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이라는 책이 있읍니다. 이 책은 1990년~1998년 ...약 8년에 걸쳐서 중국학자5명과 일본학자7명 그리고 그외 일본사관학교 (육사.해사) 장교및 중국인민박물관장. 한국해군사관학교장교들의 도움으로 총 32권으로 발권된 책입니다.

이 책은 크게 이순신장군 생애를 다룬 5권.
(이순신은 누구인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 2권 .
명나라가 본 이순신1권.
1500~1600년시대의 조선과일본 그리고 명나라 10권.
이순신과 임진왜란 5권.
토요토미 대 이순신 2권.
이렇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한 내용이 25권.
그리고 역사적 근거로 가설을 부친 내용이7권으로 나누워진 책입니다.


이중에서 좀 특이한 것은 일본장수가 본 이순신장군에 관한책이 2권이나 된다는것인데, 이순신장군께서 난중일기를 남기시듯, 일본장수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서적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와키자카와. 도도. 등등 .. 특히 이 두사람은 이순신장군에 대한 기록이 유별 나다고합니다. 아마 같은 수군이라서 그랬겠지요.


 


1. 와키자카가 본 이순신


전에 kbs1 역사스페셜에서도 나온적이 있읍니다.와키자카 후손들이 매년 이순신장군 탄생때 온다는 것. 와키자카가 이순신장군을 알게된건 한산도대첩때 인데, 와키자카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과는 성격이 좀 많이 다르다고 합니다. 물론 한국에서 바라보는것과 일본에서 바라보는건 차이가 있겠지만...아뭏든 와키자카라는 장수는 전형적인 사무라이였는데명예를 중요시 하였으며, 차를 좋아했으며, 함부로 살생하기보다는 덕을 베풀어서 적을 자기수하로 만드는 뭐 랄까 그런 묘한데가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와키자카는 2천의 군사로 약 5~10만명(정확한설은 없음. 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이라고 함)정도 되는 조선육군을 물리친 명장중에 명장입니다.그러한 명장이 듣지도 못한 장수 이순신장군에게 대패를 하였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을 겁니다.

한 예로 와키자카는 한산도대첩 이후로 충격에 6일을 굶었다고 본인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으니 그 충격은 대단했었나 봅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왜졌는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이런 문장이 있읍니다.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거라 생각하였다..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일 몇날을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2천의 군사로 5만이상의 조선군을 물리친 일본의명장이 이렇듯 두려움에 떨 정도였으니.. 이후에도 와키자카는 여러번 이순신장군에대한 본인의 생각과 조선수군과 있었던 전투내용을 상세히 기록해 뒀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흥미로운점은 와키자카가 쓴 내용에보면..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좋아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싶은 사람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싶은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적장이지만 와키자카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글이죠. 아마 이러한 이유 때문에 4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후손들이 이순신장군 탄생일때 오는가 봅니다.


 


2. 명의 사신이 본 이순신


그리고 "운덕 " 이라는 명나라의 사신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후일 이순신장군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을 했습니다.
(하루는 어두운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속을 통제사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바람속으로 거닐고 있는걸까? 궁금하던차에 한번 따라가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현장으로 가는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중 효행편을 읽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 10살 의 어린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염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수 있겠는가!)


 


3. 명의 도독 진린이 본 이순신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은 조선에서 진린도독으로부터 한통의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튀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르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훗날청國)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수 있을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 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이순신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게 충(忠)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4. 책의 저자인 쟝웨이링 교수가 본 이순신


1990년 3월 하북에서 제1차 중.일 합동 연구회(이순신)를 가졌다. 이순신? 내가 알고있는 이순신은 조선시대 임진왜란때 장수였던거 정도로 알고 있었다. 사실 이 연구회엔 나의 절친한 동료학자의 권유로 참석하였으며 그 해에 그저 잠시나마 자리에 참석할 생각이었다. 사실 조선의 역사에대해선 그다지 큰 관심이 없던터라, 나는 그저 일본교수진들의 말만 들을뿐..

그러한 내게 작으나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화면가득 보여지는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거북선이라고 불리는 배였다. 저런배가 400여년전에 있었단 말인가...(본것은 처음이었다) 나의 놀라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은 임진왜란에 대해서 나와는 너무나 다른 시각으로 보고있었다.

아무리 나라가 다르다지만, 그 시각의 차이는 너무나도 크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차이는 중일간의 차이가 아니라 바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는 것,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조선이 아닌 이순신 이라는 한 인간을 보는 것이었다. 일본 교수진들은 이 연구회를 이순신이라고 불렀다.  즉, 임진왜란 자체를 이순신이라는 인물이 중심이되어서 바라보고 찾고 연구 하고 가설을 붙이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 중국 어느 누구에게도 연구해 보지 않은 방법이었다.

나는 그 학술회가 끝나는 데로 일본교수의 도움으로 이순신이란 인물에 대한 책자를 얻을 수 있었다. 7권으로 이루어진 이순신 이라는 인물에 관한 책이었고, 나는 그 7권을 단 하루 만에 다 읽고 말았으며, 책을 손에서 놓은뒤 내게 있어서 가느라한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이순신! 참으로 읽으면 읽을수록 수수께끼 같은 인물.

지금까지 우리 중국학자들은 임진왜란은 일본의 토요토미가 조선을 침략하였으며, 조선의 왕 선조는 그들을 막지못하고 의주로 몽진을 하여 우리 명나라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그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으며, 그로 인해 명나라는 국력을 소비한 나머지 지금의 청에 의해 멸하고 만다. 이것은 우리 중국과 한국 북한.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도 별 차이 없이 나오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날 연 학술회에선 이 모든 것을 흔들어버리는 아니 뒤엎는 가설을 내놓은 것이다. 바로 이순신 이라는 이름으로..

