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완 작가. 그가 또 신간을 냈나부다. 도서관에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 사람의 책들. 도서관에서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선전한다. 삼성전자 다니다 나와서 3년 간 책 1만권을 읽고 50여 권의 책을 쓰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사람...어쩌구 저쩌구..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기에 3년 간 1만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수치는 뭔가가 이상하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일하면서 책만 줄기차게 읽을 때도 1년에 1천권을 읽을 수 없었다. 그것도 상당수는 발췌독이었다. 뭐, 내가 읽었던 책들이 거의가 사회학이나 철학, 자연과학 이론서들이었기에 그랬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얄팍한 자게서 위주로 읽는다 쳐도 3년 간 1만권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저자가 자신의 책들에서, 자신이 독서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처음 1년간은 매우 고생했었노라고 고백한 부분이 있어서다. 상당히 공감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나도 책을 처음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후레쉬맨 시절, 독서 이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잡고 읽는 책마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고, 읽는 속도도 너무 느렸다. 당시 내 소박한 소원은 어떤 책이라도 좋으니 읽으면서 술술 이해하면 좋겠다는 거였다.

 

김병완 작가도 회사를 때려치고 독서를 하기 시작한 때, 그 독서 수준이 내 후레쉬맨 시절과 거의 같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시행착오를 아주 단번에 뛰어넘어 3년에 1만 권이란다. 자기 고백은 9천 몇백권이라는데, 난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왜냐구? 내가 한달 동안 밥만 먹고 책만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는데, 그걸 내가 맡은 적이 있다. 내가 때를 써서 해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덤탱이를 썼다. 그때 대표가 준비할 한 달 간의 시간을 줬다. (이런 케이스는 거의 없는데, 시간을 안 주면 일 때려 치겠다고 했기에)

 

그래서 내가 한 일이란 것이 필요한 책을 쌓아 놓고 줄창 책을 읽는 거였다. 출근해서 정해진 분량의 책을 가열차게 읽고 보고서 비슷한 걸 만들어 발표하는 거였다. 쓰는 건 이틀이면 됐기에 책을 읽는 작업이 매우 중요했고 가장 많은 시간을 필요로했다.

 

난, 고시공부를 한 이력이 있기 때문에 앉아서 책보는 거는 너무도 익숙하고 내가 그나마 잘하는 몇 가지 일 중 하나라서 신나게 프로젝트를 완료한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내가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두꺼운 하드커버의 이론서들로 400페이지 ~ 600페이지 정도의 책 500여 권이었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아침 10시까지 출근이었지만) 새벽 1시까지 밥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조리 독서에 할애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내가 정리해 가며 읽어야 하기 때문에 무척 집중하여 읽어야 하는 그런 독서였다. 물론 완독한 책은 정확히 28권이었다. 나머지 책들은 전부 발췌독이었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예컨대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을 하루에 본다는 건, 정말 말이 쉽지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기한이 정해져 있는 독서란 집중해서 좋긴 한데, 압박감 때문에 재미가 반감되는 단점이 있다. 그래도 <다산선생지식경영법>은 아침부터 시작된 독서가 밤 9시 정도가 되서야 끝을 볼 수 있었다. 중요 부분에 줄을 치며 집중하면서 초스피드로 읽은 덕택이다. 물론 흥미진진한 내용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머지 완독한 28권의 책들은 새벽1-2시가 되어서야 완독할 수 있는 책들이었다. 당시 읽은 책들의 목록 일부가 지금도 생각나는데, <전략의 본질>, <의사결정의 원칙>, <게임이론>, <이타적 인간의 출현>, <의사결정의 함정>, <매킨지식 전략 시나리오>, <로지컬 싱킹>, <유쾌한 딜레마 여행>, <자유주의>(미제스), <행복에 걸려 비틀거리다>, <실용논리학>, <선택의 논리학>, <세상을 바꾼 30가지 심리 실험> 따위의 책이었다.

 

 

 

 

 

 

 

 

 

 

 

 

 

 

 

 

 

 

대부분 심리학, 경영 전략, 경제이론, 논리학 등에 관한 이론서들이었다. 자게서로 분류되는 책은 거의 없었고, 굳이 꼽자면 <의사결정의 원칙> 정도 있겠다. 하지만 <핑>이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책은 아니다. 비즈니스의 경영 사례로부터 올바른 의사결정을 훈련하는 실용서이기에 쉬운 책은 아니다.

