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알라딘 책 검색을 통해 리뷰를 읽다가 함량 미달인 리뷰를 보게 되었다. 근데, 이게 이달의 당선작 타이틀을 달고 있었다. 심히 의아했다. 그래서 스텔라 님이 간간히 지속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하게 문제제기 해 오신 이 ‘뜨거운 감자’에 대해서, 나 야무의 관점으로 문제점을 지적해 보도록 하겠다.

 

 

이 무모한 행위가 알라디너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 약간 우려스럽지만,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고 생각했기에, 이 핫한 문제를 건드려보고자 한 것이다. 알라딘에서 내가 유일하게 존경해 마지않는 @@ 님의 지적(댓글로 아주 간단히 언급하셨다!)도 한 몫 거들었음을 밝힌다.

 

 

일단 알라딘 당선작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해 주신 스텔라 님의 글로부터 시작하겠다.

 

 

알라딘은 몇년 전부터 지금의 당선작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점은 없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본 적은 있는지 묻고 싶다. 누누히 강조하지만 지금의 당선작은 너무 획일적이며, 모호하다. 도대체 뭘 기준을 가지고 좋은 글이다 아니다를 판단하는지 알 수가 없다. 거기에 또 얼마 전부터 선정단까지 갖추고 선정의 공정함을 증명해 보이려고 하는데, 물론 선정단이 어련히 알아서 잘 해 왔고 잘 하겠냐만, 선정작이 순전히 선정단이 뽑은 것을 가지고 뽑는 것인지 아니면 참고만하고 최종 선정은 알라딘에서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문제제기는 알라딘에서 정말 심각하게 고려해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당선작 모두를 읽어오지는 않았지만, 점점 당선작들의 퀄리티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이를 밝혀보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페이퍼를 통해 비판하는 알라디너가 별로 없었던 것은 아마도 귀찮아서일 것으로 사료된다. 누가 남의 글을 읽고 좋은 글이다 아니다 왈가왈부하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고, 나와는 상관 없으니까. 당선작 선정은 제비뽑기 같은 거니까.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신경 쓸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늘 구독하던 서재의 글이 올라오지 않는 거다. 난 그분의 글을 OO 님 다음으로 좋아했으니까.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당선작 선정 방식이 변하고 부터였다.

 

 

물론 그분은 한 달에 두어 편 밖에 글을 쓰지 않았다. 하지만 쓴 글이 언제나 이달의 당선작이 되었기에, 그분도 서재를 떠나지 않고 여지를 남겨 뒀던 듯하다. 바쁘신 거 같아도 한 달에 한  두 편 정도는 글을 만나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분의 글(항상 좋을 글을 써 주신다)이 언제부터인가 선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드디어 당선작을 로테이션 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당선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계속 당선되었다. 뭐, 선정위원회의 인기투표라서 그런 듯싶었다. 많은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은 배제하자는 원칙을 새롭게 제정했나 보다 했다.

 

 

아, 그런데 오늘 당선작들을 차례로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다. 당선작 퀄리티가 심하게 떨어진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이후에 세세히 밝힐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전에 알라딘이 직접 당선작을 선정했던 때보다 점점 퀄러티가 떨어지는 글들이 이달의 당선작에 많아진다는 사실이다.

 

 

선정단을 3개월 단위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당선작 전권을 맡기는 것 같다. 선정단들이 선정한 리뷰들을 알라딘 측에서 최종 선정하는 절차는 없는 듯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알라딘 데스크에서 걸러질 리뷰들이 버젓이 이달의 당선작을 달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문제는 선정단의 평가 기준이 없다는 데 있다. 인기투표도 아니다. 인기투표라면 생소한 알라디너의 글이 선정될 이유가 없을 거다. 분량이나 성실도 아닌 거 같다. A2장 분량도 안되는 리뷰가 선정되는 걸 보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선정단이 좋은 글을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함량 미달의 리뷰들이 대거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고 있는 거다. 이 문제는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나름 열성적인 스텔라 님과 같은 분에게 좌절을 안겨주기 충분하기에. (뭐, 나같은 인간에게는 전혀 해당 사항이 아니지만)

 

 

이 상황이 개인의 문제면 내가 이런 ‘금기의 문제’를 애써 걸고넘어지지 않겠지. 나도 다른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니까. 최근에 안 새로운 SNS는 정말 별천지와 같았으니까. 글 하나만 올려도 1시간에 조회수가 1000건이 넘는 곳이니, 애써 알라딘에 글을 올릴 동기가 약했다.

 

 

하지만 이곳에는 내가 애독해마지 않는 분들의 페이퍼와 리뷰가 있기에, 그리고 모르는 책에 대해 어느 정도 선택권을 보장하는 양질의 리뷰가 쌓였기에 알라딘을 쉽게 떠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알라딘 리뷰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이 상황이 내게는 아주 심각해 보였다. 알라딘 측도 이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각심을 갖는 게 좋을 듯하다. 현 시스템에 대한 보완책은 절실해 보인다.

 

 

어쨌거나 함량 미달의 리뷰가 어떤 것인지 지금부터 대략적이나마 살펴보겠다. 리뷰 책이나 글을 쓴 분은 나타내지 않기로 한다. 이건 좀 심각한 지적질인 거 같아 리뷰들의 문제점만 부각하기로 한다. (대상이 된 리뷰를 A, B,C,D,E,F 등으로 표기하기로 함)

 

 

일단 지난 달 리뷰로만 한정해서 보고자 한다. 다 읽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현 리뷰만 보아도 현황은 충분히 파악되리라 본다.

 

 

12월 이달의 당선작 리뷰는 총 25편이다. 이 중에서 평소 퀄리티 있는 글을 써주시는 분들의 글은 당연히 제외했다. 매번 당선되는 분들의 글은 좋은 글에 대한 기준을 언제나 충족시키니까.

 

 

야무가 생각하는 좋은 리뷰의 요건이란 이런 거다.

1. 책을 읽은 사람이 책에 대한 평가가 뚜렷하여 책의 장단점을 잘 알려 주는 리뷰

2. 주제가 뚜렷하고 읽은 이의 주관이 명확히 드러난 리뷰

3. 글의 논리성, 통일성, 창의성을 충족시키는 리뷰

4. 표현이 명확하고, 비문이 적은 리뷰

 

 

리뷰의 밀도가 높더라도 위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함량미달의 글이 될 확률이 높다. 길게 쓰고 충실히 쓴 것 같지만 글의 흐름이 논리적이지 않고 비문이 많은 글이 어떻게 좋은 글이 될 수 있을까. 최소한 글의 기본은 충족시키자.

 

 

헌데 상당한 리뷰가 기본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예를 들어 A는 소설에 대한 리뷰다. 헌데 책의 감상도 아니고 인물 분석도 아닌 그냥 줄거리의 나열에 불과하다. 인용문은 맥락 상 아무 관계도 없이 따로놀고 있다. 내가 리뷰 검색에서 처음 본 글인데, 이게 어떻게 당선작으로 선정됐는지 심히 의아하게 생각된 리뷰다. 처음부터 끝까지 줄거리를 따라 감상이 나열된다. 그냥 줄거리 요약하고 감상을 덧붙이는 게 훨씬 낫다. 감상의 포인트라도 있으니까. 이런 건 좋은 리뷰라 할 수 없다. 그냥 책읽기 기록이라면 모르겠다. 당선작이 되기엔 문제가 심각한 글이다.

 

 

B글은 글의 밀도도 높고, 성실한 읽기가 보이는 리뷰다. 헌데 이 리뷰의 결정적 단점은 기본 개념을 자기식으로 해석해서 비판한 데에 있다. 물론 개념을 오해할 수 있고, 사실을 잘 못 알 수 있다. 그런 실수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문적 개념이 버젓이 있는데, 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말도 안 되게 비판하는 것은 문제다. 리뷰를 쓸 때 잘 모르는 개념이 나오면 네이버 검색 한방이면 해결된다. 어떤 뜻으로 통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거다. 헌데 이를 무시한 채 엄연히 통용되는 개념을 이상하게 왜곡하여 비판하는 것은 좋은 리뷰라고 하기 힘들다. 앞 부분에서 아무리 잘 정리된 글을 썼다하더라도 좋은 평가를 받기에는 요원하지 않을까.

 

 

C글은 글쓴이의 정성이 보이는 리뷰다. 하지만 글의 기본이 안 돼 있다. 비문이 넘쳐난다. 몇 개의 오타 정도가 아니다. 영어를 우리말로 해석하여 쓴 듯한 문장이 매번 반복된다. 정말 이건 기본이 안 된 함량 미달의 글이다. 이 글이 뽑혔다는 것에서 선정위원회의 자질이 심히 의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D글은 분량이 짧은 편에 속한다. 뭐 짧아서 당선작에 뽑히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겠지. 한데, 알라딘 당선작들을 살펴볼 때 어느 정도의 분량은 있는 듯보였다. 하지만 짧으면서도 강렬한 리뷰를 봤기에, 이 리뷰도 그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글의 논리성, 통일성, 창의성이 매우 박약한 리뷰였다. 자신의 생각에 대한 근거도 없었고, 서두에서 언급한 내용이 결론에서 이율배반적으로 마무리 되고 있었다. 하나의 리뷰로는 괜찮지만 당선작이 될 만한 리뷰가 아니다. 다른 짧은 리뷰들에 비해 떨어지는 글임을 부인할 수 없다.

 

 

E와 F의 글은 사실 위 글과 비교해서 문제될 소지는 별로 없다. 단지 E는 분량이 너무 작았고, F는 책에 대한 평가가 나름 뚜렸했기에. 하지만 E는 깔끔한 반면 F는 산만한 감이 없지 않았다. T, V, W, Y 등의 글에 비하면, 당선작으로는 많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특히 F의 글은 신변잡기성 내용이 너무 많아 거슬렸다.