 


5. 장웨이링 교수가 말하는 우리의 거북선


1997년 10월. 한번은 내게 북경대에서 초빙을 받아서 학생들과 토의를 한적이 있었다. 주제는 청나라의 멸망에 관해서 였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서 가져 온 거북선을 가지고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이것이 무언지 아는 사람있냐고 묻자 250명의 학생중 단 한명도 이것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답하였다. 어쩌면 역사학자인 나도 이 거북선을 이순신 인물에 대해서 연구하면서 처음 보았으니, 학생들이 모른다고 답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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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학생들이 이 거북선을 자세히 볼수 있도록 한사람씩 돌아가면서 볼 기회를 주고난 후, 질문을 바꾸어서 왜 청나라가 망할 수밖에 없었고,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질 수밖애 없었는지 질문을 던져 보았다. 학생들은 각자의 생각에 대해서 발표를 하였으며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번엔 다시 질문을 바꾸어서 그렇다면 그 당시 전쟁에서 여러분이 아는 영웅중 단 한명 다시 태어나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누구인가라고 묻자 학생들의 답변은 내가 예상하고 있던 그대로 였다.

항우.제갈공명.손자.관우..
나는 잠시 창너머를 바라보았고, 한참 동안이나 내가 강단의 창 너머만 바라보자 이에 이상했는지 학생들은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나는 이에 만일 지금 또다시 지금 중국이 청나라처럼 되었고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거지일거라고 답해주자 모두들 의아해 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들며 그렇다면 교수님께서는 어떤 위인 나와야 된다고 생각 하십니까? 라고 질문을 하였고, 나는 그 질문에 거북선을 다시 한번 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여러분들이 생각하고 있는대로 배다. 지금부터 400년전에 만들어진 전투함, 이 전투함을 만든 이순신, 400년 전에 조선과 일본의 전생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장군이야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에 말한다. 많은 학생들과 같이 참석한 많은 다른 교수들도 의아해 하기 시작하였고, 여기 저기서 이순신이 누구냐고 서로 묻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간단히 임진왜란에 대해서 30분정도 시간을 내서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의 전쟁에서의 활약상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이순신을 선택한지 아느냐고 물었으나 이 역시 학생중 단 한명도 알지못하였다. 단지 어느 한학생이 교수님 이순신은 해군아닙니까? 나는 그 학생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해 주었다. 바로 해군이기 때문에 청나라를 구할수 있는 것이다. 청나라가 망한 건 아편 탓도 있고 황제 탓도 있다. 정치적 이유도 맞다. 하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유능한 해군 장교가 없었다는 것이다.

조선수군장수 이순신은 5000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도 없이 모두 승리를 이끌어 조선을 구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 같은 처지였다. 당파싸움에 휩쌓여 있었고, 병력이라야 5만도 안되는.. 그러한 조선을 이순신장군이 지켜 낸 것이다. 그리고 그 승리의 안에는 바로 이 거북선 전투함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들은 모두 육지에서 뛰어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 중국 역사에는 세계에 내 놓을 만한 수군 장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중국은 대륙 국가였다. 하지만 대륙만큼이나 우리 중국은 바다가 넓다.

그러자 한 학생이 손을 들며, "교수님 그렇다면 주유가 있지 않읍니까?" 라고 말하였고, 나는 그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주유는 훌륭한 지휘관이다. 그러나 주유는 이순신장군과는 격이 다르다. 주유는 양쯔강에서 활약한 장수지 진정한 해상지휘관은 아니다. 영국을 보라. 네덜란드를보라. 스페인을보라. 그들은 나라는 작아도 바다를 가졌기에 그리고 그 바다를 점령하였기에 세계 최고의 국가로 일어설수 있었다. 그와 반대로 청나라는 거대한 대륙국가 이였지만 바다를 몰랐기에 무너지고 만것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 할 것이다. 바다로 바다로 눈을 떠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학생들에게 일본에서 열렸던 임진왜란 모의 전쟁에서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국에 점령되었다.' 라는 결과를 말해 주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세계 어느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한번 거북선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나는 왜 이순신이 위대할 수밖에 없는지 이유를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이 거북선은 내가 여러분에게 이순신장군이 만들었다고 했으나, 사실은 그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었다. 이 거북선은 나대용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있었기에 거북선을 생각하고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수군은 인진왜란 1년 전만해도 허약한 병사들이었으나, 그 허약한 병사를 단 1년 만에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로 만들었
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고 말할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리고 나서도 1시간 정도 더 이순신 장군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기를 해 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쳐주는 기립박수를 받아
보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까지도 하면서..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쟝웨이린 교수님은 1989년에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는 주요 책임자 중 한분이셨으며, 1990년 이 학술회를 시작으로해서 연구하시던중 1995년 고구려 역사편입하는 작업에서 손수 물러 나셨다고 한다 쟝웨이린 교수님은 이 책 머릿말에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역사학자란 후세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는 안된다. 역사학자란 두 가지의 부끄러움이 있다. 한 가지는 숨기는 것이다. 히틀러가 200만 유태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려하는 역사학자들이 더 부끄러운 것이다. 나의 조국의 부끄러움 보다 역사 앞에서 그 진실을 숨길 때 그것이 참으로 부끄러운 짓이다. 또 한 가지의 부끄러움을 말한다면,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역사학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진정한 위인은 자기 가족만을 위해서 자신의 조국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니다. 진정한 위인이란 모든 만인을 위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위인이며.. 나는 그 위인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6. 일본의 아리모토라는 역사가가 본 이순신


세계의 전쟁 영웅은 피로 만들어 진다. 전쟁 영웅은 만인들이 우러러 보게 끔 만든다. 알랙산더 대왕도 그러 했고 케사르도 그러 했고, 징키스칸도 그러 했고, 나폴레옹도 그러 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우리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다. 우리자신을 부끄럽게 한다. 이러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크리스챤인이다.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그 분. 이순신 장군을 볼 때면 문득 그 분이 떠오른다. 두 분 다 나의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순신 장군은 단순히 조선을 구한 영웅이 아니었다. 또한 이순신 장군은 피로 혁명을 일으키기 보다는 바로 십자가를 선택하셨다.

