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김진명, 이원호, 김종성 작가들의 작품은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다. 이들이 출간한 책은 수십종에 이르며, 발행부수도 상당하다. 대중소설, 더 좁히면 이른바 장르소설로 분류되는 이들 중 김진명은 단연 톱이다. (아, 이 평가는 지극히 개인적으로 나의 어머니의 평이기도하다. 어머니가 무척 김진명 작가를 좋아하여 그의 책을 도서관에서 모두 대출할 정도이니..)

 

그도 그럴 것이, 김진명 소설 중 상당 수는 영화화 됐다. 사실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는 그래서 김진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오래다. 그가 얼마나 대중에게 어필하는 작가인지는 구립 도서관 서가에만 가 봐도 알 수 있다. 가는 도서관 마다 비치되어 있는 작가의 소설들은 하도 많이 봐서인지 거의 다 너덜너덜 한 수준이다.

 

내 어머니가 광적으로 좋아하고, 대중이 지극히 사모해 마지 않는 김 작가의 소설을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더랬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정말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몇 작품 더 보았지만, 움베르토 에코에 환장하면서부터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더니 밀란 쿤데라를 만나고 칼비노 류의 세계문학 작품들을 만나면서 그의 작품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다.

 

하지만 김진명 작가를 외면한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언젠가 김 작가가 인터뷰를 한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결정적이었다. 그 때 그가 말하길, 자기의 작품은 완벽한 문헌 고증과 철저한 사실 조사를 바탕으로 심혈을 기울여 탄생한 작품이기에 가치가 있다는 논조였다. 더군다나 표절은 있을 수도 없다고 일갈했다. 이 인터뷰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고 이휘소 박사의 유고로부터 작품을 쓴 OO작품을 표절했다는 당시 언론 기사들에 대한 작가의 항변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여러 정황상 나는 김 작가가 표절을 했다고 확신을 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그런 확신을 갖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이 사건이후 나는 김진명 작가를 멀리했다. 아니, 자연스럽게 세계명작을 읽으면서 멀어져 갔다.

 

그러던 것이, 몇 년 전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인해 우리나라 사학계가 발칵 뒤집힌 후 논쟁이 잠잠해 질 때 <살수>가 출간돼었다. 20005년 출간 당시 <살수>의 책 광고는 대대적이었는데, 인터넷 서점은 대체로 다음과 같이 김 작가의 책을 소개했다.

 

김진명의 신작 장편소설.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서고 있다.빼앗긴 역사속의 고독한 영웅 을지문덕과 난국을 헤쳐나가는 고구려인의 웅혼한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역작!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05년 6월 29일자 신문에서도 '고구려는 중국 고대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보도를 하여 다시 한번 중국의 역사 왜곡은 현재진행형임을 인지시켰다. 김진명의 장편소설 '살수'는 고구려 역사는 물론이요, 한민족 역사 이래 최고의 영웅이면서도 남아 있는 자료가 빈약하여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영웅 을지문덕을,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근거하여 복원시키고, 거대한 수나라에 맞서 싸운 고구려인의 웅혼한 정기와 지략을 보여줌으로써, ‘동북공정’에 의한 중국 정부 차원의 한반도 역사 왜곡에 대해 당당히 맞선다.

[네이버 책소개]

 

역시, 김진명 작가의 위상에 걸맞는 대단한 격찬이다. 요즘 보니 김 작가의 신간인 <고구려>가 1권부터 5권까지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보건대 김진명의 고구려사에 대한 애착(대하 소설로서의)은 <살수>에서부터 시작된 듯하다. <고구려>에 대한 인기로 이전 작인 <살수>가 덩달아 잘 나간다는 전언. 그래서인지 도서관에 새 판본이 꾸준히 유입되면서. 독자들이 지속적으로 읽고 있는 듯하다. 알라딘에서도 역시 리뷰가 많다. 오~ 근데 역시 찬사 일색이다. 어떤 면에서 찬사를 보내는지 몇 개만 거들떠 보자.(알라딘 리뷰를 작성하신 분들에게 미리 사전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퍼 온 것에 사과를 드린다~ 퍼온 분의 아뒤는 생략)

 

OO님

비록 문과이긴 하지만 국사에 별 관심이 없던 나는 을지문덕이 엄청난 전술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것만 알았지 자세한 상황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이 한권의 책이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소설인데도 실제처럼 여겨지는 이 책은 지루하지않지만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다.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집어삼키고 우리나라의 역사인 고구려를 없애버리려고 하는 중국에 대항하여 이 책은 이나라를 짊어지고 갈 청소년들이 읽기에 적합한 책이다. 김진명이라는 작가에 반해버려서 ....

 

&&님

작가의 이름만으로 신뢰할 수 있는 작품!

 

@@님

저자의 소설을읽게되면 마치타임머신을 타고 있는것 같다. 첫장을 열고서 마지막 책을 덮을때까지 아무것도 할수 없고책위에만 시선을 고정시킨다.나는 과거에 있었고, 책을 덮는 순간현실로 돌아와 있다. 물론작가와 독자도 궁합이 맞아야겠지만 김진명의 소설은 적극 추천하고 싶기도 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면 몰랐던 역사를 알수도 있고, 내 조국, 대한민국의 역사에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님

김진명작가의 중국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여 현재의 우리나라의 중국에대한 감정을 제대로 반영하여 보여준 작품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면서 우리나라의 조상 고구려의 멋진 기상과 기개를 멋지게 잘 표현하여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꼬는 멋진 글이다.

 

**님

과연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읽었더니 너무너무 재미났다..  마치 삼국지 분위기로 흘러 들어가공... 중국풍이 좀 심하게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의 리뷰들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너무 감동에 벅차올랐다..

 

 

흠....그만하자. 충분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읽어보니, 이 작품은 함량미달의 작품이었다. 작품을 쓸 때 풍부한 사실 자료를 확보하지 않으면 작품 발표를 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이 작품은 자료가 부실해도 너무 부실했다. (그도 이 사실을 알아 챘는지 뒤늦게 작가의 말에 '자료 부실'운운하며 슬며시 끼워넣었다. 내가 읽었던 건 초판인데, 그런 언급이 전혀 없었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네이버 책소개]처럼 '웅장한 고구려의  기상'이 살아숨쉬는 대작이 절대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위대한?) '<삼국지> 대신 이 책 <살수>를 읽는게 우선'이냐. 내가 이 책을 읽고 난 지금 '그건 아니다!'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소설은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책도, 또한 고구려 역사에 대한 그 어떤 웅대한 스펙터클도 제시해 주고 있지 못한 졸작이기에.