그런데 문제는 F가 왜 이달의 당선작이 됐느냐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전부 살펴봤는데, F보다 밀도도 높고 책의 내용도 잘 정리하여 전달하는 리뷰가 5건도 넘었다. 사실 2건은 정말 밀도도 높고 책 내용을 정말 잘 정리해 주기까지 했다. 평가도 아울려 내렸고, 읽어 보니 책을 사서 읽어 보고 싶었다. 심지어 OO 님의 리뷰는 짧지만 강렬했다. 책의 핵심을 바로 보여 주었다. 헌데, 이 모두가 F에게 이달의 당선작 자리를 내 주었다. 나는 정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리뷰 자체를 평가한 것이 아니라 선정위원회가 제일 처음 리뷰를 쓴 사람을 선정했기에 이러한 사태가 발생한 듯하다.

만일 해당 월에 신간 리뷰가 한 편 밖에 없다면 그에 대해서는 좀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덜컥 뽑지 말고. 리뷰가 1편뿐일 때에는 글의 기본을 충족하고, 밀도가 높으며, 평가가 뚜렷한 리뷰를 뽑도록 하자. 이번 F글은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A1장 분량은 될 수 있으면 당선작으로 제외하자. A3-4장의 밀도와 너무 비교된다. 그렇다고 아주 대단히 인상적인 글도 아니기에 이참에 분량의 마지노선은 필요할 듯보인다.

 

 

 

이상이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5개의 리뷰를 대상으로 야무가 좀 껄떡거려 봤다. 이전에 알라딘 측에서 선정할 때에는 절대 볼 수 없었던 리뷰들이 현재는 지속적으로 선정되고 있기에. 선정단 체제 개편 초기에 비해 함량 미달인 리뷰 편수가 배 이상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당연히 선정 작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간평가단 리뷰나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쓰는 리뷰는 될 수 있는 한 이달의 당선작에 선정하지 말기를 당부드리고 싶다. 극강의 포스를 발휘하는 리뷰라면 모르겠지만. 그런 리뷰가 어떤 글인지는 알라디너들이 더 잘 알 것이라 사료된다. 언급하면 손 아프다.

 

 

내가 장시간 25편의 리뷰와 여분의 기타 리뷰를 보고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알라딘 측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심각하게 받아들여, 당선작 선정에 보완책을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분량이 심히 적거나 책에 대한 리뷰가 1편만 있는 글은 당선작에서 제외하는 가이드를 마련하면 어떨까한다.

 

 

 

알라딘과 선정단의 고심 있는 결단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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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란 글을 읽고...
    from 흔적의 서재 2016-01-29 08:4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공익을 위한 성의가 돋보이는 글입니다. 저를 우선 말씀 드리자면 알라딘 리뷰 선정단은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고, 신간평가단은 비교적 많이 참여했고 현재 활동중입니다. 2011년 한번, 2013년 일곱번, 2014년 열일곱번, 2015년 열번 당선 기록을 세웠습니다. 평소 너무 긴 글을 쓴다고 저를 평가하고 있으며(보통 4000자, 많으면 13000자까지...) 개성이나 독창성은 없지만 비문(非文)은 쓰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으
  2. 뜨거운 감자가 식기 전에
    from 冊性愛子 2016-01-29 12:36 
    몇 년 전부터 알라딘에는 엄청나게 뜨거운 감자 한 개가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 뜨거운 감자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감자의 뜨거운 열기에 그만 손가락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변 사람들은 두려웠습니다. 자신들도 뜨거운 감자에 손대면 다칠까 봐 두려운 거죠. 일주일이 지나게 되면서 열을 잔뜩 품은 감자는 점점 식어갔습니다. 이제 누구나 감자에 손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자의 존재를 잊었습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몇
  3. 리뷰와 페이퍼가 다른 점이 뭡니까?
    from 스텔라 K의 서재 2016-01-29 16:21 
    먼저 고개가 숙여지는 페이퍼입니다.저는 이렇게까지 꼼꼼하고 세심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또 이렇게 논리적으로 쓸 자신도 없습니다. 그런데 야무님의 페이퍼를 읽으니 오히려 제가 지금까지 알라딘 이달의 선정작에 불만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민망할 정도입니다.ㅠ. 불만만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만큼의 생각과 논리를 가지고 불만을 가져도 가지고, 문제제기를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얼마 전, 서평이 뭐냐는 알라디너들의 여러 다양한 글
  4. 내가 생각하는......
    from 새빨간 활 2016-01-29 18:24 
    내가 생각하는 :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은 << 불편 >> 이다. 영화 만듦새가 아무리 형편없다고 해도 그 영화의 어떤 장면(혹은 영화 전체)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면, 그 영화는 최소한 나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 불편 > 과 < 불쾌 > 를 혼동하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 불편한 영화 > 와 < 불쾌한 영화 > 를 구분해야 된다는
 
 
만병통치약 2016-01-29 0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 좋아요를 열번줄 수 있는 아이템이 북플에 필요합니다!

yamoo 2016-02-01 12:52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좋아요 횟수를 담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동감합니다!^^

오거서 2016-01-29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측에서 선정할 당시에 담당 직원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알라딘에서 그 자리를 없앤 것 같아요. 서평이면 비판적인 글이 많을 텐데 무미건조할 수 밖에 없잖아요. 전문가 시각을 견지하지 않으면 신변잡기성 글이 훨씬 재미있다고 느끼게 되겠지요. 일반 대중은 조목조목 따지는 내용을 부담스러워 한다고 들은 것 같아요. 그러니 지적한대로 문제가 커진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좋아요 열번 추가합니다!

오거서 2016-01-29 12:38   좋아요 2 | URL
큰 맥락에서 보면, 선정 시스템의 문제라고 보고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애궂게 선정위원을 탓하는 분위기가 되어서는 안되구요. 선정위원이 되고나서 나름 열심히 활동하고 있을 텐데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전문가가 아닌 이상 개인의 호불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요.

yamoo 2016-02-01 12:57   좋아요 0 | URL
선정시스템을 개편하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당선작 리뷰들의 퀄러티가 떨어져갈 것만 같습니다.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분량 A4 1장 이상 조건은 아주 기본적인 조건같습니다. 저도 선정 위원단을 비판할 생각은 없구요. 선정 위원단이 당선작을 가려낼 수 있는 기본적인 기준은 꼭 갖춰줘야 한다 보기에...

그래요, 오거서 님의 의견도 일리 있으십니다~ 고견주셔서 감사합니다!

yureka01 2016-01-29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때까지 리뷰, 마이페이퍼 당선을 염두하고 글쓰고 싶지는 않더군요.
(당선할려면 너무 치밀하고 고밀도의 우수하게 글을 써야하는데 이게 직장다니면서 소주마셔가면서 사진찍어가면서 글 잘쓰기가 너무 어렵거든요 ㅎㅎㅎ)

음 이번달 당선작은 누굴까..이정도 약간의 관심이면 될듯합니다.

뭐든지 너무 연연하면 피곤해요.난로처럼 적당히 온기가 미치는 이격거리...
이게 중심이 되어야 겠지요.

문제는 무슨 리뷰를 당선하더라도, 늘 불만은 생길 것입니다.리뷰의 왕도는 없거든요.ㅎㅎㅎ

아무래도 좀 더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는 글이 당선되기를 바라는 마음의 쓰임이라고 알라딘운영자가 참작해야 겠더군요.

잘읽었습니다.

yamoo 2016-02-01 12:58   좋아요 1 | URL
당선을 염두하고 글을 쓰는 분들이 많지는 않을 거에요. 저도 많은 지지를 받고 기본에 충실한 글이 당선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고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oren 2016-01-29 1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달의 당선작`이 날이 갈수록 졸속으로 흐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훨씬 더 자주 받곤 했었는데, 마침내 yamoo 님께서 정말 서재 대문에 내걸어 놓은 문패(`말의 양심`)가 부끄럽지 않을 만큼 이 고질적인 병폐들을 한꺼번에 모두, 아주 날카롭게 지적해 주셨군요.

`언어에 가해진 심각한 폭행들`을 보고도 태연스레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요? 알라딘에서는 정말로 `장님들 사이에서는 애꾸라도 왕이 된다`라고 말하려는 속셈인가요? yamoo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이제 그런 성가신 질문들을 더이상 가슴 속에 계속 품고 다닐 필요가 없어진 듯해서 여간 다행이 아니다 싶습니다.

* * *

˝언어는 선조로부터 물려 받아서 자손에게 남기는 상속 재산이며, 신성하고, 귀중하고, 훼손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대하듯 언어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나이 든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당신들의 귀가 둔해졌다면, 질문하고 사전을 찾아보고 좋은 문법서를 사용하라. 그러나 밝은 대낮에 감히 죄를 범하지 말라! ˝
- 니체, 『반시대적 고찰Ⅰ』


yamoo 2016-02-01 13:03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저보다 그런 느낌을 자주 받으셨나 보네요.
제 지적질이 어느 정도 문제점을 잘 건드렸나 봅니다. 오렌 님의 의견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오렌 님의 문제의식에 저 또한 격하게 공감하며, 항상 멋진 인용문으로 댓글의 격을 높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극강의 능력이십니다!

cyrus 2016-01-29 1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무님, 먼댓글 달았습니다. 읽어주십시오.

yamoo 2016-02-01 13:04   좋아요 0 | URL
네, 잘 읽어 봤습니다. 먼댓글 감사합니다. 저번부 금욜부터 일이 터져서 지금에야 댓글을 다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9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생각하는 것이지만 야무 님의 장점은 불편한 점을 긁어주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읽고 나서 불편해지는 글이 좋더군요. 불편하다는 것은 뭔가 생각거리를 준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이런 글이 많아야 발전이 되더군요. 한국 사람, 너무 논쟁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합니다. 논쟁을 통한 토론.. 이런 거 무지 좋습니다. 바람 잘날이 없는 게 민주주의 사회가 아닌가 싶습니다...

yamoo 2016-02-01 13:07   좋아요 0 | URL
이런 글에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논쟁을 통한 토론...이런거 무지 좋아하는데, 요즘 알라딘에서 이런 분위기가 거의 없어져가는 추세라 개인적으로는 좀 아쉽네요. 건전한 토론은 좋은 데 말이지요..