 

거의 고시 공부하다시피 읽은 책들이라, 신났지만 매우 힘겹게 읽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 영화도 보고 놀이도 하면서 집중했던 머리를 식혀줬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지만 이런 류의 책들을 1년 내내 읽는다면, 그것도 곤욕일 거라 생각했다. 청명하고 좋은 날씨에는 놀러 가는 게 독서하는 것보다 이롭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그런 독서를 한다손치더라도 1년이면 365권이다. 3년을 수인처럼 책만 읽는다하더라도 1천여 권 정도 뿐이 안된다.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잡는 순간 1년 365권은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분권된 것을 한권씩 셈해도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한 권의 분량이 하루만에 읽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독법을 배워서 읽은들 무리다. 아니, 이런 류의 책들은 속독으로 읽을 수가 없다. 문장마다 비수처럼 꽂히는데 어떻게 휘딱 읽을 수 있을까? <안나 카레리나>를 속독으로 읽는다? 그건 바보같은 독서다. 적어도 도스토옙스키나 톨스토이의 작품들을 읽는 데에 있어서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단언한다. 김병완 작가가 말하는(적어도 항상 광고지에서 책선전 하는) 3년 간 1만권은 완전 뻥이라고! 1만권을 읽기 위해서는 아주 얄팍한 책들 위주로 쉴새 없이 읽어야한다. 하루 10권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읽어야 3600권이다. 그래야 3년간 1만권에 도달한다.

 

근데, 이게 가능한 일일까? 수인(囚人) 생활을 하면 가능할 지 모르겠다. 주로 자게서를 읽어야 하루 10권을 채울 수 있다. 발췌독이라도 보통일이 아니다. 일단 <안나 카레리나>와 같은 장편소설을 잡는 순간 하루 10권은 절대 채울 수가 없다. 살림문고 10권이라도 정말 빠듯하다. <살사>나 <초콜릿 이야기>와 같은 쉬운 책을 3권만 읽어도 7시간은 족히 간다. (시간 재고 읽어봐서 안다.)

 

 

 

 

 

 

 

 

더욱이 김병완 작가는 <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아템포, 2013)에서 처음 직장 때려친 1년 간은 읽는 행위가 어려웠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 하루 10권은 어림도 없다. 도서관에서 책쌓아 놓고 한 권에 10여 페이지씩 발췌독 한 걸 모두 읽은 권수에 넣는다면 모를까.

 

아마도 내 생각엔 김병완 작가가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살았다고 하니, 하루 1-2권 정도는 완독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를 넘는 권수는 분명 발췌독한 것과 이리저리 넘겨 본 걸 모두 합산했을 거다. 비슷한 주제를 갖고 읽어 나가면 훑어본 것도 대충 읽은 거라 생각이 들기에. 그래도 미심쩍긴 매한가지다.

 

왜냐? 도서관은 적어도 한 달에 4번 휴관한다. 그리고 빨간날은 죄다 논다. 도서관 휴관이 매달 4일 이상은 족히 된다. 이런 날 집에서 도서관처럼 생산적인 읽기를 하기도 힘들 거다. 김 작가는 결혼도 했기에, 여러가지 경조사나 집안 일로 어른들을 만날 일이 꽤 될 것이다. 이런 걸 모두 제껴두고 책만 읽는다는 건 상황상 이해가 불가하다. 

 

고시공부와 같은 어떤 중차대한 목표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그런 수인생활을 감내해 준다. 근데, 김병완 작가는 그런 것도 아닌, 자기가 뭔가를 이루기 위해 자발적으로 책을 읽은 거 아닌가. 아무리 심지가 굳은 사람도 공부라는 목표가 없으면 쉽지 않다.

 

뭐, 그래 이 부분은 공감해 주자. 김 작가가 투철한 목표의식을 3년간 지속했다라는 걸. 그런데, 언제나 그렇지만 환경은 자기가 콘트롤할 수 없다. 3년 간 한번도 아프지 않아야하며, 어떤 가족의 대소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수인생활을 3년 간 지속해야 1만 권에 도달한다. 하루라도 삐끗하면 그 다음날 20권이 쌓이고 이틀이면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난 적어도 비슷한 생활을 해 봤기 때문에 하루 분량을 넘기면 어떻게 되는지 감이 잡힌다. 그런데, 김병완 작가가 저걸 가뿐히 해치웠다는 데에 못된 심술이 도진거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해 줄 수가 없다. 그가 이전에 계속 직장을 다니면서 독서이력을 쌓아 왔다면 어느 정도 공감해 줄 수도 있었을 거다. 속독력과 이해력이 높아지니.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전혀 아니었다.