 

을지문덕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죽었는지 우리는 여전히 모를 뿐더러(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그가 어떻게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는지 일말의 단서조차도 없다.

 

완전히 3류 무협지처럼 한 청년이 홀연히 등장하여 보통사람이 생각하는 모든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수퍼맨질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그래놓고 일반독자들에게 을지문덕도 모르면서 무슨 역사운운하냐며 따진다.

 

어처구니가 없다. 적어도 그렇게 말하려면 상상력을 동원해 어린시절의 비범함을 부각시키면서 성장 과정을 개연성있게 전개시키든지, 아니면 을지문덕이 정계와 군계에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된 배경을 어느 정도 보여주든지 해야 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이 통째로 빠져 있다. 무늬만 역사소설이지 3류 무협지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작품이다.

 

소설은 급조된 느낌이다. 사건의 개연성도 플롯의 전개도 3류 인터넷 소설처럼 조악하기 그지 없다. 스토리는 탄탄하냐? 수 문제와 양제의 고구려 침공을 을지문덕 혼자 원맨쇼로 막아냈다는게 전부다.

 

여기서 웃기는 건 을지문덕이 수113만 대군을 아주 우습게 돌려보냈다고 하는 점이다. 그는 제갈공명을 넘어 슈퍼맨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건 김용의 그 유명한 무협적 과장을 아주 우습게 넘어 서고 있다.

 

고구려 역사를 통째로 먹으려는 중국에 대한 대응으로 역사소설을 썼다는 그에게, 미안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데 내놓기에는 너무도 허접하다. 솔직히 창피하기까지 하다.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부추기기 위해 간간히 열혈적 역사의식을 보여주지만 <시경> '학현편'을 인용한게 전부다. 관련학과를 나오거나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너무 똥폼잡고 허풍을 떠는게 아닌가 싶다.

 

<살수>어디에도 을지문덕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깨우쳐 주는 곳은 없다. 다~ 고교 국사교과서에 있는 수준이다. 교과서와 다른 점은 그가 혼자 수의 대군을 아주 우습게 물리쳤다는 가공할만한 무용담을 담은 페이지 수밖에 없다.

 

진짜 을지문덕이 그렇게 싸웠을까? 그가 전투하는 장면은 무협소설의 과정과 진배없다. 그가 어떤 전술을 갖고 어떻게 병사들을 진두지휘했으며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고뇌는 어떠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이건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몇 권의 소설을 읽어 보면 대번 비교가 가능하다. 나폴레옹을 주제로 한 역사소설들을 읽어보면, 나폴레옹이 전투에서 어떻게 병사들을 운용하여 전쟁에서 연전 연승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비범함을 알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비록 을지문덕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면 상상력으로 충분히 개연성 있게 매꿀 수 있어야 역량있는 작가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어디 왕이 전시에 한낯 장수에 불과한 을지문덕에게 고개를 숙여 나라의 운명을 맡기는가? 당시 고구려 왕의 품격이 그 정도밖에 안되었는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어떤 사료를 보고 집필했는지 의아스럽다. 아, 소설이라고? 그럼 몰랐던 부분을 그럴싸하게 알려주든가.

 

무엇보다 심각한 건, '진짜 수가 113만 대군을 파견했을까?'라는 문제이다. 솔직히 도서관에서 관련 논문이나 사료를 조금만 들춰보더라도 그 당시 113만 이란 숫자는 침공의 과장일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역사학계의 다수설이다. (당시 인구 대비로 그 숫자가 동원될 수 없단다) 그런데 당연한 듯 써내려간 김진명의 그 똥폼은 무엇인지. 언제나 작품 내기 전에 사실적 고찰을 완벽히 한다고 언제나 당당했던 그 기질은 '아집'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아주~ 실망스런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여-수전쟁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없거니와 그 당시 전쟁에 대한 나름의 시각도 없다. 역사소설을 빙자한 삼류무협소설밖에 안되는 졸작이라 평하고 싶다.

 

 

 

[덧붙임]

요즈음 한국 사회는 역사 인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대학 입시에서 한국사 필수 선택 문제와 교학사본 교과서 역사왜곡 문제 그리고 국사편찬위원장의 자질 문제가 그렇다. 그래서 김진명의 이 소설도 많이 읽히는 것 같은데, 이 작품은 완전 함량미달이다. 본작은 을지문덕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지식도 알려주지 않거니와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그 어떤 대안도 고구려 역사에서 도출하지 못하고 있다. 그냥 열렬적 민족의식에 불타 오버하는 일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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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2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3-10-22 17:52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 ^^

2013-10-25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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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을 오래 전에 읽었다.(오래 전이라도 불과 3년 전이다.) 여러 단상들을 적어 놓았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 이 단상들을 마구 적어 놓은 노트를 발견했다. 주로 물음으로만 점철된 감상이었는데, 지금 보니 꽤 치열하게 문제의식을 갖고 텍스트를 읽었던 모양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영미 문학에서 샐린저의 이 작품만큼 많이 읽혀지고 수많은 평론가들로부터 상반된 평가를 받은 작품은 별로 없다고 한다. 당대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많이 읽혀져 왔고, 매우 철저하게 논의되어 왔단다. 청소년, 교수, 그리고 전문적인 비평가 모두 이 작품에 찬사(또는 혹평)를 보내고 있다.


여기 알라딘 리뷰만 봐도 정말 많은데 대부분 찬사 일색이다. 명사 추천 리뷰도 어찌 그리 많은지. 피츠제럴드 하면 <위대한 개츠비>이듯이(그래도 피츠레절드의 여타 작품은 꽤 된다.) 샐린저 하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샐린저는 이 책으로 명성을 얻은 이후 다른 어떤 작품도 쓰지 않은 듯하다. 작품 하나로 이렇게나 유명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어찌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소설 한 권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리도 많이 읽고 찬사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지. 그 실체가 무척 궁금했다. 그래서 읽기 시작한 듯하다.


