 의해 완성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창작자의 의도도 소용 없는 것...

화답하는 시가 참 좋네요.
님 덕분에 좋은 감상했습니다. ^^

yamoo 2014-01-23 12:22   좋아요 0 | URL
사랑이란 뭐, 그런거겠지요^^ 연출력이 끝내 줬어요~

작품 해석은 개인에 따라 다르니 뭐, 그렇지요.

만엽집에 수록된 시가라고 하는데, 정말 좋더군요.
저는 이 영화를 페크님에게 추천드립니다~^^

gostraight 2014-03-01 1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메일을 확인하면서 언어의 정원 포스터그림이 있길래 뭐지? 하고 눌러보니


안에 있던 내용이 이런 느낌이었구나 라고 새롭게 다시 느끼고 갑니다. 감사해요^^

숲내 2014-03-03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배우니 감사합니다.
함 봐야 겠네요.^^

Forgettable. 2014-08-04 1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엔딩은 음악이며 영상이며 대사며 갑작스러운 마무리까지 뭐하나 부족할게 없었어요. 눈물이 울컥.. 시구도 무척 좋았구요. 몇번이고 다시 보게 되더군요. 비슷한 부분에서 비슷한 감상이라 다시 영화본 직후의 감정이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 그런데 알라딘 검열 글 보고 들어왔는데 그 글도 사라졌네요.. 지우신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