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타이틀에 착각이 들어간 시리즈를 모으고 있기 때문에, <읽었다는 착각>(EBS BOOKS, 2022)를 구매했다. 헌데, 이거 읽은 책에 대한 것이 아니라 문해력관련 책인 것을, 책을 받아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착각에 관계된 책 중 내 의도를 완벽히 빗겨간 책이다.

 

교환 하려다가 그냥 읽기로 했다.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그나저나 요즘 읽었다는 착각이 드는 책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더 심하다. 재작년부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있는데, 본 영화나 드라마 리스트를 보면 너무 생소할 때가 있다.

 

읽었던 책 중에서는 <소립자>, <푸코의 추>, <정체성> 등의 줄거리가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는 거다. 특히 에코의 에세이 책들이 그렇다. <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대중의 슈퍼맨> 등을 펼쳐 몇 페이지 읽었는데, 읽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너무 새로운 책 같다.



 






영상물로 넘어가면 훨씬 더 심각하다. 하도 잘 잊혀져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즉시 제목을 적어 놓고 평점을 매겨 놓는다. 이 리스트가 200개를 넘어가니 제목 자체가 생소한 게 너무 많은 거다. 예컨대 이런 거. [조디악 ★★★★, 블랙 아일랜드 ★★]

 

제목만 보면 내가 이 영화들을 본 적이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뒤에 별로 평점을 남겨놔서 이걸 봤다고 생각하는 거지, 정말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물론 영화를 다시 보면 봤다는 생각이 나겠지만 제목만 보고서는 이걸 봤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

 

그도 그럴것이 넷플릭스에 가입한 이후 영화를 보는 것이 너무 수월해 져서 하루에 3-4편을 보니, 당연히 제목을 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다. 하지만 제목을 기록해 놓지 못한 영화들의 경우 줄거리와 주제가 생각나는데, 제목이 생각이 나지 않아 연관된 영화를 기록할 때 여간 곤혼스러운 게 아니다.

 

얼마 전에 본 한국 영화 <원더랜드>의 경우, 분명히 올 초에 비슷한 미국영화를 넷플에서 본 기억이 생생하다. 죽기 직전에 기억(젊은 시절)을 서버에 저장해 놓아 평생 그 공간에서 지낸다는 설정이었고, <원더랜드>가 그 영화의 아류라는 걸 알았는데, 정작 그 영화 제목이 아직도 생각나지 않는 거다.

 

이런 현상이 정말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듯. 책은 오래 전에 구매했는데, 구매한 줄 몰라 또 구매한 책이 꽤 된다. 같은 책이 3권이 나왔을 때는 너무 허탈하다. 이제 나도 치매인가? ‘나 이제 노인으로 가는 거야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읽는 인생이고, 보는 인생이었는데, 이제는 읽은 적이 없는 착각본 적이 없는 착각속에서 살 수밖에 없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고 있지만 이게 언제 기억 속에서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때를 맞이해야 하는 시각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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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19 15: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건 저도 그래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이 나는데 그걸 어느 드라마에서 봤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을 때가 있죠. 책도 그렇고.
저는 꽤 오래 전부터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 세월이 한참 흘러 엇, 내가 이 책을
읽었다고?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죠. 설혹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읽었다는 기억만하지
내용을 기억하는 건 아니죠. 그래서 책이든 영화는 몇 번 거듭해서 봐야할 것 같긴한데
그러면 다른 걸 못 보게되니 그것도 쉽진 않죠?
그런데 착각은 왜 모으시는지?

yamoo 2024-11-19 17:52   좋아요 1 | URL
와우~!! 스텔라님은 오래 전부터 리스트 만들어 관리해 오셨군요! 책은 리뷰를 써 놓은 건 확실히 기억이 나는데, 리뷰 쓰지 않는 책들은 10여 년이 지나면 생각나는 게 별로 없는 듯해요. 영화나 드라마의 경우 제목만으로는 2-3년 전에 본 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착각 시리즈를 모으는 이유가...책 3권을 샀는데 ‘착각‘이 들어가는 책을 모으게 되더라구요. -의해 시리즈도 그렇게 모았구요...~~에 관하여..라는 책들도 그렇게 모으게 됐으요..^^;;
 


넷플 애청자로서 한 가지 불만이 있다. 넷플에서 방영되는 최신 영화들이 전부 그저그렇다는 거. 시간 낭비인 작품들이 8할 정도 차지하는 듯하다. 드라마는 볼 만한 게 많은데, 특히 한국 드라마. 영화는 외화든 방화든 뭐든 넷플에서 상영하는 작품들은 대체로 망작인 듯해서.