모든것을 홀로 짊어지시고 가셨다. 2000년 전의 한 청년이 그래햇듯이.. 이순신 장군은 그 처절한 전쟁속에서 忠.孝.義.愛.善 을 가르키신 분이셨다. 그러고보니 한국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을 영웅 이순신이라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다. "성웅 이순신"

 

7. 장군님의 혁명과 죽음에 대한 논란


1996.4월 이케다 하야토 교수의 [아시아 역사를 바꾼 이순신] 14부인 (이순신의 혁명과 죽음) 중에서..

이순신의 혁명. 우리들은 '왜 이순신은 혁명을 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 하였을까?'하는 의구심을 품어보았다. 수많은 전공에도 불구하고 조선 조정으로부터의 의심과 질투를 받은 그는 단 한번 이라도 혁명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먼저, 우린 만일 이순신장군이 혁명을 일으켰다면 과연 성공하였을까? 하는 부분부터 토론을 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12명의 학자 모두 이순신 장군은 혁명의 성공과 함께 조선의 멸(滅)과 새로운 이순신의 나라가 세워졌을 거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순신장군에겐 2만여명의 수군과 약 5천여명으로 추정되는 의병. 그리고 전라도와 충청이남. 경상도 부근에 이순신을 따르는 군(軍)의 수는 1만여명에 이른다. 총 3만 5천여명에 다다르고 이 군대에 대응할 조선의 군대는 없다고 봐야 할것이다.

이와 함께 이순신에겐 두 가지의 또 다른 무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민심과 명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명나라의 군대였다. 명나라 군대 역시 이순신에 대한 반감이 컸으며, 명나라의 장수 유정은 바로 곧 명나라의 황제를 대신 하는 것이기에 이순신에겐 유정을 넘어서야 1차적인 혁명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며. 혁명 후 명나라 황제의 질타를 과연 극복할수 있느냐 하는것이다.

그러나,이것에 대한 대답은 너무나도 간단하였다. 조선의 왕 선조는 이순신이 혁명을 일으키자 바로 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구원을 청했을 것이다. 명나라의 황제가 도와준다면 이순신의 군대는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될것이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조선의 왕 선조는 자신을 도와 줄 군대가 올 거라 생각 했지만, 뜻밖에도 명나라에서는 군대가 아닌 사신이 온다. 조선 조정으로가 아닌 명나라의 장수 유정에게.. 명나라의 황제는 조선의 왕 선조가 아닌 이순신 통제사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

왜였을까? 이 역시 답은 간단하였다. 그 당시 명나라의 국력은 임진왜란(정유)으로 인하여 국력이 크게 약하게 되었으며, 게다가 북으로의 오랑케(훗날 청)의 견제가 심해져 있었으니, 전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한번 강력한 이순신 군대와 전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명나라는 새로운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이미 조선의 민심역시 이순신에게 있는것을 알기에)

바로 이순신에게 손을 들어주는것! 이것은 또한 명나라에게도 커다란 이득인 것이다. 힘 없는 선조가 조선의 왕이 되기 보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진 이순신을 도와 그에게 왕의 자리를 주고 그 이순신의 군대로 하여금 후에 명(明)을 위협하는 오랑케를 견제 하자는 것이다.

명나라의 문록(文錄)을 보면 조선으로 건너 간 명나라 장수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올린 글이 있다.
"폐하 이 전란이 끝나면 즉시 조선의 수군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부르소서. 그로 하여금 북의 오랑케를 견제토록 하소서. 이순신 통제사는 능히 우리 명(明)의 후환을 없애 줄 것이라고 신(臣) 진린은 굳게 믿사옵니다."

이에 명(明)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이순신으로 하여금 그의 군대를 요동으로 이동시키자라는 대신들의 논의(論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이미 명나라에서는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 선조에게 우리 명(明)의 도움을 받았으니 조선도 명(明)을 도우라. 이순신으로 하여금 요동으로 오라하라는 식의 각본이 이미 짜여 있었던 것이다.

이순신이 혁명을 하든 안하든... 이미 명나라에서는 훗날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이순신이 혁명이 아닌 죽음을 선택한 것이었다. 왜였을까? 중국역사 조선의 역사, 아니 고금을 통 털어서 이와 비슷한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이런한 일에는 반드시 쿠테타든 혁명이든 일어나게 마련이다. 아니면 토사구팽이라도.. 그런데 이순신은 쿠테타도 혁명도 토사구팽도 모두 거절하였다. 이순신은 오직 죽음만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순신 과연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이 내용에서는 명나라가 이순신장군을 끌어들여서 북의 오랑케(훗날 청나라)을 견제 시키려는 의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단순히 이순신 장군께서 혁명을 이룩하면 조선이 발전 되었을 거라고 단정을 내리곤 합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국제정세란 매우 이해관계가 복잡한 일입니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어쩌면 그러한 모든 것을 다 아셨는지도 모릅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혁명을 일으키고 명나라가 이순신을 도와줘서 낭떠러지에 몰린 조선왕 선조와 조정대신(이순신의 반대파 세력)들이 뜻밖에도 일본과 손을 잡게되고 비밀협약을 한다면, 과연 조선은 어떻해 되었을까 하는? 혹시 이순신 장군은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왜냐하면 이순신장군은 너무나도 치밀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드라마를 보고 흥분해서 가설을 내세우지만, 이순신 장군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를 정확이 아셨던 분이십니다.

400년이 지난 지금 장군님께 질문을 던져 봅니다. 장군님 당신은 다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리도 두려우셨읍니까? 조선이 피로 물들여질 것이라는 걱정이 그리도 두려우셨습니까? 그래서 죽음을 선택하신 건가요? 2000년전의 예수 그리스도처럼 장군님도 홀로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건가요?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며 모든일을 주관 하셨지만 미약한 인간의 몸이셨던 장군님께서는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였으며, 얼마나 외로웠을까? 당신 앞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립니다. 장군~~

이순신 장군에대한 책이 총32권. 그것도 한국 학자가 아닌 일본과 중국 학자들에 의해 저서가 된 책. 그들은 우리를 알려고 하는데.. 적어도 우린 저들을 모른다고 해도 우리 역사에 대해서 만큼은 더 알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그분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그분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씀이 무엇이 었는지..