간간히 불편한 것에 대해 좍좍 긁는 글을 쓰도록 해 보겠습니다~~ㅎ

[그장소] 2016-01-29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선작을...보지 않아 ...뭐라 거들 수 없는....
죄송...관심이 ...없었다...할까.흠!

yamoo 2016-02-01 13:08   좋아요 1 | URL
흠, 관심이 없으면 소용이 없지요..^^;;

그나저나 그장소 님 올만입니다!ㅎ

[그장소] 2016-02-01 13:26   좋아요 0 | URL
ㅎㅎㅎ어디서 봐야 하는지를 모르니..끄응 ~ㅠㅠ;
심각한 병증 ㅡ인지 ㅡ진단을 ?!^^;;
저는 이따금 뵈어요~^^yamoo님 글 에
좋아요 ㅡ누르고 도망을 가서 그렇지!^^

2016-01-29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1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1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6-01-30 12: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까마득한 옛날에는 알라딘에서 `이달의 당선작`을 찾아 읽는 재미도 제법 쏠쏠했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달의 당선작`을 일부러 찾아 읽을 생각이 마침내 거의 다 사라지는 때가 오긴 오더군요. 그와 더불어 알라딘에 올라오는 글들을 읽는 범위와 빈도 또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확 줄이게 되었구요. 그 배경에는 정말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마치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 연주자들처럼` 시나브로 이곳을 떠나면서 생겨난 `황량함`이 자리잡고 있다고도 여겨집니다. 알라딘 서재가 왜 지금처럼 열악하고 척박하게 바뀌고 말았는지를 `모두가 한 배를 탄 심정으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사태가 이런 흐름으로 계속 흘러간다면 결국 미래에는 `바보배`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날 게 틀림없을 테니까요.(오늘 아침, 문득 옛날에 어디에다 베껴놓은 글들을 구석구석 두루 살피는 동안에 yamoo 님이 쓰신 이 글이 자꾸만 겹쳐 떠오르더군요. 결국 댓글이라도 하나 덧붙여 드리고 싶어서 이렇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 * *

그에게는 지평을 바꾸는 일이 시급했다. 다른 곳에서 숨쉬는 것이.
생 종 페르스는 말한다. ˝떠나자! 떠나자! 이것이 살아 있는 자들의 말이다!˝

- 도미니크 보나, 『로맹가리』

* * *

피리 연주를 좋아하는 사람이 피리 소리를 듣게 되면 토론에 집중할 수 없어지는데, 이것은 그들이 현재의 활동보다 피리 연주에서 더 큰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리 연주에 따르는 즐거움은 토론에 관련한 활동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다른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동시에 두 가지와 관련해서 활동할 때면 언제든지 생겨난다. 더 즐거운 활동이 다른 활동을 몰아내며, 만일 그 즐거움의 차이가 커질 경우 더 많이 몰아내게 돼 마침내 다른 활동은 전혀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어떤 것이든 하나에 대단히 열중해 기쁨을 느낀다면, 우리는 다른 것은 거의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어떤 일에서 조금밖에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른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가령 극장에서까지 주전부리를 하는 사람들은 배우들이 형편없을 때 특히 주전부리가 심해지는 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 제5장 <즐거움의 종류> 중에서

* * *

활을 쏘려는가? 잘 겨냥해서 명중시키게!
과녁에 빗맞으면
화살이 바보배로 날아갈 테니까.

궁수들을 싸잡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바보 활잡이가 활쏘기하는 이야기도 다루어보세.
내가 이곳 바닷가에 활터를 벌였다네.
과녁에서 빗나가면 꽝일세.
활쏘기 시합에 걸린 상금은
과녁 정중앙에 가장 가까이 맞히고
마지막 경합에서 우승한 궁사가 차지할 몫일세.
목표를 정확히 노리고 신중하게 쏘아야지,
화살이 밑으로 빠지거나
들떠서는 안 된다네.
서둘지 말고 침착하게 과녁을 겨냥하게나!
대개는 화살을 너무 높이 날려서 실패를 보지.
활이 부러지고, 활시위가 끊어지고,
격발장치가 튕겨나가네.
활시위 으랏차, 당기다가 아차차, 놓치고,
용을 끙끙 쓰다가 의자나 석궁 받침대가 뒤틀리네.
살짝 건드렸는데 석궁이 격발되는 건
활시위가 기름범벅이라 그렇다네.
과녁이란 놈이 어디로 달아났나?
어디를 겨냥해야 할지도 헷갈려 하네.
무작정 시위를 당겨라, 소나기처럼 화살을 날려보지만
하나같이 과녁에서 빗나가니,
경품으로 암퇘지나 받아갈 모양일세.
세상천지에 무수한 궁수들을 보았어도
핑계 없는 무덤은 하나도 없더군.
이 구실, 저 구실 쥐어짜면서
체면 세울 변명거리만 찾아내더군.
정말 아슬아슬했다면서, 그것만 보완하면
우승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큰소리친다네.
·····

- 제바스티안 브란트, 『바보배』 중에서

yamoo 2016-02-01 13: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2년 전까지만해도 당선작을 낸 분의 서재에 가서 리뷰와 페이퍼를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할 수가 있었지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참신하게 전개하는 리뷰를 보면 느끼는 게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당선작에 대해 관심이 뚝 끊겼어요.

다시 오셔서 상황에 적절한 고전의 인용문을 제시해 주시니 감탄을 금할 수 없네요. 고맙습니다, 오랜 님!

제 글에 찾아 오셔서 읽어 주시는 것만해도 감사한데, 이런 인용 댓글이라니...
오랜 님에게 빚을 지고 있는 느낌이에요^^;;
항상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18:39   좋아요 0 | URL
오랜 님은 정말 성실 댓글상이라는 게 있으면 독보적 대상`입니다.
댓글을 성의껏 쓴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 같은 잡놈은
그냥 휘리릭 갈겨 쓰는데... 존경스럽습니다..ㅎㅎ

oren 2016-02-01 22:52   좋아요 0 | URL
제가 이리저리 아무 생각없이 돌아다니다가 그저 우연히 `저 글뭉치들`을 다시 발견하고 나서, 옳커니 외침과 동시에 `Ctrl + C` 한번 누르고, 얼른 여기 와서 다시 `Ctrl + V` 한번 누르고 등록한 것뿐이랍니다.. 제가 들인 노력에 비하면 yamoo 님과 곰발 님의 댓글은 제겐 너무 과분합니다요...

감은빛 2016-01-31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이 글 쓰시려면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겠어요.
그 열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 당선작의 시스템이 바뀐 줄도 몰랐어요.
바쁘니 자주 못 들어오고,
가끔 들어오면 주로 찾는 분들 서재 방문하기 바빠서
당선작은 안 들여다본지 몇 년 된 것 같아요.

알라딘이 당선작이라는 시스템을 유지하는 한,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누군가는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객관적인 선정 기준이란 불가능하니까요.

yamoo 2016-02-01 13:20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 오랜만입니다!
네, 시간이 좀 걸렸어요. 감사합니다! 동감해 주셔서요~

언제나 객관성은 문제가 돼 왔지만 현재의 상황이 좀 심각해져 간다 생각해서 올려본 글이에요.

바쁘신 와중에도 한 번씩 제 서재에 들러주셔서 감사할따름입니다! 건강하시길~
 

“언젠가부터 내가 들이마시는 시대의 공기는 몹시 탁해졌고 또 희박해졌다. 더 이상 사람들은 긍정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미래를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편, 한때 과거의 일 혹은 먼 나라의 일로만 느껴졌던 경제적, 정치적 위협들이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 아니라 삼류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을 정말로 좌절하게 하는 것은 고통의 강도보다는 고통의 내용, 그것의 텅 비어 있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가진 문제의 대부분은 어느 다른 시대의, 혹은 어느 다른 나라의 어설픈 복사본이거나 덜떨어진 유령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가 도착할 결말이 막장 드라마의 마지막 회처럼 그저 혼란스럽고 바보 같을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스페인 국경의 음독자살 같은 멋진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개처럼 죽거나, 혹은 개같이 살아남거나. 삶에도 죽음에도 치욕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처한 가장 큰 곤경이다. 절망조차 우습다는 것. 그것은 지금 여기 일말의 인간적 존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김사과, <불가능한 비극>, 한겨레 2014/1/19

 

 

 

 

 

 

 

 

 

 

 

어제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빵가게 님의 서재 글에서 본 김사과 작가의 글이다. 처음 볼 때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잘 드러낸 글 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글이었다. 곰곰 되씹어 보니 막 화가 나는 거다. 왜 그런지 그 이유나 밝혀 보고자 한다.

 

그 이전에, 나는 김사과가 누군인지 전혀 몰랐다. 한국 소설을 안 읽은 지, 약 10여 년이 돼간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문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누구인지 전혀 모른다.

 

보니 꽤 인지도 있는 작가 같다. 데뷔한지 10년이나 흘렀다는데, 난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 편혜영이나 장강명 정도는 아는데 말이다. --;;

 

요즘 김사과 작가의 에세이집도 핫 한가 보다. 알라딘 서재에서 종종 출몰하는 걸 보면. 헌데 유명 작가 타이틀을 빼고 보면, 저 위의 글은 네이트나 다음 뉴스의 댓글만도 못하다는 인상이 짙다. 비판적 논조가 알맹이 없는 이미지의 수사로만 채워져 있기에 그렇다.

 

작가가 말한 글의 논조를 차근히 따라가면서 이 글이 왜 허무맹랑한 헛소리인지 비판해 보도록 하겠다.

 

 

 

글의 전반부가 좀 심하다. 김 작가는 말한다. “더 이상 사람들은 긍정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 사람들은 미래를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라고. 이것이 작가가 ‘들이마시는 시대의 공기가 몹시 탁해졌고, 또 희박해졌다’는 근거다.

 

‘사람들이 긍정적이지도 낙관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는 게 시대의 공기가 탁해진 것이가? 항상 현상의 긍정적인 면만을 보고 살아야하는 이유라도 있어야 된단 말이가?

 

또 ‘사람들이 미래를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다’는 게 그리도 혼탁한 시대의 표상인가? 도대체 미래를 왜 기다리는가? 메시아의 재림으로 휴거를 바란다면 모르겠다. 이건 정말 개소리같다.