어떻게 보는 족족 죄다 재미가 없다. 심지어 '이런 걸 영화라고 만들다니'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5할이 넘는다. 개중에 본 작품이 <탈출>과 <탈주>. 그나마 좀 나은 듯싶지만 여전히 보고 나서 괜히 봤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많이 아쉬운 작품이 <탈주>다. 이거 넷플 상영 시작일에 바로 본 건데, 보니까 2024년 7월에 개봉한 영화다. 3백만을 달성하진 못했지만 겨우 손익 분깃점을 넘긴 영화. 다 보고 나니 왜 그저 그런 성적을 거뒀는지 알겠더라. 


탈북에 관계된 영화는 지금까지 없었는데, 이 좋은 소재로 어떻게 연출을 그따위로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믿고 보는 배우인 이제훈과 구교환이 아니었으면 200만도 달성하지 못했을 영화였다. 개연성이 완전 망한 케이스.


처음엔 매우 긴장감과 몰입감이 좋았다. 헌데 김동혁이 임규남의 탈주 계획을 눈치 채고 같이 탈북하겠다는 대목까지는 볼만했지만, 그 이후 규남과 동혁의 관계는 영화의 흐름을 깨는 1등 공신. 쫓은 현상과 쫓기는 규남 역시 플롯 구조에서 개연성 없기는 마찬가지.


디테일한 부분으로 들어가면 더 혈압이 오른다. 물론 좋은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규남이 비무장 지대를 달리는 탈주 장면은 꽤 좋았다. 그냥 아주 심플하게 탈주하는 규남과 쫓는 현상의 관계만으로 러닝 타임을 채워도 충분할 거였다. 심플하게. 


헌데 동혁의 서사구조가 끼여들면서 영화 플롯은 산으로 갔고 개연성도 망가졌다. 2002년 영화 <비하인드 에너미 라인스>에 보면 탈출하는 주인공과 그걸 쫓는 보스니아 반군 추리닝맨의 서사가 있다. 도주와 추격에 초점을 맞춰 걸출한 연출력을 보여준 숨어있는 명작이다.


<탈주>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전형적인 도주와 추격에 관현 영화다. 그렇다면 규남과 현상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에너미 라인스>의 도주 구도와 <탈주>의 도주 구도를 비교해 보면 왜 <탈주>가 용두사미가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탈주를 막는 외부 요인과 집요한 추격의 서스펜스만으로도 충분했다는 말이다. 탈북과  비무장지대라는 이 매력적인 요소로도 도주와 추격의 드라마틱한 연출을 할 수 없다면 감독으로 소질을 의심해 봐야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이제훈과 구교환 배우로 뽑아낸 영화가 이 정도라면 망한 케이스가 아닐까. (끝)


종합 평점 : 3점/5점 (참신한 소재+좋은 배우+내맘대로 개연성=평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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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09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어요
ㅠㅠ
넘 아니더라고요.
이러다 한국 영화 망할까 우려됩니다^^

yamoo 2024-11-10 10:31   좋아요 1 | URL
헛!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봤군요!
이거 1만5천원 내고 봤다면 욕을 한바가지로 하고 나왔을 듯합니다.
다행히 넷플로 편안히 봤는데...요즘 영화들이 대체로 평타 이하더라구요. 특히 넷플 영화들은..

한국영화 망하는 도화선은 아마도 영화관 티켓값 15000원으로 쳐 올린 영화관들 몫이겠죠. 이렇게 재미없는 작품을 1만5천원 내고 누가 갈까요? <파묘> 정도면 돈 안깝다는 생각이 안들터인데...죄다 평타 이하...탈출, 탈주 이 두작품을 영화관에서 본 사람이라면 다시는 극장 안갈겁니다..

hnine 2024-11-09 13: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마 이 영화를 본다면 이제훈과 구교관 때문일 것 같은데요.
배우의 연기력으로 부족한 서사와 작품성을 덮기엔 무리가 있지요.
저도 <시민 덕희> 이후로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추천할 만한 영화를 본 기억이 없어요.

yamoo 2024-11-10 10: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런 도주와 추격의 영화는 외부적 사건이 인물의 연기력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볼거리도 외부 사건들이 중요합니다. 이걸 두 배우의 연기력으로 덮는다? 불협화음으로 이런 작품이 탄생하죠.
전란, 탈출;프로젝트 사일런스, 탈주, 유령, 돈 무브 등 넷플에서 최근 본 영화들 모두 다 최악이었습니다. 그나마 패스트라이브즈가 좀 위안이 됐죠.
여튼 넷플용 개봉 신작 영화들은 죄다 망작이라는..--;;