 

그건, 그의 책 몇 권을 읽어보니 확실했다. 그는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생활을 하자면서, 자본이 주는 안락함의 힘을 예찬하고 있었다. 인용한 책들도 대부분 자게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인용부분도 여러 권을 쓸 때 알차게 중복 활용하는 것 같았다. 나는 확신했다. 그는 절대 <안나 카레리나>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레미제라블>같은 책은 읽었을 리가 없을 거라고. (읽는 순간 목표량을 채울 수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강연을 다니면서 독서의 대가처럼 말하고 다닌다. 난, 이게 싫은 거다. 거짓말 같아서. <기적의 고전 독서법>이니 <기적의 인문학 독서법>같은 책을 내고 전문가인양 가이드해 주는 걸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그는 고전을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를 하루만에 처음 읽는다?!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어느 정도 독서 이력을 쌓아서, 그래서 책을 겁나게 빨리 쓰는 재주를 가진 건 정말 부러운 재능이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책 한권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더군다나 내는 책마다 책이 팔리고 어느 정도 이름이 나고 강연을 다니는 걸 보면, 그냥 상황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을까. 환경이 자기를 택해 주었다는 것에 대해서. (난 환경결정론자라 항상 이리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근데, 그는 오로지 자신의 우월한 능력 때문에 그리 된 줄 착각하고 있는 듯보인다. 독서 전문가라고 활게치고 다니는 현재 그의 행태가 그렇다. 자신이 정말 독서전문가로 인식받고 싶으면 1만권을 어떻게 읽었고, 중요 책들의 리뷰라도 정리해서 책을 내는 것이 순리리라.

 

3년 간 1만권은 우스운 숫자가 아니다. 책을 낼때마다 계속 우려먹고 있는데, 1만권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헤아려보시길. 그의 책을 사서 보는 독자들도 생각해 보시길! 1만권을 읽고 쓴 그의 책들을 읽어 보니, 깊이는 커녕 이율배반적인 얘기를 자기도 인지하지 못하고 쓰고 있기에, 자연스럽게 의구심이 들어 이런 글을 쓰게 됐다.

 

물론, 그가 천재여서 그가 말한 게 모두 사실일 수도 있다. 내가 오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는 자기 책에서 자기의 평범성을 대놓고 강조하고 있었다. 자기도 일반 대한민국 사람들과 같다고. 그의 책에서 그런 내용을 공감하고 보니, 책좀 읽는 나로서는 당연히 의심을 가질만 했고, 책 1만권의 무게가 어떤 것인지 좀 헤아려보자는 의도에서 이 페이퍼를 쓰게 된 것임을 밝혀둔다.

 

마지막으로 난, 그에게 엇가 심정이 없다. 단지, 3년 간 1만권을 읽었다는 거에 태클을 걸고 싶었던 것일 뿐! 도서관에서 다시 김 작가의 포스터를 보니 본의 아니게 울컥하여 생각해 두엇던 것을 페이퍼로 쓰게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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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감는새 2015-01-09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예전에 지나가는 길에 읽고 오늘은 구글링해서 겨우 이 글 찾았네요.
좀 퍼가도 되겠습니까?
격하게 공감되는 글입니다.

yamoo 2015-01-15 22:5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음껏 퍼가시길^^

요롤레이요 2015-12-21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크...아직 대학교 1학년 학생이지만 전 하루에 책 한권읽기도 벅차네요..