 

사람은 현재를 사는 동물이다.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고, 결코 알 수 없다. 내가 사는 순간 순간이 미래를 결정할 뿐이다. 미래를 기대하지도 기다리지도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현재를 향유하면서 살 수 있다.

 

결정된 미래는 암울할 뿐이다. 무슨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이미 결정되어 있는데. 김 작가의 두 번째 문장과 세 번째 문장은 이를 결정적으로 드러내 준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가 없는, 작가가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때 과거의 일 혹은 먼 나라의 일로만 느껴졌던 경제적, 정치적 위협들이 속속 현실화

되고 있다.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

급의 비극이 아니라 삼류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작가가 멍청한 것인지, 아니면 독자를 바보로 아는 것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한때 과거의 일 혹은 먼 나라의 일로만 느껴졌던 경제적, 정치적 위협들이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이건 김 작가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경제적, 정치적 위협들은 언제나 있어 왔다.

 

돈이 자본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시스템은 언제고 터질 수 있는 뇌관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다. 그리스 사태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다. 물고기가 물을 보지 못하듯이.

 

이런 상황이 ‘한때 과거의 일 혹은 먼 나라의 일로만 느껴졌다’는 것은 그만큼 작가가 현실감각이 없다는 걸 나타내주는 지표가 아닐까. 현실을 비판하는 글로는 함량미달인 듯하다.

 

가장 심각한 내용은 뒤에 나온다.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면 나는 절망스럽지 않다는 거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시대의 괴로움’이 어떻게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귀신 싯나락 까먹는 소리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젊은 층이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란 이런 것일 거다. 학자금 대출 받아 학교를 다니고, 대출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학업보다는 아르바이트 전선에서 상환금을 벌어야 한다. 학점은 좋을 리 없고, 인턴 자리조차 잡기 힘들다.

 

쪽방 고시원에서 4-5년을 살고, 어렵게 졸업해도 실업자 신세가 될 뿐이다. 사랑과 연애는 사치일 뿐이고, 오로지 입에 풀칠하기 위해 임시직을 전전해야 한다. 오포를 지나 칠포 시대. 그냥 괴롭고 힘든 시대일 뿐이다.

 

근데, 이 생활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라고? 뭐, 스스로 자기 삶을 정리한다면야 ‘일급의 비극’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불행한 상황이 ‘감동적인’과 ‘우아한’이라는 형용이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감동’과 ‘우아’는 이런 상황에 쓰라고 있는 단어가 아니다.

 

모순 형용을 아무데나 갖다 붙이면 그것이 문체의 미학인가? 삶을 제대로 담을 수 없는 문장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괴롭고 팍팍한 일상에 눌린 시대의 삶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라니 정말 조소를 금할 수 없다.

 

일발 물러나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라고 해도 그렇다.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전제되어야 할 듯하다.

 

장마로 물이 불어 한 아이가 물에 휩쓸려 떠내려간다. 이를 본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둘 모두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참다못한 다른 행인이 뛰어든다. 모두 살려달라고 외친다.

 

이 상황을 옆에서 보고 있는 김 작가. 자기는 뛰어들어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뛰어들면 죽을 확률이 90% 이상이다) 어쩌면 좋냐고 발을 동동 구른다. 그리고 쓴다.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라고. 자신은 안전하니까.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작가가 이게 아니라는 거다. 저런 상황은 감수할 수 있는데, 가장 절망스러운 것이 삼류 막장 드라마 같은 시대의 괴로움이란다. 막장 드라마가 뭔가? ‘콩가루 집안’, ‘불륜’ 뭐 이런 걸 전면에 내놓는 드라마 아닌가.

 

소위 ‘삼류 막장’ 드라마의 결말은 뻔하다. 대체로 권선징악이다. 드라마 내내 비윤리적이고 속물적인 악의 화신이 승승장구하다가 결말에 가서 착하고 바보같은 주인공에게 모든 것을 잃는 다는 그런 조악한 내용이다. 중요한 건 결말이 해피엔딩이라는 거. 다시 김 작가의 말을 인용해 보자.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감동적이고 우아한 일급의 비극이 아니라 삼류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다. ........ 그러니 우리가 도착할 결말이 막

장 드라마의 마지막 회처럼 그저 혼란스럽고 바보 같을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그러니까 김 작가가 ‘삼류 막장 드라마’를 언급한 것은 ‘우리가 도착할 결말이 막장 드라마의 마지막 회처럼 그저 혼란스럽고 바보같다’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막장 드라마가 혼란스럽고 바보같은 이유는 드라마 작가의 의도적 대립에 있다.

 

결말에 이르기까지 악이 승승장구하도록 해서 시청자들로 하여금 착한 주인공의 느낌, 즉 ‘혼란스럽고 바보같다’는 느낌을 강요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결말의 해피엔딩이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니까. 혼란과 바보 같음은 결말을 예비하기 위한 전제(前提)밖에 되지 않는다.

 

현실의 괴로움은 결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안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 ‘불안’이 현 시대적 괴로움의 표상이다. 우리가 도착할 결말은 끝이 보이지 않는 ‘빈곤의 악순환’ 이자 ‘자본주의 시스템의 불안’이지, 막장 드라마의 마지막회가 전하는 해피엔딩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정말 어처구니없는 논증이 등장하는데, 위 주장의 근거이다.

 

내가 느끼는 시대의 괴로움이 ..... 삼류 막장 드라마에 가까운 것 같다는 것이

다. 사실 당연한 것이다. 사람들을 정말로 좌절하게 하는 것은 고통의 강도보다

는 고통의 내용, 그것의 텅 비어 있음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람들을 좌절하게 하는 것이 고통의 강도보다는 고통이 텅 비어 있기 때문이라니. 고통의 내용이 텅 비어 있어 사람들이 좌절한다? 그냥 소설을 쓰는 게 낫겠다. 아니 그냥 시를 쓰시라 권해드린다.

 

서민들을 좌절로 몰아넣는 것은 자본가가 모든 잉여가치를 독점하기 때문이다. 임대료의 지속적인 상승, 노동의 경직성과 연간 2000시간이 넘는 노동 강도 그리고 형편없는 교육 경쟁력. 이런 지표들은 새로운 계급사회를 고착화하고 있는 증거들이다. 이로부터 새로운 ‘자본의 노예층’이 탄생하고 있다.

 

예전에 한국 경제를 지지했던 중상층이 서민층으로 떨어지고 이제는 상류 자본가를 위한 자본의 노예로 전락하고 있는 이 진행 상황이 고통인 거다. 고통의 내용이 텅 비었다? 이 무슨 개가 짓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스페인 국경의 음독자살 같은 멋진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개처럼 죽거나

, 혹은 개같이 살아남거나. 삶에도 죽음에도 치욕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어

면 이게 우리가 처한 가장 큰 곤경이다. 절망조차 우습다는 것. 그것은 지금

 기 일말의 인간적 존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니까.”

 

 

아, 정말 안타깝다. 이 작가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어떤 환상같은 걸 갖고 사나보다. 스페인 국경의 음독자살이 ‘멋진 일’이란다. 사실 스페인 국경에서 왜 음독자살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사연은 있겠다싶다.

 

하지만 핵심은 독을 먹고 자살하는 거다. 그 끔찍한 상황적 죽음이 ‘멋진 일’이라니, 정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개처럼 죽는 상황은 치욕이고 음독자살은 멋진 일이라는 이런 이분법적 사고가 과연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도식인지 묻고 싶다.

 

 

개처럼 죽거나, 혹은 개같이 살아남거나. 삶에도 죽음에도 치욕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이 논증은 스페인 국경의 음독자살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양도논법적 사고의 전형이다. 개처럼 살거나 혹은 개같이 살아남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 쉽게 말해서 죽을 수 없어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거다.

 

그리고 치욕을 피할 길이 없는 삶은 있어도 치욕을 피할 길 없는 죽음은 없어 보인다. 왜냐? 죽으면 끝나버리니까. 조선시대처럼 부관참시를 당한다면 또 모르겠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피해는 논외로 하자. 이건 작가의 논증을 일단 넘은 거니까.

 

그런데, 아무리 삼독, 사독 해 보아도 우리나라가 아직 저 정도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김 작가가 말하는 사회는 북한이다. 북한에 딱 어울리는 실상이다. 탈출이냐 아니면 인간의 존엄도 없는 치욕을 견디며 개같이 살아남느냐 하는 이분법적 고민 말이다. 북한과 대한민국이 뭐가 다르냐고 한다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물론 작금의 대한민국은 ‘헬조선’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인간적 존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납득할 수 없다. 일말의 인간적 존엄이라도 남아 있기에 이런 불만도 털어 놓는 것이 아닐까. 아주 약간이지만 정권 교체의 가능성도 남아 있긴 하니까.

 

 

 

작가라면, 언론에 이런 글 함부로 쓰지 말자. 공허한 말장난이나 수사학적 기교는 작품에서 좀 보여주길 당부 드린다. 혹 쓰시려면 현실의 정황을 정확히 파악해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문체의 수사학을 보여주시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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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1-25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발터 벤야민 ㄷㄷㄷㄷㄷㄷ

yamoo 2016-01-26 00:05   좋아요 1 | URL
음독자살자가 벤야민이군요. ㅎㅎ
근데, 벤야민이 자살한 곳은 알프스 국경 부근 아니었나욤?? 그래서 저 사람이 누군가 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착각을 하고 있었나 보네욤^^;;

yureka01 2016-01-26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국경의 음독자살에 방점을 찍어서 인지, 이게 스페인국경인지 알프스 국경인지 기억을 못했습니다.^^..하여간 국경이라는 것이 경계를 나타내는 건데.결국 그는 망명지에 도착도 못하고 그 선에서 죽음을 택한 거라니 그래서 울렁거렸던 적이 있었습니다.....벤야민의 사진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서 자주 회자 되었길래 요.그래서 작가를 알고 있었던 거였어요~~^^.

yamoo 2016-01-26 22:03   좋아요 0 | URL
흠, 그랬었군요~^^;;

oren 2016-01-26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웃음』을 쓴 베르그송 생각이 납니다. `그 타격점이 너무나 정확하고 그 표현이 너무나 폐부를 찌르는 것이어서 대건축물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져 내려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고, 장내에는 정적이 감돌았으나, 내심으로는 모두 그 논리의 힘과 사유의 섬세함을 경탄했다`고 하는 `유명한 일화`를 남긴 바로 그 앙리 베르그송 말입니다. 작가의 `방심`이 글 속에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나서 다시 읽기가 민망할 지경이네요...