 

출천 : http://diarix.tistory.com/m/post/20


원출처 : [야후] soscorea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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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우연히 본 글이 너무도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하여 알라딘 서재에 가져와 봤습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긴~ 글을 단숨에 읽어내려 갔네요.

빙글 검색으로 읽은 글인데, 원문은 야후에 있는 것 같습니다. 팔로잉이 많은 글이라 펌해도 괜찮을 거 같아서 가져와봤습니다. 문제될 글이면 내리겠지만, 가장 중요한 맨 위의 연구와 책들이 허구라네요. 그래서 좀 안심하고 게시합니다.

 

순신같은 대통령을 갖진 못한 현실이 더 안타깝고, 우리의 이순신 연구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일천해서 더욱 더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위 글이 비록 허구이지만(32권 전집이 허구이지, 나머지 학자들의 시각은 팩트인 듯합니다. 진린의 이순신 평가는 기록과 일치하는 걸로 봐서) 충의 현대적 의미가 어떤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나라가 부강해지려면 정치...바로 정치가 제대로 되야한다는 것을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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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 북한연구자료선12

정성철 (지은이) | 동문선 | 1989-07-15 | 658p

 

 

 

 

책소개

 

“력사학에서는…실학자들도 올바르게 평가하여야 한다.”

-<사회과학의 임무에 대하여> p160

 

실학파를 옳게 평가하는 것은 민족문화유산을 계승 발전시키는데서, 교육 사업에서 매우 절실한 문제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실학파의 존재도 귀중하며 좋은 것이라고 보아야 하나 실학파가 그 당시 봉건사회에서 일정한 진보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 오늘에 와서까지도 무슨 큰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역사에서 실학파는 반동적 봉건통치배들의 죄행을 일정하게 폭로화고 진보적인 견해들을 내놓음으로써 당시 조건에서는 일정한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동적 양반계층을 반대하는 진보적 양반계층의 이해를 대변한 실학파 인물들은 그들 자신의 사회계급적 제한성과 당시 생산력과 과학 발전 수준의 제한성을 면할 수는 없었다.

 

이로부터 실학파 사상가들이 기초한 세계관은 봉건 유교사상인 주자학적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였으며, 그 자체가 매우 관념론적이었다. 동시에 그들이 제기한 사회정치적 견해도 봉건제도와 특권적 양반신분제도를 영구히 보존하려는 근본입장에서 제기된 개혁사상이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실학파 인물평가와 관련된 교시를 지도적 지침으로 하여 실학파의 철학사상과 사회정치적 견해 전반을 평가함으로써 지난 시기 이 분야에서 나타났던 편향들을 일정하게 시정극복하려고 시도하였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회력사적 전제 …………11

제1절 <실학>개념에 대한 력사적 고찰 / 13

제2절 17~19세기의 우리나라 사회경제형편과 계급관계 / 25

제3절 17~19세기의 우리나라 자연과학의 발전 / 42

제2장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상리론적 전제 …………69

제1절 리조 봉건지배계급의 통치사상 / 71

제2절 17~19세기의 실학사상발생발전의 사살리론적 전제 / 42

제3장 초기의 실학 ……………………111

제1절 초기의 실학발생의 사회력사적 환경 / 113

제2절 류형원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116

제3절 리익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160

제4장 중기의 실학 ……………………247

제1절 18세기 후반기~19세기 상반기 사회역사적 환경 / 249

제2절 홍대용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255

제3절 박지원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300

제4절 박제가의 사회정치 사상 / 300

제5절 정약용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386

제5장 말기의 실학 ……………………511

제1절 말기 실학발전의 사회력사적 배경 / 513

제2절 리규경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516

제3절 최한기의 철학 및 사회정치 사상 / 545

 

 

 

저자

 

정성철 (정보 없음)

 

 

 

 

 

야무의 간단 평

 

<조선철학사> 필진 중 한 사람인 정성철이 1974년 완성한 책으로 이전의 실학 연구 경향과는 다른 주체사상 입장에서 접근한 실학의 통사. 유물론과 계급적 인식이 강조되어 읽기에 매우 생소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온 <실학사상사> 개설서들과 비교해서 보면 건질 게 꽤 많다. 시각 자체가 완전히 다르고 서술체계도 달라서 신선한 감이 없지 않다. 무엇보다 원전의 충실한 인용으로 이루어진 서술체계가 돋보여, 일독할 가치는 충분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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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즈는 <화이트칼라>(1980, 돌베게)를 통해 현대(1950년대) 미국 사회를 종횡으로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소박한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대로부터 20세기 화이트칼라가 대두하기까지의 상황을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한데, 밀즈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권력 구조 속에서의 화이트칼라가 속한 계층을 설정하고 분석함으로써, 기존의 사회철학적 관점(비어드-듀이-호룸즈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사조)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을 극복하는 가설 위에 자신의 ‘화이트칼라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절판된 책이기에, 간단한 소개를 위해 책을 펼쳤지만, 그냥 단숨에 읽어 내려갔다. 페이지마다 자본주의의 본질에 대한 신선한 분석과 치명적인 비판의식이 돋보였기 때문. 현재 나와 있는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나 <파워 엘리트>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두 책을 모두 읽어 봤지만 이 책이 제일 재밌다.)

 

 

물론 현재 나와 있는 밀즈의 대표작 역시 일급 사회학 이론서치고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화이트칼라>는 앞의 두 책보다 훨씬 구체적이며 우리의 피부에 와 닿는 얘기라 집중이 배가 된다. 바로 현재 샐러리맨들 얘기이기 때문이기에.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최초로 대두하게 된 화이트칼라 계층이 바로 현재 샐러리맨들을 태동시킨 원조라서 그렇다. 약 60년 전 얘기임에도 불구하고 분석의 대상이 되는 논의가 현재와 그리 다를 것이 없기에 그냥 빠져들 수밖에 없다. 밀즈가 그리는 바를 따라가 보면 내 말이 빈말이 아님을 실감하게 된다. 다음 인용문은 현재 우리나라 노동 사회의 실정과 겹친다.