도대체 샐린저가 이 작품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기에 영미권에서 그렇게도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일까? <호밀밭의 파수꾼>에 집약되어 제시되고 있다고 하는 그 문제의식이 뭘까? 샐린저는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이따위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을 읽어 나갔다. 답은 얻지 못하고 아래와 같은 나만의 질문들만 쏟아낼 뿐이었다.


<1>

이 작품은 주인공 홀든 스코필드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기 전 몇 주의 자신의 행적을 회상해 보는 형식으로 돼 있다. 홀든은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의 관심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상한 질문을 해대고, 세상을 좋은 놈과 나쁜 놈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있다. 정신도 꽤 불안하다. 그래서 후반부에 보면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홀든은 정신병원에 입원할 만큼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일까? 병든 사회가 건전하고 순수한 개인을 이상자로 몰아간 건 아니고?


 

<2>

이 작품에서 홀든 코울필드는 자주 뜬금없이 뉴욕 남부 센트럴파크에 있는 오리 얘기를 하곤한다. 선생님에게 혼나거나 훈계를 듣는 와중에도 역시 오리가 처한 상황을 생각한다.홀든이 택시를 탔을 때 그는 운전사에게 오리에 대해 묻는다. 첫 번째 택시 운전사는 무시했고, 두 번째 택시 운전사 호르비츠는 오리의 향방에 대해서 답해준다. 코울필드는 묻는다. “뉴욕 남부 센트럴파크 연못 위에 있는 오리들은 겨울이 되면 어디로 갑니까?” 이에 택시 운전사 호르비츠는 물고기로 화제를 바꾼다. 그러나 홀든은 물고기와 오리는 다르고, 설령 물고기라고 한들 그들은 얼음으로 덮인 연못에서 뭘 하느냐고 또 묻자 호르비츠는 홀든과 물고기 사이를 분명히 관계시켜 준다.

 이렇게 홀든의 입을 통해 센트럴파크 공원 연못의 오리가 자주 언급되는 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거 같다. (근데, 명확히 뭔지 모르겠다.) 이 뜬금없는 오리 얘기는 홀든 자신의 상황이 오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상기하려는 메타포 같은 것이 아닐까?


<3>

이 책의 제목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읽는 내내 책 제목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책 중간에 책의 타이틀과 연관된 내용이 나오기는 한다. 홀든의 동생 피비가 “오빠는 도대체 뭐가 되고 싶냐?”는 질문에, 홀든 코울필드는 낭떠러지 바로 옆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어린아이들을 잡아주는 캐쳐가 되기를 바란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뉴욕에서 산 기다란 챙이 달린 사냥모를 항상 거꾸로 쓰고 있다. 야구에서 캐쳐가 모자를 거꾸로 쓰는 것처럼 그는 모자를 쓰는 것에서 캐처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책 전체를 봐도 그는 캐처로서의 삶을 전혀 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끝에 가서는 캐처로서의 삶을 그만두는 것으로 그려진다(통나무집을 짓고 혼자 살겠다는 결심을 접고 집으로 돌아온다). 물론 책 중간에 어떤 초등학생이 흥얼거리는 로버트 번즈의 시로서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핵심어구는 잠깐 언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린저는 왜 이 책의 타이틀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명명했을까? 호밀밭은 낭떨어지도 아닌데..


<4>

홀든 코울필드의 감수성과 직관력은 어른들의 교훈적인 태도 속에서 오히려 ‘가짜’를 발견해 낸다. (실로 대단한 통찰력이다.) 이 책에서 가짜에 대한 반응은 어떤 이론에 기반한 비판이 아니라 거의 직관에 가까운 지각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코울필드는 이 가짜라는 말을 절제되지 않은 자기중심주의와 뒤따르는 이중적인 가치 기준, 다시 말해서 허세, 폭력 등으로 대변되는 ‘물질주의적 가치’를 가리키는데 사용한다. 그런데, 그의 옛 스승인 안톨리니 선생이  뉴욕에서 방황하는 둘째 날 저녁에 그에게 들려주는 말은 애써 가짜가 아니라고 부인하려 한다. 선생님들의 훈계는 홀든의 생각대로라면 가짜인데 말이다. 어떤 말인지 안톨리니 선생이 16세 먹은 소년의 목적없는 방황과 가짜에 의한 정신의 시달리는 홀든에 대한 충고를 거들떠 보자.


“무엇보다도 너는 네가 최초로 인간행동에 의해 당황하고 상처받고 병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 그런 문제로 괴로워한다는 점에서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지금 네가 그런 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 오고 있어.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고통 받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있는데, 너는 네가 원한다면 그런 기록으로부터 배울 수가 있을 거야······ 그건 참으로 서로 주고받는다는 아름다운 과정 일 테지. 그리고 그건 교육이기도 해. 그건 역사이고 시(poet)지.”


과연 이와 같은 일반화된 교훈적 말은 진실인가? 아니면 (홀든의 생각처럼) 가짜이고 위선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인간형을 만들기 위한 훈육?