전공은 공학이지만 주로 심리학이나 사회과학 경제학 역사학관련 서적을 읽는데 아직 1일 1권은 힘들더군요. 이번 방학 70일간 50권읽는것이 목표입니다 ㅋㅋ

yamoo 2015-12-27 19:01   좋아요 0 | URL
사회과학, 역사, 경제학 서적은 하루만에 읽기가 무지 힘듭니다. 낼 셤에 책에서 시험 낼꺼라고 하지 않는 이상 1권 읽기는 정말 무리입니다~ 300페이지 교양 경제학 책만 일독한다고 하더라도 10시간 이상은 집중해서 봐야되지 않을까 합니다~

AARRR 2017-11-15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책 내용을 이해하고 요약하고, 기억하고, 실제로 평상시에 적절한 타이밍에 무리없이 떠올릴 수 있는 수준의 정독으로는 아무리 뛰어나도 최대치는 연 200권 정도라고 봅니다. 실제 다독가들이 말하는 얘기들도 종합 해 보면 최대치가 보통 연 200권입니다. 일을 하고 생존에 필요한 시간을 제외하고 남는 시간 거의 전부를 책을 읽어도 연 100권쯤이 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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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총서 시리즈 중에서 한국철학 총서 시리즈는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널리 알려진 시리즈는 아마도 예문출판사의 한국철학자 총서일 거다. 대체로 동양 철학자 이름을 건 총서시리즈들은(동양철학 총서에 포함되곤 함)대학출판부에서 찍어 내기 때문에 일반에 널리 읽혀지지 않는다. 주로 논문 모음지이기에 수업용 교재로 쓰여 독자가 매우 협소하다.

 

시리즈를 펴 내면서 출간사를 책 앞에 수록한 시리즈도 거의 없다. 대학 교재인데, 그런 걸 넣어서 뭣하겠는가. 총서를 기획한 사람의 정성이나 기획의도를 가늠해 볼 수 없는 시리즈가 넘쳐나고, 대체로 비슷비슷하다. 대학 출판부에서 출간된 한국철학자 시리즈를 보면 대체로 고려 유학자로부터 시작해서 구한말 최제우나 김옥균에서 끝난다. 멋대가리도 없고 거의가 그게 그거다.

 

하지만 작년에 눈에 번쩍 띄는 한국철학자 총서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것도 한국현대철학자 시리즈다. 그리 많은 부수를 찍지 않았고 현재까지 5권만 나와 있는데, 여태까지 한국철학자 총서 시리즈 목록에서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이 눈에 띈다. 이대출판부에서 나온 이 총서 시리즈는 매우 밀도가 높고 만듬새가 좋다. 가격도 적절하게 책정한듯하다.

 

특히 내가 주목한 건 (언제나지만) 시리즈 출간사다. 시리즈를 펴내며 편집위원인 씨알학회의 출간사가 아주 멋들어지게 수록되어 있었던 거다. 보통 출간사는 한 페이지에 간략히 넣는 것이 보통인데, 이 시리즈 출간사는 무려 2페이지 분량이나 된다. 읽어보면 이 시리즈를 읽어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구친다. 무엇보다 근 백년 간의 한국의 철학자들을 묶어 시리즈를 낼 생각을 한 건 아마도 씨알학회가 처음인듯하다. 이 시기는 일제 식민지와 맞물려 우리 나름의 '근대'를 찾지 못했던 시기이기에.(물론 내가 무지해서 일 거다. 다른 목록을 모두 검토해 본 것도 아니니..)

 

발간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현대철학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 있으면 그들은 누구지?'라는 의문들. (우리 역사에서 근대가 없었는데, 현대가 가능해? 라는 의문)

그리고 과연 이들의 사상이 한국현대철학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우리 사사상사에 큰 족적을 남겼는지도 의문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봤던 건 <박홍규의 철학>인데, 얼마전 타계한 고 박홍규 교수가 우리 사상사에서 어떤 업적을 남겼길래 이 시리즈에 포함됐는지 의아했던 건 사실.

 

박홍규 전집 중 두어 권을 봤었는데, 제자들은 많이 길러냈는지 몰라도 그가 우리 철학에 한 획을 긋는 어떤 철학 이론을 제창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뭐, 이런 문제의식은 <박홍규의 철학>을 읽은 사람들의 몫이겠지. 어쨌든 매우 이례적인 철학 총서 시리즈인 까닭에, 그리고 전대미문(내용이!)의 발간사가 수록되어 있기에, 여기 옮겨본다. 관심있는 분들은 한 권 택해 일독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김교신과 서남동 그리고 박홍규는 정말 이 시리즈에서만 볼 수 있을 듯!)