<시민 덕희>가 재밌나보죠? 흠...봐야 겠습니다. 작년과 올해 넷플용 영화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를 뛰어넘은 영화가 없으요~~~ <테넷>은 너무 어려워 3번 봐야 해서 제외..ㅎㅎ

stella.K 2024-11-10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저만 그런게 아니군요. 저는 최근 지성이 나오는 커넥션하고,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봤는데 둘 다 감히 걸작이라고 해도 좋을만큼 좋았는데 영화는 영 땡기지 않더군요. 문제는 드라마는 보는데 넘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거죠. 앞으로도 찜한 드라마가 산더미인데 언제 다 볼는지 모르겠어요. 행복한 비명이죠? ㅎㅎ

yamoo 2024-11-12 15:16   좋아요 1 | URL
커넥션..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리스트에 추가 했습니다..ㅎㅎ

맞아요....넘 시간이 많이 걸려요..ㅎㅎ 군검사 도베르만 같은 경우 이틀만에 해채웠는데...슬의생은 한편이 너무 길어서 1주 넘게 걸렸으요~~

그래도 행복한 비명 맞는 거 같아요...넘 시간이 잘가요..ㅎㅎ
 


요즘 반려동물로 토끼를 키우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래서 토끼를 키우는 사람에게 물어봤다. 토끼는 어떤 류로 분류되냐고?


그랬더니 설치류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지인이 대뜸 무슨 설치류냐고, 포유동물이라고. 설치류는 쥐나 족제비라고 단언했다. (솔직히 나도 속으로 동의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좀 찾아봤다. 그 유명한 종-속-과-목-강-문-계. 알아보니, 조금 놀라웠다. 토끼는 토끼과, 토끼목, 포유강, 척사동물 문, 동물계의 분류 따랐다.


그리고 다음 정보가 부가된다.

설치류(쥐목)

중치류(토끼목)

모두 설치동물에 속한다나..


그니까 토끼는 설치류가 아닌 중치류에 속하는 동물이고, 설치동물이니 

설치류라고 불러도 충분히 헷갈릴만하다는 소지.


여기서 또 하나 배운 것이 척삭동물이라는 거.

척추동물의 오기인줄 알았는데 척추동물은 척삭동물의 일부라는 사실.


역시 무식하면 공부를 해야한다. 나는 토끼가 어떤 류에 속하는 동물인지 무지했다. 이런 식으로 따지면 내가 알고 있는 동물은 단지 그 이름만 알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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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1-06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넘 어렵네요. 토끼가 설치류라는 것도 잊고 살 때가 많은데
사실은 충치류고 척삭동물이라니? 이거 꼭 알아야 하는 건가요?
이래서 저는 과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ㅠㅠ

yamoo 2024-11-07 15:03   좋아요 1 | URL
저도 토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 때문에 토끼에 대해 알아보고 그 이름에 대한 분류가 참 심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척삭동물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요..ㅎㅎ
과포자..라기 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ㅎㅎ

그레이스 2024-11-06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종속과목강문계 ㅎㅎ

Falstaff 2024-11-06 20:44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계문강목과속종, 이렇게 외웠습니다.

그레이스 2024-11-07 08:35   좋아요 2 | URL
더 어려운데요?^^;;

yamoo 2024-11-07 15:04   좋아요 2 | URL
계묵강목과속종으로 외운 분들도 많아요..ㅎㅎ 누구는 큰것에서 작은 것으로..누구는 작은 것에서 큰것으로 암기..ㅎㅎ

hnine 2024-11-06 2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 다닐때는 ‘척색동물‘이라고 배웠는데 요즘은 척삭동물이라고 하나봐요? chordate라고 원어는 같은 것을 보니 동일한 명칭인건 맞는 것 같아요.
토끼 이빨을 보면 쥐 이빨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yamoo 2024-11-07 15:05   좋아요 0 | URL
오~~~척색동물이라는 개념을 배우셨군요!! 저는 배운 적이 없어서요..ㅎㅎ 생물 교과서에도 척삭이라는 용어는 없었습니다! 요즘 문학에서 잘 사용하는 핍진성이라는 개념도 교과서에는 없었다는!!
 













얼마 전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를 놀라게한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식. 예상했던 작가가 아니라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뭐, 노벨상이 언제 예상대로 수상작을 배출했던 적이 몇번이나 있었다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한강 작가가 수상했다는 게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사실 한강 작가 <채식주의자> 단편 1개 읽고 그냥 덮었기에. 당시 내 느낌에는 소재의 참신성은 좋았지만 그걸 천착해 들어가는 깊이가 좀 부족해 보였다.