<5>

이 작품의 주인공 홀든 코울필드는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다. 양면성을 가진 이 인물을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키(key)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주인공 코울필드는 이른바 엉터리들, 위선자들, 속물들, 지저분한 인간들로 가득 찬 학교를 그만둔다. (와우!) 감수성이 예민하고 순수한 홀든 코울필드는 그의 주변 인물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못 한다. 홀든은 소통할 수 없는 그들로부터 고립된다. 그럼으로써 소외감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어쭙잖은 우월감으로 해소하려 한다. 오로지 소통 가능한 이는 그의 여동생 피비뿐이다. 그런데 문제를 더욱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는 사실은 홀든의 이율배반적인 태도에 있다.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이해를 갈구하면서도, 그의 갈망은 하나의 제스처에 불과할 뿐이다. 그는 너무도 소극적이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접근하지 못하며, 그들과 교제를 맺는 일에 매우 수동적이다. 좋게 말하자면 너무 섬세하다고 할까. 하지만 그의 그런 면이 문학적인 글쓰기로 연결되어 독창적인 면을 보인다. 모든 과목에서 낙제를 하지만 작문에서만큼은 제대로 된 선생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다. 좀처럼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평하는 인물로만 보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 같다. 소위 말하는 청소년의 성장 소설로 가볍게 분류할 수 없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오히려 카뮈가 말한 ‘부조리’에 관한 소설이 아닐지? (개인의 삶과 사회의 갈등에서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삶의 부조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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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3-10-16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호밀밭의 파수꾼, 을 정말 좋아했었기에.. 그나마 조금 생각한 부분을 적어보자면, 1번의 경우 yamoo님이 생각하신 것이 맞는 듯 합니다. 그러나 홀든 본인이 정말 건전하고 순수한 인물인지는 조금 의문의 여지가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반항하는 인물의 재사회화, 정도의 강압적인 의미로 정신병원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3번의 경우 catcher를 홀든 콜필드가 잡는 사람, 으로 여겼기 때문에 저런 비유가 나온 것으로 압니다. 호밀밭의 파수꾼, 을 호밀밭의 잡는 사람, 으로 여겼던 콜필드는 잡는 사람, 이 아니라 파수꾼의 뜻으로 쓰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잡는 사람, 이라는 뜻을 포기하지 않았지요. 이 잡는 사람, 이라는 의미에서 홀든의 꿈이 확장됩니다. 어떤 위험지대에서 서서 순수함을 잡아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라는 식으로. 그리고 그건 마지막의 피비, 에 의해서 구현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5번의 경우.. 이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청소년때의 제가 저 호밀밭의 파수꾼, 을 읽었을때는 홀든 콜필드가 스스로와 정말 비슷해보였습니다. 청소년들은 거의 대부분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가지던 것 같으니.. 청소년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하다못해서 소설의 진의와는 멀어질지라도 어른들은 아무것도 몰라요, 라는 문장이라도 떠올릴 수 있는 한 청소년 소설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합니다.

사실 저도 그다지 많이 아는 편이 아니라.. 그러나 특히 3번의 경우는 저도 한 번쯤 생각해본 부분이라서 이렇게 몇 마디 끄적여보았습니다. 홀든에 공감을 하느냐, 공감을 하지 못하느냐, 가 이 소설의 평에 영향을 줄 듯 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처음 읽었을때는 홀든에 너무 깊이 공감을 했고.. 두번째 읽을때에는 피비가 너무 좋았습니다. 세 번째 읽었을때는 옛날에 읽었던 그런 느낌이 제대로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홀든에 공감하기에는 너무 커버린 것 같기도 하고.. 어떤 틀을 떠올리지 않기가 힘이 드는 나이가 되버린 것 같기도 하고

yamoo 2013-10-18 17:07   좋아요 0 | URL
저의 문제의식에 이렇게 답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가연님!
무려 3번을 읽으셨군요~ 우와~!
전 이거 작가가 뭘 전하려는 건지, 또 저 제목 때문에 답답해서 연속으로 2번 읽었습니다. 근데,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저런 물음만 가득히~~ㅜㅜ
가연님의 답변 때문에 1번과 3번을 잘 정리했습니다.
정성된 고견 정말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13-10-17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유명한 작품을 아직 읽어 보지 못했어요. 읽어야 할 책으로 찜해 놓기는 했는데...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한 인물이 또 있으니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이죠.
저는 이 작품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주인공(한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학교)에 대한 비판으로 읽었죠. 아무도 한스를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읽으면서) 주인공 한스에 대해 연민과 애정을 가졌어요. 고독해 보여서 친구가 되어 주고 싶을 정도였어요.

님의 글을 읽으니 그 작품이 생각났다는...
꼭 <호밀밭의 파수꾼>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입니다. ^^

yamoo 2013-10-18 17:12   좋아요 0 | URL
아, 페크님은 아직 못 접해 보셨군요!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도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홀든과는 많이 달라보여요. 이거 읽으시면 같으면서도 다른 두 인물을 비교해 보실 수 있는 기회를 얻으시겠어요~^^

저도 이게 하두 유명세를 탄 작품이라 읽어 봤는데, 왜 유명한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이보다 더 좋은 작품들도 많은데....어쨌건 페크님이 이 소설을 읽으신다면 어떤 느낌이실지 자못 궁금해집니다.
빨리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읽으신다면... 한스와 홀든의 비교 리뷰가 가능하실 거 같습니당~ 여튼 어여 읽어보시어요~^^
 

1. <행복한 죽음>, 알베르 카뮈, 청년사   나의별점: ★★★★★

<이방인>과 비슷한 내용에 동일한 주인공. 뫼르소는 끊임없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만 현실적 삶은 부조리하고 공허한 삶이 지속된다. 무엇을 하든지 뫼르소는 채워지지 않는 행복에 좌절한다. 여자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그는 만족을 찾지 못했다. 살인을 하고도 잘못인지도 모르는 뫼르소. 결국 그는 그 지루한 삶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완전히 정지된 삶. 뫼르소는 그 속에서 자신이 누릴 수 있는 순수한 시간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뫼르소. 하지만 그걸 깨닫고 얼마 안 돼 뫼르소는 늑막염에 걸려 죽어간다. 행복한 죽음...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무거운 책.

* <행복한 죽음>은 <이방인>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창작 의도를 확인 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습니다. 카뮈에 있어 행복한 죽음이 차지하는 작품의 위치는 중요한 것이더군요. 어떻게 해서 <이방인>이 태어났는지 알 수 있었답니다. 여기 포함된 단편 에세이가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단두대에 대한 단상>이 특히 그렇습니다.