 

 

봉급생활자들은 단 하나 아무 것도 생산하는 게 없으며 단지 대단히 갖고 싶지만 소유할 수는 없는 많은 것들을 그저 관리할 뿐이다. 장인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과 완성 후에 자신의 생산품을 보고 기쁨을 느낄 수 있지만 화이트칼라에게는 그러한 대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생산물로부터 소외되고 해마다 똑같은 서류사무를 취급할 뿐이며, 대신 그에게 판매된 오락에 열광하며 여가를 보내지만 결국 정신적 긴장을 해소시켜주지 못하는 일시적인 흥분에만 정신을 쏟는다. 업무에 권태를 느끼고 오락에서도 진정한 휴식을 누리지 못하며, 이 무서운 악순환으로 인해 기력이 쇠진하고 만다. 일을 하면서 고객이나 상사와 충돌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양보해야만 한다. 카운터 뒤편에 서거나 사무실에서 기다리면서 항상 미소를 머금고 환한 낯빛을 하고 있어야 한다. 화이트칼라는 직장에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만 파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인간성까지도 팔고 있다. 그들은 주급이나 월급을 받으며 자신의 미소와 친절한 몸짓을 판다. 그리고 화가 나더라도 재빨리 그것을 억제해야 한다. 왜하면 바로 그것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판매하여 이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 조그만 자질이기 때문이다. p22

 

 

이 부분에서 현재 감정 노동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비애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밀즈는 책 후반부에서 이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긴 이들을 ‘명랑한 로봇’이라 명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유순한 노동자들보다 백화점 노동자의 행태가 ‘명랑한 로봇’에 훨씬 더 적절할 듯하다.)

 

유순한 노동자들 가운데에는 자기가 왜 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그다지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나 대부분은 적당히 관리하면 어디서 왜 일하고 있느냐고 질문받을 경우, “나는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나는 여기가 좋다. 우리 사장은 정말 함께 일할만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라고 대답하게 된다. p217

 

 

한편 밀즈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 미국 사회를 거시적 개념과 미시적 개념을 동원해 낱낱이 파헤치고 있다. 계급, 생활 유형 그리고 권력이라는 거시적 개념으로 미국 사회를 분석하는 부분도 흥미롭다. 하지만 압권은 화이트칼라의 세계를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부분이다. 이 책의 2부와 3부에 해당하는데, 기업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다.

 

규칙으로 표시된 개개인의 활동양식이 기업의 행동양식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권한은 그들 개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무실에 있으며 그들의 권한은 기업의 권한이다. 그들의 지위와 계급체계 전체에 대한 관계도 방문 앞의 명패에 달려 있다. 위로부터의 안전과 아래에 대한 권한은 규칙에서 나온다. 당연히 그가 누구며 무엇을 하는가라는 자신의 정체성도 기업으로부터 생겨난다. 그들은 전체는 몰라도 약간의 기업비밀을 알며, 규칙과 등급에 따른 경로를 통해 진급된다. 이런 규칙들을 통해서만 그들은 남들과 비인격적으로 경쟁한다. (pp134-135)

 

 

이보다 더 샐러리맨들의 세계를 더 잘 요약할 수는 없을 듯하다. 자기계발서가 아닌 1급 사회학 이론서에서 이와 같은 글을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다. 이후에 진술되는 밀즈의 논거들은 실로 우아하다. 항상 역사적 맥락 속에서 통계 수치를 간과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분석에 적절히 녹여내기 때문에.

 

 

이후에 철저히 논의되고 분석되는 관료제, 의학계, 변호사, 교수, 전문직업 그리고 백화점 등은 밀즈가 왜 미국 사회학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들이다. 탁월한 분석 속에 숨어 있는 신랄한 비판 의식은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더욱이 밀즈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하는 부분들은 현재 한국적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여 놀랍기만 하다.

 

학교 교사, 특히 초등하교와 중고등학교 교사는 전문직 종사자이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볼 때는 프롤레타리아다. 이들의 수는 전문직업 중 가장 규모가 큰 직업집단을 이루고 있다. 즉 모든 전문직 종사자가 약 31%가 그런저런 학교 교사이다. p158

 

 

현재 우리나라 특정직 공무원(쉽게 말해서 전문직이라 불리는 공무원)의 절반은 학교 교사이며, 이들은 모두 전문직에 포함된다. 전문 직종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직종이 교사다. 50년대 미국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다.

 

 

대학 교수를 분석한 부분을 보면 정말 기가 차다. 올해 나온 대학 비판서인 <흡혈귀가 지배하는 대학>의 내용과 별반 다를 게 없어서다. 밀즈는 미국 대학 교수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다.

 

지혜와 정열과 통찰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대학이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대학 총장이 지적한 바와 같이 문리과대학은 똑똑하고 건전하고 강렬한 성격의 소유자를 교수로 채용하지 않는다. (p159) ---- (중략)---- 학계의 일반적 위계서열은 거의 가르치지는 않고 조사 연구를 주로 하는 대학의 정교수로부터 죽도록 가르치기만 하고, 조사 연구는 거의 하지 않는 강사로 이어져 있다. (p161)

 

 

이 내용은 <흡혈귀가 지배하는 대학>(책미래, 2014)에서 저자가 비판하고 있는 양대 축이다. 밀즈는 정말 우리 사회를 예리하게 분석하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

 

 

책의 3부인 ‘생활 유형’에서 노동과 봉급을 논한 부분도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수입이 지위를 결정하고, 노동으로부터 파생된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이 지위에서 만족을 얻는다고 한다. 회사에서 지위가 높아질수록 거만해지고 막말을 해 대는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아마도 이를 반영하는 듯하다.