* *

방심이 뿌리 깊으면 깊을수록 희극성은 더욱더 진해진다

대체로 본질적으로 우스운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진 사항뿐이다. 결점에서나 아름다운 점에서조차도 우스개는 인물이 알게 모르게 해버리고 마는 것, 본의 아닌 몸짓이거나 무의식적인 언어이다. 방심은 모두 희극적이다. 그리고 방심이 뿌리 깊으면 깊을수록 희극성은 더욱더 진해진다. 만일 스스로 자신을 직시하고 비판할 수 있다면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그렇게 드러낼 수 있겠는가?

- 앙리 베르그송, 『웃음』중에서

yamoo 2016-01-26 21:30   좋아요 0 | URL
역시 오렌 님은 텍스트에서 적절한 상황적 맥락을 찾아 적시하시는데 탁월하십니다! 저두 베르그손의 <웃음>을 오래 전에 읽었는데요, `방심`에 대한 내용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런~

다시 한 번 펼쳐 보아야 할 듯해요. 좋은 택스트 인용 감사드립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1-26 12: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게 문과의 이과의 차이군요.. ㅎㅎㅎ.
저는 김사과의 울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문예지가 아닌 이상은 저런 식의 메시지 전달은 실패한 거죠.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글쓰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 신문에다가
저런 식으로 써보십시오. 욕만 잔뜩 먹지..

자의식 과잉이죠.. 알라딘도 보믄 그런 구석이 많습니다. 스스로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yamoo 2016-01-26 21:36   좋아요 0 | URL
흠, 그러게요. 문예지에 저 글이 실렸다면 그런대로 봐 줄 수 있었을 듯합니다. 문예지이니까요..ㅎ

저도 김사과가 어떤 의도로 이 글을 썼는지 그 울분 충분히 공감했어요. 그래서 첨에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넘어갔던거구요~^^

매체의 특성을 고려한 글쓰기, 정말 필요한 기술 같습니다! 작가 역시 취사선택을 잘해야지요. 조선에서 지면 내준다고 덥썩 무는 그런 행위는 안하면 좋겠습니다..ㅎㅎ

말씀하신대로 일명 자뻑글..^^ 저도 몇 명이 쓰쳐지나갑니다~ㅋ

cyrus 2016-01-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이 없고 달랑 저 인용한 글만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허세글`, `엉터리 문장`이라고 부정적으로 볼 겁니다. 이런 문자 껍데기에 불과한 문장을 쓰는 작가 때문에 독자는 자신 스스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라고 생각합니다.

yamoo 2016-01-26 21:35   좋아요 0 | URL
아마도 그렇겠지요. 밑에 작가 이름이 후광을 입어 `뭔가 있는 글`로 둔갑하는 것 같습니다.

`문자 껍데기`..좋은 표현입니다. 저도 애용해야 겠어요~^^
 

사이러스님 페이퍼로 촉발된 서평에 대한 문제제기에 대해서 생각난 김에 몇 자 끄적거려 봅니다.

 

사실 이에 대한 논쟁은 2007년에서 2010년 사이에 알라딘 및 제가 가입한 몇몇 독서 카페와 제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웃들 간에 간간히 제기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촉발된 사이러스 님의 글을 보니, 2011년 여름 즈음이 생각납니다. 당시도 사이러스 님은 비슷한 고민(리뷰, 독후감, 서평에 대한 차이)을 하고 계셨고, 제가 페이퍼를 보고 댓글을 단 적이 있습니다. 뭐, 아래와 같은 내용이었죠. 약간 가필했습니다.

 

리뷰와 독후감 그리고 서평은 구별해서 쓰는 것이 좋습니다. 2년 전에 한 매체에서 기사를 쓰면서 배웠습니다. 일단 리뷰는 독후감과 서평을 아우르는 가장 넓은 개념입니다. 책을 읽고 기록하는 거의 대부분이 리뷰라고 보면 됩니다.

 

감상문(독후감)이 리뷰의 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은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 서평은 말그대로 책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루는 글입니다. 책을 읽고 객관적으로 쓰는 글이 서평입니다.

 

뉴욕타임즈 서평 기사를 보시면 서평이 어떤 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현 우리나라 신문지 상의 서평은 60퍼센트 이상 서평이라는 형식에 미달합니다. 그래도 신문사 기자들이 쓰는 서평이 그래도 낫습니다.

 

책을 객관적으로 평해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습니다. 독후감 또는 감상문은 책의 내용이 없이 느낌만 써도 됩니다. 이게 보편적으로 리뷰라고 일컬어지는 것과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수 있습니다.

 

리뷰는 책의 내용이 있어야 합니다만 독후감은 내용이 전혀 없이 그 상념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독후감이 될 수 있습니다.

 

요컨대 현 인터넷 상에서 대중을 상대로 책을 뿌리면서 서평을 요하는 글들은 거의 대부분이 '서평'이 아닙니다. 10중의 8, 9는 '나는 책을 이렇게 읽었고, 이런 부분이 너무 좋다'는 식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서평은 주관적인 생각을 가능한 배제하고, 평가가 가능한한 객관적이라야 하기 때문에 일정한 형식을 요합니다. 책에 대한 좋고 나쁨을 알려, 3자가 책을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평가가 객관적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지만요~)

 

물론 독서감상문을 평가형으로 쓸 수 있지만, 그 평가가 객관적이냐 주관적이냐에 따라 서평이 될 수도 있고 리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평, 리뷰, 감상문에 대해서 고민하시는 것 같아(엔날에 제가 고민했던 것처럼) 몇 자 남겨봤습니다.

 

오래 전 한국언론문화재단에서 신문에 나온 서평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은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교수들이나 전문가들이 신문지 상에 쓰는 서평이 형편없다는 보고서 였습니다. 하물며, 이런 블로그에서야 더말하면 뭘할까요.

 

학부 4학년 때 파이낸셜 타임즈를 구독한 적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그냥 무료로 보내줬죠. 한창 영어 공부하던 때라 아주 고맙게 받아 봤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즈의 거의 모든 분석 기사나 기획기사를 관심있게 보았고 또 스크랩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스크랩했던 기사가 서평란이었습니다.

 

얼마나 심도있게 책을 평가하는지, 당시 우리나라 신문들의 북섹션 리뷰와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서평 자체가 소논문 수준으로 밀도가 매우 높았습니다. 책의 장점과 단점, 특히 단점을 항상 명확히 짚어줬습니다.

 

위에서 평가의 객관성에 대해 언급했는데, 파이낸셜 타임즈의 서평 필자들은 최대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상당한 근거를 확보하며 책을 평가했습니다.

 

'이주의 읽을 만한 책은 이거 밖에 없어!'라는 식의 주장이 아니라 책의 장단점에 대한 세세한 근거를 보고 독자가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글을 씁니다.

 

근데, 서평을 읽고 있으면 책을 사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주 매력적입니다. 책의 인용 문구를 자신의 글에 자연스럽게 녹여 써서 최대한 책을 부각시킵니다.

 

책의 핵심 내용은 그대로 인용하는 게 아니라 매우 압축적이고 간견하게 요약하여 중학생이 봐도 어떤 내용인지 가늠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사실 저는 이게 가장 좋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책은 정말 읽을 가치가 있다!'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 자신의 생각(감상)은 최대한 자제한 채, 소개하는 책을 중심에 놓습니다.

 

분명히 서평자가 주관적으로 책을 소개하기 위해 주된 논점을 잡지만(이를 '야마'를 잡는다고들 하죠), 그 논점이 '책의 내용'에 갈무리 됩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책을 평가하게 되고, 독자를 설득시킵니다.

 

저는 이게 가장 모범적인 '서평'의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매체에 서평을 기고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위의 방식은 지켜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뷰나 독후감은 아주 자유롭게 써도 문제될 게 없겠죠. 남들에게 보이는 게 일차적인 목적이 아니라, 나의 독서활동 기록이 1차적인 목적이니까요. 보다 자유롭게 독창적으로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소개하는 책'이 중심이 되느냐, 아니면 '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 이건 무우 베듯 싹뚝 자를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마지막으로 매체에 서평을 기고할 때 매체의 대표가 강조한 좋은 서평의 요건을 부가하고, 그 매체의 대표가 쓴 그 요건에 부합한다고 하는 리뷰를 첨부합니다.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에 대해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시길 바랍니다.

 

&@※☆매체 **대표가 밝힌 [좋은 서평의 요건]

●개인의 비판적 생각은 자제하고 쉽고도 명료하게 쓰라.

●'아, 그래서 이 작가가 위대하구나'라고 느끼게끔 서평을 쓰라.

●서평을 보니 '~한 이유가 너무 다가오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도록 쓰라.

●서평을 읽고 나니 새삼 '~의 소중함이 느껴지네'라는 생각이 들도로 쓰라.

●색다른 토픽, 뛰어난 묘사, 감동을 줄 수 있는 글감과 전개로 쓰라.

 

 

 

 * 당시 매체의 대표가 밝힌 [좋은 서평의 요건]에 맞춰 서평을 쓰려고 하니, 도무지 그런 서평을 쓸 수 없을 것 같았다.특히 '읽고 난 뒤 기억에 남는 글'이라고 하는 조건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을 거 같아 좌절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평을 쓴 뒤 다시 엎어 버리길 수십 번. 그리고 나서 에라, 모르겠다~ 될데로 되라지..라는 생각으로 서평을 썼다는..

 

 

위 조건을 내건 대표가 모델로 보여 준 서평입니다. 이것은 오래 전 서평이고 매체에 기고한 게 아니라 그대로 가져와 봤습니다. (매체와 기고자 이름은 모두 블라인든 처리했음)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대한 서평입니다.