2. <달콤한 인생>, 최인호, 문학동네 소설집   나의별점: ★★★★

최인호가 왜 우리문단을 이끌어가고 있는 두 사람 중 한사람인지, 이 사실을 아주 명징하게 깨닫게 해 준 소설집. 평범하고도 쉬운 소설 속에 그가 담고자 하는 얘기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문단 후배 소설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최인호는 저 멀리 등 번호를 휘날리며 잡히지 않게 멀리 뛰어간다는 말을 했었는데, 정말 말이 빈말이 아니었다. 다작의 작가이자 소재의 끝이 안 보이는 작가. 이제 최인호의 평가는 확실히 달라질 것 같다. 문단에서 다작의 작가라서 그런지 좀 저 평가돼 있는 인상이 짙었는데, 소설집을 읽고 보니 그의 내공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 <달콤한 인생>은 작가 최인호를 재평가 해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쉽고 간결한 단편에 상당한 정도의 의미를 담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데, 최인호의 포스가 어느 정도인지 새삼 확인 할 수 있는 귀중한 단편집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갔지만, 그가 남겨준 소설들은 작가가 살아있을 때보다 훨씬 높은 평가 속에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겁니다~


3. <라벤더 향기>, 서하진, 문학동네 소설집   나의별점: ★★

서하진의 소설은 재미없다. 그녀 자신도 자신의 소설이 재미없음을 알고 있다. 끝까지 읽는다는 게 고통스럽다. 그런데도 이런 작품집을 그녀는 계속 쓰고 내겠다고 한다. 음....서하진은 멀리해야겠다. 이 소설집은 죄다 역전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물론 작가가 의도적으로 썼으니까 그렇겠지만 하나같이 모든 작품들의 구성이 동일하니, 많이 식상했다. 소재의 참신성은 좋았으나 재미가 없는 게 흠이다. 정말 재미가 없다. 정말!


 

 

 

 

 

4.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심리코드>, 베아트 샬러, 흐름출판   나의별점: ★★★★

‘은밀하게 상대를 움직이는 101가지 심리효과’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행동의 원인이 되는 심리학적 이론들을 사례에 맞게 재구성한 책이다. 응용심리학을 쉽게 소개한 책으로서 사례별로 ‘OO 효과’라는 소제목(예컨대 에펠탑 효과, 후광효과, 체스판 효과, 바비인형 효과 등)으로 80여개가 소개되어 있다. 경제학과 마케팅 그리고 광고에서 심리학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유익한 책. 깊이는 살짝 없는 게 흠이지만 여러 심리학적 내용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어 기분 좋은 책이다.


 

 

 

 

5. <디셉션 포인트 1,2>, 댄브라운, 문학수첩    나의별점: ★★★

<천사와 악마>를 해치우고 연속해서 본 댄 브라운의 책. <천사와 악마>가 재미 면에서 다빈치코드를 뛰어넘을 만 하다고 생각하여 엄청난 기대감을 갖고 집어든 책이다. 한데, <디셉션포인트>는 브라운의 이전 작들과는 달리 팩션 계열이 아닌 과학첩보 계열이다. 읽으면서 많이 이질적이었다.

 북극 밀른 빙붕에서 1억5000만년전의 운석이 발견된다. 그 운석에는 고대생물의 화석이 포함되어 있다. 이 밀른 빙붕의 화석을 포함한 운석을 놓고 정치인과 과학자들이 희대의 기묘한 싸움을 시작한다. 나사의 현 체제를 옹호하는 대통령과 그 측근들. 나사를 민영화시켜 재정적자를 해결하려는 차기 대선 주자 섹스턴 상원의원. 그리고 그 비밀을 파헤치는 우리의 두 주인공들...

 그런데 요상한 건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만 있다는 거. 대중소설의 전형. 하지만 댄브라운 소설 가운데 가장 실망스런 작품.

 

 


6. <수상한 식모들>, 박진규, 문학동네  나의별점:  ★

이런, 빌어먹을! 젠장! 정말 모든 부정적 탄식들을 모두 뱉어내고 싶다. 재미있고 웃긴다고 해서, 그리고 여기저기에서 추천을 날려줘서 본건데, 재미는 무슨 개뿔! 이건 전혀~ 아니올시다...이다. 식모와 호랑아낙의 연계성도 어설퍼 보이고, 호랑아낙의 계보를 찾는 그 역사적 작업도 조잡했다. 황당한 내용에 황당한 사건 전개. 억지스런 설정에 쓴 웃음만 나올 뿐이다. 나중에 뭐가 있겠지....했는데, 끝까지 있는 건 없었다. 여튼, 읽은 책 중 최악의 책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비주류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김중혁이나 박민규를 생각한 것이 너무도 크나큰 실수였음을 고백한다.


 

 

 

7. <죽은자들을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 복거일, 북앤피플    나의별점:

우리나라 작가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작가 중 한명이었다. (헌데, 지금은 아니다) <비명을 찾아서>를 아주 감동적으로 읽었고, 몇몇 산문들에서 보여준 그의 비판적이고도 냉철한 시선이 꽤 신선했었다. 그래서 그의 신간이 나왔다하면 바로 구입해서 보곤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반대를 위한 반대에 자신이 가진 모든 기를 집중하는 모양이다. 결국 그는 극단으로 종종 넘어가곤 했다. 그리고는 나와 멀어졌다. 특히 이 책 <죽은자들을위한 변호:21세기 친일문제>가 컸다. 정말 너무한다. 일본의 한국식민통치는...결국 우리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고...친일파 처단은 어려운 것이니...관두자는...논리...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탁석산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충수를 두는 작가. 제발 좀 그만했으면...

 

 


8. <책상은 책상이다>, 페터 빅셀, 예담   나의별점: ★★★

뭐랄까, 이상한 사람들의 모음이랄까. 아주 얇은 책인데 그 내용은 만만치 않았다. 아, 짚고 넘어가야할 한 가지. 최인호님의 <달콤한 인생>에 나오는 맨 마지막 단편 <이상한 사람들>은 이 책을 표절한 게 분명하다는 거다. 의심을 넘어선 확신~! 아주 똑같은 부분도 있었다!! 전체적인 소 단편 내용도 비슷한 느낌. 모티브 자체가 너무 흡사하다. 약간 배신감 같은 것이 들더라. 뭐, 지금 생각하니 작가가 아주 작게 각주처리를 한 것 같기는 한데~  그치만 똑같이 베끼면 안되는거 아닌가..--;;


 

 

 

 

9. <내 인생을 바꾼 이 한권의 책 >, 한국사회문화연구소, 정보나라   나의별점: ★★★

명사들이 주옥같은 명작들을 한 권씩 진솔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명작에 대한 나름의 독후감을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물론 책은 문학이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실천가의 자서전’ 그리고 과거의 ‘역사와 교훈’을 담은 책도 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명사들이 어떻게 그 책이 자기를 바꾸었는지, 자기들이 읽은 수백 권의 책 가운데 1권씩을 골라 써 낸 독후감은 충분한 의미를 갖고 다가온다. 눈에서 마음으로 전달되는 글 읽기의 자세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는 기본이 될 수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10. <카르페디엠!>, 존 블룸버그, 토네이도    나의별점:

