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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나답게 - 인생은 느슨하게 매일은 성실하게
한수희 지음 / 인디고(글담) / 201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그냥 가만히 <베르그손>의 주저들을 독파할 생각이었다. 그저그런 책들은 이제 더이상 읽고 싶지 않다. 6월부터 계속 다른 책들을 열어보고, 넘겨보고 했지만 책을 선택해서 읽지는 않았다. 내게는 현재 <물질과 기억> 한 권으로도 벅차다.
6월1일부터 지금까지 총 3회독. 가장 어려운 1장은 6회독 쯤 한 듯하다. 읽을수록 번역으로 인해 열불이 나곤 한다. 이 더위에 진짜 이 뭔 쌩 지럴인지 모르겠다. 아, 더워도 너무 덥다. 이 높은 불쾌지수에 기름을 붙는 번역본이라니, 썅 소리가 절로 나온다~
간만에 퍼스에 대한 책을 검색하는 와중에(9월 이후 읽기 위해서) <온전히 나답게>(인디고, 2016)란 책이 관심을 끌었다. '나'를 온전히 살기 위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 <물질과 기억>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책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어떤 책인지 살펴나 볼 겸 맛보기 몇 페이지를 넘겨봤는데, 이건 뭐 시덥지 않은 에세이라는 인상이 짙었다.프롤로그와 304페이지에 있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이 어떤 책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고, 나는 이 책을 사서 보면 안 될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인생이 된다는 것. 하찮아 보여도 그게 인생이라는 것. 그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나는 살아가면서 배웠다. 그래서 그런 일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그런 일들에 대해 쓴 것들을 모으니 온전하게,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이런 제목의 책이 되었다. -프롤로그
인생이 하찮은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되는 것인가? 삶이란 하찮은 일과 의미있는 일이 뒤섞이고, 희로애락이 시간 속에서 몸과 기억에 새겨지는 과정이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삶을 전혀 온전히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한다.
인생의 즐거움과 비참함은 '하찮음을 다루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즐거움'과 '비참함'이라는 감정은 현재가 기억의 파편 속에서 순간 순간 만나 스펙트럼처럼 펼쳐지는 과정의 단면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생을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무수히 맞딱뜨리는 감정이다.
이런 감정은 살아가면서 교훈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다. 직관적으로 시간속에서 단숨에 느끼는 거다. '하찮음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인생이 즐거워질 수도 비참해 질수도 있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배웠다'는 건 시간과 기억 그리고 감정을 나누어 지성화(공간화)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써 모으면 그것이 온전한 자기가 된단다. 화석화 되고 조작화된 기억이 '온전히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한 사람의 인생으로 보인다'니, 더이상 말해 뭘할까.
아주 러프하게 생각해도, '나답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밝히고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제데로 된 에세이다. 이런 중요한 전제가 빠진 채 한 권의 책을 쓴 다는 자체가 참으로 대단해(?) 보인다. 왜냐하면 허술한 전제로 어떤 얘기를 펼치든지 무리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04페이지를 보면 이 책의 성격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나는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타입의 여자다. 내게는 분위기가 중요하다. 일할 대는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나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남편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는 타입이다. 그에게 장소는 별 상관이 없다. 어제보다 더 나아지는 데도 관심이 없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자신이면 그저 족하다. 어쩌다 그런 여자와 그런 남자가 마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그 아이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게 될지 궁금하다.
저자에 따르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이 분위기 좋은 곳을 찾아 버스를 세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좋아하는 카페를 기어이 찾아가는 것"이다. 이게 '온전히 나답게'사는 지표 중 하나다. 그러니 '하찮은 것들이 쌓여 인생이 된다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겠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임종국은 누추한 방안에서 끼니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까지 <친일문학론>을 완성했다. 그에게 삶은 단 하나, 역사에 가려져 있는 친일 문학자를 세상에 드러내는 거였다. 온갖 회유와 탄압 속에서, 살아 가는 것조차 버거운 현실 속에서, 그가 실현하고자 했던 것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욕망. 그게 바로 '온전히 나답게' 산다는 것일 게다.
이런 취지를 생각하고 펴들 예정이던 <온전히 나답게>는 아주 적은 페이지만 봤지만 함량미달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뭐, 에쿠니 가오리의 <당신의 주말은 몇개입니까?> 류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냉큼 읽어도 문제는 없겠다~
[덧]
1. 구입해서 읽지도 않을 책에 대한 리뷰라니 참 거시기 하다.
2. 나처럼 어떤 기대감을 갖고 읽어볼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책선택의 도움이 될까해서 리뷰란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