 

 

하늘에서 별따기 `초신성` 찾는 귀재

[◇◎○☆] `우리 태양보다 훨씬 큰 거대한 별이 수축되었다가 극적으로 폭발하면서 1,000억개의 태양이 가진 에너지를 한순간에 방출하여 한동안 은하의 모든 별을 합친 것보다 더 밝게 빛나는 상태`

 

 

초신성에 대한 정의다. 밤하늘에서 이 초신성을 찾기란 한마디로 `하늘에서 별따기`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설명하면 이렇다.

 

 

검은 식탁보를 덮은 식탁 위에 한 줌의 소금을 뿌린다. 흩어진 소금 알갱이들이 수많은 별로 이뤄진 은하다. 이 소금 뿌려진 식탁 1,500개가 이마트 주차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식탁에 소금 알갱이 하나를 뿌린다. 그 알갱이가 바로 초신성이다. 그것을 찾아내라고 하면 어떨까.

 

 

더 쉬운 비유를 들면 이렇다.

 

 

`63빌딩 전망대에 올라서서 망원경으로 서울 시내를 둘러보면서, 어느 집의 생일 파티 케이크에 불을 붙이는 사람을 찾아내는 일`.

 

 

하지만 그 초신성을 아주 쉽게 찾아낸 이가 있다. 호주 시드니 근처 불루 마운틴에 사는 에번스 목사다. 그는 1980년에서 1996년 사이에 한해 평균 두 개의 초신성을 찾아냈다. 1980년 당시까지 과학자가 찾은 초신성은 60개가 채 안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깜짝 놀랄 일이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유명 저술가 빌 브라이슨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2003. 까치)에 나온다. 우주에서 생명의 탄생, 그리고 현재 인류의 진화에 이르기까지 지구 35억년의 역사를 알기쉽게 풀이한 책이다. 기자출신인 빌 브라이슨은 3년에 걸쳐, 어렵고 골치아픈 `과학`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은 에번스 목사 에피소드처럼 흥미진진하다.

 

 

에번스 목사는 왜 초신성 하나를 찾기 위해 밤마다 망원경과 씨름했을까.

 

 

"나는 우주공간을 통해서 수백만 년을 지나온 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순간에 누군가가 하늘의 바로 그 곳을 쳐다보고 있다가, 그것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주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런 정도의 사건이라면 당연히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어야 하겠지요."

 

 

에번스가 초신성 찾는 데 귀재가 된 데엔 남다른 이유가 있다. 책에 따르면 그는 많은 천문가들이 북반구에 살고 있는 것과 달리 그 반대에 있었기에 혼자서 하늘 전부를 찾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각고의 노력일 것이다. 아마도 그의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을 이는 없을 것이다.

 

 

"나는 별들의 밭을 기억하는 재능을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에번스가 다른 일엔 재주가 별로 없었고, 심지어 물건 넣어둔 곳도 잘 기억 못했다는 점이다. 어떻튼 그는 밤하늘에서 그토록 어려운 초신성을 찾는 `재주`를 가진 덕에 천체물리학에서 한 장을 장식했다.

 

 

한가지. 이젠 에번스의 재능이 더 이상 필요없다. 왜냐하면 과학의 발전에 따라 컴퓨터가 알아서 초신성을 찾아 주게 되었기 때문이다. 밤하늘의 별을 세지 않는 세상, 에번스의 말은 흐르는 유성처럼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제 초신성을 찾아내는 일에서도 낭만이 사라져버렸지요."

 

[○○○○ ○○○기자]

 

 

 사실, 저는 이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끄덕 했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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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1-21 11: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서평은 비평적 안목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yamoo 2016-01-25 23:25   좋아요 0 | URL
네, 인정합니다. 그래야지요~!

2016-01-2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1-25 23: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까뮈님^^

oren 2016-01-21 12: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께서도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점`에 대해 그동안 고민이 많으셨군요. yamoo 님의 독창적인 견해(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소개하는 책`이 중심이 되느냐, 아니면 `읽은 사람`이 중심이 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듯합니다....)에 대해서도 일견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그리고, 뉴욕타임즈와 파이낸셜타임즈에 실린 `훌륭한 서평` 얘기를 들어 보니 우리나라의 열악한 `독서 환경`과 겹쳐지는 듯하여 씁쓸한 느낌마저 듭니다. 알량한 돈 몇 푼에 양심마저 팔아버린 듯한 서평,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신나게 떠벌이는 듯한 서평을 볼라치면 `베알이 뒤틀려서라도` 그런 책을 사기 싫어질 때조차 있더라구요.

yamoo 2016-01-25 23:27   좋아요 0 | URL
돈 몇 푼에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써주는 서평은 정말 심각합니다. 독자가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일조하니까요. 저도 그런 서평을 보면 베알이 뒤틀린답니다.ㅎ

저도 오랜 님처럼 서평에 인용구가 많은 걸 좋아합니다. 단지 미디어 쪽에 서평을 보내려면 그런 책의 내용을 압축적으로 요약하는 기술은 좀 필요하다 싶습니다~^^

yureka01 2016-01-21 1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평 수준으로 책에 대해 리뷰를 할려면 단지 책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연관된 자료를 찾고 근거를 제시하고 작가의 활동성과 책과의 관련 자료등이 책의 서평에 근거로 담보될 수 있을 거니까요.그런데 일반인이 이정도 수준의 서평을 쓸려면 책한권으로 무척 오랜 조사와 집필이 이루어져야 할 전문적 일이거든요. 대부분은 리뷰가 개인 감상문이 될 가능성이 그래서 농후해진다는 거....저는 독후감이라도 좀 잘 쓰고 싶어요..책 읽기도 빠듯한 시간에 서평까지 아울러서 쓸려면 한달에 책 몇권 리뷰 쓸수가 없겠다 싶더군요.

yamoo 2016-01-25 23:29   좋아요 1 | URL
저두 첨에 유레카님처럼 생각해서 서평을 도저히 못쓰겠더라구요. 근데, 위 페이퍼에 마지막에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의 서평을 함 봐보세요. 여러 권을 참조하지 않고도, 서평할 책만으로도 좋은 서평이 나올 수 있다는 걸 저 서평을 보고 알았지요.

네, 저도 독후감을 잘 쓰고 싶어요. 서평보단 리뷰를 많이 남기고픈 1인 입니다!^^

cyrus 2016-01-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여름이라면 제가 블로그를 한창 열심히 했던 시기인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몰랐습니다. ^^;;

서평 작성의 조건, 그리고 서평과 독후감의 의미를 이해하는 건 좋은데, 거기에 너무 얽매이면 글 쓰는 재미가 떨어질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 저도 ‘마이리뷰’에 입력되는 글을 작성하면 줄거리 요약과 간략한 감상만 적절하게 쓰고 맙니다. 참고로 저는 책 속의 좋은 인용문을 제 문장으로 새롭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일종의 작문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yamoo 2016-01-25 23:31   좋아요 0 | URL
네....아마도 그렇겠지요..ㅎㅎ

네, 리뷰에 쓰는 줄거리 요약과 감상...그걸 어떻게 재미있게 나름 객관적으로 쓸 수 있느냐가 서평가의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겠지요. 거의 모든 것들의 역사...서평을 눈여겨 봐 보세요. 저 정도 쓸 수 있으면 리뷰도 얼마든지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yureka01 2016-01-25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기사, 작가가 책을 내는 이유가 평가 받을려고 내는 목적이 몇퍼센트나 되겠습니까. 책으로 자신의 이야기와 사유하도록 단초를 제공하고 함께 생각하며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며 함께 재미있게 읽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 아닐까 싶어요. 서평에 너무 부담가질 필요없어요.자신의 느낌 소감 후기.이정도라도 충분한것아닐까 싶습니다. 책 서평가라는 직업적으로 덤비는 분들이야 전문성을 발휘해도 좋겠지만 일반인들은 책읽기도 빠즛한데 서평에서까지 해야 한다는게 너무 부담입니다. 알라딘에서도 책 비평가 수준의 서평가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도 보긴 봤습니다만, 그 또한 자신의 스타일대로 읽고 쓰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직장 다니며 책 읽기도 벅찬게 사실이거든요. 간혹 책으로 밥먹고 사는 사람들의 전략에 말려들 필요도 없구요..편하게 읽고 쓰며 즐깁시다.ㅎㅎㅎㅎ

감은빛 2016-01-31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야무님!` 이라는 생각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이 다르지만,
야무님의 의견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전 사실 개인의 평가를 잘 담아야 서평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후감은 평가가 아닌 감상 수준에 그치는 글이 아닐까 싶구요.
좋은 서평은 (내가) 이 책이 왜 좋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굳이 이 둘을 구분하고 또 분류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몇몇 작은 매체에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건 `서평`이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소개`였어요.
그래서 제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그 형식이 서평이든, 독후감이든, 책에 대한 글에는 항상 관심이 많습니다.
다만 출판사 제공 책 소개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글을
따로 읽는 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입니다.

yamoo 2016-02-01 13:24   좋아요 0 | URL
감은빛 님이 쓰신 그 서평이 제가 생각할 땐 좋은 서평같습니다. 평가가 담긴 책소개가 전 서평이라 생각하기에...

[제가 왜 이 책에 관심이 있는지,
이 책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전달하려 애썼습니다]
쓰시려고 노력하시는 글이 저는 좋은 서평의 전제 조건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글이 독후감 형식이면 어떻습니까.
저는 그런 글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고견 주셔서 넘 감사드리고, 바쁜 와중에도 건강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교양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지식 중 하나가 경제학이다. 고등학교 때 경제에 치를 떨어 학부 2학년 때까지 경제학과 담을 쌓고 지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 소개되는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교양서적을 읽어도 경제이론으로 넘어오면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할 수 없이 경제이론을 알기쉽게 소개해 준 책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주섬주섬 읽었던 책이 꽤 되어서, 4학년 때는 맘먹고 경제학 개론 수업을 들었었다.