 

개개의 직업이나 노동은 각각 다른 지위상의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은 그 노동의 장(場)과 사회전체 가운데에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요인이기도 하며 동시에 노동의 한 의의가 되기도 한다. 또 노동에는 재료, 도구, 기계에 대한 지배권뿐만 아니라 보다 중요한 것들도 부수되어 있다. 한편 직업을 수입원으로 보는 노동관의 근저를 이루는 감정이나 공포 중에는 노동의 다른 동기와 만족의 근거가 내재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지위는 가장 중요한 것이다. (중간 생략)

Ⅱ. 지위 : 수입과 수입의 보장은 여타의 것, 특히 지위를 가져오게 한다. 노동에 있어서 기술상의 만족이 사라짐에 따라 노동자는 노동으로부터 다른 형태의 만족을 얻고자 한다. 즉 노동으로부터는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지위에 따른 만족을 얻는다. 여러 가지 인간 관계를 가진 사회적 기능으로서의 노동은 내부적으로는 직장의 동료, 상사, 부하 혹은 고객에 대해, 외부적으로는 친구, 가족, 혹은 사회 전체에 대해 노동자가 자존심을 가질 수 있는 건거가 된다. (pp211-212)

 

 

마지막으로 밀즈가 왜 시대를 앞서간 천재 사회학자인지는 다음을 언급한 대목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분배의 물리적 측면은 광범위하고 신속한 수송망을 포함한다. 시장 거래의 조정은 교통을 포함하며, 시장의 탐색과 상품의 판매는 일용품 금융업자 및 자본시장뿐만 아니라 도소매 판로 등의 매매업을 포함한다. (p95)

 

 

정말 놀랍다. 1951년에 밀즈는 시장 거래의 조정에서 교통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쿠팡의 성공 비결이 배송 정책에 있었다는 사실은 21세기에도 밀즈의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지표가 아닐까.

 

 

결론적으로 <화이트 칼라>는 사회학의 고전이 된지 오래지만,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지극히 근본적인 부분을 드러내고 있기에 일독할 가치는 충분하다. 읽으면서 계속 2015년 우리 사회를 분석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베블런의 <한가한 무리들> 이후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던 일급 사회학 고전이었음을 밝히는 바이다.

 

 

 

[덧]

라이트 밀즈의 저작들이 모두 번역되길 간절히 바란다. <화이트칼라>도 빠른 시일 내에 재간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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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12-23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워엘리트 걸작이죠. 땡잡으셨네요. 저도 화이트칼라 구하고 싶었는데... 아니 왜 이런 책을 절판으로 나두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런 건 절판되지 않게 꾸준히 출간해야 되는 거 아닌가 싶습니다.

yamoo 2015-12-27 18:53   좋아요 0 | URL
네, 이거 천원 주고 샀어요..ㅋㅋ 파워엘리트가 출간됐으니 조만간 <화이트칼라>도 출간되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이전에 절판된 책들이 속속 재출간 되고 있으니 좀 기둘리면 나오겠지요^^ 전 <상상의 공동체>나 얼른 나왔으면 좋겠습니다~ㅎ

cyrus 2015-12-2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물을 처음 봅니다. 요즘 돌베게 출판사의 행보를 보면 80년대에 나온 자사의 책들을 펴내기도 하던데 <화이트 칼라>도 재출간되었으면 좋겠어요.

yamoo 2015-12-27 18:5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저도 중고서점에서 실물을 본 건 첨이었습니다. 디자인이 정말 헬입니다. 오래되서 책도 누렇게 뜨고요..하지만 안의 내용은 정말 따끈합니다..ㅎ 저도 재출간됐으면 합니다. 가격은 한 3만원 쯤 하겠지요? 한길사에서 나오면 말입니다..ㅎ

전 천원주고 샀어요..ㅋㅋ

슈샨보이 2015-12-23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시절 수업때 정말 자주 언급된 책.

yamoo 2015-12-27 18:55   좋아요 0 | URL
푸코리님 반갑습니다!

그렇지요, 사회학이나 사회과학 관련 수업을 들을 때 언제나 언급되던 전설적인 책입니다^^
 

 

2015년 12월 17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가 개봉한 날이기에! 사정 상 개봉 날 못보고 오늘에야 부푼 기대감을 갖고 영화관을 찾았다. 그도 그럴것이 난 스타워즈 오타쿠 중 한 명이니까~

 

 

헛! 근데, 극장을 나오면서 심한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이건 졸작을 넘은 폭망 수준이었다. 도대체 ‘깨어난 포스’의 감독인 J.J. 에이브럼스는 스타워즈 클래식 시리즈에 왜 이상한 짓거리를 시도했는가?

 

 

이 작품이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조금이라도 의의를 갖는 다면 딱 2가지다. 제국이 파멸되고 난 후 그 속에서 다시 탄생한 ‘퍼스트 오더’와 새로운 저항군을 이끌 차세대 인물들의 등장.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스타워즈 에피소드 4~6편의 오마주이자 새로운 에피소드를 위한 전주곡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에이브럼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에 부담을 느꼈나보다. 잘나가다가 중반부 이후는 1977년 작 에피소드4의 줄거리를 그대로 차용했다. 저항군들의 엑스 윙이 어떻게 퍼스트 오더의 심장부를 간단히 쳐부수는지 보면 알 수 있다.

 

 

근데, 뭐 이건 스타워즈 클래식에 대한 오마주로 귀엽게 봐 줄 수 있다. 허나 에이브럼스는 ‘자기만의 스타워즈’를 만들려는 욕심이 과했는지, 플롯 전개에 너무도 많은 무리수를 두는 우를 범했다.

 

 

다스 베이더를 대체하고자 내세운 카일로 렌은 츄이의 광선 검에도 당하는 허약한 악의 화신으로 그려진다. 여주의 갑작스런 포스 작렬도 매우 거슬리고, 훈련도 안 된 여자애가 간단히 악의 화신을 제압하는 장면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물론 스타워즈가 소위 허무맹랑한 내용을 소재로 다뤘다는 거는 어느 정도 인정한다. 광선검과 말도 안되는 초능력(포스의 힘)으로 판타지적 요소가 많이 있긴 하다. 그런데 이는 장르적 특성이 갖는 특이점이고, 이런 전제하에 스타워즈 시리즈는 탄탄한 개연성을 담보해 왔다.

 

 

 

이번 스타워즈 개봉에 앞서 디즈니에서 만든 3D 애니메이션 <스타워즈 반란군>과 이전에 만들어졌던 애니 <클론전쟁>을 보면, 제다이가 되기 위한 과정이 자세히 그려진다. 포스가 강한 아이가 스승의 훈련을 통해 제다이가 되는 과정이 스타워즈 시리즈가 갖는 핵심 중요 요소 중 하나다.