처음 <채식주의자>를 읽고나서(소설집 <채식주의자>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3작품이 수록되어 있음) 주위에 한강 소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떠벌이고 다녔다. 당시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과 얘기하면서 공통된 점이 아이디어와 문체는 좋으나 소설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거였다.


물론 당시 지인들과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 소설로 2016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했기에, 자연스럽게 한강 작가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놀랍게도 지인들은 한강 작가 주요 저작들을 다 읽었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그들 역시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꽤 의외라는 의견을 피력했었더랬다. 뭐,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계에 어필할 수 없다는 건 번역 장벽 때문이라는 오랜 통설(?)이 작용한 까닭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소식은 놀라웠다.


헌데 이건 내가 이전 페이퍼에도 언급했지만, 영국 번역가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대적이었다. 이 번역이 없었더라면 한강 작가는 절대 맨부커 인터내셔날 상을 수상할 수 없었을 거다. 이건 이미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어로 한국문학 작품을 번역해 세계시장에 내놓은 실적에서 증명됐다고 본다.


주요 세계문학상 후보에 오른 우리나라 소설 해당 번역작이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불어로 번역되어 프랑스에 내놓았지만 반응이 미미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누가 번역했는지 잘 모르지만 데보라 씨만큼 작가 지향적 번역가가 아니었겠지)


단 하나의 예외가 데보라 쓰미쓰 씨가 번연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다. 영국 토박이가 자신이 한국어를 배워 영어로 이 작품을 번역했기에 심사위원들에게 한강 작가의 그 독특한 문체가 부커상 심사위원들에게 먹혔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이런 문체와 서사를 영어본으로 본적이 없었기에 그 새로움에 큰 점수가 주어졌다고 사료된다.


이를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들이 다수 영어본으로 번역됐다. 데보라 쓰미쓰 씨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이후 데보라 씨는 자신의 번역회사를 새운 모양이다. 여기서 한강 작가 작품들을 영어로 번역한 듯하다. 영국인이 자신들의 언어로 한강 작품을 번역해서 영국 문단에 내놓으 거.


이번 노벨상 수상은 이 공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노벨상 심사위원들 손에 이 영어판본이 들려졌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작가들 중 유일하게 한강 작가만 이런 행운을 누렸기에 그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판단된다. 그 새로움에 맨부커 심사위원들이 느꼈던 그 강렬함을 노벨상 심사위원들도 느꼈을 거란 얘기다. 


어쨌거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번역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그 시금석을 보여준 중요한 지표라고 생각한다. 외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하고 있는 아무계 씨의 발언, 즉 한국 문학은 아직 노벨상 깜이 아니라는 거는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빈말임이 드러났다.


우리나라 문학 작품도 이젠 노벨 문학상 근처에 가 있다는 반증. 근데 이 요체가 번역이라는 점. 이젠 더이상 번역이 창작이 아니라는 편견을 버릴 때다. 그리고 해당 언어를 전공한 우리나라 사람이 우리 작품을 해당 언어로 번역하는 게 아니라 해당 언어의 국민이 우리 작품을 자기 나라 언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펼쳐야 할 때다. 


우리나라 사람이 평가하는 것과 외국이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를 수 있으니까. 드라마만 봐도 우리나라에서는 별로인 작품이 해외에서 대박난 작품들이 많은 건 사실이니까. 문학도 예외는 아니지 않을까.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으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우리 문학의 성과라기 보다는 데보라 쓰미쓰 씨의 공이 절반 이상이었다는 걸!!


참고로, 2020년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수상한 후 재독한 짧은 단상을 부가한다. 당시 채식주의자만 읽고 덮었기에 리뷰를 쓰지 않았는데, 지금도 여전히 한강 작가의 작품군은 나와 맞지 않아 그 불평을 좀 부가해 놓는다.


<채식주의자>를 읽으면, 이 작품이 육체에 대한 것임을 대번 알 수 있다. 고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타자성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한다. 자신의 육체를 거부한다는 건 어떤 삶을 지향하는 것일까? 식물이 된다는 건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이런 문제 의식을 스케치만하다가 끝낸 느낌이다. 문체만 좋고 내러티브가 허술하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에게 철학적인 논증이나 정신분석학적 분석을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가 어떻게 타자성을 극복하는지 그것이 식물이 된다는 거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라면 비중있게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게 없는 캐릭터 스케치는 실망스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 (2020, 어느 겨울날)


[덧] 

1. 참고로 노벨상이라고 다 재밌고 좋은 작품이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욘 포세 후기로 남긴 바 있다. 한강은 포세 포다는 훨씬 낫지만 사실 여전히 내겐 재미 없는 작가인건 변함 없다. 