 

하지만 엄청난 두깨의 경제학 교과서는 나를 주눅들게 했고, 교양으로 읽었던 책들은 시험에서 별로 도움도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학부의 경제학 시험은 교과서에 있는 이론을 그래프와 함께 답지에 옮겨 적는 일이였기에.

 

그 두꺼운 경제학 교과서에서 달랑 4문제만 나왔는데, 내가 이해하고 썼는지 아니면 외워서 썼는지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하게 확인했던 건, 교양경제학 책들이 시험에서는 아무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사실.

 

이후 졸업을 하고 경제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미시와 거시에 대한 교과서를 아주 가열차게 읽었더랬다. 강의도 아주 열심히 들었다. 그랬더니 연습문제의 상당수는 혼자 힘으로 해결할 정도는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교양경제학 책을 읽으니, 책들이 다시 보였다. 가독률이 늘긴 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행간의 의미와 수식의 의미를 새롭게 환기할 수 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경제학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경제학 교과서를 읽는 다는 건 엄청난 인내력과 집중력을 요구한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경제 이론을 알기 위해 이런 수고를 한다는 건 시간낭비일 수 있다.

 

시험을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론이 잘 정리된 교양서를 보는 것이 훨씬 이득이 된다. 무엇보다 분량이 작다. 내용 역시 전문 용어와 그래프를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에 교양경제학 책들의 유용성이 있다. 

 

최근 교양경제학 책들은 교과서에 밀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맨큐로 대변되는 교과서들이 워낙 쉽고 자세해서 교양경제학을 볼 필요가 과거보다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쉽게 서술되어 있다고 해도 교과서는 교과서다. 배우는 내용이 정해져 있어 쉽게 지루해 진다. 혼자 읽어나가다보면 미시경제학 중간 까지도 읽기가 버겁다. 700페이지가 훌쩍 넘는 큰 배판의 책을 읽는다는 건, 쉬운 설명이라도 고도의 집중력과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에 반해 교양경제학 책은 아무리 오래 잡아도 한 주일이면 완독할 수 있다. 대체로 분량도 300페이지 안팎이다. 다양한 저자들의 능력으로 인해 교과서보다 훨씬 다채롭고 이색적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교과서에 있는 비슷한 미시와 거시의 내용이라도 저자에 따라 구성과 문체가 달라 색다른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사례가 무척 구체적이고 재미있다. 교양경제학의 매력은 아마도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지금까지 읽어왔던 교양경제학 책 중에서 스테디 셀러 위주로 추천서를 추려봤다. 우리 몸이 비타민을 필요로하듯이 교양을 위해서는 정신의 비타민을 필요로한다. 섭취하지 않으면 교양에 빈혈을 일으킬 수 있기에.

 

그래서 교양경제학 추천 도서 10권을 꼽아 봤다. 물론 주관적인 의견이 많이 담겨 있기에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읽은 것이 많지 않다!) 더군다나 난 경제학 전공자도 아니다. 깊이가 얕을 수밖에 없다. 모든 걸 감안하고 봐주시면 고맙겠다.

 

 

1. <경제학 콘서트>, 팀 하포드, 웅진지식하우스

 

<경제학 콘서트>는 절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비록 거시경제학 비중이 적지만 이 책의 최고 강점은 경제학적 마인드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것.

 

대부분의 교양경제학 서적들은 이론을 쉽게 풀어 놓거나 이론과 사례를 적절히 쉽게 소개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경제학 콘서트>는 경제 원리로부터 새로운 사실에 응용과 적용력을 높이게끔 구성되어 있다.

 

마인드를 훈련하기에는 아주 좋은 책이다.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스타벅스 커피숍으로 매끄럽게 풀어내는 1장만 읽어도 이 책의 가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교양경제학 책으로는 보기 드물게 200쇄를 넘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권도 발간됐다. 책 타이틀에 '콘서트' 열풍을 주도한 대표적인 책.

 

 

2.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토드 부크홀츠, 김영사

 

교양경제학 코너에서 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책이 아닐까 한다. 어느 정도 체계있는 서술이 강점. 하지만 알맹이가 없는 게 흠이다. 여기서 알맹이란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좀 부족하다는 거.

 

최소한 그래프를 곁들여 설명하거나, 그래프를 소개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이론을 풀어서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변죽만 울리는 꼴이다. 쉽게 말해서 '레온티에프 역설'이라고 하면 레온티에프 얘기만 줄창 나오다가 이론 설명은 뭐, 한 줄 정도로 정리한다랄까.

 

뭐, '경제학자의 아이디어'를 엿본다는 취지로 본다면 괜찮다. 뭐니뭐니 해도 쉬우니까! 입문서로는 더 없이 좋은 책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최고의 경제학 교양서라고 정평이 났나부다.

 

어쨌든, 같은 저자의 <유쾌한 경제학>도 있으니 같이 보면 좋을 듯. 고1 학생도 쉽게 읽으실 수 있다니, 입문서로는 금상첨화가 아닐까 한다.

 

 

3. <10대 경제학자>, 요젭 슘페터, 한길사

 

경제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어려운 이론과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를 복잡한 그래프 없이 간결하게 소개한 책이다. 오래 전 고전에 반열에 오른 슘페터의 명저 중 한 권.

 

<10대 경제학자>는 그래프 없이 학자와 경제 이론을 소개한 책 중에서 가장 쉬운 서술을 자랑한다. 그것도 고전의 반열에 오른 책이 말이다!

 

이 책에는 '한계효용'과 '파레토효용'과 같은 익숙하고도 중요한 이론들을 그 이론을 주창한 학자와 그 뒷 얘기를 통해 재밌게 소개하고 있다. 이론의 핵심도 아주 간결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학자와 이론 그리고 학파가 어떻게 유기적인 관련을 맺고 어떤 학자가 어떤 학파적 배경에서 이론을 전개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저다. (아쉽게도 절판이다.)

 

 

4.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부키

 

케인즈 이후 경제학자 중에서 글을 가장 잘 쓴다는 폴 크루그먼의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는 책읽는 재미를 배가 시키는 경제학 책이다.

 

주로 주류 경제학자들을 맹렬히 공격하고 있는데, 읽다 보면 저절로 경제학적 이론을 습득하게 된다. 주로 아주 쉬운 사례를 들어 거창한 이론의 맹점을 드러낸다. 자연스럽게 이론의 부실함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명쾌하게!

 

아쉽게도 번역으로 인해 약간의 짜증은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가장 잘 나간다는 경제학자의 시각을 접할 수 있는 기분 좋은 책이다. 모형을 갖고 허점 있는 이론을 공격하는 석학의 신랄한 논리를 맛볼 수 있다.

 

경제학적 시각으로 어떻게 다양한 사건들을 비판할 수 있는지 체험해 볼 수 있는 명저. 크루그먼의 신랄한 비판은 글 읽는 재미도 배로 준다~

 

 

5. <유한계급론>, 토스타인 베블런, 우물이 있는 집

 

제도학파를 창시하고 시카고 대학의 명성을 세계에 알린 베블런의 대표작이다. 얼마나 재밌는지 단숨에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흡입력이 대단하다.

 

시니컬한 베블런의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이게 경제학 책인지 아니면 사회학 책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어느 순간에는 재미있는 문화인류학 개론서를 읽는 듯한 느낌도 든다.

 

상류층과 재벌 그리고 졸부들을 싫어하는 분들이 보면 상당한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쉽게 읽을 수 있지만 이 책의 가치와 명성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읽기 쉬운데, 1급 경제학 고전이라....구미가 당기지 않을 런지..

 

 

6. 발칙한 경제학, 스티븐 렌즈버그, 웅진지식하우스

 

스티븐 렌즈버그는 교양 경제학의 대가로 통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발표하는 책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기 때문일 거다. 대표작 <런치타임 경제학>(<안락의자의 경제학> 개정판)을 보면, 그가 경제학의 기본원리를 얼마나 독창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뭐, <괴짜경제학>과 뭐가 그리 다르냐고 묻는 다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왜 극장에선 팝콘을 더 비싸게 팔까?" "안전벨트 의무화가 오히려 교통사고 사망률을 증가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라는 논의들은 두 책이 매우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발칙한 경제학>은 정말 '발칙한 주제(?)들을 다룬다. 이 책이 발표된 이후 독자들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단다. 주제들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 원나잇 스탠드의 확대를 통한 에이즈 예방, 구두쇠의 미덕, 모성과 소득의 반비례 관계 등 하나같이 도발적인 주장들로 넘친다.

 

렌즈버그에 따르면, 이런 도발적인 주제와 논증 방식을 채택한 이유가 '세상의 속살을 읽는 힘'을 위해서라니, 일독할 만한 매력적인 책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7. <경제학 산책>, 조영달&홍기현, 김영사

 

 사실 이 책은 교양서를 가장한 교과서다. 곳곳에 그래프와 설명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읽었던 건 96년 1판 이었는데, 이게 계속 증보하여 지금은 1판보다 책이 2배로 늘었다. 그러니까 거시에 대한 그래프도 많아졌다는 얘기.

 

하지만 두꺼운 경제학 개론이나 원론 책을 보기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읽고, 내용이 없다고 투덜거렸을 때 읽은 책이니, 내용의 밀도는 보장한다.

 

아마도 교양경제학에 속하는 책 치고, 이 책만큼 내용이 충실한 책은 드물듯. 그만큼 읽기가 녹록치 않다는 거. 하지만 산책하고 나면 꽤 많은 경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8. <서른살 경제학>, 유병률, 인물과 사상사

 

유병률 기자의 <서른살 경제학>은 이제 헌책방에서도 쉽게 만나 볼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 말은 그만큼 이 책이 많이 팔렸다는 거.

 

삼십 대를 위주로 썼지만, 경제에 문외한인 30대를 위해 썼기 때문에 고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서술되어 있다.

 

이책의 최고 강점이라면, 실물경제를 바탕으로 어려운 이론을 쉬운 사례로 풀어준다는 것. 경제원론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이론을 이 책은 아주 간단하고도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앞 부분에 설명된 게임이론의 사례가 압권.