 

 

 

| 시리즈를 펴내며 |

 

 

  이제까지 한국에서의 철학 연구는 동양과 서양으로 나누어 주로 강대국(중국,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의 사상들 가운데 주류로 알려진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한국에서 동양과 서양을 분명하게 분리하는 태도는 20세기 초 일본의 동양통합론에 의해 더욱 확산되고 습관화되었다. 이 때문에 전 인류의 지혜를 참조하여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보편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연구 태도는 희석되고, 전공별로 나누어진 좁은 테두리 안에 갇히게 되었다.

  서양철학의 연구는 본국에서 제기된 문제와 해답을 개괄적으로 소개하거나 모방하여 한국의 현실에 적용하는 수동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러한 실정 때문에 서양철학 문헌들에 대한 사상적 연구는, 번역과 개괄적인 소개 논문의 수는 증가하였으나, 그 창의성에서는 해방 전후의 수준보다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철학 교육의 차원에서도 연구 대상에 대한 주체적이고도 비평적인 설명과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시적 유행 사조로서 혹은 임의적으로 선택된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 대학 교육의 현장에서 교육되어 왔다.

  동양철학으로 분류되어 왔던 동아시아 사상도 철학과마다 한두 명의 연구자를 두고는 있지만 근대 이전의 전통 사상에 대한 연구와 소개에 머물러 있다. 아시아 철학의 연구 또한 전통의 권위에 기대는 수동적 연구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거나, 일본과 중국의 선행 연구 방법에 거의 의존하는 에속적 여건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의 상황이 던지는 문제에 대응하거나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고 피력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게 했다. 이 빈 공간은 현대 성양철학이 자신의 전제에 대한 깊은 음미 없이 자신을 선전할 수 있는 무대가 되었다.

  한국 사상계의 이러한 타성적 관행은 최근의 관제화되고 수량화된 시장주의적 강제에 의해 인식조차 되지 못했다. 대학이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양성하고, 학술보다는 기업 이윤에 한눈을 팔 때, 한국 청년들의 영혼은 머리 둘 곳이 없다. 또한 창조적 문제 제기와 문제 자체에 대한 분석 및 자발적 해결의 의지에 기초하지 못하는 연구 풍토가 연구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부재로 더욱 촉진되었다. 연구 공간의 시장화와 이에 따른 인간관계의 외면화가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연구자들 자신이 속한 역사적이고도 현실적인 조건에 대한 학술적이고도 사상적인 반성과 대응을 가로막았다. 특히 이 시대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근 백년 간의 한국의 현대사상사적 흐름에 대한 주체적 관심의 결여로 철학은 자신들이 어떤 문제를 역사적으로 부여받고 있는지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무자각적 철학은 단지 자신들의 철학을 전공 상태에서도 통ㅇ요될 수 있는 것처럼 무반성적으로 외우며 가르치는 철학 청부업일 따름인 것이다.

  그동안 비주류이자 비체계적인 가치관으로 치부되어 왔던 근 백년간의 한국 사상사을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연구하여 발간하는 것은 한국 사상계의 난국을 타개하는 데에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출발은 근현대 한국철학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여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것은 발전시키고, 타당성이 의문시되는 관념들은 유보하거나 비판함으로써 재사유와 반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먼저 일차적으로 간단한 자료집을 해설을 첨부하여 발간하고자 한다. 그리고 차후로 현대철학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 논문과 연구서를 발간할 게획이다.

 

 

2011년 7월

씨알학회, 근현대 한국사상사 연구모임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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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상식'이라는 타이틀을 내 건 이 시리즈는 비슷한 류인 웅진 출판사의 [고정관념]시리즈 보다 훨씬 괜찮은 교양 총서다.

 

마치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관련 주제를 묶어 책으로 낸 듯 보이지만, 내용은 그리 허접하지 않다. 체계를 갖추려고 노력한 총서다. 물론 분량상 기획상 수준은 그리 깊은 것은 아니다.

 

타깃층은 아마도 예비대학생과 학부 교양 강좌 정도가 될듯하다. 내가 제일 처음 접한 책은 <자본의 세계화>였는데, 편집이 꽤 괜찮아서 다섯 권을 구입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시리즈는 전신이 이소출판사의 [세상보세]시리즈의 연속이었다. 나에게 이 시리즈의 <민주주의>와 <국제이주>가 있었는데, 이후 출판사 책을 구입한 후 제목이 같아 비교해보니 똑같은 책이었다.