2. 한강 작가의 인터뷰를 보면서 내가 실망스러움을 느낄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작가는 항상 그렇게 쓴다고. 문제의식을 통한 주제의 천착은 하지 않는 작가라는 걸.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인데...나와 맞지 않는 작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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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24-11-02 16: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이 몇 사람 모여서 결정하는 상보다는 수백년간의 독자들의 평가로 그 작품성을 인정 받는 것이죠 .참고로 똘스토이도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잖아요 ㅎ

yamoo 2024-11-04 17:24   좋아요 1 | URL
노벨상 수상자가 아니라도 출중한 작가들이 많다는 건 사실이죠. 사람이 모여 결정하는 문학상...이거 어쩔 수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긴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성향이 절대적이라 운빨이라 하겠습니다. 그 위대한 도스토옙스키도 아니었지요.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는 모두 1900년 이전 사람으로 노벨상 자체를 수상할 수 없었지요. 1901년에 1회 수상자를 배출한 노벨문학상이니..

stella.K 2024-11-02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한강이 번역자에게 적지 않은 상금을 나눴다는 얘기가 있더군요.
당연하겠죠.
<채식주의자>는 호불호가 있는 것 같더군요. 저는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이번에 한국 작가가 받은 건 기쁜 일이긴 하지만 원래 노벨문학상이
재밌는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수여한 적이 있나요? 그냥 누가 받았나 보다하는 거죠 뭐.

yamoo 2024-11-04 17:27   좋아요 1 | URL
맨부커 인터네셔널상은 번역가에게도 상금을 반반씩 주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채식주의자...호불호가 있는 작품이란 걸 들었지만...전 아주 안좋았습니다.
저도 한국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거에 대해 기뻤지만 그게 한강이라서...한강의 영역본이 훌륭해서 탔기에(여러 요소가 있지만) 번역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페크pek0501 2024-11-03 15: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강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가 덜한 것이 채식주의자, 라고 알고 있어요.
소년이 온다, 를 읽고 울었다는 독자는 많더라고요. 5.18을 다룬 소설 중 최고로 찬사 받았음.
작가 한 사람만의 힘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기보다 다음의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을 걸로 짐작됩니다.
1) 말씀하신 번역의 문제
2)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 : 이런 배경이 없었어도 심사위원들이 한국 작가의 작품에 주목하여 꼼꼼히 읽었을지 의문이 듦.
3) 한강 작가가 그동안 읽었던 수많은 한국 작품들의 영향 : 이 토양 없이 오늘날의 수상은 없었을 걸로 생각. 그러므로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대한민국의 쾌거!!!

yamoo 2024-11-04 17:33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한국 작가의 노벨상 수상은 쾌거, 맞고요..
저는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의 결정적 계기로 데보라 쓰미쓰 씨의 번역을 꼽습니다. 한류 열풍과 케이팝의 영향력과 그밖의 한국 작품들의 해외 번역본들은 부차적이라고봅니다. 작년 재작년 한류 열풍과 케이팝 그리고 한국 작품들의 해외 판본은 꾸준했죠. 단 하나의 예외는 데보라 쓰미쓰 씨 같은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택해서 번역했다는 거였습니다. 만일 데보라 씨가 아닌 우리나라 사람이나 전문 번역가가 번역했으면 절대 부커나 노벨상 후보에도 못올랐을 거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그 판본과 데보라씨가 번역한 한강 작품이 노벨상 선정 위원들에게 읽혀질 수 있었기에 수상은 가능했다고 보여지는데...이걸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자화자찬하는 게 주객이 전도된거 같아 이에 대해서 밝혀 보고자 쓴 페이퍼 였습니다~

yamoo 2024-11-04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쾌거는 맞지만, 이를 계기로 번역도 창작의 일환으로 받아들여 졌으면 한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우리 문학의 쾌거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는데, 말은 바로 하자. 순전히 데보라 쓰미쓰 씨의 영어 판본 때문에 수상의 영예가 있었던 거다. 그가 아니라 우리나라 작가나 전문 번역가가 한강 작품을 번역했다면, 수상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데보라 씨만큼 번역에 공을 들이는 사람은(창작하는 정도로) 우리나라에 없다시피하다. 한강 작가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을 제발 창작으로 인정해 주자. 이게 진정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아닐까.