 

이 책이 아니었다면 앞으로 도래할 '실버 시대'가 그렇게 무시무시한 내용을 담고 있는 지 몰랐을 거다. 2장에 서술된 대기업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실물 경제 위주의 내용이다 보니 이론적 깊이는 덜한 편이다. 경제 주간지 읽는 느낌도 지울 수 없는데, 이는 그만큼 쉬운 서술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경제학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단지 현재 절판이라 아쉽다. 하지만 헌책방이나 도서관에 널려 있으니 일독하면 의외로 많은 걸 얻을 수 있겠다.

 

 

9.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부키

 

 이거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국방부 불온도서 목록에 올라 유명세를 떨친 책이다. 2010년 알라딘 올해의 책이기도 하다.

 

캠브리지 출신의 세계적인 경제학자 장하준의 대표작 중 하나. 영국에서는 책이 나오자마자 아마존 경제 부문 1위에 올랐다고 하니, 장하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일 것이다. 

 

이후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네덜란드, 대만, 태국 등 모두 9개국에서 출간되어 있단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는 충분하다. 23가지 중 세번 째 꼭지만 읽어도 본전은 뽑는다.

 

지루할 겨를도 없이 휘딱 읽을 수 있는 교양 경제서. 아직 읽지 못하신 분은 얼른 일독하시길 바란다~

 

 

10. 맨큐의 핵심 경제학, 그레고리 맨큐, 교보문고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그 유명한 맨큐 경제학 시리즈. 그 중에서도 <맨큐의 핵심경제학>을 꼽았다. 그 이유는 맨큐 시리즈 중 가장 분량이 적으면서, 핵심 사항은 죄다 담겨 있으니까.

 

1999년 교보에서 처음 <맨큐 경제학>을 보았을 때 경의로웠다. 경제학 교과서가 전혀 교과서 같지않았기 때문. 당시 경제학 교과서는 2색 인쇄로 무지막지하게 두껍고 어려운 서술로 정평이 나 있었다.

 

헌데 <맨큐의 경제학>은 완전히 다른 책이었다. 컬러풀한 그림들과 함께 실려 있는 각종 읽기 자료들(신문기사와 사례연구)은 교과서와 교양서의 장점을 고루 반영한 듯했다.

 

서술은 얼마나 쉬운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보다 쉬웠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고교 상위권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다나 뭐라나.

 

교양경제학 책을 읽고도 뭔가 아쉬움이 남는 다는 분들에게 강추할 수 있는 책이다.

 

[덧]

이 외에도 일독하면 좋을 교양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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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1-19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yamoo 님의 글을 읽으니 사람마다 `개성`이나 `취향`이 참으로 다양하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저는 고등학교때 배웠던 <정치경제>라는 과목이 꽤나 재미있었거든요. 다른 과목들에 비하면 훨씬 더 쉽기도 했구요. 그래서 `경제`나 `정치`도 뭣도 잘 모르면서도 고1때 덥석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가 쓴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을 사서 읽으면서도 무척이나 흥미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그 책도 꽤나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지요.. 아직도 팔리고 있고요.) 그 책 속에는 애덤 스미스, 리카도, 케인즈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와 레닌 등과 같은 머리 아픈(?) 인물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는데도 말이지요. 물론 대학 1학년때 교재로 썼던 어마어마하게 두껍고 무거웠던 책 한 권(원서로 된『Economics』,저자는 시카고학파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사무엘슨)만 보면 한숨부터 나왔지만 말이지요... 암튼 흥미롭고도 친절한 안내가 담긴 글 잘 읽었습니다.

yamoo 2016-01-20 17:52   좋아요 0 | URL
정치는 재밌었는데, 경제가 잼병이라 정치경제를 포기했지요. 저는 고교 때 세계사와 지리를 택해 공부했습니다.

헉 고1 때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라니! 엄청나네요. 저는 그 책을 학부 2학년 때 만나 봤지요.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학부 때 경제학 원론을 저도 사무엘슨 경제학으로 봤습니다. 원서로 수업했는데, 번역본을 갖고 왔다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6-01-1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3번 책을 알라딘 중고매장에서 샀습니다. 한길그레이트북스 시리즈로 나온 번역본을 제외하면 슘페터가 쓴 책이 많이 없어요.

yamoo 2016-01-20 17:56   좋아요 0 | URL
오! 그렇군요~ 득템하셨네요^^
요즘 슘페터 저작들이 번역돼고 있는 걸로 알아요. 박영률출판사에서 슘페터의 주저 <경제발전의 이론>번역도 있고, <제국주의의 사회학>도 출간됐어요.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번역도 재간됐구요.
주저가 점점 번역돼고 있어 고무적이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1-19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학서가 의외로 재미있더군요. 딱 한 권 읽었네요... 베블린...
야무 ㄴ 님 말씀처럼 이 책 참 재미있어요. 탁월한 명저임..

근데 경제학서 하면 자본론도 포함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가만 보면 자본론은 정치학서이기도 하고 경제학서이기도 하고.. ㅋㅋ

올해에는 글 자주 올려주십시오.

yamoo 2016-01-20 17:58   좋아요 0 | URL
저는 예전판인 <한가한 무리들>로 봤어요. 동인에서 나온걸로. 진짜 하루만에 다 읽었더랬죠. 읽어보셨군요..ㅎ

경제학의 근간이 된 3대저인 국부론, 자본론, 일반이론은 교양경제학의 범주를 넘는 것 같아 제외했어요. 베블런의 저 책보다 읽기에 너무 버겁고, 재밌지도 않고요..ㅎ

곰발님이나 올해 자주 올려주세요, 주로 까는 글로다가^^

stella.K 2016-01-2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경제학은 잼병인데...
그런데 무조건 어려워 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죠.
얼마 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하도 안 읽어서
아는 분한테 넘겨 드린 적이 있어요.ㅠ
소개하신 책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야무님 페이퍼는 별찜했어요.
언제고 읽을 날 있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yamoo 2016-01-20 18:00   좋아요 0 | URL
아마도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는 쉽게 읽으실 수 있을 거 같아요.
근데, 관심이없으면 안 읽게 되지요. <서른살 경제학>이라도 읽으심이...대기업 얘기와 실버시대를 언급한 장만 봐도 도움이 됩니다. 하나도 어렵지 않다는!

네, 스텔라님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Rove 2017-05-14 0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종이달 2021-08-27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소설 평론에 대한 글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포스트모더니즘 작품들로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이인화),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살아남은 자의 슬픔><박이문) 등을 소개하고 있었다.

 

 

 

 

 

 

 

순간, ‘이건 뭐지?’하는 황당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고나 할까. 하일지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소개된 두 작품은 학부 때 모두 읽어 보았다.

 

 

내가 읽었던 소위 ‘포스트 모던’한 작품들과는 한참 동떨어진 작품들이었기 때문.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는 거다. 다음 목록들과 비교해 보자.

 

 

윌리엄 버로스의 <네이키드런치>, 토마스 핀천의 <제49호 품목의 경매>, 도널드 바셀미의 <백설공주> 등.

 

 

 

 

 

 

 

뭐라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공통된 느낌이 있다. 전통적인 서사 구조 보다는 복잡하고 산만한 느낌 속에서 어떤 냉소적인(또는 전복적인) 비판 정신이 보인다랄까.

 

 

하일지, 이인화, 박이문 등의 작품을 버로스, 핀천, 바셀미와 같이 묶을 수 있다?! 어떤 관점을 취하면 같이 묶을 수 있을 지 심히 궁금하다.

 

 

평론가의 책에는 그냥 무책임하게 우리나라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로 3명의 작품을 꼽은 게 전부다. 근거는 개뿔도 없다. 그래서 정말 알고 싶은 거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회자되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있는 지. 몇 년 전부터 한국 소설과 담을 쌓고 있어 별로 아는 게 없어 정말 궁금하다.

 

 

일단 이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이 좀 막연해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인듯하다. 하버마스와 리오타르 논쟁이 포스트모더니즘 개념을 촉발시킨 건 어느 정도 수긍한다.

 

 

하지만 문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 규정하는 범주는 현재까지 매우 모호한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작품을 '해체주의' 개념에 포섭하는 것 자체도 우습다. ‘해체주의’가 무엇인지는 아직 교통정리도 되지 않은 듯한데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문학에서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은 해체주의를 포괄하는 아주 광범위한 개념이랄까. 여튼 그렇다. 문학이라 느낌이 중요한 듯. 읽으면 느껴지는 뭐 그런 거.

 

 

이런 맥락에서 내가 발견한 한국 포스트모더니즘의 진정한 기수라 생각하는 작가는 박상륭이다. (물론 느낌만으로!) <죽음의 한 연구>만 보더라도 포스트모던한 포스를 마구 풍기지 않느냐는 말.

 

 

 

 

또 다른 작가로는 김운하를 꼽을 수 있다. 대표작 <137개의 미로카드>를 보면 위 외국 작가들의 작품과 매우 비슷하다. 김운하의 단편들도 정말 독특하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최근까지 이 두 사람 이외에는 포스트모더니즘에 속할 수 있는 작가를 알 지 못한다. 문학 독서량이 일천해서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에서 포스트모던 계열의 작가는 정말 거의 없는지 알고 싶은 거다.

 

 

아시는 분이 있으면 제발 야무의 궁금증을 풀어주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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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6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금 전에 곰발님이 포스트모던을 언급했는데, 갑자기 포스트모더니즘을 제대로 알고 싶어지네요. 저 같은 입문하려는 독자를 위해 좋은 책 추천 부탁드립니다. ^^

yamoo 2016-01-19 19:31   좋아요 0 | URL
흠...읽은 게 많이 없어서뤼..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모스트모더니즘의 조건>과 <지식인의 종언>을 읽어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포스트모너니즘은 리오타르에 의해 촉발된 개념이라 일독하면 좋습니다~

2016-01-1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yamoo 2016-01-19 19:33   좋아요 0 | URL
저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정확히 뭔지 잘 모릅니다.

예전에 웅진에서 나온 포스트모던 걸작선이라는 선집이 몇 권 있는데, 읽어보면 어떤 공통된 느낌이 있긴 합니다만...

저도 궁금증을 풀어줄 분이 있을까하고 올린 페이퍼에요^^;;