예전에는 자게서를 참 많이도 읽었더랬다. 쉽게쉽게 한권씩 읽을 수 있어 괜찮았는데, 언제부턴가 딱 끊었다. 아마도 이 책이 내가 골라서 읽은 자게서의 마지막이었을 거다. <카르페디엠>은 제목처럼 첨엔 좀 뭔가 있는 거 같은데, 플롯 구조가 너무 작위적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뭐, 대부분의 자게서들이 대동소이하겠지만, 이 책은 좀 심했다. 미치 앨붐 류의 자기 계발서가 인기를 끄니, 출판사가 기획회의를 통해 여기에 영합하는 책을 펴낸 느낌이다. 천사와의 대화가 최대의 아킬레스 였다. 천사가 편지를 보낸 구절은 그냥 손이 오그라드는 뭐, 그런 거. 읽으면서 애써 진부함의 쓰나미를 맛보고 싶으신 분이라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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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0-08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ㅎㅎ....
수상한 식모들... 이거 제가 알라딘 처음 글 올리 때 이 리뷰 썼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삭제했지만 말입니다. 그때 제가 한 말이 이런 후진 소설을 쓰는 작가의 재능도 놀랍지만, 이 소설을 뽑아준 심사위원의 놀랄 만한 심미안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라고 쓴 기억이 나네요...ㅎㅎㅎㅎㅎㅎㅎㅎ
정말 황당한 소설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어찌나 짜증이 나던지.....

yamoo 2013-10-12 10:50   좋아요 0 | URL
오우~! 수상한 식모, 리뷰도 올렸었었군요. 삭제하셨으면 다시 올려주세요~~ 곰발님의 혹평을 보는 재미를 주시길~^^

페크pek0501 2013-10-10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데요. 좋은 건 좋다고 하고, 후진 건 후지다고 해서 솔직함이 느껴집니다.
여기서 제가 읽은 책은 없지만 다른 책으로 읽은 작가는 다섯 명이 되네요.
워낙 유명한 작가들이라서요.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1번과 2번은 존대어 문체로 쓰시다가 3번부터 바뀝니다.ㅋ)

yamoo 2013-10-12 10:53   좋아요 0 | URL
원래 제 성격이 그래요..ㅎㅎ 책도 영화도 뭐든 이런 식이에요..^^;;
이건 엔날에 읽었던 책들인데, 리뷰를 정리하면서 올린 것이에요. 읽어주셔서 감솨~!

1번과 2번은 아래 별표 덧붙임이 있는데, 고것만 존대어로 썼어요. 다른 책들은 덧붙일 말이 없구요~ㅎ
예리하신 페크님^^
 

이제는 더이상 출간되지 않는 문고본들. 그 중 하나인 박영문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가로 9센티x세로16.5 센티의 문고본 시리즈.

총280여 종의 주옥같은 고전을 엄선하여 출간한 기획시리즈.

 

여기에는 고전소설, 에세이, 고전 사상, 한국학 등 그 시대에 반드시 읽어봐야할 책들이 즐비합니다.  

특히 사상가들의 주저가 아닌 짧은 에세이들도 꽤 발간된 매우 귀중한 문고본 총서 입니다. 한스 콘의 <민족주의 시대>나 매슈 아놀드의 <교양과 무질서>, 막스 쉘러의 <철학적 세계관> 등이 제가 이 문고본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귀중한 책이었죠. 번역이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 이런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2천원도 안되는 가격에 말입니다. 1998년 쯤에 대형 서점(서울문고)에서 1800원에 구입한 게 마지막 기억입니다. 현재는 절판되어 헌책방에 가야만 만나볼 수 있는 문고본 시리즈. 

지금까지 헌책방에서 약 30여 권을 구해서 지하철이나 버스 내에서 읽어왔습니다. (이동 중에 읽기 딱입니다!) 거의 다 읽어 가지만 헌책방을 돌아다녀도 좀처럼 만나볼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헌책방 재고도 거의 소진되어 가는 것 같군요.

3년 전인가... 자주 가던 헌책방에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3권을 손에 쥐고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냥 나온 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 주에 다시 찾아가서 사려고 하니 없더군요.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홉스의 <리바이어던> 완역본은 박영문고가 처음이자 막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재 완역본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영사에 전화를 걸어 시리즈의 재출간 계획을 물어보니, 재 간행 계획은 없다는 군요. 참으로 아쉽습니다. (현재 손에 잡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책은 3권입니다. 나머지는 박스에 담겨 구석에 있어 꺼낼 엄두가 안납니다. ㅜㅜ 그래서 기념 샷~)

 

(사진 왼쪽의 <경험과 교육>은 존 듀이의 교육 에세이인데, 번역이 매우 안좋스니다. 겨우 겨우 읽었다는..콘의 <민족주의 시대>는 번역이 꽤 잘되어서 슥슥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래는 박영문고 출간에 즈음한 박영사 대표의 출간사입니다. 이 출간사를 여기에 옮겨놓아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아는 것은 힘이요 행동의 원천이다. 행동 없는 지식의 축적이 공허한 것과 같이 지적 토대가 없는 행동은 맹목이며 위험하다. 추등(秋燈)밑에 책을 덮고 천고를 회상하면서 식자인이 되는 것의 어려움을 탄식하던 석학 황매천도 행동인이었음을 우리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민족분단의 슬픈 현실 속에서도 바야흐로 민족중흥의 새로운 시대의 여명을 맞이하기 위하여 국민전체가 감연히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자유롭고 평화로운 민주적 통일한국에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우리는 현시을 직시하고 이것을 정확히 분석하며 진단하는 예지를 갖추어서 확신과 희망과 용기를 갖고 여기에 대처하는 자주적 태도와 행동력을 길러야 한다. 

여기에 박영문고를 간행하여 독자 여러분께 바치는 소이도 이 같은 요구에 응하고자 함인 바이니 이에 따라 이 문고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음과 같다. 

세계의 민주적 문화의 전통을 계승하여 과학적, 비판적 정신을 함양한다. 