박균호 2024-11-04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똘스토이는 1910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yamoo 2024-11-06 16:04   좋아요 0 | URL
음....그렇군요.

이환한 2024-11-19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혁신상 수상자가 갖는, 노벨상 수상의 의의에 대한 글을 요즘 많이 보게됩니다. 대체로 노벨재단이 밝힌, 이러이러한 이유로 선정했다 라는 가이드라인 제시에 순응할 뿐 반항한 흔적이 안 보여요. 심지어 몰라뵈었다고 반성하는 글도 있더군요(교수님아, 교수님아...).
님은 번역 덕분이라고 적었네요. 교보에 가서 스쳐 지나는데 ‘깊게 읽기‘가 보였어요. ‘얕으면 그런 안내서, 깊으면 해설서‘, 이렇게 되는 건지 모르지만 순간 빵 터졌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 놀이에 죽비를 내리는 님의 글은 소중하군요.
죽고싶지만 재밌는 책은 찾고싶어요. 못 써도 의미있는 작품이나, 잘 쓴 좋은 문학작품을 찾는 독자사람으로서 제 견해는 이러합니다, 마이도 썼네, 그러나 그 집 벨란 아바이는 못 뛰어넘었군, 이런 사이트에 와서 습작기간을 좀 가지면 좋을 텐데...
사랑하는 밥딜런이 아직 살아있어 좋습니다. 담배를 뽀꼼뽀꼼 피워가며 기자들과 인터뷰하고 헤헤거리는 유튜브를 가끔 보며, 낭만에 대해 생각합니다. 다음번에는 노벨측이 댓글에 상을 수여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네요.그것이야말로 노벨이 제시해나가고 있는 힘, 진정한 크리에이티브 아이겠나요.

이환한 2024-11-19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웨덴 대사관 앞의 시위, 불온서적이니 자녀들이 못 보게 도서관에 비치하지 말라는 학부형들, 선풍기 발언, 역사왜곡이라 얼척없는 소리 해대는 우리의 애타는 이웃들, 상이 주는 우월감에 갑자기 기쁜 사람들, 하느님의 참된 종이고자 하는 어린양하는 3춘, 이런 이유들은 정작 노벨상 후에 생겨난, 노벨상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들이 되었죠.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거울이므로 이제 정당성이 획득되었어요.
가슴 아픈 것은, 책 안의 주인공들과 가족 등 관련자들입니다. 상처는 치유되지도 않는데 한을 풀었어,이제됐어 이제됐어, 이러시니까요...

이환한 2024-11-19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장 중요한 말씀을 안 드렸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천기술이 가장 높이 받들려야 합니다. 있는 거에 더해서 뭘 하는 게 쉽겠나요, 맨 땅에 헤딩이 쉽겠나요.
제 지론은 글 쓸 사람은 학위를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란도 그 이유죠. 원천기술을 못 만드는 영국박사는 그 이후의 것은 뛰어날 수 밖에 없어요. 박사에 교수를 하면 과학적 글쓰기를 하는 게 뇌에 단련되어 문학작품은 발로 쓴 것 처럼 보입니다. 님은 그것이 보인 것이고요. 그치만 재밌는 게 ‘박사자‘들이 뭐를 잘 쓰나면 상 후기나 선언문이나 집회후기는 잘 쓴단 말이죠. 그래서 그것이 그들의 문학적 역량처럼 보이게 되죠.
지금 현재 떠받들려지는 우리문학의 원천기술은 번역이 쉬운 것에 달려들어 마케팅의 성공을 꾀하는 번역노력파와 우주의 신비한 기운이 닿은 결과가 아닐런지요. 원혼들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어지고, 좋은 작품을 썼거나 쓰고 있을 우리나라 작가들에게 희망을 주는 점은 참 좋습니다. 그리고 야무님이야 책을 많이 읽고 어느 정도의 안목이 있지요. 그러나 아직 제대로된 독서에 입문하지 못했거나 무독가들은 이번 기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요. 노 저을 때 물이 들어와야 하니, 폄훼만 하기보다 눈을 그들에도 좀 맞춰주시고, 너무 먼 사람이 되기보다 그들 동포들과도 함께 걸을 생각도 의무적으로 좀 하셔야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문열이 최고 잘 쓰는 사람입니다. 허나, 개인적 상처를 못 뛰어넘어 상이 쪼매 어렵네요. 죽으면 아부지, 산 동안 이문열, 만나고 싶은 사람 한 명씩을 꼽으라면 그렇습니다. 사과를 하고 위로를 하고 싶어요. 우리 역사의 슬픔을 우리는 이런 해법으로 서로 풀어가고 있는 게 맞는 걸까 싶으니까요.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했던 김수영.
중동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우리는 다시 토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와집이 뭔 죄가 있다고 불 태우노, 비열하고 비겁한 인간들아 아- 들이 뭘 보고 배우겠노, 중동이 네타냐전과 후로 나뉘듯이, 파괴자들은 목적을 위해 악을 가르치는 자들이므로 안돼안돼, 하며 괴로웠던 기억이 있습니다.인부들이 얼매나 죽을 고새을 했는데 어예 그랠 수가 있노, 더러운 기왓장도 나무도 파괴자보다는 더 깊은 영혼일텐데...
이상으로 이이상상은 십 억짜리 댓글을 달아보았습니다. 정작 노벨상 수상이 되면 의견이 분분해질 것도 같군요.n분의 1을 할 지, 댓글 단 자에게 돌아갈지 댓글을 달도록 한 원글을 쓴 자일지, 그 때 되어 생각하고요. 머리를 썼더니 머리가 조금 아프네요.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 일단 돈 생각은 나중에...^^‘‘
 