 

 

 

 

그래서 애송이 제다이는 강한 적(제다이의 상대적인 적)에 상대도 안되는 게 스타워즈 상식으로 굳혀진 지 오래다. 이건 77년 작에서부터 스타워즈와 관련된 소설과 애니에서 일관적으로 유지된 모티프다.

 

 

그런데 ‘깨어난 포스’에서는 이것이 아주 간단히 뒤집힌다. 절대 악의 화신인 카일로 렌은 츄이의 일개 블라스터 빔을 포스로 튕겨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맞아 부상을 입는다. 더군다나 애송이 중 애송이(얘는 제다이 훈련도 받지 못했는데 포스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인 레이에게 허망하게 제압당한다. 시스의 절대 악이 말이다. 참으로 웃기는 설정이다.

 

 

심각한 플롯 설정은 또 있다. 도대체 ‘왜 루크 스카이워커는 몸을 숨겼는 가’다. 영화에서는 자신(루크)이 만든 제다이 아카데미를 카일로 렌이 배반하고 파괴해서 칩거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개연성이 너무 억지스럽다. 퍼스트 오더가 공화국을 쓸어버리는 무기를 개발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숨어있다. 다른 저항군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는데 말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설정이다.

 

 

이 개봉작에 앞서 다시 한번 스타워즈 에피소드 1-6편을 복습했다. 도합 7번 정도 본 것 같다. 여기에 애니 스타워즈 <클론전쟁>과 <스타워즈 반란군> 그리고 레고 애니 <드로이드의 전설>까지 마스터 했다.

 

 

 

그랬더니 영화 시리즈에서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까지 이해가 되면서 스타워즈가 왜 ‘스페이스 오페라’*라는 장르에 속하게 됐는지 알게 됐다. 참으로 눈을 땔 수 없는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하는 시리즈이다. 참고로 애니 작품들의 작품 완성도가 의외로 아주 높다.

 

[스페이스 오페라(space opera)]

백과사전에 따르면 스페이스 오페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우주선을 탄 영웅들의 활극을 그린 대중소설. 일면 공상과학 소설(Science Fiction:SF)로 표현되는데, 1920-30년대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장르라고 한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작품들을 연상시키면 이해하기 쉬울 듯. <은하철도999>, <캡틴 하록>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웅물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판타지물과 완전히 구별되고 여타 sf장르들과도 차별성을 보이는 장르다. 특히 스타워즈는 스페이스 오페라적인 장르에 동양의 오래된 철학관을 바탕에 깐 작품이다. 스타워즈에서 말하는 ‘포스(force)'는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기(氣)와 같은 개념이다. 참고로 3D애니 <클론 전쟁>을 보면 포스의 의미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매회 제목이 <도덕경>에서 차용한 경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깨어난 포스’의 퀄리티가 그대로 비교가 됐다. 에피소드 4,5,6의 프리퀄적 성격인 에피소드 1과2가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았는데, 에피소드7에 대면 대작이라는 생각을 들게할 정도로 이번 개봉작은 폭망 수준이다.

 

 

결론적으로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는 스타워즈 오타구들에게는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을 만한 작품이 된 듯하다.

 

 

 

 

 

[덧]

1. 비주얼적 측면에서 보자면 77년작 <새로운 희망>보다 그리 나아진 측면이 없어 보인다. 시간적으로 보면 전혀 발전을 못 이룬 거 같다. 지금 그 옛날 필름을 다시 보아도 <베틀스타 갈락티아>보다 훌륭하다. 플롯 구조도 긴장감을 유발시킬 정도로 뛰어나다. 2015년 작은 긴장감도 없고 비주얼적인 면에서 탄성을 지를만한 것도 없다. 77년 작은 그야말로 그때 환상적인 세계였는데 말이다.

 

2. 해리슨 포드와 츄이, 핼렌 피셔와 마크 해밀의 등장 만으로 이영화는 반은 먹고 들어간다. 1977년에서 83년을 거쳐 2015년까지 이들은 스타워즈를 상징하는 캐릭터 그 자체였다. 77년의 젊고 싱싱했던 그들이 이제는 장년을 넘어 할아버지 할머니 포스를 간직한 채 돌아왔다. 장장 40여년 가깝게 스타워즈 클래식의 건재함을 알리고 있다. 에피소드 7에서 이들을 보는 것외에는 그리 큰 감흥은 없는 듯하다. 스타워즈 오타쿠들의 팬심에 대한 서비스는 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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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5-12-18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니까요. 구관이 명관이랬다고 예전에 만들었던 스타워즈의 명성을
과연 요즘의 감독이 이어갈 수 있을까? 의문스러웠는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군요.
그래도 이거 개봉한다고 축제 분위기던데 이름만으로도 위력이 있어요.
극장 가 본지 오랜데 한 번 시간 내서 뭐라도 보면 좋겠다 싶네요.ㅠ

yamoo 2015-12-23 13:04   좋아요 0 | URL
네, 혹시나가 역시나 입니다^^

근데, 이상하게도 스타워즈는 우리나라에서 맥을 못추네요. 이번 개봉작도 기대 이하의 흥행을 기록할 듯합니다~

snowy_soul 2015-12-24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쌍제이가 트레키라고 하더니만 영화가 오마주 범벅이라 새로운 에피소드를 기대했는데 아쉬웠어요. 7은 충분히 향수를 자극했으니 이후의 시리즈는 좀 변화했으면. 우리나라에선 등산 때문에 그런 것도 있고 스타워즈 인기야 뭐 북미의 발끝도 못미치긴 하죠.

yamoo 2015-12-27 18:59   좋아요 0 | URL
이 영화를 본 스타워즈 팬들은 복잡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나올 듯합니다. 퀄러티는 폭망 수준인데, 기다린 보람은 있거든요~ 클래식 시리즈에 나왔던 마크 해밀, 해리슨 포드, 헬렌 피셔, 엑스 윙 등을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이상하게도 우리나라는 스타워즈 인기가 폭망 수준입니다..--;;

transient-guest 2015-12-31 0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못 봤습니다. IMAX로 보려는데 계속 sold out이네요.-_-:
 

요즘에는 뭘 봐도 디자인적 요소를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재미있게 만들어진 물건과 멋지게 만들어진 물건은 그냥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보는 물건보다 확실이 눈낄이 더 가기 때문이다.