한국의 위대한 민족적 얼과 슬기를 올바르게 파악하여 영광된 민족사를 개척해 나가는 정신자원을 개발한다. 

한국의 문화적 유산을 소생시켜 민족적 긍지를 회복한다. 

종래의 독선적 장식적 교양에서 탈피하여 국민 대중과 직결된 참신한 문화를 건설한다. 

다행히 이 문고가 널리 독자의 지지를 얻어 건강한 성장을 꾸준히 지속하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박영사 대표 안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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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3-10-06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런 게 문고본의 매력인 것 같습니다.
문고본은 이상하게 하나 읽으면 모두 다 읽어서 완성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저는 전설의 삼중당 문고 전부 한번 구비해보았으면 합니다.
전설 속 삼중당 문고....
가끔 헌책방 가면 삼중당 문고가 보이더군요. 무지 반갑습니다.

yamoo 2013-10-08 12:33   좋아요 0 | URL
그렇죠. 문곱본만이 아니라 출판사의 기획총서 2권만 모이면 찾아 다닙니다. 문고본도 요즘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려 모을 염두가 안난단는..^^;;

삼중당 문고본은 10여권 갖고 있는데, 워낙 발행부수가 많아 전부 구비가 가능할지 의문스럽네요. 만약 가능하면 전설의 인물이 될듯 싶어요^^

페크pek0501 2013-10-07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한 책이네요.
저는 예전 문고본의 작은 책이 좋아서 <책세상문고 고전의 세계>의 시리즈를 애용합니다.
책이 작고 두껍지 않아 좋고 유익한 책이 많아서요.
몇 권 살 적마다 모두 사 보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디 여행 갈 때 가방에 넣기도 좋아요.
저도 출판사에 전화해서 출간 계획을 물어본 책이 있답니다. 호호~~

yamoo 2013-10-08 12:36   좋아요 0 | URL
특히 리바이어던이 귀했던 거 같아요. 지금도 후회하고 있어요..ㅜㅜ
저두 책세상문고본 애용합니다. 우리시대와 고전의 세계 합쳐서 50권 이상을 모으고 있네요^^;;
책이 작고 두껍지 않은 걸로는 살림지식총서가 갑이에요~ 소재도 책세상 문보본도다 다양하고 주제도 가벼워서 읽는데 부담이 없더라구요~ 페크님께도 살림문고를 강추~!!!

양철나무꾼 2013-10-07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사실.
yamoo님은 적어도 원시 내지는 노안은 아니다, ㅋ~.
언제부턴가 넘 작은 글씨의 책은 눈이 쉬 피곤하여 부담스럽더라는...
그리하여 언제부턴가 문고본은 그림의 떡이더라는..., ㅋ~.

잘 지내시죠~?^^

yamoo 2013-10-08 12:39   좋아요 0 | URL
헛! 벌써 노안이 오시다뉘...(앗, 죄송~ㅎㅎ)
전 여전히 작은 책이 좋더라구요. 이동중에 큰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으면 팔이아프더라구요. 공간도 작게 차지하면서 가벼운게 활자 작은 불편함을 상쇄한답니다~
그리고 문고본을 모아보면, 그 매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어요. 문고본으로만 기획되는 책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그나저나 제가 더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는지...통 서재에 댓글에 답글을 달지 않으셔서 서재운영의 방침을 바꾸신거 같다는..^^;;

oren 2013-10-1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마침 지난주에 제가 사서 읽었던 책 가운데 '문고판'도 한 권 끼어 있었네요.

그 책은 범우문고에서 나온 《테렌티우스 희곡선》이라는 책이었어요. 그런데 그 책은 정말 애처로울 만큼 크기가 작더군요. 한 손에 들고 정말 가볍게 읽을 순 있었는데, 아쉬웠던 건 정작 내가 찾던 테렌티우스의 희곡 작품 『안드로스에서 온 아가씨』가 그 책에 실려 있지 않더라는 점이었어요. 테렌티우스의 그 작품은 제가 다른 인물들의 책에서 '무려 세 번씩이나' 마주쳤는데, 국내에선 번역되어 나온 책이 아직까지 없는지도 모르겠어요.(도서관에서 검색해 봐도 범우문고판만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문고판의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가지 극복할 수 없는 난점 때문에 '문고판의 운명'은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지 않나 싶어요. "한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모두 어리석은 축소판이다"라는 몽테뉴의 말은 문고판 책들이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근원적 문제'를 아프게 콕 찌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싶어요.

yamoo 2013-10-12 11:00   좋아요 0 | URL
범우문고판 희곡총서는 꽤 유명한 저자들의 희곡들을 선별해서 출간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저에게는 <젊은 세일즈맨의 죽음>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만 갖고 있어요. 근데, 이상하게 희곡집은 손이 안가네요^^;;

양서를 요약해서 만든 축소판은 나름의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그렇지 않은 문고판도 많아요. 서문문고본은 요약본이 하나도 없고 모두 완역된 작품들이에요. 범우문고도 대부분 완역이었고, 전파과학사의 문고본도 모두 완역 총서였어요~

요즘 출간되는 지만지고본이나 책세상 고전 시리즈 그리고 범우문고는 확실히 요약판입니다. 이런 문고판 총서는 어느정도 몽테뉴의 말이 일리가 있어요. 하지만 고전에 가까이 가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좀더 부담없이 다가가기에는 좋은 거 같습니다.

오렌님이 갖고 계신 문고본 책들이 궁금해 지는 걸요~^^

oren 2013-10-12 11:31   좋아요 0 | URL
저는 문고판 책들은 대부분 '축소판'이 아닐까 싶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yamoo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완역된 작품들만' 펴내는 문고판도 여럿 있었군요.

저는 얇은 책들은 뭔가 깊은 내용을 담기엔 좀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 때문에 좀처럼 문고판에는 관심이 가지 않더군요. 기껏해야 중학교 다닐 때 영어공부 할려고 여러 권 읽었던 '영한대역문고'가 제가 읽은 문고판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책들이어요. ㅎㅎ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


“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제게 설명해 주세요”라는 친숙하고도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마르크 블로크의 미완성 대작 <역사를 위한 변명>.