베르길리우스의 죽음 1 세계문학의 숲 21
헤르만 브로흐 지음, 김주연.신혜양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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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서양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다가 보면 흐름을 놓쳐 텍스트를 다시 읽는 우를 범하곤 한다. 조금만 다른 생각을 하면 무슨 내용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해당 부분을 돌아가 다시 읽고 한다. 그 이유는 번역이 이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문장 속에 담긴 개념의 비유 또는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헌데 소설 문학에도 이와 비슷한 난해한 작품들이 있다.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없는 남자>,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등의 책들은 지루하고 난해한 문학의 대명사로 회자된다. 다른 작품을 읽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수고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하이데거나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읽는 것과 견줄 수는 없다. 집중해서 철학 텍스트를 읽는다고 생각하면 이러한 난해성은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니까. 조이스, 무질, 푸르스트의 대표작들은 단지 분량이 많고 서사가 지루하다는 걸 제외하면 딱히 읽기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헤르만 브로흐다. 이 사람의 책은 문학임에도 철학 원전 텍스트를 읽는 느낌이 강하다. 올 초 <몽유병자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76페이지까지만 읽고 잠정 보류 상태에 빠졌다. 읽으면서 흐름을 놓치기 일수였고, 도대체 서사는 어떻게 진행되는지 안보였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 무엇인지 여실히 깨닫긴 했지만, <율리시스>보다 더 읽기 힘들었다. 조이스의 책들도 100페이지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지루해서 그렇지 맥락을 놓쳐 이해가 안 되어 포기하지는 않았다. 프르스투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마찬가지.

 

10월에 의미 있는 독서를 해 보자고 다시 시도한 책이 브로흐였다. <몽유병자들>에 데여서 <베르길리우스의 죽음>을 펼쳤다. 지난한 과정이 읽는 내내 지속되었다. 어렵게 1부를 지났는데, 이때부터 고난의 연속이었다. 읽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몰라서 2페이지 단위로 끊어 3번씩 읽었다.

 

진짜 더디게 읽고 있지만 이 행위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브로흐만의 철학적 망상(내식으로 표현하면 그렇다는 거)’을 읽는 치명적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브로흐는 산문을 운문으로 참 잘도 표현하는데, 그 속에 담긴 내용은 심오한 철학적 망상이다.

 

여기서 나는 망상을 내식으로 조금 그 정의를 비틀어 봤다.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는 망상과 비교해 보시라. 내가 이 소설을 읽고 바로 떠올린 게 바로 망상에 닿아 있었기에.


망상(妄想, delusion) : 있지도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인 양 믿거나, 논리에 맞지 않은, 논리를 초월한 생각을 하는 것. 근거가 없는 주관적 신념. 사실의 경험이나 논리를 확장하여 현실의 모순을 구현하는 믿음.

 

니체와는 다른 철학적 아포리즘이 시적 산문으로 표출된다. 논증이 필요 없는 비유와 상징이 현재의 시공간과 교차하면서 펼쳐진다. 망상이지만 결코 소설의 개연성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시공간의 상황은 단순하지만 그 찰나에 개입하는 소리에 망상의 미학이 시작된다. 시작과 끝은 항상 현재 시공간에 매인 주체로 계속 환기된다.