 

아마도 이소출판사가 [세상보세]시리즈를 절판시킨 후 판권을 넘겨(아니면 자사의 출판사 이름을 바꿨든가) '아주 특별한 상식'시리즈로 대체한 듯하다.

 

 

 

 

 

 

 

 

 

 

 

 

 

 

 

 

 어쨌든 <민주주의>와 <국제이주>를 비교해 보고 같은 책을 가졌지만 다른 총서라서 재밌는 느낌을 받았다. 이후 출판사 시리즈는 종이질도 훨씬 좋고 배판도 좀 녋어져 좋지만 가격이 상당히 높게 책정되 있어 그것이 좀 거슬린다. (민주주의 이후에 나온 책들은 만원이 넘는다..)

 

 

 

 

 

 

 

 

 

 

 

 

 

 

 

 

 

 

 

 

 

 

 

 

뭐, 비슷한 시리즈로 [고정관념]시리즈나 영림카디널의 [도미노 총서]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전체적인 책 만듬새가 훌륭하고 내용도 괜찮아 이 책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물론 [도미노 총서]는 나름대로 장점을 가졌기에 단순 비교는 힘들지만(주제도 다른 것이 상당히 많다)~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모두 5권이다. 이런 류의 시리즈 중 상당히 만족하고 본 책들이라 컬렉션화를 결정했다. 꽤 괜찮은 교양총서니, 혹시 모르시는 분들에게 강추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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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장 결정적이었던 건 '하이브리드 총서'시리즈. 이 시리즈는 '하이브리드'라는 의미에 의아함을 갖게 하는 총서였다. 뭐가 하이브리드라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이상한(?) 기획력의 결정판이었다....라고 나는 자평했다.

 

그리고나서, 대형 서점 과학 코너를 자주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총서가 바로 이 <교양과학 오디세이> 시리즈다. 얇고, 가볍고, 읽고 싶게 만드는 꽤 인상 깊은 총서였다. 출판사를 확인하고 내가 기획력에 의문을 품었던 바로 그 출판사라는 사실에 살짝 놀란감이 없지 않았다.

 

작년 봄에 발견해서 서점에서 몇 권 서서 훑어 봤는데, 꽤 괜찮았다. 단지 가격이 좀 비싼 편이라서(권당 1만원이 넘는다는..) 알라딘 중고 서점에서 구입하려고 미뤄뒀었다. 그러다가 작년 겨울 쯤, 모 헌책방에서 이 시리즈 전집을 반값에 판매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당시 주머니가 얇아서 그냥 패스 했는데, 요즘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낱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음, 이건 확실히 괜찮은 총서다. 특히 <지식과 감정에 대하여>와 <논리와 문법> 그리고 <사물의 핵>이 다른 출판사의 비슷한 과학 교양 총서에서는 만나볼 수 없는 책들이다.

 

 

 

 

 

 

 

 

 

 

 

 

 

 

 

 

 

 

작년에 구입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상당히 미련이 남는 총서다. 아쉬운 감을 달래고자 총서 열전 첫 페이퍼를 쓴다. 책 날개에 총서의 기획의도도 간략히 언급돼 있어 여기 옮겨 놓는다. 쉽고 알찬 교양 과학 책을 찾는 이들에게 유용한 가이들을 제공할 듯~

 

'교양과학 오디세이' 시리즈의 의도는 자연과학과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분야들을 두루 선별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데 있다.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과학 지식과 이론을 누구나 알기쉽게 설명한 책이므로 세세한 내용은 생략했으며, 탁월한 과학 전문가들이 일반 대중을 상대로 쉽게 풀어서 전달하도록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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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마지막 날 <루시>를 봤습니다. 맥스무비 할인쿠폰으로 2000원에 봤지요.ㅎ 이 영화에 말들이 많고, 특히나 영화를 본 지인들이 죄다 졸작이라는 평가를 하더군요. 네이버의 단평들을 보니, 좋다는 게 부지기수인데 말이죠. 그래서 본지 오래됐지만 보고 나서 몇자 끄적거려 놓았던 것을 좀 정리해 봤습니다.

 

 

이 영화는 순전히 지인때문에 보게 됐습니다. 추석을 앞 둔 몇 주 전 만난 지인이 "한국어 대사를 하는 최민식의 아우라를 볼 수 있어!"라는 멘트가 결정적이었지요. 뤽 베송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 중 해외 오프닝 최다 관객을 동원한 영화라기에 동하기도 했습니다.