 

 

 


 

나는 이 책을 2007년 존 루이스 게디스의 <역사의 풍경>을 구입하면서 읽었더랬다. 토론회 주제 도서였는데, 책 띠지에 ‘마르크 블로크의 <역사를 위한 변명>과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뒤를 잇는 최고의 역사학 입문서!’라는 광고 카피.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오래 전에 읽었고, 게디스의 책은 토론 주제 도서이니 당연히 읽을 것이었기에, 블로크의 책만 읽으면 되었다. 그러면, ‘광고 문구’대로 주관주의 역사학자 중요 3인방의 주저들은 모두 읽게 되는 셈이다.


언제 사 두었는지조차 몰랐던 블로크의 책을 꺼내서, 게디스의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읽었더랬다. 번역본이 2권 있었는데, 내가 본 책은 1994년 한길사 판 이다. [다른 한 권은 한길사 숲길 시리즈 중 3번째 권(2001년 판)이다.]


그리고는 잊고 지냈다. 다시 꺼내 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한데 몇 주일 전 <역사와 문화>(문학과 지성, 1983)를 읽다가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이 유언이 원 저서에 있는지 두 권의 <역사를 위한 변명>을 다시 들춰보게 되었다.


두 판본의 역자는 서로 달랐다. 94년판 역자는 정남기 님 이고, 01년 판 역자는 고봉만 님 이다. 두 분 번역 모두 읽을 만 했고, 수록 내용도 비슷했다. 단지 94년 판에 조르주 뒤비의 ‘책 머리에’가 추가된 것 이외에는 뚜렷한 차이점을 찾지 못했다. (현재 한길 그레이트북스 판본은 01년판의 재판)


하지만 역시나 <역사와 문화>에 수록되어 있는 블로크의 ‘유언’은 없다.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는 듯하다. 이광주 씨가 편집한 <역사와 문화>는 ‘현대에 있어서의 역사인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편집된 이 책의 필자들을 보면, 유명한 역사철학자들이 즐비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칼 뢰비트, 마르크 블로크, 베르너 콘체, 요한 호이징가, 베르너 케기, 스튜어트 휴즈 등 석학들의 ‘역사적 인식’을 만나 볼 수 있는 책이다.


논문식으로 편집되어 있는데, 저서 중 일부를 발췌하여 편역한 것도 있고, 소논문을 번역한 것도 있다. 한데, 여기서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을 만나 본 것이다. <역사를 위한 변명> ‘서론’을 번역한 부분의 부록으로 추가된 내용이다.


원래는 <역사를 위한 변명>에 수록되어야 마땅한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빠진 듯하다. 짧은 글이기에 여기 옮겨 놓는다. <역사와 문화>가 아직 절판되지 않고 알라딘에 재고가 있는 듯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일독하시면 좋을 것 같다. 300페이지가 넘는데 6천원도 안한다.^^



마르크 블로크의 유언


프랑스에서든 혹은 외국에서든 나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의 사랑하는 아내나 혹은 그렇지 못할 경우 나의 자식들에게 그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매장해 줄 것을 부탁한다. 나는 장례식이 다만 하나의 시민다운 것이기를 바란다. 나의 가족들은 내가 다른 어떠한 종류의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때가 왔을 때 나는 친구 한 사람이 시체 안치소나 묘소 옆에서 다음의 말을 읽어 주었으면 한다.


나는 나의 육체 위에서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나의 많은 조상들이 묻힐 때 읊어졌던 그 운율의 유태교 기도문을 읽으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나의 한평생을 통하여 나는 언어와 사상에서 완벽한 성실성을 이룩하려고 노력하였다. 허위와 타협은, 어떤 구실이 붙든 간에, 인간 정신의 궁극적인 부패의 표징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이 점에 있어서 나보다 더욱 훌륭하 사람을 따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나 나는 다음의 간단한 말보다 더 좋은 묘비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 “DILEXIT VERITATEM(나는 진리를 사랑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인간이 스스로에게 진실해야 하는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이 순간에 언제나 받아들이기를 거부해 왔던 신앙에 대한 어떤 정통교설의 그러한 종교양식을 행하도록 부탁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누구나 이러한 개인적 성실성에 대한 진술을, 겁쟁이의 부정과는 가장 관계가 적은 것이라고 잘못 해석할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므로 나는 필요하다면, 죽음에 직면한 이 자리에서, 내가 유태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기꺼이 확언하고자 한다. 나는 이것을 결코 부정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럴 마음조차 없었다. 가장 경악할 야만주의에 휩쓸린 한 세계에 있어서, 가장 높고 고결한 위치에 있는 그리스도교가 그 뒤를 잇고 확대시킨 히브리 예언자들의 관대한 전통은, 생활과 시낭과 전쟁을 가장 훌륭하게 정당화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아닐까? 인종을 기초로 한 생활과 정신의 모든 그럴 듯한 공동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모든 신앙의 도그마에 대한 한 사람의 국외자로서 나는 생애를 통해, 나 스스로가 무엇보다도 아주 단순하게 한 사람의 프랑스인임을 느꼈다. 이미 오랜 가문의 전통은 나를 나의 조국에 견고하게 결합시켰다. 나는 조국의 정신적 유산과 역사 속에서 자양을 발견했다. 실로 나는 안락함과 자유를 숨 쉴 수 있는 공기를 지닌 그 어떤 다른 나라도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조국을 지극히 사랑했으며 나의 모든 정력을 그것에 바쳤다. 나는 유태인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감저들을 방해한다고 전혀 생각지 않았다. 비록 나는 양차대전에 참가하였으나 프랑스를 위하여 죽는 것이 나의 운명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의 온 성실성을 다 바쳐 선언할 수 있거니와, 나는 이제 내가 살아왔던 것과 같이, 한 사람의 프랑스인으로서 생애를 마친다.


이 말들이 읽혀지고 나면, 그 친구가, 원문을 입수할 수 있다면, 내가 참전 공로로 받은 표창장들을 읽어주기 바란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내용 파악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확고한 의지의 진정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느낌이 드는 유언장이다. 유태인이지만 태생을 부정하지 않고 조국 프랑스인으로 죽을 수 있다는 자부심은 베르그손의 죽음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참으로 애석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더 살았다면 대작을 여럿 썼을 석학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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