 

오오, 신들조차도 신성시하지 않음을 아는 신과 인간이 똑같이 품는 지각에서, 피안과 차안 사이에 팽팽히 쳐진, 불온한, 으스스하게 투명한 마령 같은 양자의 제휴에서 생겨나는 웃음, 그 제휴의 어렴풋한 마령의 영역에서 신과 인간은 만남을 이룩한다.” (p180)

 

부드러우면서도 오만하고, 마음을 녹일 듯하면서도 강압적이고, 밤의 광휘를 띠고 있으면서도 깊이 숨어 있는,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말과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영혼, 언어와 인간성의 통일그것은 마치 모든 지상의 나이를 모르는 과거의 청춘이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듯했고, 그러면서도 이미 영원히 종말을 모르는 고향으로부터의 인사였다.” (p283-284)

 

이게 알프레드 자리(또는 욘 포세)와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결코 망상으로 그치지 않는다. 망상은 미학적으로 전개되면서 철학적으로 심화된다. 개연성이 없는 헛소리의 망상 같지만 다음 페이지에 그 망상이 헛된 이유가 적시되면서 의식의 흐름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 알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름답고 치명적인 문장들이 모여 아포리즘을 만들고 바로 다음 순간 전혀 다른 관념이 끼어들어 사고의 흐름을 방해하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주체의 상태(감정)를 말하는 바로 귀결된다. 귀결되는 순간 다시 의식은 다른 사고를 향해 달려간다. 이러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대구와 비유 그리고 상징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을 따라가다가 2-3번 읽고 음미하다 보면 경탄하게 된다. 이러한 문장들을 끊임없이 이어가는 브로흐의 관념, 이러한 작품을 쓸 수 있는 브로흐의 박학다식과 사색의 깊이에 빠져 같은 페이지를 반복적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한 번에 읽어 알 수 없는 의식의 흐름과 관념의 흐름을 플롯 구조에 무지막지 흩어 놓아 반복해서 읽고 줄을 치게 만든다. 그렇지만 여전히 난해하여 앞의 부분을 잊어버리는 이 지난한 과정, 이 과정을 이겨내고 획득하는 문학적 과실은 달콤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읽기를 지속할 수밖에.

 

사실 브로흐는 철학을 전공했다. 심지어 비엔나 학파에까지 가입되어 있었다니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브로흐는 말할 수 없는 그 형이상학에 대한 끌림을 버릴 수 없어 문학으로 전향했고, 그 결과 우리는 철학적 망상을 집대성한 이 놀라운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새로운 문학적 경험을 일깨워 준 브로흐에 경의를 표하며, 우리말 읽듯이 읽을 수 있게, 이 난해한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해 주신 역자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 ()

 

 

 

[]

1. 정말 술술 읽히는 번역본. 하지만 초집중하지 않으면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희한할 정도로 난해한 문학 작품.

2. 책 좀 읽는 다는 사람들과 함께 오래 전 베르그손의 <물질과 기억>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모인 사람들 모두가 이렇게 어려운 책은 자기 독서 인생사에서 처음이라고 했는데, 읽은 느낌상 이 책을 같이 읽으면 동일한 원성을 듣게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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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10-25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야무님 리뷰 읽은 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

Falstaff 2024-10-26 06:10   좋아요 2 | URL
난도가 좀 있지만 이 책은 읽을 만합니다. 몽유병자 생각하고 포기하지 마셔요!

yamoo 2024-10-27 17:04   좋아요 2 | URL
스탤라님, 뽈님의 댓글처럼 저도 조심스럽게 1권만이라도 권해 봅니다. 아님 2부만 읽어보심이..^^;

Falstaff 2024-10-26 07: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어려운 책들 ㅎㅎㅎ
몽유병자. 읽다가 때려 치웠습니다.
율리시스. 다 읽었습니다. 책 사놓고 17년인가 27년 만이었습니다. 금속활자본이더군요. ㅋㅋㅋ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 읽었습니다. 글자만 읽었다는 뜻입니다.
특성없는 남자. 안병률 북인더갭 사장의 번역으로 2부까지 읽었습니다. 지금 3부 완역했지만 절대 3부 안 읽을 겁니다.
이 네 작품 연속해서 읽으면 모르긴 해도 정신건강학과에 적지 않은 나날 동안 입원해야 할 거 같은데요.

yamoo 2024-10-27 17:08   좋아요 1 | URL
아마도 이 리스트를 거의 모두 읽어낸 분은 제가 알기론 뽈님밖에 없습니다. 암요! 율리시스 읽고 정신적인 방황을 하는 분들 많이 봤습니다.ㅎㅎ 근데 몽유병자들을 무조건 읽어야 갰어요! 뽈님이 포기한 유일한 작품이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