 

집과 건물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냥 덩그렇게 지어진 콘크리트 구조물만을 보았다면, 요즘에는 동선의 편암함의 정도와 창의 위치 그리고 재료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심지어는 건물의 미적 양식까지도 찾아보게 되는 수고를 한다.

 

언제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작년이었던 거 같다), 어느 디자인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스웨덴에서 건너온 건축학도인데, 스웨덴과 확연히 다른 우리나라 가옥 건물과 길거리의 매력에 빠져 연신 사진을 찍는 다는 얘기였다.

 

이중에서 특히 인상깊었던 건, 이 스웨덴 청년이 디자인적으로 극찬해 마지 않았던 건축물이 바로 70-80년대 지어졌던 가옥이다. 지금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추세의 건물인데, 신촌 일부지역과 신월동, 신림동 등 일부 저개발 지역에 아직도 남아있다.

 

사진을 보면 80년대 이전에 태어나신 분들은 '아하~ 저 집'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만큼 옛날에는 집 건축의 대세였던 디자인이었다. 이런 집이다. (아래 사진)

놀랍게도 이 집은 5호선 신정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저 지붕모양과 테라스, 스웨덴 건축학도 청년은 바로 저 스타일에 매료되었다고 고백했다. 참으로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라고 상찬을 하고 있었다.

 

스웨덴 청년이 기자에게 물었나 보다다. 왜 이런 아름다운 집들을 헐고 원룸을 짓느냐고. 한국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때 이 잡지의 기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두가 아는 '집을 통한 재테크'를 말해주었다.

 

돈이 아름다운 가치보다 최우선이라고. 스웨덴 청년은 이 독특한 디자인의 집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안타까워 했었다.

 

지금 보니 나도 안타깝다. 소위 집장사들이 짓는 2-3층 다가구 주택이나 멋없는 빌라보다 정겹고 우리 정서를 잘 살린 집이 없어진다는 사실이. 가만 보니 이 집 디자인은 우리 전통의 기와집이 60년대 양옥과 믹스되어 탄생한 구조물인 듯하다.

 

어딘지 모르게 어설퍼보이지만 낭만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오묘한 디자인이다. 느낌없는 빌라보다는 이런 건축 양식을 계속 발전시키면 어떨까하는 바람을 해 본다.

 

한편, 재미있는 디자인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컵을 만나게 되었다. 종이컵이지만 이 컵을 받아들면서 나도 모르게 '와우~!'라는 탄성을 질렀다. 그 컵의 실체는 바로 파리바게뜨에서 내놓은 테이크 아웃용 종이컵이다.

이게 바로 눈과 혀를 즐겁게 해 주었던 파리바게뜨 테이크 아웃 아메리카노 잔이다! 저번 달에 몸통 손잡이(뜨거움 방지용) 디자인이 바뀌었는데, 이번엔 요기에 맞는 뚜껑이 대박이었다. 바로 모자 모양으로 덮게를 디자인 한 것!

 

아주 작은 변화지만 사먹는 구매자의 입장에서는 완전 신선했다. 보는 즐거움에 더해 아메리카노가 훨씬 맛있게 느껴졌고, 저 컵을 들고 있을 동안 무척 재미있었다. 심지어는 버리기가 무척 아까웠다. 저 모자 뚜껑의 위력이랄 수 있다.ㅎㅎ

 

사소한 거지만, 하나가 바뀌어서 물건의 전체 이미지를 바꾸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나니, 디자인의 위력이란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저 멋진 컵에 담긴 아메리카노는 투샷에 단돈 1500원밖에 안한다! 컵의 디자인 개발 비용은 0원. 이전에 보던 대중적인 컵에 담겨진 커피와 동일한 가격이 놀라울 뿐이다~ㅎ

 

 

 

덧)

파리바게뜨 아메리카노 커피는 지역에 따라 가격이 다 다르다. 어떤 지역은 1500원 세일을 하지만 같은 동의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2500원에 판매를 한다. 물어보니, 점주의 권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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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5-11-10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아파트가 아닌 양옥주택하면 저런 집이었죠. 한 동네에 있는 양옥주택은 거의 다 저런 구조/디자인이었어요.ㅎㅎ 지금은 보기 힘들겠죠?

stella.K 2015-11-10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저런 집에서 산 적이 있긴 한데 외국인이 그렇게 극찬할 정돈가요?
하지만 확실한 건 집으로 재테크 하면서 왠지 집에 대한 느낌이 많이
퇴색된 느낌이어요.
예전의 집은 천장에 쥐들이 퍼드득거리며 다니는 으시시 하면서도 정이 있었는데
지금은 왠지 그냥 잠만 자는 곳. 뭐 그런 개념이잖아요.

컵 예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11-11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젠 단독 주택이 사라졌습니다. 전 항상 단독주택에서만 살았거든요. 아파트와 빌라 체질이 아닌데 아주 죽겠씁니다. 다른 곳 다 4,5층 빌라 들어서게 되면 단독주택은 혼자 사방에 높은 빌라에 갇히게 됩니ㅏㄷ. 결국 그 주택도 빌라를 짓는 악순환... 이거 끔찌가죠..

페크pek0501 2015-11-11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화해 가고 있는 것 중 하나를 잘 잡으셨군요. 단독주택도 오래되어 재건축되기도 하는데
아파트로 짓더군요. 단독주택을 헐고 새 단독주택을 짓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빌라나 아파트를 지어요.

종이컵, 신선하군요. 길의 쓰레기통도 저 모양으로 크게 해서 예쁘게 만들면 안될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인디언밥 2015-11-15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종이컵 귀여워요

USER 2020-06-17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정겨웠는데 점점 마음에 드는것들이 사라져가는게 안타까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