 

 

 

 

네이버에서 이 영화를 검색하면 액션 영화 장르라고 돼 있습니다. 루시(스칼렛 요한슨)가 장(최민식)에게 쫓기면서 말도 안 돼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면을 보면.. 뭐, 액션 영화 장르로 봐도 무방하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면서 전 약간 사기 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이건, 액션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뒤통수를 후려쳤기에 그렇습니다.

 

영화 시사회 끝나고 뤽 베송과 최민식이 나온 대답을 봤는데, 그때 감독이 그랬죠. 10년을 준비했다고.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였다고..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뤽 베송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더군요. 이 작품은 시간과 인간에 대한 뤽 베송의 철학적 성찰을 뚜렷이 드러낸 일종의 다큐영화입니다. 다큐 영화를 만들려니 지루해져서 액션 이라는 활극 스토리로 포장한 것이 이 작품의 실체같습니다.

 

표면적인 이야기는 인간이 두뇌를 100% 활용하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란 것입니다. 영화는 이를 단계적으로 보여줍니다.

 

10%, 인간의 평균 뇌사용량,  24%, 신체의 완벽한 통제, 40%, 모든 상황의 제어 가능, 62%, 타인의 행동을 컨트롤, 100%, 인간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음

 

주된 플롯의 축은 루시의 뇌 가용량이 100%에 근접할수록 전지전능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이고, 다른 축은 이런 뇌 사용량의 한계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어느 박사의 이론입니다.

 

결국 합성 약물이 박사의 이론을 현실화 시켜주게 되고, 이 과정에서 여러 가설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뇌과학과 진화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등장합니다만,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건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뤽 베송은 영화 중간에 나래이션을 통해 아주 직접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이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자동차가 점점 빠른 속도로 달리다가 빛의 속도로 달린 후 없어져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설명이 이어지다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끝맺습니다.

 

"시간이 없다면 인간 존재는 없다."라고요. 곧 시간이 인간(시간이 인간 존재를 규정한다)이라는 겁니다.

 

근데, 이건 어디서 많이 들어본 주제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베르그손이 지속적으로 말해왔던 바로 그 '시간'이지요. 베르그손은 그의 주요 저서들 속에서 일관적으로 시간을 증명했습니다.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시간의 존재를 증명하다니...우리는 시간에 맞춰 살고 미토콘드리아 내의 텔로미어가 닳아 없어지면 노화로 생명을 다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라 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실체가 없는, 그렇지만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니 인간을 지배하는 이 시간을 베르그손이 철학적으로 증명해 낸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철학자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베르그손은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에서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물질과 기억>에서는 지속하는 시간이 인간 내부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증명했지요. <사유와 운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속하는 시간을 다른 각도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창조적 진화>에서는 이 모든 것을 '알랑 비탈'로 집약시켜 주요 생철학자로 자리매김하지요.

 

 

 

 

 

 

 

 

 

 

 

 

 

 

 

 

 

 

 

 

 

 

 

 

 

 

 

뤽 베송은 베르그손이 증명한 이 '지속하는 시간'을 좀더 감각적이고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 라인에 이 철학적 내용을 담다 보니, 감독은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던 듯합니다.

 

뤽 베송이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이 플롯 구조 속에 녹아들어가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도처에 플롯의 헛점이 산재해 있습니다. 뇌를 100퍼센트 사용하면 전능한 신이 된다는 설정 또한 짜증을 유발합니다.

 

그래서 액션영화로서의 재미를 반감시킵니다. 지인들이 졸작이라고 평가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 때문인것 같습니다. 차라리 그냥 다큐 영화로 만들었으면 훨씬 더 연출이 매끄럽게 될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물론, 흥행은 참패했겠지요.

 

그래도 뤽 베송은 자신의 철학을 액션 영화에 담을 생각을 했고, 어느 정도는 상업적인 면에서 성공했다고 보여집니다. 뭐, 영화적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만 그래도 철학적 주제의식이 뚜렷한 영화를 상업 영화로 포장할 수 있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네요.

 

전, 그나마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베르그손의 생각을 영화로 만나니 신선하기도 했구요.

 

아직 안 보신 분들은 한 번쯤 봐 줘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최민식을 제외한 깍두기 배역들을 연기한 한국 배우들의 어색함을 보는 재미도 솔솔하니까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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